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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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는 분명 선량할 것이다. 스스로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사람이 사흘 밤 연속으로 마주친 아기 고양이를 위해 통조림과 스크래치 기둥을 샀다는 결말부에서 그 사실을 확신했다. 그를 어떤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읽는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고양이가 매듭을 지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 준 이 작품 속 는 좋은 사람이다.

 

 이 점을 확실히 하고서야, 역시 좋은 사람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화자는 이 고양이를 거두었듯이 석사 과정 동기인 빌리 캠벨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인간은 고양이와 다르다. 인간은 일방적인 호의를 받아도 얼마든지 마음속에 악의를 쌓을 수 있는 존재다. 그 호의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과 베푸는 자에 대한 부담감 역시 갖는 것이 인간이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서도 뉴욕에서의 생활비, 주거비를 감당하기 버거워서 컬럼비아 대학교 순수예술 석사과정(MFA)을 그만두고 장학금에 급여까지 받을 수 있는 좀 더 생활비가 저렴한 도시의 학교로 편입하려 했던 빌리의 처지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1주일에 한 번 청소와 때때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 지내던 곳보다 훨씬 쾌적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자는 화자의 제의는 믿기 어려운 호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의한 화자 본인이 자신의 제의가 얼마나 관대하고 경이로운 것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화자가 빌리에게 베푼 호의는 그 자신도, 빌리도 계속해서 의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화자는 빌리가 자신이 베푼 호의에 부담감을 느낄까 봐 끊임없이 의식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빌리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가 절대 잊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그런데 애초에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이 자신의 거처를 자신보다 재능 있는 친구에게 제공하고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범인(凡人)에게는 선을 행하기보다 그것을 자부(自負)하지 않기가 훨씬 어렵다. 화자는 빌리에게 집을, 함께 먹는 식비를, 술값을,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보스턴이나 빌리의 사촌 결혼식에 함께 다녀올 비용 대부분을 하염없이 들이부으면서 혹시 그가 자신에게 부채감을 느낄지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실상 화자의 바람은 빌리가 자신의 도움에서 느끼는 거북함을 드러내지 않고 그가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지 않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빌리가 화자에게 끊임없이 신세를 지며 느꼈을 빈곤에 대한 자괴감, 불안감 자체는 언제나 화자의 관심 밖이었다. 언제나 에게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가난하지만 문재(文才)가 탁월한 대학원 동기에게 호의를 베풀고서 생색내는 속물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 호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빌리가 그렇게 당장의 곤란을 해소한 후에는 항상 직면했을 슬픔과 고통에 는 언제나 너무나 무책임했다. 빌리의 곤궁을 해소해 준 사람이 언제나 였기에 빌리에게 열등감을 상기시킨 사람도 늘 였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화자는 그 사실에 너무도 무지했다. 빌리와의 관계를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함께 흡입할 코카인값까지 내고서는 빌리가 여태 교묘하게 자신을 이용했다며 분노하던 후반부 장면에서, 재능 있는 친구의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그의 입장을 고려하는 데는 너무도 무능했던, 결국 자기 자신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었던 화자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빌리에게 베푼 호의를 감당하지도 잊지도 못했다.

 

 빌리는 의 생각보다 그에 대해 훨씬 많이 알았다. 그의 배신에 가까운 행위는 물론, 빌리 자신이 항상 그에게 신세 지는 처지라고 화자가 의식하고 있음을, 실상 화자는 빌리의 모멸감보다 자기 체면에 연연할 뿐임을 간파했다. 단지 화자가 아무것도 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빌리를 너무도 몰랐던 를 너무나 잘 알았던 빌리 사이의 파국은 필연이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이야기는 빌리가 몰랐던 단 하나, 그를 향한 의 애정이 있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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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 로봇 기술 활용에 앞서 알아야 할 법 제도 이야기 SPIKE 총서 1
정상조 지음 / 사회평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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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타깃Target임신예측지수알고리즘을 이용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임신 가능성을 판단한 뒤 임산부가 필요로 할 법한 상품의 광고를 발송했다. 그 결과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어느 10대 청소년의 아버지가 딸이 잘못된 임산부 관련 광고를 받았다고 화를 냈다가, 뒤늦게 딸이 실제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타깃의 알고리즘이 아버지보다 먼저 딸의 임신을 예측한 결과였다. -121

