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제학 입문 - 제2판
오정일.송평근 지음 / 박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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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사건도 불확실하면 위험이다. -155

 

 읽고 싶다는 의욕을 자극한 책은 아니었지만, 막상 읽어 보니 여러모로 유용하고 유익했다. 확실하게 예상하지 못했던 유익함이니, 이 책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유익함과 유해함까지만 분별할 수도 있고, 좀 더 나아가면 무해 무익함까지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유해하다고 판단된다면 비로소 그것이 발생할 확률, 즉 확실성을 논하는 것이 통상적인 접근 방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큰 이익을 안겨 주는 사건이 아니라면 유익한 사건의 확실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물론, 그 확실성이 높지 않을 때 유익한 사건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익숙한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법경제학에서만큼은 이런 사고야말로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하다. 저 짧은 결과뿐만 아니라 동기를 중시하는 법과 비용 대비 효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이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 주었다.

 

 단순한 원리 원칙의 차원이 아닌 국가의 일부로서의 법의 작용을 생각할 때, 법의 목표는 단순히 좋은 결과를 늘리거나 나쁜 결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적은 자원을 투여해서 좋은 결과를 늘리거나 나쁜 결과를 줄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에서 법과 경제학의 관계는 깊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비교적 평이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적 사고에서 필요한 수식들이 군데군데 등장하고 그것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범죄의 유일한 척도는 사회에 끼친 해악이다. 범죄자의 의도가 범죄의 척도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151

 

 극악무도하거나 법망을 피할 정도로 교활하고 교묘한 범죄의 사례를 접할 때마다, 더 엄한 법률과 처벌로 이런 사건들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높아진다. 흔히 발생하는 무수한 범죄들이나, 지금 있는 법으로 별 문제없이 붙잡아서 처벌하는 사건들보다는 그런 흐름에서 벗어난 예외들로 시선을 모으고 붙잡기는 쉽고 당연한 일인 까닭이다. 하지만 오직 그런 소수 범죄자들의 악랄한 의도와 동기에 집중하며 그것들을 분쇄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이나 더 강력한 처벌만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간편한 주장이다. 유익한 사건의 확실성이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 대신에, 그렇게 남은 에너지를 오직 유해한 사건을 모조리 없애는 방법을 주장하는 데 쏟아 붓는 듯하다.

 

 대중의 감정이 폭발하는 척도는 범죄자의 의도일 수도 있고 때로는 범죄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법이 범죄를 재는 척도는 무엇보다도 그 결과, 즉 사회에 미친 해악일 수밖에 없다. 법률적 절차인 수사와 재판과 처벌 그 모두에 이 사회의 자원이 투입되므로,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해악이 큰 범죄부터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해악이 큰 범죄는 도처의 주폭, 잡범들처럼 개별적으로는 해악이 사소하더라도 모방이 쉬워서 집합적으로 큰 해악을 이룰 수도 있고, 금융 범죄처럼 그 자체로 무수한 피해자나 막대한 피해를 양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크게 자극했는지는 그 범죄의 해악 혹은 규모와 무관하다. 그것까지도 범죄의 해악으로 간주해서 그런 범죄를 해결하는 데 사법 자원을 투입한다면, 해악이 큰 다른 범죄의 해결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은 각오해야 한다.


국가가 적발률이나 형량을 올리면 범죄가 줄지만 집행비용(enforcement cost)이 증가하므로 범죄를 근절하기보다는 적절한 적발률과 형량의 조합을 선택하여 효율적인 수준에서 범죄를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효율적 범죄를 유도하는 형량 중에서 집행비용이 가장 작은 것이 최적 형량이다. 효율적 범죄는 무엇인가? 범죄의 기대효용이 범죄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 이상이면 이러한 범죄는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범죄의 사회적 비용이 100원일 때 범죄의 기대효용이 110원이면 효율적 범죄이지만 범죄의 기대효용이 90원이면 효율적 범죄가 아니다. - 144

되갚음은 정의의 문제이지 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한 정의보다 평등한 부정의가 심각한 문제이다. -171

 

