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제학 입문 - 제2판
오정일.송평근 지음 / 박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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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사건도 불확실하면 위험이다. -155

 

 읽고 싶다는 의욕을 자극한 책은 아니었지만, 막상 읽어 보니 여러모로 유용하고 유익했다. 확실하게 예상하지 못했던 유익함이니, 이 책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유익함과 유해함까지만 분별할 수도 있고, 좀 더 나아가면 무해 무익함까지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유해하다고 판단된다면 비로소 그것이 발생할 확률, 즉 확실성을 논하는 것이 통상적인 접근 방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큰 이익을 안겨 주는 사건이 아니라면 유익한 사건의 확실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물론, 그 확실성이 높지 않을 때 유익한 사건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익숙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법경제학에서만큼은 이런 사고야말로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하다. 저 짧은 결과뿐만 아니라 동기를 중시하는 법과 비용 대비 효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 주었다.

 

 단순한 원리 원칙의 차원이 아닌 국가의 일부로서의 법의 작용을 생각할 때, 법의 목표는 단순히 좋은 결과를 늘리거나 나쁜 결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적은 자원을 투여해서 좋은 결과를 늘리거나 나쁜 결과를 줄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법과 경제학의 관계는 깊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비교적 평이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적 사고에서 필요한 수식들이 군데군데 등장하고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범죄의 유일한 척도는 사회에 끼친 해악이다. 범죄자의 의도가 범죄의 척도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151

 

 극악무도하거나 법망을 피할 정도로 교활하고 교묘한 범죄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더 엄한 법률과 처벌로 이런 사건들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높아진다. 흔히 발생하는 무수한 범죄들이나, 지금 있는 법으로 별 문제없이 붙잡아서 처벌하는 사건들보다는 그런 흐름에서 벗어난 예외들로 시선을 모으고 붙잡기는 쉽고 당연한 일인 까닭이다. 하지만 오직 그런 소수 범죄자들의 악랄한 의도와 동기에 집중하며 그것들을 분쇄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이나 더 강력한 처벌만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간편한 주장이다. 유익한 사건의 확실성이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 대신에, 그렇게 남은 에너지를 오직 유해한 사건을 모조리 없애는 방법을 주장하는 데 쏟아 붓는 듯하다.

 

 대중의 감정이 폭발하는 척도는 범죄자의 의도일 수도 있고 때로는 범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법이 범죄를 재는 척도는 무엇보다도 그 결과, 즉 사회에 미친 해악일 수밖에 없다. 법률적 절차인 수사와 재판과 처벌 그 모두에 이 사회의 자원이 투입되므로,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해악이 큰 범죄부터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해악이 큰 범죄는 도처의 주폭, 잡범들처럼 개별적으로는 해악이 사소하더라도 모방이 쉬워서 집합적으로 큰 해악을 이룰 수도 있고, 금융 범죄처럼 그 자체로 무수한 피해자나 막대한 피해를 양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크게 자극했는지는 그 범죄의 해악 혹은 규모와 무관하다. 그것까지도 범죄의 해악으로 간주해서 그런 범죄를 해결하는 데 사법 자원을 투입한다면, 해악이 큰 다른 범죄의 해결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국가가 적발률이나 형량을 올리면 범죄가 줄지만 집행비용(enforcement cost)이 증가하므로 범죄를 근절하기보다는 적절한 적발률과 형량의 조합을 선택하여 효율적인 수준에서 범죄를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효율적 범죄를 유도하는 형량 중에서 집행비용이 가장 작은 것이 최적 형량이다. 효율적 범죄는 무엇인가? 범죄의 기대효용이 범죄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 이상이면 이러한 범죄는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범죄의 사회적 비용이 100원일 때 범죄의 기대효용이 110원이면 효율적 범죄이지만 범죄의 기대효용이 90원이면 효율적 범죄가 아니다. - 144

되갚음은 정의의 문제이지 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한 정의보다 평등한 부정의가 심각한 문제이다. -171

 

