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위의 hopeless hope

한때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신경쓰기의 기술에서 저자 마크 맨슨은 아주 특이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19458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했다.

이야기는 1944년 말로 거슬러간다. 그해 12,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가 필리핀의 작은 섬 루방에 파견된다. 그의 임무는 미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며 끝까지 맞서 싸우며, 절대 항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상 자살 임무라는 지휘관과 오노다 본인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곧 일본의 절대적인 항복으로 끝이 났다. 오노다 히로 소위가 이끄는 군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일본은 가족들의 사진까지 뿌려대며 전쟁은 끝났으니 이제 그만 나오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그것이 거짓선전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1972, 오노다의 부하 고즈카의 사망소식이 알려졌다. 이제 오나다 히로는 혼자다! 30년 동안 미국, 필리핀, 일본의 수색대와 지역경찰이 오노다를 찾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대학도 중퇴한 게으른 히피 스즈키가 오노다 히로를 찾아낸다. 스즈키가 묻는다. 30년 동안 여기서 왜 이렇게 남아 전쟁을 벌이느냐고. 그러자 오노다 히로가 대답한다.

 

절대 항복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신경끄기기의 기술, 88p)

 

오노다 히로는 일본으로 돌아와 영웅이 되었다.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노다 히로는 명예희생을 자랑했던 자기 세대의 가치는 온데간데 없고 얄팍한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괴물이 장악한 조국을 보며 충격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짐을 꾸려 브라질로 떠났고 거기서 삶을 마쳤다.

 

 

마크 맨슨은 고통이 불가피하다면, 살아가면서 문제를 피할 수 없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고통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왜 고통받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가>라는 말을 던진다(신경끄기, 89p)

 

 

허무맹랑한 환상(hopeless hope)에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었던 오노다 히로 소위의 모습이 마르케스의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이번엔 소위가 아니라 대령이야기이다.

 

 

대령의 hopeless hope

마르케스의 소설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는 퇴역군인인 대령이 생활고에 치여 가면서도 나라에게 보내줄 연금혜택을 15년 동안 기다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유파에 몸담았던 대령에게 보수파가 집권하고 있는 정부가 15년 만에 연금을 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 혜택을 과연 받을 수 있을지 대령의 아내조차 의심하고 포기하는 쪽이다. 집에 있는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팔아 생활을 해 나간다. 괘종시계도 팔고자 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남은 수탉도 아내는 팔아서 900페소 아니 400페소(의사의 말에 따르면, 사바스는 고작 400페소에 수탉을 사서 1000페소에 되팔 것이라는 계획이라고 했다)라도 받고 2-3년은 명예롭게 살자는 제안을 한다.

 

 

수탉은 팔지 않는다!

대령은 <희망 없는 희망(hopeless hope)>인 연금만 목 놓아 기다리다가 아내의 제언에 동의하는가 싶더니 결국은 수탉을 팔지 않기로 재결정한다. 아내는 냄비에 돌을 넣고 끓이면서 이웃들에겐 자신들이 굶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대조적으로 마을의 사바스는 이층집에 돈을 넣어둘 곳이 없을 정도의 부자이지만, 당뇨병으로 늘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마르케스는 사바스를 자본주의의 기득권 세력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표현하면서, 그가 당면한 현실을 평생 쫓아다니는 당뇨병환자신세임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연금이 도착할 거요.”

당신은 십오 년 전부터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어요.”

.....

난 그 돈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89p)

 

 

매일 끼니걱정을 해야 하는 아내, 요지부동인 대령. 현실적인 감각이라곤 전혀 없는 대령의 모습이 안쓰럽다. 대령은 매주 금요일마다 항구에 나가 편지를 기다린다. 연금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상은 15년 동안의 악순환에 불과하다. 대령부부에게 남은 것은 아들 아구스틴의 죽음과 아구스틴을 기억나게 하는 수탉이 전부였다. 대령은 왜 그 수탉이라도 팔아 2-3년치 생활비를 마련하는 현실책을 강구하지 않는 것인가?

 

 

그 이유는 마르케스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수탉이 가진 상징성에 있다. 수탉은 투견장에서 싸우는 저항성, 저항의식의 메타포이다. 생활고에 치여 까지도 먹어가면서 생활해야 하는, 그래서 변비로 고생하는 대령, 옆에서 바가지를 긁을 수 밖에 없는 아내...이 모든 가난하고 비천한 현실 가운세도 대령의 수탉은 대령의 자존심이다. 수탉은 아들의 추억이 담긴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삶을 향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싸우는 정치적인 대령 자신을 담고 있기도 하다.

 

수탉은 우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것...”(86p)

 

 

보후밀 흐라발의 생쥐들

이런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와 존재의 현실을 그려주는 장면은 최근에 읽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부끄러운 고독에서 등장한다. 거기선 생쥐들이 폐지가 넘쳐나는 어둡고 습기 찬 지하공간에서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보후밀 흐라발은 생쥐들의 전쟁 씬을 이야기하면서 국가와 시스템과 사회의 사태를 비유했다. 그 생쥐는 크게는 국가와 체제와 주의(ism)와의 사투이지만, 작게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 한탸의 개인적인 사투이기도 하다.

    

 

수탉은 싸움닭이다, 싸움닭은 팔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르케스는 싸움닭을 통해 그런 삶을 향한 사투, 저항의식을 내비추고 있다. 그래서 대령은 굶주려 죽을지언정 수탉을 팔지 않겠다고, ‘을 먹고 기생하는 한이 있어도 싸움닭을 팔지 않겠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앞에서 오노다 히로 소위의 인생 30년을 책임졌던 환상을 허무맹랑한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에서의 대령의 환상은 허무맹랑한 것인가? 그것은 마르케스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령의 연금에 대한 기대는 hopeless hope이지만, 그러나 대령의 팔지 않는 수탉은 당대의 hopeless hope일지는 모르나, 후대와 인류 전체의 역사에 있어서는 진정한 hope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위대한 것이다. 백년의 고독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후에서야 이 작품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의 진면목이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것은 마르케스의 다이아몬드같은 가치가 제대로 드러난 셈이다.

 

 

 

싸움닭의 전설, 체 게바라

대령의 싸움닭을 보다보니 요근래 읽은 인물, <체 게바라>가 생각난다. 그를 ‘20세기 최후의 게릴라라고 했다.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 체 게바라!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권력의 중심부에서 6년 동안 행동했던 체 게바라가 그 자리를 뒤로 하고 다시 게릴라의 신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의사였지만, 쿠바혁명을 주도했고, 후에는 약소국의 존엄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세계시민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운명을 다한 곳도 라틴 아메리카의 심장부에 위치한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였다.

 

체의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마르케스를 1959년에 쿠바 혁명 정부에 초청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의미있는 관계를 시작했다.

 

 

체는 볼리비아인 윌리의 벽돌로 지은 시골 학교의 교실에 갇혀 있었다. 위싱턴에선 체를 제거할 필요를 느꼈다.

