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으며 제일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학생들의 '무지함'이었다.

대단한 지식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알아야할 거라고 여긴 '단어'의 뜻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수업 시간의 상당 부분을 단어 설명에 할애한 적도 있었다.

초기엔 흥분하여서 어떻게 이것을 모르느냐 싶었지만, 주변 샘들께 여쭈어보니 태반이 그렇다라나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자랄 때도 이러이러한 단어의 뜻은 이러이러한 뜻이다!라고 사전 찾아가며 공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맥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속에서 익숙하게 알아가게 되어 있었는데, 왜 요새 아이들은 그게 힘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영상매체에 지나치게 길들여져서 활자를 이용한 독서가 너무 부족한 때문이지 싶다.  제 눈으로 보고 읽고 생각하는 다차원적 사고가 결여된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주입시켜주는 영상에만 현혹되어서 직접 책을 읽자기 귀찮고 생각하자니 짜증나고 그런 것이 아닐까.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았느냐고 묻기는 처음부터 힘들거라고 판단했다, 그래도 '단테'를 들어는 보았겠지... 했는데 전혀 모른단다.  옆자리 샘 말씀, "중1학생들, 춘향이와 심청이를 구분 못해요."

오, 맙소사. 춘향이와 심청이를 구분 못해도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정도는 알 테지. ㅡ.ㅡ;;;

지난 토요일에는 과학의 날 기념 글짓기를 하면서 "표어"가 뭐냐고 묻는다. 중3 학생이...T^T

이주 쯤 전의 기억이 같이 떠오른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원정하고 나서 했던 유명한 말을 해주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뭐라고 했게?"

아이들은 천진한 얼굴로 말한다.

"들었노라!"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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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톡톡 튀는 급훈을 곧잘 보게 된다. 

"담임이 보고 있다."

"우주정복....."

오늘, 어떤 학급의 급훈을 보았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웃기다, 하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다시 되새겨보니 서늘했다.  대구를 맞춘 구절은 좋았는데, 그 내용이 불편했던 것이다.

질곡의 현대사를 겪은 우리로서는 땅덩어리도 작고 자원은 빈약하고, 기댈 거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는 성장주도형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했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을 희생을 강요해 왔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젊음을 바쳐 나라의 일꾼이 되었고, 그 중에는 가족들의 생계와 동생들의 학비 뒷바라지 등을 위해 열심히 미싱을 돌렸던 여공들도 있었다.

블루칼라로 대변되는 공장 노동자들, 그 시절보다야 권리가 향상되었겠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고, 사회적 편견에 치이는 그들이다.  중학교 3학년 교실에 쓰여 있는 급훈은, 필시 담임선생님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급훈일 것으로 보이는데, 그 급훈을 일년 내내 보며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 못해서 인생 어그러지면 공장이나 가서 일해야 한다는 식의 비뚤어진 사고관을 자신도 모르게 주지시킬 수가 있다.

"2호선을 타자"라는 급훈도 마찬가지다.  일류대가 지상 목표인양 학교가 먼저, 혹은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에게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의 산 현장에서 말이다.

"삼십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같은 급훈은 인륜지대사 결혼을 조건 맞춰하는 짝짓기로 전락시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긍정적인 급훈도 잘 보인다. 

OTL(좌절 금지)

포기란 배추를 살 때나 하는 말이다.

게 중 최고의 급훈은 이거였다.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른 사람의 꿈이 된다."

무심코 뱉는 말들 중에서, 또 무심코 하는 생각 중에서 우리의 편견과 편협된 인식이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다.  알고서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르고 쓰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전염되는 것은 더 경계해야 할 부분이겠다.  보다 긍정적이고 평등한, 사랑이 깃든, 모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급훈 교훈 등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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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에 당첨되었건만, 자리가 부족하다는 황당한 이야기와 함께 예매권을 받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하고 극장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는 슬픈 전설이...;;;;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감동적이었고, 쓰라렸다.

영화는 두 경찰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흑인 형사 그레이엄(돈 치들)은 말한다.

“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 있지. 서로에 대한 느낌이 그리워서, 서로를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충돌하게 되는 거야.”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고 만다.  등장 인물들은 백인과 흑인, 히스패닉, 멕시코계, 아랍, 아시아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 이상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인종들을 차별하고 스스로도 차별을 받는다.

