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척도 - 도쓰카 교수의 마지막 강의
도쓰카 요지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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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되고서도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들였고, 그때로부터도 또 시간이 한참 흐르고서야 해를 넘겨 가며 읽었다. 이 책을 살 때만 해도 과학책을 편집하고 있었으니, 무엇인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구입했겠지만, 정작 읽은 목적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니 조금 우습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조차도 예상과 결과가 이렇게 멀다니.

 

 저자인 물리학자 도쓰카 요지(戶塚洋二)가 작고한 지 1년 남짓 지났던 2009년에 이 책이 한국어로 나왔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 후로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언급한 소립자 물리학의 향후 과제 중에는 이미 성과를 얻은 것도 있고, 또 여전히 그의 바람대로 진행 중인 것도 있겠지만, 그 각각이 무엇인지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다행히 그런 시의성의 문제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과학은 단지 수식이 관측에 맞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리학자가 흔히 말하는 대사입니다만 이 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이 식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식은 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막스) 플랑크는 머리를 쥐어짜며 식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고 결국 혁명적인 아이디어, ‘빛은 알갱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알갱이라는 것을 어려운 말로 양자’(quantum)라고 합니다. -141

 

 실제의 생활, 일상과는 너무나 멀게 느껴질지라도, 실은 그 생활의 가장 깊은 토대를 이루고 있는 자연의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그 원리를 끊임없이 규명해 나가는 과학 연구의 원칙과 태도를 아울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언제 읽어도 늦을 수가 없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내가 가까이에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지금 이 시대의 과학자, 연구자들이 어떤 이론적, 학문적 원리 위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유용했다. 수식과 관측이 부합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겠지만, 그 이상의 설명을 추구하며, 그것이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든 그 설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가설을 도출해 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가설을 결국 확인해 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이 세계를 설명해 내고 있다.

 

원자에는 너무나도 틈이 많기 때문에 원자가 가득 모여 만들어진 지구조차도 뉴트리노의 입장에서 보면 틈이 많은 구조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뉴트리노는 나아가는 방향도 바꾸지 않은 채 관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이것이 뉴트리노가 지구나 태양조차 그냥 관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약력만으로 조망하는 뉴트리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175

 

 무엇인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다는 방식은 지극히 인문학적, 혹은 문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여겨진다. 일상적인 사고, 표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엄밀한 수단으로 보이지는 않는 까닭에, 극히 미세한 소립자인 뉴트리노의 입장에 연구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그 뉴트리노가 보았을 때 이 지구와 세계가 얼마나 빈틈이 무수한 곳일지를 인지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되는 꼭 그만큼, 생소하고 놀랍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연구자의 일상을 접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연구와 일상이 언제나 함께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연구가 일상과 전혀 다른 세계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 그 사이에서 항상 자신의 사고를 적절히 변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항상 잊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과학자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또한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예를 들어 인공위성 안에서는 시계가 천천히 간다는 유명한 현상이 있습니다. 시계가 느리게 가는 이 현상도 관측으로 정밀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약 11천 마일 상공을 12시간에 일주하는 24개의 GPS(위성항법장치) 위성(6궤도면에 4개씩 배치), 추적과 관리를 하는 GPS위성의 관제국, 위치 추적을 하기 위한 이용자의 수신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GPS위성에 탑재된 시계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이 시계는 하루에 100만 분의 1초가 늦어질 것입니다. 시계가 이렇게 늦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위치에 1.6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특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157~158

 

 기초 과학 연구의 실용적의미를 따지는 주장은 너무 뻔해서 상투적이라는 표현조차도 아까울 지경이다. 그것이 아무 실용성이 없다는 대체 무슨 문제일까 싶고, 과학자들의 고용 창출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다가 그런 실용성을 따지는 사람이야말로 비실용성의 화신이라는 확신을 품은 지 오래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관계를 설명하는 저 대목에서 일본에도 비실용성의 화신이 적지 않은 모양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괜한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성취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느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그들의 보다 편리하고 오차가 적은 생활을 위한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다. 한 푼 놓고 한 푼 먹는 실용성을 투정부리는 얄팍함이야말로 실은 기초 과학의 이 비가시적인 명확함에 너무 크게 빚지고 있다.

 

 어려운 부분을 억지로 깎아 내거나 피해 가지 않고, 그 부분을 포함하는 현대 소립자물리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저자 도쓰카 요지의 서술은 성실할 뿐만 아니라 친절해서, 훌륭한 대중서의 미덕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그가 스스로 굉장한 인물이라고 표현한 과학사학자 아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1960년 도쿄대 입학 동기이며, (국회 데모에도 참가했지만) 자신은 (야마모토와 달리) “정치운동에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학자가 학문에 이르는 길도, 그 학문을 닦는 길도 서로 얼마나 다르고 멀 수 있는지, 그와 동시에 또한 그 길들이 결국 얼마나 서로 비슷하고 가까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자신의 세계를 치밀하면서도 유연하게 소개한 이 소품은 그 경로들의 근사한 만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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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기술 - 이해 못 할 세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
유지니아 쳉 지음, 김성훈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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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펼치며 언제나 누구나 논리로 제압할 수 있는 비법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정공법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반대 방향에서 놀라웠다. 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수학과 논리의 관계, 그 활용의 방식과 가능성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구축해 올림으로써, 논리와 수학의 현실적 가치를 수용하고 이 둘을 아울러서 일상적인 사고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 근본적인 구조를 밝힌다. 논리와 수학 자체의 이론적 역할을 드러내기보다는, 이 둘의 관계가 지금의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독자가 논리학과 수학을 활용하려는 방향에 따라서 이 책의 효용은 다소 다르겠지만, 논리의 근본적인 가치와 그것의 기본적인 활용 방식, 그리고 여기서 수학이 갖는 역할의 중요성을 숙지하는 데 있어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원래는 아래와 같이 양립 가능하고 합리적인 두 개의 주장이었다.

