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을 자유 -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함을 찾아서 테드북스 TED Books 6
피코 아이어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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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코언이 내게 보여준 것처럼, 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금욕이라기보다 자신의 감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다. -24쪽

나는 그 산(샌게이브리얼 산맥)에서, 고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지속적인 명료함과 분별력, 환희에 대해 이야기하는 셈이라는 깨우침을 얻었다. -24~25쪽

내 나이 스물아홉 살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삶을 손에 넣었다. 타임스스퀘어에서 네 블록 떨어진, 미드타운 맨해튼에 있는 건물 25층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아파트는 파크 애비뉴에서 갈라진 20번가에 있었다. 동료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에 대해 ‘타임’에 글을 썼으니, 정말 환상적이었다. -28쪽

결국 나는 꿈같은 생활을 떠나, 과거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뒷골목에 있는 작은 단칸방에서 1년간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뉴욕에서 활동의 성취와 자극을 실컷 맛보았으니, 이제 좀더 단순한 것을 섭취해 인생의 균형을 맞추고, 내 기쁨이 좀더 내면으로 향하고 오래 지속되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29쪽

2000년도 더 전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다시피,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32쪽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경험이 의미를 획득하고 내 자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내가 본 것들을 오래 지속되는 통찰력에 차곡차곡 담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은 내 것이 된다. -33쪽

‘정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동動’이야말로 가장 풍성한 감각을 이끌어낸다. -35쪽

천국이란 게 있다면, 다른 곳을 떠올리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곳이리라. -36쪽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수도사들이 불쑥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진짜 삶의 느낌을, 다시 말해 쉼 없이 변하는 생각 뒤에서 변하지 않고 오롯이 버티는 것을 찾아내려면 발견하지 말고 기억을 더듬으라고. 정말 그랬다. -37쪽

피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면 내 생각이나 야망을, 다시 말해서 나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38쪽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여행을 떠나면 그 여정이 어디에서 어떻게 끝이 날지 짐작할 수 없고 길은 한없이 이어질 텐데, 당신이 그 여정에서 보게 될 것이 무언지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여행의 미덕이다. -39쪽

글쟁이들은 직업이 직업인지라 아무데도 가지 않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창작력은 세상에 나가 인상을 수집하는 시간이 아니라 명상하듯 가만히 앉아서 수집한 인상들을 문장으로 바꾸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니 우리의 일은 ‘동’으로 진행되는 삶을 ‘정’으로,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은 우리의 일터이자 전장이기도 하다. -42쪽

우리가 아무데도 가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 즉 우리 삶의 풍경은 아마 이럴 것이다. 비슷비슷해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이더라도 항상 새로운 색채와 풍경,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으리라. -51쪽

샌퀜틴에서 뉴델리에 이르기까지, 감금된 사람들은 명상을 배운다. 명상을 해야만 그들은 갇힌 곳에도 자유로운 지점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54쪽

예전에 나는 앨버타 산속으로 들어가 어느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내게는 자신의 집을 거의 떠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편지들만이 벗이 되어주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열정이 어찌나 강렬한지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에서 받은 인상은 강렬했지만 새장에 갇힌 것처럼 갑갑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들은 보석함에 든 폭발물이었다. -55쪽

설령 당신이 직접 목적지를 ‘아무데도 가지 않기’로 정했다고 해도 이 결정이 두려워질 수 있다. 그곳에는 숨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릿속에만 틀어박혀 있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계속 집에만 있으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악마와 단둘이 갇힌 채, 생각이라는 덫에 걸려 밖으로 나가거나 의지력을 그러모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력해질 수도 있다. -57쪽

고요를 추구하는 삶은 때로는 예술이 아니라 의심이나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빛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정작 수많은 긴긴 밤을 어둠 속에서 홀로 보내기를 서슴지 않을 수도 있다. 수도원을 찾아가면서, 그런 곳을 찾는 일이 너무나 간단히 도피로 변질되거나 혹은 오래 가지 않을 열병의 고통 속에서 경솔하게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고요’와의 로맨스를 갓 키우기 시작할 즈음에는 그후 닥쳐올 고된 시간이 잘 보이지 않는다. -57쪽

달변의 수도사였던 토머스 머튼은 이렇게 말했다. ˝사색의 길은 길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누군가 그 길을 따라가 뭔가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명상의 법칙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당신이 좋은 생각을 얻고자, 나아가 행복을 찾고자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어떤 의미에서, 포기하지 않고서는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주장이다. 선문답처럼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충고의 가르침을 이해했다. 누구라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당장 손에 넣지 못한 것들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당장 곁에 있는 것들은 아무 가치도 없어 보일 테고 말이다. -58~59쪽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이 쓴 유명한 글이 있다. ˝사람들의 불행은 전부 한 가지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이란, 사람들은 도무지 방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중략) 교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무턱대고 아무거나 하지 마. 가만히 좀 앉아 있어.˝ -68~69쪽

게다가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그 정보를 하나하나 처리할 시간이 줄어든다. 기술이 우리에게 절대 해줄 수 없는 일이 있다. 기술은 기술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을 귀띔해주지 않는다. -69쪽

참선을 이익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분명 금리는 매우 높지만 장기간에 걸쳐 수익을 받는 무형의 통장에 적립되어 있고, 부득이한 순간에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령, 의사가 당신의 병실로 들어와 침통하게 고개를 젓거나 당신의 차 앞으로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순간 말이다. -76쪽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장소는, 한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를 금세 알아보듯 종종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이미 아는 곳으로 돌아가듯이 익숙한 감정에 휩싸여 다가간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썼다. ˝어떤 이는 교회에 가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킨다. 나는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킨다.˝ -88~89쪽

˝사색하는 삶의 기이한 법칙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저 앉아서 고민해봤자 문제의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젠가 저절로 해결된다. 혹은 언젠가 삶이 당신을 대신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사색하는 삶의 권위 있는 탐험가 중 한 명인 토머스 머튼의 말이다. -95쪽

물론 소동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든 설탕이 범벅된 도넛에서 몸을 돌리는 것이든,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그러모아야 한다. -96~97쪽

어쨌든 우리 중에 일상에서 자주 혹은 장기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러므로 ‘아무데도 가지 않기’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당일치기로 여행을 가거나, 낚시를 가거나, 매일 아침 30분 동안(이 정도면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중 고작 3퍼센트에 불과하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고요에 도달한다는 것은, 굳이 성소나 산꼭대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고요함을 활동에, 이 번잡한 세상에 가져오는 것이다. -97~98쪽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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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8-26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인용문들을 보니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더운 여름 잘 지내시나요??

