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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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양보하고 묵묵히 뒷감당만 하는 고마운 발. 무엇보다 가족을 책임지느라 더 벅찼을 먹먹한 발...- 11쪽

뿌리와 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내 몸속에 깊게 자리한 자양분들...- 12쪽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 17쪽

다리 하나를 위해
세 개의 다리가 선택한 것은
다 같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 부분에서 큰 울림이 있다.- 20쪽

참 질서정연해. 모든 게 '일괄적이야'- 22쪽

사람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60쪽

골 깊은 주름살, 그 깊은 고랑 내가 파놓았던 게지...- 63쪽

그러게... 이렇게 극성스럽게 일하고 공부하는데, 왜 다들 행복하지 않은 거지?-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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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한 젓가락 사계절 중학년문고 19
강정연 지음, 김선배 그림 / 사계절 / 2010년 4월
구판절판


오늘 월급 받고 울적해 하고 있다.
나도 이런 일기 써놓고 간절히 바라고 싶다.
제발 이루어져라!
- 16쪽

지각대장 존이 떠오른다.
이유있는 지각이다. 그것도 예쁜...^^- 18쪽

오, 그것도 용기 맞지!- 22쪽

나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올 땐 쓸쓸하더라. 어른들도 그래.- 28쪽

스스로 껌딱지라고 여기게 만드는 이 미친 교육현실...- 40쪽

선생 입장에서는 누구야! 하고 버럭할 것 같은데, 학생 입장에선 오죽 심심하고 지루하면 이럴까....도 싶네.- 42쪽

묵묵히 받아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거야.- 48쪽

멋진 우애다. 우리 세현이도 이랬으면 좋겠다. - 58쪽

나도 맛난 것 사들고 집에 들어갈 때 힘이 난다.
다현양은 내가 출근할 때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서 이모 사랑해요~하고 노래를 부른다.
나 출근길에 자기 목소리 들으라고...^^- 59쪽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오현경이 김자옥을 새엄마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바로 자기 딸 아팠을 때 맨발로 병원까지 달려온 걸 보고 나서였지.
울 조카들이 현관문 열어줄 때 맨발로 나오는 것은 반가워서일까, 신발 신기 귀찮아서일까...- 63쪽

울 다현양 어느새 자라서 초등 1학년. 세현군은 초등 5학년.
세현군이 바라보는 다현양 뒷모습이 이럴까나?- 66쪽

학부형들 만나서 이야기할 때 아파트 살지 않는 아이 엄마 위축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아파트 그까이꺼, 흙냄새도 못 맡고, 하늘까지 닿지도 못하면서 오만하기만 만 건물이지 뭐... 툴툴툴....-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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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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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갖기 위한 질주를 이제는 멈춰야할 때- 20쪽

가자 지구에 그려진 그림 울타리 너머 평화의 세상을 꿈꾼다.- 29쪽

창조, 그리고 저항!
창조경제가 아니라......- 39쪽

세계인권선언- 42쪽

철조망을 꼭 쥔 손. 울컥 치미게 하는 사진이다.- 51쪽

마땅히 분노하라. 분노해야할 것에...- 88쪽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자유란 닭장 속의 여우가 제멋대로 누리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다.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이 구체적으로 실천방안까지 명시한 이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누구라도 이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 15쪽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들은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 22쪽

하마스가 이스라엘 스데로트 시에 로켓포를 발사하면 효과가 있는가? ‘없다’가 답이다. 그런 행동은 포를 쏜 쪽의 대의명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자 지구 주민들의 이런 몸짓을 보고 격분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한다면, 폭력이란 도저히 용납 못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유감스러운 결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한다면,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 30쪽

사르트르는 1947년에 이렇게 썼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이든, 폭력이란 일단 실패라는 사실을 나는 수긍한다. 그러나 이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실패다. 왜냐하면 우리는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에 의거하는 행위 자체가 자칫 폭력을 영속화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나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비폭력이 폭력을 멈추게 하는 좀 더 확실한 수단이라고.

- 32쪽

서양인들의 ‘생산 위주의 사고방식’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으며, 그 위기로부터 탈출하려면 ‘항상 더 많이’ 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질주는 비단 금융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윤리, 정의, 지속가능한 균형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더없이 심각한 위험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으로 말미암아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려, 인류가 시도하는 모든 일들이 영영 종말을 고할 수도 있다.

