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근거들이라는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핵심 입장 중에서, 법의 내용을 이해할 때 도덕적 고려 사항들이 항상 관련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쪽이 이른바 "실증주의자"다. 이와 반대로 도덕적 고려 사항들이 항상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쪽에는 아직 적절한 명칭이 없는데, 나는 이쪽 사람들을 "비실증주의자"라고 부르겠다. - P14

실증주의자는 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사람들 혹은 어떤 집단의 도덕적 결론을 일반적 혹은 이상적으로 법이 반영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법령이나 헌법 혹은 어떤 판결의 역사는 이를테면 "정의" 같은 도덕적 용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법적 의미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지침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법의 내용이 도덕적 숙고를 거쳐 생겨나거나 이상적으로 생겨났다 해도, 그리고 법이 도덕적 논의에서도 사용되는 말들을 쓴다 해도, 법이 만들어진 뒤에는 법의 내용을 확인하는 데 도덕적 숙고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45.46

실증주의는 또한 법 그 자체에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과 양립할 수 있다. 아마도 법체계가 없는 법은 없을 것이며, 하나의 법체계로 자격을 부여받은 것은 무엇이든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런 법이 반드시 행위의 이유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법이 흔히 행위의 이유가 되어준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7장에서 이러한 입장을 다룬다). 법에 관한 실증주의적 그림은 도덕과 법 사이에 필수적 연결 고리가 없다고 지극히 일반적으로 주장하진 않는다(이 점에 관한 명확한 진술은 Gardner 2001을 보라). 법의 본성에 대해 실증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명확하다. 법의 내용이 언제나 사회적 사실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분명한 의미에서 법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따라서 현행법의 내용에 대한 견해를 논함에 있어 무엇이 더 나을지, 어때야만 하는지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하는 것은 결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 P47

하지만 승인 규칙이라는 이 특수한 규칙은 실제로는 법의 연원들이라는 체계의 한 규칙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체계의 외적 바탕이 되는, 그 체계를 결정하는 규칙이다. "한데 승인 규칙이 효력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위해 (H. L. A.) 하트는, 그것은 효력이 있지도 없지도 않으며, 그것은 다만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그가 의미하는 것은, 효력이 있다는 것이 바로 승인 규칙이라는 것이다. 어떤 특정 지역에서 법을 만드는, 아니 무엇보다 적용하는 실무의 당사자들이 현실적으로 수용한다는 게 승인 규칙인 것이다. 그들은 승인 규칙을 법 실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적절히 지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상황은 체스 규칙이 바로 체스 규칙임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규칙"과 유사하다. 우리는 저것들이 아니라 이것들이 체스 게임의 규칙임을 어떻게 아는가? 체스 게임의 어떤 규칙도 그 문제에 답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이 규칙들이 일반적으로 체스의 규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라고 답할 수 있을 뿐이다. - P50

우리의 관심은 승인 규칙에 있다. 사람들은 물론 자신이 법을 지키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승인 규칙의 내용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승인 규칙에 의해 확인된 것인 법을 지키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하나의 규범을 받아들일 때—그 규범을 하나의 행위의 이유로 간주하며—그것이 "법 효력의 공통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법 효력의 궁극적 기준들을 명시하는 하나의 규칙을 그 자체로 행위의 이유로 간주할 수는 없다. 나는 "영양가 있는 식품으로 아이를 키우라"라는 규범을 하나의 행위의 이유로 간주하지만, 좋은 영양의 원칙들 자체를 행위의 이유로 간주할 수는 없다. - P59

법의 근거들에 대한 정보의 일차적 연원은 법 공무원들의 실무였다는 하트의 견해는 호소력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상의 정치 권력과 시행 중인 법의 내용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법이 매우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사람들이 행하고 말하는 것과 관련된 사실들—에 근거해 있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두 가지 실증주의적 욕망은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
법 효력의 궁극적 기준들에 관한 믿음을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내는 유일한 실무는, 현재의 법 상태에 관한 교과서나 그 외 발표를 준비하는 법 전문가, 특히 법학자들의 실무다. 이는 법학 교수들의 실무로서 존재하는 어떤 규칙에서 법 효력의 궁극적 기준들을 찾을 수 있다는 불행한 견해로 실증주의를 축소하게 될 것이다. - P61

실증주의와 관련해 많은 사람에게 명백히 잘못으로 비치는 것은 법이 본성상 좋은 것이라는, 혹은 좋은 것이 되려고 분투하는 듯 보일 수 있다는—혹은 아무리 못해도 결코 나쁠 수 없는 것이라는—사실을 실증주의가 간과한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보기에, 법은 좋은 것이라는, 혹은 적어도 잠재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명백한 진리는 법이 진짜로 우리에게 구속력 있다거나 혹은 통상적으로 그렇다는, 혹은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생각된다는 더 명백한 진리와 관련이 있다(Greenberg 2011). 그것은 (로널드) 드워킨이 줄곧 주장한 것처럼 실재의 권리와 책무의 영역이다. - P79

내가 모든 비실증주의의 견해 가운데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도덕적 고려가 언제나 법의 근거들 중 하나라고 보는 견해다. 도덕은 법의 내용을 결정하는 데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관여할 수 있다. 첫째, 도덕은 언제나 해석의 지침 역할을 하고 불확정성을 해결한다. 또한 도덕은 법에 담긴 구체적 잘못들을 교정함으로써 법 전체를 도덕적으로 최선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견해는 보통법의 법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드워킨에 의해 법 해석의 포괄적 이론으로 발전했다. "해석주의interpretivism"라는 용어는 때때로 드워킨의 견해를 나타내는 표지로 사용된다(Dworkin 2011, 401; Stavropoulos 2003). 하지만 어떤 법 이론이든 법 자료들은 해석을 요한다는 것을 인정하므로, 나는 드워킨(Dworkin 1996)도 사용한 좀 더 분명한 용어인 "도덕적 읽기moral reading"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러한 접근의 한 가지 공통된 공식이 의미하듯, 법이란 과거의 법 실천을 가장 정당화하는 원칙들을 따르는 것이다. - P81.82

(구스타프 라드브루흐와 같이) 심각하게 부정의한 것은 법이 될 수 없다는 견해는 본질적으로, 도덕의 필터를 맨 위에 놓는, 실증주의(의 한 형태)다. 여기서 드러나는 생각은, 비록 법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법의 타락이라 불릴 만한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대량 학살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화된 규칙·기준 체계는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법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 P83

만일 국가가 극히 부정의한 명령을 집행한다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법이 아니라 폭력"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 P87

자유 시장과 법치주의에 관한 어떤 주장들은 명백히 잘못된 신념에서 나오기 때문에 확실히 무시되어야 한다. - P115

민주주의, 정의, 법치주의, 법의 근거들에 대한 서로 다른 설명 모두가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논쟁 모두가 중요한데, 우리는 이처럼 전혀 다른 정치적 함의를 지닌 서로 다른 설명들이 널리 존재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고,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과장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P130

(조지프) 라즈(Raz 1994, 221)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움으로써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진전을 가져오는 것이 법 이론의 한 가지 주된 과제다"(이와 관련해서는 Bix 2005와 Murphy2007을 보라). - P138.139

예를 들어 민주주의에 관한 드워킨의 논의(Dworkin 1996, 1~38; 2011, 379~399)를 생각해보자. 드워킨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민주주의 개념을 다수결 제도와 연결시키는 잘못을 범한다.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의 핵심이 자치라고 믿어서 그러는 거라면, 한 사회가 분명코 다수결 제도를 통해 자치를 행하고 있다고 이야기되기 위해서는 평등이라는 실질적인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하지만 내가 다수결 제도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이러한 주장에 설득당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민주주의 개념이 핵심적으로 다수결 제도의 존재와 결부되어 있다는 내 생각을 결코 흔들지 못한다. 달리 말해서 이러한 주장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내 생각들을 바꿀지는 몰라도 그것이 하나의 범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이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 P140

사실, 무엇보다 법실증주의를 자극하는 것은 법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의 중요성이다. - P145

행정부 그리고/혹은 입법부가 자신에게 적용되는 법에 대해 갖고 있는 결론들이 특정 사례에 적용되는 것으로서의 법 내용에 관한 권위 있는 선언으로 여겨져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법을 준수하려는 행정부 그리고/혹은 입법부의 선의의 시도로 여겨져야 하는지는 결론 나지 않은 규범의 문제다. - P157

우리는 법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는 만큼 무엇이 법을 만드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무엇이 법을 만드는가에 관해 현격한 의견 불일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법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많은 법 실천자와 학자들이 법의 본성에 관한 논쟁에 무관심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만일 법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이 언제나 현행법의 내용에 관한 상이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 P173

한데, 많은 사람이 법 규범에 따라 행위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연히 그런 의사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법을 받아들여야 하는 세심하고 도덕적인 이유들이 사실상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나는 법의 도덕적 힘—법을 준수할 일응의 책무가 존재하는가 하는 오래된 철학적 쟁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우리의 탐구 전체에 걸쳐 분명 중요하다. 법을 준수해야 하는 어떤 확고한 도덕적 이유가 있다면 법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다. - P178

하지만 하트에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법 규범을 권력자들에 의한 위협과 동일시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 삶에서 법이 실제 담당하는 심의 기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그의 관찰이었다. - P179

게임의 규칙은 바로 규칙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게임을 하고자 한다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옳고 그른 움직임들이 있다. 대부분의 게임 참여자는 옳은 움직임을 취하고 싶어하지 그릇된 움직임을 취하지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 규칙들이 어떤 사람들의 숙고를 초래하는 방식에 대한 이 설명에는, 누군가 이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도덕적이건 아니건—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 P179.180

법의 효력이 도덕적 책무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은 하트에게서는 전체적인 실증주의적 관점을 자극하는 근본적 요소들 중 하나였다. - P181

니컬라 레이시(Lacey 2006, 354)에 따르면, 하트는 생을 마칠 때까지 법적 책무의 존재 조건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법적 책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법의 근거들에 대한 의견 불일치만큼이나 다루기 힘들어 보이지만 법적 책무의 경우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 P182

체제 비판적인 이웃을 비밀경찰에 고발할 법적 책무가 있다고 어떤 사람이 말한다고 가정해보자. 법적 책무의 성격 혹은 개념에 관한 한, 여러 반응이 나올 수 있을 듯싶다. ‘아니다. 그래야 할 책무는 없다. 사실 그것은 비도덕적인 일일 것이다.‘ ‘그렇다, 그 법이 효력 있는 만큼 법적 책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야 할 도덕적 이유는 없다.‘ ‘아니다, 당국 말고는 누구도 그 법 규칙이 준수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므로 법적 책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법적 책무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다양한 설득력 있는 방식일 뿐이며, 나는 이들 중 어느 하나가 최고라고 주장할 의도가 전혀 없다. - P185

설령 모든 법 주체가 체계의 이점들을 필요로 했더라도, 공정함 논변은 법을 준수할 아주 일반적인 의무를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로운 계획을 지속시켜야 하는 부담을 나누어 짊어질 의무를 뒷받침해줄 것이다. 그 둘은 같지 않다. - P194

드워킨의 핵심 사상은 법이 "지리적 우연"에 의해 함께 살고 있는 일군의 사람을 그가 정치 공동체라 부르는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특별한 의미에서의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견지되는 것과 유사한 연합적 책무를 띠고 있다. 법은 정의와 건전한 정책이라는 이상에 관한 의견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공유되는 도덕 원칙들의 형태로 도덕적 유대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정치적 우애를 형성한다. - P194

우리는 민주적 입법을,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하다고 간주되는 어떤 절차를 택하기로 동의하는 경우들과 일치시킬 수 없다. - P197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런 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시행하는 것이 좀더 좋을, 그런 좀더 좋은 법 규범은 존재하지 않는다)은 법을 준수하는 것이 각 개인에게 언제나 의무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법체계의 존속이 바람직한 만큼, 모든 사람이 모든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좋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체계의 붕괴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 법질서의 특정 부분들에 한정되는 한, 그것이 구조 전체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심심풀이로 피우는 마리화나를 금지하는 것이나 밀입국자를 국토안보부에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나쁜 정책이라고 우리가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아울러 상당수 사람이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국가가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국가는 법의 내용 면에서 개선될 것이다. - P206

그런데 매우 특별한 어떤 법 규칙들의 경우에는 개별적인 미준수 행위들이 법에 의한 통치라는 제도적 체제 전체에 직접 해를 끼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뇌물이나 그 밖의 것을 통한 법 공무원들—법관, 경찰, 입법자 등—의 부패를 금지하는 법 규칙들이다. 이 경우, 체계 전체에 대한 해악은 전반적인 수준의 준수에 달려있지 않다. - P208.209

전반적으로 봐서 우리는, 잘 기능하는 국가의 개인들에게서는 단지 법이기 때문에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도구적인 도덕적 논거가 다소 허약한 데다, 어쨌거나 온갖 종류의 우발적 상황에 좌우되는 논거라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개개 주체의 준수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그 주체들이 국가와 법 내용의 개혁을 추구해 국가를 좀더 정당하고 정의로우며 모든 면에서 좀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정도 효율적인 국가에서, 즉 효과적인 강제 조치들이 대체로 그것을 준수하게끔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절한 이기적 이유를 제공해주는 국가에서, 법 준수를 위한 도덕적 논거는 그리 강력해 보이지 않는다. - P209.210