 

 

체의 최후를 마감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은 <돼지만>상륙 이후 CIA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입장이었다. 바리엔토스 장군은 체의 처형을 명령하고, 이 명령은 1030분에 이게라에 도착했다. 일개 하사관에 지나지 않는 마리오 테란이 이 임무를 자원하고 나섰지만, 막상 체 앞에 서서는 사지를 떨며 머뭇거렸다. 체가 그를 종용했다.

 

쏘라고, 주저 말고 쏘라고.”

 

사람들은 하사관에게 억지로 술을 먹였다. 1330, 드디어 그의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체는 눈을 크게 뜨고 죽었다(체게바라..., 108-109p).

 

    

영원한 싸움닭의 모습을 지녔던, 체 게바라는 지금도 깨어있는 많은 이들의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체 게바라는 그렇게 슬픈 운명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의 정신은 지금도 온 인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현실은 hopeless hope,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닭..

마르케스는 <엘 에스펙다도르>의 기자로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가 쓴 수많은 기사는 콜롬비아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는 결국 제네바로 강제파견을 당하게 된다. 후에 <엘 에스펙다도르>가 폐간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 그는 파리에서 신문과 병을 주워 푼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 심각한 생활고에 치여 가면서도 그는 싸움닭과 전쟁 연금을 기다리는, 참전용사인 대령이야기인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를 집필한 것이다.

 

고로, 마르케스는 출생 후 부모님과 떨어져 자유파 출신의 조부의 손에서 컸다. 그때 받았던 교육이 마르케스를 대작가로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령이었다. 아울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그래서 마르케스 소설에 단골손님이닷!

    

마르케스는백년의 고독23년 동안 구상하고 18개월 만에 집필한다. 그 원고를 수다메리카나 출판사의 편집장에게 보내고자 모험을 시도한다.

 

-돈이 얼마나 있지?

-53페소 밖에 없어요.

-그걸로 충분할까?

-충분해야죠. 어서가요.

마르케스 부부는 우체국으로 간다.

 

-이 상자를 보내러 왔어요.

-82페소입니다.

-말도 안 돼요!

-무게가 꽤 나가서 그래요, 부인.

-이제 어떻게 하지?

-그럼, 일단 53페소만큼 먼저 보내요.

 

마르케스 부부는 원고를 나눠 무게를 재고 53페소만큼의 원고(?)를 보냈다. 마르케스 왈, “꼭 치즈를 잘라 파는 것 같네.”

 

마르케스 부부는 나머지 원고를 보낼 돈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결혼반지까지 팔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반지는 가짜보석이었다. 마침내 둘은 총 490쪽의 나머지 분량을 보낼 만큼의 돈을 구했다. 마르케스는 아내에게 처음 보낸 상자에 책의 마지막 부분을 넣었다고 말한다. 아내는 충격을 받았지만, “여보, 이제 당신 소설이 최악이기만 하면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겠어요.”(가보 마르케스, -96)

 

 

마르케스의 아내, 메르세데스는 남편의 대작을 최악이라 부르면서 위로하였다. 그것은 반어법이었다.

    

마르케스를 읽으면서, 마르케스의 삶 자체가 싸움닭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케스만 그러했던가! 작가들의 일생을 읽으면, 그러하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던가! 치열한 싸움닭의 삶이 있었기에, 치열한 대작이 나오지 않았던가!

 

 

대단한 싸움닭, 장 도미니크 보비

영화 <잠수종과 나비>가 있다. 그 영화의 원작자는 장 도미니크 보비란 프랑스 유명한 패션잡지엘르의 편집장이다. 잠수종과 나비가 왜 대단한 작품이냐? 그 소설은 장 도미니크 보비가 1995128일에 갑자기 운전 중에 뇌출혈이 왔다. 전신을 움직일 자유가 거세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한쪽 눈을 깜빡이는 것이었다. 그는 눈을 몇 백만 번 깜빡이는 신호를 보내 잠수종과 나비란 책을 썼다. 책이 나온 후 2일 후에 영양실조로 그는 사망했다. 보비도 멋진 싸움닭이었다!

 

    

Epilogue...

오늘 아침에 우편함 뚜껑을 열어보았다.  어제 확인하지 못한 편지들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드명세서와 범칙금청구서들이 눈앞에 떡하고 나타났다. 당연히 올 줄 알았지만...어쩔!

 

 

대령에겐 15년 동안 안 오던 편지가 내겐 왔기에 기념으로 이 글을 쓴다.

그 우편물이 오늘 이 페이퍼를 탄생하게 했다. 하하하!

 

여러분, 수닭은 싸움닭이다. 싸움닭은 팔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 싸움닭은 팔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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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23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종횡무진이시구만요. 전 이중에 이젠 기억도 잘 안나는 <백 년의 고독> 말고는 읽은 것도 없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3 14:06   좋아요 0 | URL
종횡무진을 나한테 이야기하면 어쩔까나! 그대가 더 종횡무진 아닌가요! ㅋㅋ

syo 2018-11-23 14:36   좋아요 1 | URL
아닌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대체 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18-11-23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읽으셨군요, 멋진 페이퍼였습
니다. 에르네스토 게바라도 등장하네요 :>

마르케스의 단편들은 일단 다 마무리한
것 같으니...
이제는 <콜레라>와 <백년>을 읽어볼까
합니다.

다만, 요즘 유디트 헤르만에게 빠져서
일단 그 작가의 책부터 읽고 나서리 -

카알벨루치 2018-11-23 14:2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덕에 이 책도 가뿐히 읽었습니다 유디트 헤르만도 읽으시고 널리 알려주소서! 마르케스가 말년에 치매였다는 게 가슴 아프더라구요 ㅜㅜ

북프리쿠키 2018-11-24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들이 많으네요.
자극받고 갑니다. 화이팅^^

카알벨루치 2018-11-24 10:38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이 대령 책 추천하셨쟎아요 감사해요~눈이 오려다 만 날씨네요 감기조심하셔요~

페크(pek0501) 2018-11-2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읽을 게 많은 알라딘이라서 좋습니다.
백년의 고독은 백년 동안의 고독, 이란 제목으로 오래전 읽었어요. 한 권짜리인 대신에 글씨가 꽤 작았어요.
최근 두 권짜리 <위대한 유산>을 민음사 걸로 읽었어요. 당분간 분량 많은 책은 읽지 않으려 합니다.
나중에 레마르크의 <개선문>은 읽겠지만요. 이건 이미 사 놓은 것인데다가 필사하기 좋은 문장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스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환상의 밤이란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우리가 흔히 환상의 밤이라고 하면 로맨스적인 느낌이나 뉘앙스를 연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신데렐라가 변신하여 왕자와 함께 춤을 추는 무도회의 밤 정도는 되야 환상의 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접근은 굉장히 평범한normal 접근이고, 구태의연한 접근이 아닌가!

