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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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권력자가 악한 추종자들을 만들고, 악한 추종자들은 악한 권력자를 키운다. 안희정이 저지른 성범죄를 부인하고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 그 집단의 정점인 안희정이 능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인물임을 알 수 있고, 임면권자의 위력으로써 약자인 피해자들에게 성범죄를 자행한 안희정을 보면 그의 집권과 그를 따르는 조직의 영달만을 꾀한 추종자들이야말로 안희정이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그 위력의 핵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권력자와 추종자의 악랄함이 서로 나뉠 수 없고, 권력자는 추종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배후가 되고, 추종자는 권력자가 저지르는 범죄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김지은 씨의 고통스러운 기록에서 거듭 확인했다.

 

안희정의 참모들 중 일부는 감옥에 다녀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안희정이 대선 자금 수사를 받고 감옥에 갔던 일은 조직에서 우상화되어 있었다. 안희정은 대의를 위해 감옥에 다녀왔다며 훈장처럼 이야기했고, 주변의 오랜 참모들은 수시로 부하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와 같은 언급을 했다. 안희정을 대신해 감옥에 다녀왔다는 한 참모는 성골로 대우받았다. 법과 원칙보다 조직을 위한 희생이 중요한 곳이었다.-108

 

 개인의 인권보다 조직의 안위를 중시하는 개인과 집단을 불신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런 까닭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인권, 노동자의 권리에 특히 민감하다고 자처했던 안희정과 그를 둘러싼 집단이 실제로는 오직 안희정의 집권과 조직의 영달에 집착할 정도로 지극히 폐쇄적, 이중적이었다는 이 책의 지적만으로도 안희정과 그를 둘러싼 집단들의 도덕성, 윤리 의식을 의심하기에는 충분했다. 단순히 권력자와 추종자의 관계만으로 이들이 모두 악랄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권력자-추종자의 조직이 자신들의 목표 혹은 대의를 위해 구성원들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그런 착취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할 정도로 강한 폐쇄성을 띤다면, 그 권력자와 추종자, 집단 전체는 사악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영부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다시 한 번 고마워." 민망할 정도였다. 서글펐다. 내가 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일한 시간들이 스쳐 갔다. 온 몸이 서늘하고 머릿속은 스산해졌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고통은 계속될까? 벗어나고 싶다.-279

 

 그런 까닭에 이런 폐쇄적 조직, 수직적 관계, 위계적 질서, 이중적 행태 속에서 안희정이 저지른 성폭력의 피해자인 김지은 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기까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중적인 행태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직은 철저히 폐쇄적일 수밖에 없고, 조직이 철저히 폐쇄됐음을 확신하는 까닭에 권력자와 그 측근 구성원들은 조직을 권위적, 자의적, 폭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보위를 위해 조직의 병폐를 은폐하는 조직은 바로 그 철저한 통제 때문에 결국은 파탄에 이른다. 이 과정은 필연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권리와 존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너무도 큰 피해를 입는다.

 

 이 사회의 정의는 오직 이 필연적이며 정당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그와 연대하는 수준과 방식에 달려 있다. 김지은 씨와 같은 피해자가 사회의 가장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조직과 그 지도자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피해자, 생존자, 고발자가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안희정의 이 사건의 경우에는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안희정과 김지은 씨가 소속되었던 충청남도와 안희정을 도지사로서 공천한 동시에 김지은 씨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조, 조장한 인물들이 소속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실질적, 도의적인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번 안희정의 모친상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보인 한심하기 그지없는 행태를 생각하면 무망한 기대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수행비서를 할 때 안희정에게 꾸중을 듣고 욕도 먹었지만, 안희정 팬들에게는 더 심한 욕과 위협을 받기도 했다. 저런 깐깐한 년, OO, 지사 옆에 붙어 있는 년, 비서년, 여자수행년...... 인수인계받은 원칙대로 일했지만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이전 남자 수행비서들이 듣지 않았던 욕을 더 들어야 했다.-223

 

 애초에 안희정이 제기했던 여성, 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 및 신장에 대한 의제들이 그가 이끈 조직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면, 최소한 김지은 씨의 고발 이후에 안희정 지지자들이 자행한 2차 가해만큼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희정과 그의 조직이 번지르르하게 내놓았던 그 의제들이 얼마나 형식적, 이중적, 정치적인 도구에 불과했는지가 바로 이 사건에서 드러났다. 애초에 지지층을 확대하고 유인하는 선전 문구였을 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도자인 안희정은 물론이고 그의 측근과 추종자 중 절대 다수도 어떤 구체적인 인식도, 방향도 없었다. 모든 것은 대권, 집권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기에 그 목표가 좌절되자 안희정이 저지른 범죄와 그 이중성에 대한 어떤 자기반성도 없이 피해자인 김지은 씨를 실패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어떤 주장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행태는 불가능하다. 권력자와 추종자를 관통하는 이 표리부동하고 저열한 행태는 수행비서 시절의 김지은 씨를 향한 안희정 팬들의 태도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올해 99일로 안희정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지 1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오거돈 부산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이어 성범죄 혐의를 받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특히 한국 정치인 중 성 윤리 인식과 성 평등 실천에서 단연 앞서가는 인물로 자타가 공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저지른 성추행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의미 있는 대응도 없이 오직 가해, 은폐, 추모만을 마지막 목적으로 삼은 듯한 박원순의 황급한 자살은 한국의 권력자들이 안희정 사건을 얼마나 가볍게 여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안희정을 고발한 후에 피해자 김지은 씨가 겪은 엄청난 고난이 피해자들의 입을 막아 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고, 강대하며 엄연한 미래 권력의 성 범죄를 고발한 김지은 씨와 같은 사례는 너무 희소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자신했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위력으로 저지른 성 범죄 정도는 안희정보다 훨씬 가벼워서 별 문제가 없으리라 확신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자신이 누리는 권력에 취해서 어떤 의식도 없이 성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납득할 만한 해명도 변명도 남기지 못한 박원순의 죽음을 생각하면 마지막 추측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전략) 병장을 웃기는 이등병의 마음을 가져라, 공식 일정 이후 시간, 기업, 친구, 여자 이야기는 주변에 함구하라, 특히 여자 관련해서는 인수인계서 메모에서도 삭제해라, 단어 언급조차 하지 말고 어디에 쓰지도 마라, 보고 듣고 알아도 비밀을 유지하고 반드시 함구하라, 중요하니 재차 강조한다 (...)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수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사님 기분이다. 여기에 별표 두 개를 그려라, 인수인계 사항들은 모두 지사님 기분을 맞춰드리기 위한 것이다.”-90

