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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 - 경이로운 우주를 탐험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폴 서터 지음, 송지선 옮김 / 오르트 / 2025년 4월
평점 :
우주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내가 얼마나 잘 잊는지, 무척 잘 아는 과학자가 쓴 책이다. 시시때때로 “얼마든지 나가보세요,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요.”라는 식으로 말한다. 현대 과학이 지금까지 규명한 우주의 경이를, 독자들의 우주여행을 전제로 구성했다는 이 책의 개성은, 그 모든 지식의 결론이 다채롭지만 일관된 경고라는 데 있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답니다, 우주에서, 어떻게든.”
이제 인류가 우주에서 무엇을 알아내야 하고, 현재까지 파악한 우주는 어떠한지에 관한, 이 모든 지식이야말로 우주에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이 순환이 ‘생존법’의 핵심이다. 이 책에서 새삼스럽게 놀라운 지점이기도 하다. 우주가 얼마나, 어떻게 위험한지는 이미 자주 들었고, 우주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어느 정도는 안다. 하지만 과학과 우주의 이런 두 측면이 필연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별개였다.
외부 태양계에도 문제가 덜 되죠. 방사선량은 거리의 제곱에 따라 감소하므로 거리가 두 배로 늘어나면 유해지수가 4분의 1로 줄어드니까요. 그러나 내부 행성, 특히 수성은 사악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공기가 없는 달이나 소행성에 서식지를 꾸미는 경우, 이 서식지 설계자는 바로 이 문제, 많은 방사선량을 피하기 위해 서식지를 지하 깊숙이 배치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터지기를 기다리는 걸어 다니는 암, 시한폭탄에 불과할 것입니다. -109쪽
수명이 다한 거대한 별을 조심하세요. 별이 태양 질량의 10배가 넘는다면 폭발에 너무 가까이 다가갈 위험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별에서 폭발적인 죽음의 폭발로 바뀌는 데는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으며 경고도 거의 없습니다. 충격파와 감마선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최소 수십 광년 떨어진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311쪽
그러므로 자칫하면 상당히 안전하고 경제적인 우주여행이 가능해지더라도, 그것이 너무 빨리 가능해지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겠다는 괜한 걱정까지 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어떻게든 항공기 문을 열겠다는 사람은 아직도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 덕이다. 민간 우주여행의 안전성, 완성도는 물론 경제성이 제고되는 속도가 우주에 대한, 특히 그 위험성의 과학이 보편화, 상식화되는 속도를 능가해서는 오히려 곤란할 수도 있다. 무작정 누구나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면, 누구나 우주에서 돌아올 수 없는 시대일 것이다. 항공기의 비상구를 열거나 창을 깨려는 사람이 드문 것은, 누구나 그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인류가 현재까지 과학과 이성을 갖춰온 결과에 가깝다. 단지 나 자신만 여태 배워서도 아니고,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한국에 유입된 과학과 상식의 덕으로 지금 얌전히 비행기를 탈 뿐이다.
결국 지금까지 인간이 우주에 대해 쌓은 과학은, 우리가 우주에서 죽을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당장 우주에 갈 수 없는 까닭에, 이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의 정보를 생존의 문제로 연결 짓지 못했을 뿐이다. 이 책이 지극히 진지한 최신 연구들과 그 근간이 된 현대 과학, 특히 물리학의 원칙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도 내내 유머를 잃지 않는 이유는, 독자 대부분은 지금 이 내용이 우주에서 자신의 생사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모른다는 그 사실부터 저자가 떠올려서인 듯하다. 헛웃음인 셈이다. 언젠가는 저 천체를 더 선명하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흐릿한 창을 깨거나 창을 열라고 기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상상했을까? 물론 우주여행의 상용화와 대중화는 엄연히 다른 층위인데다, 인류가 도달 가능한 우주의 영역까지 고려한다면 당장은 우주여행의 생존법을 모르더라도 우주여행을 할 때 생사의 기로에 서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달을 한 바퀴 돌고 지구로 돌아오는 정도의 우주여행이 당장 상용화되더라도 나까지 탈 수 있는 가격일리는 없고, 대중화가 되더라도 동승자들의 무지가 내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가 되려면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적어도 항공기 탑승객이 저지른 사고는 요즘에야 내 눈에 띄었듯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알려 드릴게요. 이 입자 소나기에 있는 입자 중 하나가 뮤온입니다. 뮤온의 수명은 수 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는 10의 -6승 초)로,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대기권 상층에서 지상에 닿을 만큼 그 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를 가진 뮤온은 상대성 이론의 시간 연장 효과 덕분에 입자의 내부 시계는 느려져서 작은 파괴의 힘으로도 이 세상을 가격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됩니다. -147쪽
간단히 말해, 블랙홀은 시공간 자체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아요. 모든 물질이 중력에 의해 무한히 작은 점으로 밀집된 무한 밀도의 지점이지요. 이것이 완전히 정확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특이점은 어떤 물체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더 이상 우리를 안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가 써 있는 표지판에 불과합니다.) 일단은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죠. 이러한 특이점은 사건의 지평선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사건의 지평선 또한 보이지 않는 모래 위의 선과 같이 어떤 사물이 아닌 거죠.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면 특이점 마을로 가는 편도 티켓만을 얻게 되는 것이고요. -502쪽
이 책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우주여행을 전제하고, 이 설정에 부합하는 문체와 표현으로 우주의 본질을 규명한 물리학, 천문학, 천체물리학의 최근 성과를 전달한다. 따라서 이 책의 과학은 구체적, 현재적인 동시에, 문학적, 사회적인 의미도 띤다. 당장 우주여행을 무사히 다녀오려면 마땅히 숙지해야 하는 지식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구체적, 현재적이다. 그 우주여행은 당장 내가 갈 리도, 갈 수도 없지만, 만약에 내일 간다면 아는 것은 너무 없고 위험한 것은 너무 많아서 큰일 날뻔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문학적, 사회적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인류 역사 이래 우주라는 공간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가장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다. 인류의 생활 영역이 우주로 확장될 가능성이 지금까지 높아진 정도와, 최근 10여 년간 높아진 정도는 비슷해 보인다. 따라서 이제 우주에 관한 지식은 곧 이 공간에서 닥칠 위기, 벗어날 대책과 직결된다. 게다가 최근의 이런 급격한 진전이 우주에 대한 기존의 대중적 과학관 사이의 시차를 점점 벌릴 수도 있다. 대중이 알고 배우는 우주의 과학이 나아가는 속도보다 우주여행이 진전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말이다. 우주여행은 이미 듣고 접해온 과학이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크게 바꿀지 보여주는 결정적 변화이므로 과학적이다. 우주로 계속 나아가는 현대 과학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이유가 된다는 것은, 우주여행의 그 다음 과학적 의미다. 저자의 필력으로 우주에 앞서서 이 우주여행의 과학부터 여행했다.
저자와 번역자는 물론 편집자까지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까닭에, 자칫 난해하거나 어색할 수 있는 이 책 특유의 구성과 표현이 한국어로 생생하게 전달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가 자신의 지식을 영어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구사한 다채로운 표현을, 번역자와 편집자가 영어와 한국어의 행간에서 세심하게 조율해서 타당하게 전달한 덕분이다. 그저 한국어 번역자와 편집자도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 깊어서 신뢰할 수 있다는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다. 번역자와 편집자의 두 언어와 전문지식의 역량은 물론, 그리고 이 세 요소에 대한 사사로울 정도의 애정이 빛을 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