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자가 된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3
김남중 지음, 김주경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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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로 들어오자 산들이 낮아졌다. 여기저기 불타 버린 마을이 있을 뿐 사람 사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혹 멋모르고 고개를 내민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재빨리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테무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두려움은 군대에게 보내는 칭찬이다. 테무게는 자신이 몽골군이라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웠다.-46쪽

"야, 몽골에 황제가 있지 진도처럼 조그만 섬에 무슨 황제가 있어?"
"작으면 황제 있으면 안 돼?"
"웃기잖아."
선유가 발끈했다.
"진도가 크건 작건 우리나라인데 왜 그게 우스워? 진도에 황제가 있으면 자랑스러워야지 그게 왜 웃기는 건데? 넌 고려 사람 아니야? 왜 자기 나라를 작다고 무시해? 그런 네가 더 웃기는 거 몰라?"-101쪽

후퇴도 작전이었다. 무너지듯 도망치면 적군의 사기를 높여 주고 아군의 피해를 늘릴 뿐이다. -145쪽

"믿을게,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는 말."
뜻밖의 대답에 송진이가 놀랐다. 송진이가 되물었다.
"믿는다고? 진짜?"
"큰 고백을 하는 사람은 작은 거짓말 안 해."-174쪽

테쿠게가 참가한 첫 전쟁이 끝났다. 직접 적을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많은 경험을 했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말과 활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붙었다. 그것은 경험이었다. 경험에서 용기가 나온다. 경험 없는 용기는 손잡이 없는 칼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칼을 쥔 사람이 다칠 수 있다.-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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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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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지금도 가장 잘 팔리고 있는 히트 상품은 바로 ‘보수’다. 돈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오랫동안(그것도 성공적으로) 보수를 팔아 왔다. 이들은 보수를 팔아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지만 정작 보수의 진정한 가치나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15쪽

기회주의 보수의 특징 한 가지만 더. 이들은 모태 보수에 비해서 훨씬 부도덕하다. 권력에 대한 집착을 가진, 욕망의 화신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부도덕한 일조차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기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오는 과정이 별로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도덕한 반칙 행위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목적을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정당화 시킨다. 그래서 기회주의 보수가 주도권을 잡으면 혼탁해지고, 이들이 집권하면 나라가 부도덕의 늪에 빠져 버리게 된다. 지금 우리가 아주 잘 보고 있듯이.
-67쪽

젊은 시절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오면서 일찌감치 정치 세계에 눈을 뜬 박근혜로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 아버지가 최측근에게 암살당했다는 트라우마를 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박근혜로 하여금 아무리 최측근이라 하더라도 일정 정도 이상의 권력을 쥐어주지는 않게 만들 것이다.
기회주의 보수는 떳떳하지 못한 구린 부분을 감싸주는 대가로 소신 따위는 필요 없는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상하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이익을 교환하는 결과로 끈끈한(하지만 깨끗하지 못한) 결속력을 구축하게 된다. 반면에 모태 보수는 어느 정도 서로의 소신과 원칙을 인정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지는 못하면서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 나간다는 차이점이 있다.
-78쪽

모태 보수는 정치를 그만둔다고 해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갈 곳이 있다. 하지만 기회주의 보수는 갈 곳이 없다. 다시 진보로 돌아가? 그러면 누가 받아 주기나 하나? 그래서 그들은 배수의 진을 친다. 자본가 보수를 꽉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게 자신들이 유일하게 살 길이다. 노동운동의 대부였던 사람들이 얼굴빛 하나 안 바뀌고 부자들을 편들어 주기도 한다. 그것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하고 노골적으로 말이다.
-84쪽

자본가 보수의 관점에서는 북한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장일 뿐이다. 값싼 노동력이나 지하자원, 관광 산업도 매력이 있다. 따라서 남북 관계에 대해서, 특히 경제 협력에 대해서는 기회주의 보수 또는 무지몽매 보수, 심지어는 모태 보수보다도 더 유연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88쪽