 물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범죄는 박멸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믿을 수도, 외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범죄를 낱낱이 수사, 재판,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행정적, 사법적 자원이 무한하다고 믿는다면 현실 감각이 결여된 것이고, 이 사법 절차에 소요되는 자원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모든 범죄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결국 처벌할 범죄를 자의적으로 선별하거나, 어떤 범죄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뿐이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모든 범죄를 차별 없이 적발한다면 결국 정부나 국민이 내키는 대로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범죄의 해악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그것이 국민 감정에 미친 영향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범죄 자체의 증가나, 피해의 범위, 규모와 동등하지 않은 범주인 여론으로 범죄가 미친 해악을 측정한다면 그 역시 차별하지 않고 처벌하려다 아무나 처벌하거나 아무도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방조할 뿐이다. 내 기분 혹은 우리의 기분이 범죄의 심각성과 무관하며, 처벌하는 사건이 늘어나는 만큼 처벌할 사건은 줄어든다는 사실은 불편한 만큼 유용하다. 어떤 법일지라도 근절해야만 하는 것들을 근절할 수 없고, 오히려 적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은 그저 인정하기에는 너무 불편하지만 마냥 무시하면 겪게 될 그 결과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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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특성을 지정하는 유전자 암호가 알려지면 과학자들은 크리스퍼를 이용해서 사실상 어떤 식물이나 동물이든 연관 유전자를 게놈에 삽입하거나 편집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현존하는 그 어떤 유전자 조작 기술보다 단순하며 효과적이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유전자 공학과 생물 지배력의 새로운 시대, 온전히 인간의 집단 상상력으로만 가능성이 재단되는 혁명의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 P14

인간 게놈은 DNA 염기쌍이 약 32억 개 있으며, 이 안에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자가 대략 2만 1,000개 있다. 흥미롭게도 게놈 크기로는 생물체의 복잡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인간 게놈은 쥐나 개구리 게놈과 길이가 거의 비슷하지만 도롱뇽 게놈보다는 10배나 짧고, 특정 식물 게놈과 비교하면 100배나 짧다. - P40

유전자 치료는 그 본질 탓에 유전자가 삭제되거나 결함이 있는 질병이 아니라면 대다수 유전 질병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세포에 새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 헌팅턴병을 예로 들어보면,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가 생산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건강한 유전자가 만드는 정상 단백질의 효과를 압도해버린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정상 유전자보다 우세하므로, 바이러스 벡터로 정상 유전자 하나 더 집어넣는 식의 단순한 유전자 치료로는 헌팅턴병이나 다른 우성 유전병에 효과가 없다.
이렇게 치료하기 힘든 유전 질병의 경우,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대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결함 자체를 고치는 방법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결함 있는 유전자 암호를 수정할 수 있다면, 새 유전자가 엉뚱한 곳에 삽입되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 없이 열성 유전 질병과 우성 유전 질병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치료할 수 있다. - P5051

(잭 쇼스택Jack Szostak 등의) 이중나선 파손 모델이 맞는다면, 효모 연구에서 도출한 결과가 포유류에게도 적용된다면, 유전자를 편집하려는 정확한 위치의 게놈을 잘라 유전자 편집의 효율성을 개선할 명백한 기회였다. 게놈 속의 결함 있는 유전자를 실험실에서 정확하게 교정한 유전자로 대체하려면, 먼저 결함 있는 유전자를 잘라 DNA 이중나선을 파손한 뒤, 교정한 유전자 서열을 집어넣어야 한다. DNA가 파손되면 세포는 서열이 일치하는 염색체를 찾아 복제해 손상을 복구하려 하는데, 이때 합성한 유전자가 슬쩍 나타난다. 결론적으로는 DNA가 자연적으로 손상된 것처럼 세포를 속이고, 새로운 DNA를 짝이 되는 염색체로 위장시켜 제공해서 세포가 파손된 부위를 수정하게 만든다.
뉴욕 시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연구소의 마리아 제이신Maria Jasin 연구팀은 1994년 최초로 포유류 세포에서 이 속임수 게임에 도전했다. 당시 볼더 시에서 박사후과정을 끝내고 뉴헤이븐 시 근처에 왔던 나는 강한 흥미를 갖고 논문을 읽었다. 나처럼 생명의 분자에 매혹당한 또 다른 여성 과학자가 내 대학원 스승의 이중나선 파손 모델 위에 세운 이 선구적인 논문을 읽으면서,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 P59