 

 대권을 목표로 삼은 미래 권력자 박원순이 저지른 그 모든 성 범죄는 자신의 위력과 권력에 따라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지배와 복종과 의전의 절차였다. 그런 까닭에 피해자가 박원순의 조직과 위계질서를 벗어나서, 시장의 집무를 보좌하는 것으로 가장한 그 모든 절차가 실은 위력을 이용한 성 범죄라는 사실을 고발한 것만으로도 그는 어떤 설명의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로부터 영원히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박원순 그리고 안희정은 자신들이 스스로의 위력에 기반해 저지른 그 모든 성 범죄가 엄연한 범죄라는 사실을 몰라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저지른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거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막강한 권력을 쥘 수 있는 자신의 조직 내에서, 그 조직의 정점에 선 자신과 자신에게 복종하는 그 조직 구성원 간에는 이것이 충분히 타당하며 가능한 행위이고, 이 조직 밖에서는 성 범죄이지만 이 조직 안에서는 성 범죄가 아니라고 확신했을 뿐이다. 적어도 자신의 조직 내에서만큼은 자신은 이런 성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질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희정의) 지인이 감장을 하는데 가뭄과 홍수로 고춧가루를 구하기 어렵다 하니 좋은 고춧가루 10근을 사서 보내라고 시켰고, 가족에게 줄 간식과 선물도 내가 사 오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비용들은 수행비서의 사비로 내야 했다.-100

고통스러웠던 일은 노동자로서 내가 할 이유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희정이 아들과 가는 요트 강습을 예약하거나 의약품을 대리 처방받아 전달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러 주위에 어려움을 토로하면 비서는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105

 

 박원순과 안희정이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누린 무소불위의 권력이 그들을 이런 범죄자로 만들었다. 자신의 권력과 조직은 조직 내의 범죄를 철저히 은폐할 수 있고, 은폐할 수만 있다면 조직 내의 범죄는 더 이상 범죄일 수 없다는 무의식이야말로 권력이 권력자과 이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이다. 이 무의식으로 인해 안희정과 박원순 같은 권력자는 어떤 의식도 없이 자신의 조직, 영역 내에서는 그 외부와 철저히 다른 인간으로 살 수 있었고, 또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되었다. 이 책이 있어서 현직 재선 충청남도지사이자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안희정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광범위한 인맥, 조직 내에서 오직 그 한 사람의 심기(心氣)’를 위해 구축된, 업무의 일부를 빙자한 온갖 전근대적 의전과 공사 혼동을 비롯한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명령-복종의 연속을 남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과 위력으로 자행한 성폭력 피해자의 기록으로서의 이 책의 탁월한 지점은 권력자가 저지른 범죄 행위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될 수 있는 정치적, 행정적, 사회적 맥락을 묘파해냈다는 것이다.

 

안희정은 성 평등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도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었지만 내가 본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권세를 잘 알고 누리는 사람이었다. "내 위치에 이런 것까지 해야 되겠느냐"며 일정을 당일에 취소하기도 했다. 국제 행사였던 한 토론회 참가 일정을 바로 전날 취소하기도 했는데, 패널들이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거기서 반문할 수 있는 이는 그의 주변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그의 주변인들은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대령하기 위해 노력했다.-105

여자 정장에는 주머니가 많이 없었지만, 수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다녀야 해서 위 주머니와 안감의 안쪽 주머니까지 보면서 샀다. 주머니가 없는 옷에는 내가 직접 달기도 했다. 안희정의 물건을 모두 지참하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안희정은 슈트발이 안 산다고 절대 양복에 물건을 넣지 않았다. 휴대폰도, 담배도, 라이터도, 명함도, 신분증도, 휴지도, 펜도, 안경닦이까지 모두 수행비서가 가지고 다녀야 했다. 손으로 부르면 달려가 원하는 걸 전달해야 했다. 나는 만물트럭이었다. 사람들이 내 주머니에서 자꾸 뭐가 나오는 걸 보며 놀라워했다. 가방은 슈퍼를 차려도 될 정도였다. 내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 흔한 화장품 콤펙트도 없었다.-227

 

 이 책 덕분에 현직 3선 서울특별시장이며, 역시 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박원순이 한때 성 평등의 길잡이나 마찬가지였던 스스로의 이력을 그토록 아무렇지 않게 배반했던 이유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특별시청과 권력자로서의 사적 조직 내에서 박원순이 누린 권력과 위력, 지배-복종의 관계는 안희정과 다르지 않았고,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조직, 영역 내에서는 그 외부와 다른 원칙이 적용될 수 있으며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류였던 것이다. 여러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막대한 책임과 권력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무원들이 더 효율적으로 그들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공한 다양한 편의와 의전, 부속 인력 및 그 임면권이, 그저 이 인사들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권위주의, 자신의 위신과 영달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이용할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자의식과 왜곡된 권력관만 조장한다. 지금이라도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보좌, 의전 절차 및 관련 인력의 처우에 대한 포괄적인 점검과 폐습의 타파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 모두 책을 즐겨 읽고 시의적절한 책을 대중에게 추천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 소속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 연달아 3명이나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은 이 시점에서 그들이 솔선해서 읽고 추천해야 할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자당의 지자체장이 저지른 성범죄와 고발된 성범죄 혐의, 그것이 초래한 행정적 공백을 책임지는 가장 타당한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부터 이 책을 읽고 김지은 씨의 간절한 목소리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두 사람이 이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책을 읽거나 권하는 것은 가증스럽고, 이 책을 읽고서도 권할 수 없다면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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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이언 매큐언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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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시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정말 어이없을 정도라도 경험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긴장감과 슬픔을 이해하는 데 꽤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소련이 한때는 얼마나 크고 강한 동시에 난해한 국가였는지 그 흔적이라도 접할 수 있었기에,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독일 서베를린에서 소련의 기밀 정보를 빼내기 위한 기밀 작전이 얼마나 중요하고 급박했을지 상상하기가 한결 쉬웠다. 혹은 어쩌면 북한이 휴전선 북쪽에서부터 땅굴을 파서 침공하려 했던 남한에 살고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는 그 땅굴에 무려 안보 교육을 간 적도 있었다. 요즘에도 그런 짓 하려나.