게다가 좀더 중요한 점이 있는데, 국가가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국가들이 그러한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단 준수 여부에 대한 결정이 일을 처리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로 취급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내 법에 구속되지 않는 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연속성, 안정성, 투명성, 침탈 방지 등의 측면에서 입헌 국가의 장점은 국가 자체의 거의 완전한 법 준수에 달려 있다. - P216.217

1999년과 2000년에 국제사법재판소 소장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우려를 표했는데, 그들은 조약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기구 대부분이 분쟁 해결을 위해 자체적으로 재판소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했다(Koskenniemi·Leino 2002). 신설된 중요한 판결 기구로는 국제해양법재판소,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기구, 구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를 위한 국제형사재판소, 국제형사재판소, 그리고 물론 유럽사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다.
파편화에 대한 우려는 자체적 판결 기구를 갖춘 이 새로운 법의 연원들이 국제법 일반으로부터 단절될 수도 있다는 데서 온다. - P238

즉 새로운 법이 출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사람들이 자신의 윤리적 관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상을 뜻한다. - P257.258

법 내용에 대한 견해를 형성하지 않고도 법 자료들(혹은 관련 정치 조직체의 정치사라 해도 좋다)에 비추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 특정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게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우리가 현행법의 관념을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개념 틀에서 빼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인위적이다. 특히 입법자들은 법 자료들을 만들어낼 때 자신들이 엄밀히 말해 법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그 외에 다른 식의 자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P282

정치인들은 법관 후보자의 정치적 견해를 묻는 것을 정당화할 때 흔히,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려는 극단주의자들을 배제하려면 정치적 견해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고양이 쥐 다루듯 하는 것이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것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게 확실하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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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론물리학자다.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들어 논문을 쓰는 게 내 일이다. 논문을 왜 쓰는가? 승진, 인정, 명성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남들이란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연구자들이다. 대상이 좁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다 훑어봐도, 내가 반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완성한 논문을 읽고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겨우 스무 명 남짓하다. - P11

더 이상 대학교에서 승진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나이, 30여 년의 연구 경험, 그리고 지난 수년간의 대중 강연과 글쓰기 경험. 이런저런 요소를 모아봤을 때 내가 책 한 권쯤 써도 좋을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 P12

(엠페도클레스는 불, 흙, 공기, 물의) 네 원소가 서로 결합하거나 분해되면서 물질이 형성되고 붕괴한다고 보았는데, 결합하는 힘은 사랑이요 분해하는 힘은 미움, 혹은 갈등이라고 불렀다. 요즘 말로 하자면 입자와 입자 사이의 끄는 힘이 사랑이고, 서로 미는 힘은 갈등이라고 부른 셈이다. 독특한 이론만큼 독특한 인격의 소유자였던지,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이 신이라 믿었고, 자기 몸이 부활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향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는 속설이 있다. - P19

흔히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부르는 관점을 자연과학자들은 대단히 좋아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적은 수의 변수만을 동원해서 나머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체계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환원주의적 태도이다.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개념은 데모크리토스의 개념보다 분명히 한층 ‘현대적’이다. 무한 개의 원자를 단 4개의 원자로 줄여버렸으니 말이다. 플라톤이 생각했던 것보다 좀 많긴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원자의 종류는 겨우 100개 남짓하다. - P25

모든 원자는 완벽하게 동일하고, 따라서 원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분자도 완벽하게 동일하다. 왜 모든 원자는 완벽하게 동일한가. 일단 그 원자를 구성하는 재료, 즉 전자와 양성자와 중성자가 우주 어디서 구해 왔든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모든 양성자는 서로 동일하고, 모든 전자도 서로 똑같을까? 그건 자연법칙이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에서 발견된 전자의 질량과 안드로메다에서 발견된 전자의 질량이 서로 달랐다면, 은하계와 안드로메다의 물리법칙은 서로 달라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매우 세속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에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게 어디 있어. 아주 조금씩은 차이가 나겠지"라는 쪽에 오백 원을 걸겠지만 어쩌겠는가. 우주에는 정말 단 한 종류의 전자, 단 한 종류의 양성자, 중성자밖에 없다. 우주는 순진하리만치 적은 가짓수의 재료만을 사용해 요리를 만드는 주방이다. - P41.42

복제의 비법은 양자역학이 제공하는 자연의 디지털화에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CD와 LP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CD는 음악의 정보를 0과 1이란 숫자의 조합으로 변환한다. 0과 1 사이에 무수히 많은 다른 숫자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도 정보 저장에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0과 1이란 숫자의 배열로만 정보를 저장한다. 그러다 보니 CD는 0.25, 0.872에 해당하는 정보는 저장하지 못하게 되고, 미묘한 음색의 차이까지는 살려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반대로 LP에는 그런 미묘한 차이가 허용되기 때문에 동일한 앨범 두 장을 사더라도 재생되는 음악이 완전히 같을 수 없다. 한쪽에서 0.872로 저장된 음이 다른 LP판에선 0.873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성 들여 판을 제조한다고 해도 이런 미묘한 차이까지 모조리 제거해서 완벽한 복제판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만약 우리가 저장하고 보존하려는 정보가 완벽히 재생, 재현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면, 아날로그 방식 대신 0과 1 같은 디지털 저장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 P43.44

원자는 호텔과 같다. 호텔의 몇 번 몇 번 방에 손님이 투숙했느냐에 따라 그 호텔의 상태가 완벽하게 결정된다. 궤도라는 개념 대신 방 번호(양자수quantum number)로써 물질의 상태를 규정하는 것이 양자역학의 진수다. - P45

과학자가 가장 슬퍼해야 할 때는 그가 했던 일이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무의미할 때이다. - P45

다시 말하면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합한 양, 총 에너지는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불변량이다. 뉴턴Sir Isaac Newton의 운동방정식을 이용하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계곡물이나 폭포수가 떨어지는 과정은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 불과하며, 어떤 운동이든 총 에너지는 일정한 값을 유지해야만 한다. 불변량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하면 다양한 운동현상이 하나의 일관된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걸 알게 된다. - P57

어떤 물질의 상태를 표현하는 위상수학적인 숫자는 그 대상의 이름을 붙이는 데 사용하기 딱 좋다. - P61

새롭게 발견된 사실 앞에서는 아무리 우아한 이론이라도 무력해진다. 현실과 맞지 않는 이론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톰슨(켈빈 경Lord Kelvin)이 제안한 위상수학적 원자 이론은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P71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는 전자나 쿼크 같은 기본 입자의 안정성을 처음부터 주어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하자면 입자의 안정성 문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봉인된 셈이다. - P75

통상적인 물리학 역사에서 잘 다루지 않는 위상 원자(톰슨), 위상입자(스컴Tony Skyrme) 이론을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버밍엄에서 인생 궤적이 겹쳤던 스컴, 바이넌William Vinen, 사울레스David Thouless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스컴의 핵자 이론은 대표적인 위상수학적 입자 이론이다. 바이넌은 헬름홀츠 시절부터 위상수학적 상태로 잘 알려진 소용돌이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다. 사울레스는 (앞으로 자세히 다루겠지만) 양자 물질에서 발현되는 위상수학적 상태를 이론적으로 연구한 학자였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2016년 위상 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사울레스와 다른 두 명은 모두 영국인이었다. 톰슨으로부터 시작된 위상학적 물리학의 정신이 은연중 그 후배들에게 스며든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이런 게 바로 학문적 전통 아닐까? - P76

잘 생각해보면 어떤 층에 있는 방의 딱 절반만 숙박 손님으로 차 있을 때 손님의 유동성도 가장 좋아질 것이란 짐작이 간다. 절반보다 적으면 이동할 수 있는 손님의 수 자체가 적어 유동성이 줄어든다. 절반보다 많으면 이번엔 이동할 수 있는 빈 공간이 적어져서 유동성이 줄어든다. 딱 절반을 채운 상태가 유동성을 늘리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마침 전기를 가장 잘 통하는 금, 은, 동 같은 물질의 전자 구조가 꼭 이런 상황이다. - P84.85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전 연구자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변수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다. 제이만Pieter Zeeman은 자기장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그의 연구에 도입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고, 당대 물리학자들에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문제 하나를 제공해주었다. 그 덕분에 파울리의 배타원리도 탄생했다. 놀라운 실험은 놀라운 이론을 잉태한다. - P89

뛰어난 이론가의 역할 중 하나는 실험물리학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일이다. - P90

한 덩이의 물질 속에는 아보가드로의 수라고 하는 10의 23승 개, 혹은 그 이상의 전자가 살고 있다. 이 많은 전자들이 낮은 층의 방부터, 남녀 한 쌍씩 자리를 차곡차곡 차지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 자연히 파울리 호텔의 층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부분의 전자들은 상온, 즉 절대온도 300도의 군불을 때줘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빈방은 너무나 높은 층에 있기 때문에 도저히 낮은 층에 있는 전자가 올라갈 도리가 없다. 조상님께 물려받은 금두꺼비를 금고에 보관해두고 10년 만에 다시 꺼내보아도 그 광택이 바래지 않는 것은 배타원리 덕분이기도 하다. 금덩이 안에 있는 대부분의 전자들이 할 일이란, 그저 ‘아무것도 안 하기‘ 밖에 없다. 전자들이 아무것도 안 하니 금두꺼비 상태가 변할 리 없다. - P97

전자의 상태를 표현하는 수학적 함수를 파동함수라고 한다. 이 파동함수를 들여다보면 그 전자 상태의 마디 개수를 셀 수 있다. 어떤 전자는 물질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사이에 주름을 세 번 접는다. 다른 전자는 네 번, 또 다른 전자는 다섯 번, 이렇게 전자마다 주름의 개수가 다르다. 전자의 상태를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이 주름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물질은 보통 3차원적이니까 주름도 X, Y, Z 각각의 방향으로 다 접혀 있다. X방향으로 주름이 A번, Y방향으로 B번, Z방향으로 C번 접혀 있는 꼴이다. 다 모아보면 3개의 정수 A, B, C가 그 전자의 주름진 상태를 표시해준다. 이 숫자의 모임이 바로 파울리 호텔의 방 번호다. 전자는 예외 없이 물질 전체에 편재해 있지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편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전자는 서로 다른 주름 수 (A, B, C)를 갖고 있다. 파울리 호텔은 지구상의 여느 호텔처럼 실제 공간에 토대를 쌓고 지은 건물이 아니라 이런 추상적인 공간, 즉 (A, B, C)란 정수의 집합이 존재하는 수학적인 공간에 세워져 있다. - P100

그 26년 동안 오너스Heike Kamerlingh Onnes가 과학적인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을 딱히 거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가 했던 일이라고는 그저 세계 최고의 저온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장비를 설계하고, 설계를 수정하고, 장비를 만들고 관리할 전문 숙련공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과학자의 인생이나 그의 성취를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영웅시하는 일은 물론 경계해야겠지만 이 대목에서 한 번쯤 가슴 뭉클해지는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6년이란 세월을, 딱히 세상에 자랑할 만한 논문 한 편도 없이, 어떻게 버텼을까! 오너스의 집념,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 그리고 그의 연구실에서 하는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주었던 네덜란드라는 국가나 레이던대학교의 제도 등을 상상해보면 놀라움과 부러움과 존경심이 한꺼번에 교차된다. - P114

온도가 올라갈수록 하나의 물질은 더 작은 구역으로 갈라지고, 더 많은 종류의 파동함수가 각자의 소구역을 관리하는 지역 영주 노릇을 한다. 이런 상태를 양자역학에서는 ‘결이 깨졌다decoherent‘고 표현한다. 결이 많이 깨진 물질일수록 하나의 파동함수로 기술할 수 있는 영역이 작다. 거꾸로 말하면 물질의 온도를 내릴수록 서로 결이 맞는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절대영도에선 그 물질이 통째로 하나의 결, 즉 하나의 거대한 파동함수로 기술된다. 아래 보이는 그림처럼, 온도가 낮아지면서 서로 군웅할거하던 파동함수가 하나의 함수로 천하통일된다. - P119

그(오너스)가 만든 절대 냉장고에 집어넣었을 때 비로소 양자 물질적 본성을 드러내고, 상온에서는 보이지 않던 기묘한 물성을 발현하는, 그래서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까지 누렸던 물질을 하나씩 꼽아보자. 우선 저항이 없는 금속과 액체, 즉 초전도체와 초액체가 있다. 초전도체와 관련된 노벨상 수상은 역대 세 번 있었다. 초액체와 관련된 노벨상 수상은 무려 네 번이나 있었다! 나중에 6장 ‘양자 홀 물질‘에서 다룰 2차원 전자계는 이른바 위상 물질의 첫 사례였다. 그 발견 역시 차디찬 냉장고 속에서 이루어졌다. 양자 홀 물질의 발견 혹은 그 이론에 대한 노벨상 수상은 세 번 있었다. 21세기 물리학의 중요 쟁점이 될 게 분명한 양자 컴퓨터가 작동하는 환경도 절대영도 근방이다. 말 그대로 물질의 양자성이 제대로 발현될 때만 작동하는 게 양자 컴퓨터이니만큼, 극저온 환경이 꼭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 P138