- 35쪽

그러나 1948년부터 중요한 발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식민지의 독립, 인종차별 철폐, 소비에트 제국의 궤멸,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이 바로 그런 예다. 반면 21세기 첫 10년은 퇴보의 시기였다. 나는 이 퇴보의 원인 중 일정 부분은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 9.11사태, 그 결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 같은 재앙들이 발생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새로운 발전정책을 도입하지 못했다. 또한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열린 코펜하겐 정상회의는 진정으로 지구를 지키는 정책을 세우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첫 10년의 끔찍한 공포와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가능성 사이, 그 문턱에 서 있는 셈이다. 그래도 어쨌든 희망은 간직할 일이다. 1990년대는 이런 면에서 대단한 진보의 원천이었다. - 37쪽

유엔은 리우 환경회의(1992), 베이징 여성회의(1995) 등을 소집했고, 2000년 9월에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주도하에 191개 회원국이 ‘발전을 위한 새천년(21세기) 8개 목표’를 채택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191개 회원국들은 특히 앞으로 2015년까지 전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 38쪽

8. 비폭력 원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작은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비폭력에 대한 호소’입니다. ‘저항해야 한다’는 말은 내 마음속 생각을 100%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는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 혁명들은 대개 안 좋은 방향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 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폭력 행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만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를 뿐입니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그래서 책에도 썼듯이 제가 보기엔, 혹시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희망뿐입니다. 이 책에 제가 좋아하는 시인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했지요.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라고.
- 64쪽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구축 작업입니다.
- 65쪽

(조국) 분노는 삭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삶의 지혜가 널리 퍼져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분노하라!”라는 직설적·선동적 메시지는 생경하게 들릴 수 있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수시로 심화(心火)를 직시하고 가라앉히는 것의 중요함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음공부’가 공분‘과 ’의분‘의 불씨를 마음속에서 꺼버리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화의 뿌리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일 때는 그 공적인 원인을 해결할 때만 화는 사라진다. 사실 세상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시민이 세상일에 관심을 끓거나 냉소를 보내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때 세상의 불의는 승승장구하며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 71쪽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가 횡포,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단호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또한 무조건 투표하자. 투표하지 않는 자는 “암묵적인 찬동자”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현재의 상태를 묵인, 방조하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어떤 이는 ‘중용’과 ‘중도’를 조언한다. 자신의 사유와 행동을 성찰하고 반대편과 소통하고 그 입장을 존중하고 공유점을 확보하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존F. 케네디 역시 단테의 신곡을 재해석하며 말한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
- 79쪽

(옮긴이의 말)
‘스펙’ 쌓기에 여념 없는 젊은이들아, 결코 제 앞가림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장 자기 집 앞길만 쓸어놓고 만족하거나 길 넓히는 데만 골몰하는 동안 울타리 바로 너머에 어떠한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그 재앙의 화근에 분노하라는 것이다.
- 81쪽

레지스탕스 정신은 먼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레지스탕스’는 동사 ‘저항하다’의 명사형이다. 분노할 실마리를 잡아서 분노할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할 줄 알되, 마음속에는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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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 Story -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엮음, 김재혁 옮김, 마리아-테레제 티트마이어 그림 / 을유문화사 / 2003년 11월
절판


에두아르트 뫼리케 "봄이로구나"

봄은 또다시 제 푸른 리본을
바람결에 나부낀다.
코에 익은 달콤한 향기가
뭔가 예감케 하며 대지를 스친다.
제비꽃은 벌써,
곧 돋아날 꿈에 취해 있다.
자 들어보라, 멀리서 나직한 하프 소리가 들린다!
봄, 바로 너로구나!
난 네 소리를 들었다!

//
아네모네 꽃이다. 기다림,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등등... 슬픈 꽃말을 가졌다.- 39쪽

이 글을 쓸 당시의 괴테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가 아닐까...- 47쪽

치기 어리던 젊은 날의 괴테가 보인다. 이어지는 부분은 이렇다.

...
그래, 난 가만있지 않을 테야.
장미여, 장미여, 새빨간 장미여,
들에 핀 장미여.