차세대 유전자 편집 도구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첫째, 우리가 원하는 특정 DNA 서열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바로그 DNA 서열을 자를 수 있어야 하며, 셋째, 다른 DNA 서열을 표적화해서 자르도록 프로그램하기 쉬워야 했다. 첫째와 둘째 조건은 이중나선 파손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조건이고, 셋째는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위한 조건이다. - P6162

(1994년에) 대학원생 제이미 케이트Jamie Cate 와 함께 리보자임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기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비극도 함께했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예일대학교의 내 사무실로 전화해서 진행성 흑색종을 진단받았다는 끔찍한 소식을 알려왔다. 아버지가 보낸 마지막 석 달 동안 나는 뉴헤이븐 시에서 하와이를 세 번 방문해서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충만한 낮과 밤을 함께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구절을 읽어드리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함께 듣고, 다양한 통증 치료 중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 의논하고, 죽음 이후에 무엇이 올지 함께 이야기했다. 내 연구에 항상 호기심을 가졌던 아버지는 계속 최근의 내 연구 성과에 관해 물으셨다. 아버지에게 초록색으로 그려진 리보자임 분자 그림을 보여드린 적도 있다. 그림을 보고 아버지는 "초록색 페투치네(파스타 면의 일종으로 납작한 모양이다 ― 옮긴이) 같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3주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 P7172

박테리오파지는 실험실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에 가장 널리 퍼진 생물로도 유명하다. 빛과 토양처럼 자연계에서 흔한 존재이며, 흙, 물, 인간의 장, 온천, 빙하 핵 등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박테리오파지의 수가 대략 1031 정도는 되리라고 평가했다. 1 뒤에 0이 자그마치 31개나 붙어 있는 숫자다. 찻숟가락 하나 분량의 바닷물에는 뉴욕 시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박테리오파지가 들어 있다. 놀랍게도 박테리오파지가 감염시킬 수 있는 세균보다 파지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세균도 많지만 세균 바이러스는 세균의 10배를 넘어선다. 세균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수없이 많은 감염을 매초 일으키며, 바다에서만도 매일 모든 세균의 40%가 치명적인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어 죽는다. - P8485

이제야 탐색이 시작된 크리스퍼는, 우리가 단순한 단세포 생물에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세균 면역 체계 중 크리스퍼가 발견되면서 세균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염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세포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이 증명되었고, 이로써 세균과 인간이 대등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균 방어 체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 P99

2012년 6월 8일 맑은 금요일 오후, 나는 ‘확인‘ 버튼을 눌러서 <사이언스>에 정식으로 논문을 제출했다. 20일 후인 6월 28일에 이 논문은 발표될 테고, 그러면 나도 과학계 동료들도 생물학계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이 엄청난 결과에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살아온 순간 중 가장 지쳤다는 생각뿐이었다. - P132133

결국 유전자는 정보 전달자이며 집의 청사진이다. 유전자 편집의 목적은 청사진을 바꾸는 게 아니라 지어질 집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는 대개 유전자가 암호화하고 유전자 발현을 통해 세포가 생산하는 단백질을 변경하는 것을 뜻한다. - P155

유전자 발현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능력은 거의 유전자 자체를 편집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강력하다. 세포를 2만여 종의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보자.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세포에서 다양한 악기 소리는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 악성종양 세포나 감염된 세포에서는 소리의 균형이 무너지며, 특정 악기 소리가 너무 크거나 약하게 들린다. 때로. DNA 편집은 오케스트라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기에는 조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는데, 몇몇 악기를 노골적으로 없애거나 대체하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비활성화된 크리스퍼 체계는 오케스트라의 어떤 악기든지, 즉 게놈 속 어떤 유전자든지 높은 감도로 미세 조정할 수있다. - P164165

GMO에 관한 과학적 동의와 대중 여론의 괴리는 과장 없이 말하자면 충격적이다. 나는 이 현상이 크게는 과학자와 대중의 의사소통이 단절된 데서 왔다고 본다. 크리스퍼를 연구한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이 두 세계에서 건설적이며 개방된 대화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이 발전하려면 이런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 P183

규제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크리스퍼의 잠재력을 충분히 누리기 힘들다. 생명공학 기술은 전 세계 식량안보를 떠받치고, 영양실조를 예방하며,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환경파괴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는 과학자와 기업, 정부, 그리고 대중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며, 각자가 근본적인 방식으로 협력해야만 한다. 이 노력은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 - P186

