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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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서 팀장대리란,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사람을 일컬었다. -11쪽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24쪽

아무래도 마음을 잃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페이지의 어느 신실한 기록들도 자기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30쪽

간소하지 않다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고 회사에서 하게 될 ‘노동’이라는 데 감이 없다는 것이니까. -31쪽

사랑이 시작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해했는데,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가난과 폭력, 배신과 거짓말, 종교, 정치, 국적의 차이, 집안싸움, 부모 반대, 언니 또는 형의 반대, 동생의 반대, 베프나 은사의 반대 혹은 기르는 고양이나 개의 반대, 윤리적 판단-불륜, 제삼자의 출현-같은 일종의 유형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35쪽

물론 상수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대답이 있긴 했다. 아무리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도 상수가 대답을 거듭하다가 지쳐, 군대 면제였어요,라고 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37쪽

식장에 가서 무슨 오기인지 50만원을 축의금으로 내고 계단식 연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평소에 신지도 않던 펌프스 때문에 발가락의 찌릿찌릿한 통증을 참아가며 식당에 가 잔치국수를 먹는 일. 관계의 변화는 그렇게 등 떠밀리듯 왔다. 우리 헤어져, 하는 선언이나 다 관둬, 하며 뒤도는 동작이 아니라 식권을 받아 식당으로 가 남들이 다 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 절차를 기꺼이 밟으며 그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는 것이었다. -59~60쪽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 옥수수뿐이었다.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 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96~97쪽

경애가 (전 애인인) 산주와 (산주의 새 애인인) 그 여자 선배의 SNS를,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계정에는 선배가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정갈한 쿄오또의 식당들, 고양이, 사회적 공헌을 게을리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들에서 생산하는 목욕용품과 화장품, 외국의 식자재들과 유기농과 요가, 유년 시절을 환기하게 하는 놀이공원이나 비스킷, 인디밴드의 영상, 프랑스 소설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예쁘고 환한 것들 사이에는 산주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100쪽

그녀(경애의 엄마)는 경애가 친구들을 잃고 우울증을 겪었을 때에야 깨달았다. 자기가 믿을 게 자신의 두 손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 아기 역시 믿을 건 엄마의 두 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102쪽

상수도 한때 베트남을 공략해야 한다고 회의시간에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만 자기가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126쪽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다라니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기껏 뭔가를 했는데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면 얼마나 맥이 빠지는가. 상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묵 같은 상태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중량감 있는 색채에, 기포 하나 없이 단단해 보이지만 숟가락질 한번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는 묵 같은 인생. -127쪽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아름다워서 때로는 어떤 풍경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138쪽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139쪽

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기숙학원의 생활조교가) 그렇게 강렬한 강도로 자기를 다그치고 닦달했던 상태가 그냥 기숙학원과의 계약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대체 자기를 그렇게 조련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149~150쪽

상수는 이따금 죽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맥락 없이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하고 물으면 어머니가 설핏 웃으면서 오늘이 어려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167쪽

집이 변해가는 데는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소진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171쪽

어머니가 지냈던 삿뽀로는 눈이 한 해에 6미터나 오는 눈의 나라라고 했지만 상수가 기억하는 삿뽀로는 넓게 펼쳐진 감자와 옥수수와 무와 당근 같은 것들의 도시였다. -178쪽

경애는 베트남의 여자들, 오토바이 위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버스와 택시의 경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묘기를 부리듯 빠져나가는 어리고 젊고 늙은 모든 여자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189쪽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과 깊은 유대를 맺거나 내가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무기력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200쪽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208쪽

(베트남인 직원인) 헬레나가 나름대로 파악한 (베트남에 있는 한국 거래처) 관리자들의 선호 중에는 술, 돈 이외에 가족 안부와 김치,라는 단어도 있었다. 헬레나는 어떤 영업자는 한국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클라이언트의 한국 집에 들러 베트남으로 보낼 물건을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중에는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되는 김치와 깍두기도 있었다고. 그렇게 보니 헬레나의 노트는 그간 호찌민 지사를 거쳐간 영업사원들의 마케팅 비망록이기도 했다. 그건 어떤 친절과 다정, 도전, 혹은 을의 생존법, 아부, 설득, 포부, 패기의 기록이었다. -211쪽

˝경애씨, 내가 영업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야.˝
˝뭔가요?˝
˝여기서는 절대 금방 떠날 사람처럼 굴면 안돼. 떠나는 사람들한테 사이공은 지쳤거든. 일주일 있더라도 이십년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기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버티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데요?˝
˝내가 한 이삼일 내로라도 짐 싸서 한국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218쪽

경애는-나중에 서른 살이 넘어-그날 E의 집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장면이 없었다면 E를 추억할 공간이 오직 영화관과 전철역 플랫폼 그리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뿐이었을 거였다. -240쪽

호찌민 사람들에게 중국동포란 한국인보다는 명백히 중국인에 가까웠고 그래서 경계심이 있었다. 몇해 전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영토분쟁이 있었을 때는 반중 감정이 격해져 중국계 공장들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고 한국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들도 개인적인 린치를 당할까 두려워 외출을 못했을 정도였다. -249쪽