 물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범죄는 박멸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믿을 수도, 외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범죄를 낱낱이 수사, 재판,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행정적, 사법적 자원이 무한하다고 믿는다면 현실 감각이 결여된 것이고, 이 사법 절차에 소요되는 자원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범죄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결국 처벌할 범죄를 자의적으로 선별하거나, 어떤 범죄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뿐이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모든 범죄를 차별 없이 적발한다면 결국 정부나 국민이 내키는 대로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범죄의 해악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그것이 국민 감정에 미친 영향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 자체의 증가나, 피해의 범위, 규모와 동등하지 않은 범주인 여론으로 범죄가 미친 해악을 측정한다면 그 역시 차별하지 않고 처벌하려다 아무나 처벌하거나 아무도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방조할 뿐이다. 내 기분 혹은 우리의 기분이 범죄의 심각성과 무관하며, 처벌하는 사건이 늘어나는 만큼 처벌할 사건은 줄어든다는 사실은 불편한 만큼 유용하다. 어떤 법일지라도 근절해야만 하는 것들을 근절할 수 없고, 오히려 적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은 그저 인정하기에는 너무 불편하지만 마냥 무시하면 겪게 될 그 결과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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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척도 - 도쓰카 교수의 마지막 강의
도쓰카 요지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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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되고서도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들였고, 그때로부터도 또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해를 넘겨 가며 읽었다.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과학책을 편집하고 있었으니, 무엇인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구입했겠지만, 정작 읽은 목적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니 조금 우습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조차도 예상과 결과가 이렇게 멀다니.

 

 저자인 물리학자 도쓰카 요지(戶塚洋二)가 작고한 지 1년 남짓 지났던 2009년에 이 책이 한국어로 나왔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후로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언급한 소립자 물리학의 향후 과제 중에는 이미 성과를 얻은 것도 있고, 또 여전히 그의 바람대로 진행 중인 것도 있겠지만, 그 각각이 무엇인지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다행히 그런 시의성의 문제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과학은 단지 수식이 관측에 맞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리학자가 흔히 말하는 대사입니다만 이 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이 식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식은 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막스) 플랑크는 머리를 쥐어짜며 식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고 결국 혁명적인 아이디어, ‘빛은 알갱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알갱이라는 것을 어려운 말로 양자’(quantum)라고 합니다. -141

 

 실제의 생활, 일상과는 너무나 멀게 느껴질지라도, 실은 그 생활의 가장 깊은 토대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그 원리를 끊임없이 규명해 나가는 과학 연구의 원칙과 태도를 아울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늦을 수가 없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내가 가까이에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과학자, 연구자들이 어떤 이론적, 학문적 원리 위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유용했다. 수식과 관측이 부합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겠지만, 그 이상의 설명을 추구하며, 그것이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그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가설을 도출해 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가설을 결국 확인해 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이 세계를 설명해 내고 있다.

 

원자에는 너무나도 틈이 많기 때문에 원자가 가득 모여 만들어진 지구조차도 뉴트리노의 입장에서 보면 틈이 많은 구조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뉴트리노는 나아가는 방향도 바꾸지 않은 채 관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이것이 뉴트리노가 지구나 태양조차 그냥 관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약력만으로 조망하는 뉴트리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175

 

 무엇인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는 방식은 지극히 인문학적, 혹은 문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여겨진다. 일상적인 사고,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엄밀한 수단으로 보이지는 않는 까닭에, 극히 미세한 소립자인 뉴트리노의 입장에 연구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그 뉴트리노가 보았을 때 이 지구와 세계가 얼마나 빈틈이 무수한 곳일지를 인지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꼭 그만큼, 생소하고 놀랍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연구자의 일상을 접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연구와 일상이 언제나 함께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연구가 일상과 전혀 다른 세계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 그 사이에서 항상 자신의 사고를 적절히 변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항상 잊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과학자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한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예를 들어 인공위성 안에서는 시계가 천천히 간다는 유명한 현상이 있습니다. 시계가 느리게 가는 이 현상도 관측으로 정밀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약 11천 마일 상공을 12시간에 일주하는 24개의 GPS(위성항법장치) 위성(6궤도면에 4개씩 배치), 추적과 관리를 하는 GPS위성의 관제국, 위치 추적을 하기 위한 이용자의 수신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GPS위성에 탑재된 시계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이 시계는 하루에 100만 분의 1초가 늦어질 것입니다. 시계가 이렇게 늦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위치에 1.6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특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157~158