CEO 출신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양심적으로 손꼽혔던 문국현조차도 뜻을 함께했던 찬모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고, 계산에 따라서 이회창과도 손을 잡을 정도인데, 오리지널 자본가 보수들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결국 자본가 보수는 겉보기에는 모태 보수 같아 보이지만 그 근본은 무척 다르다. 똑같이 돈과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목표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이나 도덕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계산을 하는 모태 보수와는 달리 자본가 보수는 계산이 먼저다. 계산 결과가 플러스로 나온다면 원칙이나 도덕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에 불과하다.
-91쪽

모태 보수를 성골이라 한다면 기회주의 보수는 진골이라고 할 수 있다. 진골들은 자기들의 출신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성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하루빨리 성골로 탈바꿈하고 싶어 한다. 어제는 자신이 빨갱이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오늘은 어제의 동료들을 빨갱이로 비난하는 기회주의 보수의 심리 속에는 이러한 욕망이 불타고 있다.
-93쪽

정책의 우선순위 역시도 자본가 보수의 이익에 철저하게 맞춰져 있다. 제2롯데월드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공군기지인 서울공항에서 이륙하는 공군기들에게 100층이 넘는 제2롯데월드가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일자 서울공항의 활주로 각도를 3도 틀어주는 특혜를 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심지어는 보수들이 입만 열면 외치는 안보까지도 양보한다. 공기업 가운데서 가장 알짜라고 할 수 있는, 세계 공항 서비스 순위 1,2위를 다투는 인천공항을 ‘선진 경영 기법을 배우기 위해’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여론의 거센 반대 속에서도 끝까지 4대강을 밀어붙였고 이것만으로 부족하니까 지천까지도 손대겠다고 하는 이유 역시도 결국은 대기업 자본에게 이익을 안겨주겠다는 속셈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95쪽

보수는 이미 수많은 꼼수를 통해서 현재의 위기를 넘겨 왔다. 위기를 넘기기 위한 꼼수가 원인이 되어 나중에 더 큰 위기가 몰아닥치면 그 때 가서 또 다른 꼼수로 넘기면 된다. 일단 지금 사람들이 솔깃하게 느낄만한, 뭔가 미래에 이익을 안겨줄 만한 것을 던져 주고 그 대가로 현재의 이익을 챙긴다. 결국 책임지지 못할 미래를 저당 잡혀서 현재를 얻는 셈인 것이다. 보수가 대체로 남는 장사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재의 이익은 실현되는 이익이지만 미래의 이익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수의 버릇에는 지금까지 손바닥 뒤집듯이 약속을 깨뜨렸을 때 유권자가 이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과거의 잘못과 사기극을 감추고 국면 전환을 노리기 위해서 새로운 거짓말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꼼수에 또 속아 넘어 갔다. 이런 거짓말에서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개발’이란 두 글자다.
-115쪽

진보는 주로 당위성을 바탕으로 설득하려고 한다. 곧, ‘이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어떤 발전이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진보가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보수의 접근 방법은 이와 다르다. 보수는 주로 이익을 바탕으로 설득에 나선다. 곧, ‘이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당신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갈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보수가 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당위성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이익을 얘기하는 진보와는 달리 보수는 ‘이익배분’을 얘기한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집단들에게 어떻게 이익을 나눠줄 것인가, 이것이 보수가 이들을 설득하는 언어다.
-118쪽

선진 사회에서는 기업하기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주체가 되는 게 당연하게 여겨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참여정부에서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이루어진 것은 노 대통령도 퇴임 뒤에 후회했던 것처럼 뼈아픈 실책이었다. 실업과 재취업에 관한 사회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유연화 정책은 결국 해고만 쉽게 만들고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서민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졌다. 과연 정말로 서민의 편인지에 대해서 의심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30쪽