어차피 곧 밤이 되겠지만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고 싶지는 않은 것, 그런 건 욕심이 아니지 않은가 싶어서. -264쪽

경애가 온종일 엎드려만 있는 유령 같은 학생이라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마음이 너무 강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정지해 있었을 뿐이었다. -279쪽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쪽

그들(경애와 상수)이 처음 서로를 식별했던 공장 뒤편의 그늘진 창고와 비교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성과는 별로 없고 자랑스러운 성공들은 자꾸 다음을 기약하며 미뤄질 뿐이지만 적어도 둘의 시간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흐르고 있었다. -292쪽

˝호찌민 사람들 중에 마트에서 닭을 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 공장 닭들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 에일린이 먼저 알려줬어요.˝ -293쪽

그렇게 밀려난 자리에는 왜 하나같이 햇볕이 들지 않는 것인지, 앉아 있으면 정오가 왔는지 저녁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306쪽

생각해보면 경애가 파업 이후 회사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307쪽

지금이라도 가서 잡으면 산주는 경애의 인생에서 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서 나한테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고 있지,라고 한다거나, 나한테 사과할 말들이 있지 않아, 한다거나 아니면 저녁은 먹었어? 혹은 적어도 오늘은 돌아가,라고 한다면. -311~312쪽

경애가 부당전보와 관련한 유인물을 내밀어도 누구는 받지도 않고 지나가고, 암암리에 지각비를 받는 부서들의 직원은 경애를 좀 밀치면서도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 시간보다 이분쯤 빠르게 설정되어 있다는 심증이 공유되어 있는 출퇴근 리더기에 간신히 카드를 긋는 것이었다. -315쪽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경애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은 없었다. -316쪽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318~319쪽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오늘만 견디는 데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고 오늘이 있으면 당연히 내일이 있고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해결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을 쓰다가 하루를 닫는 사람이고 싶었다. -330쪽

시간이 쌓인 것, 굽은 것, 견디는 것, 부러지지 않는 것,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색이 바랜 것, 유연한 것, 아주 슬프지는 않은 것은 오후의 퇴근길에 나선 이들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344쪽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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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대하여 - 다니자키 준이치로 산문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고운기 옮김 / 눌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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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인과 사귀기 전, 80일간 교토에 머물 때에 이 도시는 그늘이 빛나고 빛은 그늘질 때가 많아요.”라고 전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던 까닭에 나름대로 의식하며 건넨 말이었고, 애인은 그 맥락을 잘 알고 있었다. 교토는 그늘이 그저 가라앉게 버려두지 않고, 빛이 아무렇게나 흩어지도록 들이붓지도 않아서 구석구석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꾸며야 사람과 거리가 지루하지 않을지 항상 깊이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오래되었다고 무작정 받들지 않고, 새로 나왔다고 그저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향토요리를 둘러보면, 현대에는 도시인보다 시골 사람의 미각이 훨씬 더 확실하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화려함이 있다. 그래서 노인들 중에는 점차 도시를 단념하고 시골로 은둔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골 거리도 은방울꽃 모양의 장식용 가로등 따위가 설치되어 해마다 교토처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늘에 대하여)-p.65

 

 그러다 보니 때로는 모두가 교토를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늘이니 마냥 어두워야 하고, 빛이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무슨 큰 깨달음인양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의외로 많으니까. 심지어는 이 책의 저자인 저 다니자키 준이치로조차도 좋았던 과거에서 멀어지는 옛 수도를 사뭇 호들갑스레 걱정할 정도다. 물론 그가 그늘에 대하여를 쓴 1933년이라면 거리에 은방울꽃 모양의 가로등만 놓여도 밤의 어둠이 송두리째 사라진 듯 불안했겠지만, 역시 경박한 불평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이미 40대 후반이었던 그는 캄캄한 어둠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허무는 조금의 빛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_1933. 12 (그늘에 대하여)-p.67

 

 그는 이 글의 끝에서 자신은 그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인공적인(그리고 서구적인) 빛이 침입할 수 없는 세계를 다시 이루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범위를 좁히더라도 왜 굳이 문학만이 사회와 동떨어져서 음예(陰翳)가 아닌 암흑(暗黑)을 추구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집집마다 놓인 전등, 골목마다 선 가로등이 밤을 낮으로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데, 세계의 변화를 찬찬히 숙고하기보다 부르르 반발부터 한 탓에 마치 어둠이 아닌 그늘이 없어질 것처럼 역정을 낸 셈이다.


