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울어진 운동장

 

‘기울어진 운동장’은 보통 사회분야에서 불공정 조건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전과 불안전에 관해서도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별 생각 없이 행동을 하면 안전을 무시하는 쪽으로 행동을 하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별 생각 없이 공을 찬다면 공은 아래쪽 골대 - 불안전으로 공이 흐른다.) 이 안전과 불안전에 관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회분야의 불공정 조건 기울어진 운동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아주 쉬운 논리, 이유로 해석된다. 생명을 포함한 안전에 얼마만큼 투자를 할 것인가. 이 투자에는 직접적인 돈, 노력, 관심이 포함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인식이 안전을 가볍게 여기면 그에 합당한 현상(사건) 나타나게 된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기업이고, 이것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 역시 공범이다. 하지만 국민은 피해자이기만 한가? 국민 역시 기업을 지지함으로써 (아니면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극적 협력을 통해), 안전을 무시한 정부에 투표함으로써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공범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 2년 전 이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안해가 베란다에 이상한 것이 있다고 와서 보라고 했다. 안해가 지적한 것은 아래층 베란다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였다. 베란다는 사적 공간이 동시에 공적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란다 공간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베란다의 역할은 화재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위층-아래층에서 사람이 이동함으로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만든 시절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부 공간을 늘리기 위한 불법 확장 공사가 일반화 되었고, 정부는 사死문서화 된 불법을 합법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베란다의 원래 역할은 잊혀져갔다.

 

예전에 버스나 지하철 노동쟁의로 준법 운행 투쟁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시민의 발을 묶는 노동쟁의라고 비난했고, 준법 운행을 중단함으로써 대중교통이 정상화 되었다고 하였다.

 

수학여행 사고도 새삼스럽지 않다. 70년대 어느 때, 수학여행하는 학생을 태운 버스가 철도 건널목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신호를 무시하고 진입하다가 사고가 났다. 그리고 한 동안 수학여행 자체가 없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쯤, 슬며시 다시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 운전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쩌면 아파트 화재가 나고 인명 피해가 생긴 후 베란다 문제, 방화문, 계단에 있는 자전거나 적재물을 놓고 안전 불감증을 이야기하고 버스, 지하철 승하차 사고나 나서 인명 피해가 생기면 다시 안전 불감증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우리는 피해자인 듯 분개하지만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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