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사고가 내게 새로 알려 준 것 ; 응급 상황에서의 행동

 

나는 겁이 많다. 호기심이 많은 애니어그램 5형의 심리 기제에는 미지未知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한다. 겁이 많은 성격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한 준비를 하게 만든다.

 

요즘은 일반화 되었고 영화 상영 전에 대피 방법을 알려주지만, 예전에 나는 극장을 가면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피해야 하나 둘러보고 했다. 실제로 도움이 안 되겠지만 <노빈손의 무인도 완전정복>, <SAS 서바이벌 백과사전, 야생편>같은 책을 읽기도 한다. 지하철을 탈 때도 문의 수동 개폐장치를 유심히 본적이 있다. (대구 지하철 사건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가스에 중독되어 다음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별 소용이 없겠지만, 아이에게도 주의를 준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 길을 잃은 다면, 제자리에 기다릴 것. 아니면 안내데스크 같은 곳을 찾아 성인에게 도움을 구할 것. 안내데스크와 같은 곳을 발견 못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부모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니, 핸드폰으로 연락할 것. 만약 길거리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당하게 되면 경찰서를 찾아가거나 경찰관의 도움을 받을 것. 집에서 화재와 같은 곤란한 경우 유선 전화로 연락할 것. 베란다로 가서 도움을 요청할 것. 베란다에 아래층으로 통하는 탈출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는 대피 공간으로 따로 마련되어 있고, 사다리가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등.

 역시 별 소용이 없겠지만, 이와 같은 개별 상황이 제시된 경우를 포함하여 모든 경우에 침착하게 어른의 통제에 따를 것. 재난 상황에서 침착하고 질서 있는 행동은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속한 사람이 살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고로 마지막 ‘침착하게 어른의 통제에 따를 것’은 잘못된 교육을 판명이 났다. 실제 신문 기사에 학생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통제에 따라 움직이지 말 것을 당부하였고 학생은 사망하였다. 세월호에 이어 발생한 서울 지하철 사고에서도 승객이 알아서 피신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고 수습 지휘부의 통제에 대해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각자 알아서 움직이는 것에 일정 효용성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해 줘야 되나. 통제를 잘 따르라고, 아니면 통제와 반대로 움직이라고. 재난 훈련을 한다고 하고 참석률이 적다고 비판하기도. 지휘부의 통제를 따르지도 않을 것인데, 무슨 훈련이 필요있단 말인가.

 

세월호 사고는 구조인원 0명이라는 진기록도 있지만, (대중 매체 기사에 근거하면) 혼자만 살려고 했던 승무원은 다 살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은 모두 죽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자녀들에게 뭐라고 훈계할지. ‘나만 먼저 살면 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알아서 재난 상황을 극복하라’고 아이에게 지침을 줘야 되나, 아니면 ‘의사자義死者가되라’고 이야기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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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1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흑학을 추천합니다. 악인이 성공한다는 철학인데요. 읽을 만합니다.

마립간 2014-05-16 17: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검색에 신동준 저 위즈덤 하우스의 책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이 책을 바로 구매 신청했습니다. '후흑'이라는 책이 오랜동안 보관함에 있었는데, 읽기에 어떻할지 몰라 구입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구입하게 되네요.

책을 읽고 나서 판단해야겠지만, 악인도 성공할 수 있지만, 악인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귀곡자의 경우 방법론적 접근을 이야기하던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7 00:56   좋아요 0 | URL
음... 아, 이거 .... 급 당황하게 됩니다. 제가 말한 건 이종오의 후흑'입니다.
하지만 신동준도 후흑을 풀어서 설명했다고 하니 개론서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마립간 2014-05-17 07: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후흑'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후흑학'으로 이야기하셔셔.

제가 예전에 봤던 '후흑'은 검은색 표지로 기억하는데, (아마 착각한 듯) 이종오의 후흑이 붉은 색 표지라서 같은 책인지 아닌지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검색으로 나온 첫 책을 고른 것인데, 읽고 마음에 들면 이종오의 책도 구입하지요. 이종오 후흑의 번역자 신동준으로 번역 후에 개론서를 출간하신 것이네요.
 