L.A의 거리에서 지방검사인 백인 릭과 그의 아내는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 청년들을 보고는 두려워 한다.  인종적 편견을 받은 흑인 두청년은 부부의 차를 강탈하는 폭력을 휘두르고, 차별에 몸서리치면서도 그들은 아시안계의 사람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타이인인지 미얀마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백인 경찰 라이언(맷 딜런)은 순찰을 돌다가 릭 부부가 강탈당한 차종과 같다는 이유로 흑인 부부 캐머런(테렌스 하워드)과 부인 크리스틴(탠디 뉴튼)을 검문한다. 라이언은 크리스틴을 검문하면서 성적 모욕감을 주지만, 캐머런은 무력하게 저항하지 못한다. 오만한 백인 경찰 앞에서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흑인의 처지가 신랄하게 묘사된다. 

라이언은 요로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일로 상담을 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상담 책임자인 흑인 여성에게 욕을 뱉었다. 다음날 흑인 상담자는 자신의 직책을 이용하여 라이언에게 보복을 하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신의 차를 박은 아시아인과 싸울때 그들을 아시아인이라고 몰아붙이고 험한 말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란인 파라드(샤운 토웁)는 총기를 사러 갔다가 오사마 빈 라덴이라 불리며 인종차별을 받는다.  총기상인은 그를 아랍인이라 욕하며 총을 안팔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딸이 겨우 무마시켜서 총을 사오지만 덤으로 얹어주는 총알에는 비밀이 있다. 

멕시칸 열쇠수리공 대니얼은 릭의 집의 열쇠를 고치지만 릭의 부인은 그가 껄렁한 옷을 입고 문신을 했다고 해서 당장에 열쇠를 팔아넘길 사기꾼 취급을 한다.  앞서 인종차별을 받은 파라드는 자신의 집 열쇠를 고치러 온 대니얼이 열쇠는 갈았짐나 문을 갈아야 한다고 하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결국 돈도 받지 못한 대니얼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뒤 파라드는 자신의 수퍼마켓이 털리고, 그 책임을 대니얼에게 묻는다.  총을 들고 그 집을 찾아가지만, 앞서 딸이 받아온 총알은 공포탄이었고, 그가 쏜 총에 대니얼의 딸이 맞았지만 모두 무사하다.

라이언의 파트너인 신참 경찰 핸슨(라이언 필립)은, 라이언의 인종차별에 욕지기를 느끼며 파트너를 바꾸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흑인 청년을 살해하고 만다.

맨처음 시작할 때 형사 그레이엄이 마주친 사고 현장, 그곳에서 피살자로 발견된 사람은 바로 핸슨에게 죽은 자신의 동생이었다.

릭의 차를 훔쳤던 흑인 청년중 하나는 앞을 보지 않고 운전을 하다가 아시아인을 치고 만다.  중국인이 치였다며 병원 앞에 버리고 도망을 갔는데, 그는 한국인 조진구였고, 그가 했던 일은 타이와 미얀마 사람을 인신매매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차별을 받고 또 차별을 쏟아낸다.  그들은 저마다 충돌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외롭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릭의 부인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삐지만 십년지기 친구는 맛사지 받느라 병문안도 와주지 않는다.  자신이 무시했던 스패니쉬 가정부만이 진정한 친구임을 깨닫고, 라이언의 검문으로 사이가 벌어진 흑인 부부는, 다음날 라이언의 헌신적 구조로 아내가 목숨을 구하고, 남편 역시 아내와 화해하게 된다.

파라드는 대니얼을 죽이겠다고 덤비다가 그 딸을 쏘았으나 공포탄 덕으로 아이는 살았고, 그는 아이가 천사라며 마음의 안식을 받는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섥힌 그들의 충돌은 누군가에게는 구원을, 또 누군가에게는 기적을, 그리고 누군가는 다시 나락으로 빠지게 만든다.

맨처음 그레이엄이 말했던 대사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서로를 느끼기 위해서 부딪치는 거라고....

온기와 온기가 만나서, 사람 사는 모습을 갖출 때, 그들 자신도 사람의 얼굴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인 조진구의 인신매매 현장과 사고로 죽을 뻔한 다음에 살아난 뒤 제일 먼저 한일이 인신매매 대금으로 받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한 내용 등이 씁쓸했지만 그것이 특별히 한국인을 겨냥하려고 한 내용은 아니며, 다만 주제를 찌르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물론 기분은 나빴다.ㅡㅡ;;;)

아카데미가 왜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닌 이 작품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공감이 갔다.  (그리고 솔직히 이쪽이 더 재밌다...;;;;)  위기의 주부들이 현 부시 정부 체제의 미국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현재 미국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드러내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들 모두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더 나은 길을, 혹은 더 못한 길을 걷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사가... 혹은 현실이 영화처럼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재미를 위해서 보다 감상적이고 편한 길을 택했을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이다.

