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구판절판


옹이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12쪽

낙타의 생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24쪽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가슴에 있는 노래를 배우는 것’-작자 미상
-32쪽

다르질링에서 온 편지

지금 지구는 외롭고 바람 부네
사람이 그리워 사람의 마을로 간 것을 파계라 하던가
여기는 별이 너무 많아
더러는 인간의 집을 찾아들어
몇 점 흐린 불이 되기도 하네
히말라야의 돌은 수억 년 전의 조개를 품고 있다지
이 생의 일인데도 어떤 일들은 아득한
전생의 일처럼 여겨져
꽃 같은 기억, 돌 같은 기억이 너무 많아
세상이 나를 잊기 전에 내가 나를 잊었구나
농담을 하듯이 살았네
해발 2억 광년의 고산을 넘어와
밤마다 소문 없이 파계하는 별들 보며
전생의 내가 내생의 나에게 편지를 써서
거꾸로 읽어 보네
여인숙 옆 사원에서 들려오는 주문인 듯
네부람바고롭외......
-53쪽

얼음 나무

첫해부터 후회가 되었다
집 가까이
그 나무를 심은 것이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밤마다 창을 두드린다
첫 시월부터 마지막 여름까지
가지마다 비와 얼음을 매달고서
나의 부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바람에 갇힌 영혼같이
상처 입은 불같이

겨울이 떠나면서 덧문을 열어 놓고 갔을 때는
잠 속까지 걸어 들어와
꽃으로 내 삶을 두드린다

나는 그 나무로부터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마저도
심장을 건드리는
-72쪽

바르도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1
달 표면 오른쪽으로 거미가 기어간다
월식의 흰 이마 쪽으로
어느 날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밤늦은 시각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흰 빗금을 그으며
산목련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거미가 달의 뒷면으로 사라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텅 비고 깊고 버려진 목소리
망각의 정원에 핀 환영의 꽃 같고
육체를 이탈한 새의 영혼 같고
얼마큼의 광기 같은
당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요?
전화는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
당신 아직도 거기 있어요?
당신도 아직 거기 있어요?

2
지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매화는 피었나요 소복이
삼월의 마지막 눈도 내렸나요 지난번
가시에 찔린 상처는 아물었나요
그 꽃가지 꺾지 말아요
아무리 아름답기로
그 꽃은
눈꽃이니까

천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그곳에도 매화가 피었나요 촉촉이
초봄의 매우도 내렸나요 혹시
육체를 잃어서 슬픈가요
그 꽃가지 꺾지 말아요
아무리 신비하기로
그 꽃은
환생의 꽃이니
-74쪽

3
어느 날 너는 경계선 밖에서 전화를 걸 것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幻(환) 속에서
이미 재가 되어 버린 손가락으로
수신자 부담 전화를
네가 있는 여기
봄 그리고 끝없이 얼굴을 바꾸며
너와 함께 이동해 준 여러 번의 계절들
해마다 날짜가 변하는 기억들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만큼 살지 않았을 뿐
어느 날 갑자기 너는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질문과 회피로 일관하던 삶을 떠나
이미 떨어진 산목련 꽃잎들 위에
또 한 장의 꽃잎이 떨어지듯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생물들에
또 하나의 생을 보태며

*바르도-‘둘 사이’라는 뜻의 티베트 어로, 사람이 죽어 일정 기간 머무는 곳
**매우(梅雨)-매화 질 때 내리는 비
-76쪽

살아 있는 것 아프다

밤고양이가 나를 깨웠다
가을 장맛비 속에
귀뚜라미가 운다
살아 있는 것 다 아프다
다시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내가 죽었다

그날 밤 별똥별 하나가 내 심장에 박혀
나는 낯선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나는 알았다
그것이 시라는 것을
-79쪽



나를 치유해 준 것은 언제나 너였다
상처만이 장신구인 생으로부터
엉겅퀴 사랑으로부터
신이 내린 처방은 너였다
옆으로 돌아누운 너에게 눌린
내 귀, 세상의 소음을 잊고
두 개의 눈꺼풀에 입 맞춰
망각의 눈동자를 봉인하는
너, 잠이여

나는 다시 밤으로 돌아와 있다
밤에서 밤으로
부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시간으로
얼굴의 윤곽을 소멸시키는 어둠 속으로
나라고 하는 타인은
불안한 예각을 가지고 있다
잠이 얕은 혼을