 

 

스테판 츠바이크이다. 그가 말하는 건 뭔가 다르지 않아야 하는가! 그렇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독자의 구미를 만족시켜준다. 아주 엉뚱하고도 생경한 방향과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으며, 언젠가 인간을 자신의 품안에 껴안아 본 사람은 모든 인간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154p)

 

 

30대의 주인공은 재벌2세에 해당하는 부호이다. 한량처럼 지내도 쓸 만큼 쓸 수 있고, 누릴 만큼 누릴 수 있는, 보통사람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위치의 젊은이다. 하지만, 그의 사치와 향락과 쾌락이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다. 모든 것에 싫증과 지루함과 지침을 느낀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그가 껍데기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내부에서 꽁꽁 얼어붙은 감정은 너무 기괴했다.’(16p)

 

 

이런 무감동은 부패의 고약한 냄새조차 맡지 못하고 죽어 있는 상태, 무섭게 얼어붙은 감각의 불능 상태, 실제적인 육체의 소멸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17p) 이것은 감정의 메마름이며 , ‘무감동이며, ‘냉소적인 허무한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나와 감정 사이에는 도저히 내 뜻대로 깨뜨릴 수 없는 괴상한 유리벽이 가로놓여 있었다’(18p)고 표현한다.

 

 

이런 무기력과 무감동의 삶이 환상적인 밤으로 바뀐 계기는 자발적인 낮아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울 레이터는 인생에서는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놓는가가 중요하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56p)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입구가 아주 좁은 항아리에다 바나나를 넣어놓고 원숭이 사냥꾼은 기다린다. 원숭이는 바나나냄새를 맡고 항아리에다 손을 잡아넣는다. 바나나가 드디어 자기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바나나를 놓치 않고선 손을 빼낼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라도 바나나를 밖으로 빼내려고 하지만, 움켜쥐고선 바나나를 빼낼 수가 없다. 이때 사냥꾼이 원숭이를 잡으려고 성큼성큼 온다. 그래도 원숭이는 바나나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결국 원숭이는 사냥꾼의 손에 포획되고 만다.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운명의 비밀, 내려놓음

 

<왜냐하면 나는 자신의 운명을 비밀로 간직하고 사랑하는 자만이 진실로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150p)

 

 

내가 문득 주변의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할 때, 하잘 것 없는 어떤 것도 내게는 감정을 자아내고 의미를 부여한다.’(151p)

 

 

스테판 츠바이크의 글의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내려놓음, 자발적 낮춤을 실천하였을까?....

 

 

*스테판 츠바이크가 쓴 환상의 밤의 주인공 프리드리히 미카엘 남작은 몇 년 뒤 라바루스카 전투에 참여하여 사망했다. 그의 글은 소포로 친척들에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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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1-24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꼭 약빨고 글 쓰는 것 같아요.
아주 애정하는 작가인데 이 시리즈로 작품도 있군요~~

카알벨루치 2018-11-24 10:52   좋아요 0 | URL
이게 첫번째인데 계속 나올듯합니다!
 

 

서민교수는 유쾌하다.

나는 서민교수가 방송에 출연한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전지적 참견시점> 첫 방송이었던 것으로 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나오셨던데. ! 바로 서민교수님! 그런데 첫 인상은 별로였다. 정신과의사가 한 분 거기 나오지 않는가! 그분을 첫 대면한 자리에서 외모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 나는 순간 좀 놀랬다. 그런데, 그 정신과의사 분 대처가 좋았다.

 

서민 교수님이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면 보통 상대가 얼굴을 붉히게 되는데, 우리의 서민 교수님은

 

,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시는구나!’(인기가 있을 만한 자격이 있구나! :개인적인 의역임)

 

라고 맞받아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상대방을 까는 대화로 물꼬를 튼다는 것은 굉장히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낮추는 농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언짢게 만든다.

아무튼, 그 대목만 보고 그 뒤는 보지 못했다. 원래 내가 TV랑 친하지 않아서.

책으로만 대하던 서민 교수가 방송에 나오니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 와중에

 

 

 

밥보다 일기

책이 나왔다. 일기...너무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 보여준 약간의 편견을 독자 입장인 내게 선사해 준 서민교수가 책을 통해 과연 만회할 수 있을까?

 

책은? 일단 재미있다. 쉽고 잘 읽힌다. 우리 초등학교 2학년 딸에게 읽히고 싶을 정도로 쉽다(근데, 우리 딸이 읽으려고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 안 물어봤다). 잘 읽혔으면 일단 까먹은 점수는 만회할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을 몇 자 적어볼까 싶다.

 

 

 

첫째, 기록의 힘이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매일 쓴 일기이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일기를 썼다.

아무 일 없는 날은 말 그대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문장의 반복 밖에 없다.

 

 

근데, 그게 역사적인 사료 가치가 된다. 매일 쓰는 일기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기록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친절하게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서민교수의 이야기 중에 인스타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SNS에서 좋아요를 날리는 이 온라인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지존 지식검색 네이버 박사가 과연 사라질까? 요즘 동영상의 트렌드의 절대지존 유튜브가 사라질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

 

뭐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일례로,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싸이월드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도토리만 까먹다가 망했다는 이야길 한다. 싸이월드는 패전을 면치 못했고, 오히려 마크 주커버크는 싸이월드를 통해 페이스북 왕국을 세웠다. 아무튼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모든 온라인 공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인터넷 온라인에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기록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끔 한다. 또한, 사진으로 도배하는 현 시대의 트렌드를 지적한다. 그토록 목매던 좋아요는 공중분해되고 나의 추억의 기록과 과거의 기록은 어디에도 사라져버린 현실을 서민 교수는 이렇게 지어냈다. 진짜 웃긴다.

 

 

젊은 날엔 일기를 안 쓰고 인스타에만 올인했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남는 것은 일기밖에 없구나

인스타가 문을 닫을 때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허세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추억을 남기는 건 소중하구나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어디서 뭘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우리 후회하리 남은 추억 하나도 없다고‘ (69p)

 

 

우리는 종종 사진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한다. 추억보따리는 사진첩이기도 하니. 하지만, 사진첩을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세밀한 분석과 매의 눈을 가진 서민 교수가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꼭 일기를 쓰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사진으로 도배하고 끝내버린다. 그런데, 서민교수의 축적된 독서량에서 튀어나온 책은 바로 마크 트웨인 여행기였다. 나는 이걸 보면서, 작가는 여행을 해도 다르구나! 싶다. 요즘 읽고 있는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도 감칠 맛 난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역시 거장이다 싶다. 마크 트웨인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관람하면서 적은 글이다.

 

 

식탁 높이의 계단, 매우 많은 층, 우리의 팔을 잡고서 한 계단씩 위로 튀어가 우리를 잡아당기면서 매번 우리의 다리를 가슴 높이까지 빨리 들어 올려서 우리가 거의 기절할 때까지 들고 있으라고 강요하는 아랍인들. 피라미드를 오르는 일이 기분 좋거나 상쾌한 것이 아니라 몸을 찢고 근육을 긴장시키며 뼈를 비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고문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나는 시종들에게 더 이상 내 관절을 조각조각 비틀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는 되풀이해 말하고 반복하고 심지어 꼭대기까지 가는 것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지 않다며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그들은 팁을 요구하면서 10분 동안 나를 쉬게 하고서는 미친 듯이 피라미드를 오르기를 계속한다. 그들은 다른 일행을 이기고 싶어한다.....그들은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사람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런 생각으로 평온해지고 기뻐져서 나는 정상에 절뚝거리며 지친 채 잠잠히 있었지만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했고 평온했다.’(마크 트웨인 여행기상권, 320-322p; 밥보다 일기, 207-208재인용)

    

 

서민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서민교수가 예를 들어주는 책들이 참 좋다. 나는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해주는 저자를 좋아한다. 나처럼 서평 쓸 때 이것 저것 다 이야기하는, 스포 완전대방출하는 사람 말고, 좋은 책인 것만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그런 저자를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정혜윤의 스페인 야간비행여행일기를 예를 든 부분도 인상적이다. 굳이 인용하진 않겠다.

