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문화
C.P. 스노우 지음, 오영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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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이 책의 끝을 보고야 만 지금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번역의 문제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접한 학술서라고 할 만한 부류의 책이었던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의 문장 중 적어도 40%는 읽기에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그동안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의 번역은 솔직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앞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는 시의성의 문제는 나중의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내 독서 경험이 일천한 탓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으되 만약 내가 아닌 다른 평범한 고등학생 내지는 대학생이 읽는다 해도 이 책의 번역이 적어도 평균 이상의 난해함과 무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으리라 본다. 더군다나 그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지극한 명료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처음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느꼈던 역자의 화려한 경력에서 비롯된 왠지 모를 중후함과 권위, 그리고 신뢰는, 저자가 그 자신의 경력의 권위와 다년간의 외국에서의 연구 생활에 지나치게 자만한 나머지 정작 번역에 무성의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그 예를 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나에게도 단지 내 이해력의 부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있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면 아직 나 자신이 이 정도 수준에 있는 글을 내 뜻대로 옮길 실력이 되지 못함을 잘 알기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한다는 건 못내 지나치다고 생각되어서 그만두었다. 여기서 번역에 있어서 옮긴이가 읽는 사람을 무조건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저자의 의도에 맞게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원서(原書)에 대해 해박하고 직접 번역한 역자가 거의 유일하리라는 생각이 들기에 문제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책의 본질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면 이 글 전체가 주장하는 바는 한국적인 현실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주장하는 바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는 스노우가 고찰했던 영국의 상황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우선 일찍부터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강조했던 영국의 상황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에는 이전부터 전인교육의 목표 아래 다양한 학문 분야에 있어서의 빈틈없는 교육을 선호해왔다. 과거 조선 시대의 경우는 과학과 기술의 교육에 있어서는 소홀하기는 했지만 관료로써의 입신을 목표로 하는 선비들에게 다양한 인문적 소양 외에도 폭넓은 예술적 수련을 요구한 것은 일단 현재의 전인교육의 깊은 뿌리로 볼 자격이 있다. 그런 토대 위에 세워진 우리의 교육은 당연히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을 배우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는 기존에 선호되던 인문학적 과목 외에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망에 부응하여 과학과 기술 분야의 과목까지 아울러 강조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교육 체제에는 중심이 되는 목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시대의 추세라는 미명 하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분야를 과목으로 편성해서 한 사람의 머리 속에 모두 밀어넣으려고 했을 뿐이다. 언젠가는 필요하리라는 얕은 생각으로. 그에 따르는 비효율성을 생각하면 전인교육이란 말은 너무도 무력하고 허망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스노우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조기에 이뤄지는 교육의 전문화만 지양한다면 당시 영국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과학 문화와 인문 문화 사이의 괴리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가 부수적인 주제를 다룬 글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이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었으며, 위기의 근거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음을 드러낸다. 물론 현대적인 과학 문화의 중요성과 인간의 삶의 기반으로써의 인문문화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동시적 인식이 이미 뿌리내려 있는 그들로써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의 문제는 간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되는 영국 상류층의 인문 문화 중시 행태를 비판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이미 충분히 단순한 교육제도의 개혁을 넘어선 인문문화와 과학 문화에 대한 의식의 문제를 심도있게 고찰할 기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지나치게 경시했다. 그 결과는 현재 한국에서와 같은, 제도의 구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이다.

 결국 무조건 상대방의 문화를 가르치는 데 앞서서 그 필요성과 개개인의 삶 속에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확립을 중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도 시의성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주시하고 노력해야하는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세대와 그에 따른 문화는 꾸준히 변화하기 때문에 그 문화의 문제는 어느 한 시점에서 완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다만 방법의 변용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두 문화와 관련된 문제들 속에서 진정 시의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두 문화 사이의 우열 내지는 중요성 여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제는 정말 낡아버린, 하지만 이 책에서는 꽤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듯한, 더 이상 논하고 싶지 않은 닳고닳은 보자기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기워대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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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의 권위와 명성에 비해 번역이 무성의한 책들은 대부분... 대학원생들의 노가다죠. 아, 짱나.