 

A: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어리석고 적대적인 주장으로 갈아타고 만다.

 

A: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아무도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 -373

 

 서구 사회에서 전개 중인 대다수의 소모적인 논쟁 중 아주 간단한 논리의 학습과 적용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논리를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학습의 결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폐기해야 할 뿐이기에, 논리를 학습할 동기도 이득도 없으니 실상 이 타당한 논리를 적용해서 실제 현실의 논쟁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정당한 근거가 없는 자신의 주장이 이미 더없이 타당한 논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신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지적도, 그 주장 대신 타당한 노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설득도 적절한 동기로 작용하기가 어렵다. 잘못된 주장을 옳은 논리라고 믿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타당하다고 믿는 논리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반대하는 주장에 승복하고 그것을 학습하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지적 성취에 앞서서 지적 파탄에 가까울 가능성이 충분하다.

 

 소모적 논쟁이 끝나지 않는 것은 논리가 어려워서도, 옳지 않아서도 아니다. 논리가 가장 필요한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비논리적인 인간인 까닭이다. 논리의 내용도 그 학습도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보다 쉬울지 모른다. 어려운 것은 그 쉬운 논리를 배우게 만드는 일과 그 논리를 배운 후의 일이다, 논리의 구조를 습득한 후에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오로지 버리고 바꾸기만 해야 한다면, 대체 그는 왜 논리를 익혀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그는 이 논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논리를 익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사실을 나는 믿지만, 이런 입장을 타인에게 설득할 자신은 별로 없다.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의 자아와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동일시해야만 안정되는 자아를 지녔으며, 실은 더없이 불안정한 자아가 너무나 안정적-왜곡된 방식으로-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양쪽 모두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두 사람 다 어리석다는 얘기도 아니다. 논리적인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리에서 출발하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442

 

 그럼에도 어떤 논리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그중에서도 옳은 논리의 사고 체계를 토대를 구축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이 책의 주장 자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개개인들의 입장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그것은 각자의 선호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까닭에, 이 개개인들이 보다 보편적으로 소통, 절충할 수 있는 사고와 언어의 논리는 여전히 중요한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논리적인 사람들에게도 논리는 필요하다. 그들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발언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며, 또한 논리를 전개하고 구축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로 타인의 논리와 소통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사람들도 논리의 구체적 요소와 구조를 이해할 필요는 크다. 아예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받아들일 필요가 훨씬 크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논리적 함축은 한 조각의 증거보다 훨씬 강력하다. 논리적 함축은 무언가가 분명하게 참이라는 의미다. 반면 증거는 무언가가 참일 가능성을 높이는 데만 이바지할 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증거는 무언가가 참이라는 논리에 기여할 수 없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정당화뿐이다. -128

내가 위에서 내린 논리적인 사람의 정의를 바탕으로 사람을 비논리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1. 자신의 신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2. 자신의 근본 신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할 수 없는 것을 믿거나

3. 자신이 믿는 것에 자신이 믿지 않는 논리적 함축이 담겨 있거나 -420~421

 

 이 책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것이 인류 사회에 만연한 소모적인 논쟁과 폭력적인 비논리성을 어떻게 감소시킬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왜 논리를 학습해야 하는지, 어떻게 비논리적인 사람들이 논리를 학습하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앞에서 그 부분을 지적한 이유는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식이란 결국 질병에 걸리지 않은-혹은 증상이 상당히 가벼운- 사람들에게만 투여하는 치료약을 투여하는 것처럼 한계가 명백하다고 생각해서다. 동시에 그럼에도 인간의 논리적인 성향과 논리적인 사고는 분명히 구별되는 까닭에, 논리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그 성향을 보편적인 체계로 구체화하여 타인과 소통할 가치와 필요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았다.

 