내가 숨을 곳은 언제나 너였다
가장 큰 형벌은 너 없이 지새는 밤
네가 베개를 뺄 때
나는 아직도 내가 깨어 있는 이곳이 낯설다
때로는 다음 생에 눈뜨게도 하는
너, 잠이여
-80쪽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신발 뒷굽이 닳아 있는 걸 보면
그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거리를 걸을 때면 나무의 우듬지를 살피는 걸 보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다 주머니에 기도밖에 들어 있지 않은 걸 보면
그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 가끔 생의 남루를 바라보는 걸 보면
그는 밤을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샤갈의 밤하늘을 염소를 안고 날아다니는 걸 보면
그는 이따금 적막을 들키는 사람이다 눈도 가난하게 내린 겨울 그가 걸어간 긴 발자국을 보면
그는 자주 참회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거절한 모든 것들에 대해 아파하는 걸 보면
그는 나귀를 닮은 사람이다 자신의 고독 정도는 자신이 이겨내는 걸 보면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많은 흉터들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이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면
-84쪽

그는 홀로 돌밭에 씨앗을 뿌린 적 있는 사람이다 오월의 바람을 편애하고 외로울 때는 사월의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그는 동행을 잃은 사람이다 때로 소금 대신 눈물을 뿌려 뜨거운 국을 먹는 걸 보면
그는 고래도 놀랄 정도로 절망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삶이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걸 보면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의 부재가 봄의 대지에서 맥박 치는 걸 보면
그는 타인의 둥지에서 살다 간 사람이다 그의 뒤에 그가 사랑했으나 소유하지 않은 것들만 남은 걸 보면
-85쪽

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

꽃눈 틔워 겨울의 종지부를 찍는
산수유 아래서
애인아, 슬픔을 겨우 끝맺자
비탈밭 이랑마다 새겨진 우리 부주의한 발자국을 덮자
아이 낳을 수 없어 모란을 낳던
고독한 사랑 마침표를 찍자
잠깐 봄을 폐쇄시키자
이 생에 있으면서도 전생에 있는 것 같았던
지난겨울에 대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가끔 눈 녹아 길이 질었다는 것 외에는
젖은 흙에 거듭 발이 미끄러졌다는 것 외에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
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
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잘 가라, 곁방살이하던 애인아
종이 가면을 쓰고 울던 사랑아
그리움이 다할 때까지 살지는 말자
그리움이 끝날 때까지 만나지는 말자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한다
우리 나머지 생을 일단 접자
나중에 다시 펴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벼랑에서 혼자 피었다
혼자 지는 꽃이다

*‘삶이라는 것이 언제~마모시키는 삶’-옥타비오 빠스 <태양의 돌>에서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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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6-0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네요~ 언제봐도 류시화 모음 글들은!

마노아 2012-06-04 01:19   좋아요 0 | URL
시인의 영혼은 악마라도 탐을 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어요. 시인의 언어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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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학자 이영림 교수 "루이 14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귀족들의 먹이사슬의 포로에 불과하다. 절대군주의 상징인 루이 14세의 최대 비밀은 그가 절대군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화려한 베르사유와 엄격한 궁정의례의 비밀도 여기서 드러난다. 절대군주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루이 14세는 절대군주로서의 이미지에 집착했던 것이다."

-56쪽

절대군주정은 성격상 호전적일 수밖에 없다. 절대군주의 영광은 예술과 예법 등의 상징적 수단을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루이 14세는 전쟁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잘 과시할 수 있는 위대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전쟁은 신민의 불만과 귀족의 음모를 억누를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 전쟁을 좋아하다보니 결국 그는 당대의 유럽인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전쟁광으로 인식되었다.

-66쪽

섬나라여서 해군이 막강하고 해군이 모든 군사력의 중심이다 보니 영국 육군은 해군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크게 두려워했다. 배가 쉽게 드나들지 못하면 영국군의 공포감은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이에 더해 잔 다르크가 영국군과 싸울 때 본진을 공격하는 것보다 주위의 작은 요새를 점령해감으로써 결국 본진을 무너뜨린 것도 참고했다. 이런 지식이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이어지면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레귀예트 점령의 아이디어로 전개되었다. 전략적 직관은 이처럼 두뇌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지식이나 경험이 순식간에 조합되어 가장 확실한 문제 해결책으로 거듭나게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출중했던 나폴레옹은 툴롱 전투 이후 3년 만에 대위에서 장군이 되었다.