배양세포가 아니라 형질전환 동물에서 약품을 생산하고 추출하는 과정의 장점은 수없이 많다. 생산량이 많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기 쉬우며 비용도 적게 든다. 크리스퍼는 과학자가 더 섬세한 유전자 통제 기술로 형질전환 동물을 창조해서 생물약제 의약품 생산을 더욱 개선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돼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크리스퍼가 돼지 유전자를 그에 대응하는 사람 유전자로 대체해서, 유전자가 암호화한 치료용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의약품이 단백질 제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분야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이 지닌 엄청난 잠재력을 확산할 수 있다. - P200201

윤리적인 면에서 볼 때, 유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체세포 편집은 환자의 후손에게 유전자 변형이 유전되지 않으므로 생식세포 편집보다 훨씬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하나의 인간 생식세포에서 수정하는 쪽이, 똑같은 일을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 50조 개에서 하는 편보다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과학자들은 새로이 생겨나는 수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유전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도우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생식세포 편집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다. 체세포 편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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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의 핵심은 강제성(coerciveness)이다. 수용 권한을 가진 정부나 기업이 보상금을 지급하고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경우 소유권자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정부나 기업이 소유권자에게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수용은 책임 원칙이 적용된 예에 해당한다. 기본적으로 수용은 소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어떠한 경우에 수용이 허용되는가? 이에 관하여서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 하나는 공공사업에만 수용이 인정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부동산을 수용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사업 주체와 무관하게 사업 특성상 사인의 부동산을 병합할 필요성이 인정되면 수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대규모 개발의 경우 사인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병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원, 고속도로와 같은 공공사업, 쇼핑센터, 아파트 등의 민간사업이 그 예이다.).
(중략) 두 번째 주장은 소유권자의 버티기 (hold out)로 인하여 사업이 지연 또는 무산될 가능성이 큰 경우 수용을 허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에 있어서 부동산 병합이 필요하면 소유권자의 협상력이 커져서 사업자와 소유권자의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 대규모 개발이 지연 또는 무산되면 사업자의 손실이 크기 때문에 소유권자가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이 대규모 개발을 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주장을 따르면 수용이 인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 주장에 의하면 소유권자의 버티기가 개발의 걸림돌이 될 경우 수용이 인정된다. 기업의 대규모 개발에 있어서 대체로 수용을 허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기업의 수용을 허용하는 논거는 부동산 병합이 아닌 공적 사용이다. 예를 들어 생각하여 보자. 기업이 특정 지역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기업은 사인의 부동산을 병합하여야 한다. 만약, 소유권자의 버티기로 인하여 공장 건설이 지연된다면 법원이 기업의 수용을 허용할 수 있다. 공장이 건설되지 않으면 생산과 고용이 늘지 않고 지방정부가 조세수입을 잃기 때문이다. 공장이 지어지면 기업이 이윤을 얻지만 공익적 측면에서 파급 효과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사인의 부동산이 공적으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 P49.50

가해자나 피해자가 주의하는 데는 비용이 소요되지만 불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과 손해액은 주의 수준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불법행위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최적이 아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0이 되지만 주의비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행위를 효율적인 수준으로 억제하려면 법원이 최적의 주의 의무를 부과하여야 한다. - P74.75

운전자가 최적의 주의 수준을 선택하여도 교통사고가 발생하지만 그것은 효율적인 교통사고이다. - P76

법학적 관점에서 계약은 이행되어야 하지만 법경제학적 시각에서는 효율적인 계약이 이행되어야 한다. 비효율적인 계약은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효율적인 계약 파기(破棄, A가 100원을 지불하고 B는 재화를 공급하는 계약을 가정하자. 만약, C가 B에게 120원의 가격을 제시한다면 B는 A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C에게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A보다 효용이 높은 C가 이 재화를 소유하기 때문이다. A와 B는 C가 더 지불한 20원을 나누어 갖는다.)라고 한다. - P95

불법행위를 효율적인 수준에서 억제하는 것이 불법행위법의 목적이듯이, 계약법(contract law)의 목적은 효율적인 계약 파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 P96

계약이 일방에 현저하게 불리하면 이는 불공정한 계약으로서 무효이다. 불공정한 계약은 일방의 의사무능력, 강박, 착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합리적인 쌍방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자발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면 계약이 일방에 현저하게 불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무능력, 강박,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파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무능력, 강박, 착오는 그것을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려는 자가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일방이 불공정한 계약을 주장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공정성을 입증하여야 한다. 계약을 파기하려는 일방은 의사무능력, 강박, 착오를 주장하기보다는 불공정성을 주장하는 것이 유리하다. - P107