 

    

둘째, 사소한 것, 평범의 힘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한다. 개인적은 것은 무시할 수 있고, 배제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고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요즘 겨우 남기는 메모식의 일상,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기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일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한 부분, 한켠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1952, 맨해튼 이스트 10스트리트에 아파트를 얻어, 2013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60년 넘게 그 집에서 살았다. 미술 애호가이자 오랜 파트너였던 솜스 밴트리(2002년 사망)도 같은 건물에 살았다. 말년에 레이터는 고양이 레몬과 함께 살았다. 레몬은 레이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함께 사는 사람을 바꾸며 살다가 2016년에 죽었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292p)

 

사울 레이터가 말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90p)

    

    

한때 보았던 영화중에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너무 감명을 받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원들도 많이 적어댔다. 그 때 버킷리스트의 초점은 언제나 <장소>였다. ‘지금과는 다른’, ‘현실과는 차이가 있는’ <장소>가 주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 anytime, anywhere 정말 중요한 것은 사울 레이터가 말한 자신의 시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가난한 도시라고 볼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동네에 사울 레이터는 60년을 살면서 거기서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의 명성을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시각>,<관점>이었다.

 

    

마찬가지로, 일기에서도 서민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시각’, ‘자신만의 시각이 서린 기록을 남기자는 데 있다고 본다. 끊임없이 쓴다는 것,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계속 쓴다는 것,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는 말했다.

 

오늘의 평범한 하루는 곧 영원으로 통하는 비범한 하루이다.”

 

평범한 일상이 곧 비범한 일상이다. 자신만의 일기, 자신만의 시각이 담겨진 평범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공유의 힘이다.

 

 

우리가 남긴 기록은 누군가에게 읽혀질 수도 있고, 읽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기억에는 아버지는 그냥‘무서운 아버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아버지의 생각을 공유한다. 거기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왜곡을 발견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공유함을 통해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긍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마지막이 감동적이다. 책의 순서를 그렇게 편집한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래도 감동적이다.

 

난 저자의 벌거벗은 글쓰기가 참 좋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솔직하게 못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시작한다. 이 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져 보이는 아들, 서민 작가를 볼 수 있었다. 한 인간, 서민을 볼 수 있었다. 서민이란 작가와 대화를 하는 듯 했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대화체 형식의 문체도 그렇지만, 저자의 마지막에 보여준 용기는 감동적이다.

 

 

일기쓰기의 기록은 후에 그것을 읽는 누군가와 공유하게 될 때 나타나는 힘이 있다. 서민교수가 아버지의 일기 이야길 하니, 문득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교외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존 치버의 일기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일기가 문서로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내게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반복적으로 물어왔다. 난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가 쓰신 글이라면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고,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월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내게 공책 한 권을 주셨다. 그리고 읽어줄 수 있는지 물으셨다.......(중략).......

난 글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죽기 전까지는 그 일기들이 출판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아버지는 책이 출판되면 나머지 가족들이 힘들어할 것이라 했다. 난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일기에 내가 거의 언급되지 않다는 점 역시 나를 놀라게 했다....‘(존 치버의 일기, 10-12p)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든지 간에, 존 치버의 일기는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일종의 공유의 힘이다. 하지만, 공유의 힘이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음을 존 치버의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학 때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읽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 중에 주인공이 과거의 일기를 부인이 우연히 읽고 나서 파문이 일어난 스토리였다. 문학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삶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배타적이기도 하다.

 

 

 

 

 

 

 

*. 난 일기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야길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인 모양이다. 나는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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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5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1-16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보다 일기>, 제목이 참 좋습니다. 일기를 쓰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보다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커피 한 잔 들고
노트를 펼칠 때 좋고, 어떤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일기장에 끼적거릴 때 좋습니다.
마태우스 님의 책을 몇 권 읽은 1인으로서 글의 유쾌함을 잘 알지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을 듯합니다.

2018-11-16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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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적이고도 적확한 성경적인 근거들과 배경과 바탕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이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죄의 삯(대가)은 사망에서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운 이유는 바로 임을, 그 죄로 말미암아 제한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밖에서(extra nos), 우리를 위해서(pro nobis) 구원의 힘이 와야 하는 구원의 조건이 규정지어지게 된다.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한 그 사람의 아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하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신할만한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주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이었고 예수의 삶과 사역이 옳았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구원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단지 예수라는 한 인간의 개인사가 아니라 인류전체를 총망라하는 구원사로 말이다. 이러한 구원을 신약성경은 제사, 화해, 구속, 새 언약 의 네 가지의 그림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이 네 가지의 그림언어는 구원에 대한 구체적인 조망과 신학적인 조명을 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인 적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의미로 대신(substitution), 일 대 모두(all)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대표했다는 의미로써의 대표(representative), 이 두 가지 개념을 합친 개념이 내포적 대신(inclusive substitution)’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신적. 대표적 성격을 너무나 명확하게 잘 드러내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나는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가 사용한 표현인 죄인적 의인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내포적 대신이란 말이 주는 뉘앙스의 탁월함은 죄인적 의인이 주는 느낌과 비견될만하다).

    

 

 

이 주관적인 구원의 사건은, 성경은 의인됨(justification;칭의), 화해함(reconciliation;화해), 하나님의 아들됨(adoption;입양),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란 그림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구원의 종말론적인 구조이미Aready’그러나 아직But not yet’의 구도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인 구조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그는 윤리가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순종이 없는 믿음, 윤리를 포함하지 않는 믿음은 미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것에 더하여 한국교회에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한 강조가 없다는 것은 믿음의 미신화의 가장 큰 증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성화영화의 측면까지 확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힘은 윤리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윤리와 건전한 윤리적인 삶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윤리주의자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윤리에는 삶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윤리는 일종의 철학이며 세계관이며 신념의 일부이기도 하며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신이 삶의 행동과 행동양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예정과 지키심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에 놓고서 그리스도 오시기 전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미래 지향적인 계시였고 그리스도 오신 후의 사도들의 선포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원을 되돌아보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는 시점은 믿음의 현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창하는 교리와는 다른 예정 교리는 미천하기 짝이 없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연약한 인간들인 우리의 구원의 소망을 더 확실하게 붙들어 매어 준다. 

