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한민국 만세 (만세) 내 한몸바쳐 노래하네 (하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힘겹게) 홀로 맞서 싸워온 지난날에 아픔을 (눈물을)
이제는 함께할게요. 멀리 있어도 울지말아요.

Verse 01


오랜시간 외로이 멀리/ 저멀리/ 조국을 바라보며 흘렸던 눈물이 슬픔이/
차가운 비가 되어/ 한없이 흘러내려/ 작은섬에 아팠던 상처에 과거에/
지울수 없는 한이 맺혀
(대답해줘)제발 날 구해줘/ 오~ 내 꿈은 날개를 달고/
가장 높은곳에 우리 태극기를 꼽고 기도/ 수백번이고/
독도/는 우리의/ 역사 한페이지에/ 왜놈/들 지도엔 왜곡된 사실만이/ 많이/도
시달렸지/ 종군 위안부/ 조선에/ 꽃다웠었던 소녀들을 성의 노예로/ 지금도/
감당할수 없을 만큼의 수치심으로/ 살아가시는 우리의 할머님들의/
마지막 남은 눈물까지/ 제발 탐하지/ 않았으면해/ say~


우리 대한민국 만세 (만세) 내 한몸바쳐 노래하네 (하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힘겹게) 홀로 맞서 싸워온 지난날에 아픔을 (눈물을)
이제는 함께할게요. 멀리 있어도 울지말아요.


verse 2


강제수탈/ 강제징용/ 강제징병/ 마루타 생체실험까지/ 니네들이 지금까지/
우리네 가슴속에/ 잔인하게 박아논 말뚝은/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더라/
변함없는 거만함으로 우릴 약올리더라/ (그쉬운 사과)/ 한마디 없이 무시하더라/
신사참배/ 총리의 만행/ 새파랗게/ 거짓말만 늘어댄 교과서에/ 영웅이된 일본인들 모두들/
감추려 하지만 모든 진실은/ 비웃고 있었음을/ 내/ 터질것 같은 분노는/ 내게/
주어진 마디수로는 다/ 할 수 없는걸/ 오늘 난/ 아득히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다했던/ 순국선열을 위해/ 기도를 해/ 내 한몸바쳐 노래하네


우리 대한민국 만세 (만세) 내 한몸바쳐 노래하네 (하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힘겹게) 홀로 맞서 싸워온 지난날에 아픔을 (눈물을)
이제는 함께할게요. 멀리 있어도 울지말아요.
우리 대한민국 만세  내 한몸바쳐 노래하네
거친 파도와 비바람에 홀로 맞서 싸워온 지난날에 아픔을
이제는 함께할게요. 멀리 있어도 울지말아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Lee. J 가 불렀습니다.

작년에 노래 처음 듣고 힙합에 이런 정서가 있구나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들에게 들려주니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심각하게 듣더군요.

전 좀 더 심각하게, 의미있게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지요.

문화의 힘이란 놀랍습니다.

독도문제가 왜 심각한 지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노래 한 곡 들려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런데, 가사 정말 잘 썼군요. 전 처음에 듣고 눈물 났어요ㅠ.ㅠ

노래도 같이 올리고 싶지만, 저작권 문제가 있으므로 패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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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 속에 숨어 있는 역사의 한 뜸"을 읽고 있는데 연산군을 해석한 내용에서 마음에 와 닿는 부분들이 있어 몇자 적는다.

저자는 많은 책을 참고해서 보았을 것이고, 책을 읽다 보니 게 중에는 내가 읽어본 책도 많이 겹치는 것 같다. 그런데 사고는 서로 다르게 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읽은 책들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편이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 안에서 다시 재구성을 하고 반박도 하면서 새 책을 펴낸 것이다.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나쁜 편이다. 그가 무도했고, 패륜적인 행동을 한 것들도 사실이다. 

쫓겨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동정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저자는 당시 사화의 희생자였던 사림들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렸다.

그들이 연산군을 어떻게 몰아갔고, 때문에 불거진 사건들에 대해서 추론해 낸 저자의 판단은, 나의 공감을 너무 쉽게 사버렸다.

훈구파가 부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림파라고 얼마나 더 깨끗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그 결벽증에 가까운 'only성리학'이라는 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상상해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연산군의 행위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그, 불행한 유년시절과 가혹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는 그의 정신 세계를 감안했을 때, 그를 파멸로, 더불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원인 중에는 사림파들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책속에 흥미를 느끼고 작가의 생각에 동조하게 되니, 앞서 불편했던 책의 단점들이 모두 가려지기 시작한다.  지금 1/3 정도 읽고 있는데, 아마 책을 다 읽고 나면 더 많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만 사람이 생각하면 만 가지 생각이 나올 수가 있는데,

나는 한 사람의 생각을 만 사람의 생각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자율성과 다양성이 인정되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폐쇄성은 스스로를 먼저 갉아먹을 텐데, 나 자신이 먼저 열린 사고와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무튼, 좋은 책이 좋은 마음 가짐도 만든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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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다.  로맨틱하고 달콤하게 보였던 그들의 연애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살벌한 호러로 바뀌어 있었다.