로렌초의시종 2004-05-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맞아요. 저도 생각을 하고 또 해봤는데 그것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역자가 지닌 권위를 신뢰한다면 말이죠......(그런데 상투적으로 붙는 '000군이 도와줬다'는 그런 말도 없답니다^^;) 도대체 교수를 하고 계신 건지, 황제를 하고 계신 건지.그리고 부족한 글이나마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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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중세(中世)는 이미 어두움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내 생각과 같았는지 바로 그 시대를 다룬 그의 첫 소설의 제목을 바로 일식으로 정했다. 찬란한 빛의 순간에 갑자기 덮치는 어둠, 일식. 수백년 동안 유럽 대륙의 평화를 지켜주던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신의 이름으로 찾아온 천여년 간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어느 누가 헤메고 있었을까? 작은 프랑스 산골에도 한 수도사, 니콜라가 있었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보고 말았다. 일식의 그 찬연(燦然)한 어둠 속에서 태어난 남과 여의 일체, 영과 육의 하나됨, 신과 인간의 일치의 상징, 안드로규노스를...... 그 순간, 신의 신실(信實)한 아들인 그 역시 결국은 피에르가 창조한 그 신의 화신에게 경배하고 말았다. 그것은 단지 그 한순간의 실수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후 그의 일생 전체를 관통하는 또다른 믿음으로 남았을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안드로규노스의 창조자인 피에르 뒤페, 자신이 신봉하는 믿음의 결정체로써 시대가 부정하는 또다른 신을 스스로 빚어낸 그야말로, 어쩌면 그 시대에 신의 손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지탱해 줄 절대자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니콜라는 그런 그의 피조물인 안드로규노스에게 자신의 뒤섞인 혼을 내던진 채 교접하고 말았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의 마음 속을 오직 니콜라만이 유일신의 품에 안긴 채로 읽어내고 있었다. 오직 황금에의 열망으로 안드로규노스의 손을 잡고 끝을 알 수 없는 불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 피에르. 그에 비하면 그런 그를 바라보는 니콜라는 신과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손을 갓난 아기처럼 굳게 잡고 비로소 그 이교(異敎)의 어둠에 뭣 모르고 걸어 들어가는 위태위태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질기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신학적 가치에 대한 고집스러움과 피에르에게서 받아왔던 철학적인 호의마저도 깡그리 잊은 듯이 그의 이단 재판을 앞두고 서슴없이 떠나는 의외의 냉정함에서 그는 역시 신의 어린양이었다. 그 자신에게 피에르의 변호에 나서야 할 다소의 이유와 책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배울 점은 너무 많은 이였지만 역시 그는 마녀와 떼기 힘든 사이였다는 달콤한 자기 변호를 빼놓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니콜라 자신이 그만큼 피에르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었다.
 
 확실히 그는 나에게까지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안드로규노스의 구석구석을 섬세한 손길로 애무하던 피에르의 모습을 마녀와의 의식(儀式)으로 몰고 가던 그의 깊은 심연 속에 감춰진 것은 다름 아닌 안드로규노스라는 자신만의 신을 창조해버린 피에르에 대한 질투였다. 니콜라는 인정할 수 없었을 게다. 누가 뭐래도 그에게는 하나의 신이었던 안드로규노스가 한낱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리고 오직 그만이 그 신을 경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존재는 오직 자기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을 게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었다. 이것은 신에의 죄악이었다. 그렇게 침묵 속에 외쳐대는 질투의 끝에 숨겨진 것은 바로 만인의 유일신(唯一神)이 아니라 니콜라, 그 자신만의 신으로 은밀한 곳에 봉헌된 안드로규노스였다. 그 질투를 참아내고 마냥 우습게만 보였던 기욤이 피에르를 고변할 때까지 기다린 니콜라의 인내심은 굳이 감출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감추고 싶었던 그의 모든 것은 빛으로써 가려졌다. 태양은 그 모든 추악함을 일식의 어둠으로써 축복하고 신비로움으로 채워주었다. 이면(裏面)에 숨어야만 했던 그 모든 신의 이름으로.
