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7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과연 거장이다. 장면들을 표현해서 작품을 구축하는 내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시선과 필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토록 확고한 작가여서, 시대를 가로지르고서도 하나같이 번잡한 이야기를 써 냈다. 그는 마치 어느 작가라도 호흡을 놓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치밀하게 그려낼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작정하고 스스로를 몰아넣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애욕과 번민이 들끓어서 작품 밖의 독자까지 휘둘리는 와중에도 오직 작가 본인만 그 세계에 현혹되지 않는다. 다만 누가 자신의 욕망에 어떻게 휘둘리는지, 그들은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이나 수단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지 집요하게 그려낼 뿐이다. 이런 인물, 배경, 사건을 벌여놓고도 용케 그 아수라장에 휘말리지 않는 균형감은 펜을 놓치지 않은 그의 손목에서 비롯됐을까, 아니면 글 위에서 휘청대지 않은 그의 발목에서 나왔을까. 듣는 사람을 모두 웃기고서도 혼자 무표정을 지키는 개그맨을 떠올린다면 너무 경박한 노릇이겠지만, 다니자키가 누구보다 현란한 이야기를 창조하고서도 그 세계에 도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 홀로 말이다.

 

(518. 소노코가 미쓰코에게. 봉투 길이 12센티미터, 7.2센티미터 정도. 그림은 가로로 그려져 있다. 사슴 등에 있는 흰 얼룩처럼 진홍색 바탕에 드문드문 은색 점선이 있고, 아래쪽에는 커다란 벚꽃 잎 세 장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그 위에는 연회석에서 춤추는 무희의 뒷모습을 절반만 그려놓았다. 빨강, 보라, 검정, 은색, 청색의 다섯 가지 색을 아주 짙게 인쇄해서, 그 위에 글씨를 쓰면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름은 뒷면에 쓰여 있다. 편지지는 길이 21센티미터, 13.5센티미터 크기에 2.4센티미터 정도의 하얀 백합꽃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백합꽃 주변은 연분홍색으로 선염이 되어 있다. 따라서 줄이 그어진 부분은 지면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4호 활자보다 더 작고 가느다란 글씨로 쓰여 있다.) (())-p.42

 

 「()의 이야기를 여기서 줄일 재주는 없지만, 그게 애초에 가능한 일일지도 의심스럽다. 멀리서 보았다면 그저 빤한 치정극(癡情劇)이었을 텐데, 이렇게나 샅샅이 보았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어지럽고 어리석게 뒤엉켜서 더러워 보이는 욕정들을 어떻게든 섬세하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가닥들은 낱낱이 탄력과 광채를 발한다. 다니자키는 비단 여느 이야기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러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그악스러운 욕망과 파탄을 그려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만 드러나는 인간과 감각의 결을 기어이 찾아내고 보여 줬다는 점에서 대가라는 칭호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무감(無感)해 보이는 남편과 사는 가키우치 소노코가 미혼의 미녀인 도쿠미츠 미쓰코와 정서·육체적으로 깊이 친밀해지면서 주고받았던 서신들의 외양을 묘사하는 대목은 특히 경이로웠다. 사뭇 차분한 어조로 그려내는 그 봉투와 편지지들의 요염한 자태가 그 당시 두 사람이 서로에게 품었던 감정 그 자체인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 아름다운 서한을 받았을 때의 감정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들렸다. 다니자키도 그 참에 편지지 무늬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소개하려 한다. 편지지 무늬가 때로는 편지 내용보다 두 사람의 사랑의 배경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p.38)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역시 한 발은 슬쩍 빼는 소리다. 영악한 수법이라고 말하기는 누구나 쉬워도 꼭 저 위치에, 저렇듯 유려하게 묘사할 사람은 너무도 희귀하다. 무엇보다 마치 눈앞에 놓인 저 편지 하나가 아름다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한 달뜬 호흡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 못내 징그러워도 할 수 없는.

 

야마토 이야기에도 우다 상황께서 헤이주를 불러 어전에 국화를 심었으면 하는데, 좋은 국화 하나를 바치도록 하라˝는 분부를 내렸다고 나와 있다. 우다 상황은 헤이주가 그 지령을 받고서 황감하게 여기며 막 물러나려는 것을 다시 불러 ˝헌상하는 국화에다 노래 하나를 첨해서 들이라. 그러지 않으면 안 받으리로다라고 말하되 헤이주는 더한층 황송해 마지않으며 물러가서, 자기 집 마당에 가득 피어 있던 국화들 가운데서도 가장 멋진 것으로 몇 개를 골라 거기다가 노래 한 수를 붙여 바쳤다. 고킨슈5권의 가을 노래 가운데 닌나 사(仁和寺)에 국회를 바칠 때 노래를 달아 바치라는 어명을 받들어 만들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국화꽃에는 가을 말고도 한창때가 또 있군요

이렇게 색이 변하면서 한층 더 아름다워지니*

*상황이 닌나 사로 옮긴 후 더 번창한다는 의미이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p.202~203

 

 메이지 유신 이후 오사카의 상류층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린 ()과 달리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먼 옛날 헤이안 시대의 교토 귀족 사회가 배경이다. ()이 인물들 주변의 소재와 장소를 치밀하게 묘사하며 인물과 그들 사이의 감정을 확장한다면, 이 작품은 그 시대의 각종 고문헌들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서사와 교차시킴으로써 작품의 고유한 문양을 직조한다. 이 작품 속의 다이라노 사다부미(平貞文, 헤이주(平中)), 후지와라노 구니츠네(藤原国経) 대납언(大納言), 후지와라노 토키히라(藤原時平, 시헤이(時平)) 좌대신(左大臣), 후지와라노 시게모토(藤原滋幹) 좌근위소장(左近衛少将)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본 고전 문학 속에서 이 작품으로 걸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먼 과거의, 그것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사실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연기처럼 흐릿하고 희미해지기 쉬운 존재들에게 명확한 윤곽 정도를 부여할 뿐이다. 매끄럽게 짜인 비단 위의 무늬가 아무리 또렷해서 하나하나의 결이 선연히 만져지더라도 섬유의 표면에 굳게 붙들려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초에 구체적일 수 없는 방식으로 구현된 세계인 셈이다. 그럼에도 바탕과 무늬가 함께 빛나면 이렇게 아름답다.

 

문득 그 건너편을 보니 시냇물가의 깎아지른 언덕 위에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주위로 막 내리는 저녁 그늘을 와락 튕겨내듯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보는 이 하나 없이 피고 지는 싶은 산중의라고 읊은 쓰라유키의 옛 노래는 가을 단풍을 읊은 것이었지만 그런 때 그런 골짜기에, 누구 하나도 모르게 봄을 자랑하며 피어 있는 벚꽃 또한 밤의 비단인 것은 틀림없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p.320~321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예술은 형식이다. 형식, 기교, 문체에 의해 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해설)-p.342

 

 아내보다 늙어 버린 자신의 열등감을 분별없이 해소하려다 도리어 괴멸된 대납언, 타인의 아내를 그악하며 얄팍하게 빼앗고서도 사뭇 교묘하고 능란하게 수작을 부렸다며 자만하기까지 하는 좌대신, 무절제한 욕정과 여성 편력으로 과거의 상대였던 대납언의 아내를 좌대신이 빼앗도록 결정적인 빌미를 바치고서도 아내 쪽은 남편의 눈을 속이고, 남편 쪽은 아내의 눈을 속여서 조금 무리하게 아슬아슬한 위험 지대를 건너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한두 번 만나는 것이야말로 연애의 진미였다. (중략) 높은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남의 여편네를 강탈하는 식의 폭거는 너무나 야만적인 이야기”(p.249)라면서 마치 남의 일처럼 분노하며 변명하는 헤이주, 아내를 위한다는 망상에 빠졌던 남편인 아버지 탓에 어이없이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에만 하염없이 몰입하며 자기 연민에서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시게모토 소장까지 이 작품의 인물들이 저지른 소행부터 당하는 감정까지 그 어디서도 새로운 구석은 찾아내기가 어렵다. 너무도 흔한 남자들의 저마다 아픈 사연이다. 다만 그것들을 가닥가닥 자아내고 서로 엮어서 그 위에는 무늬를 넣고 하나로 펼친 사람이 다니자키였다. 모든 것은 그의 수완 아래서 휘황했다.