로렌초의시종 2017-08-26 22:59   좋아요 1 | URL
네. 그럭저럭 올해도 무사히 넘긴 것 같아서 다행스럽네요. 잘 지내셨죠? 책은 분량이 소략하지만 정성스러운 글이어서 한번쯤 보실 법하리라 생각합니다.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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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함을 중시하는 사람은 일단 피하고 본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모자라, 화목한 가정에서 살면 자신의 이 문제는 해결되고 어떤 문제도 더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할 정도로 분별력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화하는 가정에서 성장하는 최대의 장점은 화목하면 쉽게 매몰되는 관계의 결을 읽게 되는 것인데, 그저 자신의 불행에 함몰된 채 아무것도 보지 않고서 보이지 않는 화목함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불화의 상처만 가득한데 성장하지도 못한 인간은 무고하며 순전한 자신을 동정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자신의 주변까지 상처 입히면서 불화의 고리로 밀어 넣을 뿐이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른 거 따질 거 없다. 그저 화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여자가 제일이야. 그런 여자가 너도 위해줄 줄 알고 애도 반듯하게 키우는 거다. 그게 어머니가 말하는 배우자의 덕이었다. 양친이 있고, 그 양친의 사이가 좋고, 그런 부모가 저절로 심어준 세상과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에 빛깔 자체가 환한 여자. 그런 여자가 내 주위의 어딘가에 있기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나와는 늘 다른 반, 다른 과, 다른 동네였다. 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도 다른 빌딩으로 출근했다. 나는 해사한 형수를 볼 때마다 내가 그동안 사귀었던 음울한 여자들을 떠올렸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p.145~146

 

 이 작품집에 실린 여러 소설들 중에서도 최은미의 창 너머 겨울을 읽을 때 가장 불편했다. 자신이 얼마나 음울하고 불화하는 인간인지는 한순간도 직시하지 못하면서도, 화사함과 화목함에 대한 집착마저 자기 연민의 이유로 삼는 화자의 모습이 시종일관 거북했다. 내 안에 저런 찌꺼기가 못내 남아 있으리라는 불안감이나, 자칫하면 내 꼴이 저리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의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화자가 사촌 형수부터 동료 직원에 이르는 주변의 애정을 갈구하거나 자신에게 애정을 선사하지 않는(혹은 않을) 이들을 저주하며, 이런 자신은 항상 무고하다는 뒤틀린 확신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사타쿠니의 가려움증이라는 알리바이를 마음껏 탐닉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이 음습한 질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간호사의 불친절이, 의사의 지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온갖 병원을 옮겨 다니고, 밤에는 사타구니의 가려움을 없애 준다는 무수한 배너 광고들에 낚이는 행태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병원에도 다시 가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p.136

 

 이 남자에게 자신의 질병은 언제나 너무도 소중한 알리바이였다. 스스로가 그나마도 없이는 용납될 리 없는 열등감과 욕정에 사로잡혔다는 사실만 알았기 때문이다. 화자의 내면과 주변의 묘사가 워낙 예리하고 선명했던 까닭에, 그처럼 자신의 음습함을 도리어 보호하며 피폐한 삶을 변명하는 수단으로 삼는 수많은 사람들을 연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병을 고치고 사느니, 병을 지키며 죽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구차한 내면을 낱낱이 보는 것은 깨닫는 만큼 괴로운 경험이다. 자신이 스스로의 질환에 얼마나 깊이 매몰되었는지 모르거나, 모른 척한 채 오로지 이런 자신을 사랑하거나 동정해 줄 사람을 찾고,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뿌리 깊이 뒤틀렸는지 새삼 떠올렸다. 그들의 구원은 오직 화창한 날 무덤 위에서 나체로 햇살을 받으며 성기가 떳떳하게 맥동하던 무속적인 환상 속에만 존재한다. 의사와 간호사의 검증된 치료를 꾸준히 지속하는 대신, 그들이 건드린 자신의 성적 열등감에 집착하는 아들과 그 아버지에게 어울리는 추억인 셈이다.

 

 7편의 소설이 모두 흥미로웠고 인상적인 대목도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다루기에는 이 나라의 여름이 버겁다는 핑계가 그리 과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었던 작품, 말해야 할 작품, 좋았던 작품을 하나씩 짚는 정도면 적당하겠다. 힘들었던 쪽을 이야기했으니, 말해야 할 쪽을 짚을 차례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가 2014년의 대상이었으니 피해 갈 수 없다. 언젠가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기억도 난다. 뭔가 가늠이 되지 않는 제목이었다. 이 제목이 무엇인가 정보를 주긴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처음 읽을 때부터 이 이야기의 정보를 지워 버리는 듯했다. 어째서 제목이 하필 상류엔 맹금류인지, 그것이 화자가 들려주는 옛 남자친구 제희와 그 가족의 신산한데다 다정한 삶과는 어떻게 엮일는지 생각하느라 정작 그 삶의 결은 그리 깊이 더듬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꿈꿨던, 제희의 연인이었던 화자의 시선과 퍽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생각도 관계도, 깊다고 생각하는 꼭 그만큼 얕았다.

 

제희네 아버지는 감기 치료를 하러 병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았다. 암이 발견된 뒤로는 제희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가망은 별로 없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소식을 들은 밤에 제희네 누나들이 마루에 모였다. 제희네 어머니와 제희까지 여섯 사람이 손을 잡고 둥글게 앉아서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가자고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다짐했다. 그건 분명한 기도였지만 일방적인 위탁은 아니었고 서로간의 다짐이자 격려였다. 제희나 제희네 누나들에게는 신이 없었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p.10

 

 하지만 연인과 그의 가족 사이로 좀 더 깊이 스미지 못한 것은 화자의 잘못도, 문제도 아니다. 고단한 사람들 사이로, 그 고단함을 모르는 이가 들어가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 뿐이다. 화자의 노력 부족이 아니었다. 그가 끝내 제희 가족의 일원이 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부 모두 6.25 실향민으로 시작해 건실한 시장 상인으로 자립했지만, 이를테면 보증을 잘못서서 결국 기울어 버린 제희네 가족의 삶 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화자의 소망과 시도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서, 이렇듯 먼 훗날까지도 그때 그들의 남루함을 끝내 견디지 못했던 자신의 얄팍한 명철함을 반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화자가 무사히 제희 가족의 일원으로 안착하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오직 그 혼자서 자신은 갈 수 없는 길을 망각하지 못하도록 이정표를 심기 위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오직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함께 갈 수 없는 사람과, 함께 갈 수 없는 곳을 알게 됐다.