 어떤 놀랍고 번득이는 논쟁의 묘수를 전수해 주지는 않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논리의 원칙들이 무엇이고 그 각각은 어떤 관계들을 맺는지, 논리를 무시한 현 시대의 인간들이 어떤 비논리에 함몰되어 서로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들을 일으키는지 명쾌하게 지적해 주었다는 점만으로도 무척 유용한 독서였다. 논리를 학습하고 숙지하여 실천하는 것이 막연한 당위성의 요구가 아니라, 개개인이 보다 효율적이며 호혜적인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임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유용한 방식은 드물 것이다. 논리가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논리를 받아들이고 써먹는다면 적어도 모두가 말꼬리를 잡는 것보다는 개개인은 물론 사회도 여러모로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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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이 세 번째 발견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이 죽는 것과 달리 원자핵은 확실한 법칙에 기초하여 붕괴됩니다. 과학이란 이러한 법칙을 어떻게 해석 할지를 규명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수학적으로 표시된 지수함수(exponential function, 수학용어로서 a를 양의 상수, x를 모든 실수값을 취하는 변수라 할 때 y=ax로 주어진 함수를 가리킨다)적 감소는 사실 엄청난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원자핵의 붕괴에는 붕괴를 재촉하는 원인이 되는 여러 가지 매개변수(parameter)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단지 반감기라는 기본적인 매개변수가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라듐 원자핵은 아무런 원인도 없이 갑자기 붕괴한다는 것이다. 다만 많은 원자핵 붕괴를 모아놓고 볼 때 통계적으로 그래프에 표시한 것 같은 지수함수적 감소를 보일 뿐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순수한 ‘확률 현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극미한 세계에서 당시까지 아무도, 위대한 물리학자나 철학자조차도 의심하지 않았던 인과율, 즉 뭔가가 일어날 때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저 위대한 아인슈타인마저도 인과율이 존재하지 않는 이 법칙을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어서 가장 대중적인 확률현상인 주사위놀이를 비틀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라고 중얼거렸던 것입니다.
현상이 원인에 기초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일어난다는 법칙은 ‘양자역학‘ 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20세기의 전자공학(electronics) 등에 의한 과학·기술의 역사적 진보는 바로 이 인과율에 의하지 않는 양자역학이 기초가 되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P38.39

다시 말해 화학반응으로 태양이 열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면 태양은 3,000~5,000년, 많아야 1만 년 이내에 다 타버리고 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지질학이나 화석 연구를 통해, 지구의 연령은 수억 년이라는 규모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태양의 수명이 기껏해야 1만 년인데 지구가 생기고 나서 수억 년이 지났다는 것은 모순이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레일리(John William Strutt Rayleigh, 1842~1919, 질소의 질량을 측정하는 과정 중 1894년 W.램지와 함께 아르곤을 발견, 그 공로로 19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위의 계산을 기초로 그리스도교의 성서에서 말한 것처럼 신은 1만 년 전쯤에 우주를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잘 알려진 생물학자‘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 영향력이 컸으며 진화생물학의 논점들을 사회적 이슈로 확대시킨 논쟁가로도 유명하다. 진화를 곧 발전‘ 으로 보는 직선적 생명관, 다위니즘을 벗어나지 못한 서구식 가치체계를 끊임없이 비판해 좌파적 진화론자‘라 불렸으며,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주장하여 진화의 기본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진화생물학과 고생물학을 접목시킨 것도 그의 업적으로 평가된다)는 그의 저서에서 "레일리 경이 너무나도 고명한 물리학자에서 지질학자나 화석학자들은 그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생물의 진화학은 상당히 늦어졌다" 라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레일리 경에 대한 그의 비난은 잘못 짚은 것입니다. 지질학자나 화석학자가 자신의 연구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 자기 자리를 걸고라도 레일리 경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했어야 합니다. 물리학자는 납득할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레일리 경도, 만약 그들의 설명을 납득할 수 있었다면 새로운 에너지원 연구에 돌입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과학의 진보는 오히려 빨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P43.44

1939년 미국의 코넬 대학에 소속해 있던 당시 서른세 살의 한스 베테(Hans Bethe, 1906~2005) 박사가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제목은 『별의 에너지 발생에 대하여』(Energy Production in Stars)였습니다. 이 논문은 태양을 포함하는 항성의 에너지가 핵반응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것입니다.

어떤 주제, 예를 들어 별의 에너지원 등에서 베테 박사가 연구를 시작하면 연구가 어찌나 철저한지, 연구하지 못한 채 남은 과제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보통의 연구자가 연구 발표를 한 뒤에는 벌채된 산속에 군데군데 남겨진 나무처럼 연구 과제가 남기 마련인데, 그가 훑고 지나간 자리에는 잡초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후속 연구자는 그 후 개량된 실험 장치를 사용해 그의 이론에 기초하여 계산을 하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요. 베테 박사는 별의 에너지원이나 그 밖의 원자핵에 관한 방대한 연구 업적으로 196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후속 연구자에 의한 연구의 정밀화 작업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생의 절반을 바쳐 태양의 에너지원을 연구해온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존 바콜(John Norris Bahcall, 1934~2005) 박사의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P51.52

몇 년쯤 전의 일입니다만, 제가 관여하고 있던 실험 결과가 흥미 있는것이었고 베테 박사의 이론 연구와도 관계가 있었으므로 박사의 이론과 실험 결과의 관련성에 대해 쓴 짧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곧 답장이 왔는데, "나와 바콜, 그리고 당신, 이렇게 세 사람의 이름으로 논문을 써봅시다"라는 제안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실험가일 뿐이며, 전설적인 이론가와 논문을 함께 쓴다고 해도 어차피 저의 공헌이 전혀 없을 거라는 것이 분명하고, 또 실험 결과를 아직 논문으로 만들지 않은 처지이기 때문에 공동 논문은 사양하겠다는 편지를 베테 박사에게 다시 보냈습니다.
어쨌든 그의 논문은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모양으로, 존 바콜과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그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은 저한테도 동시에 보내졌습니다) 출판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베테-바콜의 논문‘으로 상당히 유명해졌습니다. 역시 이름을 넣어두는 것이 좋았을까 하는 후회도 했습니다만, ‘원님 떠난 뒤의 나팔‘이었습니다.- P63.64