 

다이마루 백화점 앞까지 가지 않고 다자에몬바시 거리 남쪽으로 꺾은 지점에서 여기가 가사야마치인데 어디에 댈까요?”라고 운전수가 말하기에, “이 부근에 이즈쓰라는 요릿집이 있나요?” 하고 물었지만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근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거긴 요릿집이 아니라 여관입니다하기에 어디지요?” 하고 물었더니 바로 앞의 골목 안쪽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소에몬초(쇼와 시대(1926~1989) 초기까지 오사카에서 최고급 화류계 거리였던 곳)랑 신사이바시 바로 뒤인데도 사람 왕래가 적은 어두운 골목이더라고요. 기생들 집이라든가 작은 요릿집이라든가 여관이 많았는데 모두 일반 주택처럼 조용하고 입구가 좁은 수수한 구조였고요. 가르쳐준 골목에 가보니까 여관 이즈쓰라고 작게 써놓은 등이 달려 있어서, “오우메, 여기서 기다려하고는 저만 들어갔어요. 여관이라고는 하지만 애매하고 수상쩍은 집이 골목 막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 격자문을 열고도 잠시 머뭇거렸어요. (())-p.62

 

 다니자키의 이야기로 접어드는 경로는 분명 어두웠다. 음울하지는 않아도 음습하다고는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미하고 협소하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무엇도 없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 걸어 들어가야만 숨김없는 속내를 매끄럽게 풀어내는 공간에 이른다. 그곳에 맘에 드는 인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을지 모르지만, 어느 이야기라도 하찮지는 않을 것이다. 깊고 그늘진 길 끝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이 시침을 뚝 따고 앉은 그의 세계인 까닭이다. 기껏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이럴 줄 몰랐다며 도로 나갈 사람을 처음부터 꺼리는 방법으로는 이만한 장치가 드물다. 물론 내키지 않는데도 기어이 들어왔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뛰쳐나가거나, 이제는 도무지 나갈 수 없다고 진상을 부리더라도 둘 다 다니자키의 탓은 아니다. 일단 그 입구를 알아채고, 열어서, 들어온다면 좀처럼 빠져나가기 어려운 욕망들을 만난다. 축축하고 그늘진 자리에서만 보드랍고 반짝이는 이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좁고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계를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골목들이 깊을수록, 들어갈수록 재미있다는 사실은 이미 교토에서 충분히 배웠다. 이왕이면 짙은 밤에 들어가야 더 흥미진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7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선생님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무의식중에 모델로 삼은 사람이-어차피 신문에도 났으니까요-도쿠미쓰 미쓰코 씨에요. (가키우치 미망인은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도 별로 초췌해지지 않았고 옷도 태도도 일 년 전과 똑같이 화려하고 현란했다. 미망인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간사이 지방의 좋은 집안 아가씨처럼 보였다. 그녀는 결코 미인은 아니지만 ‘도쿠미쓰 미쓰코’라는 이름을 부를 때 얼굴에서 이상하게 광채가 났다.) (만(卍))-14쪽

(사진을 보니 똑같이 맞춘 옷이라는 게 과연 간사이 지방 여자들이 좋아하는 천박한 색채다. 가키우치 미망인은 머리를 모아 묶은 서양식 헤어스타일, 미쓰코는 시마다 머리(앞뒤를 조금 볼록하게 만들어 위로 틀어 올린 일본의 전통적인 머리 형태로 주로 미혼 여성이 했음)를 했는데, 오사카풍 아가씨 모습이긴 해도 그 눈은 무척 정열적이고 정감이 넘쳤다. 한마디로 연애의 천재라고 해도 좋을, 기개 넘치는 매력적인 눈매였다. 분명 미인이 틀림없고, 자기는 미쓰코를 돋보이게 할 뿐이라는 미망인의 말도 겸손만은 아니었지만 그 얼굴이 과연 (가키우치 미망인이 학교에서 그리던) 양류관음보살의 존안에 부합될지는 의문이었다.) (만(卍))-18~19쪽

그쪽에서는 저(가키우치 소노코)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그대로 쓱 지나쳤지만, 저는 미쓰코 씨가 지나간 뒤의 공기까지 깨끗하다고 느꼈어요. (만(卍))-19~20쪽

(가키우치 미망인이 극히 일부라고 한 그 편지들은 사방 24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실크 보자기에 터질 만큼 잔뜩 들어 있었다. 보자기 끝을 간신히 묶어놓은 작고 단단한 매듭을 푸느라 그녀의 손가락 끝이 벌게졌다. 그 모습은 마치 매듭을 꼬집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편지가 쏟아져 나오자 온갖 종류의 색종이가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편지들이 한결같이 요염한 극채색 무늬가 그려진 봉투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봉투는 부인용 편지지를 네 번 접어야 겨우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았고 겉면에는 네다섯 가지 색으로 다케히사 유메지(다이쇼 시대의 화가이자 시인으로 나른하면서도 애수에 잠긴 듯한, 독특한 매력을 가진 미인화로 유명)풍의 미인화, 달맞이꽃, 은방울꽃, 튤립 등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놀랐다. 아마 도쿄 여자들은 이렇게 야한 봉투에 대한 취미는 결코 없을 것이다. 비록 러브레터라 하더라도 도쿄 여자들은 좀 더 단순한 무늬를 선호한다. 그녀들한테 이런 걸 보이면 악취미라고 하면서 경멸할 게 뻔하다. 도쿄 남자 역시 애인한테서 이런 봉투의 러브레터를 받으면 하루아침에 정나미가 떨어질 것이다. (다음)

(이어서) 아무튼 그 자극적이고 야한 악취미는 과연 오사카 여자다웠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하는 두 여자가 주고받은 편지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한층 더 악취미로 여겨졌다. 그 편지 가운데서 이야기의 진상을 아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 통만 인용하겠다. 그 참에 편지지 무늬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소개하려 한다. 편지지 무늬가 때로는 편지 내용보다 두 사람의 사랑의 배경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卍))-37~38쪽

(5월 6일, 가키우치 부인 소노코가 미쓰코에게. 봉투 길이 12센티미터, 폭 6.3센티미터, 핑크색 바탕에 체리와 하트 무늬가 있다. 체리는 모두 다섯 개, 까만 줄기에 새빨간 열매가 달려 있다. 하트는 열 개 인데 두 개씩 겹쳐 있다. 위쪽 하트는 연보라색, 아래는 금색. 봉투 위와 아래에 금빛 톱니무늬가 있다. 편지지는 극히 흐린 연녹색 바탕에 담쟁이덩굴 무늬가 인쇄되어 있고 은색 점선이 그어져 있다. 소노코 부인의 펜글씨는 여성들이 부드럽게 흘려 쓰는 간략체를 썼는데 능란한 것으로 보아 꽤 습자 연습을 한 게 틀림없고 여학교에서는 나름대로 글씨를 잘 쓰는 편이었을 것이다. 오노 가도(다이쇼,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의 서풍에서 좀 더 흐물흐물한 느낌의, 좋게 말하면 유려하고 나쁘게 말하면 뺀들뺀들한 글씨체로, 신기할 만큼 봉투의 그림과 딱 어울린다.) (만(卍))-38쪽