 

* 세월호 사고가 내게 다시 알려 준 것 ; 이상과 현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인데, 이번에 실감하고 있다. (뭘까? 부패. - 이것도 분명히 답이 된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가나 정부를 보는 시각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배웠다. 나는 발달장애가 있는지 어렸을 때 배웠던 내용이 생각에 각인되어 잘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일부가 평등하고, 일부는 불평등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평등한 일부가 예외로 무시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기대하는 세상은 만인,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법 아래에 있다. (이것이 이상理想이다.) 사실 법 아래에 모든 사람이 있다고 해도 법 자체가 공정한 것, 정의로운 것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것은 법 아래 있는 사람과 법 위에 있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리고 법 위에 있는 사람이 법을 통해 법 아래 있은 사람을 통제하면서 군림하려 한다. (이것이 현실現實일 것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선거 때, 자신이 공복公僕임을 내세우면서 선거운동을 한다. 그러나 선출직이든, 비선출직이든 공무원 일부는 법 위에 존재하고 일부는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법 아래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법을 집행한다.

 

법은 고대 시대에도 있었고, 중세 시대에도 있었다. 이 법들이 백성들을 위한 법이었나, 아니면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나. 이 당시에 백성은 군주나 귀족과 동등하지 않았다. 군주나 귀족에 입장에서 보면 백성은 소모품에 가깝다. 이 당시에 배가 뒤집혀졌을 때, 사람을 구해야 할까, 배를 구해야 할까? 배를 구해야 한다. 군주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백성보다 배가 더 희소성이 있었다. 귀족이 사건 현장에 온다면, 사람을 구해야 할까, 귀족에 대한 예우에 신경을 써야 할까? 귀족에 대한 예우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백성의 목숨은 귀족의 예우에 미치지 못한다.

이 당시에 국가와 정부, 백성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중국의 군주와 귀족은 백성과 거리를 두기 위해, 백성을 폐 아래서陛下, 전 아래서殿下, 각 아래서閣下만 머물게 했다. 당연히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기 위해 다가가 안아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실언을 포함한 실수는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예외로 인정한다. 흔하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고 현실이다.

 

나의 이러한 견해는 나에게 나름대로 많은 현상을 설명해 준다. 구조 인명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은 해난사고, 미개한 국민 발언, 구조보다 의전에 신경 쓰는 공무원, (이 일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이나 사건 조작, 재벌 총수들의 범법에 대한 구형과 사면, 무상급식 논란 등.

 

그러면 결론이 이렇게 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수사적으로 배웠던 것을 현실로 잘못 파악했고, 그 수사적으로 묘사했던 근대 이후를 살고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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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4-05-1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으니 빌 게이츠가 인생은 불공평하다..그것에 익숙해지란 했던 말이 떠 오르네요~ 사실 그는 인생 불공평하니 그것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한건데~

마립간 2014-05-15 12:19   좋아요 0 | URL
덕분에 빌 게이츠 명언을 찾아 보았는데, 저는 'TV는 현실이 아니다'라는 글에 주목을 하게 되네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현실이 아닐 정도는 아니더라도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학교는 승자나 패자가 뚜렷이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라. - 이 문장도 '사회뿐만 아니라 학교의 승패도 명확해지며 그 결과는 잔인하다'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마녀고양이 2014-05-15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들에 대해서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저는 좀 더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의 노력으로 현실이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이상화하고 회피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청소년과 부모들, 성인들을 만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이고, 참으로 깨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건 타당화보다 더 어렵더군요.

마립간 2014-05-15 15:11   좋아요 0 | URL
저는 명시적 규정이 있음에도 관례가 작동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에서 현실성 있는 규정에 대해 주장한 바도 있는데, ... 그것이 우리 나라 문화에서는 설득이 잘 안 되더라구요.