 

 기초 과학 연구의 실용적의미를 따지는 주장은 너무 뻔해서 상투적이라는 표현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그것이 아무 실용성이 없다는 대체 무슨 문제일까 싶고, 과학자들의 고용 창출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다가 그런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이야말로 비실용성의 화신이라는 확신을 품은 지 오래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관계를 설명하는 저 대목에서 일본에도 비실용성의 화신이 적지 않은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괜한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성취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느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그들의 보다 편리하고 오차가 적은 생활을 위한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다. 한 푼 놓고 한 푼 먹는 실용성을 투정부리는 얄팍함이야말로 실은 기초 과학의 이 비가시적인 명확함에 너무 크게 빚지고 있다.

 

 어려운 부분을 억지로 깎아 내거나 피해 가지 않고, 그 부분을 포함하는 현대 소립자물리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저자 도쓰카 요지의 서술은 성실할 뿐만 아니라 친절해서, 훌륭한 대중서의 미덕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그가 스스로 굉장한 인물이라고 표현한 과학사학자 아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1960년 도쿄대 입학 동기이며, (국회 데모에도 참가했지만) 자신은 (야마모토와 달리) “정치운동에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학자가 학문에 이르는 길도, 그 학문을 닦는 길도 서로 얼마나 다르고 멀 수 있는지, 그와 동시에 또한 그 길들이 결국 얼마나 서로 비슷하고 가까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자신의 세계를 치밀하면서도 유연하게 소개한 이 소품은 그 경로들의 근사한 만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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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기술 - 이해 못 할 세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유지니아 쳉 지음, 김성훈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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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펼치며 언제나 누구나 논리로 제압할 수 있는 비법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정공법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반대 방향에서 놀라웠다. 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수학과 논리의 관계, 그 활용의 방식과 가능성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구축해 올림으로써, 논리와 수학의 현실적 가치를 수용하고 이 둘을 아울러서 일상적인 사고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근본적인 구조를 밝힌다. 논리와 수학 자체의 이론적 역할을 드러내기보다는, 이 둘의 관계가 지금의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독자가 논리학과 수학을 활용하려는 방향에 따라서 이 책의 효용은 다소 다르겠지만, 논리의 근본적인 가치와 그것의 기본적인 활용 방식, 그리고 여기서 수학이 갖는 역할의 중요성을 숙지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원래는 아래와 같이 양립 가능하고 합리적인 두 개의 주장이었다.

 

A: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어리석고 적대적인 주장으로 갈아타고 만다.

 

A: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아무도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 -373

 

 서구 사회에서 전개 중인 대다수의 소모적인 논쟁 중 아주 간단한 논리의 학습과 적용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논리를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학습의 결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폐기해야 할 뿐이기에, 논리를 학습할 동기도 이득도 없으니 실상 이 타당한 논리를 적용해서 실제 현실의 논쟁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정당한 근거가 없는 자신의 주장이 이미 더없이 타당한 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지적도, 그 주장 대신 타당한 노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설득도 적절한 동기로 작용하기가 어렵다. 잘못된 주장을 옳은 논리라고 믿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타당하다고 믿는 논리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에 승복하고 그것을 학습하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지적 성취에 앞서서 지적 파탄에 가까울 가능성이 충분하다.

 

 소모적 논쟁이 끝나지 않는 것은 논리가 어려워서도, 옳지 않아서도 아니다. 논리가 가장 필요한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비논리적인 인간인 까닭이다. 논리의 내용도 그 학습도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어려운 것은 그 쉬운 논리를 배우게 만드는 일과 그 논리를 배운 후의 일이다, 논리의 구조를 습득한 후에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오로지 버리고 바꾸기만 해야 한다면, 대체 그는 왜 논리를 익혀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그는 이 논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논리를 익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지만, 이런 입장을 타인에게 설득할 자신은 별로 없다.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의 자아와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동일시해야만 안정되는 자아를 지녔으며, 실은 더없이 불안정한 자아가 너무나 안정적-왜곡된 방식으로-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양쪽 모두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두 사람 다 어리석다는 얘기도 아니다. 논리적인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리에서 출발하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442

 