-79쪽

나폴레옹은 예술가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폴레옹은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하고 그들의 재능을 인정해 자부심을 극도로 높여줌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연극배우 탈마에게 모자를 벗어 최고의 경의를 표한 적이 있는데, 황제 스스로 이를 떠벌리고 다니며 자랑함으로써 배우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다. 나폴레옹은 다비드의 작품에 대해서도 늘 공공연히 경의를 표했다. 이런 황제를 그리는 화가의 붓 끝에 열정이 실리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87쪽

‘임금님’이나 ‘나라님’ 같은 호칭과 달리 차르는 매우 잔혹하고 억압적인 군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농노제에 기초한 후진적인 사회체제 위에 국가 자체가 최고의 봉건 지주로 군림하다보니 그 정점에 선 차르는 그만큼 무서운 압제자로 인식되곤 했다.
차르는 삼권을 장악하고 러시아 정교회 수장을 겸한 전제자로, 헌법과 제도화된 내각, 선출된 입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늘은 높다. 그러나 차르는 더 높고 멀다"는 러시아 속담이 보여주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다. 이에 따라 이반 뇌제뿐 아니라 많은 차르들이 억압적이고 냉혹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표트르 대제의 별명도 ‘처형관 차르’였다. 표트르 대제의 사후에는 75년 동안 무려 열 차례의 권력 변동이 발생해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부인 사이에 죽고 죽이는 혈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피의 니콜라이’라는 별명을 얻은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가 가족과 함께 혁명세력에게 무참히 살해된 것도 변화하는 시대와 담쌓고 전제주의를 고집한 데 따른 것이었다.
-111쪽

흥미롭게도 이 희대의 독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러시아인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08년 러시아의 한 TV 토크쇼에서 벌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탈린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는 응답자가 무려 54%에 이르렀다(스탈린을 우상이라고 평한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최근 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는 그의 지도력을 칭송하는 글들이 실리고 있고, 그의 동상이 새로이 세워지다 못해 상품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무엇이 많은 러시아인들로 하여금 아직도 스탈린에 대해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115쪽

근현대사에서 독재자로 지탄받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사후 상당수 혹은 일부 국민들로부터 그리움과 향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의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독재자가 고무한 자부심과 비전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116쪽

스탈린은 1878년 12월 18일 그루지야의 시골 마을 고리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권좌에 오른 후 스탈린은 자신의 생일을 1879년 12월 21일로 바꿨다). 본명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시빌리. 스탈린이라는 이름은 강철을 뜻하는 러시아어 스탈에서 나온 것이다. 레닌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116쪽

화가들이 레닌과 스탈린의 관계를 끈끈하게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말년의 레닌은 스탈린을 경계했다. 레닌은 유서에 덧붙인 글에서 스탈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은 너무 난폭한 인간이다. 그의 이런 결점은 서기장의 직책에 합당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그 지위로부터 제외시키는 방법을 찾도록 여러 동지들에게 제안한다."
자신의 사후 당이 분열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레닌은 동지들에게 집단지도체제를 권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당 간부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스탈린에게 넘어갔고, 권력의 화신 스탈린은 레닌의 우려를 끝내 현실로 만들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소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권력이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스탈린은 소련 사회를 전면적으로 개조했다. 20세기 빅브라더의 가장 공포스러운 전형을 창조한 것이다.
-122쪽

로마인들이 간과한 것은 남매 사이의 결혼은 종교적 함의에 더해 권력의 유지와 배분을 위한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이게 가능했던 것은 그리스나 로마와 달리 여성 왕족의 통치를 인정하는 유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나 로마에서 태어났으면 여성이라서 받지 못했을 고급 교육(왕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훗날 이것이 그녀에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되어주었다.

-142쪽

미모와 관능만으로 따지면 클레오파트라보다 우월한 여인들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주변에는 많았다. 고대 동전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심지어 이마가 좁고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아 결코 미인형이 아니었다고 한다. 영웅들이 사랑한 게 단순한 미모나 관능이 아니었음을 유추하게 하는 대목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지성은 그녀가 마케도니아어뿐 아니라 그리스어, 민간 이집트어, 라틴어에도 능통했고, 아랍인, 히브리인, 메데스인과 그들의 언어로 직접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에서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또 독약의 종류와 효과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사형수에게 독을 주입하는 끔찍한 실험을 행했다고 한다), 미용법과 화장술에 대한 글을 썼다는 기록도 그녀의 지적인 면모를 일깨워준다.

-144쪽

고대 그리스에서는 매춘이 경제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윤락문화를 후대 사람들만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런 관용적인 시각이 그리스 미술가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윤락문화를 표현하게 만들었다. 로마의 화가들 또한 유곽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적잖이 그렸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로마 사람들도 그리스 사람들과 유사한 태도로 윤락문화를 대했음을 알 수 있다.