(5월 11일, 미쓰코가 소노코에게. 봉투 길이 13.5센티미터, 폭 7.8센티미터. 핑크색 바탕 중앙에 폭 3.4센티미터 정도 넓이의 바둑무늬가 있고, 그 가운데에 네 잎 클로버가 흩어져 있다. 아래쪽에는 트럼프 모양이 두 장, 하트의 1과 스페이드의 6이 겹쳐 있다. 바둑무늬의 클로버는 은색, 하트는 빨간색, 스페이드는 까만색, 편지지는 짙은 갈색의 무지無地이고, 오른쪽 끝부터 비스듬하게 하얀 잉크로 펜글씨가 쓰여 있다. 필적은 소노코보다 서투르고 차분하지 못해 갈겨 쓴 것처럼 보이지만 이쪽 편이 글씨도 크고 꾸민 티가 없어서 생생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만(卍))-40쪽

(5월 18일. 소노코가 미쓰코에게. 봉투 길이 12센티미터, 폭 7.2센티미터 정도. 그림은 가로로 그려져 있다. 사슴 등에 있는 흰 얼룩처럼 진홍색 바탕에 드문드문 은색 점선이 있고, 아래쪽에는 커다란 벚꽃 잎 세 장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그 위에는 연회석에서 춤추는 무희의 뒷모습을 절반만 그려놓았다. 빨강, 보라, 검정, 은색, 청색의 다섯 가지 색을 아주 짙게 인쇄해서, 그 위에 글씨를 쓰면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름은 뒷면에 쓰여 있다. 편지지는 길이 21센티미터, 폭 13.5센티미터 크기에 2.4센티미터 정도의 하얀 백합꽃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백합꽃 주변은 연분홍색으로 선염이 되어 있다. 따라서 줄이 그어진 부분은 지면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4호 활자보다 더 작고 가느다란 글씨로 쓰여 있다.) (만(卍))-42쪽

남편은 제 성격에 맞추려고 노력한다지만 그게 정말로 마음을 맞추려는 게 아니고 저를 어린애 취급 하면서 적당히 어르는 것 같아 그 태도에도 약이 올라 죽겠더라고요. (만(卍))-44쪽

˝정말 우리 아가씨는 무서운 분이에요. 저는 사모님 뵐 때마다 늘 너무 죄송하고 딱해서......˝ (만(卍))-60쪽

다이마루 백화점 앞까지 가지 않고 다자에몬바시 거리 남쪽으로 꺾은 지점에서 ˝여기가 가사야마치인데 어디에 댈까요?˝라고 운전수가 말하기에, ˝이 부근에 이즈쓰라는 요릿집이 있나요?˝ 하고 물었지만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근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거긴 요릿집이 아니라 여관입니다˝ 하기에 ˝어디지요?˝ 하고 물었더니 ˝바로 앞의 골목 안쪽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말이죠. 소에몬초(쇼와 시대(1926~1989) 초기까지 오사카에서 최고급 화류계 거리였던 곳)랑 신사이바시 바로 뒤인데도 사람 왕래가 적은 어두운 골목이더라고요. 기생들 집이라든가 작은 요릿집이라든가 여관이 많았는데 모두 일반 주택처럼 조용하고 입구가 좁은 수수한 구조였고요. 가르쳐준 골목에 가보니까 ‘여관 이즈쓰’라고 작게 써놓은 등이 달려 있어서, ˝오우메, 여기서 기다려˝ 하고는 저만 들어갔어요. 여관이라고는 하지만 애매하고 수상쩍은 집이 골목 막다른 곳에 있는 것이라 격자문을 열고도 잠시 머뭇거렸어요. (만(卍))-62쪽

미쓰코 씨 집은 아시야가와 역에서 강 서편을 좀 더 산 쪽으로 올라간 곳으로, 근처에 시오미자쿠라(汐見櫻)라고 하는 유명한 벚나무가 있어요. (만(卍))-69쪽

그 전화가 온 게 두시경이었는데 그러고 나서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벌써 미쓰코 씨가 왔더라고요. 아무리 병원에서 재촉해도 외출하려면 늘 한두 시간은 몸치장을 하는 사람이니까 저는 빨라도 저녁때가 아니면 밤에 오겠지 하고, 설마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대문 벨소리 다음에 현관 콘크리트 바닥을 밟는 신발 소리가 나면서...... 현관부터 안쪽은 전부 열어뒀었거든요. 바깥에서 휙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그리운 냄새가 복도를 따라 들어왔어요. (만(卍))-77쪽

˝어디 갈까?˝ ˝미쓰 씨, 어디 좋은 곳 몰라?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 ˝그럼 나라에 가요.˝ 미쓰코 씨가 말해서 ˝맞아, 그래, 그래. 둘이 처음 사이좋게 놀러 간 곳도 나라였지. 추억 많은 와카쿠사 산의 저녁 경치...... 왜 지금까지 그 추억의 장소를 잊고 있었을까?˝ ˝진짜 좋은 곳을 생각해냈지? 우리 또 와카쿠사 산에 올라가자˝라고 했을 때는 정말 얼마나 기뻤던지...... 감격했을 때의 제 버릇으로 눈물을 글썽이면서 ˝빨리 가자, 빨리˝ 하고 서둘러 오사카 택시회사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택시에 탈 때까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만(卍))-86~87쪽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미쓰코 씨한테 이용당한다는 사실도 ˝언니, 언니˝ 하면서 사실은 깔본다는 사실도 다 알고 있었어요. 네, 그야 언젠가 미쓰코 씨가 ‘이성한테 숭배받는 것보다 동성한테 숭배받을 때가 훨씬 자랑스럽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만, 여자가 여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까지 아름다운가 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거든요. 분명히 그런 허영심으로 남편에 대한 제 사랑을 빼앗는 데 재미를 느꼈겠죠. (만(卍))-92쪽

그까짓 일에 일부러 문서를 교환하고 난리 법석이라고 해도 좋을 일을 벌이고 법조문 같은 문장을 늘어놓는 게 원래 그 남자(와타누키 에이지로)의 버릇이래요. (만(卍))-133쪽

와타누키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네(도쿠미쓰 미쓰코) 앞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주겠어˝라고 해서 ˝거봐, 당신은 정말 비열한 인간이야. 난 각오했으니까 그런 증거가 있으면 더 이상 사람을 못 살게 굴지 말고 신문에든 뭐에든 팔아먹어˝라고 싸우고 헤어졌대요. (만(卍))-157쪽

말하자면 일상적인 열정을 바치는 건 재미가 없고, 약의 힘으로 정욕을 사라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듯한 애욕을 느끼는 걸 봐야만 만족한다는 거였죠. 결국 두 사람(가키우치 고타로와 소노코 부부)을 혼이 빠진 껍데기로 만들어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흥미도 못 느끼게 하고, 그저 미쓰코라는 태양의 빛만으로 살아갈 수 있게, 그밖에는 아무런 행복도 원하지 않게 하고 싶었던 거예요. (만(卍))-176~177쪽

저(가키우치 소노코)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게 마음가짐에 따라서 완전히 변하는구나, 하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만(卍))-177쪽