 

밤은 이런저런 변주와 함께 반복되었고, 아침은 변주 없이 반복되었다. -143

 

 이 작품의 배경은 1955년 여름부터 1956년 봄까지의 독일 베를린이고, 사건들은 그중에서도 미국, 영국, 프랑스가 점령 중이었던 서베를린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이때 동베를린에 주둔 중인 소련군과 소련 본국 간의 통신선을 도청하기 위해 미국 CIA와 영국 MI6가 공조한 기밀 작전이 추진된다. 영국 체신국 소속의 통신 엔지니어인 레너드 마넘은 바로 이 작전을 위한 비밀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국 바깥으로 나와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나도록 도처에 상흔이 남아 있는 옛 제3제국의 수도이자 동서로 분단된 도시 베를린에 온다. 레너드는 히틀러의 수도였던 베를린에서 낮에는 영국, 미국과 함께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옛 연합국 소련을 도청하기 위한 비밀 작전에 열중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만난 마리아 에크도르프와 난생 처음으로 연애와 성애에 몰입한다. 모든 사건은 이런 배경 뒤로 펼쳐진다.

 

만남의 자리를 주도한 쪽은 로프팅 중위였다. “이것 봐요. 마넘 선생. 방금 도착했으니 상황을 알 리가 없지요. 이곳의 문제는 독일인도 러시아인도 아닙니다. 프랑스인도 아니에요. 미국인들이지. 그치들은 뭐 하나 아는 게 없어요. 설상가상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니까.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위인들이에요.” -9

(레너드)에게 영국적이라는 것은 이전 세대가 느끼는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공격당하기 쉬운 약점이라는 느낌이었다. 반면 미국인들은 자기네 방식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스포츠 재킷과 어차피 손뜨개 하이넥 스웨터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을 선명한 빨간색 니트 넥타이를 골랐다. -21

 

 독일에서 영국인 젊은이 레너드가 미국인 밥 글래스의 지시를 받아가며 소련을 도청하기 위한 작업에 종사하고, 패전한 독일군 출신의 오토 에크도르프와 이혼한 독일인 마리아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드러나는 국가와 국민의 단면은 여러모로 복잡하며 흥미롭다. 이런 관계 속에서 드러날 수 있는 양상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섬세하게 교차시키는 이언 매큐언의 수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종전 직후의 영국인들을 사로잡았을 승전국로서의 우월감과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상실감, 열등감 간의 분열상을 레너드 마넘이라는 한 인물의 짧은 청춘기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영국 작가로서의 매큐언의 가치가 드러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글래스의) 감색 정장은 구겨지고 군데군데 천이 닳아서 반들거렸다. 레너드는 유심히 보았다. 저렇게나 제각각으로 어울리지 않게 옷을 입는 법도 있다.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23쪽

베를린에서의 첫날이 다시 떠올랐다. 독일인. . 불구대천의 적. 패퇴한 적. 이 마지막 생각은 소름 끼치는 전율도 함께 안겨주었다. 그는 순간 특정 회로의 전체 임피던스(*교류회로에서 전압과 전류의 비율)을 구하는 계산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마리아)는 패했다. 당연히 그의 소유였다. 정복자의 전리품,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과 영웅적인 행위와 희생을 통해 얻어낸 그의 것이었다. 얼마나 굉장한 희열인가! 옳다는 것, 승리한다는 것, 보상받는다는 것은. -148~149

 

 레너드는 미국인 상급자인 글래스가 독선적이며 조화롭지 못하고 조악한 인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베푸는 거친 호의, 호감에 공명하며 그와 밀접해진다. 작품 곳곳에서 당시 영국과 영국인들이 미국에게 느낀 미묘한 감정이 표현되지만, 이 두 인물의 관계야말로 전쟁 당시에 윈스턴 처칠과 프랭크린 루즈벨트가 보여 주었던 복잡한 친밀감의 보다 사사로우며 영국 입장에서는 보다 비굴한 변주다. 이 영국인과 미국인의 관계 속에서 영국인이 당당할 수 있었더라면 레너드가 자신의 상급자인 글래스와 자신의 연인인 마리아의 관계를 그토록 구차하게 의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너드는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영국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소련 도청 작전에서 비롯된 자존감의 균열을, 패전국 독일 출신의 마리아가 미국인 글래스가 아니라 영국인인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봉합하려 부심(腐心)했다. 레너드가 마리아에게 육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서 성욕을 채우려 하면서 마리아도 이것을 원하리라는 망상에 빠졌던 착란적, 변태적 상황도 이런 미국, 글래스에 대한 열패감이 기저에 있었다. 마리아가 상징하는 독일을 미국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굴복시켰다는 충만감을 레너드가 갈구했다고 이해한다면, 서로의 애정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레너드가 주제넘고 부조리한 지배욕에 빠져들었던 연유가 훨씬 명확해진다.