 
 지식도 그 무엇도 아닌 티끌만한 나의 그 무엇으로 풀어낸 일식, 저 뒤의 태양의 광채에 아로새겨진 이 암호를 난 스스로도 비웃을 수 밖에 없다. 사전 한권쯤은 옆에 두고 정성스레 찾아가며 읽었어야 할 책이었지만 이 책과 날 끝없는 거리감에 내던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사실 원본은 읽지 않아서 알 수 없으나 참으로 어정쩡한 상태의 글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어구에는 역주가 있었지만 간간이 나오는 형용사를 놓치기는 아쉽고 찾기는 귀찮았다. 역자의 후기에도 있듯이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의 위대함 덕에 초라하기만 한, 장중한 의고문(擬古文)이 아닌 단순히 현학적인 천박함을 군데군데 드러낸 채로 남은 것은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책 속으로 깊숙이 들어서면 결국에는 불분명한 역할로 묻혀버린 인물들이 혼란스러웠을뿐더러 영(靈) 육(肉)의 일치와 분열의 초석이 다져지는 시대의 중심을 당대 철학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니콜라가 아닌 프랑스의 벽촌에서 광신자와 배교자 사이에서만 헤메는 니콜라로 삼은 것도 그 뜻을 좁힌 것만 같아서 서운했다. 사실 이런 데뷔작은 꿈에서도 쓸 수 없는 나이지만 나 역시 그가 드리운 일식의 신비롭기 그지없는 검은 장막을 사랑했기에 하는 말이다. (2000. 4. 6.~10, 2000. 4. 10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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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인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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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정읍에서 서울로 가는 어수선한 버스 속, 결국은 어설프게 돼버린 지난 꿈, 그런 현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불화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뭔가 사뭇 큰 시사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말이지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또 이 책을 읽는 데는 근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손에 잡은 모든 책의 글자 한 글자 한 글자를 단 한번에 읽을 때 기억 속에 각인시키려하는 편집증(偏執症)이 심해진 탓이지만, 난 그저 이런 식의 합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불합리적인 과정을 애써 합리화시킬 뿐이다. '어느 시대 못지 않게 파란만장했던 시대, 그 한 중심에 서서 그 자신과 자신이 다스리는 집단을 위해서 힘썼던 사람들의 생애를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씩이나 뒤따르기에는 사실 그 한달 또한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하고. 게다가 이 한 권의 책에 펼쳐진 세상 속에서는 이미 내가 한 페이지 앞까지만 해도 주인공으로 보았던 이들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이미 먼 과거의 인간으로 석화(石化)되고 있었다. 난 끊임없이 등장하는 그 새로운 인물들의 행보를 쉴새없이 뒤쫓아야만 했다. 어제의 교황(敎皇)이 오늘의 추기경(樞機卿)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그의 입에서 어제의 교황은 언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어제의 교황에게는 오늘의 교황을 위한 반면교사의 역할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사자처럼 죽기 위해 개처럼 살려는 인간'과 '개처럼 죽더라도 사자처럼 살려는 인간'의 차이는 그 정도로 큰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종류의 인물들이 번갈아서 교황으로 즉위하는 순간, 전임 교황이 후임 교황에 의해 운위될 때의 의미는 그의 어리석음에 대한 빈정댐이나, 자신의 뛰어남을 더 뚜렷하게 강조하기 위한 소품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너무도 뚜렷하게 다른 그들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볼 수는 있어도 배울 수는 없었던 까닭이었다.