전 세계 복지 국가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도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는 데에는 50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도 그만큼 긴 전망을 가져야 한다. 조급증에 걸려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면 결국은 누구의 지지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조차도 지쳐 나가떨어지게 된다.
-132쪽

민주주의는 권력을 세습으로 받는 조선시대나 북한과는 다르다. 세습 권력은 전통과 연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전 정권을 찬양한다. 하지만 선거를 통한 경쟁으로 권력을 잡는 민주주의에서는 다음 정권은 전 정권을 넘어서야 한다. 전 정권의 장점을 물려받긴 하더라도 단점이나 한계점은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정치와 사회가 발전한다. 보수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대대적인 숙청이나 개혁 작업이 이루어졌다. 하물며 정권이 보수에서 진보로 넘어갔을 때라면, 정부 곳곳에 깊이 박혀있는 보수의 대못을 빼내기 위한 큰 결단과 힘이 필요하다.
-142쪽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대한민국 보수는 한 번도 ‘자주’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주가 친북이 되는 이상한 현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언제나 외세를 자신들의 힘으로 삼아온 보수에게 ‘자주’라는 말은 콤플렉스일 테니까. 우리나라 빼고는 어느 나라에서든 보수가 앞장서서 민족을 외치고 자주를 외친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자주를 외치지 않자니 자신들이 알맹이가 텅 빈 가짜 보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고, 외치자니 외세에 밉보일 게 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보수들은 꼼수를 부렸다. 자주란 말을 아예 친북과 동의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때로는 북한에 구걸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1997년에 터진 이른바 ‘총풍 사건’이 그 대표 격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후보의 측근들이 북한 인사들과 만나서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보수들이 북한에 돈을 주고 우리 군인을 향해서 총질을 하라고 구걸한 것이다. 아무리 진짜 사람에게 쏘는 게 아니고 무력시위라고 해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얘기일까?
-153쪽

아참, 이명박 정부가 임기 절반인 2010년 6월까지 북한에 보낸 돈이 7억 6천 5백만 달러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퍼주기라고 비난했던 참여정부 임기 5년 동안 북한에 전달된 14억 1천만 달러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노무현이 준 돈으로는 핵무기 만들 거라더니, 이명박이 준 돈으로는 핵무기를 못 만들게 할, 무슨 특별한 장치라도 있나? 멸공, 반공은 그냥 무지몽매 보수들을 최면에 빠뜨리기 위한 주문에 불과하다. 북한이 없으면 보수도 설 자리를 잃는다. 북한은 보수가 외세에 철저하게 기대는 것을 정당화 시켜 주고 자주 국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아주 편리한 수단이다. 보수에게는 이런 북한이 없으면 큰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는 멸공을 외치면서 뒤로는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해서 돈을 푼다.
-156쪽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일, 친미"라는 이상득의 말은 뻥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에게는 뼛속까지 친일, 친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고? 보수에게는 뼈가 없기 때문이다. 뼈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로 서지도 못하고, 외세에 기대야만 설 수 있을 뿐이다. 그게 일본인지, 미국인지, 중국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민주주의일 필요도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이 민주주의였나? 아무튼 한반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나라이기만 하면 된다.
보수가 친일, 친미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일본이 여전히 우리보다 잘 살고,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보수에게 영원한 친구란 없는 법이니까.
-157쪽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개성공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아서 미국에 손쉽게 수출된다면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고,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져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을 경제 개방으로 끌고 나오는 데 훨씬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은 국내 산업이 겪을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한미 FTA를 추진하려고 했다.
-160쪽

5.18 석 달 뒤인 1980년 8월 6일, 개신교계는 롯데 호텔에서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그 제목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였다. 학살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은 전두환을 롯데 호텔에 불러 그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다. 이 날은 전두환이 5.18 학살의 ‘공로’로 대장 진급을 한 날이다. 이 기도회에도 또 한경직 목사가 등장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곧바로 달라붙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려는, 귀신같은 생존본능이 발동한 셈이다.
장로 대통령을 배출한 교회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돌아온다. 신도 수와 헌금의 급증이 바로 그것이다. 권력 라인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장로 대통령을 만든 교회로 몰린다. 설마 보통 월급쟁이가 줄 대려고 오겠나? 당연히 웬만큼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온다. 그만큼 교회의 권력도 강해지고 돈도 많아진다.