레너드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추지도 않고 출 수도 없는 춤을 추고 그들이 싫어할 음악을 좋아하고 그들은 절대 오지 않을 도시를 고향처럼 느낀다는 사실에 흥분 이상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자유였다. -228

이 모든 게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과거의 두 사람으로 돌아가려면 힘겨운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두 사람이 하려는 일은 그 길을 영영 막아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그러므로 지금 하는 이 일은 잘못이었다. -299

 

 레너드의 변태적인 행위가 초래했던 연애의 위기를 마리아의 애정과 관대함으로 극복한 후에, 때때로 마리아를 찾아와 폭력을 휘둘렀던 그의 전 남편 오토와 레너드 사이에 예기치 못한 파괴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레너드가 통제하지 못했던 그의 폭력적인 과시욕, 지배욕의 원인이 마리아나 패전한 독일, 독일인과 무관한 그 자신의 문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남은 삶 동안 자신은 승전했으나 자립할 수 없는 영국인으로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목도한 청년 레너드의 열패감은 그 자신의 힘을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확인하도록 강요했다. 그가 동시대의 다른 영국 청년들처럼 영국 안에 머물렀더라면, 비굴한 현실을 직시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새삼 자신이 승리했고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폭주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상황의 한복판에서 영국인으로서의 그의 자의식도 한낱 평범한 가정 출신의 청년 엔지니어인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하다가 끝내 폭발해 버린 셈이다. 그리고 레너드가 일으킨 충격은 다시 그가 속했던 체제 전체를 무너뜨리고 그의 삶도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몰고 가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승리의 그늘이 우리를 덮고 있으므로......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쇠약해질 테고, 돈도 힘도 없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가만있어야만 할 거라고 수상은 덧붙였다.

 

얄타 회담이 끝나고 열흘 후 수상 별장에서 벌어진 처칠과의 만찬에서,

존 콜빌, ‘권력의 언저리: 다우닝 스트리트 일기, 1939~1955’-5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 속에서 과거의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역사 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거대한 역사적 상황이 그에 속한 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그의 사적인 삶을 변화시켜서, 그런 인간이 다시 역사적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흐름을 정교하게 구축해 냈다. 이런 흐름 사이사이에는 저마다의 사정, 감정, 오해가 있었고 그것이 원하거나 예측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름을 몰고 갔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이면(裏面)을 알 도리가 없다. 과거에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 안에서 타당해 보이는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을 절감시킬 뿐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 드러날 핵심적인 단서들은 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핵심을 정작 그것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는 모르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의 핵심이다. 이 소설은 이런 역사적이며 인간적인 사실을 과거의 맥락 속에서 다시금 묘파(描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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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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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당한 여성을 의심하려는 인류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새삼 배웠다. 강간 피해자의 고발을 신뢰하면 처벌해야 하는 강간범 남성과 선례로서의 강간 사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강간 사건이 존재하는 만큼, 사회는 그 전보다 불편하고 민감해진다. 하지만 강간 피해자의 고발을 거짓으로 몰아붙이고 단정해 버리면, 허위 사실을 퍼뜨린 여성 하나를 처벌해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는 변함없이 편안하고 무난해진다. 강간당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걱정 없이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 강간 피해자의 존재와 주장을 의심하고 부정하기 위해 애쓸 동기는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이런 동기를 가진 사람의 수가 적지도 않으니 피해자를 의심한다고 비판받아도 편들어 줄 사람이 딱히 부족할 리도 없다. 쉽게 마음 편해지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나 늘 있다. 강간 사건과 피해자가 등장한 순간부터 어떻게든 이것을 묻어 버리고 다시 안락해지려는 인간들의 욕망이 치솟는다. 그러고 보면 대중에 대한 박원순의 믿음이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 자리만 포기했더라면 얼마든지 수치스럽게 살 수 있었으련만.

 

 미국 워싱턴주 린우드에 사는 10대 소녀 마리가 눈만 보이는 복면을 한 남성에게 강간당하고 이 사실을 신고하지만 거짓으로 사건을 꾸며낸 허위 신고죄로 기소되고, 이 사건의 범인이 다른 지역에서 연쇄강간 사건을 저지르다가 여러 형사와 치안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검거된 후에야, 마리의 피해 사실과 무고함도 밝혀진다. 연쇄강간범 마크 패트릭 오리어리를 가운데 두고서, 너무도 허접하고 급하게 허위 신고로 매도된 마리의 사건이 한쪽에 있고, 반대쪽에는 오리어리가 저지른 다른 연쇄강간 사건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고 서로 결합하는 여러 경찰, 형사들 그중에서도 스테이시 갤브레이스와 에드나 헨더샷이 있다. 복잡하지만 선명하고, 납득할 수 없어도 해결에 이르는 이야기다.

 

페기는 정신 건강 상담 분야의 석사 학위 소지자였다. 이전에는 위탁가정 아동들의 관리자였고 지금은 노숙인 보호소에서 어린이 보호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몇 년 후 그녀는 특수 아동 보조 교사로 학교에서 일하게 된다.-154

어쩌면 제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나 봐요. 너무 괴로워서요. 저는...... 그 모든 증거를 듣고선 사실이란 걸 알았어요. 그런데도 아직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게 끔찍해요. 또 내가 마리를 불신하는 데 동참했다는 점도 끔찍하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페기는 자신이 걸었던 전화, 마리의 이야기를 의심한다고 말한 그 전화 통화를 깊게 후회하며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입만 다물었다면, 경찰들이 제 할 일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름대로 솔직하고 싶어 한 시도였는데, 제 말에 전적으로 기대게 만들어버렸어요.” 그녀는 말했다.

나는 훌륭한 시민이 되려고 했었어요. 아시죠? 경찰들이 개인의 성격적 문제와 관련된 사건에 쓸데없이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더 신중했어야 해요. 아니라고 증명되기 전까지는 피해자를 믿어야 하잖아요. 내가 저지른 실수예요. 내 실수입니다. 그 점에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할 뿐입니다.”-304~305

 