 

    

  정리요약 하자면,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

인간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데 이것은 죄의 삯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서 죄의 본질을 자기 주장하려는 의지”(Self-assertive will)의 발로의 결과라고 말한다. 죄의 본질은 즉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독립선언이다. 이러한 독립선언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아담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세상의 중심은 나’, ‘나만 좋으면 그만’, ‘나는 나라는 달콤한 구호와 슬로건으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의 영적인 실체(reality)를 대면해 볼 때 그것은 마땅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가>

인간은 자체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밖에서(extra nos), 우리를 위해서(pro nobis) 구원의 힘이 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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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aper에는 백년의 고독의 스포일러가 내재되어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책을 읽고자 하신다면, 이 페이퍼는 완독후 보시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목차index

Prologue...

1.이 책은 백년의 힘이 필요한 책이다

2.왜 읽는데 백년의 힘이 필요한가?

 

 

 

고독한 섬과 욕망의 썸이 몰락의 성( )을 쌓았다

 

1.이 소설은 인간의 고독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한다.

2.고독한 섬island들이 욕망의 썸some을 타다

3.고독한 섬과 욕망의 썸이 몰락의 성( )을 쌓았다

4.이 소설은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Epilogue...

 

이 책은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Prologue...

 

김겨울의 독서의 기쁨에서 이런 이야길 했다.

 

처음 읽은 남미 소설이...백년의 고독이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데, 눈이 튀어나올 만큼 맛있는, 그런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단 말인야? 왜 나에게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어!’(독서의 기쁨, 96-97)

     

 

순전히 김겨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다.백년의 고독을 읽고 이렇게 paper를 쓸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과연 그런 맛이 있을까?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23년 동안 구상하고 18개월에 걸쳐 집필했다. 19676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수다메리까 출판사에서 출판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전세계에 던져주었다. 출판한 지 몇 달 만에 동.서 유럽의 20개의 언어로, 지금은 전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된 이 소설에겐 그 맛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1.이 책은 '백년의 힘이 필요한' 책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백년의 고독(2)이 쉽게 독파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2권을 읽다가 다른 책들을 읽고 다시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재밌는 표현을 써 본다. 이 소설을 완독하는 데는 백년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해 본다.

 

 

 

2.왜 읽는데 '백년의 힘'이 필요한가?

 

 

첫째, 그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당대의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백년 동안 7에 걸쳐 벌어지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그 자손들의 스토리를 다루는 가족사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할 순 없겠지만, 가족사에 여기저기 두문불출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둘째,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부부부터 시작해서 가문 자체가 근친상간으로 가득 차 있다. 고대사회에선 대가족들이 같이 생활하기에 더 이런 도덕적인 경계가 흐릿한 부분이 다분할 것이다. 친절하게 작품 앞에 게재한 부엔디아 집안의 가계도만을 보더라도 정부인이 있고, 정부情婦까지 기재하고 있다. 콜롬비아 보수정권에 반기를 든 자유파 지도자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 장군을 모델로 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17명의 정부와 아들을 두었다. 이모와 조카의 관계라든가, 고모와 조카의 관계라든가, 이 모든 도덕적인 루틴을 빗나가고 있다. 독자는 이런 탈도덕적인, 보편적인 morality에 반기를 드는 풍경들이 독서를 하는데 방해꺼리도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이들의 근친상간을 욕망의 썸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셋째, 백년의 고독백년의 사람들이 내뿜는 고독의 깊이 때문이다. 그들이 내뿜는 욕망의 썸이 가족 개개인의 고독을 치유하지 못한다. 고독의 DNA가 유전되다 싶을 정도다. 그 고독의 깊이가 읽는 독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고독한 섬과 욕망의 썸이 몰락의 성( )을 쌓았다

 

 

1.이 소설은 인간의 고독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한다.

-백년의 사람들,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의 마지막 주인공인 아우렐리아노는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남겨둔 결정적인 해결 코드들을 발견한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303p)

 

 

 

2.고독한 섬island들이 욕망의 썸some을 타다

 

 

인간은 섬과 같은 존재이다. 고독한, 고독의 섬이라고 볼 수 있다. 부엔디아 가문은 가족이지만, 전부 고독한 섬으로 존재하고 있다. 마꼰도에서 뿌리를 내린 첫 인물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고독부터가 너무 강력하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등장인물만 살펴보더라도 고독의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 정리해보았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그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더 이상 가족들과 같이 살 수 없다는 가족들의 판단 하에 밤나무 아래에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아버지, 남편,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가 바로 그였다. 생사람을 나무에 묶어 생활하게 하다니! 그게 과연 가능한가! ...이 고독의 무게감을 어쩔. 가족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고독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르술라:

우르술라는 매일매일의 현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큰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가 집시들을 따라 떠나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온 몸에 뱀처럼 문신을 하고 천문학자 같은 말을 하면서 돌아오기 전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과, 아마란따와 아르까디오가 원주민 말을 잊고 스페인 말을 배우기 전까지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불쌍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밤나무 밑에서 태양과 이슬을 받으며 겪어야 했던 일들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수많은 전쟁을 겪은 후 죽어가는 몸으로 집에 실려오기 전이자 오십 살이 채 안되었던 아들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겪은 후,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슬픈 일 등,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야만 했다.’(2, 68p)

우스술라는 나중에는 백내장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된다. 하지만 집안 식구들은 그녀의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 은밀한 고독은 도대체 어떻게....우르술라는 가장 오래 장수한 인물이다. 아내, 어머니, 조모, 증조모, 고조모...로서 그가 감내해야 할 상처와 아픔과 고통의 고독은 얼마 만큼일까!

 

 

호세 아르까디오:

난 레베까와 결혼할 거요.’

레베까는 당신 여동생이잖아요.’

그런 건 상관없소.’(144p)

 

호세 아르까디오는 천명관의 소설 고래과 비슷한 인물이었다. 욕망과 열정과 육체와 원시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레베까의 정혼남에게 좋소, 당신이 좋아하는 게 우리 가족이라면, 그래 아마란따를 차지하시오.’(145p)

그런데 정혼남, 삐에뜨르 끄레스삐는 호세 아르까디오의 말대로 아마란따에게 다가간다. 이 무슨 황당무계한 상황인가! 근친상간의 남매에다 애정의 대상을 말 한 마디로 옮겨가게 하는 구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인데다 그의 존재의 말미도 너무 씁쓸하다.

 

 

삘라르 떼르네라:

그녀는 열 네 살 때 그녀를 범하고, 스물두 살이 되도록 계속 사랑했지만, 다른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를 밝힐 결심을 끝내 하지 못하던 한 남자로부터 그녀를 떼어놓고자 했던 가족들에 이끌려 마꼰도의 건립과 더불어 마무리되었던 그 집단 이주 대열에 합류했다.’(50p) 그녀는 카드점을 치며, 후에는 매음굴을 운영하면서 신비스런 생활을 한다.

 

 

레베까(호세 아르까디오의 아내):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모든 사정을 훤히 꿰고 있던 원주민 남매는 레베까가 젖은 마당 흙과 손톱으로 벽에서 떼어낸 석회 판떼기만 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70p)

 

삐에뜨르 끄레스삐와 애정관계에서 결혼 직전까지 갔던 레베까는 뜻하지 않은 집안의 사고로 인해 둘의 결혼식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꼴이 되어버렸, ‘제 갈길을 잃고 완전히 타락해버린 레베까는 다시 흙을 먹기 시작했다.’(138p)

 

새로운 삶의 활기를 주었던 호세 아르까디오의 갑작스런 의문사는 가장 신비스런 대목인데, 남편의 죽음은 그녀를 더 큰 고독으로 쳐 넣어버렸다.