 

 카트에 싣기도 곤란할 정도로 엉성하고 부산한 짐을 싣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끼워 맞추려다 짐을 묶는 고무줄 끝의 갈고리가 제희의 복숭아뼈를 가격하는 일련의 장면은 너무도 한결 같고, 그 가족의 삶과 잘 어울려서 괴로웠다. 그 너절한 상자 중 무엇 하나 빼놓지 못한, 꼭 그 무더기와도 같은 부모 중 어느 한 사람도 제희에게 사과하거나 그의 고통을 살피지 않는 것조차 참 스산했다. 고단한 까닭에 이 가족은 다정했으며, 꼭 그만큼 누추했다. 관계는 꼭 지속되거나 성공해야만 가치가 증명되지 않는다. 중단되고서야 의미가 드러나는 관계도 존재할 것이다. 처음부터 이 작품의 관계는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 깨져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화자는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자매나 친한 남매”(p.10) 같았던 제희와의 친밀감에 빠져서, 실은 자신이 그 가족과의 관계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괴롭거나 외로웠을 것이다.

 

 상류엔 맹금류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폐수 옆에서 쉬었음을 아는 사람들과 그 사실을 몰랐을 때부터 이미 그 물가에 앉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가족이 되기란 어렵다. 화자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사람이었던 까닭에, 제희의 가족은 자신과 달리 말을 해야만 알아듣는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그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여서다. 그런 까닭에 화자는 좀 전까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억지로 쉬었던 계곡 상류에 맹금류 축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는 제희 가족의 일원이 되지 않았기에, 비로소 그들과 자신을 아울러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두 사람의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비로소 의미가 발생했다.

 

쇼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아주 작게 열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최은영(쇼코의 미소)-p.261

 

 다만 좋았던 작품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였다. 이 작가의 첫 단편집에도 실린 같은 작품을 읽은 이들의 호평을 적잖이 접한 까닭에 궁금하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저 좋은 이야기가 발등을 찰랑찰랑 적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즐거웠다. 화자처럼 지방의 소읍에서 자라난 까닭에, 그곳을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후련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 사실 자체에 뭔가 의미를 부여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이 작품은 내 기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다채로운 결을 지녔다. 즐거웠던 까닭은 오롯이 그 결에 있다. 쇼코는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p.245)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그 기분은 거슬릴지언정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것들이 내 주위에 모여들면 답답하다. 나를 부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만 인정하게 되면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만큼 안온한 것은 찾기 어렵다.

 

 한국와 일본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외톨이 여고생 두 사람이 만나서 자신이 바로 상대와 같은 외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였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한국의 소유와 일본의 쇼코는 비슷하게 밀려난 외톨이였기에, 그 사실을 수용하기는 도리어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이해의 수준이 오히려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다르지만 비슷한 대상과의 경험들이 서서히 내 속에 한 겹씩 스미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인간(‘외톨이’)인지 받아들이는 과정은 지난하고, 끝난 후에도 딱히 편안해지지는 않았지만, 불현듯 내가 쉴 그늘이 드리워져서 나쁘지 않다. 말하자면 불편한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안도인 셈이다. 소유와 쇼코에게는 상대방과 그 관계에 누적된 기억이 그런 그늘이나 해변이다.

 

 소유에게, 쇼코에게 깃들었던 가족들의 온기가 얼마나 깊고 귀한지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혹은 고모는 그들을 지켜준 만큼 붙잡았을 테니까. 두 사람은 끝내 가족이 그들을 멀리서 돌보고 축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한낱 관찰자인 나는 과거에 그들이 느꼈던 그 관계의 갑갑함을 지우고 싶지 않다. 실은 혈연의 안온함이란 누군가가 사라져야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자체로는 버겁기 때문이다. 서로가 결국 가족의 품 안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소유와 쇼코가 서로의 비슷함을 받아들였다는 점만큼이나, 정작 그들이 가족 안에서는 상대방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는 점이 내게는 또렷이 다가왔다. 어느 것도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정하거나 망각할 이유도 없다.

 

한국을 생각할 때면 늘 K군의 그 고즈넉한 분위기,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중년 여자들, 기다란 풀들이 우후죽순 솟아난 천변과 하루살이들이 떠올랐었어.” 최은영(쇼코의 미소)-p.296

 

 불화하는 가정, 혹은 불화를 자초한 가정을 버거워하면서도 화목함을 동경하지는 않은 까닭에 소유와 쇼코의 이야기를 더 아름답게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화목함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보려던 시간은, 한없이 뒤틀리고서도 어떻게든 제자리에서 풀려 나갔다.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처럼 꼬였던 시간과 관계 끝에서 소유와 쇼코가 만난 것은 두 사람 모두 억지로 자신에게 없는 화목함을 찾아 헤매지 않아서였다.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할지언정 모른 척하지 않아서, 그들은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있었다. 괴로움의 결을 찬찬히 더듬는 손길이 그저 우악스럽지 않고 아름다워서 기뻤다. 사람을 기다려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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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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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희는 누나들과 닮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들 요모조모 달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사진 안에서는 공통된 윤곽이 보였다. 그건 물리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어쩌면 분위기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제희는 여자에게 친절했다. 친절하게 굴자고 마음먹고 친절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생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여성성을 내면화한 듯했다. 제희와 같이 다니다보면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자매나 친한 남매 같을 때가 많았고 나는 그런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좀 즐거웠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10쪽

제희네 아버지는 감기 치료를 하러 병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았다. 암이 발견된 뒤로는 제희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가망은 별로 없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다. 소식을 들은 밤에 제희네 누나들이 마루에 모였다. 제희네 어머니와 제희까지 여섯 사람이 손을 잡고 둥글게 앉아서 이 고난을 잘 헤쳐나가자고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다짐했다. 그건 분명한 기도였지만 일방적인 위탁은 아니었고 서로간의 다짐이자 격려였다. 제희나 제희네 누나들에게는 신이 없었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10쪽

예컨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그가 웃고 내가 웃지 않을 때, 그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부쩍부쩍 다가오는 도로를 바라볼 때, 어째서 이 사람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황정은(상류엔 맹금류)-32쪽