 그럼에도 어떤 논리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중에서도 옳은 논리의 사고 체계를 토대를 구축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이 책의 주장 자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개개인들의 입장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그것은 각자의 선호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까닭에, 이 개개인들이 보다 보편적으로 소통, 절충할 수 있는 사고와 언어의 논리는 여전히 중요한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논리적인 사람들에게도 논리는 필요하다. 그들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발언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며, 또한 논리를 전개하고 구축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로 타인의 논리와 소통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사람들도 논리의 구체적 요소와 구조를 이해할 필요는 크다. 아예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훨씬 크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논리적 함축은 한 조각의 증거보다 훨씬 강력하다. 논리적 함축은 무언가가 분명하게 참이라는 의미다. 반면 증거는 무언가가 참일 가능성을 높이는 데만 이바지할 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증거는 무언가가 참이라는 논리에 기여할 수 없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정당화뿐이다. -128

내가 위에서 내린 논리적인 사람의 정의를 바탕으로 사람을 비논리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1. 자신의 신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2. 자신의 근본 신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할 수 없는 것을 믿거나

3. 자신이 믿는 것에 자신이 믿지 않는 논리적 함축이 담겨 있거나 -420~421

 

 이 책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것이 인류 사회에 만연한 소모적인 논쟁과 폭력적인 비논리성을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왜 논리를 학습해야 하는지, 어떻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학습하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앞에서 그 부분을 지적한 이유는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식이란 결국 질병에 걸리지 않은-혹은 증상이 상당히 가벼운- 사람들에게만 투여하는 치료약을 투여하는 것처럼 한계가 명백하다고 생각해서다. 동시에 그럼에도 인간의 논리적인 성향과 논리적인 사고는 분명히 구별되는 까닭에, 논리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그 성향을 보편적인 체계로 구체화하여 타인과 소통할 가치와 필요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았다.

 

 어떤 놀랍고 번득이는 논쟁의 묘수를 전수해 주지는 않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논리의 원칙들이 무엇이고 그 각각은 어떤 관계들을 맺는지, 논리를 무시한 현 시대의 인간들이 어떤 비논리에 함몰되어 서로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들을 일으키는지 명쾌하게 지적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무척 유용한 독서였다. 논리를 학습하고 숙지하여 실천하는 것이 막연한 당위성의 요구가 아니라, 개개인이 보다 효율적이며 호혜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임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유용한 방식은 드물 것이다.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논리를 받아들이고 써먹는다면 적어도 모두가 말꼬리를 잡는 것보다는 개개인은 물론 사회도 여러모로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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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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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20년 전에 무척 재미있게 보았던 책의 개정판을 다시 읽을 때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는데,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진중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오히려 도움은 더 많이 된 듯하다. 이 개정판의 진중함은 초판 이후 관록이 붙은 저자 본인과 개정판이 되면서 번역 자체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듯하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시작해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정립한 행동 경제학에 이르는 경제학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유창하게 정리해 주었다. 물론 분명 내 기억 속에서 이 책은 각 장의 경제학자에 대한 저자 본인의 개성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저작이었는데, 지금 보니 가능한 한 보편적이고 교과서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내가 경제학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다는 반증이라면 타당하기는 한데, 지금까지도 딱히 나아진 것이 없어서 이 책을 다시 만났더니 그 사이 주워들은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재미가 적었고 도움은 되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는 왜 유치산업보호론을 반대했을까? 스미스는 유치산업이 성장한 뒤에 정부가 기존에 폈던 관세 정책 등 보호 정책을 철회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런 산업은 다 큰 뒤에도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고, 젖을 달라고 떼를 쓰며 울부짖을 것이다. 아니면 논점이나 전략을 바꿔, 이제는 임종을 앞둔 노인네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침을 흘리면서 무조건적인 보호를 요구할 수도 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은 이상의 두 가지 전략을 모두 사용했다. 처음에는 노망든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나중에는 다시 태어난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렸다. 그러나 철강 산업 보호는 다른 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와 달리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철강의 가격이 상승하면 냉장고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철강이 사용되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서 기계류의 수출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96~97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만성화된 문제다. 어떤 하나의 동기에서 똘똘 뭉친 이익 집단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결과에서 사소한 몫을 가져가는 개별 소비자들의 이해관계는 철저히 짓밟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이득은커녕 국가적 효율성과 소득의 하락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개 특수 이익 집단들은 공공의 복리에서 아주 적은 몫만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몫이 하나로 뭉치면 무시 못할 크기이지만. -493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치산업보호론의 의의를 강조해 온 장하준 교수 덕분에 이 주장에 타당한 지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정부의 정치적 의지 탓에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결국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예측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스미스의 이런 입장은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학파와 연계해서 생각한다면 타당성이 더욱 강해진다. 공공의 복리를 침탈하려는 이익집단의 가열찬 노력 앞에서 이 복리를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너무 미약하고, 개별 소비자들은 각자의 손해가 너무도 적은 까닭에 이익집단에 맞서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익이 되는 측면조차 있다는 공공선택학파의 지적은 현대 사회의 분업화, 세부화를 반영한 애덤 스미스의 입장이라고 이해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