빛에 대한 이해가 정확해지면서, 드디어 "빛도 입자구나!"라는 자각에 도달했고,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입자와 물질에 대한 양자역학 이론이 탄생했다. 거꾸로 말하면,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자역학이란 건물을 지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양자역학의 한가운데에는 플랑크상수라는 수가 하나 있다. 어떤 물리학 공식이나 풀이에 이 상수가 등장한다면, 그 수식은 결코 뉴턴식 역학에서 유도할 수 없는, 온전히 양자역학적인 틀 안에서만 존재하는 결과라는 뜻이다. 양자역학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상수, 따라서 모든 양자 물질 이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상수가 도입된 역사적인 맥락은 흥미롭게도 빛의 기묘한 거동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 P144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버린 컴퓨터를 통해 우린 아날로그적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초당 24개 이상의 화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그걸 연속적인 영상, 즉 영화로 착각하는 게 우리의 시각적 능력인데, 수억분의 1초, 수조분의 1초 사이에 벌어지는 원자의 빛 방출 현상에 대해 우리의 경험이 어찌 단호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우리의 불완전한 인지 능력이 가진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빛도 디지털적 존재라고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우리의 불완전한 경험을 근거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20대 중반의 청년 아인슈타인이 스스로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플랑크Max Planck가 말했던 진동자가 곧 빛이라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내비친다. 이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플랑크가 상정했던 hf라는 에너지 덩어리를 갖는 존재는 바로 빛이었다. - P160.161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논문은 물리학자로서 그의 강점이라고 할 만한 사고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왜 빛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구하지 않았다. 빛을 양자화하기로 선택한 것은 자연이고, 우리는 그저 자연이 택한 방식이 주는 함의를 잘 탐구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빛이 광자라면…‘이라는 취지로 시작되는 그의 논문 8단원(광전효과 논문은 총 9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은 이런 아인슈타인의 사고 흐름을 특히 잘 보여준다. 일단 빛이 광자라는 사실에 우리가 동의한다 치고, 그 가설을 검증할 만한 실험 하나를 제시한다. - P161

뉴턴역학의 체계에선 질량이 없는 입자라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고, 만약 그런 입자를 억지로 가정한다면 그 입자의 운동량은 항상 0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새로운 역학 체계에선 질량이 더 이상 입자의 절대적인 속성이 아니다. 설령 질량이 없는 입자라고 할지라도 운동량과 에너지라는 속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 알갱이는 c라는 빠르기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 덩어리다. - P163

반면, 가장 근본적인 방정식을 찾아내고, 그 방정식의 풀이를 통해서 자연의 작동 방식을 수학적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좀 더 근본주의적 접근법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범주를 대표하는 업적이고, 그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뉴턴과 함께 물리학 최고의 근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사실 아인슈타인은 현상론적 이론을 만드는 데도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었다. 현상론자는 실험 결과가 주는 속삭임에 예민하게 귀기울이는 반면, 근본주의자는 이론 자체의 엄격함, 완전무결성에 흥분한다. 1급 현상론자가 동시에 1급 근본주의자가 되기 힘든 이유는 각기 요구하는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그 이분법적 분류를 초월한 20세기 최고의 현상론자이면서 동시에 근본주의자였다. - P167168

보스Satyendra Bose와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발표된 지 몇 년 뒤에는 온 우주의 입자를 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한 종류는 페르미온fermion으로, 전자는 이 집단에 소속된 대표적인 입자다. 다른 부류의 입자는 보스의 이름을 따서 보손boson이라고 부른다. 광자는 가장 대표적인 보손이다. 두 종류의 입자는 각각 파울리 호텔과 보스 호텔에 거주한다. 파울리 호텔의 거주 규칙은 3장 ‘파울리 호텔‘에서 설명했고, 보스 호텔의 거주 규칙은 조금 전 설명했다. 페르미온 부류에 속하는 입자는 개인주의적이고 독거주의자다. 반면 보손은 보스 호텔 제일 아래층에 모여 있기를 좋아한다. 높은 층으로 올라가는 건 힘(에너지)만 들 뿐이다. 1층에도 얼마든지 들어갈 자리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마천루 같은 보스 호텔을 지어줘도 보손은 그저 1층에만 모여있으려고 한다. - P175

상자 속에 (보손인) 원자를 잔뜩 모아놓으면 이 원자들 역시 보스호텔의 규칙에 따라 각자 들어갈 방을 정한다. 물론 원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방은 1층에 있고, 가능한 많은 원자들이 다 1층에 들어가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원자의 특성과, 잘 알려진 수증기의 응축 현상 사이의 유사성을 깨달았다. 한증막에 가면 수증기의 밀도가 아주 높은 탓에 우리 피부 여기저기에 물방울이 맺힌다. 본래 기체 상태로 있어야 할 수증기는 밀도가 너무 높아지면서 갈 곳이 부족해지고, 그 과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공간을 훨씬 덜 차지하는 상태, 즉 액체 상태로 자발적인 전이를 일으킨다. 아인슈타인은 보스 호텔의 1층에만 모여 있으려는 보손의 친화성이 어느 순간부터는 응축 현상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상자 속에 충분히 많은 보손 원자를 집어넣으면 어느 순간 이 원자의 집단이 기체 상태에서 액체 상태로 자발적인 전이를 일으킬 것이란 예측이었다. 수증기의 액화 현상과 비슷하긴 했지만 보손의 액화 현상은 절대영도 근방에서 일어난다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 P176.177

과학자로서 성공하는 한 가지 요령이 있다면, 선배 학자의 주장을 잘 분석하여 약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 P185

이런 아름다운 수학과 물리학의 만남은 수학자들에게도 관심거리였다. 수학자들이 사울레스의 논문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 그가 유도했던 아름다운 공식은 1946년 위상수학자 천Shiing-Shen Chern(1911~2004)이 이미 발견했던 ‘천 숫자Chern numnber‘로 알려진 표현과 동일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미 위상수학에선 오래전부터 천 숫자로 통용되던 그 정수가, 위상수학이 무엇인지 한 번도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는 이론물리학자의 칠판 위에서 ‘재발견‘된 셈이다. 나는 언젠가 사울레스 교수에게 위상수학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그 유명한 위상수학의 식을 재발견할 수 있었는가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지만, 또한 가슴을 찌르는 진리였다.

나는 양자역학하고 19세기 수학자들이 만들어낸 수학을 꽤 잘 알고 있었지. 그것만 알고 있어도 상당히 많은 걸 해낼 수 있다네. - P205

마침 선배도 학위를 마치고 버클리대학교 연구원으로 온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버클리에서 다시 만났고, 우연히도 라피엣Lafayette이라는 같은 동네에 집을 구했다. 가족을 한국에 두고 단신으로 와 있던 나는 종종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학교로 출근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가 지도교수로부터 받은 임무는 ‘그래핀 만들기‘라고 했다. 나는 ‘고온 초전도체의 소용돌이 구조 이론‘이라는 당시 꽤 인기 있던 주제를 받아 일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내 주제가 더 멋져 보였고, 선배의 임무는 유행과 동떨어져 보였다. 나의 첫 번째 착각이었다. - P210

현실적으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얼마나 얇아야 2차원 물질일까? 얼마나 가늘어야 1차원 물질일까? 아주 가는 물질의 대명사인 머리카락의 두께는 0.1밀리미터 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가늘어 보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원자 수십만 개를 나란히 포개고도 남을 엄청난 두께다. 머리카락은 당당한 3차원 물질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눈에 띄는 물질은 모두 3차원 물질이다. 2차원이나 1차원 물질은 일상생활이 아닌 실험실과 공장에서 주로 합성된다. - P212

물질이 물질다우려면, 외부 도움이 없어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1차원이나 2차원 물질을 접하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다. 낮은 차원의 물질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면 서로 뭉쳐서 3차원 물질로 바뀌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원자를 이용하면 3차원, 2차원, 1차원 구조를 모두 만들어낼 수 있다. - P213

선배가 버클리대학에서 연구원 일을 시작할 무렵인 1999년에는 이미 탄소 나노튜브 연구가 ‘정상적인‘ 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풀어서 말하자면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운new and interesting 결과는 계속 나오지만 깜짝 놀랄 만큼 흥분되는novel and exciting 결과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그런 상황을 가리킨다. 모두 다 좋은 단어로 구성된 문구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날마다 연구실에 출근하는 과학자들에게도 그 구분은 결코 쉽지 않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내심 홈런을 기대하면서 방망이를 휘두르지만 대부분의 공은 파울이나 아웃, 아니면 겨우 일루타에 머문다. 그렇다고 해서 홈런을 때릴 때의 타구 자세가 평범한 안타를 칠 때의 자세와 눈에 띄게 다른 것도 아니다.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가 파란 대양blue ocean으로 나가는 항해 길이 되길 기대하지만 막상 완성된 논문은 빨간 대양red ocean에 합류하는 물 한방울이기 일쑤다. - P215

가만히 생각해보면 흑연(‘검은색 납‘이란 의미)이란 물질은 참 신기하다. 흑연은 탄소로만 만들어진 3차원 물질이다. 흑연으로 만든 연필심은 3차원짜리 고체 덩어리인데 막상 종이 위에 글씨를 쓸 때는 연필심의 껍질이 살살 벗겨져서 글자로 변한다. 3차원 물질이었던 연필심이 2차원적인 글자로, 별다른 연금술적 도움 없이 어린아이 손끝에서 차원 변환을 겪는다. 크레용에도 비슷한 성질이 있다. 크레용은 양초와 동일한 파라핀 성분에 색을 내는 염료를 섞어 만든 물질이다. 크레용의 미끄럽고 잘 벗겨지는 성질은 파라핀 때문이다. 파라핀은 탄소와 수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분자다. 그 분자들이 아주 약한 힘으로 느슨하게 결합해서 겨우겨우 고체 덩어리를 만들어놓은 게 양초다. 그 덕분에 양초나 크레용은 조금만 힘을 줘도 껍질이 슬슬 벗겨진다. - P216

흑연은 층상 구조 물질이다. 어떤 2차원 구조가 층층이 쌓여 있는 구조라는 의미다. 그중에 딱 한 층만 떼어놓고 보면 다음 그림처럼 벌집 격자(육각 격자) 모양으로 탄소 원자들이 배열되어 있다. 육각 격자의 모서리 위치에 탄소 원자가 하나씩 있고, 그들끼리 공유결합이라는 강력한 화학결합으로 결속되어 있는 구조가 바로 그래핀이다. 흑연은 그래핀을 차곡차곡 쌓아올려서 만들어졌다. 그래핀과 그래핀 사이에는 원자 간의 결속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연필심을 종이에 꾹꾹 누르면 위층에 있는 그래핀 층부터 한 꺼풀씩 벗겨져서는 종이 위에 남는다. 흑연 덩이에 남아 있는 나머지 그래핀 친구들은 떠나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 P217.218

2018년 개봉된 영화 <스카이 스크레이퍼skyscraper>에서 주인공 역할을 했던 드웨인 존슨이 남긴 명대사 "덕트 테이프로 고쳐지지 않는 건, 테이프를 충분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지If you can‘t fix it with duct tape, then you ain‘t using enough duct tape"가 떠오른다. 선배가 알려준 연금술적 비법은 이러했다. 연필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뗀다. 테이프에 연필가루가 묻어난다. 그 테이프를 유리판 위에 문지른다. 그럼 테이프에 묻었던 연필 가루가 유리판에 옮겨 붙는다. 현미경으로 유리판을 잘 관찰한다. 한 장짜리 그래핀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 엉뚱하고도 단순한 방법을 제안한 두 물리학자 가임Andre Geim과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의 이름을 접한 것도 그날 선배를 통해서였다. - P219.220

전자처럼 질량이 있는 입자라도 엄청나게 큰 운동량을 갖고 움직이면 마치 질량이 없는 입자처럼 거동하긴 한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에서 운동량 값이 엄청나게 커진다고 가정하면 앞쪽에 등장하는 (mc)라는 숫자는 있으나마나 한 미미한 숫자가 된다. 거대 입자가속기 시설에서는 전자를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입자가속기를 운영하는 데는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간다. 본래 상대론적인 운동을 하지 않던 입자를 강제로 질량이 있으나마나 한 상대론적인 운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 P221.222

물리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안목의 차이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와 미란다의 패션 안목 차이만큼이나 천자만별이다. 그런 안목의 차이가 누구의 업적은 파란 대양을, 또 누군가의 연구는 빨간 대양을 향해 가도록 만든다. - P232

출중한 선배 과학자가 던진 질문을 받아 탐구하는 것은 후배 과학자가 자신의 경력을 쌓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P247

하드디스크라는 평면을 작은 조각으로 나눈 뒤, 각 조각마다 일정한 자화 방향을 준다. 한 방향으로 자화된 공간이 차지하는 면적은 곧 정보의 집적도를 결정한다. 1밀리미터×1밀리미터 단위의 공간마다 자화 방향이 바뀌는 저장 장치에 비해 1미크론×1미크론 면적 단위로 자화 방향이 바뀌는 저장 장치의 집적도는 무려 100만 배나 크다. 작은 공간에 정보를 집어넣을수록 정보 저장 장치의 크기도 줄어든다. 그러나 정보 저장 공간이 작아질수록 그 정보를 읽어내기도 힘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화된 공간이 100만 배 작아지면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자기장도 대략 100만 배 정도 작아진다. 정보를 읽어내려면 이 자기장의 방향을 알아야 하는데 그 작업은 거꾸로 100만 배 어려워진다. 대안은 이전보다 100만 배 섬세한 자기장 측정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거대 자기저항 원리는 이 섬세한 자기장 측정의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그 덕분에 하드디스크의 집적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
2007년 페르Albert Fert와 그륀베르크Peter Grnüberg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이유를 노벨 재단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이런 문장이 보인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하드디스크의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에 대해 수여되었다." 단지 컴퓨터의 정보를 읽는 소자를 개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벨상을 준다고 명시했다. 그만큼 노벨 재단은 물리학이 정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 P249