금방 그칠 눈 같지는 않네. 인터뷰 원고를 저장하며 혼잣말을 하는 내게 권은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엽이 멈추면 멜로디도 끝나고 눈도 그치겠죠. 조해진(빛의 호위)-46쪽

그러니까 작고 추운 방에 혼자 앉아 스노우볼의 태엽을 감고 또 감으며 눈내리는 세계에 빠져 있다가 눈물 한 방울 흘릴 새도 없이 급하게 잠이 들곤 했던 어떤 외로운 소녀의 꿈. 그런데, 이 꿈속은 어째서 이토록 추운 것인가. 조혜진(빛의 호위)-48쪽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조해진(빛의 호위)-62쪽

고생은 하지 마! 고생하는 거랑 크는 거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윤이형(쿤의 여행)-88쪽

여름과 가을이 더디게 지나갔다. 겨울은 더 길었다. 그리고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찾아왔다. 윤이형(쿤의 여행)-97쪽

연극을 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과 상충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 안 해. 어른이라는 말이 책임질 줄 알고,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인간을 뜻한다면. 윤이형(쿤의 여행)-99쪽

그들은 놀 때도 뭔가 쌓아올리는 듯 놀고 쉴 때도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쉬었다. 윤이형(쿤의 여행)-102쪽

난 내가 뭘 놓칠 수나 있는지 잘 모르겠어. 뭔가가 있긴 있을까?
그럼요,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처럼 백사십만원만 내면 한 학기를 다닐 수 있었거나, 배낭여행을 가서 우연히 과 친구들 셋을 만날 만큼 여유 있는 시대를 타고났더라면 그녀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녀로 살아보지 못한 내 인상일 뿐이었다. 마주앉은지 겨우 두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몰랐다. 윤이형(쿤의 여행)-104쪽

나는 그 병원에도 다시 가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36쪽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듯 뽀얀 얼굴로 왔다갔다하다 몇 개월 만에 그만두는 여자 신입들을 나는 증오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카디건을 걸치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길거리를 내다보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만 보면 나는 가서 다 망쳐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땀 흘려 일하는 사회교육단체의 소녀 대원들이 내가 증오하는 부류의 여자로 클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만두고 싶은 고비는 그럴 때 찾아왔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0쪽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른 거 따질 거 없다. 그저 화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여자가 제일이야. 그런 여자가 너도 위해줄 줄 알고 애도 반듯하게 키우는 거다. 그게 어머니가 말하는 배우자의 덕이었다. 양친이 있고, 그 양친의 사이가 좋고, 그런 부모가 저절로 심어준 세상과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에 빛깔 자체가 환한 여자. 그런 여자가 내 주위의 어딘가에 있기는 있었던 것 같지만 그들은 나와는 늘 다른 반, 다른 과, 다른 동네였다. 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도 다른 빌딩으로 출근했다. 나는 해사한 형수를 볼 때마다 내가 그동안 사귀었던 음울한 여자들을 떠올렸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5~146쪽

사람들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보면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을 했다. 작은 아버지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말없이 사방을 주시하는 사내인 데 반해 아버지는 정도 많고 웃음도 많고 술도 좋아해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풍채도 좋아서 여동생과 나를 양팔에 매달고 수건처럼 휘휘돌려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호방한 성격을 내가 아닌 여동생에게 거의 물려주었지만 나는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와 소소한 고민을 나누러 들르거나 먹을 게 생기면 우리집에 보내오는 게 싫지 않았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건 작은아버지뿐이라고, 가까운 사람들은 농담 반으로 말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47쪽

아버지가 마신 건 박카스 뚜껑으로 한 모금이었다. 입술만 축여도 죽는다는 전설의 제초제 그라목손이었다. 실수로 마셨는지 홧김에 마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티 안 나게 깐죽대온 작은아버지 탓을 했고 작은아버지는 티 안 나게 긁어온 어머니탓을 했다. 최은미(창 너머 겨울)-152쪽

그녀의 본명은 말희였다. 어떤 여자들이 옷장 저 깊숙한 데다 한두 벌쯤 처박아둔 유행 지난 주름치마 같은 이름. 물론 정감 어린 데가 없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희’ 대신 ‘마리’라고 흘려 쓰거나 말하곤 했다. 기준영(이상한 정열)-173쪽

그들은 같이 잤다. 별일은 없었다. 뭘 했다고도 안 했다고 안 했다고도 할 수 없이, 그는 서툴렀다. 너무 성급했고, 금세 낙담했다. 기준영(이상한 정열)-189쪽

그녀는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마음은 더욱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경건한마음으로 진실을 털어놓을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손보미(산책)-217쪽

예나 지금이나 그의 고집은 몹시 꺾기 힘들었는데, 그래서 그의 아내는 종종 그를 ˝이 고집불통!˝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딸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 말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 말을 떠올릴 때면, 그들의 딸은 그들 가족이 더없이 행복하고 단란했던 한때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결국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그런 시절이 한순간이나마 있었던 것에 대해 그의 딸은 몹시 감사했다. 손보미(산책)-220쪽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45쪽

눈을 반짝이며 웃는 엄마와 말이 많은 할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이런 사람들을 바깥에서 만났다면 나는 주저 않고 좋은 어른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할아버지는 늘 무기력했고 사람을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나는 엄마와 할아버지가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이라고.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쇼코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많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0~251쪽

나는 쇼코가 준 세계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쇼코가 살고 있는 A시와 우리 군에 빨간색 점을 찍었다. 두 점은 한 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리고 쇼코가 가고 싶다는 세계의 도시들에도 점을 찍었다. 베이징, 하노이, 시애틀, 크라이스트처치, 더블린. 그 작은 점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2쪽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라든가,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자주 보고 정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쇼코의 경우에는 달랐다.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라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54쪽

쇼코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아주 작게 열고 한숨을 쉬듯 말했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1쪽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1쪽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65쪽

물리치료사가 되었겠지. 그리고 돈을 벌기 시작했을 테고. 그 당시의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세 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최은영(쇼코의 미소)-268쪽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0쪽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그저 영화판에서 비중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0쪽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71쪽

˝너도 엄마가 이상해 보이지.˝
나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끄덕였다.
˝응. 엄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쌓인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는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엄마는 조금 웃다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버렸다. 최은영(쇼코의 미소)-286쪽

˝한국을 생각할 때면 늘 K군의 그 고즈넉한 분위기,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중년 여자들, 기다란 풀들이 우후죽순 솟아난 천변과 하루살이들이 떠올랐었어.˝ 최은영(쇼코의 미소)-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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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외 전쟁 - 16~19세기 일본 문헌에 나타난 전쟁 정당화 논리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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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종종 사거나 읽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책에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다. 전반적인 쟁점과 중요한 사실 관계는 이미 알고 있는데다, 저자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변명과 비난의 균형을 잃었거나, 애초에 뭐가 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굳이 그렇지 않은 책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마침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단순히 한국 출신의 학자가 일본의 대외 인식을 논한다는 측면만 봤다면 그 이상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학자가 일본어로 집필한 학술서를 번역했다는 것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어쩌면 문제는 이 주제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편향된 이론을 각 국가의 학자들이 자국민만을 대상으로 반복하며 재생산하는 현상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덕분에 뒤늦게 생각해 본 점이다.