정보를 수집한 일방이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이러한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효율적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 하에서 체결된 계약이 유효하려면 그것을 이행하는 것이 효율적이어야 한다. A가 정보를 수집한 이유는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서이지만 계약의 가치가 증가할 수 있다. 계약의 가치가 증가한다면 A가 수집한 정보는 생산적이다. A가 생산적인 정보를 수집하였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인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반면, A가 정보를 수집하여서 단순히 B의 이득을 빼앗는다면 이는 비생산적이다. 계약의 가치가 증가하지 않고 정보 수집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P108.109

이 밖에 소송이 발생하는 이유를 위험에 대한 태도로 설명할 수 있다. 현금 50원과 50%의 확률로 100원을 받는 복권(lottery) 중에서 현금 50원을 선호하는 사람은 위험기피자(risk averter)이다. 50원의 현금을 지불하는 것과 50%의 확률로 100원을 지불하는 어음 중에서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은 위험선호자(risk lover)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확실한 이득, 불확실한 손실을 선호하므로 이득에 대하여 위험기피자, 손실에 대하여는 위험선호자가 된다. 확실한 이득(합의)과 불확실한 이득(소송) 중에서 피해자는 합의를 선호한다. 확실한 손실(합의)과 불확실한 손실(소송) 중에서 가해자는 소송을 선호한다. 따라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소송이 발생한다. - P122

원고와 피고가 각자 자신의 소송비를 부담하는 방식이 미국식 규칙(the American rule)이다. 반면, 영국식 규칙 하에서는 소송에서 진 일방이 상대방의 소송비를 부담한다. 영국식 규칙이 적용되면 원고 또는 피고는 소송비를 부담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소송비까지 부담한다. 영국식 규칙이 적용되면 소송이 감소하는가? 영국식 규칙이 적용되면 패소한 자가 상대방의 소송비를 부담하는데 쌍방이 소송 결과에 대하여 낙관적이므로 원고의 기대이득이 증가하고 피고의 기대손실은 감소한다. 이에 따라 소송이 증가한다. - P130

패소한 자가 상대방의 소송비를 부담하게 하는 단순한 법적 원칙으로는 소송을 줄일 수 없다. 소송을 하는 쌍방은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규칙 68(Rule 68 of the 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은 합의를 거부한 원고가 합의금을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받지 못할 경우 피고의 소송비를 부담하는 제도이다. 규칙 68은 합리적인 제안을 거부한 원고를 제재(制裁)한다는 측면에서 패소한 원고 또는 피고를 제재하는 영국식 규칙과 다르다. - P131

판사와 변호사의 동기(動機)는 다르다. 판사는 공정하지만 열심히 일할 동기가 작은 반면, 변호사는 부지런하지만 공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판사의 동기는 무엇인가? 판사도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한다. 판사의 효용함수에는 어떤 변수가 포함되는가? 판사는 정년이 보장되고 임금이 성과에 연동되지 않으며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어렵다. 대체로 판사의 효용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첫째, 판사는 자신의 선호 또는 신념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려고 한다. 둘째, 자신이 내린 판결이 선례가 되기를 원한다. 판사는 자신의 판결이 다른 판결에 의하여 뒤집히는 것을 꺼린다. - P137

판사는 독립적이지만 이질적이므로 평균적으로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리지만 극단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다. 변호사는 경쟁으로 인하여 동질적이다. 변호사가 만드는 정보는 분산이 작으나 평균적으로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 - P138

국가가 적발률이나 형량을 올리면 범죄가 줄지만 집행비용(enforcement cost)이 증가하므로 범죄를 근절하기보다는 적절한 적발률과 형량의 조합을 선택하여 효율적인 수준에서 범죄를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효율적 범죄를 유도하는 형량 중에서 집행비용이 가장 작은 것이 최적 형량이다. 효율적 범죄는 무엇인가? 범죄의 기대효용이 범죄가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 이상이면 이러한 범죄는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범죄의 사회적 비용이 100원일 때 범죄의 기대효용이 110원이면 효율적 범죄이지만 범죄의 기대효용이 90원이면 효율적 범죄가 아니다. - P144