다시 말해 태양이 4.4조 년 걸려서 내는 에너지(그 전에 이미 태양은 다 타버립니다만)를 초신성은 단 몇 초 만에 방출하는 것입니다!
이 초신성 에너지의 99퍼센트는 뉴트리노라는 소립자가 가져가버립니다. 나머지 1퍼센트로 별은 완전히 파괴되어 은하 전체보다도 밝게 빛납니다. 1퍼센트라고 해도 태양이 440억 년 걸려서 내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입니다.- P77

SN1987A의 관측으로부터 초신성의 폭발은 태양 질량과 거의 같은 무게를 가진 철 덩어리가 단숨에 붕괴되어 중성자별이 되는 현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16만 광년 떨어진 데 있는 물체의 반지름, 그것도 단 3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물체의 반지름을 알아냈다는 사실입니다.- P79.80

과학은 단지 수식이 관측에 맞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물리학자가 흔히 말하는 대사입니다만 ‘이 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이 식을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식은 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미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막스) 플랑크는 머리를 쥐어짜며 식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고 결국 혁명적인 아이디어, ‘빛은 알갱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알갱이라는 것을 어려운 말로 ‘양자‘(quantum)라고 합니다.- P141

또한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예를 들어 인공위성 안에서는 시계가 천천히 간다는 유명한 현상이 있습니다. 시계가 느리게 가는 이 현상도 관측으로 정밀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시스템은 약 1만 1천 마일 상공을 12시간에 일주하는 24개의 GPS(위성항법장치) 위성(6궤도면에 4개씩 배치), 추적과 관리를 하는 GPS위성의 관제국, 위치 추적을 하기 위한 이용자의 수신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GPS위성에 탑재된 시계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이 시계는 하루에 100만 분의 1초가 늦어질 것입니다. 시계가 이렇게 늦어지는 것을 내버려두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위치에 1.6킬로미터의 오차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특수상대성이론을 이용하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보정하지 않으면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P157.158

⑧ 원자에는 너무나도 틈이 많기 때문에 원자가 가득 모여 만들어진 지구조차도 뉴트리노의 입장에서 보면 틈이 많은 구조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뉴트리노는 나아가는 방향도 바꾸지 않은 채 관통해 빠져나갈 수 있다.

이것이 뉴트리노가 지구나 태양조차 그냥 관통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약력만으로 조망하는 뉴트리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P175

③ 예를 들어 수소 원자를 태양계 정도의 크기로 팽창해보자. 수소 원자는 태양계 정도의 크기이며,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진공의 구 안에 10센티미터 정도의 전자나 쿼크가 4개 흩어져 있는 정도의 틈이다. 쿼크 3개는 원자 안에서 좀 더 한데 뭉쳐 존재하지만 지금의 논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P176

태양은 그 중심에서 핵반응을 일으켜 에너지(열)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소개했습니다.(강의 2의 ‘① 방사선과 태양의 에너지원, 그 하나‘, ‘② 방사선과 태양의 에너지원, 그 둘‘) 그 에너지(열)는 태양내부의 물질 안을 천천히 상승하여 표면에 이릅니다. 태양 내부의 물질은 풀솜처럼 열전도율이 나쁘기 때문에 중심에서 만들어진 에너지가 태양 표면까지 올라오는 데 수십만 년이 걸립니다. 또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중심 부분에서는 온도가 1,500만 도나 됩니다만, 물질을 확산시키고 있는 동안 온도가 내려가 표면에서는 6,000도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이 6,000도로 불타오르는 구(光球)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빛은 인류가 탄생하지도 않은 수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에너지의 모습입니다. 태양의 에너지가 직접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뉴트리노는 지구는 말할 것도 없고 태양조차 쉽사리 관통합니다. 만약 태양 에너지가 발생할 때 뉴트리노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그것들은 빛의 속도로 나아가기 때문에 지구에는 8분 만에 도착합니다. 다시 말해 태양 뉴트리노를 관측하면 8분 전에 태양 에너지가 발생한 현장을 연구할 수있지 않을까요? 바로 이것이 연구자들이 태양 뉴트리노를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P177.178

좀처럼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론에는 어딘가 알아채지 못하는 불충분함이 감추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P180.181

캐나다의 관측 장치 ‘스노 (SNO)는 슈퍼카미오칸데와 마찬가지로 첫번째(뉴트리노)에도 감도가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를 별도로 포착할 수 있는 우수한 것이었습니다. 물 대신에 1,000톤의 중수를 사용했습니다. 중수 1리터의 가격은 고급 코냑 값과 비슷하기 때문에 스노 장치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실제로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100톤의 중수를 공짜로 빌렸습니다. 2007년 관측이 끝났기 때문에 중수는 그대로 정부에 반납했습니다.)- P183

