전출처 : 바람구두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읽는 미술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박홍규 선생이 직접 쓴 것이든, 옮긴 것이든 박홍규 선생이 관여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상당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박홍규 선생의 팬이라서라기보다는 내가 원하고 있는 상당 부분의 지적 호기심, 관심 분야가 겹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지식이 앞서 길을 찾은 이의 길찾기 과정을 놓고 되밟거나 새롭게 찾아내는 일이라고 했을 때 이 책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는 언젠가 나로서는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미술 작품과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펼쳐 보인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해석하는 작업이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자크 칼로"를 제외하고 고야, 도미에, 콜비츠, 루오, 오토 딕스 등등의 이름이 내겐 그리 낯설지 않다. 예전에 사카자키 오쯔로오의 "반체제 예술"을 읽을 때도 이미 익히 접했던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고야의 "카프리치오" 연작 판화들과 케테 콜비츠의 "농민전쟁" 연작 판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왜곡된 우리 교육 현장의 분위기 탓도 있었을 것이고, 당시의 척박했던 시대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이런 그림들을 찾아보도록 했을 것이고, 르누아르의 그림보다 더한 감동으로 전해지도록 했을 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탓일지, 내가 변한 탓일지 모르겠으나 박홍규 선생의 이 책은 풍성한 컬러도판에 세련미를 더한 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사카자키 오쯔로오의 "반체제 예술"(이 책은 흑백의 좋지 않은 도판들로 구성)보다 감동은 적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내가 이미 접해왔으며 다른 책들을 통해 사전지식을 갖추게 된 탓도 있을 것이며, 그와 같은 점이 반대로 처음 이 방면에 대한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에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남는 아쉬움은 "반전과 평화의 미술"이란 공통점으로 묶이는 작가들의 나열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고야 편에서 훗타 요시에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재론하는 것은 박홍규 선생의 입장에선 충분히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었겠으나 대중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는 난이도의 책에서, 훗타 요시에의 "고야"론(論)은 한길사에서 4권으로 나온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과연 그 정도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점에서 지적할 만한 다른 한 가지는 반전과 평화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되 각각의 화가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갔더라면 최소한 나 한 사람의 입장만 놓고 보자면 좀 더 흥미진진한 책이 되었으리라 하는 것이다. 전체 페이지가 300쪽 이내인 이 책에서 르네상스 시기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미술사 속에서 찾아낸 예술가들을 쪼개어 다루는 일종의 평전과 유사한 구성이 반전과 평화란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책과 박홍규 선생이 추구하는 바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런 점들이 보강되었더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고, 첫 걸음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흡족한 체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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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1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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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3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