범죄의 유일한 척도는 사회에 끼친 해악이다. 범죄자의 의도가 범죄의 척도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 P151

유익한 사건도 불확실하면 위험이다. - P155

수감 생활에 적응하는 범죄자는 "낮은 적발률, 높은 형량"을 "높은 적발률, 낮은 형량" 보다 선호하므로 위험선호자이다. 같은 논리로 수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범죄자는 "높은 적발률, 낮은 형량"을 "낮은 적발률, 높은 형량" 보다 선호하므로 위험기피자이다. 또한 수감 기간이 2배, 3배가 됨에 따라 수감 생활의 비효용이 2배, 3배가 되는 범죄자는 위험을 기피하지도 선호하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위험중립자이다. - P158.159

제1종 오류와 제2종 오류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현실적으로 제1종 오류를 줄이는 것이 법원의 목표가 된다. 99명의 범죄자들을 풀어주더라도 결백한 1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 P168

되갚음은 정의의 문제이지 평등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한 정의보다 평등한 부정의가 심각한 문제이다. - P171

공리주의자들도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한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만약,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단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할 뿐이다. 반면, 사형이 범죄를 억제함에도 불구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잠재적인 피해자가 위험해진다. 공리주의자들은 잠재적인 피해자보다 범죄자를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공리주의자들의 이러한 생각은 칸트의 주장과 대조된다. 칸트는 사형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지 잘못된 행위의 파급 효과를 따지는 미래지향적 계획이 아니라고 하였다. - P171

사형제가 살인을 억제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사형제를 시행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데 평균 3일이 소요되지만 사형이 구형된 경우에는 13일이 걸린다. 또한 1명의 피고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데 약 200만 달러가 소요된다.
사형이 구형된 사건은 법적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재판비용이 많이 들고 사형수를 수감하는 비용은 평균의 두 배이다. - P172

유익한 아이디어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傳播)하는것이 바람직하지만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에게 대가가 지불되지 않으면 과소 공급된다. 반면, 유해한 아이디어를 만든 사람을 언론의 자유로 보호하면 자신이 유발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므로 유해한 아이디어가 과다 공급된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유익한 아이디어가 사라진다. - P174

모든 시장에서 거래비용이 없으면 기업을 만들 필요가 없다.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데 비용이 많이 소요되면 기업이 직접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거래를 내부화한 것이 기업이다. 오래된 반독점법은 기업 규모가 커지는 것을 반경쟁적으로 보지만 거래비용을 줄이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견(一見) 반경쟁적인 행위도 그것이 거래비용을 줄이는 기업의 노력이면 제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반독점법의 시각이다. - P161

프로 스포츠가 존속하려면 팀 간 경기력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 이를 경쟁적 균형(competitive balance)이라고 한다. 경쟁적 균형은 프로 스포츠존속을 위한 핵심적인 조건이다. 경쟁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선수의 선발과이동을 제한하는 반경쟁적 제도가 프로 스포츠에 도입되었다. -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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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척도 - 도쓰카 교수의 마지막 강의
도쓰카 요지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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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되고서도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들였고, 그때로부터도 또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해를 넘겨 가며 읽었다.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과학책을 편집하고 있었으니, 무엇인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구입했겠지만, 정작 읽은 목적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니 조금 우습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조차도 예상과 결과가 이렇게 멀다니.

 

 저자인 물리학자 도쓰카 요지(戶塚洋二)가 작고한 지 1년 남짓 지났던 2009년에 이 책이 한국어로 나왔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후로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언급한 소립자 물리학의 향후 과제 중에는 이미 성과를 얻은 것도 있고, 또 여전히 그의 바람대로 진행 중인 것도 있겠지만, 그 각각이 무엇인지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다행히 그런 시의성의 문제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과학은 단지 수식이 관측에 맞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리학자가 흔히 말하는 대사입니다만 이 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이 식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식은 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막스) 플랑크는 머리를 쥐어짜며 식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고 결국 혁명적인 아이디어, ‘빛은 알갱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알갱이라는 것을 어려운 말로 양자’(quantum)라고 합니다. -141

 

 실제의 생활, 일상과는 너무나 멀게 느껴질지라도, 실은 그 생활의 가장 깊은 토대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그 원리를 끊임없이 규명해 나가는 과학 연구의 원칙과 태도를 아울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늦을 수가 없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내가 가까이에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과학자, 연구자들이 어떤 이론적, 학문적 원리 위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유용했다. 수식과 관측이 부합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겠지만, 그 이상의 설명을 추구하며, 그것이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그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가설을 도출해 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가설을 결국 확인해 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이 세계를 설명해 내고 있다.