우주는 137억 년 전에 일어난 빅뱅으로 탄생하여 팽창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습니다. 팽창의 속도는 우주 안에 있는 물질 사이에서 작용하는 ‘만유인력‘으로 결정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늦어질 것입니다. 과학자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관측 그룹이 우주 저편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초신성 폭발을 많이 관측하고 우주의 팽창 속도가 우주의 과거에 어떤 수치였는가를 관측하여 현재의 팽창 속도와 비교했습니다. 1998년에 발표한 관측 결과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는 감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하고 있다."
라는 놀랄 만한 결과였습니다. 이것은,
"우주는 만유인력이 아니라 ‘척력‘이 지배하고 있다."
고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84.185

자연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수량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양, 길이를 나타내는 양, 질량을 나타내는 양,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기본적인 상수를 알고 있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상수(G), 빛의 속도(c), 플랑크 상수(h)입니다. 이 상수들은 상당히 성가신 단위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 세 가지로 시간, 길이, 질량의 기본적인 수치를 나타낼 수 있고 그 구체적인 수치를 구할 수 있습니다.- P186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질량으로 규정되는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해도, 플랑크 시간 정도가 지나면 우주 전체가 블랙홀이 되려고 수축을 시작하고 순식간에 찌부러져버리게 됩니다. 원래 우리는 이러한 세계에 살고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실세계는 미터, 초로 표시되는 극단적으로 엷어진 세계가 되어버린 걸까요?
이 ‘자연스럽지’ 않은 세계가 왜 탄생했는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P191

저는 실험가이기 때문에 그 고상한 수학은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초끈이론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이 이론의 수식을 풀어보면 거의 무수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풀이 하나하나가 빅뱅으로 만들 수 있는 우주일 것입니다. 무수하게 존재하는 이 우주는 지금까지 소개한 기본 상수가 각각의 우주에서 달랐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수하게 서로 다른 우주의 가능성이 있고, 이론은 그것들이 실제로 만들어져 있을 거라고 합니다. 우주를 유니버스(universe)라고 합니다만 처음의 ‘uni’는 하나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무수하게 존재하는 우주는 멀티버스(multiverse)라고 부릅니다.- P199.200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무수히 존재하는 우주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왜 마침 앞에서 소개한 기본 상수를 가진 그 우주인 걸까요? 이론가는 난처한 나머지 그것은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우주에 우연히 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말합니다. ‘인간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 원리에 위화감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원리를 내세우면 과학은 여기서 끝나버리고,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법칙을 응용하는 응용과학밖에 남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P201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을 통해 빛이 파동임과 동시에 알갱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149페이지 참조)
그 다음으로 곧바로 극미(極微)의 세계에서는 빛만이 아니라 전자라든가 양자라는 입자도 사실 양면성을 갖고 있어서, 원래는 알갱이인 것이 파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20세기 최대의 발견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의 파동으로서의 성질을 이용한 전자현미경을 사용하면 빛의 현미경과 마찬가지로 사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P207

The most important discoveries will provide answers to questions that we do not yet know how to ask...
가장 중요한 발견이란 우리가 지금껏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몰랐던 질문들에 해답을 제공해줄 것이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존 바콜(John Bahcall))

어떻게 질문해야 좋을지 모르는 발견이 아니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우주를 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재미가 없습니다.- P232

자연과학의 토양이라는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셈인데, 그쪽에 가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게 있어요. 일본에서 배울 수 없는 게 있는 거지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 부분은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직접 피부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재미있거든요. 아주 오래 체재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2년 정도라면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일본도 무척 발전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의식에는 일류 연구는 일본에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역시 문화의 차이로부터 배울 점이 참 많아요. 그걸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일본에서 해도 된다!"라는 생각에는 반대해요. 특히 문과 계통의 선생님들 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그것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P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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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 김영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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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20년 전에 무척 재미있게 보았던 책의 개정판을 다시 읽을 때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는데,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진중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오히려 도움은 더 많이 된 듯하다. 이 개정판의 진중함은 초판 이후 관록이 붙은 저자 본인과 개정판이 되면서 번역 자체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듯하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시작해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정립한 행동 경제학에 이르는 경제학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유창하게 정리해 주었다. 물론 분명 내 기억 속에서 이 책은 각 장의 경제학자에 대한 저자 본인의 개성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저작이었는데, 지금 보니 가능한 한 보편적이고 교과서적인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내가 경제학에 대해 그만큼 무지했다는 반증이라면 타당하기는 한데, 지금까지도 딱히 나아진 것이 없어서 이 책을 다시 만났더니 그 사이 주워들은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재미가 적었고 도움은 되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는 왜 유치산업보호론을 반대했을까? 스미스는 유치산업이 성장한 뒤에 정부가 기존에 폈던 관세 정책 등 보호 정책을 철회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런 산업은 다 큰 뒤에도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고, 젖을 달라고 떼를 쓰며 울부짖을 것이다. 아니면 논점이나 전략을 바꿔, 이제는 임종을 앞둔 노인네처럼 숨을 헐떡이거나 침을 흘리면서 무조건적인 보호를 요구할 수도 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은 이상의 두 가지 전략을 모두 사용했다. 처음에는 노망든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나중에는 다시 태어난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렸다. 그러나 철강 산업 보호는 다른 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와 달리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철강의 가격이 상승하면 냉장고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철강이 사용되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서 기계류의 수출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96~97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만성화된 문제다. 어떤 하나의 동기에서 똘똘 뭉친 이익 집단들은 국가 차원의 경제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른 결과에서 사소한 몫을 가져가는 개별 소비자들의 이해관계는 철저히 짓밟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이득은커녕 국가적 효율성과 소득의 하락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개 특수 이익 집단들은 공공의 복리에서 아주 적은 몫만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몫이 하나로 뭉치면 무시 못할 크기이지만. -493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치산업보호론의 의의를 강조해 온 장하준 교수 덕분에 이 주장에 타당한 지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정부의 정치적 의지 탓에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결국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예측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스미스의 이런 입장은 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제임스 뷰캐넌의 공공선택학파와 연계해서 생각한다면 타당성이 더욱 강해진다. 공공의 복리를 침탈하려는 이익집단의 가열찬 노력 앞에서 이 복리를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너무 미약하고, 개별 소비자들은 각자의 손해가 너무도 적은 까닭에 이익집단에 맞서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익이 되는 측면조차 있다는 공공선택학파의 지적은 현대 사회의 분업화, 세부화를 반영한 애덤 스미스의 입장이라고 이해할 여지가 적지 않았다