-171쪽

하렘은 본래 이슬람권에서 가까운 친척 외에 일반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간을 지칭한다. 한마디로 ‘금남의 구역’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오스만 제국 술탄의 하렘이다. 톱카프 궁전에 있던 이 하렘에는 술탄의 아내와 여인들, 술탄의 어머니, 술탄의 누이들, 딸들, 가까운 여성 친척들, 환관, 여성 노예들이 거주했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16세 미만인 술탄의 아들들도 하렘에서 함께 살았다. 하렘을 만든 것은 술탄의 성적 욕망을 위한 게 아니라, 이처럼 내외를 따지는 문화에서 기능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이런 공간적 성격과,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서 술탄의 어머니나 아내, 누이들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가 적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하렘이 환락의 장소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국의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으리라는 사실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93쪽

14C의 흑사병 외에 유럽의 진로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BC430년경 아테네에서 창궐한 장티푸스다. 4년 만에 아테네의 군인과 민간인 1/4 정도가 세상을 떠났다. 병의 독성이 얼마나 강했던지 감염자들이 워낙 빨리 죽는 바람에 병이 더 이상 퍼지지 않는 역설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당시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던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은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스파르타의 펠레폰네소스 동맹에 패하고 말았다.

-222쪽

페스트는 이후에도 18C까지 유럽을 주기적으로 위협했고 유럽의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페스트로 인구가 줄어들자 귀족들의 부와 권력 또한 줄어들게 되었고 농노들은 영지를 떠나 소작농이나 장인 등으로 변모한다. 또한 페스트를 퇴치하는 데 실패한 교회가 민심을 잃으면서 기독교의 힘도 약화되었다. 이렇듯 페스트는 중세시대의 몰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228쪽

헨리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사후 왕위 계승권자는 헨리 8세의 맏딸이자 에드워드의 누나인 메리였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죽으면서 왕위를 누나가 아니라 아버지의 여동생인 메리 튜더의 상속자들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겼다. 이는 측근인 노섬벌랜드 공작의 설득에 따른 것으로, 그렇게 하면 메리 튜더의 외손녀인 제인 그레이에게 왕권이 넘어갈 수 있었다. 에드워드의 왕위를 가톨릭교도인 메리가 아니라 신교도인 제인이 계승함으로써 기존의 신교 권력이 변함없이 유지되도록 하려는 노섬벌랜드 공작의 책략이었다(제인은 노섬벌랜드 공작의 며느리이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영국 국교회의 창설자인 아버지 헨리8세의 유지를 잇고 가톨릭의 복고를 막기 위해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231쪽

‘피의 메리’가 아닌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1587)는 자신의 왕국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영국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처형되었다. 메리의 불행은, 프랑스 왕비가 된 그녀가 첫 남편 프랑수아 2세의 이른 사망으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두 번에 이은 재혼이 문제였는데, 이 잘못된 혼인들로 스코틀랜드 군주로서 그녀의 통치력은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에게 도움을 청해 영국으로 망명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게 영국 내의 가톨릭 세력들로 하여금 메리를 영국 여왕으로 옹립하려는 음모와 반란을 획책하게 만들었다.-235쪽

모반 음모가 없더라도 후사가 없는 엘리자베스가 죽으면 왕위는 메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신교도 세력에게 이보다 더한 재앙은 없었다. 메리는 오랜 유폐생활 중에도 줄기차게 모반에 연루되었는데, 결국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었다. 그러자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참수형에 처했다. 1587년 2월 7일 그녀는 그렇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메리는 끝내 영국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그녀의 아들 제임스 1세는 엘리자베스 사후 적법하게 영국의 왕위까지 계승했다. 그러나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가 청교도혁명의 와중에 처형됨으로써 메리의 불행은 손자 대에 다시 반복되었다.
-235쪽

절단된 왕의 머리는 군중에게 전시되었다. 반역죄로 죽은 모든 죄수에게 가해지는 수치였다. 하지만 크롬웰은 그 머리를 다시 왕의 몸에 꿰매어 붙이도록 하는 전례 없는 조처를 내렸다. 유족들이 주검에 예를 표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려 깊은 크롬웰의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40쪽

헨리8세가 죽자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낳은 에드워드 6세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죽자 헨리7세으 증손녀인 제인 그레이(1537-1554)가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녀는 메리에 의해 9일 만에 폐위되어 처형된다. 실질적으로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된 메리(1516-1558)는 교황과 화해하고 수장령을 폐지했다. 그녀는 신교도를 박해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처형했기 때문에 ‘피의 메리’로 불렸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와 결혼했으나 자식이 없었고 재임 5년 만에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이후 즉위한 이복여동생 엘리자베스1세(1533-1603)는 가톨릭과 신교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절대왕정을 완성했다. 그녀는 독신으로 자식이 없었기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1566-1625)가 그 뒤를 이어 스튜어트 왕조를 열었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그는 국교회를 절대주의의 보루로 삼아 가톨릭과 청교도를 모두 박해했다. 청교도가 많은 의회와 대립하는 일은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1세(1600-1649) 때 더욱 빈번했다.