 

 인공지능(AI)의 발달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쟁점들을 일반 대중들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 책이다. 각 사안에 대한 깊은 지식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아직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 개념인 인공지능이 이미 삶 속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어떤 별도의 대단한 기술이나 기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중인 존재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달리 인공지능은 인터넷상의 책이나 그림 또는 음악을 학습하려면 데이터를 복사해서 서버에 저장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학습은 언제나 디지털 복제를 수반한다는 뜻이다. 이 복제 과정 때문에 로봇이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학습할 때마다 저작권법이 문제시된다.

사람이 저작물을 학습하는 행위와 달리 인공지능의 데이터 학습은 법 위반의 지뢰밭을 통과하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모험이다. 상식과 달라서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현행법상으로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거나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하지 않으면 저작권 침해 행위다. 그런데 인터넷에 공개된 콘텐츠를 수집할 때 현실적으로 일일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기 어려우므로, 현재 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논쟁거리는 결국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58~59

 

 또한 인공지능이 기존에는 생각지 못했던 법적·제도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간명하게 서술한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그 핵심 재료인 데이터를 현행 저작권 법제하에서는 인공지능이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대목은 그중 하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생산한 저작물 즉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이용하는 이유가 해당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 또는 감정을 누리거나 타인에게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표현이용non-expressive use”(78)인 경우에는 저작권 행사를 제한하도록 개정된 일본의 사례까지 소개하면서 인공지능과 데이터 간 불가분의 관계, 현재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며 발달하는 방식을 파악하도록 돕는다. 인공지능이 기존의 저작권 개념이 바뀔 필요성을 제기하듯이, 앞으로 법률과 제도는 계속해서 인공지능의 발달 경로를 의식하며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인공지능이 판결문과 사건 관련 서류를 학습하고 분석할 수도 있으므로, 판결문 공개는 일반인과 로봇의 감시를 통해 반복되는 사법 적폐를 해결할 첩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5년도 기준으로 법원이 처리한 150만여 건의 소송 중 겨우 0.14퍼센트에 해당하는 2,100여 건의 판결문만이 공개되고 있는 현 실정에서는 인공지능이 판례를 충분히 분석하기 어렵고 따라서 분석 결과의 정확성과 신뢰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판결문을 계속 공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년 내에 로봇 시대의 사법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76~77


 인공지능이 기존 법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분야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는 재판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해 법원의 판결문이 더 많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지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보호한다거나 사법부의 독립성 유지라는 명분으로 판결문의 외부 공개에 소극적인 기존 방식으로는 한국 사법제도가 세계적 변화를 따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은 저자가 법학 교수인 까닭에 한층 더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인공지능이 활용하기 위한 데이터 확보의 목적은 차치하고라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대행하는 사법부의 판결문이 저렇게까지 폐쇄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온당하지 않다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사법부의 업무 부담을 경감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인공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판결문 공개가 크게 활성화된다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사법부가 취해 왔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바뀌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 역시 인공지능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은 현재 각국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고스란히 반영된 데이터들이 인공지능 학습에 이용되면서 이 편견과 차별이 더 크고 강하게 재생산되는 문제, 인공지능이 계량화 가능한 경제력,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현재의 차별과 배제를 심화시키는 명분이자 도구로 이용되는 문제, 보다 적극적으로 인공지능이 합리성을 가장한 더 효율적인 배제와 차별의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 등 현 사회의 모순이 인공지능과 맞닿는 문제들 역시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이미 어느 정도 접했거나 생각해 보았을 주제들이어서 새롭지 않을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주요한 사례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주어서 유용했다. 현재의 법률과 제도, 그리고 이론이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한 개별 사안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 책의 의도가 애초에 개론적인 수준에서 소개하는 데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인공지능이 추천한 음악을 듣고 맞춤형 광고를 보고 자란 청소년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강조하는 결론은 상당히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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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 비합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시작된다 오봄문고 2
박이대승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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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상정하는 독자는 누구인가? 물론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일 것이다. 2019년 내려진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에 대한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낙태죄에 대한 합리적인 찬반 입장을 지닌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인 까닭이다.