 반면에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서 불완전하고 무책임한 정부 및 관료(공무원)의 문제를 지적하는 공공선택학파의 입장은 현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맹점을 직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공공선택학파를 다룬 장에서 케인스의 이런 측면을 자세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했는데, 이는 단순히 케인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크고 작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 경제학에서 케인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반증한다. 물론 저자는 굳이 이런 의미까지는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케인스의 의의와 한계 양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려는 입장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따로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 및 시장의 자율성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그것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닥칠 파국의 규모와 위험성을 우려하여 이를 방지,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과 그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 서로 교차하며 성장해 온 근현대의 서양 경제 사상사를 하나로 아울러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는 점이 이 책의 의의인 듯하다. 이렇게 간명하게 적으면 당연하고 평이한 작업처럼 들리지만, 이 책에 담긴 경제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예리하고 치밀했는지를 생각하면, 어느 한 입장, 추세에 심하게 기울지 않고 가능한 한 중심을 지켜 가면서 그 역사를 관통한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성과다. 이 책이 여전히 나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추측한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대공황 이래로 입지를 강화해 왔던, 정부 역할의 확대를 기조로 삼은 케인스 및 케인스주의의 관점보다는 케인스 이전부터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서양 경제학의 핵심 교리와도 같았던 자유 시장의 효율성과 합리성, 혹은 시장 경제와 자유주의의 가치에 약간은 더 무게를 두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입장은 이 개정판이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장 원리의 명분 아래 금융 기관들의 시민들에 대한 약탈적 대출을 방임한 결과로 폭발한 모기지론 부실 사태가 초래한 2007~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야말로 이 책에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암시하는 정부 개입의 필연에 가까운비효율성과 시장 원리의 궁극적 정합성과 합리성의 허점을 가장 잘 드러내 주었던 까닭이다. 정부는 필연적으로 효율성을 잃겠지만 그 전에 지금 당장 사회에 밀어닥친 무수한 경제적 난관을 해결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시장은 궁극적으로 효율성을 찾겠지만 그 전에 얼마나 크고 많은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는 알 수 없고, 시장이 그 희생 후에도 정말 존재할지는 시장조차도 알지 못한다.

 

(앨프리드) 마셜은 수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 도구 중 하나인 탄력성e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거시 경제미시 경제를 막론하고 오늘날 거의 모든 경제학적 논쟁은 탄력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정부 정책은 암암리에 또는 드러내 놓고 탄력성 문제를 다룬다. 이처럼 오늘날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주변을 떠도는 탄력성이라는 유령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탄력성은 반응도responsiveness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가격 변화에 어느 정도 민감하게 반응할까?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지는 것에 맞춰 소비를 조절할까? 아니면 가격에 상관없이 항상 적정 소비 수준을 유지할까?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상품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332~333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 어떤 특정한 경제학으로의 귀결이나 그 입장의 정당성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의미는 없고, 손해는 크다. 그보다는 각각의 입장이 도출되고 성장해서 한계에 직면하고, 그 지점에서 다시 새로운 입장이 도출되는 경제학의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조망하고, 여전히 현재의 경제학에 영향을 미치는 그 과거 이론들의 개념과 관점, 혹은 그 흔적을 개괄할 수 있다는 데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의의를 찾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의 경제적 가치는 어떤 직관이나 통찰보다는 그것과 오히려 거리가 있는 요점과 정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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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이용하면 우리의 원리를 검증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가 자기만의 어떤 근본 원리 때문에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정말 참이라면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옮겨 갔을 때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원리가 진정한 원리가 아니거나, 추상화 수준을 잘못 선택했다는 의미가 된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이런 실수를 해서 자신이 편견에 빠진 것이 아니라 강력한 근본 원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타인을 설득하려 할 때가 많다.- P329.330

상황은 그 상황을 둘러싸고 대부분의 주장을 통해 드러나는 것보다 더 미묘하다.- P335

무언가를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목적은 보편적 원리라는 것 중 상당수(혹은 대부분, 혹은 전부)는 그 적용 범위에 한계가 있으며, 진짜 어려운 부분은 원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적용할 범위를 정하는 것임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를 이해할 때 핵심적인 부분이다. 원리 그 자체보다는 그 경계선을 정확히 어디에 그을 것이냐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회색 지대를 이용해서 대립되는 의견 간의 차이가 흑백의 차이가 아니라 회색의 명도 차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입장의 차이가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양적인 차이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이미 대립되는 생각 사이의 간극을 잇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P343