 이렇듯 이어져있는 듯 싶어도 실은 상당히 깊은 골을 지니고 있는 그들 사이에서 내가 어느 쪽에 서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정말이지 미묘하고 어렵다. 개처럼 살아가는 그 방식을 단순히 비난하기에는 사자처럼 죽을 때의 그 장엄함에 대한 매력, 악마의 것만 같은 그 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저마다 누구 못지 않은 뚜렷한 신념과 도저한 학식의 소유자인 그들을 개처럼이라도 살게끔 만든 그 완전무결한 이상(理想)이 성취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일 때의, 나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뤄내고 싶은 그에 대한 유혹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개처럼 산 인생의 일부를 사자로써의 나머지 생과 그리고 역시 사자로써의 죽음으로 보상받을 수만 있다면, 아니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아주 작은 증거가 드러난다면 나 또한 그 열망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의 사망 이후 마르실리오 피치노, 피코 델라 미란돌라를 비롯한 그 수많은 플라톤 아카데미의 학자들이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감응해버리고 만 것은 그 누구보다도 현명한 그들이야말로 평범한 이들에 비해 더 많이 그 이상의 실현가능성의 증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순도 100%의 금을 만들려다가 제련 상의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릴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제거하기 어려운 불순물의 존재를 인정해서 순도 99%의 금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로렌초 데 메디치로부터 시작해서 알렉산데르 6세와 로렌초의 아들 레오 10세로 이어지는 '개처럼 죽은 사자의 삶'이다. 설령 그들 세 사람이 저마다 추구하는 바는 달랐다해도 적어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취했던 삶의 방식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자의 죽음'을 열망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천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셈이지만, 그들은 포기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살아있는 사자로써의 면모를 과시했다. 최소한 죽고 난 후에라도 사자가 될 수 있다는 열망에 사로잡혀서 어떤 종류의 타협도 용납지 않는 '개의 인생'과는 애초에 그 궤적을 달리하는 것이다. 일단 무엇이든 간에 '될 것 같다'는 예감만 들었다하면 놀라울 정도로 과감하게 타협에 의한 80%의 확실한 성취를 외면하고 100%의 독식할 수 있는 성취를 향한 도박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그 놀라운 집념은, 사실 절대로 생(生)을 염두에 두고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사실 앞서 말했던 '이상을 성취한 후의 사자로써의 반생(半生)'의 가능성은 설령 존재한다해도 그들 자신의 머리 속에서부터 그 자신이, 자신의 손이 확실히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사자로써의 삶을 포기하고 온갖 비난과 질시를 감수해야만 하는 '개의 삶'을 살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흠 없이 타협 없이 성취해야하는 이상보다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 생각은 그들에게서조차도 그 머리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모든 것을 포기한 의연함과 강한 의지를 마냥 찬양하기에는 수많은 성(聖)과 속(俗)의 인간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써의 문제가 남는다. 그는 혼자 몸이 아니다. 그가 어떤 자질로 피지배자들의 지지를 얻어서 그 자리에 올랐던 간에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 오른 이상, 그 자질들이 비록 그를 그 자리까지 올려주었다해도 그것이 자신을 이끌어 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자의 죽음'을 꿈꾸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질을 보고 지지한 모든 이들은 궁극적으로 항상 자신의 노선에 순응해야한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자신의 자질에 대한 신뢰로 자신을 지도자의 위치에 올려준 이들에 대한 책임감보다도, 일단 자신에게 부여된 지위로써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앞서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멸망한다해도 굴복하지 않을 사보나롤라와 그 어떤 사상에도 세계의 멸망은 고사하고 한 민족의 멸망을 좌우할 가치가 없음을 확신하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물론 지도자의 선출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체제 전반에서 전체 피지배자의 의사가 온전히 전달될 수 없는 엄연한 한계가 전제되어 있다해도, 국가의 의사결정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론이 당시에도 존재했음을 생각한다면 전자의 태도는 단순한 무책임함을 넘어서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스스로 확대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차마 할 수 없는 비난은 위기의 상황에 이르러서 보여질 수밖에 없는 '사자의 죽음'을 꿈꾸는 이들의 나약함을 향한 것이다. 그 나약함은 실패한 자신의 꿈을 실현된 것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비오 2세의 '환상(幻想) 속에서의 환성(歡聲)'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결국은 자신이 신의 예언자임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보나롤라의 신음이나,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랬던 율리우스 2세의 탄식으로 마지못해 표현된다. 참고 참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허망히 흩어지는 순간에 다다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의심, 그리고 후회.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결국은 후회할 수밖에 없는, 그 이상을 향한 집념의 끝에 이르렀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탄식으로써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사자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가 결국은, 누구나 긍정해도 그들은 끝끝내 신념으로써 부정하려했던 '개의 삶'을 산 자신의 삶에 대한 인정이라면 그들의 죽음이 '사자의 죽음'이었음을 선언하는 것은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 사자의 삶을 산 이들은 달리 후인들의 판단을 기다리지도 않고, 기꺼이 누구의 아쉬움도 필요없다는 듯, 서둘러서 '개의 죽음'을 향해 떠나버렸다. 내가 개의 죽음을 맞기를 바란다고 기꺼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것은 역시 사자의 삶이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내 몫으로 주어진 삶을 결국에는 후회하고서야, 남들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자의 죽음'을 내 삶의 결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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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5-15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로렌초의시종 2004-05-1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말씀을 아니하시고 간단명료하게 '추천'만을 선언하시니^^:, 이 부족한 글의 어디가 님의 마음에 드셨는지 조금은 궁금해지네요(실은 꽤 많이?^^;). 다른 서재의 코맨트에서 자주 뵙긴 했는데 이 아직은 누추한 제 서재에서 뵙는건 처음이네요. 사실 전 방금에야 처음으로 님의 서재에 다녀와봤는데, 제 서재와는 비교도 안되는 '순위권 내'의 메이저 서재인지라 꽤 놀랐다는 ㅡ ㅡ; 암튼, 이렇게 들러주셔서 여러모로 모자란 글까지 읽어주시고 추천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쉽게 나아지진 않겠지만 앞으로 자주 들러주세요! 저도 자주 갈께요^^

꼬마요정 2004-05-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좀 특이하던데요, 제국주의적 성향이 다분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로마를 미화시키고,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으로 삼고, 마키아벨리즘이야말로 이 시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듯 해요.. 물론 글은 재미있게 쓰지만.. 아마도 자신의 조국인 일본이 로마처럼 동아시아를 재패했으면 하는 바람이 표면화된 것이겠지요...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늘 비판적으로 볼려고 노력해요...