이 이야기는 당대의 색광(色狂)으로 이름을 날렸던 헤이주(平中)의 한 삽화에서 시작된다.
그 유명한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끝머리에도 “너무너무 아름다워 홀딱 반했던 참이라, 슬금슬금 다가가 벼루 옆의 물을 종이에 슬쩍 적셔서 내밀었더니 대뜸 말하기를 더 이상 색(色)일랑 치워라, 자칫 헤이주 꼴 날라, 운운”이라고 나와 있다. 이것은 겐지가 일부러 자기 코 끝에 붉은색 연지를 발랐다가 아무리 씻어내도 씻기지 않아 조바심을 피우듯 하니까, 당시 겨우 열한 살이던 무라사키 님도 똑같이 조바심을 내며 종이에다 물을 적셔서 손수 겐지의 코끝을 닦아주려고 하자, ˝헤이주처럼 먹물이 묻었다면 어찌했을꼬. 그런대로 붉은 연지색이니 참아낼 수도 있으려니와˝라고 겐지가 우스갯소리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겐지 이야기』의 주석 책 중 하나인 『가카이쇼河海抄』에도, 그 옛날 헤이주가 또 어느 그러저러한 여자 곁으로 가서 감동에 겨워 우는 척하려 들었으나, 그날따라 쉽게 눈물이 나오지 않자 곁에 있던 연적을 슬쩍 팔소매에 넣었다가 눈두덩을 적셨는데 그의 평소 버릇을 알고 있던 여자 쪽에서는 미리 그 연적 안에 먹물을 넣어두었다나. (다음)

(이어서) 그러나 헤이주는 그런 것까지는 알 턱이 없어 그 먹물로 눈두덩을 적셔, 여자 쪽에서 금세 헤이주에게 거울을 내보이며 ˝내 이 아픔도 그대가 보려니와 사람들에게 보이는 그대 얼굴 꼬락서니라니......˝라고 한 구절 읊었더라는 고사(故事)도 있어, 이 자리에서 겐지의 몇 마디도 그걸 빗댄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카이쇼』는 이 우스갯소리 한 토막을 일본의 설화집 『곤자쿠 이야기今昔物語』에서 인용하면서 『야마토 이야기大和物語』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운운하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곤자쿠 이야기』나 『야마토 이야기』에는 그런 것까지 실려 있지는 않다. 한데 겐지로 하여금 이런 농담 한마디를 던지게 하는 것으로 보아, 해이주의 먹물 이야기 한 토막은 호색한들의 흔한 실패담으로 이미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 시대에도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185~186쪽

노상 그랬듯이 간절하게 이런저런 사모의 심정을 토로하며 적은 뒤에, ‘당신께서 이 글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일단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결코 친절한 답장을 바리는 것은 아닙니다. 받으셨으면 보았다, 읽었다, 이 두 마디만이라도 회답을 해주십시오’ 하고 거의 울음 섞인 글을 아이를 통해 보냈더니, 그 계집아이가 여느 때와 달리 희희낙락 웃으며 돌아와서는,
“오늘은 이렇게 회답이 있으셨어요˝
라며 한 통의 봉투를 건네주었다. 헤이주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그것을 받아들고 급하게 열어 본즉, 자그마한 종이쪽지 하나만 달랑 들어 있을 뿐이었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본즉, ‘보았다, 읽었다, 이 두 마디만이라도 회답을 해주십시오’ 라고 써 보냈던 부분 중에서 ‘보았다’라는 글자만 찢어 넣어져 있었다. (다음)

(이어서) 헤이주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별별 여자들과 갖가지로 연애라는 것을 해보았지만 이 정도로 심술궂고 독종인 상대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막말로 온 세상이 아는 미남자 헤이주다. 이 세상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얼씨구나 하고 넘어왔는데, 아니, 이 정도로 콧대가 높은 계집이 있다니. 그야말로 느닷없이 귀싸대기라도 한 방 맞은 듯 잠시 멍해졌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194쪽

남자(헤이주)가 진짜배기로 오늘 밤의 이 해후에 감격했다면, 잠시의 순간인들 여자(지쥬노기미) 곁을 떠나지 말았어여 옳았다. 한데 여자 혼자 가게 내버려두고 그냥 자빠져서 기다리고 있다니, 그따위 행태가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00쪽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지쥬노기미’를 사모하는 헤이주의 마음은 더더욱 진지해져갔다. 그때까지는 어느 정도 유희 삼아 장난 섞어 쫓아다녔을 뿐인데, 그 이후부터는 오로지 그녀에게만 정신을 쏟으며 애걸복걸, 무슨 수를 쓰더라도 꼭 성취하리라 열을 냈다. 애오라지 그런 의욕으로만 불탄다는 것은, 저도 모르게 상대가 쳐놓은 덫에 걸려드는 일임에도, 한 걸음, 한 걸음, 그 덫에 빨려들어가는 걸 스스로 짐작은 하면서도 이미 제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01~202쪽

그럭저럭하는 동안 그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저물어, 헤이주의 집 안 뜨락에 피었던 국화꽃 색향도 조금씩 퇴색해가는 계절이 왔다.
고금에 호색가로 이름깨나 떨쳤던 이 사내는, 사람 꽃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식물 꽃도 보듬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국화를 재배하는 데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 같다. ˝또한 이 사내의 집 침실 앞마당에는 특히 공을 들인 아름다운 국화도 여러 종류 있있다˝고 적혀 있는 『헤이주 일기』의 한 단(段)에는 어느 아름다운 달밤에 집주인이 마침 댁에 없는 것을 눈치챈 여자들 여럿이 은밀하게 국화꽃 구경을 왔다가 키가 껑충한 국화 줄기에다 제각기 노래를 하나씩 지어 매달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야마토 이야기』에도 우다 상황께서 헤이주를 불러 ˝어전에 국화를 심었으면 하는데, 좋은 국화 하나를 바치도록 하라˝는 분부를 내렸다고 나와 있다. (다음)

(이어서) 우다 상황은 헤이주가 그 지령을 받고서 황감하게 여기며 막 물러나려는 것을 다시 불러 ˝헌상하는 국화에다 노래 하나를 첨해서 들이라. 그러지 않으면 안 받으리로다˝라고 말하되 헤이주는 더한층 황송해 마지않으며 물러가서, 자기 집 마당에 가득 피어 있던 국화들 가운데서도 가장 멋진 것으로 몇 개를 골라 거기다가 노래 한 수를 붙여 바쳤다. 『고킨슈』 제5권의 가을 노래 가운데 ‘닌나 사(仁和寺)에 국회를 바칠 때 노래를 달아 바치라는 어명을 받들어 만들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국화꽃에는 가을 말고도 한창때가 또 있군요
이렇게 색이 변하면서 한층 더 아름다워지니*
*상황이 닌나 사로 옮긴 후 더 번창한다는 의미이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02~203쪽

두세 명의 내객이 엇바꾸듯이 차례차례 춤을 추기 시작할 무렵부터 향연은 차츰 절정으로 접어들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겨울 느낌이 가시지 않은 추운 새벽녘임에도, 이곳만은 낭랑하고 왁자지컬하게 즐거운 자리라 웃음소리, 노랫소리, 말소리 들이 잦아들 줄 모르고, 사람들은 모두 윗도리 앞섶을 풀어헤치고 한쪽 소매는 걷어 올린 채 속옷까지 죄다 내보이며 평소의 예의 따윈 모두 잊어버리고 떠들썩하기만 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24쪽

노인(후지와라노 구니쓰네 대납언)이 발 쪽으로 손을 들이밀자 그 발의 겉면이 안에서부터 불룩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밤눈으로 보기에도 보라색, 엷은 홍매화 색 등 갖가지 색깔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소맷자락이 비집고 나왔다. 그건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의 일부였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삐져나와 보이는 모양이 마치 만화경처럼 반짝반짝 눈부신 색채를 지닌 물결이 밀려오는 듯하고, 요염한 양귀비꽃이나 모란꽃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 크기의 한 송이 꽃은 겨우 반 정도 몸뚱이를 내놓은 모습으로 늙은 남편에게 가만히 소맷자락을 잡힌 채, 그 이상은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듯이 보였다. 늙은 남편은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끌어안듯 하면서 그녀를 손님 쪽으로 더 당기려 했는데, 그럴수록 그쪽은 발 그늘 속으로 몸을 숨기려고만 들었다. 얼굴은 부채로 가려서 눈이나 코는 들여다볼 수도 없고, 부채를 든 손가락 끝도 소매 속에 숨겨져 있어 단지 양어깨로 길게 내려 드리워진 머리카락만 보일 뿐이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34~235쪽