한 가지 일이 만 가지 일이다. (게으름을 말한다)-p.87

 

 게다가 사회의 전등과 격리된 문학이라고 해 보아야, 기껏 한다는 소리는 방종하여 노골적인 것보다도, 내부로 억제된 애정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서, 때로 무의식적으로 말씨나 몸짓 끝에 드러나는 것이 한층 남자의 마음을 이끈다. 색기라는 것은 대개 그런 애정의 뉘앙스이다.”(연애와 색정, p.137)라는 수준의 구차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남성이 이런 색기에 끌릴는지는 몰라도, 어째서 여성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듯 숨기지 못하며 표현해야하는 것일까. 다니자키는 물론 여기에 대해서 어떤 숙고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때 지난 망상을 언제까지고 중얼대기 위해서 어떤 빛도 들지 않는 골방, 혹은 문학이 필요하다고 자인한 셈인데, 이렇게 소수의, 고립된, 신념만 강한 문학이 얼마나 해로운지 충분히 확인한 현재로서는 역시 어둠에 빛을 들이대서 새로운 그늘을 만들어야 한다고 되새길 뿐이다.

 

나는 꽃구경을 좋아해서, 봄에는 뭐니 해도 화려하게 꽃이 한창인 경치를 보지 않으면 봄의 기분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데, 이때도 역시 지금의 요령으로 간다. 빈틈없는 철도성에서는 매년 산들의 눈이 녹아서 스키를 탈 수 없게 된 때부터 서서히 꽃 선전을 시작해, 4월 중은 꽃구경 열차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 다음 일요일에는 어디가 볼 만한 곳인지, 어디가 곧 만개할 정도로 피었는지 일일이 게시를 해 주고 있으므로 조용한 꽃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장소를 피해서 돌아가면 괜찮다. 어쨌든 꽃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명소의 꽃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어서, 보기 좋게 핀 오직 한 그루의 벚꽃이 있으면, 그 나무 그늘에 휘장을 펴고 찬합 도시락을 열면, 마음 어딘가가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p.170

 

 물론 이 책 속의 글에서 그가 무턱대고 암흑과 음예를 혼동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경험했던 그늘의 미묘함에 집착한 나머지, 더 이상의 빛을 완고하게 거부했을 뿐이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늘을 말할 때의 섬세하고 경묘한 표현은 그 그늘 혹은 문화의 미래를 염려할 때의 편협하며 장황한 훈계와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8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다니자키의 역할은 음예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뿐이었음이 꽤나 분명하지만 일본에 오래도록 드리웠던 전통의 그늘이 마치 사라질 듯 끊임없이 급변한 당시의 시점에서는 이 둘이 뗄 수 없는 인과로 오해되었을 법도 하다. 다니자키 같은 사람 덕에 여태껏 교토의 그늘이 옛 모습을 좀 더 지켜 냈다고 역성은 들 수도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굳이 골라서 아쉬워하는 사람에게는 별반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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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대하여 - 다니자키 준이치로 산문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고운기 옮김 / 눌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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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장지 하나만 보더라도, 취향대로라면 유리를 끼우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저히 종이만 쓰자고 한다면 채광이나 문단속 등에 지장을 받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안쪽은 종이를 붙이고 바깥쪽은 유리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과 밖의 문살을 이중으로 할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막상 그렇게 해도 밖에서 보면 단순한 유리문이고, 안에서 보면 종이 뒤애 유리 가 있기 때문에 , 진짜 종이장지와 같은 푹신푹신한 포근함이 없고 실망스런 맛을 내기가 쉽다. 그제야 이 정도라면 단순한 유리문으로 하는 게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는 웃어넘겨도, 나의 경우는 거기까지 해보지 않고는 좀체 단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늘에 대하여)-9~10쪽

가이라쿠엔偕樂園의 주인은 욕조나 때 미는 곳에 타일 붙이는 것을 싫어하여, 손님용 목욕탕은 모두 나무로 만들었는데, 경제적으로나 실용적인 면에서는 타일 쪽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천장, 기둥, 벽에 붙인 널빤지 부분에 훌륭한 일본 목재를 사용할 경우, 어느 한 부분만 저 현란한 타일로 하면 아무래도 전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갓 지은 집은 아직 괜찮지만, 몇 년이 지나 기둥에 나뭇결 본래의 맛이 나올 때쯤, 타일만이 하얗게 반들반들 빛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무에 대나무를 이은 것과 같다. (그늘에 대하여)-11쪽

호텔의 서양식 화장실에서 스팀 같은 온기가 나오는 것은 정말로 싫다. (그늘에 대하여)-13쪽

특히 나무로 만든 남자 변기에 온통 푸른 삼나무 잎을 채워 넣은 것은, 눈이 시원할 뿐만 아니라 조그만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적이다. 나는 그런 사치스러운 흉내는 낼 수 없어도, 모처럼 나의 기호에 맞는 변기를 만들고, 거기에 수세식을 응용해 보고 싶었던 것인데, 그런 것을 특별히 주문하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느낀 것은, 조명이든 난방이든 변기든,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물론 이의는 없지만, 왜 좀더 우리의 습관이나 취미생활을 중시하여, 그것에 순응하도록 개량을 더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점이었다. (그늘에 대하여)-15쪽