아무리 단순한 물질이라고 한들 그 물질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하나의 방정식에 다 담아낼 도리는 없다. 설령 그렇게 복잡한 방정식을 만든다고 해도 그런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서 깔끔한 답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다.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에 가장 관련이 깊은 상호작용만을 남겨둔 채 나머지 효과는 모조리 없앤 가장 단순한 수학 모델을 만들어서는, 그 모델의 성질을 분석함으로써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려고 한다. 망간-실리콘은 금속이면서 동시에 나선 자석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물질의 자성, 즉 나선 자석이란 성질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자성 효과만을 담아낸 모델을 만들었다. - P253

이번 장에서는 위상 물질topological material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꼬인 원자, 양자 홀 물질, 그리고 위상 자석처럼 위상수학적 숫자가 지배하는 물질계를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다룬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상‘이란 단어는 여전히 생소한 감이 있다. 일단 작명부터 좀 이상하다. "김연아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BTS 덕분에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게 오히려 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상‘과 위상 물리학의 ‘위상‘은 모두 같은 단어, 한자로 쓰면 ‘位相‘이다. 영어 단어로 바꾸면 한쪽은 ‘status‘, 다른(물리학) 쪽은 "topology‘라는 전혀 다른 두 단어로 번역이 되는데, 어쩌다 보니 한글에서는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 P266

역시 <사이언스>에 출판된, 그래핀 발견을 보고한 논문은 지금까지 4만 번 넘게 인용됐다. 그 논문의 두 저자(안드레 가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는 2010년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았다. 신물질 탐색에 열을 올리는 재료과학자나 실험물리학자들에게 그래핀은 신대륙의 발견이었다. 전 세계 실험실이 그동안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앞다투어 그래핀 연구에 투신했다.
이론물리학자들의 반응은 좀 더 미온적이었다. 7장 ‘그래핀‘에서 그래핀 속 전자의 거동이 꼭 상대론적 입자와 비슷해 흥미롭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이런 예측도 이미 195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지식이었다. 순수 이론가들이 보기에 그래핀은 그다지 흥미로운 물질이 아니었다. 물리 이론가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득보다는 명분을 챙기길 좋아하는 남산골 선비 같은 기질이 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명분이란 건 물론 이론 자체의 새로움, 우아함이다. - P275.276

물론 수학적으로 따졌을 때 얻은 결론이 반드시 자연현상에도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진리는 수학적으로 가능한 진리의 아주 작은 부분집합이라는 게 많은 물리학자들의 믿음이다. - P284

탁월한 양자 물질 이론가 앤더슨Philip Anderson이 어느 학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계산이야 뭐 홍보용으로 하는 거지Calculations are for PR." 일단 아이디어가 맞으면 그걸 뒷받침할 계산은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디어의 세계는 그림과 비유와 직관과 상식으로 움직이다. - P295

탁월한 물리학자는 어떻게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가? 내가 듣고 보고 대화해본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그렇게까지 정보 취득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아마존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존을 창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안목이 있다. 자신의 안목을 믿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힘들게 덤불을 헤치면서 개척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자신이 개척한 숲속의 오솔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기를.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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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잊혀진 전쟁‘에서 미국은 북한 주요 도시들을 철저히 폭격했으며 그 마을 대부분이 대단히 파괴적인 손상을 입었다. 미국 전략 공군 사령부(Strategic Air Command) 지휘관이었던 커티스 리메이(Curtis LeMay)는 나중에 "우리는 북한과 남한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도시를 불태우고 수백만 명을 거주지에서 몰아내 버렸지."라고 자랑했다. Gregory Flich, ‘Targeting North Korea’, Z Magazine (31 December 2002)에서 인용. 해당기사는 〈www.zmag.org/elich korea.htm〉, 30 January 2007에서 볼 수 있다. - P22

(데이비드) 흄 이전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도덕이 자리하는 곳과 특유한 공공선에 대한 정치적 관심사가 자리하는 곳의 거리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매우 유의미한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니체는 가장 극적으로, 전통 도덕을 모조리, 약한 이들이 의지하는 목발(crutch for the weak)로 그래서 온전한 자존의 방해물로 바라보았다. - P26

종교와 현실주의는 많은 특성들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보통 믿음과 막연히 관련된 연합체, 사고와 대응의 공통된 스타일, 자신의 교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교도들에게 때때로 필사적으로 설교하려는 욕구, 그리고 그 종교의 미덕을 체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매우 다기(多岐)한 지성적 삶과 실천적 삶을 살았던 정본에 속하는 모범이나 성인(聖人)으로 구성된 유명인들을 보유한 것 같은 특성들 말이다. 많은 종교처럼 현실주의에는 분파들(‘네오현실주의‘, ‘구조적 현실주의‘ 등등), 현실주의 교설을 다르게 해석하는 학파들이 있다. 그리고 경쟁하는 기독교 신학 학파가 때때로 무신론자들보다 서로 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듯이, 현실주의와 그 신조가 요구하는 바에 대한 경쟁하는 해석자들도 그렇다. 베트남 문제를 두고 벌어진 조지 케넌과 헨리 키신저 사이의 극적인 대립, 핵전쟁을 두고 벌어진 모겐소와 (폴) 니츠의 극적인 대립, 또는 국제 관계에 대한 ‘학문‘의 토대 같은 이론 주제를 두고 벌어진 니부어와 왈츠의 극적인 대립이 그 증거다. - P33

현실주의자들이 섬기는 성인들의 목록은 길고 공경할 만한 것이다. 이 목록에 올라와 있는 인물들은 적어도 투키디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후로 마키아벨리, 홉스, 막스 베버, E. H. 카, 라인홀드 니부어, 한스 모겐소, 조지 케넌, 딘 애치슨, 헨리 키신저를 포함한다. 실제로 몇몇 현실주의자들은, 종교적인 인물들을 열거한 몇몇 목록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인과도 같은 선각자들의 목록을 매우 확장적으로 훌륭한 지식인은 거의 다 포함할 정도로 늘려 잡는다. 하나의 목록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뿐만 아니라 장 칼뱅(Jean Calvin), 에드먼드 버크, 제임스 매디슨, 그리고 그 외의 대부분의 고전적인 서구 사상가들을 포함한다. 우리가 목록을 더 좁혀 그 제한된 목록에 있는 덜 저명한 인물들이 갖는 사상과 태도만 살펴보더라도 너무도 풍부하고 다양하여 그들 사이의 믿음과 입장의 그 어떤 통일성이라도 발견할 전망은 절망적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 다기(多岐)한 집단을 함께 묶어줄 수도 있는 어떤 가닥들을 상세히 밝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 가닥들이 비트겐슈타인이 가족 유사성의 중첩되는 가닥들에 의해 통일된 개념들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방식으로 실제로 엇갈리더라도 말이다. 다음이 그런 다섯 가지 요소다.

1. 대외 문제(foreign affairs)에서 이상주의(idealism)와 도덕에 대한 특정한 반대
2. 도덕적 자아 팽창(moral self-inflation)에 대한 반대
3. 대외 정책에 관한 중심 가치로서 국익(national interest)에 대한 관심
4. 국제 질서에서 안정(stability)에 대한 관심
5. 권력 현실(realities of power)에 대한 세심한 주의 - P34.35

현실주의의 과녁은 도덕이 아니라 도덕의 일정한 왜곡, 도덕주의라고 명명하는 것이 마땅한 왜곡이거나 그런 왜곡이어야 한다. - P38

모겐소(Morgenthau)가 보기에는, 도덕의 왜곡은 부분적으로는 잘못된 자리에 인식적 확실성을 가져다 놓아 생기는 문제다. - P40

(도덕주의(moralism)에 대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지나치게 많은 쟁점들과 결정들을 도덕적 쟁점이 아주 풍부하게 관련된 결정으로 보는사람은 ‘도덕화에 중독되어 있다‘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도덕화하기‘(moralizing)는 경멸하는 뜻은 전혀 담고 있지 않은 예전의 뜻으로 사건, 행위, 예술작품을 도덕의 차원과 관련되도록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진정한 아리스토텔레스적 형태의 악덕으로 중도에서 벗어난 과잉이다. (이와 반대되는 악덕은 그런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경향성이 부족한 것이 될 터이다. 그런 악덕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P44

사실들이 ‘원리들’의 타당성에 관련 있거나 없을 때 그 모든 원리들에 모조리 같은 정도로 관련 있거나 없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P50

예를 들어 인간 본성에 관한 어떤 사실들이 지금 성립하는 바와 상당히 다르다면, 그러한 점은 당연히 도덕 원리의 타당성에 영향을 줄 것이다. 만일 인간이 고통을 지금보다 훨씬 덜 싫어한다면, 고문에 대한 도덕적 반대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 P50

현실주의자들은 국익에 대한 근시안적이며 협소한 이해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 P54

그러나 아마도 상당한 정치적 함축(significant political overtones)을 가지는 도덕적 쟁점에 관해 논의할 때 도덕주의가 지성의 가치를 파괴하는 일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에이즈(AIDS) 정책에 관한 논쟁과 같은 사안에서 도덕적 근거에서 콘돔 사용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들의 도덕적 확신 때문에 때때로 콘돔이 질병의 감염을 막는 수단으로 효과가 별로라는 터무니없는 경험적 주장을 믿게 된다. 콘돔이 감염 예방에 효과적인가라는 쟁점은 본래, 콘돔 사용에 대한 도덕적인 반론(즉 자연법이나 기타 무엇에 반한다고 하는)이 판정할 수 있는 쟁점이 아니다. 그러나 콘돔 사용에 대한 정치적 지지나 사회적 지지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는 열정 때문에 도덕주의자들은 경험적 사실들을 함부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 P60

물론 도덕관이 아닌 세계관도 군사적 전문지식이나 의학적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서 도덕이 찾는 특별한 역할 때문에 사실 파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도덕을 주장하게 하는 유혹은 특히 강하다. - P61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려는 자체가 도덕적 요구이며,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이상주의적 희망은 비록 중요할지라도 온건화할 필요가 있다. - P70

나의 논변은 모든 인도주의적 군사 개입이 하나같이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 남용에 대한 이런 종류의 해결책에 대한 열광은 자주 균형을 잃은 초점의 도덕주의를 내보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동기에서 개시하는 전쟁조차도 통상 포함하는 참상을 무시하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 P71

무솔리니의 정확한 말을 온전히 인용할 가치가 있다. ‘최근 몇 년 간 내가 말하고 행했던 모든 것은 직관에 의한 상대주의다. 모든 이데올로기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모든 이데올로기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로부터, 상대주의자는 누구나 스스로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데올로기를 그가 갖춘 모든 정력을 써서 실행할 권리가 있다는 결론을 추론한다. 만일 상대주의가 고정된 범주에 대한 경멸 그리고 객관적이고 불멸의 진리의 담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경멸을 징표한다면, 파시즘보다 더 상대주의적인 것은 없다.‘ Henry Veatch, ‘A Critique of Benedict‘, in Julius R. Weinberg and Keith Yandell (eds.), Problems in Philosophical Inquiry (New York: Holt, Rinehard and Winston Inc, 1971), 27에서 인용. - P76

우월한 지성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는 자신들의 지성적 힘을, 추론이라는 기예의 기량을 덜 갖춘 다른 이의 통찰, 경험, 그리고 근거에 기초한 이해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다. 지식인들이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 P79

군주가 선하다면 파멸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선하게 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일정한 맥락에서는) 여러 미덕을 피하라는 마키아벨리의 군주에 대한 조언은,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도덕관의 본질적인 저변에 깔린 일정한 가정들에 대한 심대한 도전에 기초하고 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여기서 살펴보고 있는 종류의 도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도덕주의적 왜곡을 도덕과 혼동하고 있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후자는 군주가 관대함과 같은 미덕을 보이는 일이 부적합하다는 마키아벨리의 불평 중 일부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는 관대한 군주는 선물과 하사금을 마구 내려줘서 그의 금고를 비우며 그래서 내란을 북돋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끌어내야 할 교훈은 미덕이 군주에게 부적합하다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이 미덕이 군주에게는 들어설 자리가 아무 데도 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미덕의 적절한 행사는 여건에 고도로 민감하다는 것이다. 관대함은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시사하듯이 인색함을 요구하는 대신, 군주에게 적합한 것은 적절한 검소함이다. (검소함 없는 관대함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 P80.81

애치슨은 역할에 따른 차별화를 지적한 점에서는 옳았으며 또한 종교적인 설교와 훈계가 공직자의 소관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점에서도 옳았다. 정말로 이것은 미국 정치 지도층이 다시 배워야 할 교훈이다. 그러나 그는 역할들, 특히 정치적 역할들의 작동에 대해 일반적 도덕이 비판을 가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함의한(함의하는 것으로 보였던) 점에서 틀렸다. 일부 고결한 도덕적 비판은 (그리고 일부 추상적인 도덕적 이론화는) 역할에 따른 차별화와 그 차별화의 의의를 온전히 제대로 고려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외교관이나 외무장관의 역할을 포함한) 역할 안에서 작동하는 규범이 비판에 면제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할 수는 없다. - P85