주민들이 시체를 방에서 끌어내자마자 레베까는 집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세상의 그 어떤 유혹도 깨뜨릴 수 없는 두꺼운 절망의 껍질에 둘러싸여, 산 채로 집안에 파묻혀 버렸다.’(201p) 그녀는 완고한 유폐생활의 장본인이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이 작품의 1권의 내용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부엔디야 대령이다.

아우렐리아노의 첫 사랑은 바로 원수의 집안의 딸, 레메디오스 모스꼬떼였다. 첫 눈에 반해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 소녀인 레메디오스를 민며느리처럼 집안에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근 사십 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서른두 차례의 전쟁을 벌여야 했고, 전쟁을 통해 맺어진 모든 조약들을 죽음을 걸고 위반해야 했으며, 승리의 영광이라는 수렁에 빠져 돼지처럼 허우적거려야 했다.’(253p)

우르술라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혹독한 전쟁에 시달려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누구를 결코 사랑해 본적이 없었고, 아내 레메디오스나 그의 삶을 스쳐갔던 셀 수 없이 많은 하룻밤의 여자들도 결코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의 아들들은 훨씬 더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상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전쟁들을 치뤘다거나,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전쟁에 지쳐서 무한한 승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은 이유, 즉 죄 받아 마땅한 그 특유의 오만 때문에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우르술라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도 있는, 그런 아들이 사랑을 하는 데는 무능한 한 남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아이들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우는 것은 ....아이가 사랑하는 데 무능하다는 명백한 조짐이라고 사실을 터득했고...(72-73p)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위대한 혁명가, 자유파의 위인인 부엔디아 대령은 늙어 지쳐 마꼰도에 돌아온 이후로 하는 일은 언제나 어린 시절에 했던, 황금물고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부엔디아 대령의 구멍 뚫린 가슴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그 고독을 치유할 수가 없었다.

 

 

아우렐리아노 호세:

넌 고모가 그렇게 좋니?’

그래, 잘하는 일이야’(215p)

.......

그 다음날에서야 비로소 우르술라는 아울렐리아노 호세가 아버지를 따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217p)

 

난 항상 고모를 생각했어요.’(222p)

 

존재의 고독함이 섬이 되었다. 그리고 욕망의 썸이 근친상간으로 드러난다.

 

 

아마란따:

삐에뜨르 끄레스삐는 레베까와 아마란따 두 사람과 동시에 썸을 타고 있었다. 가정의 분위기는 레베까 쪽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아마란따는 결혼식 예정인 레베까를 질투한 나머지, 독살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그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그로 인해 한 사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인생을......그리고 가족사에 엄청난 파장을 낳게 된다.

 

‘...그로부터 삼일 후 독이 피를 타고 몸에 퍼져 배 안에 쌍둥이를 간직한 채 죽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란따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받았다. 레베까를 독살하지 않고서도 결혼식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어떤 무서운 사고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정말 간절히 빌었기 때문에 레메디오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135p)

 

삐에뜨르 끄레스삐는 꿩 대신 닭이라고 아마란따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끝까지 거절한다. 그는 음악회가 열릴 때 면도달로 팔 동맥을 그어 자살한다.

부엔디아 대령의 친구,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의 간절한 구애도 아마란따는 거절한다. 과거의 상처가 그녀의 인생을 끝까지 지배한 것이다. ‘네 마음은 돌과 같구나’(2, 86)고 했던 우르술라의 고백이다.

자신이 죽을 때 입을 수의를 4년 동안 짰다.

 

페르난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무나. 일분의 화해는 평생 동안의 우정보다 더 값진 것이란다.’(2, 118p)

 

아마란따의 고독의 깊이도 점입가경이다. 질투와 미움, 애정, 애증, 죄책감과 상처...그리고 고독, 조카와의 관계 또한. 그녀가 죽기 전에 자신이 처녀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외치는 대목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 처녀성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일 수도 있겠다 싶다. 레메디오스의 죽음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기에 그 누구와도 애정관계에서 서지 않고자 노력해왔다는 것을 자신의 처녀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에게도 유혹이 분명 있었지만.

 

 

미녀 레메디오스:

그녀는 자신이 남자들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여자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매일매일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지상에 존재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2, 48p)

 

물론, 외지 사람들은 미녀 레메디오스가 결국은 여왕벌이 될 수밖에 없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따랐는데도 가족들은 승천운운하면서 그녀의 명예를 지키려 애들을 쓴다고 생각했다.’(2, 57p)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장면이 마르케즈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뜬금없는 승천이라니!

 

 

헤르넬도 마르께스 대령과 주변인: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242p)

 

마꼰도의 부엔디아 가문과 연결된 사람들조차도 그 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메메의 애인이었던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는 몰래 밀애를 즐기는 와중에 총에 맞아 불구가 된다.

 

‘...그 다음해 일월 일일, 미녀 레메디오스에게 무시를 당해 미쳐버린 젊은 경비대장은 그녀의 방 창문 옆에서 사랑으로 인한 주검이 되어 아침을 맞이했다.’(268p)

 

 

아르까디오:

아직도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여덟 달 된 딸과 팔월에 태어나게 될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다....자신이 가장 미워했던 사람들은 사실은 너무나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아무런 감정에도 얽매이지 않았은 채 집안 식구들을 생각했고, 자기 삶을 냉정하게 결산해 보고 있었다....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181p)

 

이런 제기랄! 딸을 낳게 되면 이름을 레메디오스라 지으라고 할걸 그랬군.’(183p)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

아르까디오의 쌍둥이 아들이다. 집을 나갔다가 엄청난 바나나공장의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3000명이 넘는 숫자의 사상자가 난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도망치다 싶이 집으로 돌아와 멜키아데스의 방에 72개의 요강을 놔두고 은신하게 된다. 그는 투명인간과 같은 인물이었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페르난다와 결혼했지만, 한평생 빼뜨라 꼬떼스의 품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페르난다의 황금변기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페르난다는 여왕과 같은 집안에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마꼰도에 와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다. 더 나아가 남편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그치지 않는 바람기, 빼뜨라 꼬떼스와의 불륜행각을 처음부터 알고 인정하는 비굴한 관계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딸 메메를 브뤼셀로 유학을 보내는 열차를 바라보면서 결혼식 날 이후 처음으로 팔장을 낀 채’(217p) 환송을 했다.

 

 

산따 소피아 델 라삐에닷(아르까디오의 아내):

고집 센 쌍둥이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엄마이다.