 마크 오리어리가 2008~2011년에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에서 저지른 연쇄강간 사건의 첫 희생자인 워싱턴주 린우드의 마리가 순식간에 허위 신고자로 몰리고 기소까지 되고 만 이유는, 너무 비열하고 졸렬하다. 경찰에 마리의 허위 신고 가능성을 제보함으로써 이 모든 사태의 결정적 동기를 제공한, 마리의 위탁모였던 페기가 꼽은 근거는 특히 그러하다. 마리가 사건을 설명하는 방식과 그 내용이 미심쩍고 평소 마리가 애정 결핍으로 주위의 관심을 원하는 성향이었다는 본인의 경험을 내세워서 마리를 의심했지만, 자신의 근거가 마리가 주장하는 강간 피해를 의심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이고 객관적이며 이 사건 자체와 밀접한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마리가 실제로 강간을 당했으며 억울하게 경찰로부터 허위 신고죄의 누명까지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만 이 조차도 지나친 자기 연민과 변명으로 치장했다. 그는 자신의 피보호자인 마리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으며, 마리가 허위 신고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훌륭한 시민이 되고 싶다는 공명심, 자기 현시욕까지 있었다. 페기는 항상 타인의 존경과 칭송을 받을 만한 옳은 일을 해 왔겠지만, 그런 자신의 허영과 교만을 과연 직시해 본 적은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신의 동기는 정당했으나, 단지 마리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성급하게 그를 의심한 것이 잘못이라는 페기의 사과 혹은 변명에서는 훌륭한 시민이 되려는 자신의 신념만큼은 반성하지 않겠다는 아집이 두드러진다. 페기는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소외 계층을 도왔지만, 정작 가장 보호해야 할 대상이 가장 가까운 곳에 나타났을 때는 마리를 일방적이고 개인적인 기준과 판단으로 의심하고, 다른 사람과 달리 마리의 보호자임에도 경찰에게까지 마리의 허위 신고 가능성을 제기하고 말았다. 그의 사회 활동은 훌륭한 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었을 뿐, 사회적 약자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암시한다. 그런 까닭에 무수한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이미 정서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은 자신의 피보호자 마리가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페기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의심하고 부정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는 마리가 당한 사건을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 감당하고 이해하며 치유되도록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봉사도 물론 나쁘지 않다. 동기와 무관하게 약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자기 자신이 그 약자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정도는 직시해야 한다. 그랬다면 페기가 주제넘게자신의 졸렬한 근거만으로 마리를 의심해서 그와 마리 모두가 상처 입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페기는 그 자신이 뒤늦게 고백했듯이 마리의 강간 사건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함께 고통받고 치유해 나갈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데다, 자신이 돌보는 약자들을 향한 스스로의 관점을 점검하거나,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리가 강간당했다는 주장을 부정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마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강간당했다는 거짓말까지도 지어낼 수 있다는 본인의 추측을 아주 하찮은 근거만으로 확신하고, 경찰에 제보했다.

 

그녀(스테이시 갤브레이스)는 지금 자신이 타 경찰서 수사관들의 수사를 돕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저지른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실수, 형사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를 공식적으로 알리게 된 것이었다. 린우드 수사 기록을 검토하면 할수록, 의심이 어떻게 싹텄고, 어떻게 퍼졌고, 마리가 취조당했을 때 어떻게 진술을 포기했고, 어떻게 합의 조건을 받아들였을지 보면 볼수록 갤브레이스는 이 사진 속 여성이 겪은 일을 상상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상상하기 힘든 것은 앞으로 린우드 경찰서에 닥치게 될 날들이었다.-286

 

 강간 범죄의 위험성과 폭력성에 비해서 마리의 강간 신고가 허위일 수 있다는 근거로 페기가 제시한 마리의 사건 설명 방식과 그 내용, 관심을 갈구하는 평소의 성향은 균형이 전혀 맞지 않지만, 페기는 이 조차도 고려하지 못했다. 이런 페기의 제보로 말미암아 마리가 무고하게 허위 신고죄로 기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린우드 경찰서의 강간 사건 수사가 중단되어 결국 범인인 오리어리가 이후에 연쇄강간 사건을 일으켰음을 생각해 본다면, 개인적인 의심만으로 강력 범죄의 피해를 허위라고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분별한 짓인지도 확실히 드러난다. 그와 같은 사소한 구실들은 강간당했다는 주장과 동등한 수준에서 고려될 가치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적 의심과 마리의 강간 피해 주장을 등치시킨 페기는 오리어리가 마리 이후에 저지른 강간 범죄에 대해서도 최소한 도의적으로는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페기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마리를 허위 신고죄로 기소한 린우드 경찰서의 제프리 메이슨 경사 역시 마찬가지다.

 

갤브레이스에게는 강간 사건에 대한 자신만의 수사 원칙이 있었다. 경청하고 입증하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죠. ‘피해자를 믿어라. 무조건 피해자부터 믿어라.’ 하지만 난 그것이 옳은 관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죠. 그런 다음에 일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확증할지 반박할지 결정하죠.”-30

 

 허위 신고로 몰린 마리에 대한 첫 강간 사건 이후에 마크 오리어리가 악랄하고 집요하게 저지른 연쇄강간과 철저히 은폐된 단서들 속에서도 이 반복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콜로라도주의 여러 형사와 치안 관계자들이 점점 결집, 소통하며 포기하지 않고 서서히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분명 무척 긴박하며 분노와 슬픔이 터져 나오는 시련의 연속이다. 하지만 사건 해결, 범인 검거의 매우 미약한 가능성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서히 확장된다는 점에서 조금씩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어 가는 장면들이기도 했다. 강간을 당하고서도 도리어 허위 신고를 한 범죄자로 전락해 온갖 비난을 받아야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해결 가능성 자체가 봉쇄되었던 마리의 상황에 비하면, 이 덕분에 활개 친 오리어리의 연쇄강간 행각은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든 점점 더 검거와 해결의 시도들이 따라 붙었다. 그 덕분에 아주 조금이나마 안도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에런 하셀)의 생각에 이 여성은 굉장히 강렬하고 생생한 꿈에서 꺠어나 미처 꿈에서 마저 깨기 전에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것만이 릴리를 거짓말쟁이로 매도하지 않고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 증거 부족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 같았다.-216

 

 스테이시 갤브레이스, 에드나 헨더샷을 비롯한 콜로라도의 형사, 경찰들은 피해자들의 자백 외에는 구체적, 가시적 증거가 지극히 부족한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도 피해자의 강간 신고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몰고 가지 않았다. 마리 사건을 맡았던 워싱턴주 린우드 경찰서처럼 말이다. 피해자들에게 가장 회의적인 경찰들조차도 그들을 허위 신고자로 몰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강간 사건이 일어나지 앉았을 가능성을 상정했을 뿐이다. 함부로 피해자를 의심하지 않고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사건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거나 피해자를 허위 신고자로 매도하지 않는 콜로라도주의 경찰들 덕분에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고 실체 없는 강간 범죄를 계속할 수 있으리라던 오리어리의 망상은 철저히 분쇄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콜로라도 치안 전문가들은 딱히 분석하거나 비판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들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과 아무리 사소한 단서라도 포기하지 않은 직관, 자신의 노력과 직관을 기꺼이 다른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소통의 과정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강간이라는 범죄를 부정하고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간편하고 편리한 선택인지 워싱턴주에서 보았다면, 콜로라도주에서는 강간 피해자를 신뢰하고 그 사건을 끝끝내 해결해 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탁월한 헌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어렵고도 놀라운 성과인지 배웠다.