 

특정 개인,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거나, 상대방은 <>이고 자기 집단은 <>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개인의 소멸일 뿐이며, 무력 충돌의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 내부에서 주장되는 전쟁의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를 인류 역사에서 확인되는 전쟁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p.12~13


 그런 까닭에 일본인들이 저술한 임진왜란 문헌군과 그 형성사를 축으로 삼아 이 임진왜란 문헌군이 일본의 주요한 대외 전쟁 관련 문헌들에 미친 영향을 탐구하면서, 더 나아가 전쟁의 무대인 동부 유라시아 대륙의 정세 변화가 이 문헌들과 당대 일본의 전쟁관, 대외관에 반영되는 과정까지 아우른 이 책을 한국인 학자가 일본어로 저술했다는 형식적인 측면이 일단 중요했다. 임진왜란과 그 여파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숙지한 상태에서, 일본의 관점을 담은 전쟁 문헌군들의 입장과 그것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 지난한 일이다. 국가들의 상이한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기는 생각보다도 더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이 쟁점을 다루는 가장 타당하고 효과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이 책이 일본의 문헌을 바탕에 두고서 그들의 임진왜란 인식이 지닌 의미와 한계까지 명료하게 분석한 데는, ·일 양국의 관점을 복안적(複眼的)으로 적용했다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 물론 학자로서 갖춰야 할 당연한 소양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첨예한 논제에서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경계를 아우르는 시선을 택하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문제는 그 학자들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역사 인식에 더없이 만족하는 독자들에게도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말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쟁점을, 일본의 문헌을 핵심에 놓고 분석해서, 일본의 독자(학자)들을 상대로 서술한, 한국 출신 학자의 저작이라는 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탁월한 성과는 일정 부분은 필자와 독자가 쟁점의 양 당사국 출신이라는 점에 의존하는 까닭이다. 경계의 문제를 단일한 영역 내에서만 규명해 내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 왔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이다.

 

근세 일본 문화사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이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이 문헌군이 본질적으로 한중 양국 문헌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에 있다. 외국 문헌, 특히 중국 문헌이 근세 일본 문헌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임진왜란 문헌군의 경우에는 중국 문헌 이외에 징비록을 비롯한 한국 문헌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p.110

 

 저자는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에 중국과 한국 문헌이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서 시작해, 이 문헌군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형성된 일련의 전쟁 문헌군은 근대 동부 유라시아의 정세 변화와 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도 담고 있다는 주장까지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이러한 시야는 그 중심에 일본의 문헌이 놓였다 해도 오히려 일본 내부에서 제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신들의 임진왜란 문헌에서 조선, ·청의 문헌이 흔적을 남겨 온 흐름을 추적할 동기는 그들보다도 외부자에게 더 잘 부여되지 않을까.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 및 그에 관한 일본 학계의 기존 연구 성과와 외부자인 저자의 고유한 시선이 조화를 이룬 결과, 중국의 양조평양록, 무비지부터 조선의 징비록, 은봉야사별록까지 외부 문헌의 일본 전래와 그 번역문의 오류가 일본의 후속 문헌에 전승되는 과정, 이러한 해외 문헌이 전래되면서 기존에 일본의 자료들만으로 편찬됐던 임진왜란 문헌의 오류가 교정되거나 그들은 알지 못했던 전쟁 당시 조선, 명 등의 동향과 같은 세부 정보가 보강되는 과정 등이 명쾌하게 제시됐다. 일본과 조선, 중국의 실제 전쟁 문헌들을 세밀히 대조하면서 삼국의 역사적 시선이 교차하는 과정을 검증하는 부분들은 저자가 책을 뒤져 가며 문헌들 간의 관계를 확인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는 것처럼 현장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에서 저술된 문헌들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 문헌이 유용했지만, 적국이었던 명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에는 일본 측에 유리하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일본의 저자들은 명나라 문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중일 양국 문헌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일본 문헌 쪽을 우선시하였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 가문의 입장도 배려하는 신중한 집필 태도를 관철하였다. -p.109~110

어감이 좋지 않은 <관추(關酋)>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식 관직 명인 <관백(關白)>으로 바뀐 것은, ‘이칭일본전과 일본판 조선 징비록(조선판) 2권본 징비록의 본문을 충실히 옮긴 것이 아니라, 일부 본문을 자의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p.116

 

 또한 저자는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군이 조선 등의 문헌을 단순히 참조, 반영한 것이 아니라, 임의로 개찬(改竄)한 사례도 소개한다. 역사를 편의에 따라 수용하는 경향은 시대나 국가를 불문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명분이 없는 전쟁인 임진왜란을 타당한 정벌(征伐)’로 인식, 서술하는 일본의 문헌군에서 이러한 왜곡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더 나아가 이 문헌군의 영향을 받으며 성립한 유구 전쟁 문헌군과 에조 전쟁 문헌군이 각각 미나모토노 다메토모(源爲朝)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朝)의 전설을 차용해서 이들 지역에 대한 당대의 침략 담론을 광범위하게 형성하고, 이것이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던 정당화 기제로 확장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유구 전쟁, 에조 전쟁을 주제로 한 방대한 양의 군담(軍談), 고단(講談), 조루리(淨琉璃)의 성립 역시 이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대중적 오락물의 성립일 뿐만 아니라, 이 당대의 영토 병합 및 조선 등을 병합하려는 욕구에 대한 문제의식이 근대 일본에서는 희박했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그런데 삼한 전쟁 문헌군이나 유구 전쟁 문헌군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을 인용 내지는 표절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타이틀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저자들의 불성실한 집필 태도라고 하여 비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들에게 임진왜란 문헌군은 자신들이 이국 정벌 전기를 집필하기 위한 전범canon으로서 인식되었기에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의 앞에는 고대 이래의 군담과 함께, 임진왜란 문헌군이라는 근세의 군담이 방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양자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삼한 전쟁 문헌군을 비롯한 근세 이국 정벌 전기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하겠다. -p.386