 

포기하련다. 이 집은 보잘 것 없는 내 뼈다귀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커’(226p)

 

산따 소피아 델 라삐에닷으로서는 집 식구가 줄어든 것이 반 세기 이상의 노동 끝에 얻은 권리인 휴식일 수밖에 없었다(223p)’. 그녀는 아마란따 우르술라에겐 할머니였다. 하지만,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그녀가 할머니란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살았다는 것은 산따 소피아 델 라삐에닷의 자리가 부엔디아 가문에서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4년의 넘는 시간동안 비가 내렸고,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기상변화로 마꼰도의 부엔디아 집은 할 일이 넘쳐났지만, 일손이 없었다. 그 산따 소피아 델 라삐에닷이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뻬뜨라 꼬떼스: 쌍둥이 형제와 함께 관계한 여인이다.

후에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정부가 된다. 아우렐리아노의 장례식에 왔을 때 부인인 페르난다는 그녀에게 시체를 보여주기를 거절했다. 그러자 뻬뜨라 꼬떼스는

내 입장이 좀 돼 봐요.’

그를 사랑할 만큼 했는데도 이런 모욕을 받아야 되는지 생각 좀 해보라니까요.’

정부 주제에 견디지 못할 모욕이 어딨담. 그러니, 그 반장화를 정 신기고 싶으면, 차라리 그 많은 기둥서방 가운데 하나가 죽길 바라지 그래요.’(218p)

 

 

페르난다: 그 여왕의 이름은 페르난다 델 까르삐오였다. 그녀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미인 오천 명 가운데서도 최고의 미인으로 뽑혔는데, 그 침입자들이 그녀를 마다가스카르의 여왕에 임명하겠다고 약속해서 마꼰도로 데려왔던 것이다.’(298p)

자기의 가문과 맞지도 않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결혼한 것 자체가 그녀에겐 비극이었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페르난다를 놔두고 늘 뻬드라 꼬데스의 품에서 지냈다.

 

그녀의 분노가 남편을 향해 폭발한다.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녀가 불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그제서야 비로소 당시 빗소리보다도 더 유려하고 컸던 그 윙윙거리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페르난다는 바늘로 들쑤셔놓은 것 같은 집안을 지탱하느라 자신은 콩팥이 으러지고 있는 사이 게으름뱅이요, 우상숭배자요, 난잡한 남자요, 하늘에서 빵이 비오듯 쏟아지기만을 기다리면서 하늘을 보고 벌렁 드러누워 있곤 하는 남편과 더불어 미치광이들이 사는 어느 집에서 하녀 노릇이나 하기 위해 여왕의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며 저택 안을 싸돌아다녔는데, 그 집안엔 하느님이 일어나서 잠을 주무실 때까지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고, 참아야 하고 고쳐야 할 일이 수도 없이 많아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유리 가루가 잔뜩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리는 눈으로 침대로 들어가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 한 사람 페르난다, 좋은 아침입니다, 페르난다, 잘 잤어요 라는 인사 한 마디 건네는 법이 없고, 빈말이라도, 안색이 왜 그렇게 창백하냐? 왜 자고 일어나서 귀가 그렇게 불그죽죽하게 변했냐고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고, 나머지 식구들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대도 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다들 항상 자기를 장애물이나 냄비를 불에서 내릴 때 쓰는 행주 쪼가리나, 벽에 그려져 있는 익살스런 인형 그림쯤으로 생각하고, 항상 자기를 사이비 여신자라 부르고, 위선자라 부르고, 암도마뱀처럼 교활한 여자라고 부르면서 자기에 대해 구석에서 흉이나 보고 다니고, 삼가 명복을 빌겠는데, 아마란따까지도 큰 소리로 페르난다 자신을, 그 따위 말을 사용하다니 은총이 가득하신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길........(중략).......성묘단의 기사였던 돈 페르난도 델 까르삐오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금지옥엽처럼 자란 자기에게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라는 것이었다.’(175-179p)

 

여기서 퍼붓는 페르난다의 폭언의 잔소리는 과히 거대한 서사시 같다. 일단 문장이 안 끊어지고 5페이지 연속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이 책의 번역자의 매력인 듯하다. 안정효의 번역(안정효의 번역은 2차 자료(영어본)를 가지고 번역한 것이다)마술적 사실주의를 제대로 번역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래도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가 번역한 민음사판이 번역은 제대로 한 듯하다. 5쪽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이 날 울컥하게 했다. 한 사람의 내면의 고독을 5쪽의 장문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글의 힘이구나! 생각해보았다. 정말 충격이었다! 장관이었다!

 

    

-안정효의 번역판이다.

 

메메: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란 노동자와 청춘의 불꽃을 가족 몰래 불태우던 그녀의 행로는 너무나 절망적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의 척추에 박힌 총알 한 방은 그를 평생 동안 침대에 가둬버렸다. 그는 자기를 한 순간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노랑나비들과 추억에 시달리고, 암탉 도둑으로 공식적으로 멸시를 받은 채, 신음 소리 하나 없이, 불평 한 마디 없이, 변명 한 마디 해보지 않고, 고독 속에서 늙어 죽었다.’(2, 132p)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은 코끼리들처럼 죽을 때가 되면 고향 마꼰도로 되돌아온다.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크라코비아에서 죽은 메메와, 어디에서 죽은지 밝혀지지 않은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엣닷을 제외하고, 모두 마꼰도에서 죽는다(2, 139).

 

 

호세 아르까디오:

그는 어머니 페르난다의 교육적인 정책에 의해 로마에서 성직자 수업을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함께 초대해서 놀았던 아이들이 욕조에 있는 호세 아르까디오를 덮쳤다. 그리고서 물 속에 머릴 쳐박아버린다. 그리고서 아이들은 금화 세 부대를 훔쳐가 버린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아우렐리아노는 멜키아데스 방에서 틀혀 박혀 자기만의 고독속에 휘감겨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의 거대하고 부패된 시체를 발견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아우렐리아노는 자신이 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기 시작했는지를 깨달았다.’(248p)

 

혼자서 로마에서 마음에도 없는 성직자 사제 수업을 받던 호세 아르까디오의 고독은 또 어떤가! 모든 가족이 다 떠나고 아우렐리아노와 겨우 얼굴을 텄는데, 결국 그렇게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아우렐리아노:

메메와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사이에 태어난 아이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는 불구자가 되고 메메는 다시 수녀학교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수녀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미 임신상태였다. 페르난다는 이 아이를 물속에 빠뜨려 질식사 시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손자를 돌보아야만 했다. 자기 집안의 수치꺼리가 될 법한 일용직 노동자인, 근본도, 가문도 없는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문제를 처리했을때는 안도의 한숨의 쉬었지만, 결국 더 큰 수치가 다가온 것이 바로 아우렐리아노였다.

 

 

아마란따 우르술라:

아버지의 죽기 직전까지의 도움으로 브뤼셀에서 진보적인 교육을 받은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남편 가스똔과 함께 마꼰도를 비상한 계획과 꿈을 안고 돌아온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조카 아우렐리아노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는거야.’(288p)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사랑의 결정체, ‘무절제한 간통으로 배태된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돼지꼬리’(299p)였다. 100년 전부터 염려했던 근친상간의 증표, 돼지꼬리가 드디어 출현한 것이다.