박용우가 김치 냉장고를 들여다볼 때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냉장고 속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가볍게 바뀌었다가, 그가 그 안에서 썩어가는 손가락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긴장모드 음악으로 바뀐다.

영화가 여러 장르의 혼합 예술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부분이었다.  요새는 드라마의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을 보아도 공중파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지극히 마이너틱한 뮤지션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아쉬운 대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최강희와 박용우 모두 꽤 많은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별로 뜨지 못한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번에 극을 보면서 박용우의 재발견이란 생각이 들었다.(최강희야 워낙 연기 잘했으니까...)  그는 소심하고 지극히 단순하고, 적당히 지적인 허영심도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로맨틱 순정파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내었다.

최강의 역시 가녀린 외형으로 보호본능을 자극하지만, 적당히 뻔뻔하고 놀라울 만큼 무식한 면모도 보이면서 야누스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런 설정을 세운 작가에게도 박수를.

언젠가부터 코믹 호러가 뜨고 있다.  시작은 "조용한 가족"(유사품 불량가족이 있다. ^^ㅎㅎㅎ) 같은데, 이제는 그때보다 더 웃기게,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사람 죽는 이야기가 개그의 소재로 나오는 것이야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18세 관람 등급이니 쉬이 웃고 지나가자. ㅡ.ㅡ;;;

영화제작비도 그다지 많이 들었을 것 같지 않다.  블록버스터만 노릴 게 아니라, 이렇게 아이디어와 연기력 등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그게 장기적으로도 헐리우드 영화에 우리 영화를 지키는 지름길일 테니까.

밤이 깊고 몸은 피곤해 두서 없이 적었는데, 하여간 영화 재밌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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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본다.

 

내 말 잘 들어요, 야곱! 바보들이나 일하는 거요!

아니오. 머리가 좋아서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보지요.

 

새로운 것을 알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알 필요가 있을 때도 있지요.

감정을 쉬게 하셔야 할 것 같네요.  우정도 음악처럼 침묵이 필요하니까요.

 

다른 이들을 위해 항구가 되어주면, 자신의 폭풍우를 잠재우게 되거든.

 

지도를 가진 사람은 없지만, 우리 모두 나침반을 지니고 있거든.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면 내 자신이 높아지거든.

 

조금만 덜 원하면 넌 이미 부자란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원하던 것을 갖게 되어서가 아니라 필요치 않다는 걸 알게 되어 더 부자가 되는 거란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뒤돌아볼 때 이해하게 된단다. 

 

두려움은 용기의 아버지이고, 겸손의 할아버지이고, 기도의 족장이란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두려움을 감당 못하는 사람은 용기를 찾지 못하지.  두려움은 우리가 전능하지 못하다는 깨달음이란다.  우주에는 우리가 닿지 못하는 힘이 있다는 인식이지.  진짜 두려움은 겸손을 여는 문이야.  그리고 겸손은 기도를 여는 문이고.

 

노인이 말했다.

내 말 잘 듣게, 야곱.  경험은 위대한 스승일세.

야곱이 대답했다.

네, 하지만 수업료로 인생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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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재산 확실히 환수한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동안 민족과 조국을 팔아치운 대가로 떵떵거리며 살고, 그 자식에 자식까지  대물림하여 가난한 민중의 고혈을 빼먹은 저들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보는 것은 참 역겨웠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과연 어떻게 빼앗는다는 말인지, 가만 앉아서 빼앗길 저들이 아닌데 말이다.  그 동안 그 재산 은닉하고 불리는데 보통 이력이 났겠느냔 말이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알고,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저들이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될까 걱정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이같은 법률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에 고무적인 생각이 든다.

최근 서울 1945에서 "모윤숙"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친일 행각이 잠시 나왔는데, 세상 참 많이 바꼈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 같았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을 일(ㅡㅡ;;;)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 년 전의 십자군 전쟁에서 크리스트교 세력이 저지른 만행을 인류 앞에 고백하고 사죄했다.  역사의 심판이란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엔 바른 길을 향해서 돌아가려고 무던히 애쓰는 것.

그러나, 그것이 당대에 이뤄지기 쉽지 않고, 죄지은 사람이 스스로 죄값을 치루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지금껏 그래왔어도 더는 그러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부디 더 이상 늦지 않게, 더 이상 미루지도 말고,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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