의료계도 마찬가집니다. 현실적인 제도는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각자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제안조차 못합니다.

저는 이 사회에 대해 무기력에 빠져, 회피하려는 것 같군요. 현실을 받아드리는 훈련을 잘 받지 못 했고, 가끔 내가 일제 식민지하에 태어났다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을까 고민했겠죠. 그때도 회피했겠죠.

마녀고양이 2014-05-15 21:40   좋아요 0 | URL
적어도 인식하고 계시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립간님께서 회피만 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은 보통 사회분야에서 불공정 조건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전과 불안전에 관해서도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별 생각 없이 행동을 하면 안전을 무시하는 쪽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별 생각 없이 공을 찬다면 공은 아래쪽 골대 - 불안전으로 공이 흐른다.) 이 안전과 불안전에 관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회분야의 불공정 조건 기울어진 운동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아주 쉬운 논리, 이유로 해석된다. 생명을 포함한 안전에 얼마만큼 투자를 할 것인가. 이 투자에는 직접적인 돈, 노력, 관심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인식이 안전을 가볍게 여기면 그에 합당한 현상(사건) 나타나게 된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기업이고, 이것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 역시 공범이다. 하지만 국민은 피해자이기만 한가? 국민 역시 기업을 지지함으로써 (아니면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극적 협력을 통해), 안전을 무시한 정부에 투표함으로써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공범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 2년 전 이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안해가 베란다에 이상한 것이 있다고 와서 보라고 했다. 안해가 지적한 것은 아래층 베란다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였다. 베란다는 사적 공간이 동시에 공적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란다 공간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베란다의 역할은 화재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위층-아래층에서 사람이 이동함으로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만든 시절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부 공간을 늘리기 위한 불법 확장 공사가 일반화 되었고, 정부는 사死문서화 된 불법을 합법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베란다의 원래 역할은 잊혀져갔다.

 

예전에 버스나 지하철 노동쟁의로 준법 운행 투쟁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시민의 발을 묶는 노동쟁의라고 비난했고, 준법 운행을 중단함으로써 대중교통이 정상화 되었다고 하였다.

 

수학여행 사고도 새삼스럽지 않다. 70년대 어느 때, 수학여행하는 학생을 태운 버스가 철도 건널목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진입하다가 사고가 났다. 그리고 한 동안 수학여행 자체가 없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쯤, 슬며시 다시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 운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쩌면 아파트 화재가 나고 인명 피해가 생긴 후 베란다 문제, 방화문, 계단에 있는 자전거나 적재물을 놓고 안전 불감증을 이야기하고 버스, 지하철 승하차 사고나 나서 인명 피해가 생기면 다시 안전 불감증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우리는 피해자인 듯 분개하지만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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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화自和

 

<그림으로 풀어쓴 황제내경>을 읽던 중 아랫글을 읽게 되었다.

 

p 36 음양의 대립對立, 제약, 호근互根 (음양이 서로 의존함), 호장互藏 (음과 양이 각각 상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교감交感, 소장消長 (쇠하여 사라지고 흥하여 생김. 즉 음양의 대립), 전화轉化 (서로 전화함.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된다.), 자화自和 (음과 양의 부조화에서 평형을 유지함.), 평형 등

 

다른 것은 그냥 읽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자화’라는 것이 눈에 띈다. 부조화와 평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물리학에서 과포화나 과냉각 상태가 있는데, 꼭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다.

 

사실 감정적 불편은 물리학적 비유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인문학적 비유에서 비롯되었다. 식민지나 독재와 같은 사회적 상황은 부조화에 해당하는데, 이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평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수학적 은유로는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4차 방정식(y = ax**4 + bx**3 + cx**2 +dx + e, a는 양수)에서 세 개의 극점을 갖고 2개는 아래로 볼록한 극점을 갖는다. (극점이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른 상태라면,) 하나의 아래로 볼록한 극점은 다른 아래로 볼록한 극점보다 높지만, 그 상태에서 안정을 한다.