어쨌든, 님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다들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시네요..부러워요~
추천하고 갈게요~^^*

로렌초의시종 2004-05-3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전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서 운위되는 제국주의적 성향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는 쪽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이 읽는 독자들에게 그런식으로 수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반성해야겠지요. 부족한 글을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데메트리오스 2004-07-0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 푹빠졌던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비판적으로 읽는 편입니다. '신의 대리인'은 저도 재밌게 읽었지요. 특히 알렉산드르 6세의 비서역을 맡은 사람이 쓴 것으로 나오는 '일지'는 정말 완벽한 '조작'이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는 정말로 그 조작된 사료에 속았다지요. 잘 읽었습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7-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빠져있었지만, 항상 그녀의 단점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기에는 역시 장점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신의 대리인은 그녀의 책중에 개인적으로는 손꼽을 만큼 맘에 들었다고 생각해요.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새는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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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소설에서조차도 사랑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현실의 사람들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일컬어 '소설 같은 사랑'이라며 마치 그 사랑이 소설 속에서는 이뤄질 수 있을 것처럼 자위하며 자신의 포기를 합리화한다. 한편 소설 속의 인물들은 현실의 인간들 같은 통속성(通俗性)을 부정하려 애쓴 나머지, 내 마음 속 사랑은 물론이고 남의 마음 속 사랑까지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면서 '폼나고', '쿨하게' 손 흔드는 길을 택한다. 그렇게 서로 웃으며 손 흔드는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진심은 아니란 걸 느끼면서도. 결국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는 없다. 현실의 인간들이 '통속성'의 의미와 그 통속적인 사랑이 가져다주는 시련의 무게를 소설 속에서나 이뤄질 법한, 막대하며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한 사이, 소설 속의 인간들은 세속의 인간들이 그런 고난쯤 거뜬히 이겨내고 사랑을 얻어냈으리라 지레 짐작한다. 그리고서는 자신들이라도 그런 상투성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 사명감이라도 느낀다는 듯이 결연하게 '사랑'이 아닌 '사랑에의 추억'을 택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나 소설에서나 결국 이렇게 이뤄지지도 않을 사랑을 위해 겪어야하는 통과의례의 혹독함은 예외가 없다. 물론 현실에서의 그것이 더 어렵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의 사랑의 소멸은 모든 통과의례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적인 요소인 현실에서의 상투성에 대한 반발이라는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성질이 다분하다. 그에 비해서 현실에서의 사랑의 소멸은 통과의례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써 얻어질 사랑으로 하여 더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진솔한 의미에서의 어려움 내지는 두려움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정작 현실에서 통속성의 사랑이 부재(不在)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에 따른 상실감을 채워줄 대리만족을 위해 역으로 소설에서 하나의 정해진 순서로 이뤄진 듯한, 판에 박힌 상투적인 사랑이 강요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에 이르는 그 수많은 과정들을 논하기에 앞서서, 사랑이 이뤄진다는 그 하나만으로 상투성의 유·무를 공박하는 것이야말로 더더욱 어불성설이라는 점이다. 독자에게 필요한 미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정직한 독자라면 단지 자신이 노력한 끝에 다다른 결말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동안 자신이 그럭저럭(?) 즐겁게 밟아왔던 그에 이르는 과정들까지 모두 부정하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이런 독자들의 관용이 사랑의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의 작가의 태만함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 이야기의 결말에 있어서의 상투성을 피하기 위한 강박관념이 결국은 정반대의 새로운 상투성을 고착시키게 되는 우스운 강박관념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피하려했던 스타일의 결말이 지닌 상투성을 적극 옹호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결론을 위해서 줄거리의 상투성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작가의 결론에 대한 공박, 아니 그를 넘어서 다른 독자들의 관점까지 설득시키려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누구 못지 않게 정직하지 못한 독자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내 정직함을 지키려하다가는 왠지 내가 정말로 정직하지 못한 인간이 될 것 같다는 묘한 불쾌감이 나로 하여금 이런 식의 글을 쓰게 만들었다. 