부당한 엄숙주의가 나타나는 또 다른 형태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경우 도덕 규칙과 타협하는 일의 필수성, 자기 자신이 만든 (또는 자신이 물려받은) 도덕적 난장판(moral mess)에서 빠져나오는 일의 어려움, 그리고 도덕적 고립(moral isolation)의 위험에 대면하길 꺼려한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내가 다른 곳에서 탐구한 세 범주의 상황이지만 정치적 맥락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들이기도 하다. - P89

행위자의 통합성이 파괴될 정도로 핵심 가치에 대한 헌신을 압도하는 협상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진정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 경우 우리는 그 개인이 타협으로 훼손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록 타협이 그것에 고유한 도덕적 위험의 전조(a hint of moral danger to it)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정책, 기획을 그들이 함께 일해야만 하는 이들의 욕구, 이해관심 그리고 상치되는 계획에 맞춰 거의 또는 아예 조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함 있는 성품을 가진 것이다. 당신이 가치 하나하나를 모조리 기본적 원칙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도덕적 강건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경직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도덕적 헌신을 지니고 있는 행위자조차 어떤 맥락에서는 그러한 헌신을 실행하는 법적 조치를 연기하는 것이, 성공의 아무런 현실적 전망이 없는 조치를 고집스럽게 옹호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조를 훼손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도덕적 지혜를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 P89.90

타협이 언제 실천적 지혜의 발휘가 되는지 또 언제 심층적 원리의 배신이 되는지를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마법의 지시문 같은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세부적인 여건과 원리의 성격은 제자리에서 사려 깊게 음미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타협이 정치에서 자주 실천적으로 꼭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당신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이들이 양심적으로 견지하는 가치와 그들의 존엄을 존중하려면 의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안이 도덕적으로 복잡하고 진정한 다툼이 있을 때 특히 그렇다. - P90

때때로 목표는 행위자가 적극적으로 나쁜 것으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의지박약한 행위자가 비록 흡연이 자신에게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집 안에 얼마간의 담배를 꼭 두겠다는 목표처럼 말이다. - P102

우리의 도덕적 지평을 넘어설 필요나 강한 욕구가 있을 때 우리는 이상의 차원(dimension of ideals)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이상을 거론하는 일에는 역동성이 있다. 그래서 또한 (윌리엄) 제임스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평에 대한 상대성이 있게 된다. 이상 없이도 어떤 형태의 도덕적 삶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도덕적 삶은 정적인 사태일 것이다. 즉, 가치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활력과 방향성을 잃어버린 사태 말이다. - P104

자신이 어떤 종류의 유혹에 잘 빠진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은 특정 기회들을 거부함으로써 그런 유혹에 대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를 겪고 있는 도박꾼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다른 마을로 이사하는 일을 감행하는 전략까지 쓰면서 카지노에 방문할 자유를 스스로 부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이 결정이 부자유의 언어로 표현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예속의 한 형태라고 보기는 매우 어려우며, 오히려 적절히 운용된 자유로부터 나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 P113

의도하기는 시도하기를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기를 의도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시도할 수는 있으며 이 어떤 것들 중에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그럴법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행위의 결과가 문자 그대로 불가능한 사태는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 힘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상황과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골퍼가 홀에 한 번에 공을 넣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홀인원은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퍼 자신이 홀인원이라는 결과에 기여하는 바는 (비록 충분히 실재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작아서, 그 어떤 골퍼라도 흘에 한 번에 공을 넣기를 의도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우리는, 주저할 것이며 이런 주저는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 P116.117

그 비교는 또한 이상에 의한 방향 제시의 또 하나의 측면을 드러낸다. 또 다른 측면이란 이상의 상대적 모호성(vagueness) 또는 비완결성(incompleteness)이 그 이상을 실현하면서 실천적 지성과 상상력을 발휘할 상당한 여지를 준다는 점이다. 이는 복잡하고 변화하는 환경에서 이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쉽게 실현 가능한 청사진이라면 제공하지 못할 유연성과 적응력을 제공함을 의미한다. 평화와 정의라는 이상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고 난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이해하기가 괴로울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South Africa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노력에 그토록 고뇌에 찬 의의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 P119.120

헌신적인 이상주의자(dedicated idealists)는 세상 경험이 많아 지혜롭고 경계심이 많은 이가 알아채지 못하는 가능성을 발굴하고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다. 노예 무역 폐지를 가져왔던 영국의 이상주의적 선지자들은, 노예제가 자연 질서의 단단히 고정된 일부라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보다 권력과 정치의 현실에 대해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 P120.121

이상을 고수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상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행동을 규제하도록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비합당할 것이다. - P127

그런 상황에서 볼테르는 한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선은 선의 적이다.‘(the best is the enemy of the good) - P139

과거의 현실주의자들은 모든 종류의 것들, 당시의 이상주의자들이 발생시키는 데 기여했던 이를테면 노예제 폐지나 여성 해방 그리고 공산주의 독재의 내부로부터의 평화로운 전복이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었다. - P141

마키아벨리적 사고는 정치적 삶의 배경 그 자체가 도덕적 검토의 적합한 대상이자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흐릿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특히 더러운 손의 추정상의 필요에 배경 그 자체가 기여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손을 더럽히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현실에 안주하는 심지어 음해하는 어조를 띠며 도덕적 상상력을 질식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국지적 필수성을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필수성으로 보이게 만든다. - P165

마키아벨리적인 세계관은 또한 도덕을 지나치게 방어적인 입지로 몰아넣는다. 마치 도덕이 금지나 문젯거리로서만 정치와 대면하는 양 말이다. 그러나 비록 정치에 대한 한낱 도덕주의적인 접근에 많은 난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변화의 동력(dynamic)으로서 도덕의 힘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동구 유럽에서 대부분의 경우 평화롭게 이루어진 견고한 공산주의 독재의 전복은, 그 모든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적실하게 상기시켜주는 사례이다. - P166.167

살해나 고문 같은 섬뜩한 행위를 이따금씩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으로 입증되고 행위자의 선한 성품이 보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러운 손이 그렇게 쉽게 통제될(contained)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 일단 선한 대의로 고문의 길을 한번 감행해본 정치 지도자는 이 수단에 더 자주 의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최초의 행위에 의해 그런 상황을 더 많이 창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훈련된 고문 기술자, 고문의 지침, 그리고 고문의 희생자가 정보를 주게끔 고통을 엄청나게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할 의료진, 고문 실행의 사실을 공중에게 비밀로 하기 위한 연막 장치 등등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꼭 필요했던 더러운 손에서 파생된 도덕의 위반은, 베버가 믿은 것으로 보이는 바대로, 정치 지도자의 소명의 정규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 P167

성품에 대한 관심은, 도덕적으로 건강하거나 불건강한 행위 성향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 제도, 사회의 부패한 성품에 관하여 우려할 때 우리는 단지 개인의 내면하고만 관련되고 공공선과는 무관한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 P177

정치적인 거짓말에 대한 태도의 복잡성은 우리의 지적 전통 태초부터 발견된다. 플라톤은 자신의 천재성을 정치적으로 편의적인 거짓말을 옹호하는 데 썼다. 서구 최초의 정치 이론서인 『국가·정체』(The Republic)에서 플라톤은 통치자가 자신이 통치하는 시민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이득이 될 경우에는 거짓말해야 한다는 이념을 옹호했다. 그리고 이 결론은 통치자들이 만일 가능하다면, 구성원의 기원에 관하여 ‘고귀한 거짓말‘로 기만당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사회의 상이한 계급들이 각각 신에 의해 다르게 만들어졌다고 (통치자들은 금으로 만들어진 반면에 농민과 기술자는 철과 동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도록 해서 자신들의 역할을 더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 P190.191

더군다나, 청자를 조작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성향 중 어느 쪽이건 적어도 그것을 정당화할 아주 좋은 이유를 필요로 한다. - P206

그러나 오도하는 진술, 회피, 중요한 정보의 누락, 거짓 인상을 교정하지 않는 것, 또는 선별적인 진실 말하기는 완전한 거짓말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하더라도 일부 맥락에서는 그만큼 나쁠 수 있다. 이는 특히 정치에서 (충분히 흔하게) 발생하는 경우인, 공중이 완전한 정보 공개, 솔직한 정보,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경우에 그렇다. ‘투명한‘ 정부가 구호로서 유행하게 된 것은, 너무나 많은 정치적 의사소통이 직접적인 거짓말은 포함하지 않는 경우에도 오도하고 진실을 잘 알려주지 않고 중심 쟁점과 별로 관계 없는 것을 말한다는 실태에 시민들이 반응한 결과이다. 확실히 재량, 기밀 보안, 그리고 이따금씩의 비밀 유지에 대한 다른 정당성 있는 근거들은 확실히 총체적 투명성을 실현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만든다는 점은 분명하다. - P206.207

진실됨이라는 이상은 적어도 현실 세계에서 거짓말의 일체 금지를 요하지 않으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적/칸트적 거부의 엄격함의 취지 중 일부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거짓말하기에 대한 금지에 예외를 허용한다면, 우리는 그 예외가 넓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하며, 우리가 진실됨이라는 이상에 손상을 입히고 진실의 습관을 침식하지 않으려면 기만을 이따금씩 하는 관행을 확립하고 거짓말하기가 가치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 P209.210

타협하고 협상하는 능력은 정치적 삶에 필수불가결하지만, 성품을 포함해 모든 것이 협상 대상이 될 때 정치의 기예는 한낱 술책에 지나지 않게 되며, 정치에 대해 경멸을 보이는 것이 적절한 반응이 된다. - P214

현실주의의 비판은 도덕주의에 의한 도덕의 왜곡이 더 많은 고통과 참상, 어리석은 결과와 더 중대한 도덕의 위반을 초래한다는 점을 경고해 준다는 점에서는 적실하다. 그러나 현실주의가 도덕과 타산을 대립시키는 것은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이익에 대한 적합한 관심은 합당한 도덕의 정당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민열)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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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사진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을 글로 적어보시라. 그리고 그 방법대로 판단하는 과정을 밟아보시라. 틀린 답을 내기 일쑤다. 논리와 언어로는 그 방법을 잡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니 분명히 가능한 일인데, 그 방법을 일일이 표현하려 들면 난감해진다. 아직 우리가 이해하는 언어로는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가 우리 몸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광근) - P9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서당개에게 5만 년어치의 글을 들려준다면? 기계 학습을 돌리는 컴퓨터에게 5만 년어치 책을 주입해주면 학습 결과로 얼추 글을 쓰는 서당개를 만들어 준다. 종종 엉터리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해낸다. (이광근) - P10

컴퓨터의 원천 설계도를 선보인 튜링(Alan Turing)의 업적이 사실 그런 것이었다. 튜링은 1930년대에 기계적인 계산이 뭔지를 명확히 정의한다. 그 정의 덕분에 컴퓨터로 하는 온갖 문제 풀이 능력과 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유지된 덕분에, 파악했던 것들이 지금까지 사실로 유지될 수 있었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가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전속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광근) - P11

이 책에서 내가 논의할 알고리즘은 조금 특별한 것들이다. 대부분의 알고리즘과는 달리, 디자인한 사람이 모르는 환경에서 그 알고리즘들이 실행될 수 있다. 그 알고리즘들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그 환경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상호작용을 충분히 하고 나면 그 알고리즘들은 더 똑똑해진다. 어떤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 알고리즘에 미리 심어 넣은 전문성이 아니라 실행하며 외부 환경에서 배워 익힌 전문성이다.
이런 알고리즘을 에코리즘ecorithm이라고 부르겠다. 에코리즘이 따르는 학습을 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ect, PAC학습이라고 한다. 이 학습 모델은 성공적으로 학습했다는 게 뭐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를 판단하는 틀을 제공한다. 그 안에서 디자이너들은 알고리즘이 배운 전문성이나 그것을 배우는 비용을 재 볼 수 있다. (이광근) - P18

따라서 인덕(학습)의 정의는 수학적인, 명확한 것이어야 한다. 튜링 테스트같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튜링의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 같아야 한다. 튜링이 계산을 애매하게 정의했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튜링 시절 그럴듯하게 들렸을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는 어떤 게 있을까? 이런 건 어떤가. "어떤 일이 기계적으로 계산 가능하다는 것은 다음의 경우만이다. 그 일을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예를 들어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계산할 수 있는 경우." 이런 정의가 그럴듯하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테지만, (튜링이 계산에 관한 지금의 개념을 담은 논문을 발표한) 1936년에 이런 애매한 정의로 시작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21세기의 정보 혁명은 싹트지 못했을 것이다. - P11

이 책의 핵심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학습 현상을 수학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것이다. PAC 또는 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모델이라고 한다. 이 모델은 학습 과정을 계산 과정으로 보는데, 특히 그 연산 횟수가 제한된 것으로 한다. 생명체는 너무 긴 시간을 학습에 쓸 수가 없다. 다른 일도 해야 하거니와 수명 때문에도 학습 시간이 마냥 길 수는 없다. 또, 이 모델은 학습 중에 외부 세계와 주고받는 횟수도 비슷하게 제한된 것으로 한다. 그리고 학습으로 유기체가 새로운 정보를 분류하는 데 틀리는 경우가 적어야 하지만 항상 맞을 수는 없다는 점을 담고 있다. 인덕induction, 歸納은 ’아마도’가 낀다. 그래서 늘 백 퍼센트 정답만 인덕할 수는 없다. 정답과 조금 어긋난 것을 만들 여지가 늘 있다. 또 세상이 갑자기 변하면 학습한 것은 언제라도 쓸모 없어질 수도 있다. - P11.12