-247쪽

서양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전쟁은 일반적으로 일차세계대전이 꼽힌다.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 받은 심리적 충격이 그 어느 전쟁보다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차세계대전을 ‘the Great War'라는 고유명사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 단어는 일차세계대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249쪽

일차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쟁 자체가 준 충격도 컸지만, 이후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독일 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등 네 개의 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쟁 끝물에 퍼지기 시작해 최소한 25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산되는 스페인 독감은 전쟁으로 위생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번져 그 위력이 대단했다.

-259쪽

다만 전쟁이 총력전으로 치러진 까닭에 전쟁 중에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여성들을 대규모로 후방의 공장에 채용한 것은 여성에게 노동시장의 문을 열어준 긍정적인 변화였다. 특히 ‘총알 아가씨’로 불리며 군수 공장에서 일한 여성들은 지위 변화의 상징이 되어 여성들의 정치 사회적 권리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1918년 영국에서, 그리고 1920년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였다.

-259쪽

제1차 세계대전은 막대한 인명과 재정의 피해를 가져와 유럽을 후퇴시켰고 세계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266쪽

카리스마라는 그리스어가 처음 문자화되어 나타난 것은 서기 50~62년 사이의 일이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카리스마를 은사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기독교에서 은사란 하느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카리스마의 어원이 된 카리스charis가 은혜나 호의를 뜻한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의미 전개라 할 수 있다.

-273쪽

이 기독교적인 카리스마 관념은 교회가 유럽 문명에 안착하고 제도화되기 시작하는 서기 3세기 이후 급속히 약해진다. 바울의 카리스마 관념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특권을 부인하고 평등주의적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헬레니즘 사회의 계층적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측면이 있었다. 제도화된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런 급진적 가치와 이상주의가 교권을 약화시킬 수 있는 까닭에 이를 적극적으로 통제할 필요를 느꼈다. 이후 교회는 경전과 종교 규약, 전례, 성직자 조직, 리더십을 카리스마, 곧 은사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 활동의 중심으로 삼게 된다.

-279쪽

오랜 세월, 교회에서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심지어 사라진 듯 보였던 카리스마라는 용어(물론 그 개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가 오늘날 일상에서 빈번히 오르내리는 단어가 된 것은 전적으로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 덕이다.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라는 용어를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재활용했을 뿐 아니라 개념 자체를 재창조했다. 베버가 재창조한 카리스마의 개념은 고대의 기독교적 의미와는 거리가 먼, 철저히 세속적으로 변형된 것이었다.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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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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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저것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은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내 몸에 이미 지닌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가 지닌 것은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람의 뜻은 성에 찰 만한 것만 사모하는지라 건너다보며 가리켜 ‘저것’이라고만 한다. 이는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 땅덩어리는 평평하다.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자꾸만 곤륜산을 오르고 형산과 곽산을 오르면서 높은 것을 구한다. 가버린 것은 좇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하지 못한다. 천하에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높은 집과 큰 수레에 목말라하고 논밭에 애태우며 즐거움을 찾는다.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 하여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어사재기」
-16쪽

시비와 이해의 네 가지 조합이 만들어내는 네 가지 삶의 등급이 있다.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 첫째요, 옳은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둘째다. 그른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은 셋째다. 그른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넷째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은 싫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른 일을 해서라도 이로움을 얻으려고 하다가 마침내 해로움만 불러들이고 만다. 첫째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 셋째를 하다가 넷째가 되고 마는 것이다.

-19쪽

만족을 모르는 삶에 기쁨은 없다. 미래를 꿈꾸려거든 현재를 경영하라. 내일은 알 수가 없다. 자손은 내가 아니다.

-25쪽

땅은 달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땅문서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수시로 주인이 바뀐다. 변치 않을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지, 고작 땅주인 되는 데 인생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29쪽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상은 자꾸 변한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33쪽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드는 것은 집과 땅 같은 것들이다. 지켜야 할 ‘나’ 는 내버려둔 채, 달아날 염려 없는 물건만 지키려고 난리다. 내가 나를 잃으면 그 많은 물건을 다 지녀도 내 것이 아니다. 한번 떠난 나는 돌아올 줄 모르고, 주인 잃은 빈집에 허깨비만 산다. 이익과 명예, 부귀와 여색에 빠져 떠나버린 나를 어디서 찾아 데려올까?