-169쪽

보수는 정치 무관심을 먹고 산다. 진보는 그래도 자체적으로 비판과 자성의 메커니즘이 있다. 대중들의 눈에는 그게 분열로 보이고, 왜 같은 진보끼리 싸우냐고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안에서 논쟁하고 비판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보수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느낄 때에만 그러는 척할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 버린다. 언론도 방송도 장악하고 있으면, 대중들을 정치 무관심에 빠뜨리기는 더욱 손쉬워진다.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진흙탕 싸움으로만 묘사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놈이 그놈이란 인식을 심어준다. 사람들은 더욱 더 정치를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점점 더 무관심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선거를 해 봐야 결과는 뻔하다.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투표를 안 하거나, 개인의 이미지에 투표하거나, 언론에서 떠드는 논리에 현혹돼서 투표를 하거나.
-185쪽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비 글귀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투표는 국민연금과도 같다. 노후 생활 유지를 위해서 국민연금은 기본에 속하듯, 투표 역시도 민주주의 유지를 위해서 꼭 필요한 기본 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연금만은로는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아껴서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든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투표만으로는 국민들이 제대로 주권을 발휘하기엔 부족하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으로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표는 무관심을 먹고사는 세력들의 기득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요식행위로 전락한다.
-185쪽

방송을 통해서 투표 참여에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 KBS는 10월 26일 저녁 6시 30분부터 무료 영화 상영회를 열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188쪽

회사도 직원이 500명이 넘어가면 직원들 월급 주는 게 목적인 회사로 변해가고, 창업 초기의 역동성이나 창조성은 사그라진다. 교회도 교인들이 500명이 넘어가면 교인 숫자 유지하는 게 목적이 되어 버린다. 교인들을 바른 길로 이끌기보다는 교인의 숫자를 늘리는 데 집착한 한국 교회의 병폐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렇게 성장한 교회는 회개하고 반성하라는 말을 못 한다. ‘고난 중에 하나님이 옆에 계셔서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식으로 사탕발림만 하고 교인들이 성찰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226쪽

하지만 항상 그렇게 진지하고 비장하게만 싸우기는 너무나 힘들다. 너무 힘들면 지치게 된다. 지치면 포기하게 된다. 참여정부 총리를 지냈던 이해찬은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일제에서 독립운동할 때 가장 변절을 많이 한 시기가 1939년에서 1943년까지다. 그즈음 ‘우리가 도저히 독립 못하겠구나’ 하고 많이 변절했다. 그게 다 포기하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기회주의 보수로 변절한 어제의 진보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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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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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찰은 임금이 쓴 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이라 하고,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라고 한다. 임금이 글을 직접 지어 친필로 썼다면 어제어필이라고 부른다. 임금뿐만 아니라 세자나 세손이 쓴 글씨도 특별한 명칭으로 불렀다.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씨는 예필, 직접 지은 글은 예제, 직접 쓴 편지는 예차이라고 하여 임금 또는 일반인과 구분했다.-27쪽

정조는 자유로운 필치로 간단하게 적은 글인 소품문을 배격하고 올바른 문체의 창작을 유도하고자 문체반정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비밀편지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정책노선과 거꾸로 가는 경향을 따랐다. 이러한 표현의 특징은 그 시대 소품문 창작자들이 즐겨 쓰던 문체였고, 정조는 이들의 문체를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그의 비밀편지에서는 그가 비판하던 문체가 사용되었다. 누구에게나 공표되는 공식적인 글에서는 자신의 정책에 부합하는 글을, 비공식적인 비밀편지에서는 그가 비판한 소품체의 문장을 구사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정조의 문장에서 발견되는 이중적 태도는 문젯거리이다.-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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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품절