이 책에서는 이런 에코리즘의 언어를 써서 진화, 학습, 지능을 설명하려고 한다. 에코리즘이라는 알고리즘으로 생명의 진화 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만족해야 할 것이 많다. 특히 제한적인 횟수만 환경과 상호작용해서, 그리고 제한적인 자원만 사용해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에코리즘도 그렇고 그걸 품고 고안된 일반 학습 모델(얼추거의맞기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PAC 학습이라고 부르는)도 그런 제한된 자원량 이상을 소모하지 않는 알고리즘이 되도록 정의한 것이다. 이런 알고리즘으로 설명되는 자연 현상은 우리 경험에 익숙한 것(학습, 유연한 반응, 그리고 적응 등)부터 진화와 지능까지 광범위하다. - P26

기계적인 계산으로 자연 현상이 이해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비교적 최근 아이디어지만,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데 사용하는 무기의 하나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다. 물리의 법칙을 표현하는 데 수학 방정식이 유용하다는 아이디어, 실험실의 실험이 화학 세계의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아이디어, 그리고 사회과학에서 통계 분석이 인과 관계에 관한 실마리를 준다는 아이디어들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기계적인 계산의 관점이 유용하다는 아이디어도 그런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34

컴퓨터과학의 대상은 컴퓨터가 아니다.
천문학의 대상이 망원경이 아닌 것처럼.
—다익스트라(Edsger Dijkstra) - P37

튜링이 보인 건 기계적인 계산이라는, 혹은 생각 없이 한 스텝 한 스텝 실행하는 정보 처리라는 애매한 개념이 체계적으로 정의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기계적인 계산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경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계산이 뭔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 P40

멈춤 문제halting problem의 불가능에 대해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모든 기계에 대해서 그 멈춤 여부를 정확히 답하는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든‘과 ‘정확히‘가 핵심 조건이다. 몇몇 기계에 대해서만 정답을 내는 기계는 가능하다. 혹은 모든 기계에 대해서 답을 내지만 때때로 틀린 답을 내는 기계는 가능하다. 모든 기계에 대해서 항상 정답을 내는 기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P44

튜링 3원소 중 하나인 기계적인 계산의 정의, 이게 그래서 중요한 시작이었다. 튜링은 그 모델로 기계적인 계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을 모조리 잡아내려고 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현상까지 모조리, 사람이 창의성이나 영감을 이용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별생각 없이 하는 일들이라면 모두 튜링기계로 표현하려는 게 목표였다. - P46

컴퓨터과학과 물리학이 주로 사용하는 수학도 차이가 있다. 튜링 이전의 수학은 연속한 세계를 다루는 것continuous mathematics이 지배적이었다. 물리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학이다. 변화가 한없이 작은 양으로도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세계다. 하지만 튜링기계는 연속하지 않는 모델이다. 변화가 뚝뚝 끊겨서 일어나는 세계를 다루는 이산수학discrete mathematics의 세계다. 튜링 이전까지는 이산수학은 거의 연구되지도 않았다. 사실 튜링의 영향이라고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데, 이산수학이 부상하게 된 것이 튜링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다룰 학습과 진화 등의 현상을 정의할 때도 이산 모델이 가장 튼튼한 모델이 된다. 학습과 진화의 핵심 현상을 끄집어내는 데 가장 유효한 것이 이산 모델들인 것이다. 연속 모델이 결국에는 큰 관심을 받겠지만, 첫 스텝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데는 연속 모델보다는 이산 모델이 직관적이다. - P50.51

여담으로, 현재의 과학 분야 전반에서 계산 복잡도의 중요성을 흡수하는 과정에 있지만, 전통적인 과학 교육은 아직 그런 상황을 준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계산 복잡도로 보면 전통적인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푸는 문제들은 모두 현실적인 비용에 풀 수 있는 것들로 제한되어 있다. 산수도 그렇고 선형대수도 그렇다. 이 상황은 당연히 이유가 있지만(현실적인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문제들만 다루는 교육은 잘못된 인상을 남긴다. 쉽게 정의되는 문제는 모두 효율적으로 풀린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러면 학생들이 잘못 준비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계산적으로 비용이 현실적인 풀이법을 찾아야 한다는 기준을 간과할 수 있다. - P55

그림 3.4 무작위randomized 알고리즘의 예. 임의의 모양이 사각형 안에 그려져 있다고 하자. 그 모양의 면적을 어림잡는 방법으로 그 사각형 안에 점을 무작위로 찍어서 그 중에서 모양 안에 들어가는 점들의 비율로 계산하는 것이다. 조건은 점은 사각형 안에 어디에나 동일한 확률로 찍는 경우여야 하고, 각각의 점 찍기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크게 틀리는 경우는 아주 운이 나빠서 균일하게 점을 찍지 않게 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점점 더 많이 점을 찍으면 줄어들게 된다. 무작위 알고리즘은 근본적으로 이런 식의 성공 보장을 한다. - P58

현재까지 다항 시간 안에 인수 분해를 하는 알고리즘은 양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무작위 알고리즘(BPP) 중에도 없다. 인수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것과 인수를 찾아내는 것 사이의 어려움은 기하급수로 차이가 난다. 이 차이가 암호 시스템들의 기초다. 예를 들어 RSA 암호시스템에서는 두 개의 큰 소수 p, q를 골라서 곱한 결과 x를 공개하고 p, q는 내가 비밀로 가지고 있는다. 다른 사람들이 x를 가지고 내게 보낼 메시지를 암호화하면 나만 p, q를 가지고 그 암호화된 메시지를 풀 수 있다. 임의의 소수 p, q를 만드는 일은 임의의 수를 선택하고 소수인지를 확인하면 되지만, 암호화된 메시지를 엿들으려면 x를 인수분해해서 p, q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이 인수분해 문제는 BOP에 속한다. 즉, 양자 컴퓨터로는 다항시간 안에 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양자 컴퓨터가 실현 가능할지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 P63

가설 P≠NP는 현재는 물리 법칙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물리 법칙도 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물리 법칙은 당연히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계산에 대한 가설이 물리 법칙과 역할이 비슷한 이유는 누군가 틀렸다는 증거를 내놓기 전까지는 가설로서 유용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가설은, 다항 시간에 마칠 수 있는 알고리즘은 NP-완전 문제들에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 이 가설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물론 좋은 일이다. 모든 NP-완전 문제들을 푸는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찾아낸 셈이므로, 그게 충분히 효율적이면 혁명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 P66

알고리즘의 풍부한 능력에 대한 또 다른 면은 이런 것이다. 아주 간단한 알고리즘인데 그 실행 양상은 우리 같은 유한한 존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실행 양상을 파악할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잘 알려진 것이 있다.
다음의 알고리즘이다.

1. 양의 정수 n으로 시작한다.
2. n=1일 때까지 다음을 반복한다:
(a) 만일 n이 짝수면 n을 n/2로 바꾼다.
(b) 만일 m이 홀수면 n을 3m +1로 바꾼다.

예를 들어, n=44에서 시작하면 다음의 값들을 만든다. 44, 22, 11, 34, 17, 52, 26, 13, 40, 20, 10, 5, 16, 8, 4, 2, 1. n의 첫 값이 정해지면, n의 다음 값들을 차례로 계산하는 것은 간단하다. 알 수 없는 것은 시작하는양의 정수가 뭐가 되었든 만들어지는 숫자열이 항상 끝날지 여부다. 수학자 콜라츠(Lothar Collatz)가 1937년에 낸 문제인데 그 이후로 많은 양의 정수로 시작해 봤는데 모두 1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끝났다. 그러나 (그 문제가 얼마나 간단한지에 대비해서 놀랍게도) 누구도 증명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경우 늘 끝나는지, 아니면 어떤 양의 정수의 경우 끝나지 않는지.
콜라츠 문제는 간단한 알고리즘에 숨은 근본적인 복잡성에 대한 한 예다. 특히 그 알고리즘은 외부 환경과는 완전히 격리되어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었다. 입력이란 것도 필요 없이 구성할 수 있다. - P69.70

학습은 많은 단계를 통해서 달성되는데, 각각의 단계를 따로 놓고 보면 그럴듯하지만, 뭐 하자는 건지 어디로 향하는지 무심하다. 이 단계들은 큰 그림의 계획하에 작용하는 알고리즘을 따른다. 그 때문에 각 단계는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단계들이 모두 모여서 뭔가를 이루는 일종의 수렴 과정이랄까.
진화도 비슷하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진화의 많은 작은 단계가 따로 놓고 보면 크게 의미 있지는 않다. 하지만 큰 그림을 품은 알고리즘 스타일의 계획 아래 발맞춰 진행되면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 - P77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학습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경고 시그널로도 볼 수 있다. 실험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고 반드시 대상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게 돕는것은 아니다,라는 경고. 단적인 예로, 개별 사람들의 행동이 가까이서 관찰되어 왔고 수천 년 동안 널리 기록되어 왔지만 아직 우리는 그런 행동을 만드는 뇌의 작동 방법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생물학 연구방법에 대해 참고할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 P86

의식 현상을 계산 과정으로 보자는 아이디어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그 ‘계산 과정‘이라는 것이 대단히 폭넓기 때문이다. 만능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계산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뇌 모델이나 생각 과정 모델은 매번 그 시대의 첨단 기계 장치들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혹자는 컴퓨터가 현재로선 첨단 기계지만 미래에는 또 바뀌게 될 거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라고 본다.
컴퓨터가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기계적인 계산을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단순히 현재 가장 첨단의 복잡한 기계 장치이기 때문에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컴퓨터가 하는 계산이 기계적인 계산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진지하게 보는 것이다. - P91

우리의 과제는 논리가 놓치는 직관의 세계가 뭔지, 그리고 그 세계로 가는 과학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직관의 세계를 논리적인 가이드에 준해서 잘 작동하는 세계로 정의하고, 그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직관 혹은 상식이 발휘하는 능력은 명확한 논리적인 가이드가 없는 세계에서 좋은 판단을 해내는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논리가 없어 보이는 세계를 논리의 그물로 온전히 길어 올리는 일이다. 논리적인, 수학적인 이론을 세우는 일이다. - P92

두 개의 가정만 있으면 인덕을 이치에 맞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두 개의 가정은 논리를 위해서 필요한 면도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학습 과정에 늘 깔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 가정은 변동 없다는 가정invariance assumption이다. 학습한 결과가 사용되는 미래 상황은 학습할 때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가정이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사한다면 예전 도시에서의 경험은 새 도시에서도 도움이 된다. 두 도시 상황이 대단히 다르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변동 없다는 가정을 조금 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렇다. 어떤 상황들이 있는지, 그리고 상황마다 얼마나 자주 발생할지가 학습 전후로 변동이 없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은 세상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고, 변하더라도 어떤 규칙성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런 규칙성이 세상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 한 시간 동안 해가 지평선을 향해 꾸준히 내려가고 있었다면, 앞으로 한 시간 동안도 해는 꾸준히 지평선에 가까워지리라고 우리가 예상하듯이. - P96.97

깊은 신경망(deep neural net, DNN, 딥뉴럴넷) 알고리즘이 (PAC 학습 알고리즘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계 학습에서는 잘 사용되고 있는 많은 알고리즘의) 한 예다. DNN 알고리즘은 실험적으로는 PAC 알고리즘의 양상을 보인다. 정확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학습 시간이 기하급수로 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용되는 실제 DNN 알고리즘들이 PAC 알고리즘인지는 아직 엄밀히 증명된 바는 없다. PAC 알고리즘이려면 모든 분포의 샘플들에 대해서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자격이 안 되지만 쓸모 있는 알고리즘은 흔하다. NP-완전 문제를 푸는데, 실제 현장에 출현하는 입력들에 한해서는 다항 시간에 답을 내는 알고리즘이 종종 있다. 그런 알고리즘은 NP-완전 문제를 다항 시간에 푸는 알고리즘은 아니다. 모든 입력에 대해서 다항 시간에 답을 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DNN 알고리즘들이 이와 유사할 수 있다. 이상적인 PAC 알고리즘 자격은 안되지만 현실에서는 쓸모 있는. - P114

그런데, 그런 함수(많은 데이터에 숨은 간단한 함수)를 다항식 비용으로 인덕하는 건 대부분 불가능할 것 같은 이유는 데이터를 더 많이 봐야만 정답 함수의 면모가 드러나서가 아니고, 있는 데이터에서 정답 함수의 면모를 끄집어내는 과정, 이 과정 자체가 다항식 비용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다. - P121

내가 믿는 바, 사람들이 복잡한 개념을 학습할 수 없는 주된 걸림돌은 데이터가 아니다. 적당한 개수의 샘플 데이터에서 규칙성을 도출해내는 계산 과정의 복잡도가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행성 궤도가 타원형을 그린다는 것을 인덕하는 데 큰 어려움이 바로 이것이었다.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수백 세대가 걸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타원형 궤도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쉽게 도출할 수 있는 규칙성 중에 한동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121