 

이 사회현상에 은유시키면, 높은 아래로 볼록한 극점은 독재 정치다. 낮은 아래로 볼록한 극점은 민주 사회다. 독재 정치에서 민주 사회로 이행하려면, 위로 볼록한 극점인 언덕을 넘어야 한다. 사회적 에너지가 없으면 독재 정치에서 안정한다. 민주 사회에서 언론 장악이나 공안 통치를 통해 위로 볼록한 극점인 언덕을 넘겨 독재 정치에 사회를 옮겨 놓고 사회적 에너지를 약화시켜 버리면, 사회는 독재 정치에서 안정하게 된다.

  독재에 안정된 사회에서 더 멀리 보려하는 아웃사이더는 언덕너머 더 안정적인 극점에 동경을 갖지만, 사회는 그대로이다. 언덕이 사회에너지에 비해 너무 높고 멀다면 단지 사색에만 있는 더 안정된 극점이 의미가 있을까? 현 사회에 알맞은 파도 옮겨 타기를 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파도 옮겨 타기 ; 기회주의자들의 행동 모습. (예를 들어 구한말에 세도정치와 야합을 하다가, 일제시대에 친일하고, 이후 독재시대에는 친親독재를 하고, 지금은 친재벌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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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2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쟁(수직적 관계 지향)이냐 연대(수평적 관계 지향)의 장점만 유지하는 것, 즉 경쟁 시스템을 갖추되 수평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위로 볼록한 극점에 위치하는 것으로 은유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雜記 130722

 

- 부제 ; 열패감

 아이가 틈틈이 내게 묻는다. 저 분 빨간불인데, 횡단보도를 건너가네. 저 자동차는 왜 신호 안 지키지? 왜 차선을 안 지키지? 왜 담배를 함부로 버리지? ; 비교적 작은 의義에 관해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 패배의식이 있는 나는 딸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까?

 나는 어떤 사람에게 진보냐 보수냐를 판단하고자 한다면서 자유를 선호하느냐, 평등을 선호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의 가치관을 판단하지 않는다. 상투적이고 행동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 속마음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적으로 사용하는 질문은 ‘낙태’다. 나는 낙태에 관해 딱 50:50이다. 한편 이利에 밝은 사람일까 의에 밝은 사람일까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때는 질문 없이 사람을 행동을 통해 일제 식민지하에 친일親日을 기준으로 삼는다. (친일을 했겠냐고 물으면 누가 그렇다고 대답하겠는가.) 상상을 한다. 이 사람이 친일을 했을까 안 했을까?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유익한 점은 친일로 인해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게 한다는 것이 장점일까?)

 

* 사필귀정 ; 이 사자성어가 진실일까?

 http://blog.aladin.co.kr/maripkahn/4940847

 

*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아직 못 읽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54892

 

* “우리 역사에는 정의가 패배한다.”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http://blog.aladin.co.kr/honeyssam/5697687

 

아이에게 학업에 관한 것을 가르치기는 쉽다. 그러나 도덕/윤리에 관해서는 간단하지 않다. 그러던 중 드림모노로그님의 글을 읽었다.

 

* (쓸데없는? 고민을 하던 중) 직장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

 우리나라에서 법을 알면 부자가 되고, 법을 지키면 거지가 된다.

 직원들이 사업주를 칭찬하면서 직원 이동이 없으면 그 회사 망하고 있는 것이고, 직원들이 사업주를 무서워하면서 직원 이동이 없으면 그 회사 잘 되고 있는 것이다.

 

* 정직하고 투명하게 일하려는 사람과 투명성을 극도로 싫어(두려워) 하여 술수를 쓰는 사람과 경쟁하면, 후자가 거의 언제나 승리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http://blog.aladin.co.kr/weekly/6475174

 

*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면 빙신'이 된다는 사실. 빙신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참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고,

 http://blog.aladin.co.kr/749915104/6477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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