-43쪽

사람은 제 이름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 이름값을 하려면 명실이 상부해야 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소문보다 실제가 못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이름은 내가 얻으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은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없는 것을 만들고,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 얻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이름 앞에 겸손할망정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갖춘 것 없이 얻은 헛된 명성이다. 이런 것은 오히려 재앙에 가깝다.

-83쪽

공부는 부족함을 아는 데서 새로 시작된다. 하지만 초심자일수록 자꾸 드러내고 자랑하려 든다. 논문을 쓰라고 하면 자기가 읽은 것을 다 늘어놓는다. 잔뜩 썼지만 알맹이도 초점도 없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을 시로 알고, 달콤한 말을 문장으로 여긴다. 잘못을 지적하면 부끄러워 더 분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까짓 게 하면서 원망을 품는다. 오류를 깨달아 인정하는 것이 공부다. 과오를 바탕으로 거듭나는 것이 공부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것이 공부다. 그저 고여만 있고, 저 잘난 맛만 있다면 그런 공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

-97쪽

18세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크기가 작은 휴대용 소책자가 조선에서 인기를 끌었다. 소매 속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다고 해서 수진본(袖珍本)이라 했다. 그런데 책의 크기가 작다 보니 성현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드러누워 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어찌 감히 성현의 말씀을 자리에 누워서 볼 수 있느냐고 책의 수입을 금지시킨 일이 있다.

-105쪽

시다운 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찬미하고 풍자하며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때문에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며 큰 도를 듣지 못하여, 임금에게 미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너는 힘쓰도록 해라. -연아에게 부침
-164쪽

시는 안타까움에서 나온다. 안타까움이 없는 자는 시를 쓸 생각을 마라. 시인이란 명성을 탐하여 개폼이나 잡으려거든 차라리 붓을 꺾어라.

-165쪽

부지런히 노력해도 검소함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검소함은 아끼고 절약하는 정신이다. 한 번 쓸 것을 여러 번에 나눠 쓰고,. 혼자 쓸 것을 함께 쓴다. 먹고 입는 데 호사를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육신의 배고픔보다 영혼의 허기를 부끄러워하라. 초라한 의복 말고 빈약한 내면을 다급히 여기라. 아무리 맛난 음식도 한번 침이 닿기만 하면 개밖에 먹지 않는다. 들어갈 때는 다른 것 같아도 나올 때 보면 다 같다. 그러니 냄새나는 똥을 위해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곳간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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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5-2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편 빼고는 저자의 감상글이다.
 
속눈썹 -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사랑의 순간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품절


"이번 시집은 사랑의 길이 써준 시의 집이다. 바람 부는 들길을 지나 해질녘에 찾아든, 따뜻한 새집. 속눈썹이 떨렸던 날들...... 그 연애의 기록이다."
-표지앞날개쪽

자서(自序)

사랑은 떠나고
빈집에서 나와 노래한다.

사랑 말고
우리가 노을 아래 엎디어 울 일이
또 무엇이 있을꼬.
어느 날의 일이었던 사랑이여!
또 어떤 날의 이별이었던 노을이여!
삶이 어찌 그것들을 다 이기겠는가.

2011년 가을
김용택
--1쪽

처음 본 날

처음 본 날 웃었지요.
먼 데서 웃었지요.
가만가만 웃었지요.
꽃잎 내린 강물처럼 잔물결이 일었지요.
발밑에서 일었지요.
날리는 꽃잎처럼 발길에 밟혔지요.
한 잎 한 잎 또 한 잎 뚝 뚝
떨어져 내 눈에 밟혀서
오!
봄이여!
꽃구경 가다가
날 저물어
길 잃고
나는
너를
얻었네.
-15쪽

속눈썹

산그늘 내려오고
창밖에 새가 울면
나는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고
두 눈에
그대가 가득 고여온답니다.
-16쪽

그 꽃집

그대가 가만히 바라보는
그 꽃이 나여요.
그 꽃이 나랍니다.
웃어주세요.
"여긴 사람이 없네."
그 강길 호젓한 산길 모퉁이 돌아서며
입 맞출 때, 눈이 감겨오던 그때,
물에 내리는 물오리 소리 가만히 들렸지요.
사랑합니다.
그대가 지금 가만히 바라보는
그 꽃이 나랍니다.
그 꽃집에
그 꽃들

웃어주세요.
-17쪽



꽃은 피어 있는데
피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꽃이 졌는데
지는 걸 누가 보았답니까.
아무도 못 본


-25쪽

입맞춤

달이 화안히 떠올랐어요.
그대 등 뒤 검은 산에
흰 꽃잎들이 날았습니다.
검은 산 속을 나와
달빛을 받은
감미롭고도 찬란한
저 꽃잎들
숨 막히고, 어지러웠지요.
휘황한 달빛이야 눈 감으면 되지만
날로 커가는 이 마음의 달은
무엇으로 다 가린답니까.
-38쪽