 

앞 장에서 언급했듯, (낙태죄) 합헌의견은 모자보건법이 규정한 다섯 가지 경우에 한해 낙태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태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다르지 않다면, 더구나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면 어떻게 예외적 임신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가? -84

 

 그 이유로 저자는 태아의 생명과 태아의 생명권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태아의 생명과 생명권 중 어느 쪽을 인정하더라도 태아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즉 태아를 그 생명권이라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함을 뜻하므로, 태아를 인간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도 생명권을 박탈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이 책은 강하게 지적한다. 결국 태아의 생명과 생명권을 혼동하는 주장은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워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낙태를 금지하면서도, 출생을 용인하기 어려운 경우의 태아에 한해서는 생명권의 주체가 아닌 보호 필요성이 적은 생명을 지닌 객체로 대우하며 이러한 비일관성을 은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지적은 어떻게든 종교적·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태아는 낙태하는 동시에 이 외의 경우에는 모든 태아가 출산되어야 하는 것이 같은 종교적·윤리적 논리하에서 일관성을 지닌다는 반론을 받을 수도 있다. 동시에 아예 어떤 경우에도 낙태는 옳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일관성을 지키려는 반박도 가능하며, 실제 존재한다. 결국 둘 다 스스로의 입장이 일관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특히 후자의 입장은 주로 강간·근친상간 등 극단적인 사례에 기인한 태아의 출산이 딱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낙태에 반대한다기보다는 그 외의 낙태를 반드시 금지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런 경우의 낙태까지도 반대하는 것에 가깝다. 즉 스스로 생명권의 주체라고 주장하는 태아의 살인을 허용할 수 있는 경우를 인정하면 일단 논리적 일관성을 의심받게 되므로, 그 예외마저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아는 출산 후의 일간과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이므로 강간·근친상간으로 인한 경우에도 낙태는 불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반 시민들의 상식과 윤리관에 수용될 수는 없으며, 그들의 의지를 대표하는 정부의 법률과 제도에 반영될 수도 없다. 사실상 도그마로서의 논리적 일관성을 성취하는 대신 모든 현실적·일반적 제도화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모자보건법

[시행 2021. 1. 1.] [법률 제17007, 2020. 2. 18., 타법개정]

14(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것은 낙태죄 합법 측의 입장에서는 논리적 비일관성을 지적받아서 극복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설득력이 결정적으로 소거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즉 실익이 없는 전략임이 드러났다. 여기서 낙태죄 합법 측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먼저 낙태를 실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존속·관철하는 것과 그 처벌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중에서 전자를 택했다. 그리고 이 낙태죄 존속·관철과 모자보건법14조에 속하는 태아의 생명권 중에서 역시 전자를 택한 것이다. 이 일련의 선택에서 태아를 인간과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이자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고려한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어떻게든 낙태죄로써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는 강제적·통제적·일방적 의지·목적이 존재할 뿐이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자보건법14조에 속하는 태아의 생명권은 박탈하여, 즉 수단으로 삼아서 일반 대중이 낙태죄를 받아들이도록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을 낙태죄로 보호할 수 있는 다수 태아의 생명권을 위해서 극히 일부의 생명권은 어쩔 수 없이포기한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미 낙태죄 합법 측이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 즉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적어도 태아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상시적으로일부분을 살해해서 대부분을 살리는 협잡(挾雜)을 정당한 타협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결국 낙태죄를 옹호함으로써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가 아닌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객체로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미 낙태죄가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은 현 상황에서 이것이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는 사실상 두 가지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하나는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이므로 모자보건법14조를 포함한 모든 낙태가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일반적 설득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현실의 법과 제도 밖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태아가 인간과 같은 생명권의 주체가 아닌,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종속된 생명체로서 여성 자신의 의지에 따라 중단시킬 수 있으며, 여성 자신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혹은 기간에 한하여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길이다. 결국 태아가 출산 후의 인간과 동일한 생명권의 주체임을 인정하느냐가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이런 이유로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규제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권리, 예컨대 소유권을 규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문화재나 멸종위기종 동물이 개인의 소유물이라 할지라도, 국가는 그것들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소유자가 자기 소유물을 파괴하거나 죽일 권리를 부정할 수 있다. 이때 제한되는 것은 소유권의 일부다. 반면,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 자신에 대한 권리다. 따라서 임신중단 금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 즉 인간의 자율성 자체를 제한하는 것 혹은 그 권리의 핵심 요소를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다. 태아의 생명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중대한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익을 위해 인간의 자율성과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08