 반면에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불완전하고 무책임한 정부 및 관료(공무원)의 문제를 지적하는 공공선택학파의 입장은 현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맹점을 직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공공선택학파를 다룬 장에서 케인스의 이런 측면을 자세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했는데, 이는 단순히 케인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크고 작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 경제학에서 케인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반증한다. 물론 저자는 굳이 이런 의미까지는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케인스의 의의와 한계 양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려는 입장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 및 시장의 자율성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그것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닥칠 파국의 규모와 위험성을 우려하여 이를 방지,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과 그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 서로 교차하며 성장해 온 근현대의 서양 경제 사상사를 하나로 아울러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는 점이 이 책의 의의인 듯하다. 이렇게 간명하게 적으면 당연하고 평이한 작업처럼 들리지만, 이 책에 담긴 경제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예리하고 치밀했는지를 생각하면, 어느 한 입장, 추세에 심하게 기울지 않고 가능한 한 중심을 지켜 가면서 그 역사를 관통한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성과다. 이 책이 여전히 나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추측한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대공황 이래로 입지를 강화해 왔던, 정부 역할의 확대를 기조로 삼은 케인스 및 케인스주의의 관점보다는 케인스 이전부터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서양 경제학의 핵심 교리와도 같았던 자유 시장의 효율성과 합리성, 혹은 시장 경제와 자유주의의 가치에 약간은 더 무게를 두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입장은 이 개정판이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장 원리의 명분 아래 금융 기관들의 시민들에 대한 약탈적 대출을 방임한 결과로 폭발한 모기지론 부실 사태가 초래한 2007~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야말로 이 책에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암시하는 정부 개입의 필연에 가까운비효율성과 시장 원리의 궁극적 정합성과 합리성의 허점을 가장 잘 드러내 주었던 까닭이다. 정부는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잃겠지만 그 전에 지금 당장 사회에 밀어닥친 무수한 경제적 난관을 해결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장은 궁극적으로 효율성을 찾겠지만 그 전에 얼마나 크고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는 알 수 없고, 시장이 그 희생 후에도 정말 존재할지는 시장조차도 알지 못한다.

 

(앨프리드) 마셜은 수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 도구 중 하나인 탄력성e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거시 경제미시 경제를 막론하고 오늘날 거의 모든 경제학적 논쟁은 탄력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정부 정책은 암암리에 또는 드러내 놓고 탄력성 문제를 다룬다. 이처럼 오늘날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주변을 떠도는 탄력성이라는 유령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탄력성은 반응도responsiveness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가격 변화에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할까?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지는 것에 맞춰 소비를 조절할까? 아니면 가격에 상관없이 항상 적정 소비 수준을 유지할까?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상품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332~333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어떤 특정한 경제학으로의 귀결이나 그 입장의 정당성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의미는 없고, 손해는 크다. 그보다는 각각의 입장이 도출되고 성장해서 한계에 직면하고, 그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입장이 도출되는 경제학의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조망하고, 여전히 현재의 경제학에 영향을 미치는 그 과거 이론들의 개념과 관점, 혹은 그 흔적을 개괄할 수 있다는 데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의의를 찾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의 경제적 가치는 어떤 직관이나 통찰보다는 그것과 오히려 거리가 있는 요점과 정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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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없는 외출
휘리 지음 / 오후의소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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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푸른 그늘이 한가득 담긴 책과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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