헤이주의 생각에 따르면, 아내 쪽은 남편의 눈을 속이고, 남편 쪽은 아내의 눈을 속여서 조금 무리하게 아슬아슬한 위험 지대를 건너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한두 번 만나는 것이야말로 연애의 진미였다. 높은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남의 여편네를 강탈하는 식의 폭거는 너무나 야만적인 이야기라 결코 자랑거리가 못 된다. 그러므로 좌대신(후지와라노 시헤이)의 저런 짓거리는 남의 체통이나 세간의 법까지 짓밟는 방약무인한 행위이며, 호색가끼리의 의리까지 무시한 행동으로, 저래서는 호색가의 자격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헤이주는 슬그머니 불쾌한 감정이 가슴에 치밀어올랐다. 흔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내들이 그렇듯, 매사에 게으르지만 속되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는 부드러우며 어지간해서는 잔일에 매이지 않는 헤이주였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라 시헤이가 한 짓에 화가 나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49쪽

‘고센슈後撰集’ 제11권 ‘사랑’ 3부에는 ˝대납언 구니쓰네 댁에 거처하던 여주인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두고두고 사귀자고 밀약까지 했으나, 이 여인, 태정대신으로 추서된 시헤이에게 창졸간에 납치되어 그 댁으로 옮겨 앉은즉, 그다음부터는 글 한 쪽 전할 길도 막혀, 여인의 (전 남편 구니쓰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다섯살 정도 된 아이가 그 댁 본원의 서쪽 뜨락에서 놀고 있을 때 불러, 어머니에게 갖다 보이라며 팔뚝에다 몇 자 썼으되, 다이라노 사다부미(헤이주)......˝라 하고, 다음 노랫말이 실려 있는데,

그 옛날에 사귀었던 일 새삼 슬퍼져
아무리 그때 굳게 약속했기로서니 지금은 여운만 남았으니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인 이 노래 뒤에 또, ‘답시, 작가 미상’이라는 다음과 같은 노랫말이 보이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현실 세계에서 누구와 맹세했던가
지금은 꿈속에서 헤매는 나는 누구인가. (다음)

(이어서) (중략) ‘그분’은 자기 아들의 팔뚝에 적혀 있는 옛 남자의 노래를 보고 심히 울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 글을 받아 ˝현실 세계에서......˝라는 화답의 노랫말을 역시 아이 팔에다 적어 ˝가서 이걸 그이에게 보여주거라˝ 하고 아이를 밀어버리고, 자신은 황급히 칸막이 그늘에 몸을 숨겼다던가.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53~255쪽

뿐만 아니라 시게모토는, 어떤 제목의 시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야밤이 깊어 방 안에 홀로 누웠지만 누가 나를 위해 이부자리의 먼지를 털어주려는가’ ‘아침밥의 양이 줄고 잠이 적어지니 밤 긴 것을 알겠고나’ ‘몸은 마르고 백발 섞인 머리카락이 빠져 머리 빗기도 귀찮고 두 눈은 봄이 부셔 줄곧 눈에 약이나 넣는도다’ ‘모름지기 술잔이나 기울여 내장으로만 퍼넣으니 취해서 자빠진들 어느 누가 상관하리’ 등, 여러 가지 비슷한 구절을 부분부분 기억한다. 아버지는 그런 구절들을 소슬한 뜨락 한구석에 앉아 아무도 못 듣게 조용히 읊거나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감격한 목소리로 울먹였는데, 그럴 때마다 두 볼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291쪽

사랑하는 분의 환영을 부여안고 밤낮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딱하고 가엾게 여겨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흔한 말로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머니 모습이라면, 그냥 귀하게 간직하려 애쓸 것이지, 더러운 길바닥 시체까지 끌어들여서 썩어 문드러진 추악한 모습으로 생각하려 함에는, 무언지 욱하고 노여움 같은 반항심까지 끓어올랐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309쪽

문득 그 건너편을 보니 시냇물가의 깎아지른 언덕 위에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주위로 막 내리는 저녁 그늘을 와락 튕겨내듯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보는 이 하나 없이 피고 지는 싶은 산중의’라고 읊은 쓰라유키의 옛 노래는 가을 단풍을 읊은 것이었지만 그런 때 그런 골짜기에, 누구 하나도 모르게 봄을 자랑하며 피어 있는 벚꽃 또한 ‘밤의 비단’인 것은 틀림없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320~321쪽

다니자키 문학은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고립된 문학으로 평가되고 있다. 꾸밈과 장식이 너무 지나쳐 벼락부자 취향의 문학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 해설)-326쪽

이나바 선생(이나바 세이키치)은 13, 14세밖에 안 된 소년들을 앉혀 놓고 양명학파의 유학, 선학, 플라톤, 쇼펜하우어 등을 논하고 일본 고전문학을 가르쳤다. 그때 다니자키가 쌓은 소양은 한자어를 화려한 자개를 뿌려놓은 듯 유려하게 구사하는 토대가 되었다. (해설)-329~330쪽

나이 오십에 이르러 다니자키는 꿈에 그리던 이상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셈이다. 이때 마쓰코는 서른이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일류 작가로서의 안정기를 맞이한 다니자키는 마쓰코 부인의 영향 아래 고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억제된 문체로 그리기 시작해 ‘겐지 이야기’의 현대어역 전 26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세설’, ‘열쇠’, ‘꿈의 배다리’, ‘미치광이 노인 일기’, ‘부엌 태평기’ 등의 역작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해설)-337쪽

그(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예술은 형식이다. 형식, 기교, 문체에 의해 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해설)-3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오사카를 떠나서 인천으로 돌아오지만, 그곳을 떠날 때 슬펐던 기억은 없다. 애초에 머문 적 없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저 교토를 가기 위해 거쳐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나에게 오사카는 인천과 유사한 장소다. 인천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바닥을 치는 것은 오사카를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항상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부터 충분히 저조한 상태다. 이미 교토를 떠나왔고, 다시 돌아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 내가 원해서 만든 패턴이어서 앞으로 변하지 않겠지만 익숙해질지는 잘 모르겠다. 가서 살지 못한다면 이럴 수밖에 없겠지.

 

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사치스러운 결정이지만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지금 이 생각, 이 상황을 그냥 흘려버리면, 많은 것을 포기한 어른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방향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변명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짐을 싸서 늦겨울의 교토로 떠났다. 조용하고 쓸쓸한 곳에 가고 싶었다. 옛것이 보고 싶었다. 싸락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p.16

 

 역시 교토로 떠난 이야기가 실린 까닭에 이 책을 읽었다. 지금 이 상황을 놓칠 수 없어서 그곳으로 떠났다는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작년에 교토에서 보낸 80일이 떠올랐다. 재작년 말, 작년 초의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다급하거나 우려스러운 마음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저 태평했을 뿐이다. 용케 적절한 결정을 내렸을지는 몰라도, 운이 좋아서 제때 제자리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누구도 붙잡지 않는데도 지난 해 초봄에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렀다면, 올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변명만 남았겠지.