 

 첨언하자면 이 책은 여성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 임신 후 특정 기간 이후의 낙태를 법률로 규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분량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비록 여성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 해도 일정 주수를 기준으로 삼아 획일적으로 낙태를 규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듯 보인다. 물론 여성 자신을 위해 낙태가 의학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시기까지 임신을 유지한 여성이 그때서야 낙태를 원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겠지만, 이 경우에도 임신중단이 전적으로 여성 본인의 의지에만 귀속되는 문제인지는 좀 더 언급했어야 이 책의 제목 자체인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의 범위가 더 명확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권리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자 기본권의 본질로 보는 이 책의 입장에서는 그 한계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여길 수는 있겠지만, 그 현실적 상황 역시 무시하기는 어렵다. 물론 여성 외의 국가를 포함한 제3자가 임신중단에 허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굳이 이 책에서까지 반드시 인정해 둘 필요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런 가능성의 고려조차 어떻게 악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낙태가 여성 자신의 건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1973년 미국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서 비롯된 삼분기trimester 체계에 근거한 낙태 규제를 어느 선까지 수용할지, 가능한 한 거부할지에 대한 이 책의 입장이 다소 모호해 보인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발상은 법 외부의 도덕적 영역들, 예컨대 태아의 생명에 일차적 가치를 부여하는 전통적 믿음이나 종교적 신념 등에서 탄생한다. 이런 영역들에서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도덕 규범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런 규범을 법질서 내부로 가져올 수는 없다. 결국, 인간 여성과 비인간 태아의 법적 지위를 뒤집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태아의 생명권이다. 이런 꼼수의 목적은 태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 태아의 생명권은 대부분 임신중단에 관한 논쟁에서만 주장되고, 그 주된 기능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태아 생명과 관련한 다른 문제들, 예컨대 태아가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에서 태아의 생명권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임신중단 논쟁에서 태아의 생명권이 등장하는 순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믿음, 그리고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주의적 믿음이 뒤섞이게 된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가부장주의적 장치를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규범 자체가 가부장주의에서 태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태아의 생명권 개념과 가부장주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86~87

국내의 낙태죄 조항은 애초 태아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 어려운데도 이를 조항 유지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까? 더불어, 임신중절을 제한하는 방법이 임부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의료인을 처벌하는 동의낙태죄만 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의료 시술을 제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김준혁,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71

 