모든 비유가 어느 수준에 가서는 깨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비유의 핵심 요점이다. 비유는 원래의 상황과 똑같지 않다.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따라서 어느 면에서는 다르기도 하다. 비유가 어딘가에서는 깨진다고 해서 그 비유가 나쁜 비유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 비유가 우리의 논의와 관련된 측면에서 깨진다면 그 점이 더 중요할 수 있다.- P352

앞 장에서 비유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같고, 필연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둘이 같지 않은 점을 이용해서 그네 타기로 오가다가 논리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있거나, 더욱 극단적이어서 도덕적 판단을 더 쉽게 내리게 해주는 장소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양의 〈같음〉으로 서로 다른 비유를 만들어 내는 다양한 수준의 추상화가 존재한다. 그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할까? 이곳도 항상 회색 지대가 등장하는 장소다. 대상들이 여러가지 서로 다른 면에서 동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이 같은가, 다른가?〉보다는 〈이것이 어떤 면에서 같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라는 질문이 더 좋은 질문이다.

이것을 다음과 같은 진술로 표현할 수 있다.

A: 나는 X가 되기 싫어.
B: 나는 X인 사람은 나쁘다고 생각해.

이 함축은 그리 논란이 될 것이 없다.

B→A

하지만 내 말에 기분이 상하는 사람들은 그 역이 참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A→B

만약 역이 참이었다면 A와 B는 논리적 동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 역은 거짓 동치를 만들어 낸다.- P364

누군가가 〈기본적으로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는~ 〉이란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한다면 거짓 동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징후다. 이것은 당신의 말을 다른 의미로 왜곡하려 한다는 신호다.- P367

일반적으로 거짓 동치에 이끌려 가는 적대적 논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당신은 A라 말하고 있다.
A와 B는 동치다.
B는 나쁘다.
따라서 당신은 아주 몹쓸 인간이다.

이런 논증의 논리는 두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B가 사실은 나쁘지 않거나, A가 사실은 B와 동치가 아닌 경우다. 물론 양쪽 지점에서 모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상하게도 여러 지점에서 문제가 있는 논리에 반론을 펼치려면 헷갈릴 수 있다. 너무 많은 변명을 늘어놓을 때나 너무 많은 것에 반대할 때와 비슷하다. 이것을 보여 주는 한 사례는 당신이 학교에서의 성교육을 지지하는 경우다. 그럼 어떤 사람은 그것이 혼외정사를 용납하는 것과 동치이기 때문에 사악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성교육을 하는 것이 혼외정사를 용납하는 것과 동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혼외정사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P367.368

원래는 아래와 같이 양립 가능하고 합리적인 두 개의 주장이었다.

A: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어리석고 적대적인 주장으로 갈아타고 만다.

A: 모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B: 아무도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 P373

나는 이것이 A라는 선택을 내리는 것과, 나머지 다른 선택은 다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거짓 동치로 엮는 또 다른 사례라고 본다. 내가 A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모든 사람이 A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무언가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것(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을 선택하면 사람들은 내가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이라 가정할 때가 너무 많다.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선택을 내리는 이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거짓 이분법에 빠져 있는 것만 아니면 꼭 다 그런 것은 아니다.- P374

내가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가장 악의적인 허수아비 논증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주장에 대해〈모든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고 반론하는 것이다. 나는 이 안에서 허수아비 논증을 목격한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슬로건이 실제로 가리키는 바는 〈흑인의 생명도 다른 생명만큼이나 소중하지만 현재는 마치 그보다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받고 있으니 우리는 이런 부당함을 고치기 위해 무언가 할 필요가 있다〉라는 뜻이다. 물론 이렇게 장황해서는 슬로건으로 적당하지 않다.
허수아비 논증에서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를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지만 다른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의도적으로 곡해한다. 이렇게 의미를 왜곡하고 나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말로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이런 논증은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 무언가를 반박하는 논리적 오류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를 좌절시키는 또 다른 측면을 갖고 있다. 반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논증을 반박하려면 〈어떤 생명은 소중하지 않다〉라고 주장해야 한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부 극단주의자를 제외하면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P376

이런 상황이 등장하는 사례로는 〈맨스플레인mansplain〉에 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나는 〈맨스플레인〉이란 용어를 쓰면 적어도 한 명 정도는 흥분하는 사람(보통 남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이것이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 주는 더 큰 증거라 생각한다.- P384

여성이 무지하다는 가정은 단순히 여성을 전반적으로 깔보는 태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의 기여를 낮게 평가하거나 무시하는, 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는 패턴의 일부다.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사회적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이런 정의를 여성의 행동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 때때로 〈여자도 맨스플레인을 한다〉라는 허수아비 논증이 등장한다. 이 경우에는 맨스플레인에 대한 논쟁을 그저 남성이 깔보는 듯한 태도로 불필요한 것들을 설명하는 내용이라 곡해하는 것이 허수아비 논증에 해당한다. 내 경험으로 볼 때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거의 항상 남자들이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남성들의 그런 행동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정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며, 그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여자도 맨스플레인을 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은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가 여성을 깔보는 남성을 기술하기 위한 용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P385