거친 소년은 들에 핀 장미를
꺾고야 말았네,
장미는 저항하며 찔렀지만
입에선 아얏 신음소리만 나왔을 뿐,
그냥 꺾이고 말았네,
장미여, 장미여, 새빨간 장미여,
들에 핀 장미여.- 109쪽

꽃창포가 없는 정원은 실수다. ㅡ카를 푀르스터

실제로도 보고 싶은 꽃이다. 참 곱다.- 144쪽

헤르만 헤세 "나무들"

나무는 내게 있어 언제나 감동적인 설교자였습니다. 나는 나무들이 큰 숲이나 작은 숲에서 무리를 지어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숭배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을 숭배합니다. 그런 나무들은 마치 고독한 사람들 같습니다. 무언가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세상을 등진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 고독의 길을 택한 위대한 사람들에 비길 만합니다. 그런 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세계가 살랑대고, 그들의 뿌리는 무한 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그런 상태로 파묻혀 있지 않고 생의 온 힘을 다해 한가지를 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안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법칙을 완수하는 것, 그들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 그들 자신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없습니다.
- 40쪽

나무가 톱으로 베어져 가림 없는 죽음의 상처를 햇살에 드러낼 때 우리는 나무의 묘비라고 할 수 있는 그루터기의 환한 단면에서 나무가 살아온 모든 이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이테와 아문 상처에는 싸움과 고뇌, 행복과 번창의 기록이 빠짐없이 충실하게 적혀 있습니다. 곤궁했던 해, 무성하게 우거졌던 해, 이겨낸 온갖 시련과 버텨낸 수많은 폭풍우 등이 말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견고한 고급 목재일수록 나이테가 촘촘하다는 사실과, 높은 산속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위험 속에서만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불굴의 억센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41쪽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훌륭한 술탄 술레이만"

오스만 제국의 훌륭한 통치자인 술탄 술레이만은 정복자였습니다. 그의 군대는 예전에 터키의 기병대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땅을 정복하고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스만 술탄의 전위병들은 이 땅을 몽땅 다시 잃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술탄 술레이만이 독일 황제를 위해 일하던 벨기에 출신의 외교관 부스베크에게 선물한 흑갈색의 조그만 씨앗은 유럽의 토양에 끈질기게 뿌리를 박았습니다. 그 씨앗들은 빈과 프라하 그리고 라이덴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이름에 있어서 터키인들이 쓰는 터번을 연상시키면서 튤립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백 년이 지난 후에는 자신들이 점령한 땅을 다시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한 강력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59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여. 너 군림하는 존재여"

장미여, 너 군림하는 존재여, 고대 사람들에겐
너는 테두리가 소박하게 생긴 꽃받침이었지.
하지만 우리에겐 너는 셀 수 없이 가득 찬 꽃,
결코 다함이 없는 대상이구나.

풍요로운 네 모습은 오로지 빛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옷으로 겹겹이 두른 것 같구나,
그러나 네 꽃잎 하나하나는 어떠한 옷도
피하면서 거부하는 몸짓이로다.

수백 년 전부터 너의 향기는 우리에게
너를 가장 달콤한 이름으로 부르게 했으니,
문득 그 이름 명성처럼 대기 속에 번진다.

하지만 우린 그 이름을 모른다, 추측만 할 뿐......
그리하여 기억만이 그 이름을 향해 다가갈 뿐,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시간에게서 알아낸 기억만이.- 115쪽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난초"

만약에 IQ테스트를 한다면 모든 식물 중에서 난초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난초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외떡잎 식물형태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립니다. 난초의 생김새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지은 집처럼 합목적적이고 발타자르 노이만의 성처럼 아름다우며, 티치아노나 틴토레토의 그림처럼 화려합니다. 난초는 자신의 지능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지만 그래도 난초에게 있어서는 미학이 아주 중요한 교과목임에 틀림없습니다.
난초는 화학자로서 그리고 건축가로서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이용해서 아주 다양한 색소와 향기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사실 곤충들을 노예로 만들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난초들은 식물의 오아국에서 요부로 이루어진 합창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곤충들의 성적 욕구를 갈취하는,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거만하면서도 사악한 해적들입니다. 그들은 파트너가 자기한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 134쪽

순진한 곤충들을 속이기 위해서 난초는 거의 모든 수단을 이용합니다. 꽃가루를 통해 수태를 할 수 있도록 꽃가루를 날라주기를 바라는 그들의 목적에만 맞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책략과 완벽한 고안 뒤에는 자신의 종족을 살리기 위한 모성의 그리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 135쪽

바람이 깃털처럼 가벼운 씨앗을 어디엔가 내려놓으면, 씨앗은 자기 힘으로 배아에 영양분을 공급하기엔 너무 약하기 때문에 유모가 와야 합니다. 응석받이로 길이 들은 종족을 보살펴줄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 싹은 하나의 버섯과 공동체를 이루어 성장합니다. 버섯은 난초의 싹이 제 스스로 영양분을 받아들여서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난초의 싹을 먹여 살립니다. 난초가 웬만큼 자라면 버섯은 난초를 자신의 숙주로 생각하여 난초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합니다. 이에 반해서 난초는 자신의 뿌리를 단단한 알뿌리로 만들어 거기에 영양분을 저장시켜 놓고 일반적인 식물의 나약한 뿌리의 경우보다 거기서 버섯이 영양분을 빼가기 힘들게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합니다.- 136쪽

헤르만 헤세 "시든 꽃잎"

모든 꽃은 열매가 되려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네,
변화와 사라짐만이 있을 뿐.