 

 궁극적으로 실패한 외침이었던 임진왜란과 그로 말미암아 좌절된 일본의 영웅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욕망에 대한 근대 일본의 상실감이 성공한 두 침략 전쟁인 유구와 에조 전쟁 문헌군의 유행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구와 에조 정복의 성공 경험이 다시금 조선에 대한 침략을 꿈꾸는 대중적 정서로 이어지는 것은 일정 부분 필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임진왜란 문헌군과 유구 전쟁·에조 전쟁 문헌군의 연관성은 텍스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대외관에 미친 영향의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대외 전쟁을 다룬 문헌이라는 계통에서 볼 때 유구 전쟁·에조 전쟁 문헌군과 임진왜란 문헌군이 갖는 관계를 이 책에서 정밀하게 확인해 준 덕분에 이 문헌군의 유행 자체가 한일 합방의 중요한 추동력을 제공했으리라는 생각이 좀 더 명료해졌다.

 

 오늘날에는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로 불리는 유구와 에조치는 이 책에서 다루는 문헌군들이 유행했던 에도 막부 시대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일본의 통치 영역이자 역사 공간으로 온전히 편입됐다. 실패한 전쟁인 임진왜란 문헌군에서 이 성공한 침공 문헌군들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은 곧 과거 오키나와와 홋카이도의 일본 역사 속 외부성을 상기시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통찰은 저자 자신이 일본 밖의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결합하면서 좀 더 정치(精緻)해지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문헌·공간적 시선은 다채롭고 세밀해서 읽는 동안 여러모로 즐거웠다. 한국의 임진왜란 문헌에도 일본이나 중국을 비롯한 외부 문헌의 영향이나 그러한 문헌들의 자의적 해석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적용할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 연구를 일본인 학자가 수행한다면 문헌들의 맥락이 더 풍부하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상상까지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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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외 전쟁 - 16~19세기 일본 문헌에 나타난 전쟁 정당화 논리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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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개인, 특정 국가에 일방적으로 전쟁 책임을 묻거나, 상대방은 <악>이고 자기 집단은 <선>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개인의 소멸일 뿐이며, 무력 충돌의 순환은 멈추지 않는다. 필자는 여기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프로파간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한 집단 내부에서 주장되는 전쟁의 정의(正義)와 부정의(不正義)를 인류 역사에서 확인되는 전쟁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12~13쪽

나카무라(나카무라 유키히코)는 ‘일본 고전 문학 대사전’(이와나미 서점, 1983~1985)에 ‘조선 군기물’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임진왜란에 관한 에도 시대의 문헌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관한) 다이코기 문헌군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문헌군으로서 위치 지웠다. -38쪽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개괄하면, 전투 기사의 서술이 상세해질수록 모험담으로서의 허구적 성격도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의 여러 문헌에서 전개되는, 조선이라는 이국과 오랑카이라는 이계(異界)에서 펼쳐진 전투 기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워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에서는 <이국으로의 침략 에피소드>를 <이국에 의한 피침략 에피소드>로 전환시킴으로써, 이국과의 전투에서 일본 측의 피해 의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42쪽

(18세기 중후반의 문헌인) ‘조선 정벌 군기강’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대한 반감이 확인되는데, 이는 이 문헌이 오사카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설된 고단에 바탕한 필사본 형태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막부의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데 기인한다. -43쪽

야나기사와 마사키에 따르면 ‘다이코기’에 수록된 임진왜란 기사의 기본 구도는 <강화 협상에 따른 휴전을 준수하여 재침을 선제적으로 시도하지 않은 일본>이며, <이 구도의 원형은, 히데요시의 부하이자 임진왜란 당시 나고야에 주둔한 바 있는 오타 규이치(太田牛一)의 ‘도요쿠니 다이묘진 임시 어제례 기록’에서 확인된다. (후략)>-65쪽

임진왜란 이후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1614~1615년의 오사카 전투 등을 통해 임진왜란 참전자의 다수가 사망했을 뿐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찬탈하는 형태로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하에서 도요토미 정권 최후의 전쟁인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체계적인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65쪽

‘다이코기’ 속에서 임진왜란이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에서 클라이막스이자 완결에 해당하는 사건으로서 위치 지워져 있다. -74쪽

(시마즈 가문의 사적인 ‘정한록’ 서문에서) 하야시 가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진구코고에 견줄 만한 위업을 달성했으며, 그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지휘한 일본의 장군들 가운데 중국 문헌에 이름이 실린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세 사람이라고 서술한다. 그 가운데 고니시와 가토는 멸망했지만 시마즈 요시히로의 가문은 여전히 번창한다고 하여 시마즈 가문을 칭송한다. -101쪽

(임진왜란에 관해) 일본에서 저술된 문헌들에는 실려 있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 문헌이 유용했지만, 적국이었던 명나라에서 집필된 문헌에는 일본 측에 유리하지 않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일본의 저자들은 명나라 문헌에 실려 있는 내용을 존중하면서도, 중일 양국 문헌의 내용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일본 문헌 쪽을 우선시하였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 가문의 입장도 배려하는 신중한 집필 태도를 관철하였다. -109~110쪽

근세 일본 문화사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이 지니는 가장 큰 의의는, 이 문헌군이 본질적으로 한중 양국 문헌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에 있다. 외국 문헌, 특히 중국 문헌이 근세 일본 문헌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임진왜란 문헌군의 경우에는 중국 문헌 이외에 ‘징비록’을 비롯한 한국 문헌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10쪽

어감이 좋지 않은 <관추(關酋)>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식 관직 명인 <관백(關白)>으로 바뀐 것은, ‘이칭일본전’과 일본판 ‘조선 징비록’이 (조선판) 2권본 ‘징비록’의 본문을 충실히 옮긴 것이 아니라, 일부 본문을 자의적으로 수정하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116쪽

또한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들인) ‘조선 군기 대전’과 ‘조선태평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에혼 다이코기’에 수록된 임진왜란 기사로부터는 ‘징비록’에 의거하여 중국 계통 문헌군의 내용을 수정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이순신의 활약상은 ‘조선 군기 대전’, ‘조선태평기’, ‘에혼 다이코기’ 등에서도 자세히 서술된다. 그런데 중국 계통 문헌군에서 이순신은 단순히 <이통제(李統制)>라고 불리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명나라 장군을 보조하는 존재로서만 그려지고 있다. -142쪽