만약 무언가를 느낄 때 그 느낌 자체를 부정할 방법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이런 강력한 힘을 좋은 방향으로 써서 감정으로 논리를 뒷받침해야 한다.- P395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슬처럼 길게 이어진 인과와 논리를 이해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드러나는 한 가지 구체적 사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나, 순간의 만족을 위해 살지 않고 장기적 이득을 위해 단기적 이득을 희생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것이 개인적인 공리 중 하나다.- P399

어떤 분야는 감정을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설득하는 데 특히나 탁월하다. 종교 지도자, 대중 연설가, 일부 교사, 광고 전문가, 예술가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과학 분야는 자신의 결론을 전달하는 데 증거와 논리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곤란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현실적인 믿음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모든 사람에게 증거와 논리만으로 설득되어야 한다는 점부터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미 증거와 논리로는 설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증거와 논리만을 이용해서 그 일을 해낼 것인가? 결국 그렇게 하면 러셀의 역설 비슷한 것으로 끝나게 된다.- P406

부디 교사가 학생에게 추근거리는 것과 학생이 교사에게 추근거리는 것이 동치가 아니라는 데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기 바란다. 권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하게 직장 상사가 직원을 유혹하려 하는 것과 직원이 직장 상사를 유혹하려 하는 것도 다른 상황이다. 상사가 직원에 대해 갖고 있는 권력 때문이다.- P413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엄격한 정당화 과정이 뒷받침되는 한 직관을 사용해서 수많은 수학적 업적을 달성했다. 그래서 나는 직관과 감정이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논리로 뒷받침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거의 모든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반면, 모든 사람이 복잡한 논리를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는 좀 더 논리적인 사람들이 감정적인 수단을 활용해서 논리적인 생각들을 확실히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P415.416

내가 위에서 내린 논리적인 사람의 정의를 바탕으로 사람을 비논리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1. 자신의 신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거나
2. 자신의 근본 신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유도할 수 없는 것을 믿거나
3. 자신이 믿는 것에 자신이 믿지 않는 논리적 함축이 담겨 있거나

(중략) 세 번째 사례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치료비를 대신 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임산부 진료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임산부 진료 보장이 여성을 통해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데도) 의료 보험에서 임산부 진료까지 보장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남성들이다. 그런데 이런 남성도 전립선암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것은 남성만을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의료 보험이라는 원리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기는 아프지 않아도 돈을 내는 거 아닐까? 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치료비를 대신 내서는 안 된다〉라는 진술은 〈나는 의료 보험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라는 논리적 함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제의 그 남성이 여전히 의료 보험의 가치를 믿는다면 그는 이 세 번째 항목에서 비논리성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비유의 그네 타기를 해보면 그가 마음속 깊이 믿는 원리는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는 남성이 돈을 내면 안 되지만, 남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여성이 돈을 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P420.422

나는 막강한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능적으로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저 막강한 이성만 갖춘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이용해 세상을 돕는 사람이다. 최고의 슈퍼 영웅이 자신의 초능력으로 세상을 돕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 막강한 힘을 이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이 분열을 극복하게 돕고, 분열을 야기하지 않는 배려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어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P438

인생을 제로섬 게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이길 수 있겠다 싶은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든다.- P438.439

예를 들어 내가 미국 시카고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성적으로 보면 그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선택임이 분명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화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목록으로 적어 보고 내가 혼란에 빠진 이유를 알아냈다. 시카고로 옮기면 정말 커다란 장점이 몇 가지 따라오지만, 소소한 단점이 엄청나게 많이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소소한 단점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감정적으로 압도되어 버렸던 것이다. 일단 내 두려움의 원천을 발견하고 나니 그것을 줄일 수 있었고, 결국 나는 망설임 없이 선택을 내렸으며 후회도 없었다.- P441

논리적인 사람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비논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양쪽 모두 비논리적일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두 사람 다 어리석다는 얘기도 아니다. 논리적인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공리에서 출발하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P442

나는 세상에서 좋은 논쟁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무슨 말이냐고? 나는 좋은 논쟁은 논리적 요소와 감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이둘이 함께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잘 쓰인 수학 논문은 증명 과정도 물 샐 틈 없이 완벽하면서 좋은 해설까지 함께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좋은 해설은 사람들이 논리를 단계별로 차근차근 이해하면서 그 개념들을 피부로도 느낄 수 있게 잘 묘사한다. 좋은 논문은 또한 논리적 상황이 우리의 직관과 모순을 일으키는 역설적인 상황도 꼼꼼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P443

나는 좋은 논쟁이란 그 뿌리로 들어가 보면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논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P444

좋은 논쟁에서는 아무도 공격받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의견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그저 관점만 다른 것일 경우에는 논쟁을 비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만약 모든 이가 지능적으로 막강한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스로 이런 부분을 책임질 것이다. 이를 이루어 내려면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지능적으로 될 때까지는 지능적인 사람들이 모두가 공격받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스스로 이렇게 상기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경쟁이 아니라고 말이다. 왜냐면 실제로도 결코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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