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wer Story -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엮음, 김재혁 옮김, 마리아-테레제 티트마이어 그림 / 을유문화사 / 2003년 11월
절판


에두아르트 뫼리케 "봄이로구나"

봄은 또다시 제 푸른 리본을
바람결에 나부낀다.
코에 익은 달콤한 향기가
뭔가 예감케 하며 대지를 스친다.
제비꽃은 벌써,
곧 돋아날 꿈에 취해 있다.
자 들어보라, 멀리서 나직한 하프 소리가 들린다!
봄, 바로 너로구나!
난 네 소리를 들었다!

//
아네모네 꽃이다. 기다림,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등등... 슬픈 꽃말을 가졌다.- 39쪽

이 글을 쓸 당시의 괴테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가 아닐까...- 47쪽

치기 어리던 젊은 날의 괴테가 보인다. 이어지는 부분은 이렇다.

...
그래, 난 가만있지 않을 테야.
장미여, 장미여, 새빨간 장미여,
들에 핀 장미여.

거친 소년은 들에 핀 장미를
꺾고야 말았네,
장미는 저항하며 찔렀지만
입에선 아얏 신음소리만 나왔을 뿐,
그냥 꺾이고 말았네,
장미여, 장미여, 새빨간 장미여,
들에 핀 장미여.- 109쪽

꽃창포가 없는 정원은 실수다. ㅡ카를 푀르스터

실제로도 보고 싶은 꽃이다. 참 곱다.- 144쪽

헤르만 헤세 "나무들"

나무는 내게 있어 언제나 감동적인 설교자였습니다. 나는 나무들이 큰 숲이나 작은 숲에서 무리를 지어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숭배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을 숭배합니다. 그런 나무들은 마치 고독한 사람들 같습니다. 무언가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세상을 등진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 고독의 길을 택한 위대한 사람들에 비길 만합니다. 그런 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세계가 살랑대고, 그들의 뿌리는 무한 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그런 상태로 파묻혀 있지 않고 생의 온 힘을 다해 한가지를 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안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법칙을 완수하는 것, 그들 자신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 그들 자신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없습니다.
- 40쪽

나무가 톱으로 베어져 가림 없는 죽음의 상처를 햇살에 드러낼 때 우리는 나무의 묘비라고 할 수 있는 그루터기의 환한 단면에서 나무가 살아온 모든 이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이테와 아문 상처에는 싸움과 고뇌, 행복과 번창의 기록이 빠짐없이 충실하게 적혀 있습니다. 곤궁했던 해, 무성하게 우거졌던 해, 이겨낸 온갖 시련과 버텨낸 수많은 폭풍우 등이 말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견고한 고급 목재일수록 나이테가 촘촘하다는 사실과, 높은 산속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위험 속에서만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불굴의 억센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41쪽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훌륭한 술탄 술레이만"

오스만 제국의 훌륭한 통치자인 술탄 술레이만은 정복자였습니다. 그의 군대는 예전에 터키의 기병대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땅을 정복하고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스만 술탄의 전위병들은 이 땅을 몽땅 다시 잃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술탄 술레이만이 독일 황제를 위해 일하던 벨기에 출신의 외교관 부스베크에게 선물한 흑갈색의 조그만 씨앗은 유럽의 토양에 끈질기게 뿌리를 박았습니다. 그 씨앗들은 빈과 프라하 그리고 라이덴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이름에 있어서 터키인들이 쓰는 터번을 연상시키면서 튤립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백 년이 지난 후에는 자신들이 점령한 땅을 다시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듯한 강력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59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여. 너 군림하는 존재여"

장미여, 너 군림하는 존재여, 고대 사람들에겐
너는 테두리가 소박하게 생긴 꽃받침이었지.
하지만 우리에겐 너는 셀 수 없이 가득 찬 꽃,
결코 다함이 없는 대상이구나.

풍요로운 네 모습은 오로지 빛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를 옷으로 겹겹이 두른 것 같구나,
그러나 네 꽃잎 하나하나는 어떠한 옷도
피하면서 거부하는 몸짓이로다.