중국에 ‘쇼우쩌手澤’라는 말이 있고, 일본에 ‘나레慣’라는 말이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에 사람이 손을 대어서, 한군데를 반들반들하게 만지는 사이에, 자연적으로 기름이 스며들게 되는 광택을 이르는 것으로, 바꿔 말하면 손때임에 틀림없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풍류는 추운 것’인 동시에 ‘ 때 묻은 것’이라는 경구도 성립한다. 어쨌든 우리들이 좋아하는 ‘아치雅致’라는 것 속에는 어느 정도 불결한 동시에 비위생적인 분자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서양인은 때를 송두리째 벗겨내 없애려고 하는 데 반해, 동양인은 그것을 소중히 보존하여 그대로 미화한다고, 억지스러운 말이 되겠지만, 숙명적으로 우리는 인간의 때나 그을음이나 비바람의 더러움이 붙어 있는 것, 내지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색조나 광택을 사랑하고, 그런 건물이나 가구 가운데 살자면 기묘하게 마음이 풀리고 신경이 편안해진다. (그늘에 대하여)-22~23쪽

화려한 마키에(蒔繪, 금은 혹은 자개 등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린 뒤 표면에 옻칠을 입히는 일본 전통 공예기법) 따위를 그려넣고 번쩍번쩍 빛나는 왁스를 바른 작은 상자가 책상이나 선반을 보면, 너무 현란하여 차분하지 않고 속악하게조차 생각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그런 도구들을 둘러싼 공백을 새까만 어둠으로 빈틈없이 칠하고, 태양이나 전등의 광선 대신에 등불 하나나 촛불로 밝게 해 주면, 문득 그 현란하던 것이 바닥 깊숙이 가라앉아, 차분하고 무게 나가는 물건이 될 것이다. 옛날의 공예가가 그릇에 칠을 바르고, 마키에를 그릴 때는, 반드시 그런 어두운 방을 염두에 두고, 빛이 적은 속에서의 효과를 겨냥했음에 틀림없고, 금색을 호화롭게 사용한 것도, 그것이 어둠에 떠오르는 상태나, 등불을 반사하는 정도를 고려한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

(이어서) 결국 금 마키에는 밝은 곳에서 한번에 퍼뜩 보는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여러 부분이 그때그때 조금씩 빛을 드러내는 것을 보도록 만들어진 것이어서, 호화 현란한 모양의 대부분을 어둠에 숨겨 버리는 것이, 말로 할 수 없는 여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늘에 대하여)-26쪽

사실 다다미방의 미는 전적으로 그늘의 농담에 따라 생겨난 것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늘에 대하여)-32쪽

이시야마라면 또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는데, 올가을 달구경을 가려고 어디가 좋을까 머리를 짜낸 결과, 결국 이시야마데라石山寺로 가기로 정했는데, 보름밤 전날 신문에 이시야마데라에서는 내일 밤 달을 구경하는 손님들의 흥을 더하기 위해 숲 속에 확성기를 달고, 월광소나타를 음반으로 들려준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고 급히 이시야마 행을 그만두어 버렸다. 확성기도 곤란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반드시 그 산의 곳곳에 전등이나 장식전구를 꾸미고, 번화하게 기세를 올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늘에 대하여)-58~59쪽

원래 실내의 불빛은 겨울에는 어느 정도 밝게 하고 여름에는 어느 정도 어둡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차갑고 서늘한 기운을 모으고, 무엇보다도 벌레가 날아들지 않게 한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전등을 켜고, 그래서 덥다고 선풍기를 돌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번잡하다. 더욱이 다다미방이라면 열이 옆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참을 수 있지만, 호텔의 양실은 통풍이 나쁜 데다, 마루, 벽, 천장 등이 열을 빨여들여서 사방으로 반사하기 때문에 절대 참지 못한다. 예를 들어 좀 안 됐지만, 여름밤에 교토의 미야코都 호텔의 로비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나의 말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북향의 약간 높지만 평평한 땅에 위치하고 있어, 히에이잔比叡山이나 뇨이가타케如意獄나 구로타니黑谷의 탑이나 숲이나 히가시야마東山 일대의 푸른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보기만 해도 상쾌한 기분이 드는 전망인데, 그런 만큼 아쉽다. (그늘에 대하여)-60쪽

오늘날의 실내조명은 글을 읽는다는지 글씨를 쓴다든지 바느질을 하는 일이 아니라, 오직 네 귀퉁이의 그늘을 없애는 데 쓰게 되어 있는데, 그 생각은 적어도 일본 집이 가지는 미에 대한 관념과는 양립하지 않는다. 개인 주택에서는 경제 면에서 전기를 절약하려고 오히려 교묘히 처리하고 있지만, 손님을 상대로 하는 집은 복도, 계단, 현관, 정원, 대문 등에, 아무래도 등불이 많게 되어, 다다미방이나 정원 연못의 밑바닥을 얕게 해 버리는 것이다. (그늘에 대하여)-62쪽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향토요리를 둘러보면, 현대에는 도시인보다 시골 사람의 미각이 훨씬 더 확실하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화려함이 있다. 그래서 노인들 중에는 점차 도시를 단념하고 시골로 은둔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골 거리도 은방울꽃 모양의 장식용 가로등 따위가 설치되어 해마다 교토처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늘에 대하여)-65쪽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 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전당의 처마를 깊게 하고, 그 벽을 어둡게 하고,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쓸데없는 실내장식을 떼 내고 싶다. 어느 집이나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집 한 채 정도만이라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시험 삼아 전등을 꺼 보는 것이다.
_1933. 12 (그늘에 대하여)-67쪽