척이 방귀를 뀌었다. 통이 침대에서 튕겨지듯 일어나서는 달려가 창문을 열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가 언제나 경탄스러웠다. 캄보디아에서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어떻게 방귀 따위에 분개할 수 있단 말인가.
-100쪽

나는 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그게 도움이라는 것을 그가 눈치 챌 수 없는 범위 안에서.
-119쪽

나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연 단위의 세월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달이나 주 같은 시간들 역시 중요하니까 말이다.
-123쪽

"난 독일 점령기에도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나중에 노래를 그만둬야 했답니다."
-141쪽

"네가, 그러는 건 멀어지기 위해서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고."
"무슨 뜻이야?"
"감동을 주거나 두렵게 하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멀어지기 위해, 감정으로부터 너 자신을 떼어놓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그건 일종의 자기방어라고 할 수 있어. 네가 고뇌에 시달린다고 하자. 너는 네 고뇌를 사전 속에 있는 건조한 상태로 환원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거야. 감정을 차갑게 식히는 거지. 눈물이 나나고 해보자. 너는 그 눈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사전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를 찾는 거라고."
-181쪽

"셈법을 다시 배워야 해, 니콜라. 넌 열일곱 살이야. 새로운 수학을 배워야 해. 이 세상에 혼자라는 건 옛날 셈법이야. 새로운 수학을 모르기 때문에 네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잊지 말고 전화해, 니콜라. 전화 기다릴게. 내가 네 전화를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마, 니콜라. 널 믿는다, 잊지 마."
전화를 기다린다고 사람들이 믿게 하는 건 중요했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전화선 저편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관심을 두고 당신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가스 밸브를 열어 자살하지 않는다.
-205쪽

솔로몬 씨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218쪽

내 목소리가 떨렸다. 그 정도로 나는 점점 더 내 말에 빠져들었다. 고뇌와의 관계는 늘 그렇다. 여러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튀어나와서는 여러분이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말을 하게 된다.
-219쪽

행복을 느낄 때, 사람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겁을 내. 그런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말이야. 내 생각엔 영리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쳐 돌처럼 불행해지기 위한 준비를 했어야 해. 그러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난 잠을 잘 수가 없어. 이건 뭔가에 대한 불안이야. 좋아, 우리는 행복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잖아?

"당신이 행복해한다고 해서 삶이 당신을 벌주진 않아."
"잘 모르겠어. 알다시피 삶은 눈을 갖고 있고, 행복한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라서 말이야."
-239쪽

그는 파시즘에도 장점이 있다는 데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반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85쪽

"내 친구 척 말이 맞아. 내가 타인들로부터 안식처를 찾는 건 나 자신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 나한텐 스스로를 돌보는 데 필요한 정체성이 없어.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거야. 알겠어?"
"당신 친구 척은 무엇보다도 자족적인 사람인 것 같아. 자기도취적인 사람 말이야. 내가 보기엔 그것 역시 별로 좋지 않아."
-296쪽

두세 건의 불행을 접수했고, 그러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 몫의 불행이 내 안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덜 불행해졌다.
-319쪽

내게 타인 강박증이 있다는 척의 말은 옳았다. 나는 안식처를 나 자신에게서 찾은 적이 없었다.
-324쪽

사 년 동안 지하실에 숨어 지냈고, 인종 말살과 나치,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경찰을 의기양양하게 따돌렸는데, 그것은 겁쟁이처럼 시시하게 자연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의지와 결단, 계략, 신중함, 정신력, 개성으로 무장하고 승리한 그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보자. 이건 그에게 늦게라도 당할 일은 당한다고 나치가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362쪽

"그 여자에겐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단 말이오."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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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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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 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18쪽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19쪽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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