911테러의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미국, 그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변명밖에 될 수 없다.  이라크에 파병된 우리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서는 서로의 화해를 꺼낼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충돌'일 뿐이다.  숱한 충돌 속에서 작은 기적 하나 바라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주를 개척하고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과학에 쏟는 모든 에너지.  그것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이웃들의 굶주림과 질병에 먼저 투자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 사회 안의 불평등과 차별과 편견의 해소를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꿔나가야 할 몫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모두가 함께, 충돌을 기적으로, 사랑으로 바꿔야 한다.

***

 

감상문을, 며칠 지나서, 그것도 하루에 두번 나누어서 썼더니 횡설수설...;;;; 그래도 뭐, 사는 이야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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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시절, 텔레비전에 나온 한 배우를 보고 한순간 반해버렸다.  중고생에게 흔히 있는 현상이었지만 내게는 흔치 않았던 별스런 일. 드라마의 제목은 "칠협오의"였고, 그의 배역은 천하제일검 "전조"였다.

그러나 나의 달콤한 짝사랑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으니,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이 끝나버렸다.  난 맨 마지막 방송(8부작)의 첫회, 그것도 달랑 20분만 본 것이다.(ㅡㅡ;;;)

그러나 뜻밖의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내 짝꿍.  당시 문.이과를 통틀어 전교 1등이 화려한 명함을 내밀던 그녀석이 이 배우를 너무 좋아하여 몇몇 작품을 녹화해 둔 것이다.(그 친구는 텔레비전도 음악도 듣지 않는 순수? 공부파였는데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나의 짝사랑은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좋다고 자기 암시를 많이 걸었던 탓인지, 마음 속이 자꾸 허전하고 점점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 그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이야 "팬픽"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글쓰기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없었고, 나 역시 일종의 연애편지 감정이었을 뿐이다.

첫 시작이 중요하다며, 95년. 12월 25일부터 자정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이듬해 6월 22일, 정확하게 180일 뒤에 완결이 되었다. (흠, 내가 고3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금세 잊혀졌다.  정말 잊고 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만, 가슴에만 묻힌 채 시간이 흘렀다. 언제까지? 2000년까지.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해였다.  인터넷이라는 것의 편리성을 막 깨닫던 어느날, 우연히 그 배우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초은준"이라고.

그랬더니, 어머나 세상에. 그토록 많은 자료가, 그토록 많은 팬페이지들이 나타날 줄이야.  심지어 미국팬 중국팬 등등등 나올 정도였으니 나의 놀라움은 끝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첫번째 줄 사이트에 들어갔다. 나중에 알았는데, 국내에서 초은준 팬페이지로는 처음 등장한 홈페이지였고,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 방명록에 제 홈에도 놀러오세요~라고 수줍은(...;;;) 요청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홈페이지를 찾아주는 것이다.

당시 나는 네이버에서 만들어주는 3분 만에 뚝딱 홈페이지를 갖고 있었는데, 두달 동안 나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있던 터였다.  왜 사람들이 오지 않느냐고 투덜대면서..ㅡ.ㅡ;;;;

그래서, 컴퓨터 쓰는 재미가 늘어났다.  홈페이지를 예쁘게 가꾸고 싶어서 태그라는 것도 배워보고 이것저것 많이 시도도 해보았다. 

컨텐츠가 없었던 때였기에 고딩 시절 썼던 소설을 워드로 옮겨서 게시판에 올렸는데, 내 홈을 찾아준 이들이 재밌다고 해주는 것이다.  역시나 순박했던 시절, 독자들의 아우성이 얼마나 기쁘던지...

다시금 내 글을 읽어보니 그 유치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이 졸작을 그대로 옮길 수가 없어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정이라는 것이 손을 대면 댈수록 일이 커지는 법. 이야기가 커지고 등장인물이 늘어나고 이야기도 바뀌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헤어날 수 없는 늪이었다ㅠ.ㅠ)

사람들의 반응이 기쁘고, 거기에 부합하고 싶고, 더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나를 굉장히 압박하곤 했었다.

그래서 그 글은 너무도 오래 연재되면서 끝을 보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지난 2005년 10월 초에 연재를 하고 장기간 휴면 상태.