사실 끝 부분의 '해설'에 나와있는 대로 아직 우리에게 있어 1980년대란 떠올리는 기억 속의 존재일 뿐, 읽는 책 속의 존재는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 시절을 이 정도의 디테일로 현현시킨 이 소설은 그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참신성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 단순한 기억 그 자체의 섬세한 재현만으로도, 그 어떤 세밀하고 복잡한 구성 못지 않은 새로움을 안겨줄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참신함은 그 기억 속의 시대 자체와도 무관할 수 있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상투성이 용서받을 수 있는 지점도 바로 그 시대의, 그 나이의 소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첫사랑의 정취의 사진으로 찍어낸 듯한, 섬세한 포착에 있다. 사랑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에 은수를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3년 간의 시간은 '현실적으로(또는 보편적으로)' 기타, 독서, 공부 중 어느 하나를 완성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에 1년마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씩 미션을 완수해가는 은호의 모습이 관점에 따라선 지나친 과장으로 보일 법했지만 조력자인 '현주'라는 매력적이며 시의적절한 캐릭터의 구현은 읽는 이의 의구심을 왠지 미소 섞인 수긍으로 감싸안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해설에서 '달'에 비유되었을 정도로 은수라는 '태양'이 없는 은호의 나머지 삶을 지켜주었던 현주의 역할은 보너스 트렉에서의 차분한 독백으로 섬세하게 매듭지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조력자의 존재가 이미 남들보다 여러모로 뒤쳐진 자리에서 시작한 은호가 매야만 했던 유·무형의 굴레들의 존재를 잊혀지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끝내 어느 것 하나 민석이처럼 손쉬운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도달한, 일단은 큰 목적지라고 부를만한 자리에서 그에게 그가 원하던 것을 끝내 주지 않은 것이 과연 수긍할 만한 결론일까?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해주는 여자가 둘 다 있었다. 그의 사랑도 그가 받은 사랑도 어느 것 하나 단순하거나 맹목저인 점보다는 서로에게 조금씩이라도 다가가고 싶고 좀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애틋함과 절실함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어느 누구의 사랑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게는 이런 결말이 처음엔 그저 아쉬웠고 나중엔 급기야 짜증스러웠다. 언뜻 스친 소설책이나 밑줄 쳐가며 꼼꼼히 읽은 소설책이나 어느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좀처럼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 그 사랑 하나가 그 속에서도 이뤄지는 모습을 좀처럼 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과문(寡聞)한 기억 탓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동안 쌓였다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내 성질을 홀로 받아내는 불운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미래로 이어질 결말에서 어디 살던 누구인지도 모르는 인물의 파경 예고로 어렴풋한 암시를 줄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20년 전에 둘 중 누군가와의 사랑을 이어주고 그것으로 20년 후의 희생양을 삼을 것이지 왜 굳이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내가 무엇보다 서글픈 것은 현실 속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사랑 때문에 고난을 겪는 인간의 상당수는 그 고난을 참아내고도 결국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원인이 사실상 어느 한쪽의 자의(自意)에 의한 '포기'라면 소설 속의 그것은 아직까지 현실에서 살아남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통속성의 악몽에 지레 겁먹은 제삼자인 작가에 의한 타살 내지는 강요이다. 결국 내 안타까움은 어디서도 사랑이 아니라 그 무엇이 되었든 원하는 것을 얻어서 잠깐이라도 행복해하는 인간의 소박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사랑은 상투적일 지라도 행복만큼은 상투적일 수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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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4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5-1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이 가장 짙은 사상이자, 정서죠. 그래서이겠죠..사랑은 언어 예술인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영원한 테마면서 모든 예술가들의 영원한 유토피아구요...그래서일지도 몰라요...예술 속에서 사랑이 자칫 상투적으로, 통속적으로 형상화되기 쉽다는 것.