물론 이순신이라는 이름 자체는 (중국의 임진왜란 문헌인) ‘양조평양록’ 등에 보이지만, 위의 인용문과 같이 명 측 기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그의 전설적인 승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원자였던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이순신을 임진왜란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자 ‘징비록’이 일본에 전래된 뒤에 제작된 임진왜란 문헌군을 통해 그의 이름은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조선 군기 대전’ 권38 ‘이순신 전사(李舜臣戰死事)’등]. -144쪽

근대 이후에도 ‘조선 류씨 징비록 대역 권지1(朝鮮柳氏懲毖錄對譯卷之一)’(長內良太郞, 鈴木實譯, 含英舍, 1876년 2월)이나 ‘조선 징비록’(山口勗譯, 蒼龍屈, 1894년 7월)과 같이 ‘징비록’은 시대 상황에 맞추어 출판되는 모습을 보인다. 1876년 2월은 한일 양국 간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맺어진 같은 해 같은 달이고, 1894년 7월은 갑오 농민 전쟁에 편승하여 일본 군이 조선 왕궁을 점령한 다음 달이다. 이러한 출판 상황은, 조선을 정복하는 데 실패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여 조선을 정복하고자 하는 근대 일본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49쪽

일본어 <오랑카이(オランカイ)>는 한반도 주민이 이 지역(중국의 동북 지방)의 주민을 가리키던 호칭 <오랑캐>에서 나왔으며, 에도 시대 일본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151쪽

임진왜란 문헌군이 성립하고 인기를 끈 배경에는 이국 취향exoticism이 존재한다. -156쪽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은 한반도 주변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북태평양 연안 전체를 지리적 무대로 파악하였으며, 가토 기요마사로 하여금 조선과 명나라라는 이국뿐 아니라, 일본인이 가본 적 없는 북태평양 연안 지역이라는 이계에 거주하는 민족과도 싸우게 한 것이다. -159쪽

그러나 가토 기요마사 문헌군에서는, 애초에 조선 의병 및 오랑카이 군이 일본 군을 공격한 원인이 일본 군의 침략이었다는 사실은 잊혀지고, 가토 군이 공격받았다는 데 대한 피해 의식, 피침략 의식만이 강조된다. 일본 군이 이국을 공격한 사실에 대한 전승이, 외국 군이 일본을 공격한다는 식으로 도치되는 현상은 임진왜란 문헌군 이외에서도 확인된다. -161~162쪽

(임진왜란 기사를 전하는) ‘구로다가보’ 권6~8은 ‘조선 정벌기’를 이용하여 전체 틀을 설정하고, 한중일의 관련 문헌과 구로다 가문에 전해지는 기록을 교합(校合)하였다고 생각된다. 호리 교안 자필본 계통의 ‘조선 정벌기’는 (중국 문헌인) ‘양조평양록’과 ‘무비지’를 이용하여 전체 틀을 설정하고, 아사노 가문에 전해지는 문헌과 교합한 것이다. 임진왜란 7년의 전체 상을 제시한 선행 문헌과 주군 가문에 전해지는 문헌을 교합했다는 점에서, ‘구로다가보’와 ‘조선 정벌기’는 유사한 성립 배경을 지닌다. -182쪽

또한 집필에 이용된 외국의 임진왜란 관련 문헌을 비교하면, ‘조선 정벌기’에는 ‘양조평양록’과 ‘무비지’ 정도만 이용된 데 반해, ‘구로다가보’의 저자는 ‘양조평양록’ 및 ‘무비지’와 함께 ‘황명실기’, ‘징비록’, ‘사명당집’ 등 한중일 삼국의 관련 문헌을 널리 이용하여 임진왜란에 관한 종합적인 서술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정벌기’와 ‘구로다가보’는 주군 가문의 공훈을 현창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더욱 많은 수의 관련 문헌을 이용하여 7년 전쟁의 총체적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는 ‘구로다가보’가 ‘조선 정벌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일본의 임진왜란 문헌에 영량력을 미친 것은 ‘조선 정벌기’였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조선 정벌기’가 출판되어 널리 유통된 데 반하여, ‘구로다가보’는 사본으로만 기록되었으며 유포도 엄중히 제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83쪽

1705년에 간행된 통속 군담 ‘조선 군기 대전’과 ‘조선태평기’는 ‘구로다가보’보다 더욱 철저하게 한중일 3국의 임진왜란 문헌을 교합하여 7년 전쟁의 전체 상을 제시하여, 에도 시대 중기 이후의 임진왜란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 두 문헌은 모두 교토에서 간행되었다. 가이바라 엣켄은 규슈 후쿠오카 번의 가신이었지만 교토를 중심으로 한 전국 규모의 지적 네트워크에 속하여 있었으며, 교토에서 간행된 ‘조선 징비록’의 서문을 썼다. 따라서 이들 3개 문헌은 근세 일본 문화의 중심지인 교토 등지에서 전개되고 있던 임진왜란 담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83~184쪽

에도 시대의 서민들이 즐겼던 구술 예능 장르인 고단(講談)의 대본인 ‘조선 정벌 군기강’은, 통속 군담인 ‘조선태평기’를 많이 참고하면서도 그 이전의 임진왜란 문헌군에는 보이지 않던 독자적인 기사 역시 많이 추가하였다. 또한 ‘조선 정벌 군기강’의 본문에서는 반(反)도쿠가와 이에야스적인 내용이 확인된다. 이는 ‘조선 정벌 군기강’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온정적인 오사카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고단의 대본으로서 유통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193쪽

오사카의 출판인 가치오야 로쿠베(勝尾屋六兵衛)가 1797~1799년 사이에 ‘에혼 다이코기’를 출판하고 인기를 얻는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던 교토의 출판인 이즈모지 분지로(出雲寺文次郞)가, 1800년 이후에 임진왜란을 다루는 ‘에혼 다이코기’ 제6편이 간행될 것을 예상하고, 이보다 앞서 ‘에혼 조선 군기’를 간행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 출판인은 19세기 중기에 역시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는 ‘조선정토시말기’와 ‘정한위략’ 등을 간행한 바 있다. -235~236쪽

‘징비록’은 정치적인 움직임과 여러 전투를 교대로 수록함으로써 복잡한 전황을 요령 있게 전달한다. 이처럼 두개의 축을 왕복하며 전황을 전하는 ‘징비록’의 방법은 이 뒤에도 계속해서 사용되며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등장을 극적인 것으로 만든다. -238쪽