 

원자에는 너무나도 틈이 많기 때문에 원자가 가득 모여 만들어진 지구조차도 뉴트리노의 입장에서 보면 틈이 많은 구조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뉴트리노는 나아가는 방향도 바꾸지 않은 채 관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이것이 뉴트리노가 지구나 태양조차 그냥 관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약력만으로 조망하는 뉴트리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175

 

 무엇인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는 방식은 지극히 인문학적, 혹은 문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여겨진다. 일상적인 사고,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엄밀한 수단으로 보이지는 않는 까닭에, 극히 미세한 소립자인 뉴트리노의 입장에 연구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그 뉴트리노가 보았을 때 이 지구와 세계가 얼마나 빈틈이 무수한 곳일지를 인지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꼭 그만큼, 생소하고 놀랍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연구자의 일상을 접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연구와 일상이 언제나 함께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연구가 일상과 전혀 다른 세계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 그 사이에서 항상 자신의 사고를 적절히 변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항상 잊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과학자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한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예를 들어 인공위성 안에서는 시계가 천천히 간다는 유명한 현상이 있습니다. 시계가 느리게 가는 이 현상도 관측으로 정밀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약 11천 마일 상공을 12시간에 일주하는 24개의 GPS(위성항법장치) 위성(6궤도면에 4개씩 배치), 추적과 관리를 하는 GPS위성의 관제국, 위치 추적을 하기 위한 이용자의 수신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GPS위성에 탑재된 시계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이 시계는 하루에 100만 분의 1초가 늦어질 것입니다. 시계가 이렇게 늦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위치에 1.6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특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157~158

 

 기초 과학 연구의 실용적의미를 따지는 주장은 너무 뻔해서 상투적이라는 표현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그것이 아무 실용성이 없다는 대체 무슨 문제일까 싶고, 과학자들의 고용 창출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다가 그런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이야말로 비실용성의 화신이라는 확신을 품은 지 오래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관계를 설명하는 저 대목에서 일본에도 비실용성의 화신이 적지 않은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괜한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성취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느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그들의 보다 편리하고 오차가 적은 생활을 위한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다. 한 푼 놓고 한 푼 먹는 실용성을 투정부리는 얄팍함이야말로 실은 기초 과학의 이 비가시적인 명확함에 너무 크게 빚지고 있다.

 

 어려운 부분을 억지로 깎아 내거나 피해 가지 않고, 그 부분을 포함하는 현대 소립자물리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저자 도쓰카 요지의 서술은 성실할 뿐만 아니라 친절해서, 훌륭한 대중서의 미덕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그가 스스로 굉장한 인물이라고 표현한 과학사학자 아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1960년 도쿄대 입학 동기이며, (국회 데모에도 참가했지만) 자신은 (야마모토와 달리) “정치운동에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학자가 학문에 이르는 길도, 그 학문을 닦는 길도 서로 얼마나 다르고 멀 수 있는지, 그와 동시에 또한 그 길들이 결국 얼마나 서로 비슷하고 가까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자신의 세계를 치밀하면서도 유연하게 소개한 이 소품은 그 경로들의 근사한 만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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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기술 - 이해 못 할 세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유지니아 쳉 지음, 김성훈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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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펼치며 언제나 누구나 논리로 제압할 수 있는 비법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정공법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반대 방향에서 놀라웠다. 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수학과 논리의 관계, 그 활용의 방식과 가능성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구축해 올림으로써, 논리와 수학의 현실적 가치를 수용하고 이 둘을 아울러서 일상적인 사고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근본적인 구조를 밝힌다. 논리와 수학 자체의 이론적 역할을 드러내기보다는, 이 둘의 관계가 지금의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독자가 논리학과 수학을 활용하려는 방향에 따라서 이 책의 효용은 다소 다르겠지만, 논리의 근본적인 가치와 그것의 기본적인 활용 방식, 그리고 여기서 수학이 갖는 역할의 중요성을 숙지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원래는 아래와 같이 양립 가능하고 합리적인 두 개의 주장이었다.