 이 시점에서 낙태죄의 부활·존속·관철을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 생명권의 주체로서 인간과 동등한 태아의 존엄성을 존중한 결과는 아님을 이 책은 간명하게 보여 준다. 모자보건법14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여성이 낙태하는 것이 합법이고, 그 외의 모든 경우는 여성이 낙태를 원하더라도 출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은 낙태죄의 목적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아닌, 여성의 자기결정권 통제에 있음을 입증한다는 저자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태아의 생명과 생명권을 혼동·혼용하고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낙태죄 합법 주장의 비일관성을 간파한 까닭이다.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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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법이 될 때 - 법이 되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
정혜진 지음 / 동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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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그 이름을 법에 남겼고그 이름을 새기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힘을 모았다어째서였을? 앞으로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이런 사건으로 법에 이름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 모두의 바람이 너무도 간절했던 까닭이다. 이 법에 새겨지는 지금 이 이름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소중한 이를 잃은 가족과 슬픔에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이 사회를 위해 법을 바꾸어 간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좋은 법안이 올라왔다고 자동적으로 통과되지 않아요. 법안 심사에 나아가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압박을 동원하는 거죠. 상임위 간사 의원 방 찾아가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다 결국 못 만나고 간 적도 부지기수예요. 국회에 다른 큰 이슈가 있을 때 더 그렇죠. 다들 그 이슈에 매달리느라 이런 작은 법안(민식이법 등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은 관심을 받기 어려우니까요. 어떨 땐 새벽 3시까지 기다리기도 했어요.” -137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 피해자 혹은 그와 연관된 중요 인물의 이름을 딴 법이 만들어졌다는 지극히 피상적인 원인과 결과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법에 이름이 남은 인물들과 그들이 겪은 사건의 경과만큼이나 그 이후의 상황을 세밀하게 조명해 낸다. 법은 결코 하나의 사건 혹은 한 명의 사람만으로 바뀔 만큼 쉽고 가벼운 상대가 아니다. 법에 이름이 남은 한 사람의 사건은 그것이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이라 해도 법률의 제정·개정이라는 과정 속에서는 아무리 결정적일지언정 발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 준다. 사건이 발생한 후의 괴로움을 어떻게든 견뎌 내며 이 사건이 법률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내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국회의원들과 정부를 움직인, 법률로 이름이 남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 책에서 절반의 몫을 차지하는 것은 그것 역시 너무도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이어서다.

 

왜 구하라법은 여론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않은 반면, 공무원구하라법은 서둘러 통과가 되었을까. 답은 구하라법이 민법 개정안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민법은 민사 법률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기에 다른 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무원연금법과 공무원재해보상법에서 민법의 상속 순위에 따른 상속인에게 유족연금과 재해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이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그래서 민법을 개정할 때는 대개 법무부에 한시적인 민법개정위원회가 설치되어 그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정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반면 공무원구하라법은 공무원이 순직했을 때 그 보상금과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기준을 수정하는 것에 불과했다. 공무원연금법과 공무원재해보상법이 일부 바뀐다고 다른 법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몸집이 가벼운 법률이라 다루기가 쉽다는 뜻이다. -104~105

 

굳이 남의 나라(독일)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 국회가 시효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보류했을 때와 극명한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여론에 떠밀려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던 소신 있는 주장은 2011년 성폭법과 아청법 등 특별법 개정 때 했어야 했다. 시효는 형사 소추의 주요 제도 중 하나이므로 그 배제 규정은 기본법인 형사소송법에 정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개정이 쉬운 특별법에 공소시효 배제 규정을 먼저 만들고, 그 결과 무너진 법적 균형을 뒤늦게 기본법 개정으로 바로잡으려다 태완이 없는 태완이법을 낳은 것이다. 정의의 실현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로 태완이 부모를 위로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 이유에서다. -72쪽

 

 법의 한계로 말미암아 피해자 혹은 부조리한 결과가 엄연히 발생했는데도 왜 그 법을 바꾸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지를 이 책은 각 사건과 법률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서술해 낸다. 기자 출신이자 현직 변호사인 저자의 경험이 빛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구하라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양육책임을 방기(放棄)한 부모의 유산 청구라는 모순만을 바꾸기 어려운 원인이었던 전체 법률 체계의 측면은 간과되기 쉽다.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당면한 구체적인 개별 사건에서의 모순을 일단 없애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률 간에도 중요성의 경중과 해석의 연관성이 존재하는 까닭에 법률을 숙고하지 않고 개정한다면 그 해당 법률뿐만 아니라 관계된 다른 법률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까닭에 구하라법과 같은 개별 사건에서의 큰 문제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국회와 법률의 대응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구하라법에서의 민법과 같은 기본법인 형사소송법에서의 공소시효 배제를 신중하게 논의하지 않고 성범죄와 관련된 특별법에서의 공소시효 폐지로 회피한 결과, 공소시효와 관련된 법적 균형이 무너져서 결국 태완이가 살해당한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 태완이법에 이른 사례야말로 민법 개정안인 구하라법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를 잘 보여 주었다.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 정의를 지키는 법률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결국 절차와 체계를 존중한 제정·개정일 것이다.