(스테이시 갤브레이스는) 학교에서는 영특한 학생이면서도 반항아들과 어울리는 편이었다. 자신이 권위에 반대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농구부에 들어가서는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 들켜 몇 게임 출장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탈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기에 교장이 그녀가 농구부 유니폼을 입고 체육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이다.-33

(형사인) (에드나) 헨더샷은 덴버 북서부로 점점 확장되던 교외 중산층 지역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은 인구 10만 명 정도의 근교 도시인 아바다에서 보냈다. 어머니는 동네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고 장로교회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했다. 아버지는 덴버에 있는 콜로라도주 의회에서 일하며 지역 정치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낀 둘째였다.

부모는 그녀를 여성스럽게 키우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릴 때부터 발레 수업에 등록시키고 피아노를 가르쳤다. 집 근처 미술관에도 정기적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가곤 했다.

피아노가 놓여 있는 거실에 들어가면 다정한 우리 엄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죠. 내가 피아노를 쳐주었으면 하는 눈길로요. 나는 엄마에게 있는 대로 짜증을 내죠. 제가 너무 성질을 부렸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정말 싫었거든요.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었어요. 그 한심한 피아노 따위 치고 싶지 않았어요.”-59

갤브레이스와 헨더샷은 강간범 검거를 목표로 협력하다가 빠르게 친해졌다. 두 사람 모두 외향적이다. 두 사람 모두 말장난을 좋아하고 화통하게 웃는다. 갤브레이스가 젊고 에너지로 무장하고 있다면 헨더샷의 경험은 갤브레이스의 열정을 보완해준다.

두 사람 모두 테스토스테론이 분출하는 법 집행기관의 세계에서 일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편이다. 골든과 웨스트민스터의 정식 경찰 중 90퍼센트가 남성이지만 갤브레이스나 헨더샷은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거나 주눅들지 않았다. 둘 다 남자 형제들 틈에서 자랐다. 여자 친구가 많지 않고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대차고 강인한 성격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140

 

 사건의 뒤엉킨 실태를 조심스럽게 풀어내듯 서술했다는 점 외에도, 그 속의 인물들을 가능한 한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인상적이었다. 제한된 분량 안에서도 이 연쇄강간 사건 속 인물들의 성격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단면을 공들여서 그려낸 덕분에 이 인물들 각각과 그들이 바라보는 사건 속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은 뛰어난 논픽션의 전형적이고 필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속의 인물 각각은 개별적이며 선택적이기에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연쇄강간 사건 해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갤브레이스와 헨더샷을 비롯한 여성 형사들은 물론 여러 여성 치안 관계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의 공간을 일정 부분씩 할당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이 연쇄강간 사건을 해결한 여성 형사와 경찰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각각이 어떤 동기로 경찰을 비롯한 법 집행기관에 투신했고 어떻게 일해 왔는지, 이 사건의 해결에 각자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지를 내용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공들여 서술했다. 이들 대부분이 한국과 미국에서 공히 여성적이라고 단정 짓고 평가하는 속성들과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에 충실하게 성장하여, 저마다의 의지에 따라 경찰, 형사가 되었음을 간명하게 보여 준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강간 피해자의 상이 존재할 수 없듯이, 전형적인 여성의 상 따위도 존재할 수 없고 여성을 향한 그런 사회의 압력이 사라지고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 맞는 길을 택할 수 있어야만 사회는 좀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이 여성 치안 관계자들 중 한 명이라도 여성적인 무엇을 강요하는 미국 사회의 압력 탓에 자신의 진로를 포기해 버렸다면, 오리어리는 검거되지 않았거나 더 많은 피해자에게 범죄를 저지르고서야 붙잡혔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리어리의 강간 행각은 끝장났다.

 

(마크 패트릭 오리어리)의 지시는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아이섀도 먼저 칠해. 이제 립스틱 바르고. 더 진하게. 입술이 진한 분홍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23

 

 동시에 오리어리가 미군 출신이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측면이 있다, 가장 남성적인 조직이며 이런 성격을 더욱 강조, 주입하는 군대에서 복무했다는 점이 그가 복무 중에 한국에서 주거 침입, 강간을 시도하고 전역 후에는 결국 이 범죄를 시행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남성들에게 남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강조하고 이것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하는 것은, 여성을 비하하고 지배하려는 왜곡된 사고 자체를 형성하거나 그것을 더욱 심화, 강화,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군 복무 이전까지 마크 오리어리는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지 여성을 지배하고 성욕을 채우려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인간이었을 뿐이지만, 그는 군 생활을 겪으면서 결국 연쇄강간범이 되었다. 범죄적 욕망을 품었던 자가 결국 그것을 주도면밀하게 실행하는 범죄자가 되는 과정에서 남성적 특성을 미덕의 핵심으로 주입하는 군대 경험은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을까? 오리어리는 2000년대 초반에 동두천과 서울에서 주한 미군으로 복무했다. 이 책에서는 미군과 한국에서의 삶이 오리어리의 범죄적인 성 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거의 서술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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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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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과 양육에 대해 내가 조금이라도 비난하는 기색을 보이면 아내는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입동)-19


 왜 남편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아내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남편 자신의 판단이 그래도아내보다 옳다는 교만한 확신을 품고 있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는다. 아내의 살림이나 양육 방식을 비난하기 전에 아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생각해 보는 남편이라면, 아내는 내가 비난하기만 하면 예민해지는 사람이라고 단정하듯이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입동의 남편이 아내의 살림과 양육 방식을 문제 삼을 때 아내의 이유를 고려해 본 흔적이 엿보였더라도 아내가 무척예민하게 굴었을까? 아닐 듯하다.