 

A: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어리석고 적대적인 주장으로 갈아타고 만다.

 

A: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아무도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 -373

 

 서구 사회에서 전개 중인 대다수의 소모적인 논쟁 중 아주 간단한 논리의 학습과 적용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논리를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학습의 결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폐기해야 할 뿐이기에, 논리를 학습할 동기도 이득도 없으니 실상 이 타당한 논리를 적용해서 실제 현실의 논쟁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정당한 근거가 없는 자신의 주장이 이미 더없이 타당한 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지적도, 그 주장 대신 타당한 노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설득도 적절한 동기로 작용하기가 어렵다. 잘못된 주장을 옳은 논리라고 믿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타당하다고 믿는 논리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에 승복하고 그것을 학습하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지적 성취에 앞서서 지적 파탄에 가까울 가능성이 충분하다.

 

 소모적 논쟁이 끝나지 않는 것은 논리가 어려워서도, 옳지 않아서도 아니다. 논리가 가장 필요한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비논리적인 인간인 까닭이다. 논리의 내용도 그 학습도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어려운 것은 그 쉬운 논리를 배우게 만드는 일과 그 논리를 배운 후의 일이다, 논리의 구조를 습득한 후에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오로지 버리고 바꾸기만 해야 한다면, 대체 그는 왜 논리를 익혀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그는 이 논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논리를 익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지만, 이런 입장을 타인에게 설득할 자신은 별로 없다.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의 자아와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동일시해야만 안정되는 자아를 지녔으며, 실은 더없이 불안정한 자아가 너무나 안정적-왜곡된 방식으로-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양쪽 모두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두 사람 다 어리석다는 얘기도 아니다. 논리적인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리에서 출발하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442

 

 그럼에도 어떤 논리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중에서도 옳은 논리의 사고 체계를 토대를 구축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이 책의 주장 자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개개인들의 입장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그것은 각자의 선호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까닭에, 이 개개인들이 보다 보편적으로 소통, 절충할 수 있는 사고와 언어의 논리는 여전히 중요한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논리적인 사람들에게도 논리는 필요하다. 그들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발언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며, 또한 논리를 전개하고 구축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로 타인의 논리와 소통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사람들도 논리의 구체적 요소와 구조를 이해할 필요는 크다. 아예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훨씬 크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논리적 함축은 한 조각의 증거보다 훨씬 강력하다. 논리적 함축은 무언가가 분명하게 참이라는 의미다. 반면 증거는 무언가가 참일 가능성을 높이는 데만 이바지할 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증거는 무언가가 참이라는 논리에 기여할 수 없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정당화뿐이다. -128

내가 위에서 내린 논리적인 사람의 정의를 바탕으로 사람을 비논리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1. 자신의 신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2. 자신의 근본 신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할 수 없는 것을 믿거나

3. 자신이 믿는 것에 자신이 믿지 않는 논리적 함축이 담겨 있거나 -420~421

 

 이 책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것이 인류 사회에 만연한 소모적인 논쟁과 폭력적인 비논리성을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왜 논리를 학습해야 하는지, 어떻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학습하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앞에서 그 부분을 지적한 이유는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식이란 결국 질병에 걸리지 않은-혹은 증상이 상당히 가벼운- 사람들에게만 투여하는 치료약을 투여하는 것처럼 한계가 명백하다고 생각해서다. 동시에 그럼에도 인간의 논리적인 성향과 논리적인 사고는 분명히 구별되는 까닭에, 논리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그 성향을 보편적인 체계로 구체화하여 타인과 소통할 가치와 필요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았다.

 

 어떤 놀랍고 번득이는 논쟁의 묘수를 전수해 주지는 않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논리의 원칙들이 무엇이고 그 각각은 어떤 관계들을 맺는지, 논리를 무시한 현 시대의 인간들이 어떤 비논리에 함몰되어 서로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들을 일으키는지 명쾌하게 지적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무척 유용한 독서였다. 논리를 학습하고 숙지하여 실천하는 것이 막연한 당위성의 요구가 아니라, 개개인이 보다 효율적이며 호혜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임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유용한 방식은 드물 것이다.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논리를 받아들이고 써먹는다면 적어도 모두가 말꼬리를 잡는 것보다는 개개인은 물론 사회도 여러모로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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