 

 다행히 제때 떠난 덕분에, 돌아온 후로는 많은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떠나서 바라보니 그 자리에서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많은 상황이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되는 문제들이 된 후였다. 그대로 서울에 머물며 어느새 풀리지 않게 묶여 버린 매듭에 얽혀 있었다면, 얼마나 절박한 지경에 빠졌는지도 모른 채로 허덕였을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던 것은 파탄이 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던 까닭이다.

 

(호텔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하고 작게 혼잣말을 하고는 열쇠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방에는 멋진 책상이 있어요.”

(중략) 책상은 오래된 원목이었다. 매니저가 강조할 만했다. 이 책상을 리폼한 디자이너가 여기 있다면 어디서 발견했는지, 어떤 식으로 리폼했는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가구였다. 시간이 보이는 물건이 있는 덕에 방이 살풍경해 보이지 않았다.

(중략) 원래 기숙사였던 건물을 호텔로 리모델링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창문 옆에 있는 커다랗고 낡은 히터가 유일한 흔적이었다. 살면서 점점 기대 이상의 순간을 만나기 힘들어지는데 여기는 기대보다 좋은 방이다. 운이 좋다. -p.21~22

 

 절박한 마음이 조용하고 쓸쓸하며 예스러운 도시를 떠올렸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에 호감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그가 바라본 교토는 내가 겪으며 아꼈던 정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기꺼웠다. 그가 잠시 깃들었던 동네와 골목이 내게도 익숙하며 각별한 곳이라는 사실은 마치 행운처럼 여겨졌다. 교토 역에서 남쪽으로, 마냥 멀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 호텔에 두 번 묵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두 번째 교토 여행에서 뭣 모르고 머물렀던 이 곳이 퍽 맘에 들어서, 그 후에도 한 번 더 들렀다. 앞으로도 자주 찾고 싶지만 이제는 무척 인기가 높아서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야지. 그게 내 성의니까.

 

 읽자마자 근처에 이온 몰이 있는저 호텔이 어디인지 확신할 정도라면, 내가 교토와 아주 조금은 친해졌다고 말해도 괜찮을까? 책을 읽는 동안, 교토에서 머물렀던 경험을 다룬 글을 읽을 때는 저자보다도 그가 걸었던 거리들을 훨씬 더 깊이 생각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교토의 미용실에서 선뜻 자를 때는, 두 달 넘게 머물면서도 도무지 시원치 않은 일본어로는 뭐라 말하고 싶지 않아서 고스란히 머리를 길러서 돌아온 기억이 다시 떠올라 버렸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가장 한심했던 흔적.

 

그리워하던 것 그대로였는데 실망하게 되는 이 얄팍함은 무엇일까. -45 


 저자는 교토에 다녀와서도 자신은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그는 점점 더 나아지는 듯이 보인다. 교토에 들어갔을 무렵의 그가 그만큼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의 감미로운 순환 논리에 탐닉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부터 스스로의 기대가 얼마나 얄팍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리워했던 팬케이크가 기대한 그대로인데도 실망하는 자신이 이상한지 되묻는, 결국 팬케이크를 먹기 전의 자신도, 먹은 후에 실망한 자신도, 팬케이크도 모두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듯 부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도 전형적이다.

 

 실망할 가능성은 외면하고 기대했다면 결국 실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본인이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모른 채로 일방적으로 떠맡긴 그런 것을 충족시켜 주는 상대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내용을 꾹꾹 눌러 담을 시간에, 그것들이 그렇게나 요구할 가치는 있는지도 상상할 필요가 있다. 기대의 속을 온전히 자신의 희망으로만 꽉꽉 채우고서는, 이렇게 소중한 마음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서글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꽤 많이 지겹다. 분명히 하루 이틀 그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도 나아지지 않아서 더욱더 그렇다.

 

같은 교토라고 해도 꽃이 피는 시기는 다 다르다. 꽃놀이를 좋아하는 국민성과 정원으로는 한가락하는 절들이 가득한 교토의 특성 덕분에 개화시기 지도라는 것이 있을 정도다. 어디는 일찍 피어서 좋고, 어디는 늦게 피어서 좋다. -87~88

그곳에 있는 나무는 위치가 응달이라 그런지 다른 나무보다 꽃을 틔우는 것이 느렸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작은 꽃봉오리들이 키 작은 나뭇가지에 맺혀 있었다. 참 예뻤다. 활짝 핀 꽃보다 더 예뻐 보였다. 저 작은 몸에 어마어마한 힘이 모여 있겠구나. 앞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떨어질 힘. 그리고 그것을 반복할 힘. 그 옹골찬 모습을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88~89

 

 지난 주 일요일에 교토-나라에서 돌아왔다. 꼭 나라에서 보고 싶은 전시회가 열린 까닭에 일요일에서 일요일까지 78일을 보냈다. 그동안은 월요일 출근 탓에 주로 토요일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다녀오니 역시 딱 예상했던 만큼 한 주 동안 피곤했다. 은근히 신경은 쓰이는데, 굳이 토요일에 돌아오느니 일요일까지 채울 수는 있을 것도 같고 아리송했다. 어쩌면 이 예상을 확인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아서 여태 토요일에 돌아왔을지 모르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서 쓸모는 없다.

 

 4월 둘째 주의 교토는 이미 벚꽃이 절반 훨씬 넘게 지고 떠난 후였다. 작년에는 예년보다 추워서 4월 셋째 주는 되고서야 꽃이 만발했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더워서 첫째 주에 이미 꽃이 거의 피고 져 버린 탓이었다. 이래서야 예년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싶었지만, 작년에 겪었듯이 벚꽃이 그렇게나 지고서도 교토는 여전히 봄이었다. 애인과 남은 벚꽃이나마 보아서 기뻤고, 덕분에 올해의 첫 등꽃 향기를 벌써 함께 맡았다. 올해의 벚꽃을 교토에서 만났다고 하기에는 다소 허전했지만, 내년에는 못 볼지도 모를 교토의 등꽃이 벌써 핀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생각은 나쁜 생각을 불러왔고, 그 찌질한 기운에 좋은 생각들은 짐을 싸서 나가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15쪽

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사치스러운 결정이지만 절박한 마음에서였다, 지금 이 생각, 이 상황을 그냥 흘려버리면, 많은 것을 포기한 어른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방향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변명만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짐을 싸서 늦겨울의 교토로 떠났다. 조용하고 쓸쓸한 곳에 가고 싶었다. 옛것이 보고 싶었다. 싸락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16쪽

일본 내에서도 교토 사람들은 좀 특이한 사람들로 분류된다. 더 놀다 가세요,라는 그들의 말은 어서 빨리 돌아가 이 멍청아,라는 뜻이라고 한다. 웃는 낯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때가 많아서 옆 동네 오사카 사람들과는 앙숙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조금 내 취향이다. -20~21쪽

(호텔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하고 작게 혼잣말을 하고는 열쇠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방에는 멋진 책상이 있어요.˝
(중략) 책상은 오래된 원목이었다. 매니저가 강조할 만했다. 이 책상을 리폼한 디자이너가 여기 있다면 어디서 발견했는지, 어떤 식으로 리폼했는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한참을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가구였다. 시간이 보이는 물건이 있는 덕에 방이 살풍경해 보이지 않았다.
(중략) 원래 기숙사였던 건물을 호텔로 리모델링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창문 옆에 있는 커다랗고 낡은 히터가 유일한 흔적이었다. 살면서 점점 기대 이상의 순간을 만나기 힘들어지는데 여기는 기대보다 좋은 방이다. 운이 좋다. -21~22쪽

아, 적당함이란 얼마나 충족시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적당함이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33쪽

추운 겨울에 외투가 없다면 아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겠지. 그런데 외투를 두 벌 샀다고 두 벌분의 행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의 셈법이 이상하다는 증거이다. -37쪽