‘게으름 피움’이라 함은 결코 칭찬받을 이야기가 아니며, 누구라도 ‘게으름 피우는 이’라 불리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일 년 내낸 아득바득 일하는 이를 냉소하고, 때로는 속물 취급하려는 생각은 오늘이라 하더라도 전연 없지는 않다. (게으름을 말한다)-72쪽

이제 이런 누런 이를 가진 노인은 시골에라도 가지 않는 한 일본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중국이나 조선에 가면 쌔고 쌨다. 노인의 이가 새하얗게 가지런한것은 적어도 동양인의 용모와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 (게으름을 말한다)-83쪽

한 가지 일이 만 가지 일이다. (게으름을 말한다)-87쪽

지금 오사카에서 일류로 꼽히는 늙은 검교(檢校, 승려를 감독하고 사찰의 사무를 관장하는 관직명으로, 맹인 중에서도 가무, 침, 안마에 능하면 시험을 거쳐 검교직을 받았음)의 이야기에, 옛날에는 민요를 부르는 경우에 어지간히 큰 소리를 내서 발음을 명료하게 하면 도리어 하품下品이라 하여 꾸중을 들었다 한다. 과연 그렇다면, 거문고나 사미센(三昧線, 일본 전통 음악이나 극에서 반주 악기로 널리 쓰인 현악기)에 뛰어난 검교로 성량이 크고 아름다운 사람은 간사이(關西) 지방에서는 비교적 적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서 악기 쪽을 중요하게 쳐서 노래를 허술히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게으름을 말한다)-89~90쪽

이어서 생각하자면,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콧소리로 노래해도, 자신으로서는 기교의 묘는 다하는 것이 가능하고,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어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리를 내지 않고 공상으로 불러도 사실은 족한 것이다. (게으름에 대하여)-90쪽

오해를 한다면 여건 곤란하지만, 나는 결코 게으른 자가 되는 것을 그대들에게 부추기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력가라든가 근면가라든가 일컬어지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고, 또는 그것을 자기 쪽에서 억지로 떠벌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므로, 더러는 게으름의 미덕-그윽함을 상기하더라도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렇게 말하는 내 자신이 실은 그렇게 게으른 자는 아니고, 아마 우리 또래들 중에서는 근면한 사람 쪽이라는 사실을 친구 여러 사람이 증명해 주고 있다.
_1930. 4. 10 (게으름을 말하다)-91쪽

일본의 다도에서는, 예로부터 다석茶席에 거는 걸개로 글씨든 그림이든 가리지 않는데, 다만 ‘연애’를 주제로 한 것은 금하고 있다. 그것은 곧 ‘연애는 다도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연애와 색정)-96쪽

그러므로 ˝연애가 없어도 소설 또는 문학이 된다˝라는 라후카디오 헌의 학설은, 서양인으로서는 드문 일인지 모르나, 우리 동양인에 있어서는 별로 이상할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실은 ˝연애도 고급 문학이 된다˝라는 사실을 그들에게서 가르침 받게 된 것 같다. (연애와 색정)-99쪽

이처럼 전통은 연애의 예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심은 크게 감동도 하고, 살짝 그런 작품을 향락한 것도 사실이지만,-겉은 되도록 시치미를 뗐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조심스러움이며, 누구랄 것 없이 사회적 예의가 되었던 것이다. (연애와 색정)-101쪽

<겐지(모노카타리)>에 대해서는 예부터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유학자는 음탕한 책으로 때로 공격하는 일이 있었지만, 국학자는 마치 그것을 바이블처럼 신성시하고, 그 책의 내용을 가지고 가장 도덕적인 교훈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해, 마침내는 작자인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를 ‘정녀貞女의 거울’이라고까지 억지로 갖다 붙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갖다 붙였다 해도, -어쨌든 겉으로는 저 이야기가 ‘음탕한 책’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그래서 무리하게 ‘도덕적’인 ‘교훈적’인 독서물이라고 하지 않으면, -문학으로서의 <겐지>의 입장이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할 터이니, 역시 일종의 ‘예의’가 있고, 동양인에게 특유한 ‘체면을 차리려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연애와 색정)-101~102쪽

추남인 줄 알고 함께 살던 아내가 이제 와서 아무 이유도 없이 남편을 외톨이로 만든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 대해 애증을 다해서 하는 것인지, 여자의 방 밖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서 슬픔을 호소한다. 그것을 곰곰 듣던 아내가 ‘정말로 고운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서양의 러브신이 아니고, 실로 일본 왕조에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다 (남편인) 아츠카네는 ‘피리를 꺼내서’ 노래에 맞추어 불렀다는 것인데, 저 시절의 대신은 그런 악기를 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가. (연애와 색정)-104~105쪽