 

상임위 가결 한 달여 만인 (2018) 329, 법사위에 김관홍법을 포함한 87건의 법률안이 일괄 상정되었다. 윤상직 의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윤상직 위원

잠수사는 이미 다른 법률에 의해 가지고 지원을 열어줬거든요. 그 다음에 잠수사 사망 및 부상은 세월호 침몰하고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일종의 산업재해와 관련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확대해서 지원해주는 것이 맞느냐는 부분에 대해서 저는 2소위로 넘겨야 되겠다는 생각이고요.

 

‘2소위란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말한다. 다른 상임위를 통과하고 법사위에 체계·자구 심사로 온 법안은 소위를 거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체계와 자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2소위로 넘어가는 법안이 있다. 국회에서는 법사위 법안심사제2소위를 법안의 무덤으로 부른다. 그러니 2소위로 넘기자는 건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자는 뜻이다. -225~226

 

 그러나 국회가 구체적 사건에서 정의를 지키기 위한 법률 제정에 일부러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세월호사건 당시 초기에는 자발적으로, 그 이후에는 정부가 법률에 의거해 발령한 수난구호업무 종사명령에 따라 실종자 수색·인양 임무를 수행한 민간 잠수사들에 대한 치료와 피해 보상을 위한 근거 규정을 담은 김관홍법에 대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의 지극히 의도적인 2소위 회부 요구는 그 단적인 예다. 이 외에도 분명 여론이 지지하고 절차와 체계를 준수한 법률 제정·개정을 의도적, 정치적으로 지연하는 경우가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여 실종된 국민들을 수색·인양한 작업이 세월호 침몰과 직접 관련은 없다는 저열한 수준의 이유를 만들어서 타당한 법률 제정·개정을 저지하려는 시도와 법률의 본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절차와 체계의 준수는 분명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법률이 만들어지는 절차의 늦고 빠름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유를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분석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런 탓에 한 사람의 이름을 법률에 새긴 이 책 속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력 역시 지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까닭에 좀 더 나은 법률이 이루어졌다.

 

63(도급인의 안전 및 보건조치)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한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그 의미는 도급인, 즉 원청이 안전 및 보건조치를 해야 하고, 도급인이 이를 충분히 하지 않아 산재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청이 책임지는 범위가 매우 제한되던 기존 법과 달리 개정안에서는 그 책임 범위를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로 대폭 확대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책임까지 떠넘기지는 못하도록, 외주화의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비싸지게 한 것이다. -38

(민식이법 중에서) 특정범죄가중법이 과잉 형벌이냐 아니냐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국회에서 절차를 위반했고, 법안 심사 때 예상 가능한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유가족을 향한 여론의 가혹한 비난, 불필요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과실범의 가중처벌 규정을 비판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상대를 고른 것이 아닐까. -134

 

 사건이 발생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법률이 제정·개정된 후의 효과까지 직시한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문제가 어떻게 줄어들었으며, 그럼에도 남은 이 사회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통찰은 낙관하면서도 태만하지 않고, 비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저자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고통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온전히 수용하고, 바로 그 고통이 너무 큰 까닭에 다른 사람에게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실천으로 나아간 이들과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긴 저자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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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마음을 묻다 - 인공지능의 미래를 탐색하는 7가지 철학 수업
김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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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거기에 담긴 인간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인간다워지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61

 