 

쓸모와 필요로만 이뤄진 공간은 이제 물렸다는 듯, 못생긴 물건들과 사는 건 지쳤다는 듯.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입동)-16

 

 하지만 저 남편은 아내를 보는 자신의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내를 단정하고 평가하며 그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너무 능숙한 것에 비해,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부담을 짊어진 자신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한다. 남편이 입동의 화자임에도 그는 놀라울 정도로 자기 연민에 빠져서, 스스로를 반성하지도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저 부부가 길고 깊은 단절까지 겪어야 하는 데는 그 사고에서 비롯된 아내의 고통보다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무능과 무지의 탓이 더 클 것이다. 슬피 우는 아내를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사려 깊은 남편을 연기하는 남편 자신에 대한 몰입이지, 아내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온 아빠가 본인은 나와 동생이 아들이어서 큰 병이 아니면 병원에 가기보다는 견디면서 키우고 싶었는데, 엄마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데려갔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부인의 흠을 잡을 맥락이 아니었는데도 굳이 그런 소리를 해서 한심했지만, 나는 엄마의 그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지금도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도록 성장했다는 정도로 답하고 말았다. 아내의 방식을 대놓고 반대하지 않고, 뒤에서 고시랑대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썩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70을 바라보는 아빠 세대에서나 통하는 수준이다. 나보다 딱히 늙지도 않은 입동의 수준에서는 어림없다.

 

 이 책 속의 작품들은 어쩔 수 없는 상실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이 속의 남성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가엾게 여기느라 바쁘다. 잃었거나 떠나간 것을 되새기거나, 자기 자신을 반성할 틈이 없다. 입동의 남편뿐만 아니라, 유기견 에반을 데려다 키웠던 노찬성과 에반의 초등학생 찬성, 마지막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비장함과 친구 결혼식에 다녀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태만함을 겸비한 건너편의 이수, 자신이 참여한 부조리한 상황에서 소중한 만년필 대신 경찰서 책상 위의 모나미 볼펜으로 이름을 적으며 자신은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풍경의 쓸모의 시간 강사 정우와 정우에게 돈을 빌리러 온 그의 아버지가 그렇다.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이나 신뢰를 배반하고서도 그것을 반성하기보다는, 그런 부조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회한을 되새기느라 분주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본인이 잘못한 상황에서도 본인의 마음과 상흔부터 챙기고, 오직 그것만 생각하는 사람들, 아픔만 있고 부끄러움은 없는 사람들. 따라가기는 쉽고 피하기는 어려운, ‘책임감 가득한남성들의 너절한 심성이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266

 

 이 책의 작품들 중에서 자신의 책임감을 변명거리로 이용하지 않고, 실천한 남성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도경뿐인 듯하다. 교사인 도경은 계곡에 빠진 학생 지용을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의 아내이자 이 작품의 화자인 명지는 부모가 없는 학생이었던 지용의 누나인 지은의 편지를 받고서,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남편의 죽음이 보여 준 삶의 의미를 더듬기 시작했다면, 자기 연민과 변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무책임과 부도덕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삶의 부조리를 견뎌야만 했다고 변명하기 위해서는, 그 책임감을 지키지 않고도 떳떳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진정한책임감이 꼭 있어야만 한다. 권속(眷屬)을 위해 삶을 바치는 가부장(家父長)의 알리바이다. 결국 가부장의 허울을 벗은 남성만이, 도경과 같이 진정한 책임감을 실천한다.

 

가끔 엄마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활달함이랄까 생명력이 실은 무례와 상스러움의 다른 얼굴이었나 싶어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내 사촌언니 두 명이 한 달 새 나란히 사고로 아이를 잃자, 엄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는지 모르겠다우리 집안 죄받았다 할까봐 부끄러워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고 했다. 그것도 상복 입은 사촌언니 앞에서. 엄마가 늙었나? 그새 분별력과 자제심을 잃었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럼 아버지도 죄받은 거야?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되묻자 엄마는 자신이 못 배우고 무식해서 그렇다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연금으로 근근이 살고 있었다. (가리는 손)- 202

 

 생각해 보니 이번에 처음으로 김애란의 책을 읽었다. 단편을 따로 읽은 적은 있었지만, 그의 작품만 모은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 주변에서 그의 글을 아끼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았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나름대로 조금은 짐작할 듯하다. 삶의 비루함이란 그저 하나의 순간에서 번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비루한 순간을 직시하지 못하는 비루한 태도에서 굳어 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이것이 한심하면서도 서글프다는 사실을 이렇게 선명하게 바라보는 경험은 언제나 소중하다. 너무 늦지는 않게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서 다행스럽다. ‘바깥은 여름인 계절에 온종일 머무는 방은 스노볼처럼 서늘하게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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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 - 세계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가 들려주는 박람강기 프로젝트 10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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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780밀리그램이면 모르핀 중독자가 맞는 평균량이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김미정 옮김, 유리 감옥, 오픈하우스, 149

(유리 감옥) 편집자는 내게 병원에서 통증을 다스릴 때 일반적으로 모르핀을 얼마만큼 사용하는지, 중독자들은 얼마만큼 맞는지 등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정확해야 했으므로 나는 이미 정확하게 썼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도서관에 가서 관련 의학서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결국 카터가 교도소에서 매일 맞는 모르핀의 양을 줄였다. -225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유리 감옥을 부랴부랴 읽은 것은 바로 이어서 이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하이스미스의 소설 중 유리 감옥이 이 책에서 주요한 사례로 등장한다기에 그 작품부터 사서 읽었다. 딱히 스포일러를 피하려 한 것은 아니고, 서스펜스 소설 쓰기를 다루는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유리 감옥을 먼저 읽으면 하이스미스가 이 책에서 유리 감옥을 제시해 말하려는 그 자신만의 글쓰기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이스미스가 유리 감옥이라는 작품을 현재의 형태로 완성한 과정을 더욱 폭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하이스미스의 이름을 처음 들은 때는 그의 재능 있는 리플리(리플리 1)가 원작인 앤서니 밍겔라의 영화 리플리>가 개봉한 2000년 초였을 것이다. 한창 이탈리아에 홀려 있을 때여서,영화보다도 그 나라를 배경으로 기묘한 범죄 소설과 그런 작품을 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던 듯하다. 하이스미스가 미국 태생의 여성이라는 점도 그 이유였을 것이다. 어린 내가 느끼기에 하이스미스는 여러모로 시야가 무척 넓은 작가였다. 하지만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2010년이 지나서야 한국에서 비교적 활발히 등장하기 시작한 까닭에, 그 이전에는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리플리 시리즈 전 5권도 2014년에야 전부 번역 출간되었다. 그 책은 나오자마자 구입했지만 여태 읽지 않았다.