서양의 남자는 때떄로 자신의 연인에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꿈꾸고, ‘영원의 여성’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유사 이래 동양에는 이런 사상이 없다. ‘여성에게 기댄다’는 것은 ‘남자답다’는 것의 반대로 여겨, 무릇 ‘여자’라는 관념은 숭고한 것, 유유구한 것, 엄숙한 것, 청정한 것과 가장 인연이 먼 완전히 반대편 위치에 놓여 있다. 그것이 헤이안 시대의 귀족생활에서는 ‘여자’가 ‘남자’위에 군림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남자와 비슷하게 자유스럽고 남자의 여자에 대한 태도가 지금처럼 폭군적이지 않고, 다분히 정중하여 무척 부드럽게, 때로는 이 세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귀한 것으로 다루어졌다고 생각된다. (연애와 색정)-107~108쪽

솔직히 도쿠가와 시대의 연애물은 어떤 천재적 작품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조닌(町人, 도시에 사는 상인 계급)의 문학이었고, 그만큼 ‘품격이 낮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스스로 여인을 얕보고, 연애를 얕보면서, 어떻게 기상이 고매한 연애 문학을 짓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연애와 색정)-111쪽

문학은 시대의 반영임과 동시에 시대를 한 발 앞서 나가서, 그 의지의 방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나 <개양귀비>의 여주인공은 부드럽고 우아한 것을 이상으로 하는 옛 일본 여성의 후손이 아니라, 왠지 서양 소설에 나올 법한 인물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 당시에 그런 여자가 흔하게 실제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회는 조만간 이른바 ‘자각하는 여자’의 출현을 바라고 또 꿈꾸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 나와 함께 문학에 뜻을 둔 저 무렵의 청년은 많건 적건 모두 이 꿈을 품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연애와 색정)-113쪽

옛날에 남녀가 노래로 주고받을 때 때떄로 사랑을 달에 갖다 댄다든지 이슬에 갖다 댄다든지 한 것은 결코 우리 생각처럼 가벼운 의미의 비유가 아니었다. 동침하고 난 아침, 이슬에 옷깃을 적셔 가면서 마당의 풀잎을 밟고 돌아가는 남자를 생각하면, 이슬도 달도 벌레 소리도 사랑도 그 관계가 매우 밀접해서, 때로는 하나인 것처럼 느껴지리라. (연애와 색정)-131쪽

창작을 하기 때문에 왜 교제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말하자면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니혼바시의 시다마치에서 투기업자의 아들로 자라난 나는 묘한 눈치를 갖고 있거니와, 당시 문인 예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촌티 나는 공기가 싫었다. (손님을 싫어함)-148쪽

어쩌면 나는 오늘까지 알고 지내는 몇 사람 가인과의 사이에, 이후로도 교제를 이어 간다면 만족하고, 노후의 나의 인생은 거기서 충분히 아름답고, 그 이상의 자극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손님을 싫어함)-153쪽

나는 나이에 비해 대식가여서, 나가면 어느 정도 형편없는 음식이 아닌 한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버리는데, 언제나 배가 가득 차기 때문에 왠지 하찮게 여러 가지 음식을 위에 쑤셔 넣은 듯한 느낌이 들어 한심해진다. (손님을 싫어함)-157쪽

나는 목욕탕에서 나온 후에 잠깐 낮잠을 잤는데, 이불이 깔끔했던 것에 감탄했다. 대개 여관의 이불은 외관만 비단이나 명주를 쓰고, 안에는 오래된 솜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보기에는 깨끗한 대신 덮으면 무거운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 여관의 이불은 반대로 밖이 목면이고 안의 솜은 새것이었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두 장을 덮고 잤는데, 이놈은 필시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덮어 보니 그게 아니어서, 처음으로 솜의 훌륭한 면을 알게 되었다. (여행)-164쪽

어쨌거나 이런 일은 산의 경우에 그치지 않기에, 예를 들면 앞에 말한 반딧불의 명소, 벚꽃이나 매화의 맹소, 온천, 해수욕장 등, 모든 천하에 잘 알려져 있는 일류의 지역은 모두 다소나마 망쳐져 있다 체념하고, 이류 삼류의 장소를 찾아다니는 편이 훨씬 여행이나 유람의 목적에 맞는 것이다. (여행)-168쪽

나는 꽃구경을 좋아해서, 봄에는 뭐니 해도 화려하게 꽃이 한창인 경치를 보지 않으면 봄의 기분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데, 이때도 역시 지금의 요령으로 간다. 빈틈없는 철도성에서는 매년 산들의 눈이 녹아서 스키를 탈 수 없게 된 때부터 서서히 꽃 선전을 시작해, 4월 중은 꽃구경 열차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 다음 일요일에는 어디가 볼 만한 곳인지, 어디가 곧 만개할 정도로 피었는지 일일이 게시를 해 주고 있으므로 조용한 꽃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장소를 피해서 돌아가면 괜찮다. 어쨌든 꽃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명소의 꽃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어서, 보기 좋게 핀 오직 한 그루의 벚꽃이 있으면, 그 나무 그늘에 휘장을 펴고 찬합 도시락을 열면, 마음 어딘가가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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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91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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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롭게도 여름, 그것도 이렇게나 무더운 해에 이 시집을 읽었다. 백수여서 시원한 집에만 거의 내내 머물렀던 작년에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해 할 겨를마저 없을 정도로 이 여름은 어지럽다. 다만 이 시집에는 다른 해가 아닌 이 해여서 더듬게 된 갈피가 적지 않았다. 비록 요행일지라도 마냥 나쁜 계절은 아닌 셈이다.