배반

봄이 와 있다.
잔디밭에 봄이 와 있다.
어, 어, 저것 봐!
저 햇빛 좀 봐!
매화가지 끝에 꽃망울이 터지잖아?
내가 나를 배반할 것 같은
봄이

나는 무섭다.
-43쪽

보름달

달이 밝습니다.
어제가 보름이었지요.
행복합니다.
이렇게 밝고 큰 달을 다 차지하고 혼자 볼 수 있어서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아 좋습니다.
늘 그리운 사람 있습니다.
힘이 들 때, 보고 싶은 사람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46쪽

문득

햇살 좋고
바람 붑니다.
꽃 피겠네요.
남쪽으로
멀리 떠나고 싶네요.
보고 싶답니다.
-57쪽

통영의 밤

당신은 싱그러움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요.
살아 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늘 죽지 않는 감성, 세상에 대한 관심, 예술에 대한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지치지 않는 영혼을 가진, 예술을 품은 가슴은 빛납니다.
예술은 손에 잡힌 현실이 아니고 온몸에 스며들게 하는 현실이지요. 나는 스며드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느끼고 스며드는 것들은 떼어낼 수 없습니다.
꽃이, 바람이, 봄비가 세상으로 스며들 듯이 나는 당신에게로 스며들고 싶었지요.
지치지 않는 사랑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끝이 없는 방황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좁은 골목길 사람들 틈에 꽃잎처럼 날아든 당신의 얼굴, 나는
떨렸습니다.
아름다운 골목이었습니다.
당신은 배우처럼 빛이 났지요.
떨리는 사랑을, 세상을 향한 그리움을...... 당신은 아는 사람이었지요.
그 비릿한 골목의 불빛들, 그 불빛 속의 사람들을...... 나는 기억하게 되었답니다.
봄바람 부는 거리에 꽃잎처럼 날아온,
그대 얼굴을,
그 그리운 통영의 밤을.
-78쪽

바람

바람도 없는데
창문 앞
나뭇잎이 흔들리네요.

나를 안아주세요.
-80쪽

오월

연보라색 오동꽃 핀
저 화사한 산 하나를 들어다가
"이 산 너 다 가져" 하고
네 가슴에 안겨주고 싶다.
-85쪽

감잎

마른 감잎처럼
바스락거립니다.
세상이 이리 넓은데
앉을 곳도
서 있을 곳도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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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통째로 옮겨오실 생각입니까? 네? 그런겁니까? ㅋㅋㅋㅋ

전 남동생이 여친에게 시집을 선물로 주고 싶다길래 이 시집을 추천했거든요. 그리고 제 책장에서 꺼내서 주며 이걸 갖다줘, 라고 했는데, 그 뒤로 다시 사질 않아서 이제 제 책장에 이 시집은 없네요. 그러고보니 제가 아끼는 책이 제 남동생의 여친에게 가는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네요. 몇년 전 다른 여친(응?)에게 빌려주라며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를 건네줬는데(1판 1쇄였어요 ㅜㅜ), 여자친구가 다 읽고 돌려주기도 전에 둘이 헤어져서 ㅠㅠ 차마 헤어져도 그건 받아와라, 라고 할 수가 없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은 어느새 산으로..........)

마노아 2012-05-11 13:46   좋아요 0 | URL
나름 엄선해서 추린 거예요. ㅋㅋㅋㅋ

남동생의 여친에게로 건너간 책들... 정말 다시 찾아올 수도 없고..ㅎㅎㅎ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고 싶은 사람, 사랑을 앞둔 사람 모두에게 고루 어필할 것 같아요.
아, 읽으면서 내 눈썹이 파르르 떨릴 것 같았어요. 사랑이 고픈 5월이에요. 야옹.....ㅜ.ㅜ

... 2012-05-12 11:53   좋아요 0 | URL
남동생 여친에게 빼잇긴 새벽세시 ㅎㅎㅎㅎ

이 시집 좋죠, 마노아님?

마노아 2012-05-13 11:40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그림이랑 종이 질감까지, 물론 시도 포함해서 다 좋아요, 참 고운 시집이에요. ^^

2012-05-13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3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풍당당 박한별 동심원 4
박혜선 지음, 강나래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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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먹는 괴물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나면 활짝
요구르트 아주머닐 봐도 활짝 웃던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하
경비 아저씨를 봐도 하하 웃던 아빠

그런데 이상하다
집에만 들어오면
엄마 얼굴에 웃음 뚝!
아빠 얼굴에 웃음 뚝!