바로 이 문제를 놓치지 않으셨군요..사랑의 통속적 형상화, 거기에서 탈피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어쩌면 끝도 없는 악순환일 수도 있을 거예요..
기대해 보고 싶어요. 사랑의 통속성,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따질 겨를도 없이 가장 인간다운, 자연스런 감정의 발로로서의 사랑이....그러기에, 사랑이기에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두서 없는 말만 주절거리다 가는 것 같아, 이거 원 쑥쓰럽네요...
잘 읽구 가요..님~^^
 
명찰순례 3
최완수 / 대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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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이 순례에 아쉬움을 느끼며, 지난 여정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절의 모습 마다마다가 절실한 신앙심의 후광을 입어 깨치지 못한 나그네의 마음에 놓칠 수 없는 가르침을 남겼다. 특히 초기 남선종(南禪宗)의 중심지인 쌍봉사는 쇠락해가던 신라 말기의 사상계를 혁신한 곳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요즘같은 변혁기에는 더욱 돋보여서 내 관심을 끌었다. 변혁기는 사상으로써 시작된다. 변혁 후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배경의 제공을 위한 것이다. 박혁거세 이래로 천년을 버텨온 신라의 말기 역시 그랬다. 문무왕의 통일 후, 중앙귀족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교종(敎宗)이 쇠퇴하고, 나날이 그 세력을 떨치는 지방 호족 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급부상한 새로운 종파가 바로 선종(禪宗)이었다. 다시 보면 통일의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는 시절에 교종이 흥성하고 피가 피를 부르는 혼란기에 선종이 흥성하기 시작한 것은 두 종파의 성격과도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 교종은 말 그대로 경전의 해석과 강독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곧 교육을 받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교화의 폭이 좁았다. 이 좁은 '폭'이야말로 오늘날 교종적인 목소리가 우리 불교 안에서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에 비하여 선종은 불립문자의 종지(宗旨)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종과의 차이가 분명했다. 더구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말로 성불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함을 밝힘으로써 수도의 근본을 잡았다고 말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교종의 수행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문자라는 뚜렷한 기준이 존재하는 교종의 수행방식이 나에게 더 적합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항상 글이라는 걸 읽으며 행복을 느껴온 나로써는 그 행복의 끝에 있는 깨달음도 역시 글을 통해서 얻고 싶다는 것이 솔직하지만 역시 아직은 깨닫지 못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깨달음의 성취를 위해서 교종은 '글'이란 수단을 강조했지만 선종은 무엇보다도 깨달음이 내재된 마음만을 유일무이한 수단이자 목표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날 먼저 깨달은 이들을 경전에서 살피고 그로써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려는 교종이 피동적이라면 오직 개인의 피나는 정진에 깨달음의 모든 것을 맡기는 선종은 능동적이었고, 바로 그 개인의 정진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 교종이 강조하는 경전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교종과 선종의 대립 이유이자, 숙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역대의 고승들이 남긴 일화를 보아도 선종의 고승들은 성품이 더 괴팍한 듯 했다. 바로 경전에 대한, 먼저 깨달은 이에 대한 무시와 선종 자체의 능동성, 적극성이 결합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 같은 속세의 중생들의 입에서도 회자되는 선사들의 기괴한 언행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좁은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 국교였던 불교에 속해 있는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둘에 이렇듯 정치 사정까지 연계될 정도로 한 때 종교는 그들이 늘 말하는 '절대자', '깨달은 자', 그 자체로써 빌린 권위를 제것인양 말하던 때가 있었다. 겨우 몇 장의 지면으로 만나 본 남도의 절 쌍봉사는 이렇듯 그 역사적 의의에 걸맞게, 지나는 나그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이 또한 명찰을 순례하는 여러 기쁨 중 하나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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