 

손끝마다 안개를 심어둔 저녁에는 익사한 사람의 발을 만지는 심정으로 창을 열었다 (습기의 나날)-p.76

 

 올해는 34일 동안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지지난해에도 겨우 12일을 빼냈을 뿐이다. 올해는 평창도 퍽 더워서 한낮에는 28도를 오르내렸지만, 4일을 머물다 서울로 돌아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익사한 사람의 양 팔이 어깨에 감긴 양 섬뜩했다. 이렇게나 답답하고 축축할 일인가.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이 시를 먼저 읽은 덕에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도망치고 싶었던 기분을 이해했다. 도무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올 여름의 습기는 물에 빠진 듯하고, 그것이 내 생각보다도 죽음에 가깝다는 사실을 배웠다. 게다가 4일 동안 햇빛이 쨍쨍한 평창에서는 물에서 빠져 나와 숨을 돌린 덕에 즐거웠다는 사실까지 알았다. 몇 해의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며 단지 선선한 곳에서 음악만 듣는다고 이렇게 늘 행복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 모든 풍경에 여름의 생기(生氣)만 가득했음을 실감했다. 죽음에 가까운 습기로 가득 찬 그악스러운 여름을 건조하게 그렸을 뿐인데, 그 사이사이에 스미는 생각들이 이다지도 현격하다.

 

비파가 오면 손깍지를 끼고 걷자. 손가락 사이마다 베어드는 젖은 나무들. 우리가 가진 노랑을 다해 뒤섞인 가지들이 될 때, 맞붙은 손은 세계의 찢어진 안쪽이 된다.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p.11

우리는 방금 돋아난 현악기가 되어 온통 곁을 비워간다. 갈라진 손가락이 비로소 세계를 만지듯이 나무가 가지 사이를 비워내는 결심.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p.11

 

 평창은 애인과 함께 갔다. 공연을 듣거나 마스터클래스를 참관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외딴 곳에서 4일을 어찌 보낼지 걱정했더랬다. 물론 애인은 그곳에서 잘 지냈다. 3번의 저녁 공연과 1번의 아침 마스터 클래스를 함께 본 것 외에는 자신의 시간을 느긋하게 흘려보낸 듯하다. 소리에 다소 민감한 편이라 점심 무렵의 공연 2번까지 들으면 내내 피곤할 듯해서 혼자 다녀왔다. 같이 여행을 와서 일부러 따로 일정을 잡는 것이 어색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각자 맞는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내가 낮부터 서둘러 음악을 듣는 동안, 애인은 낯설고 높은 곳에서 잠시나마 보내는 첫 여름을 더듬었다. 낮에 억지스레 붙지 않았기에 밤마다 함께 본 공연이 더욱 각별했다.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떠오른다. 함께 떠나서도 때로 떨어진 덕에 이 여름의 생기가 온전해졌다. 언제든 맞잡을 손이 있다면 떨어진 만큼 관계는 넓어진다. 깍지 낀 손에 매달려서 풀지 않는 두 손과 주먹을 쥐고서 맞잡지 않는 한 손은 의외로 가깝다. 나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과 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은 이미 하나의 무덤이다.

 

 여름 나기가 쉬운 해는 없었지만, 올해는 유별나다. 몸이 편했던 지난해에는 어느 곳에서 일을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은 불편했다. 일을 하는 지금은 일을 하느라 무덥다. 이런 여름이라도 떠나고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주 조금은 서운할 테지만, 가자마자 돌아올 테니 애틋할 까닭이 전혀 없다. 순환이야말로 열기, 습기보다 지독하다. 시는 다만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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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91
이혜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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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가 오면 손깍지를 끼고 걷자. 손가락 사이마다 베어드는 젖은 나무들. 우리가 가진 노랑을 다해 뒤섞인 가지들이 될 때, 맞붙은 손은 세계의 찢어진 안쪽이 된다.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11쪽

우리는 방금 돋아난 현악기가 되어 온통 곁을 비워간다. 갈라진 손가락이 비로소 세계를 만지듯이 나무가 가지 사이를 비워내는 결심.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11쪽

속눈썹을 타고 길게 날아오르는 빛의 무리들이 정처를 만날 때 풍경이 탄생한다 (도착하는 빛)-12쪽

그늘을 품었던 방을 뒤집어 환한 구(球)를 얻으면 흔적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세계도 있었지 잠든 눈가에 진창이 고이듯, 당겨진 눈시울에 먼 빛이 와서 일렁이듯 (도착하는 빛)-12쪽

잠든 이의 코에 손을 대어본 사람은
영혼을 믿는 자다 (숨의 세계)-14쪽

안겨 잠든 새벽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어
하나의 검불이 흰 들판으로
순하게 내려앉는 소리
젖은 귀를 어루만지는
외바퀴 소리 (숨의 세계)-14~15쪽

