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수학 좀 대신 해 줬으면! - SF 작가의 수학 생각
고호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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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 가벼운 생각들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다. 언제나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수학인데도, 읽는 내내 부담스러운 대목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특히 부담을 느낀다는 사실을 수학 전문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덕이 크다고 생각했다.

 

 ‘진정한수학은 사칙연산의 밖이나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이 정말로 퍽 참신한 통찰이라고 자신하는 듯한 말을 퍽 자주 듣는다. 날마다 듣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 식스센스의 반전보다 더 놀라울 것도 없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며,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미 충분히 원론적인 교훈이 됐을 뿐이다. 게다가 결국 너무나 많은 사람의 삶에서 수학이란 사칙연산 속에서 맴돈다는 괴리까지 있다. 사칙연산의 영역조차 쉽지 않았는데, 정작 수학은 그 너머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칙연산이 아닌 수학의 정체에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애초에 수학은 사칙연산조차도 아닌 신비로운 무엇이라는 오해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진퇴양난이고 앞에 호랑이 뒤에 이리인 셈이다. 사칙연산의 수학 아닌 수학은 익숙하고 지겨우며, 수학다운 수학은 들어봤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다. 어쨌든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녹록한 조건은 아닌 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수학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저널리스트로서 바로 이런 문제를 충분히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찾은 해결책은 비교적 신선한 최근의 사례, 혹은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이 사례나 경험과 연결되는 다양한 수학적 사고의 측면에 있다.

 

2016년 독일 분자 식물 생리학 및 생물물리학 연구소의 제니퍼 뵘(Jennifer Böhm)을 비롯한 연구자 15명은 무려 식물도 수를 세는 능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주인공은 바로 식충 식물인 파리지옥이다. 파리지옥은 먹이가 와서 앉으면 잎을 오므려 붙잡은 뒤 소화액을 분비한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고 먹이를 잡기 위해 파리지옥은 곤충이 잎에 몇 번 접촉했는지에 따라 움직인다. 두번 접촉하면 잎을 오므리고 세 번쯤 더 접촉하면 소화액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까지는 셀 수 있는 셈이다. -151

 

 그는 이 책에 이미 익숙하고 지겨운 수학 아닌 수학인 사칙연산을 억지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고 이런 수학 이야기들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런 현대 수학의 연구 성과나 수학적 사고에 관한 지식을 이미 충분히 접한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 책을 계기로 자신이 생각하는 수학이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을 기회도 될 것이다.

 

 사칙연산은 진정한수학이 아니라는 말은 우선 고작더하기 빼기를 틀리는 것은 결국 그 문제들이 의도한 수학 자체를 배우고 익히는 능력 자체와는 무관하는 위로의 의미도 없지 않다. 그 수학 자체의 존재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새롭지도 짜릿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이미 언급했다. 진정한 수학이란 무엇일까? 이를테면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를 다루는 뉴스를 볼 때 아주 간신히 접하는 것이 그런 내용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수학과 오히려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 십상이다.

 

재야의 수학자가 대단한 발견을 한다는 판타지는 유혹적이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기존 수학 이론의 전복을 꿈꾸는 야심 찬 아마추어 수학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심만 너무 커 아집에 빠지게 된다면, 논문은 못 내고 신문에 광고만 내는 사이비 수학자가 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 -38~39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담긴 짧은 수학 이야기들은 더 각별하다. 하나하나가 중요한 사고의 단서를 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것이 아무리 수학적이라 해도 어쩌면 너무 소소하거나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나 한 사람이 기존의 모든 이론 체계를 뒤집을 수 있다는 야심에 내 발상과 이상이 너무 소중하다는 아집까지 더해질 때의 파국을 지적하는 부분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고 말할 때 홀로 옳았던 이들의 극적인 사례들에 기대서 모두의 반대를 단지 돌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하게 되는 왜곡이, 수학에 대한 통념과도 닿아 있다는 사실은 익숙하면서도 예리하다. 어디에나 있는 그 당연하고 소소한 지점들이 수학에서도 예외가 아닌 까닭이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있는 점들로부터 가볍게 선을 그어 수학으로 잇는 법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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