그리워하던 것 그대로였는데 실망하게 되는 이 얄팍함은 무엇일까. -45쪽

나와, 어젯밤의 나와, 내 욕망과, 내 머릿속의 팬케이크와, 실제의 팬케이크. 전부 같지만 조금씩 달라서, 내 욕망의 구멍에 꼭 맞는 블록을 찾아넣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심지어 욕망의 모양, 블록의 끊임없이 바뀌어서 나는 아무리 찾아 헤매어도 영영 맞출 수 없을지도. -45쪽

마음에는 창문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닫고 열기란 쉽지가 않다. 너무 많은 요소가 그 문의 개폐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새 굳게 닫혀 먼지가 쌓이고. 이산화탄소로 가득차고, 여는 법을 까먹고, 그 안에서 기침을 하고, 꼬여버린다. 예술이 창문을 열어주는 역할인지, 아니면 방향제 역할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방향제로 쓸지 창문 손잡이로 쓸지는 사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60쪽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으면 환한 빛도 들어오지만 큰 먼지도 들어온다. 그렇구나, 눈은 시리기도 하구나, 흉한 것도 있구나, 빛은 가끔 무섭구나, 항상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면서 차차 실눈을 뜨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보기 위해선 실눈을 떠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새로운 환한 빛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어지간히 두꺼운 안구를 타고나지 않은 이상. 나의 경우는 그렇다. -64쪽

절름발이

씩씩한 걸음걸이는 이미 사라졌는데
노련한 걸음걸이는 아직 배우지 못했네. -67쪽

악명 높은 교토의 꽃샘추위도 누그러졌다. 그간 기운이 밝은 곳에는 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가고 햇살이 조금씩 강해지면서 나에게도 조금 볕이 들었다. 좋은 길을 걷고 싶다. -76쪽

철학의 길은 은각사에서 시작이다. 은각사도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한 번에 하나씩. 표지판을 따라 걸어들어갔다.소문대로 걷기 좋은 길이었다. 작은 시냇물, 양 옆으로는 아직 움을 틔울까 말까 하는 늦겨울의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드문드문 단독주택, 작은 공방, 카페가 보였다. 다른 계절에는 나무와 풀로 아름답겠지. 꽃나무도 단풍 나무도. 상상하며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수기의 즐거움이다. -77쪽

익숙하고 생경한 풍경이 주는 위안. 모르는 사람 집 빨랫줄에 걸린 수건,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작은 카페, 음식 냄새, 버스 정류장의 벤치, 내 것이 아닌 따스함에서 느낄 수 있는 사치스러운 애잔함. 그래,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몰라도 된다 싶기도 하고. -78쪽

코타니 선생님은 나의 기타에서 수상함을 느낀 듯했다. 레벨테스트 겸 아무거나 한 곡 쳐보라고 했을 때 생각난 노래가 하필 ‘어긋남을 깨닫다’라는 나의 곡이었고, 치다보니 노래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러다보니 눈을 감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친 것이다. 공연도 뭣도 아닌 것이 끝나고, 착한 코타니 선생님은 ‘벌써 노래와 기타가 동시에 가능하다니 대단하세요!’ 하고 날 칭찬해 주었다. 그런 걸로 칭찬 들으면 안 될 상황인데... 냉정을 찾은 코타니 선생님은 어떤 부분은 굉장히 대담하고 어떤 부분은 굉장히 형편없는 이상한 기타라고 했다. 맞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렇습니다. 그의 명쾌한 판단에 존경심이 들었다. -80쪽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은 역시 꺼내서 꼬들꼬들 말리는 것뿐이다. -81쪽

같은 교토라고 해도 꽃이 피는 시기는 다 다르다. 꽃놀이를 좋아하는 국민성과 정원으로는 한가락하는 절들이 가득한 교토의 특성 덕분에 개화시기 지도라는 것이 있을 정도다. 어디는 일찍 피어서 좋고, 어디는 늦게 피어서 좋다. -87~88쪽

그곳에 있는 나무는 위치가 응달이라 그런지 다른 나무보다 꽃을 틔우는 것이 느렸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작은 꽃봉오리들이 키 작은 나뭇가지에 맺혀 있었다. 참 예뻤다. 활짝 핀 꽃보다 더 예뻐 보였다. 저 작은 몸에 어마어마한 힘이 모여 있겠구나. 앞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떨어질 힘. 그리고 그것을 반복할 힘. 그 옹골찬 모습을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88~89쪽

아름다운 것을 보았고, 여행 후에 무언가가 풀렸다. 그리고 다시 아름다운 것들은 알 수 없는 서랍에 들어갔고, 새롭게 많은 것이 엉켜갔다. 더 복잡하게. 이제는 홋카이도 일주 정도로 털 수도 없다(나는 홋카이도를 일주하고 <홋카이도 보통 열차>라는 책을 썼다). 이제는 어느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좋아진 것일까, 나빠진 것일까. -97쪽

성을 목표로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덤불에 갇히고, 성에 들어가 왕과 여왕이 된 사람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110쪽

결국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이해와 관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20쪽

우아한 레이디는 되지 못했어도 적어도 날씨와 상황에 적합한 옷을 입고, 그에 맞는 신발을 신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단촐한 짐으로 여행하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나아가 내가 지금 뭘 먹어야 적당할지, 주문대에서 무슨 음료를 시키면 될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나라는 인간과 삼십 년을 넘게 살았는데 취향이나 욕구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136~137쪽

오오누마공원역에 도착했다. 가는 기차, 오는 기차가 모두 한 승강장에 서는 작은 역이다. 팻말이 많아서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크로포드 인. 누군가 리뷰에서 오래된 호텔맨의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작고 조금은 낡았지만 방의 나무가구들은 반질반질했고 특히나 서비스에 흠잡을 곳이 없었다. 새로 만든 번쩍거리는 건물에 압도적인 인테리어, 세련된 기기를 갖춘 호텔의 매뉴얼대로의 친절과는 달랐다. 방에 들어가서 트렁크에서 옷가지를 꺼내 원목 서랍장에 넣어두며 작은 부분부분에 감탄을 했다. 식당에서 우실 스튜를 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겁이 나 며칠만 예약해두었던 나는 바로 프런트에 가서 숙박을 연장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138~139쪽

오오누마공원역 안의 작은 매점에서는 병우유와 작은 빵 등을 팔았다. 일주일 중 며칠밖에 팔지 않아 나는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그날을 기다렸다. 매점에서 파는 우유는 유명한 야마나카 목장의 것이었는데 나는 마실 때마다 사치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141쪽

나는 잡념으로 이루어졌고 그걸로 곡도 써서 먹고 사는데 그걸 왜 없애나, 잡념은 나의 힘인데, 하고 생각해왔지만 진작에 떨쳐버려도 될 생각들, 미움, 질투, 집착 같은 것과 오래 생각해볼 것들은 다른 카테고리였다. 잡념도 다 같은 잡념이 아니었다. -169쪽

병을 인정받고 싶으면서 병이 없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 -184쪽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는 장편 소설을 쓸 때 죽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이 책을 완성시킬 때까지는 절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고 하는데, 어릴 때의 나라면 글 하나 쓰는데 무슨 비장함인가 싶었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내가 앨범을 만들 때마다 하던 생각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직 전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걸 전부 쏟아내놓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지, 하고 매일매일 생각해왔다. 길을 건널 때마다, 심지어 비행기가 이륙을 할 때마다 ‘지금 죽으면 안 되는데’하고 생각했다. 어딘가 부끄러워 혼자만 생각하던 것이다. 역시 누군가는 ‘왠 비장함?’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열여덟 살의 나처럼. 하지만 서른다섯 살의 누군가가 공감을 해준다면 그걸로 됐다. -215~216쪽

어차피 사라질 동경이라면 애초에 생기지도 말아라, 어차피 사라질 사랑이라면 애초에 생기지도 말아라, 날 나중에 싫어하게 될 거라면 좋아하지도 말아라,
라는 마음은 결국 어리광이었는데, 다르게 말하면
변하지 않는 사람을 주세요,
라는 아이 같은 마음.
흔한 패턴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타인에게 환상을 가지게 하려는 인류의 노력에도 당연히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 같다. -221~222쪽

한때 가득차 있던
‘해야 하는 것들’ 리스트에는 이제

내일 병원가기.
우유 사놓기.
마감.