금목서 가지를 꺾어 태우고 향불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불에 물든 장작을 헤집었는가, 연기와 향내가 강 건너까지 자욱하다 누구인가 저 닿지 않는 곳에서도 나의 눈썹을 온통 잔설로 물들이는 이는 (극야)-20쪽

저 너머에 모닥불이 있었다 찾으러 떠나기엔 멀고 바라보자니 추운 (극야)-20쪽

나의 귀머거리여, 사라지는 불빛에 눈과 입술을 데일 때, 부서질 종도 종지기도 없이 종소리만 날카롭게 살얼음 하늘을 찢어놓았지 (극야)-21쪽

나에게 여분의 계절이 있다면, 부리가 사라지려는 새처럼 서둘러 속된 말들을 속삭이고 썩기 직전의 가장 달콤한 노래를 언니에게 선물했을 텐데. (딸기잼이 있던 찬장)-22쪽

눈을 깜빡일 때마다 노크 소리가 난다 (노크하는 물방울)-26쪽

네가 후- 바람을 불어넣자
열린 문 틈으로부터 여름이 시작되었다 (노크하는 물방울)-27쪽

몸의 모서리에만 깃드는 악천후다 (엘보)-28쪽

팽팽히 시위를 걸어둔 입술이 찢기는 순간
나무에게서 밀려난 숲이 되어 구석에게 내버려진 중심이 되어

멀어진다
사랑받았던 속도로 그만큼의 힘으로 (엘보)-29쪽

근사하다는 건 가깝다는 것. 나는 하얗고 너는 희다. 나는 혼자이고 너는 하나뿐이다. 비슷하지만 같은 건 아니야. 우리는 서로의 지붕에 지붕을 보태며 지속되는 빗속을 조금쯤 가깝게 걸어간다. (개인적인 비)-31쪽

동시에 포옹하는 두손은 서로의 박자를 의심한다 (간절)-34쪽

좋은 위로에는 없는 관심이 필요한가요 (잠든 물)-36쪽

옅은 바람에도 온몸을 뒤집어엎는
봄이라는 계절의 안감 (노팬티)-42쪽

깃털을 뽑아 쓰고 싶은 것들을 모두 적는다면 곧 날개를 잃고 낙서들 위에 쓰러져 죽겠지 (탑 속에서)-46쪽

만들어낸 그늘 밑 잠기는 볕
말려드는 이마와 말들이 겹치는
잠시의 잎사귀 속 (손차양 아래)-51쪽

꽃은 물이 색을 빌려 꾸는 꿈
옛 꽃들에 둘러싸인 검은 돌벽 위로
생소한 돌기를 내뿜으며
무수히 가지를 뻗는 여름의 넝쿨 (넝쿨 꿈을 꾸던 여름)-62쪽

가장 연한 거죽을 지녀 스치는 포옹에도 짓무르고 쉽게 흘러내릴 때, 발자국을 씻으며 찾아가야 할 곳이 있었네. (불가촉)-72쪽

기다릴 땐 매초가 칼이 되었다 (순간의 손)-75쪽

손끝마다 안개를 심어둔 저녁에는 익사한 사람의 발을 만지는 심정으로 창을 열었다 (습기의 나날)-76쪽

빛나는 곳에서 눈을 돌리면
언제나 수놓이는 얼룩들의 세계 (밤은 판화처럼)-78쪽

얼어붙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눈물이 필요했다. (눈송이의 감각)-83쪽

날짜들이 웅덩이를 향해 쏟아질 때 얼룩진 눈 뭉치 속에 갇혀 중얼거립니다 내쳐진 펫처럼 녹지 않는 눈사람처럼 (당신 아내를 봤어요)-84쪽

병을 본성으로 삼아 분별과 과거를 잊을 때, 어둠은 비로소 자신의 몫을 얻는다오. (불성실성의 별)-88쪽

입술이 매일 새로 짓는 무덤이라면 뼈는 우리들의 마지막 수의가 아니겠소. 그러니 눈 감는 자에게는 밤이 없다오. (불성실성의 별)-88~89쪽

멍든 자리를 들여다보면 몸의 내부로부터 캄캄한 조명이 비치는 것 같다. 달아다는 죄수를 겨두듯 부딪힌 자리마다 뒤늦게 어두워지고

정원이 깊어진다. (스프링클러)-102쪽

각주가 많은 몸은 슬프지.
죽으면 생전의 멍들이 피부 위로 떠오른다는 이야기처럼. (스프링클러)-102쪽

잠 속에 신발을 한 짝 빠뜨리고
울며 도망치는 아이야.
너는 절룩이며 떠올린다.
신발 속에 아직도 들어 있을
따듯한 발목을. (잠의 검은 페이지를 건너는)-109쪽

나무가 색색의 손인사들을 맞추어
낯익은 단어를 완성하는 공원에서

약속을 생각하면 입술이 녹아내린다
평생 모아둔 라일락을 탕진한 늦봄처럼 (근린)-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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