정리하면, 학습의 한계를 이해하려거든 계산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P=NP로 판명되거나 그에 버금가는 예상외의 강력한 결과가 나온다면, 모든 다항식 복잡도(P 클래스)의 함수가 다항식 개수의 데이터만 있으면 학습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P=NP는 아니라고 컴퓨터 과학자들이 널리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든 P 클래스 함수가 데이터만 있다고 학습 가능한 건 아닐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즉, 데이터 안에 학습할 함수에 대한 모든 게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학습 가능한 함수들의 경계를 파악하는 데 충분치 않다. - P123

[RSA(Rivest-Shamir-Adleman) 암호 시스템의] 공개 열쇠를 인수분해해서 짝꿍열쇠의 핵심 부품을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큰 수의 인수분해를 현실적인 비용으로 할 수 있는 디지털 컴퓨터 알고리즘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 P124

정규 언어를 학습하는 일은, 다항식 개수의 문장들만 보고(문장마다 그 언어에 속한다 속하지 않는다 여부가 표시되어 있다) 학습한 후 새 문장이 오면 해당 언어의 문장인지 답을 내주는 일이다. 정답 언어의 오토마타를 추정해 내는 게 한 방법이다. 원칙적으로, 오토마타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문장을 받아서 얼추 거의 맞게probably approximcately correctly 판단해 주는 가설을 추정해 내는 거다. 촘스키 이후로 수십 년 연구해 왔지만 그런 학습 알고리즘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1980년대에 그 실패가 말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규 언어를 PAC 학습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존재하면 RSA 암호 시스템을 깰 수 있다고 증명되었다. 그런 암호 시스템이 깨질 수 없는 한 정규 언어를 학습하는 기계적인 방법은 없다. - P126

내 생각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접근 가능한 목표를 모두 좇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배울 게 풍부한 환경에서는 선생이 없더라도 계속 학습할 수 있다. 그 덕에, 이전에 학습한 개념을 갈고닦는 것뿐 아니라 접근 가능하기만 하면 전혀 새로운 개념도 배울 수 있다. - P131

진화가 PAC 학습의 한 예라면, 진화도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종 목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그때의 목표가 진화에도 있어야 한다. 진화를 목표 없는 경쟁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경쟁만으로 어떻게 단순한 단백질 회로가 시각이나 달리는 기능을 하는 정교한 시스템으로 발전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유로, 주식회사를 생각해 보자.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는데 경쟁만으로 회사의 여러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이윤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행동이 나온다. 꼭 경쟁만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 P144

여기서 ‘최선‘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오해가 없기를, ‘최선‘이 최적을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 인류는 최선을 좋은 진화 과정의 결과로 출현한 것이다. 최적의 결과를 좇은 진화의 목적물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최선‘으로 의미하는 바는 아주 지엽적인 의미다. 하나의 개체와 하나의 환경에 대해서 어느 한순간에 ‘최선‘이라는 뜻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어떤 행동은 현재 환경에서 다른 행동보다 더 이득이 된다. 우리 몸의 일곱 번째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함수들 중 좀 더 좋거나 좀 더 나쁜 함수가 있고, 하루에 먹을 초콜릿 양에도 좋은 양이 있고 나쁜 양이 있다. 뭐가 더 좋은지는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변한다. 현재 행동 때문에 다음번에 가장 유익한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현재 환경에서 지금과 다음번 행동 조합만을 따저서 가장 큰 이득을 만드는 행동을 유도하는 함수가 ‘최선 함수‘다. - P146

진화 과정은 학습 과정과 똑같다. 학습할 수 있는 목표를 좇는 학습 과정은, 이미 배운 것에 조금씩 새로운 것이 덧붙여지면서 차례차례 쌓여간다. 그리고 그전에 배운 대부분이 유지된다. 진화 과정도 같다. 다양한 생물종에 걸쳐서 유전체의 많은 부분이 유지되며 변화가 조금씩 쌓여간다. 변함없는 부분들은 아마도 바뀌지 않는 게 좋은, 중요하고 복잡한 진화 결과를 표현하는 부분들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체에 공통으로 필요한 생화학 기초 정보 같은, 이 부분이 조금만 바뀌면 유기체는 불가능하다. 유전체의 다른 부분은 굉장히 빠른 진화 과정을 겪으며 변한다. 잘 작동하고 있고 유용한 장치를 만드는 유전 정보는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것이 진화에 꼭 필요하다. 학습에서도 그렇듯이. - P150.151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근거 없지만 상식선에서 하는 생각 과정을 명확하게 결정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한, 이치 따지기reasoning 시스템이 논리적인 방식이건 확률적인 방식이건 쉽게 부서지는 문제는 어쩔 수 없다. 표현한 정보가 내부적으로도 부대끼고 표현 대상이 되는 바깥 세계와도 동떨어지면서 그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논리 추론의 의의는 무너지게 된다. 근거가 있는 생각 과정에 대해서는 논리적인 원칙을 가지고 잘 구성되었겠지만, 근거 없이 상식적으로 진행되는 생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유용한 보장도 할 수 없게 된다. - P188

레지스터가 아주 소규모일 수밖에 없는 실용적인 이유가 뇌에서도 똑같이 성립한다. 작업보따리working memory를 관리하는 회로들이 꽤 복잡할 것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잘 조정하는 일도 복잡할 것이다. 복잡하고 빠른 장치를 대용량으로 갖추기에는 비용이 너무 클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음의 눈이 한순간에 다룰 수 있는 정보 조각이 몇 개 안 되는 것이다.
작은 작업보따리는 결코 궁극의 제약 사항이 아니다. 뇌는 단순 계산만이 아니라 학습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더 심한 제약들이 있다. 마음의 눈을 통해 보는 시야가 좁은 것은 세계를 학습하는 데 꼭 필요하다. 더 많은 정보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그로부터 패턴을 도출해내기는 더 복잡해진다. 7±2개가 시야 범위와 계산 효율 사이의 적절한 균형인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그렇게 작은 조리개를 통과하게 됨으로써 현실적으로 학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 P197.198

인간에게서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기 전에 일어난 진화 과정과 수정된 후의 학습 과정이 너무 비슷해서 이 둘을 경계면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의 성격 중에 어느 것이 5.5살 이전 경험에서 배운 것이고 어느 것이 그 이후에 익힌 것인지 구분하려고 한다고 하자. 말이 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탄생 순간이 모든 게 시작되는 지점은 아니다. 우리가 수정되거나 탄생했을 때, 이미 우리는 많은 중요한 것들을 반 정도 학습한 형태로 가지고 있다.
타고난 것이냐 길러진 것이냐는 틀린 질문이다.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 중에서 거의 아무 순간이나 잡아서 억지로 묻는 식이기 때문이다. - P215

사람의 초기 학습 본능은 세계가 중립인 것으로 생각하게끔 진화했을 것이다. 주어진 모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표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진화했을 것이다. 부모나 선생은 이런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 학습이 신속히 진행하도록 돕는 정보를 내놓으며 아이의 학습을 도울 수 있다. 반대로, 나쁜 경우 호도할 수도 있다. 왜곡된 정보를 내놓아서 학습 알고리즘이 잘못된 일반화로 신속히 수렴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우연의 일치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학습할 수 있는 것은 거리낌없이 좋고 앞에 놓인 정보를 중립적으로 보려는 경향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행동을 믿게 된다.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속이려고 드는 게 아니라고 본다. 식당에 가서는 그 식당 대표 음식을 먹고 있다고 믿게 된다. - P216217

추가적인 이유가 있을 듯싶다. 왜 학습 알고리즘들이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부터 가설을 부지런히 만드는지. 예전에 논의한 퍼셉트론perceptron 알고리즘이 처음 제안되었던 이유는 한 스텝 한 스텝 진행되는 것이 뇌 모델과 비슷해 보여서인데, 이 알고리즘의 또 다른 성질은 소위 온라인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예시를 몇 개를 보았건 간에, 매번 예시를 보면 새 가설을 잡는다. 우리 뇌가 그런 온라인 알고리즘을 구현한 것이라면(그렇다고 나는 믿는데) 매번 예시를 보고 가설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우리 뇌는 성급하게 판단하도록 짜여 있는 것이다.
성급한 판단은 중립적인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이득일 것이다. 한 번 만나고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점도 한 번 가보고 판단한다. 빈약한 증거로 성급하게 편견을 가지는 경향은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본다. 빈약한 정보로도 일단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가진 결과일 것이다. - P218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 각자는 개별적으로 우리 의견이나 느낌을 위해서 투쟁하고 행동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우리 느낌과 의견이 다른 사람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정당화할 수있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 P221.222

제일 정교한 이론 있는 기술은 그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론 없는 분야(사회과학을 포함해서)에서, 우리의 의사 결정은 가장 정교한 지적 도구로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PAC 학습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불확실성에 휘둘린다. - P226

이 책에서 사람의 인지를 어떻게 보는지 정리해 보면 이렇다. 사람이 이해하는 개념은 계산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후로 모종의 알고리즘 스타일의 학습 과정으로 얻어진. 그런 개념은 또 통계적인 과정에서 온 것이다. 학습 과정이 통계적인 증거로부터 기본적인 타당성을 끄집어 낸다는 의미에서. 즉, 증거를 더 많이 볼수록 우리의 확신이 증가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마음의 눈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바깥 세계와 내부의 기억 장치가 만난다. 우리는 이 마음의 눈을 통과하는 정보를 통제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의 눈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신경계 회로들은 지식의 거대한 합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많은 진화와 학습이 축적된 결과다. 다윈 방식으로 다시 이야기하자면, 우리의 지식은 차례차례 일어난 작은 변화를 통해서 축적해 온 것이다. 각 변화는 학습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고, 이치 따지기는 이런 회로를 마음의 눈 안에서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뇌 시스템은 이론 없는 것을 다루도록 진화했지만, 이론 있는 결정을 할 때도 같은 회로를 사용한다. - P227

나는 항상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e‘이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느껴왔다. 내 주 전공이 그 분야라고 말하는 것도 좀체 꺼려왔다. 다익스트라(Edsger Dijkstra)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컴퓨터과학의 선구자로서 공헌한 것이 많기도 하지만 뚜렷한 의견과 촌철살인의 위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게 어떤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기억할 만한 대화를 만들려는 욕심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렇게 답했다. "AI(인공지능)요." 그가 즉각 되받았다. "I(지능)를 연구하지 그래요?"
‘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더 일반적이라면, 그의 말대로 당연히 더 일반적인 문제를 파야 한다. 그것이 더군다나 지능과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해왔던 공부가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인공지능 관련해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사실은 광범위하게 일반 지능에도 모두 적용된다. - P233

어떤 문제에는 간단한 방법이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이웃nearest-neighbor 알고리즘이다. 답안 예시들이 있고 가설은 만들어 내지 않는다. 새로운 질문이 주어지면 답안 예시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서 그 답안대로, 혹은 답안을 참고로 주어진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최근의 자연어 번역이 이 기술을 사용해서 성공한 경우다. 두 언어 사이의 번역 예들을 어마어마하게 모아 놓으면, 새로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한 값진 정보가 거기에 있다. - P238.239

인식 능력에서 아기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준비되어 태어난다. 간접적인 증거로,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일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식들을 모두 정의하려고 할 때 만난 어려움이 있다. 소설을 이해하려면 소설에는 표현되지 않은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서 소설에는 없는 것들이다. 성인이 읽는 복잡한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에서도 거의 같은 분량의 상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튜링의 꿈에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지만, 아기들은 놀랄 만큼 잘 학습된 상태로 태어나고 더 잘 배울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 P244

튜링은 기계를 프로그램하는 것과 기계가 배우게 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를 이야기했다. 그는 학습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때 다음의 주장이 힘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학습한 기계가 일종의 고정된 프로그램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그런 프로그램을 프로그래머가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주장이었다. 기계 학습이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에 학습한 결과를 같은 일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학습 과정을 통하지 않고는 모든 관련된 인자 값을 가진 학습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 P256

학습이 가진 중요한 장점은, 학습은 학습 시스템이 과거에 학습한 지식과의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전달하는 예시마다 학생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의 예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예시들은 이런 방식으로 학생이 이미 익힌 지식과 관계를 맺는다. 선생이 정확히 그 관계가 뭔지를 모르더라도 그렇게 작동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기는 프로그램 짜기보다 훨씬 더 생동적인 행위다. 학생의 이전 지식이 학습의 주고받는 과정에 자동으로 동원되기 때문이다. - P257

우리 조상들이 지구 위에서 겪은 익스트림 생존 훈련과 똑같은 유산을 로봇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한 그들은 인간이 스위치를 끄는 것에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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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희한한 일을 하려고 했을 때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라고 말하고, 영어에서도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다고 말할 때 "돼지가 날거든when pigs fly."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뜨고 돼지가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인간이야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지만 장난기가 많은 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법칙적으로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상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논리적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 P27

우리는 일상에서 ‘내가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과 같은 사고실험을 한다. 아마 돈 많은 부자로 살고 싶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내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빌 게이츠가 자식에게 유산을 남겨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가 아니라,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더라도 1년 먼저 태어나거나 1년 나중에 태어나면 서로 다른 정자와 난자가 만나 다른 사람이 태어날 텐데,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빌 게이츠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법칙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 P32