 

 

 

마꼰도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번번히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 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역자의 말, 323)

 

 

 

 

3.고독한 섬과 욕망의 썸이 몰락의 성( )을 쌓았다

 

 

그리고 그때 아기를 보았다. 아이는 전체적으로 벙벙하게 부풀어 올라 있고, 피부는 바싹 마른 가죽 같은 시체로 변해 있었는데, 세상의 모든 개미떼들이 다 모여들어 아이의 시체를 마당에 있는 돌투성이 샛길을 통해 어렵사리 개미 소굴로 끌어가고 있었다. 아우렐리아노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303p)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303p)

 

 

 

4.이 소설은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과 생존권 문제를 다투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13명이 죽었다. 하지만, 작가는 백년 후에는 3천 명이라는 환상적인 숫자가 역사적 숫자fact로 믿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역사보다는 자기 픽션을 더 믿을 것이라는 허풍을 떤다. 이것은 로맹 가리가 소설가는 마법사와 같다는 견지와 비슷하게 마르케스는 작가보다는 마술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백년의 고독에선 마술적 사실주의가 등장하는 이유가 그러한 것이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대목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다. 예를 들어,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이야기를 보자. 승천은 사람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두 사람, 에녹과 엘리야에게 임한 기적이다. 그런데, 소설 속에 승천이라니! 하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승천같은 기적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마르케즈가 노리는 대목은 어쩌면 그 소설fiction이 가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작품으로 소위 <소설의 죽음>에 반기를 들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로 소설의 부활에 대해 언급하도록 만들었다’(2, 308-309p).

 

 

인간이 일등칸에 타고 문학이 화물칸에 싣게 된다면, 이 세상은 개떡같이 끝장나고 말거야.’(2, 283p)

 

 

 

 

 

Epilogue...

이 책은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는 책이었다!

이런 책은 읽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페이퍼를 적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독서는 권수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사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사색하고 사유하면서 느끼고 즐기고 함께하는 것이 독서가 아닐까! 그래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페이퍼 때문에 독서가 밀렸다. 책을 읽고 싶은데, 이걸 이렇게라도 마무리 짓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될 듯해서 페이퍼를 남긴다. 내 독서인생에 획을 그은 멋진 책이 또 하나 탄생했다 싶다!

 

자, 읽지 않으신 분들은 당신의 '백년의 힘'으로 백년의 고독』의 맛을 한 번 느껴보시길 바란다!

‘두 개의 거울처럼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종류의 향수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그 뛰어난 비현실 감각을 상실했고, 마침내, 모두에게 마꼰도를 버릴 것을, 이 세계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신이 가르쳐 주었던 것을 모두 잊을 것을, 호라티우스에게 똥을 싸버릴 것을,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과거는 거짓이고,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고, 지난 봄은 다시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격정적이고 집요한 사랑도 어찌되었든 잠시의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것을 권고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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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1-09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짝짝짝~
전 이 책을 읽는데 백년 걸리는 느낌 받았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09 15:01   좋아요 1 | URL
진짜입니다 ‘백년의 힘’이 맞습니다 ㅎㅎ 우아 인제 다른 책 읽어야겠어요 휴~

카알벨루치 2018-11-09 16:04   좋아요 0 | URL
다 봤어유~지적허세 작렬인 저는 쌓아두기의 대가, 어쩔 ㅋㅋㅋ🎶

syo 2018-11-09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알님의 노고가 보입니다. 전 이 책 좋긴 참 좋았으나 읽고 쓸 말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카알벨루치 2018-11-09 18:54   좋아요 0 | URL
그냥 느껴지는게 있으니 쓰는거죠 어떤 책은 아무리 읽어도 느껴지는게 없는데 내가 아는 이웃중에 S**님은 수려하게 문장을 장착하시던데요 ^^ㅎ

syo 2018-11-09 19:07   좋아요 0 | URL
누구래요? 그 양반이...... ㅎ

카알벨루치 2018-11-09 19:10   좋아요 0 | URL
누굴까??? 알 사람은 다 알텐데~ㅎㅎㅎ

syo 2018-11-09 19:12   좋아요 0 | URL
아 그것 참 ㅋㅋㅋㅋㅋㅋㅋ
알 것 같기도 하고 알 것 같기도 하네? ㅎㅎ

카알벨루치 2018-11-09 19:24   좋아요 0 | URL
거시기 대구에 살고 여친있고 마르크스 헤겔 스피노자 등등 잘 읽고 대구도서관 통째로 빌려 읽고, 이웃중에 시루스 박사님도 잘 아는 ... 이런 말까진 안할라 했는데 프로필이 이모티콘으로...어쩔 ㅋ

syo 2018-11-09 19: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빼박이다 ㅋㅋㅋㅋㅋㅋ 시루스 박사 한테로 토스할라 했더니 어떻게 아시고 미리 원천봉쇄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당했어요.

카알벨루치 2018-11-09 19:52   좋아요 0 | URL
이 바닥에 다 아는데 왜 이러셔 ㅋㅋㅋㅋㅋ시루스 박사님은 C인디 ㅋㅋㅋㅋ

syo 2018-11-09 19:59   좋아요 0 | URL
Sㅣ루스 박사라고 우길라고 그랬지 ㅋㅋㅋㅋㅋ 제가 카알님을 너무 알로 보고 말았군요..... 어디서 개수작을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09 20:12   좋아요 0 | URL
다이소 왔는데 S ㅣ루스 란 말 듣고 🍞 터졌다 ㅋㅋ

stella.K 2018-11-0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ㅣ루스 박사. 말이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웃기긴 합니다.ㅋㅋㅋ
저도 궁금하네요. 그 S님이 누군지.
이러고 저러고 지간에 저는 혹시 이 책 읽어도 리뷰는 안 쓸랍니다.ㅠ

카알벨루치 2018-11-09 21:42   좋아요 0 | URL
리뷰쓰기 힘들었네요 그냥 정리하는 와중에 에라 모르겠다~싶어 등장인물까지 죄다 올리는 다중스포를 남발했는데....참 스텔라님 예언이 적중했네요 ㅋㅋ

stella.K 2018-11-10 19:07   좋아요 0 | URL
헉, 제가 무슨 예언을...?
저 예언한 적 없는데...ㅋㅋ

2018-11-10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11-10 20:32   좋아요 0 | URL
아, 그거요?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당선되신 거 보고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기대도 안 했는데 막 되던데요?ㅋㅋ
가끔 공들여 쓴 글이 안되고 생각지도 않은 것이 되고 그러더라구요.
암튼 축하합니다.^^

2018-11-10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1-10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종이에 도표를 그려 가며 읽었던 책이 <백년 동안의 고독>이었어요.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그러나 읽어 놔서 시원하다는 표현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읽지 않았다면 앞으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ㅋ

세세하게 쓰신 님의 페이퍼에는 감탄감탄!!!!!!!

카알벨루치 2018-11-10 18:05   좋아요 1 | URL
진짜 시원한 느낌입니다 ~ 등장인물이 얼키고 설키고 복잡한데 조금 수고하니 훤히 들어와 좋아서 결국은 페이퍼로 직행했습니다! 저녁시간 잘 보내세요 페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