우리 집에 웃음 먹는 괴물이 사는 걸까?
-11쪽

서울 친구들


막내고모가 아기처럼 키우던
강아지 미루
고모가 아기 낳자
시골 할아버지네로 보냈다

소연이 언니가 생일 선물로 받은
점박이 토끼
소파 밑에 똥 누고 베란다 꽃 뜯어 먹는다고
시골 할아버지네로 보냈다

피곤한 아빠 위해 안마해 주고
목욕탕 가면 엄마 등도 밀어 주던 나
엄마 아빠 헤어지면서
시골 할아버지네 와서 산다

"미루야, 점박아! 놀자."

내 뒤를 쫄쫄 따라오는 미루
미루 뒤를 총총 뛰어오는 토끼
우린 모두 서울 친구들.
-12쪽

자는 척


텔레비전도 잘 준비를 끝냈다
이불도 쫙 펼쳐 누워 있고
베개도 이불 위에 엎어져 잘 준비를 한다
양말은 돌돌 말려 윗목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가 벗어 둔 시계도
베개 옆에서 채각채각 코를 고는데
할머니가 뒤척뒤척
할아버지가 뒤척뒤척
퇴근길에 술 취한 아빠의 전화
"어머니, 너무 힘들어요."
그 전화 한 통에
벽에 걸린 작업복은 벌써 잠이 들었는데
이불도 베개도 모두 곯아떨어졌는데
할머니가 뒤척뒤척
할아버지가 뒤척뒤척.
-15쪽

작은 엄마는 작은엄마다


올 때마다 냉장고를 가득 채워 놓고
내 숙제를 봐 주는 작은엄마
토요일이면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외식도 시켜 주는 작은엄마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 주는 작은엄마
나올 때 꼭 바나나우유를 사 주는 너무 착한 작은 엄마
내 머리를 빗겨 주며 가끔 우는 작은엄마
우리 엄마였으면 좋을 작은엄마
성익이네 엄마인 작은엄마.
-16쪽

누구네 엄마일까?


빈 화분이었을 때는
그냥 화분이었는데
봉숭아 모종을 옮겨 심었더니
봉숭아 화분이 되었다

떠돌이 고양이일 땐
그냥 고양이였는데
내가 키우자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그냥 새댁이었다가
나 태어나고 한별이 엄마가 된 우리 엄마
지금은 내 이름 말고
다른 아이 이름을 달고 있을 엄마.
-17쪽

엄마 만나러 가는 길


가는 길만 있고
오는 길은 없었으면 좋겠어.
-20쪽

여름


낮에는 파리가
우리 집 주인

밤에는 모기가
우리 집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채 하나 들고

밖으로
쫓겨나셨다.
-26쪽

훌륭한 사람


세종대왕, 유관순, 에디슨 같은
훌륭한 사람 다 두고
소같이 우직한 사람이 최고래요
풀같이 끈질긴 사람이 최고래요
뿌린 대로 거둬 주는 땅 같은 사람이
최고래요 우리 할머닌.

할머니가 말하는 사람
위인전에는 없지만
우리 집엔 살지요
흙 묻은 바짓가랑이 걷고
마루에 앉아 점심 드시는 바로, 저분.

"한별아, 물 좀 떠 와라."
"네, 할아버지."
-27쪽

들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할아버지 뒤에 할머니
할머니 뒤에 아빠
아빠 뒤에 내가
쫄쫄쫄 따라간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닌
등 가려울 때 긁어 주는 마누라

할머니에게 아빠는
마음까지 든든한 울타리

아빠에게 나는?
재혼할 때 걸리는 혹

내 생각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 얘기다.

-40쪽

내가 오고부터


방바닥에 연필이 굴러다니고
달력 뒷장에 그림이 그려지고
밥상 위에 햄이 오르고
할아버지가 슈퍼를 자주 가고
할머니가 시내 문방구
단골손님이 되었다

-41쪽

위풍당당 박한별


우리 학교에서 인사 제일 잘하는 아이는?
나, 박한별
믿을 수 없다면 교장 선생님께 여쭤 봐
열 번 보면 열 번 다 인사하는걸

우리 학교에서 젤 잘 웃는 아이는?
나, 박한별
우리 반에서 공부 젤 잘하는 아이는?
너희가 더 잘 알지?

그럼 우리 반에서 달리기 제일 잘하는 아이는?
현용이?
아니. 엄마 없다고 놀리는 현용이 끝까지 따라가서 등짝 한 대 멋지게 날려 준
나, 박한별이야

위풍당당 박한별!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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