((에드먼드) 게티어는 연구 업적이 너무 없어서 동료 교수들이 순전히 행정적인 이유로 아무 생각이나 논문으로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세 쪽짜리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철학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로는 또 아무 업적도 내놓지 않았다.) - P34

운명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든 미래는 똑같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한다. 시험에 붙을 운명이라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붙을 것이므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고, 시험에 떨어질 운명이라면 공부를 하든 안 하는 떨어질 것이므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시험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결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일 뿐이므로 현재 상태가 달라지면 미래도 달라진다고 생각하여, 다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다르게 행동한다. 비록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그 이전의 원인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P49

제멋대로 하는 것과 자유로운 것은 분명히 다르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그래도 ‘자기의 마음‘이라는 원인이라도 있지만, 그런 원인마저도 없는 비결정적인 행동은 전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결정론이라고 해서 자유의지를 살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딜레마에 빠졌다. 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없고 결정론이 틀려도, 곧 비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없다. - P57

이렇게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행동을 했을 경우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행동에 원인이 있다고 해도, 곧 결정론이 옳아도 자유의지는 보존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럴 때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다. - P62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행동했을 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행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행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그 행동이 나의 믿음과 욕구 때문에 생겼지, 외부의 강제 때문에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강제가 문제다. 강제당하는 행동에 자유의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자유의지의 반대말을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자유의지의 반대말이 원인이 아니라 강제라고 본다면 자유의지와 결정론은 얼마든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 P63

우리는 "저 시계는 내 시계와 같은 시계다."라고 말할 때의 ‘같다‘와 "스파이더맨은 피터 파커와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의 ‘같다‘가 서로 다른 뜻임을 알고 있다. 앞의 동일성은 같은 종류라거나 특징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뒤의 동일성은 완전히 똑같은 개체임을 의미한다. 철학자들은 앞의 동일성을 질적 동일성이라고 부르고 뒤의 동일성은 수적 동일성이라고 부른다. 두 개체가 비슷하다는 것은 질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고, 두 개체가 완전히 똑같다는 것은 수적으로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 동일성 문제에서 문제가 되는 동일성은 바로 수적 동일성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피터가 사실은 스파이더맨과 같은 사람이고,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보이는 별(개밥바라기)이 새벽녘에 동쪽 하늘에서 보이는 밝은 별(샛별)과 같은 별이라는 것도 다 수적 동일성이다. - P77.78

그런데 다시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개인 동일성을 보장하는 것은 주름투성이 회색 덩어리인 뇌가 아니라 그 뇌에 들어 있는 정보다. 뇌에 담겨 있는 기억, 버릇, 느낌 등이 그 뇌의 주인에게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실험 016에서처럼 그 정보만 쏙 빼내서 맞바꾼다면 신체 이론은 정말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해주는 근거는 신체가 아니라 기억, 버릇, 느낌 따위의 심리적인 특성이라는 심리 이론이 옳은 이론이 되는 것 같다. - P90

요즘은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100미터짜리 새끼줄이 있다고해서 100미터짜리 볏짚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1미터도 안 되는 볏짚들이 겹쳐지면서 긴 새끼줄이 꼬아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억도 각 시기의 기억들이 연속적으로 겹쳐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의 기억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 P92

뇌 분리를 생각해보자. 사람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좌반구는 분석 영역과 언어 영역을, 우반구는 지각 영역과 음악 영역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두 반구는 뇌량이라고 알려진 수백만 개의 신경섬유계를 통해 서로 연합되어 있어서 다른 쪽 반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 간질로 고통받던 환자들은 두 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그래서 두뇌의 분리가 이루어졌는데, 그 후에 이 환자들은 약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환자의 왼쪽에 물체를 두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환자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사용법은 알고 있었다. 왼쪽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우반구에서 처리하므로 우반구에서 받아들인 이미지로 사용법은 알고 있지만,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좌반구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반구를 각각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 P100.101

그렇다면 실수에 의한 임신(사고실험 044가 비유하려는 경우)에서는 있던 태아의 생명권이 성폭행에 의한 임신(사고실험 045가 비유하려는 경우)에서는 갑자기 없어진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두 경우 모두 태아의 생명권 유무에서 차이가 없고 성폭행에 의한 임신의 경우 낙태를 비난할 수 없다면, 실수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를 비난할 수 없지 않을까? 모든 성행위에는 임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모든 가임 여성은 임신 가능성이 있으므로 행동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 아닐까? 결국 우리는 모든 낙태를 반대하든가 모든 낙태를 찬성해야 일관적이 된다. - P158.159

이러한 동물 실험 찬반 논쟁은 경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적인 반성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다. 철학적으로는 설령 동물 실험으로 인간에게 아무리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고 하더라도 왜 인간에게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실험을 안 하면서 동물에게는 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물실험을 옹호하는 쪽이 공평하지 않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래도 되는 의미 있는 차이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 P174

사고실험 076은 데카르트보다 조금 늦게 활동한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Gotfied Wilhelm Leibniz(1646~1716)가 내놓은 것이다. 사람의 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척 복잡하고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에 가장 발달한 과학기술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뇌와 비교되는 것은 당연히 컴퓨터다(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서양의 고대에는 투석기를 뇌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 시대에는 가장 발달한 기술이, 웃지 마시라, 바로 이 방앗간이었나 보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방앗간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한 것이다. 거기 가봐야 덜컹거리며 서로 밀고 움직이게 하는 부품들만 있다. 마찬가지로 뇌 속의 어디에도 생각이나 느낌은 없다. 라이프니츠도 데카르트처럼 마음은 물질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자였던 것이다. - P227

그러면 사고실험 077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고실험 078을 보자. 물 분자들에서 촉촉함, 맑음, 시원함이라는 성질을 찾는 사람은 부분과 전체를 착각하고 있다. 물 분자 하나하나에는 그런 성질이 없지만 그것들이 결합된 물에서는 그 성질들이 발현된다. 그런데 그런 성질이 부분에 없다고 전체에도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늘 한 개를 떨어뜨리면 소리가 안 나니까 바늘 한 뭉치를 떨어뜨려도 소리가 안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고실험 077도 마찬가지다. 뇌를 구성하는 물질들 하나하나에는 정신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결합되면 정신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면 촉촉함과 같은 물의 성질이 있기 위해서 물 분자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정신이 있기 위해서 뇌라는 물질 이외의 것이 있을 필요는 없다. 정신은 물질과 별개인 어떤 것이 아닌 것 같다. - P228

사고실험 080이 말하려고 하는 바도 사고실험 079와 같다. 훈이는 이번에는 색채 지각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경과학자다. 그런데 지금까지 색깔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색맹은 아니지만 색맹과 다름없이 살아왔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지 마라. 이것은 사고실험이다!) 그런데 색깔을 실제로 처음 보면 어떨까? "이거 내가 연구해서 알고 있던 그대로네."라고 말할까 아니면 "야! 이게 빨간색의 느낌이구나."라고 말할까? 속성 이원론자들은 뭔가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될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빨강을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사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곧 동일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사고실험 080은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잭슨 Frank Jackson[1943~]이 처음 제시했는데 거기서는 주인공이 메리다. 흑백방에서 나온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캐머런 디아스가 출연한 영화 제목처럼.) - P233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문제인) 다른 사람의 마음 문제는 흔히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지식을 확실하게 정당화할 수 없다는 회의론(7장을 보라.)의 하나로 소개된다. 그런데 속성 이원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속성 이원론에 따르면 나의 주관적인 느낌은 물리적 뇌의 작용과 다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 문제에 따르면 나는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나처럼 뜨거운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속성 이원론은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 물질의 작용과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상식적인 일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느낌이 뇌의 작용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 P234.235

(정신과 뇌는 실체는 하나지만 그 실체에서 물질적 속성과 정신적 속성은 동일하지 않다는) 속성 이원론은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사고실험 082를 보자. 그것은 영화 〈스파이더맨〉과 같은 상황이다.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 분)은 스파이더맨이 정의의 용사라는 것은 알지만, 피터가 정의의 용사라는 것은 모른다(〈스파이더맨 3〉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피터와 스파이더맨이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피터와 스파이더맨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아느냐 모르느냐와 상관없이 그 둘은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정말로 동일한지 아닌지와는 상관없다. - P235

마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기능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어떤 마음을 마음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인과적 역할을 하느냐다. 정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주장을 기능론이라고 부른다. 기능론은 정신을 어떤 입력이 들어올 때 어떤 출력을 내보낸다는 인과적 역할로써 정의한다. 예를 들어서 고통은 누군가가 꼬집으면(입력) "아야!"라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리는 것(출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 인과적 역할은 뇌의 신경세포에서 구현될 수도 있고 로봇의 실리콘칩에서 구현될 수도 있다. 기능론은 마음이 어떤 물질에 의해 구현된다는 점은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원론과 다르지만, 그 물질과 동일함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론과도 다르다. - P240

사실 컴퓨터를 인간의 정신 작용에 비유해왔지만 직렬식 컴퓨터는 인간과 다른 점이 아주 많다. 인간이 못하는 일은 엄청나게 잘하고 인간이 잘하는 일은 오히려 못한다. 가령 우리는 계산이 두 자리만 넘어가도 헤매는데 컴퓨터는 아무리 큰 숫자도 척척 계산해낸다. 반면에 우리는 글자가 약간 흐릿하게 보이거나 일부가 찢겨도 무슨 글자인지 금방 알아보지만 컴퓨터는 점 하나만 빠져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 능력이 있지만 디지털 컴퓨터는 그런 능력이 없다. 연결주의 기계는 인간 지능의 이런 특성들을 잘 구현해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패턴 인식이나 자발적 학습 같은 데서 장점을 보인다고 한다. 인공지능 연구는 이런 기계에 의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중국어 방 사고실험은 대상을 잘못 잡은 잘못된 인공지능 비판이다. - P256

과학자들이 빛은 전자기파라는 가설을 세운 후 어떤 조건에서 전자기파가 빛이 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에 대해 빛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이 이러이러한 조건에서 인공지능이 생길 것이라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 지능 또는 생각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로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인공 빛이 가능한 것처럼 인공지능도 가능하지 않을까? - P258

동일론 또는 일원론에서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은 물리적인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존재했다. 물리적인 것과 동일하므로 물리적인 것이 있으면 마음도 있다. 그러나 제거론에서는 마음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우리도 언젠가는 사고실험 096의 생명체처럼 네가 꼬집으니까 "아파, 네가 미워."라고 말하는 대신 "네가 꼬집으니까 내 C-신경섬유가 작동되었어. 그래서 내 D-신경섬유도 작동되었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 P259.260

사과가 없다고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말로 확실한 것은 있다. 그것은 내가 감각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령 착각을 일으키거나 악마에게 속임을 당하여 빨간 사과가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빨갛게 보이는 것은 사실 아닌가? 정말로 사과가 있어서 빨갛게 보이는 착각으로 빨갛게 보이든 빨갛게 보이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진짜 빨간 사과가 실재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과의 빨간색과 둥그런 모양과 반질반질한 느낌은 분명히 내가 느끼고 있다. - P291.292

그런데 참된 믿음이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고실험 111의 훈이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문제의 답이 2번이라고 믿고 있고, 또 답은 실제로 2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우에 훈이가 답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순전히 요행수로 답을 맞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왜 2번이 답인지 정당화하는 이유 없이 2번이라고 맞힌 것뿐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찍어서 맞혔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참된 믿음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믿어야 한다. 곧 그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을 지식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 P298.299

까마귀는 누구에게나 검게 보인다. 그러나 과학자가 까마귀의 다른 특징, 예컨대 까마귀의 울음소리나 크기에 주목했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 검은색에 주목했을까? 까마귀의 색깔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의 특정 관심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까마귀는 모두 검은색이다.‘는 이론 의존적이다.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배제된 순수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법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관심이나 이론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관찰을 하는것이다. 그래서 좋은 법칙인가 아닌가는 그 법칙이 현상을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지 편견 없이 자료를 잘 관찰하기 때문은 아니다. - P333

신의 존재 문제에서는 유신론과 무신론 중 어느 쪽에 입증의 책임이 있을까? 신이 있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 없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신은 있는 것일까? 현대사회의 생활이나 문명은 신을 빼고 설명해도 문제가 없다. 국가의 운영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문제에서는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유신론자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다. 다시 말해서 무신론자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더라도, 유신론자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전까지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가령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에 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면 신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도 된다는 뜻이다. 신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른다는 입장을 불가지론이라고 하는데, 입증의 책임 면에서 보면 불가지론은 결국 무신론의 편을 드는 셈이다. - P345

특히나 현대 과학은 우주의 제1 원인이 되는 사건이 무엇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빅뱅(대폭발) 이론이 그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120억 년 전의 우주는 맨 처음에 굉장히 밀도가 크고 뜨겁고 핀 머리 정도로 작았는데 대폭발을 일으켜 팽창하게 되었다. 유신론자는 여기에 대해 다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빅뱅의 원인도 있을 것 아니냐고, 그리고 그 원인은 분명히 신이라고.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신에 대해서는 그것이 있게 한 원인을 묻지 않으면서 빅뱅에 대해서만 그것이 있게 한 원인을 묻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더구나 신이 왜 다른 원인에 의해 생기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과학은 빅뱅이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과학에 따르면 그것은 그냥 주어진 사실이고 더 이상 원인을 물을 수 없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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