 어째서 인간들은 미래의 인공지능이 인간다워지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그것이 곧 인공지능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믿어서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범용(汎用)해 져야 하며 그것이 곧 인공지능의 최종 목표라고,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라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다움이 인공지능의 궁극적 목표라는 이 통념은 이중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그 점을 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먼저 인간의 마음은 기능화가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서로 동질적이지 않은 두 영역인 지향적 마음(심리 현상)과 현상적 마음으로 나뉜다. 기능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제3자의 객관적 관점에서 이해,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이 마음은 기계의 입력-출력 과정으로 동등하게 구현 가능함을 의미한다. 명제 내용을 대상으로 갖는 심리 상태인 믿음, 욕구, 걱정, 기대 등이 지향적 마음에 속한다. 반면에 현상적 마음은 감정과 정서, 즉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의식이어서 그 내용과 역할을 제3자가 관찰하거나 기능화할 수 없다. ‘친구와 다툰 것을 후회할 때 가슴이 아픈 경우와 같이 지향적 상태와 현상적 의식이 혼합된 심리 상태도 가능하지만 그 각각의 성격을 분할해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둘째, 인공지능의 진화 방향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적 가치나 사고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물리적 토대인 육체를 초월한 인공지능은 그만의 초월적 방식이 더 효율적이며 인간의 기대와 상관없이 자율적인 인공지능은 그런 방향의 진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인공지능 학습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인간의 지식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며 자기 진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62

 

 이 책은 먼저 기능화가 가능한 지향적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의 수준이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 분야(바둑의 알파고 제로’)가 존재함을 지적하고,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지능이 다루는 모든 분야를 다루는 지향적 영역에 있어서 인간을 능가하는 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지향적 마음에 한해서는 인간은 더 이상 인공지능의 모범이나 도달할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저만치 발달해 나가고 있는데 인간들은 인공지능이 자신들을 따라오는 중이라고 착각하는 꼴이다. 인간이 입력한 구체적 자료[기보(棋譜)] 없이 바둑의 기본적 규칙과 승리라는 목표만 주어진 상태에서 혼자서 수()에 수를 거듭하며 자율적으로 데이터를 생성, 심화시킴으로써 엄청난 바둑·학습 수준에 도달한 알파고 제로가 보여 준, ‘딥 러닝의 위력은 인간다운인공지능이라는 인간의 기대가 얼마나 가소로운지를 잘 보여 준다. 인간 두뇌의 신경망과 같은 방식이되 훨씬 더 빨리, 더 많은 학습을 훨씬 더 정확히 수행·중첩·축적하며 확장하는 지향적 마음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인공지능은 이 그림(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의 밀밭에서 추수하는 농부)의 색감에서 연상되는 평온한 죽음을 공감하거나 이해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색을 지각하는 현상적 의식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회화를 감상하고 즐길 수는 없겠지요. 그리하여 인공지능은 적어도 우리처럼 회화를 감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찬란한 빛깔의 밀밭 그림을 감상하거나 구수한 커피 향기를 음미하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달콤한 체리 향기를 즐길 수도 없겠지요. 이런 즐거움을 주는 의식은 기능과 무관한 것입니다. 즉 기능화할 수 없고, 그리하여 인공지능이 모방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131

 

 반면에 이 책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감정과 정서, 즉 현상적 마음에서 인간과 같아질 가능성은 사실상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현상적 마음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될 수 없는 까닭에 인간이 인공지능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목표로 삼는 것은 모순인 까닭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이미 적은 바와 같이 기계와 같은 제3자가 입력-출력 과정으로 재현할 수 있도록 기능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인 까닭이다. 개인이 어떻게슬픈지 그 감정의 내용과 동등한 기술(記述재현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다운 현상적 마음에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향적 마음에 머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인공지능 딥러닝의 학습 능력과 효율성이 높을수록 그만큼 알고리즘은 복잡해지고 그것을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즉 인공지능의 문제 해결 능력과 설명 가능성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이 제공한 지식의 범위를 넘어서서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경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생산 제작함으로써 막강한 효율성을 갖게 되지만 설명 가능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일종의 딜레마입니다. 아마도 인공지능 기술의 방향이 기계학습의 효율성을 지향할수록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을 유지하는 동력이 점차 약화될 것입니다. -187~188

 

 이 책은 현재 개발된 인공지능의 기본적인 이론적 배경들, 그 기술적 수준과 향후의 발전 가능성,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 사회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논의해야 할 주제들을 이해하기 쉽고 짜임새 있게 담고 있다. 물론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접한 내용들도 적지 않겠지만, 그 개별 지식들이 앞으로의 인공지능이 나아갈 방향이나 그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쟁점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입문서로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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