수백 년 전부터 너의 향기는 우리에게
너를 가장 달콤한 이름으로 부르게 했으니,
문득 그 이름 명성처럼 대기 속에 번진다.

하지만 우린 그 이름을 모른다, 추측만 할 뿐......
그리하여 기억만이 그 이름을 향해 다가갈 뿐,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시간에게서 알아낸 기억만이.- 115쪽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난초"

만약에 IQ테스트를 한다면 모든 식물 중에서 난초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난초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외떡잎 식물형태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립니다. 난초의 생김새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지은 집처럼 합목적적이고 발타자르 노이만의 성처럼 아름다우며, 티치아노나 틴토레토의 그림처럼 화려합니다. 난초는 자신의 지능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지만 그래도 난초에게 있어서는 미학이 아주 중요한 교과목임에 틀림없습니다.
난초는 화학자로서 그리고 건축가로서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이용해서 아주 다양한 색소와 향기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사실 곤충들을 노예로 만들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난초들은 식물의 오아국에서 요부로 이루어진 합창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곤충들의 성적 욕구를 갈취하는,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거만하면서도 사악한 해적들입니다. 그들은 파트너가 자기한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 134쪽

순진한 곤충들을 속이기 위해서 난초는 거의 모든 수단을 이용합니다. 꽃가루를 통해 수태를 할 수 있도록 꽃가루를 날라주기를 바라는 그들의 목적에만 맞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책략과 완벽한 고안 뒤에는 자신의 종족을 살리기 위한 모성의 그리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 135쪽

바람이 깃털처럼 가벼운 씨앗을 어디엔가 내려놓으면, 씨앗은 자기 힘으로 배아에 영양분을 공급하기엔 너무 약하기 때문에 유모가 와야 합니다. 응석받이로 길이 들은 종족을 보살펴줄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 싹은 하나의 버섯과 공동체를 이루어 성장합니다. 버섯은 난초의 싹이 제 스스로 영양분을 받아들여서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난초의 싹을 먹여 살립니다. 난초가 웬만큼 자라면 버섯은 난초를 자신의 숙주로 생각하여 난초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려고 합니다. 이에 반해서 난초는 자신의 뿌리를 단단한 알뿌리로 만들어 거기에 영양분을 저장시켜 놓고 일반적인 식물의 나약한 뿌리의 경우보다 거기서 버섯이 영양분을 빼가기 힘들게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합니다.- 136쪽

헤르만 헤세 "시든 꽃잎"

모든 꽃은 열매가 되려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네,
변화와 사라짐만이 있을 뿐.

가장 멋진 여름마저도 언젠가는
가을과 시듦을 맛보려 하네.
나뭇잎아, 바람이 널 유괴하려 들면
그냥 참고 가만히 있어라.

네 놀이나 하며 뿌리치지 마라.
가만히 일어나는 대로 두어라.- 155쪽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토록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163쪽

해설-김재혁

동양에서는 난초가 청초함, 순결함의 표현인 반면 서양인들의 눈에는 난초는 자신의 번식을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거만하면서도 사악한, 색을 밝히는 해적이다. 이것은 서양의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동양의 관조적인 사고방식 사이의 차이에서 연유한다. 서양인들은 과학적인 눈길로 난초의 성향을 정확하게 관찰하여 묘사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그런 세세한 부분보다는 나초의 생김새와 꽃향기가 갖는 상징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난초를 순수한 모습으로보다는 간교한 요부로 보는 데에는 무엇보다 서양인들의 정확한 관찰력이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198쪽

중국 한나라 시대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꽃을 재배하여 오히려 농사를 지을 땅이 모자라 많은 백성이 굶주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일반적인 꽃송이가 아니라 꽃다발이 발견된다. 중미의 아스테카 사원에도 꽃으로 장식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황제들의 꽃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올리브 밭과 옥수수 밭이 장미 화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유럽에서 꽃이 방 안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러나 꽃값이 비쌌기 때문에 귀족과 돈 많은 사람들만이 멋진 꽃으로 장식을 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꽃을 사서 집 안을 장식하고 남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어서이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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