신상에 여러저러한 일들이 생겨 글쓰고 있을 여유가 전혀 없었던 탓도 있지만, 너무 커져버린 이야기에 내 스스로 책임을 지지 못했던 까닭.

그래도 여전히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다. 가끔 언제 다시 쓰냐고 묻지만 재촉하지 않고 마냥 기다려주는 소중한 독자들이 아직도 있다.  나 자신도 무사히 끝내고 싶은 마음 굴뚝이지만, 현재로서는 언제 다시 이어질 지 자신이 없다.  그렇지만 A41500장 분량의 장편을 먼저 포기할 마음은 없다.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끝내고 말 것이다.

이쯤되니, 내가 처음 좋아했던 배우보다, 어느새 작품 속의 "전조"를 나는 더 사랑하게 되었다.  너무 완벽한 주인공상을 원했고, 때문에 무리한 에피소드의 전개로 주인공 고생도 많이 시켰지만, 이제는 마치 내 가족이나 된 것처럼 가깝고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처음 십대의 그 마음으로 지금껏 그 배우를 좋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나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소중한 글쓰기를 통해서 다양한 기쁨도 맛볼 수 있었다.  멋진 추억을 만들어준 그에게 무척 감사하게 여긴다

이제는 꽃미남 소리를 하기에는 그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멋진 배우로 남아 있다.



최근 그가 한국에 오겠다는 발언을 했다.  만우절 농담으로 판명되었지만, 언제고 올 마음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언제나 고아원을 방문하며 이웃 돕기에 앞장섰던 그는, 우리 한국 팬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자선 행사에 열심인 줄로 안다...;;;;;

지인들과, 당장 자선 단체부터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발 동동 구르며, 괜히 한번 웃어보았다.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자선돕기가 아니어도, 그를 통해서 좋은 일 한가지를 더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닌가.  아마 이후로도, 그를 통한 우리의 만남과 추억들은 계속해서 쌓일 것이다.  행복한 기대를 미리부터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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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체험교실>
1. 교육운영개요

  ◦ 기    간 : 2005. 5. 2~ 6. 27(매주 화요일, 8주)
  ◦ 시    간

     - 제1기(주간) : 14:00 ~ 17:00(1일 3시간, 총 24시간)
     - 제2기(야간) : 19:00 ~ 21:00(1일 2시간, 총 16시간)
  ◦ 대    상 : 전통 문화와 역사에 관심 있는 20세 이상 성인
  ◦ 수 강 료 : 무료(※기본재료비는 수강자 본인 부담)
  ◦ 인    원 : 주간 60명. 야간 60명 총 120명
  ◦ 교육방법 : 강의 및 실습지도
  ◦ 강    사 : 김은영외 2인
  ◦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2층 사회교육실
  ◦ 교육내용 : 전통매듭

2. 교육신청방법
  ◦ 신청기간:2006. 4. 10(월) 09:00 ~ 4. 21(금) 18:00

  ◦ 신청방법: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
              (① 초기화면 → 교육공지사항 → 수강신청
               ② 초기화면 → 학습관 → 교육일정 → 수강신청)
  ◦ 수강자선정:신청자 중 컴퓨터로 각반 60명씩 120명 추첨
  ◦ 수강자발표:2006. 4.25(화) 09:00 박물관 홈페이지에 수강자명단 발표 

 

구 분

일  자

강의내용

        작  품

재료준비사항

제1주

5월 2일

 ․ 매듭의 역사

 ․ 연봉매듭

 ․ 슬라이드 상영

송곳 연습끈목

제2주

5월 9일

 ․ 도래매듭

 ․ 연봉매듭을 활용한

  목걸이

리본끈 2m

제3주

5월16일

 ․ 잠자리매듭

 ․ 도래매듭을 활용한

  잠자리브로취

세사 2cm

제4주

5월23일     

 ․ 생쪽매듭

 ․ 생쪽 연속 만들기

 

제5주

5월30일

 ․ 안경매듭

 ․ 생쪽매듭 브로취

중세사1m50cm

제6주

6월13일

 ․ 삼정자매듭

 ․ 안경매듭 활용한

  귀걸이

중세사1m

제7주

6월20일

 ․ 도장주머니

 ․ 도장주머니 만들기

비단천 안감

제8주

6월27일

 ․ 가락지매듭

 ․ 도장주머니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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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4-1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물관 대학만큼 강하게 끌리지는 않지만 나름 보람있는 강좌일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