가장 멋진 여름마저도 언젠가는
가을과 시듦을 맛보려 하네.
나뭇잎아, 바람이 널 유괴하려 들면
그냥 참고 가만히 있어라.

네 놀이나 하며 뿌리치지 마라.
가만히 일어나는 대로 두어라.- 155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163쪽

해설-김재혁

동양에서는 난초가 청초함, 순결함의 표현인 반면 서양인들의 눈에는 난초는 자신의 번식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거만하면서도 사악한, 색을 밝히는 해적이다. 이것은 서양의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동양의 관조적인 사고방식 사이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서양인들은 과학적인 눈길로 난초의 성향을 정확하게 관찰하여 묘사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그런 세세한 부분보다는 나초의 생김새와 꽃향기가 갖는 상징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난초를 순수한 모습으로보다는 간교한 요부로 보는 데에는 무엇보다 서양인들의 정확한 관찰력이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8쪽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꽃을 재배하여 오히려 농사를 지을 땅이 모자라 많은 백성이 굶주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일반적인 꽃송이가 아니라 꽃다발이 발견된다. 중미의 아스테카 사원에도 꽃으로 장식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황제들의 꽃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올리브 밭과 옥수수 밭이 장미 화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유럽에서 꽃이 방 안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러나 꽃값이 비쌌기 때문에 귀족과 돈 많은 사람들만이 멋진 꽃으로 장식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꽃을 사서 집 안을 장식하고 남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어서이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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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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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25쪽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窓)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37쪽

지금은 우리가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40쪽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41쪽

유월의 독서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42쪽

호우주의보

발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같았다- 44쪽

환절기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틀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49쪽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55쪽

옷보다 못이 많았다

그해 윤달에도 새 옷 한 벌 해 입지 않았다 주말에는 파주까지 가서 이삿짐을 날랐다 한 동네 안에서 집을 옮기는 사람들의 방에는 옷보다 못이 많았다- 57쪽

천마총 놀이터

놀이를 놀이이게 하고 겨울을 겨울이게 하는 놀이터에 봄이 와도 너는 오지 않았으니 나는 풀어놓은 아픈 말들을 한데 몰아 노트에 적는 놀이를 시작했다 흙이 흙을 낳고 말이 새 말을 하는 놀이, 그 말을 자작나무 껍질에 옮겨 적지 않아도 되는 놀이, 흙에 종이를 묻는 놀이- 72쪽

낙서

봄의 왼편은 겨울 같고
몸의 오른편은 봄 같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76쪽

저녁-금강

해를 등지고
다음 생의 이름을
점쳐보는 저녁

당신의 슬픈 얼굴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빛이 주저앉은 길 위에는
물도 하릴없이 괴어들고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78쪽

문병-남한강

아무 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수면(水面)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는 저녁

강 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댄다- 80쪽

눈을 감고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82쪽

입속에서 넘어지는 하루

길눈이 어두운 겨울이나
사람을 잃은 사람이
며칠을 머물다 떠나는 길

떠난 그 자리로
가난한 밤이 숨어드는 길

시래기처럼 마냥 늘어진 길

바람이 손을 털고 불어드는 길

사람의 이름으로
지어지지 못하는 글자들을
내가 오래 생각해보는 길

골목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림자로 남고

좁고 긴 골목의 끝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다 지새워지는 길

달이 크고
밝은 날이면
별들도 잠시 내려와

인가(人家)의
불빛 앞에서
서성거리다 가는 길

다 헐어버린 내 입속처럼
당신이 자주 넘어져 있는 길-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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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4-2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우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마노아 2013-04-29 12:23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가 많았어요. 밑줄긋기에 사진 넣기가 되니까 이런 부분은 편해졌어요.
글이 많을 때는 찍어서 올리는 거죠. 하하핫.^^
후애님도 한주 즐겁게 시작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