이런 것밖에 없다. -225쪽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 라는 개념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그런 자세를 가지고 창작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기도 있다.

지금은 내가 한계를 넘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런 시도는 내 어딘가를 부수고 지나갔다. 대신 작업의 최상급은 한계 근처에 닿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추측은 이렇다. 일단 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름의 평균 길이를 파악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원을 넓히는 것보다 모양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 끝나면 파고들어가야 한다. 내 모양대로. -227~228쪽

잇님들(이웃님들을 일컫는 블로그 용어)을 찾는 파워블로거의 블로그가 아닌, 이런 블로그 누가 오겠어,라고 하면서 친구에게도 하지 않는 자기의 속 얘기를 털어놓는 블로그를 발견하면 정말 금광을 캔 것 같다. -230쪽

내 음악을 사람들이 왜 소비하는지를 나는 꽤 늦게 안 편인지도 모르겠다. 모이를 던질 때는 나중에 어떤 새가 와서 쪼아 먹을지 모르지 않는가. 편지나 쪽지에 ‘남에게 못하는 내 얘기를 대신 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나는 그런 얘기 다들 하고 사는 줄 알았지. -231쪽

언제 어디서나 흘러넘치는 재능이 진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멜로디가 밤이고 낮이고 퐁퐁 솟는 사람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라지기 십상인 멜로디를 잘 품고 진득하게 마음속에서 굴려서 두툼하게 만들어 어느 달밤에 꺼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2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꼭 작년 이맘때 교토에서 80일을 머물렀다. 바꿔 말하면 많지 않은 리뷰를 쓸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한 지도 거의 1년이 됐다는 뜻이다. 80일 중에서 40일을 햐쿠만벤(百万遍) 교차로 어귀의 한 방에서 지냈다. 아침마다 어딘지 신나 보이는 대학생들이 바쁘게 오가는 거리였다. 당연하다. 교토 대학이 있는 동네였으니까. 학교 근처여서 싸고 양 많으며 무엇보다 맛이 좋은 밥집도 몇 있었고, 교토에서 가장 아끼는 장소인 철학의 길도 졸 듯이 걷다 보면 어느새 닿을 거리여서 참 좋았다. 골목 곳곳에서 학생들이 나와 저마다의 학교로 흩어지는 이 도시의 아침이 얼마나 활기 넘치는지 가르쳐 준 곳이기도 했다. 관광객 없이 주민만으로 번성하고서야 비로소 볼 만한 매력이 생긴다.

 

 그렇게 지난 해 봄의 교토에서 무수히 스쳤던 대학생 중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그 중 누군가는 호소카와 다마미처럼 주머니 사정이 신통치 않아서 휴대폰 요금이 연체 중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구스노키 후미처럼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에서 갑자기 홀 전체를 지휘해도 매니저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였을지 모른다. 내가 매일 시간을 길에 흘리듯이 헤매고 다니기 훨씬 이전에, 모짱 같은 학생이 이미 교토 곳곳의 골목을 훨씬 이전에 마치 핥아 먹듯이 돌아다녔다. 당연히 내가 머물던 때에도 잠시 생각하다가 택하지 않았던 반대쪽 골목에는, 신기하다는 듯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지도를 보며 걷는 신입생이 있었을 듯하다.

 

모짱은 산조, 시조, 가와라마치 외곽 지리에 이상할 만큼 밝았다. 모짱이 열렬한 골목 마니아였기 때문이다. 종횡무진으로 얽히고설킨 갈림길들을 지나다가 낯선 골목을 발견하면 모짱은 망설이지 않고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지도 않고 ˝이쪽이야, 이쪽˝ 하며 등을 구부리고 정신없이 걸어갔다. 이렇게 골목을 지날 때 전혀 모르는 동네가 나오지는 않을까, 상상하는 순간이 못 견디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실제로 좁은 골목 끝에 난데없이 음식점 문살문이 나타나거나 더 안쪽으로 또 골목이 이어지거나 지장보살 사당이 조용히 서서 기다리는 등 교토의 골목들은 신비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럴 때 나(아베)는 모짱이 품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대로 계속 가다가 원래 장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더 컸다. 아마 그런 불안마저도 모짱에게는 흥분의 소재일 것이다. -p.162~163

 

 교토는 스쳐 지나가는 뜨내기의 여행지이기 전에, 주민들의 거주지이고 학생들의 체류지다. 동시에 살고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의 시간과 경험이 무척 오랫동안 쌓인 퇴적지다. 그런 까닭에 교토 내 4개 대학교의 동아리 학생들이 각자 귀신들을 부려 승패를 겨룬다는 설명을 들어도 납득이 가지 않을 호루모’(오래 전에 본 전작 가모가와 호루모가 이 난제에서는 유용했다.) 경기와 이 단편들 속 인물들이 어떻게든 엮이는 모습이 미심쩍지 않았다. 교토의 거리와 골목 곳곳에서 헤이안(平安)에서 헤이세이(平成)에 이르는 기나긴 시간이 실은 아주 살짝 벌어진 틈새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사뭇 태연스레 묻는 듯한 풍경을 자주 보았다. 이 책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교토가 들려 줄 법한 이야기를 모아 두었다

 

 교토의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어도 그렇다고 여느 도시처럼 판이하게 다르지도 않은 까닭에 호루모라는 기상천외한 유희가 이야기 속 인물들의 일상에 제법 그럴싸하게 스몄겠지만, 반대로 호루모야말로 교토의 시간들이 얼마나 절묘하게 맞물렸는지 보여 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오랜 우정보다 새 연정을 택하려는 친구들 사이의 다툼, 고등학생 화자가 아르바이트 다니는 식당의 과묵하고 민활한 새 아르바이트 동료가 물어도 알려 주지 않을 듯한 대학교 동아리 활동, 교토의 운전면허 학원이나 도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다른 대학교 출신 지인과의 관계 속 호루모는 타인에게 말하기는 퍽 곤혹스러워도, 본인에게는 대단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여가처럼 보인다. 그저 교토의 가장 예스럽고 낡은 흔적일 뿐이다.

 

 이미 절판된 책의 표지는 언뜻 보면 아기자기하거나 부산스럽겠지만, 잘 보면 제법 착실히 압축한 교토 지도 일러스트다. 곳곳의 지명을 손 글씨풍의 서체에 한자로 적어서 이게 뭐고 또 어딘지 오랫동안 와 닿지 않았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는 같은 그림 지도를 한글로 옮긴 것이지만, 예전에 봤더라도 딱히 느낌이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아는 사람과 친한 사람은 다르니까. 2년 전 다녀온 첫 여름 교토 여행 후에 봤다면 조금 이른 감은 있어도 이 도시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좋았을 테고, 이 책을 가져갔던 작년의 교토에서 봤다면 어디든 당장 내일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벚꽃이 많이 떠났을 교토 한 구석의 호텔에서 한발 늦은 꽃놀이 계획을 세우기 1주일 전에 읽으니 기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