 

 2016년에 토드 헤인스의 영화 <캐롤>을 보고 매혹되었다. 아마 지금까지 가장 마음에 든 영화 10편을 꼽으라면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원작 소설 캐롤이 하이스미스의 작품이었던 까닭에 그에게 매료되었다. 오랫동안 이름만 되뇌었던 작가에게 결국은 탄복한 셈이다. 희대의 범죄자를 창조해 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배경에 두고서 이토록 애틋하며 아련한 소설까지 자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결국 하이스미스가 쓴 다채로운 이야기들보다도, 그 모든 세계를 남긴 작가 본인이 훨씬 더 궁금해졌다. 이 책에서 유리 감옥에 한 장을 할애해서 다루지 않았다면, 아마 이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부터 읽었을 것이다.

 

내용을 잘라 냈더라도 보통은 잘라 낼 부분이 더 남아 있다. 잘라 내는 작업은 갈수록 더 고통스럽고 어려워진다. 마침내 당신은 어디서도 삭제할 만한 문장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나, 그러고도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도 무조건네 페이지는 통으로 더 빼내야 하는데." 그리고 재검토를 더 쉽게 하느라 아마도 다른 색 색연필이나 크레용을 쥐고서 첫 페이지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마치 과적재한 비행기에서 초과 수화물이나 심지어 연료까지 내다 버리고 있는 것처럼 가차 없어진 태도로 말이다. -192

 

 이 책에서 하이스미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려는 작가들이 출간에 이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술적인 요소들을 제시하는데, 그중 적절한 집필 분량의 유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강조한다. 마무리할 때까지 자신이 집필하는 작품을 작가가 입체적으로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작가가 계산하거나 절제하지 못하고 방만하게 풀어 낸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 없다는 하이스미스의 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작가가 마냥 자유로운 이야기는 독자에게 흥미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은 언뜻 보면 작가가 독자에 영합해서 본인의 창작욕을 배반한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정반대다. 하이스미스는 작가 자신을 위해, 작가 자신이 즐거운 이야기를 한 편의 글로 완성한다는 결과를 무엇보다 중시할 뿐이다. 작가가 자유롭게 상상하지 못한다면 독자가 즐길 만한 소설의 아이디어는 떠올릴 수 없으며, 이것이 단순히 작가의 즐거운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로 마무리되려면 작가가 지켜야 할 원칙이 있음을 하이스미스는 하나로 아울러 보여 주었다.

 

예술의 관건은 독자에게 흥미로운 것, 몇 분 내지 몇 시간이 아깝지 않은 무언가를 이야기함으로써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10

 

 이 책의 하이스미스는 자신이 그동안 쓴 작품들로 이룬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 동시에, 그것을 딱히 뽐내지도 않는다. 마치 자신과 같은 태도로 소설을 생각하고 또 쓴다면 누구든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결과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입장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 작가로서 하이스미스 정도의 성공, 명성, 부를 쌓기는 어렵겠지만, 그에 미칠 정도로 탁월한 작품을 쓰는 것은 그보다 쉬울 듯하다. 작가 자신의 흥미에 충실한 작품을 쓴다면 독자의 흥미도 끌 수 있다는 하이스미스와 이 책의 전제에 대한 의문은 이 책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이스미스가 정말 그 전제를 확신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이스미스는 확률이 아닌 원칙을 확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독자가 읽고 싶은 이야기는 작가가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쓴 이야기보다 그가 쓰고 싶어서 쓴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은 흥미가 없지만 독자의 흥미에 영합해서 혹은 그도 아닌 나름의 의무감과 사명감에서 쓴 이야기로 성공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쓴 이야기로 성공하기가 더 쉬운 것은 당연해 보인다.

 

경험 있는 작가들이 모두 그러하듯 다음과 같은 감각을 가져야 한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나온 지점에는 더 많은 아이디어가 있고, 처음으로 힘을 발견할 수 있었던 지점에는 더 많은 힘이 있으며, 살아 있는 한 당신은 고갈되지 않는다는 감각. 아무런 과장 없이 말하건대 그러려면 낙천적인 기질이 필요하다. -39

 

 결국 작가가 재미를 느끼는 아이디어로부터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끌어내기 위한 구상 단계에서의 유희적인 태도와 실제와 같은 소설을 이루기 위한 집필 단계에서의 심각한 태도가 결합해야 한다고 하이스미스는 설명한다. 무엇보다 소설의 재미, 그것도 작가 본인의 재미를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진지하면서도 경쾌하다. 무엇보다 낙천적이다.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상식에 가까울 뿐더러, 하이스미스 자신이야말로 자신이 느끼는 재미에 충실한 소설을 써 왔기에 소설의 재미에 대한 그의 강조야말로 공허한 훈계가 아닌 경쾌한 권유에 가깝게 다가왔다. 아이디어는 늘 곁에 있으니 놓치지 말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면 써 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소설이 될 것이라는 권유만큼 낙천적이고 경쾌한 것이 또 있을까. 나머지 조언들은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요령에 가깝다.


 『유리 감옥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궁금증이 있다.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혔던 한 남성이 그곳에서 심신이 망가진 나머지 결국은 사람들을 살해한 범죄자가 되고 만 이 스산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게 읽히는지 의아했다.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심각하고 근심해야 할 상황에서, 그런 느낌과 함께 긴장감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 다소 낯설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그 재미가 유리 감옥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하이스미스가 느꼈던 감정이고, 그가 이 암울한 이야기 속에서도 전하고자 했던 핵심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서스펜스라는 장르를 구성하는 틀은 본질적으로 생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에”(19유리 감옥은 거칠고 아프기 이전에 살아 움직이고 재미있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하이스미스의 재미는 이렇게나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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