이상과 같이 (가와구치 조주의) ‘정한위략’이 선행 문헌을 집대성하고 문헌 간의 계통을 정립하려 하는 특징은, 임진왜란 문헌군이라고 하는 문헌군이, 그 전개의 종말기를 맞이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전까지의 임진왜란 문헌군에서는 이용되지 않았던 다수의 문헌이 새로이 소개되고, ‘양국임진실기’, ‘조선정토시말기’에도 수록되어 있는 쓰시마발(發) <히고도노 조복>에 대한 소문이 수록되어 있는 등, ‘정한위략’에서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새로운 전개를 예감케 하는 부분이 확인된다. 그러나 그 집대성적, 분석적 성격으로 인하여 ‘정한위략’은 문학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역사서로서 존재 의의를 지닌다. 역사와 문학의 두 영역을 포괄해 온 또는, 그 두 영역 간의 회색 지대에 존재해 온 임진왜란 문헌군은, ‘정한위략’에 이르러 문학으로서의 <군담>적인 특성이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285쪽

임진왜란 문헌군의 저자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칭송하고 임진왜란을 일대 쾌거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히데요시를 진시황제에 비견함으로써 도쿠가와 가문을 배려하였다>. 그러나 막부 말기가 되면 이러한 배려는 필요없어지고, 노골적인 황국사관에 근거한, 역사와 문학의 위험한 경계에 선 엄숙한 비문학적 문헌들이 등장한다. 그러한 문헌들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서구 세력과의 충돌에 따른 유라시아 동부 지역 일대의 급변 사태가 있었다. -286쪽

임진왜란은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명나라에 내조(來朝)하여 <일본 국왕> 봉호를 받은 치욕을 씻은 전쟁임과 동시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대청국을 건국한 만주국 아이신 기오로 누르하치의 후손들로 하여금 일본 침략을 단념케 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정한잡지’와 ‘육웅팔장론’의 저자인) 아오야마 노부미쓰의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명나라에 대한 설욕이라는 적극적인 측면과 함께, 예상되는 청나라의 침략을 예방했다고 하는 피침략 의식에 근거한 수세적인 측면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294쪽

근세 일본에서 이국과의 전투를 주제로 집필된 문헌들 가운데, 임진왜란을 다룬 임진왜란 문헌군과, 1609년(慶長 14)에 시마즈 가문이 유구 왕국을 정복한 사건을 다룬 유구 전쟁 문헌군은 여러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299쪽

로널드 토비는 (마쓰시타 겐린이 편찬한) ‘이칭일본전’의 편찬 태도를 <겐로쿠형 국제사학(元祿型國際史學)이라고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이 문헌은 <일본 사료가 침묵하는 경우에는 외국 사료를 이용하고, 일본 사료와 외국 사료가 모순되는 경우에는 일본 사료를 우선한다. 즉, 내셔널리즘적 태도에서 편집>되었으나, <에도 시대 유학에서 발생한 본문 비평text criticism적 방법을 외국 문헌에 나오는 일본 관계 기사에 적용한 것은 ‘이칭일본전’이 처음>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 문헌이 19세기 초기 한국에서도 읽힌 사례를 거론하며, <대단히 넓은 영향력을 지닌 역사서>였음에도 학계에서 이 문헌에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304쪽

그런데 삼한 전쟁 문헌군이나 유구 전쟁 문헌군에서 임진왜란 문헌군을 인용 내지는 표절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임진왜란 문헌군의 타이틀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저자들의 불성실한 집필 태도라고 하여 비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저자들에게 임진왜란 문헌군은 자신들이 이국 정벌 전기를 집필하기 위한 전범canon으로서 인식되었기에 굳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들의 앞에는 고대 이래의 군담과 함께, 임진왜란 문헌군이라는 근세의 군담이 방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이 양자를 융합하는 것이야말로, 삼한 전쟁 문헌군을 비롯한 근세 이국 정벌 전기의 커다란 특성이라고 하겠다. -386쪽

기쿠치 이사오는 근세 일본에서 (미나모토) 요시쓰네 에조 도해설이 전개된 배경으로 <요시쓰네에 대한 민중의 애모의 정>(긴다이치 교스케)이나 <국민의 동정>(시마즈 히사모토)을 강조하는 기존의 해석을 비판하고, <지식 계급의 힘>에 의한 <재편, 체계화>가 그 배경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위의 논문으로부터 20년 뒤에 다시 한 번, <도호쿠 민중이 요시쓰네에 대해 품은 깊은 애착과 같은 감정이 요시쓰네 불사 전설을 탄생시켰다는 생각은 아마도 틀린 것이다. 그런게 아니라, 요시쓰네 에조 도해 전설은 막번제(幕蕃制) 국가의 화이질서(華夷秩序) 시스템에 아주 적합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확산되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체제 영합적인 이야기였다>라고 더욱 확실히 표명한다. -392~393쪽

요시쓰네 에조 도해설을 다룬 근세 일본 문헌군을 개관하면, 요시쓰네의 <에조 정벌>은 고대 이래 에조와 일본인 간 충돌의 역사에서 기인하는 적개심과 공포를 계승하는 17세기의 문헌에서 시작하여, 몽골 즉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에조인을 보호해 준다는 시혜적 입장을 취하는 18세기의 문헌을 거쳐, 일본의 에조치 정복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섬멸 대상으로 간주하는 19세기의 문헌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일본의 에조치 지배 과정과 일치한다. -408~409쪽

여기까지 적고 나니, 필자의 논리 및 어휘가 근대 이후 서구에서 유래된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전근대 동부 유라시아 고유의 전쟁 정당화 논리를 추구하기에는 부적합하지 않은가하는 어떤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그러나 필자는, 전쟁은 특정한 시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인류의 본능 가운데 하나이며, 자기 집단이 일으키는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욕망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중일 삼국의 고유성을 주장하게 되면 전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이 저해될 것이다. 현대 학문의 어휘로 서술될 때 비로소, 현대까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전근대 한중일 삼국의 다양한 전쟁 정당화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발견되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제시한 <공격의 논리>와 <방어, 반격의 논리>는 근대에 동부 유라시아에서 일어난 한일 강제 병합, 청일 전쟁First Sino-Japanese War, 중일 전쟁Second Sino-Japanese War, 또는 러일 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을 전후하여 일본의 정관계(政官界) 및 언론에서 전개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당화 논리를 분석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적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471~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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