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시인이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었다. 대학 초기에 헤르만 헷세의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세월이 20년이 넘게 흘렀다. 헷세의 인생여정을 들여다 보았다. 헷세가 말년에는 시를 썼구나! 문득 류시화의시로 납치하다에 나온 헷세의 시를 본다.

 

 

편집부에서 온 편지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은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말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시로 납치하다, 168p).

 

    

 

시인 헤세의 좌절

헤세는 10대에 이미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설을 펴내고 지금 이 시를 쓴 시기가 50세였다. 당대의 이름있는 작가의 시를 출판사가 거절했다. ? 바로 전쟁 때문이었다. 헤세는 독일인이다. 헤세(1877-1962)는 히틀러의 제국주의적 전쟁을 반대한 전쟁반대론자였다. 독일의 전쟁 발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해 헤세는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배신자, 매국노란 지탄을 받으면서 자신의 시 뿐만 아니라 모든 저서가 출판금지를 당했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작가에게 시란, 글이란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 헤세는 이 시에서 이 보잘 것 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 보잘 것 없는 아들은 시인 헤세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오롯이 글쓰기를 감행했던 헤세

히틀러 사망 후 69세가 된 후에야 그는 문학적 인정을 받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류시화는 오롯이 자기만족을 위해 시를 쓰고, 글을 썼던 헤세의 심장을 이야기한다. 출판사는 끊임없이 거절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오롯이 글을 썼던 것이다. 류시화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큰 것은 바로 <내면의 포기가 주는 고통>(시로 납치하다, 171p)이라 말한다. 나 스스로 글쓰기를 포기하는 내면적인 황폐함,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맨홀 뚜껑 아래에 쳐박혀진 느낌, 그것이 바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 즉,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야길 하니, 헤세의 소설 동방순례에 보면 죽음에 이르는 병(모르비오 인페리오레 Morbio Inferiore)’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북부의 계곡이름이 등장한다. 헷세의 내면은 포기를 몰랐다. 그의 사후에 히틀러가 죽었다면, 그의 작품의 출판은 더 미뤄졌을 것이다. 다행이다. 히틀러가 헤세보다 일찍 죽어서.

 

    

 -동방순례』이 작품은 현대문학의 『크눌프』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유리알유희』로 가기 위한 포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는 말 그래도, 못 다 핀 꽃과 같은 시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솔직히 받았다. 그의 지독한 고통, 죽음에 이르는 병, 영적, 정신적, 육체적 모르비오 인페리오레를 경험했던 수많은 시인들의 아득한 절망이 엿보인다. 그 사람들의 절망이 꽃으로 피어 시가 되었다. 그래서 그 시가 너무 가슴뭉클하게 다가온다.

 

  

 

모든 이의 꿈은 감옥에서 큽니다

오늘 우연히 김미경 강사의 강의를 들었는데, 문장 하나가 훅 하나 내 가슴에 들어왔다. <모든 이의 꿈은 감옥 속에서 큽니다> 뭐 그런 문장이었다. 감옥같은 현실, 환장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 꿈이 핀다는 자기계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멘트가 나를 위로한다. 때때로 그런 말들도 우리 인생에겐 필요하다. 구약성경의 요셉이 그러했다.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요셉은 결국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 어처구니 없는 감옥행 신세가 된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요셉의 꿈이 커졌다. 딜레마의 감옥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는 말로 자위해 본다.

 

자고로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문학을 보면서 위로받는다. 나보다 더 큰 절망을 경험한 이들이 그 텍스트 위에 울고 있다. 그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 내 가슴에 희망의 싹을 틔운다.

 

 

    

레이먼드 카버의 자전적 이야기, <>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보면, <>이란 단편소설이 있다. 그 단편을 읽고 적었던 느낌을 그대로 옮겨본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 가정을 이룬다. 자녀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한쪽에서 균열이 생긴다. 독박육아와 직장까지 병행해야 하는 남편의 처지. 받아들일래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처지였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다가 진짜 괜챦은 늙은 웹스터부인을 만난다. 웹스터 부인의 케어는 주인공 칼라일에게 활력을, 두 아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남자에겐 이제 애인도 생겼다.

 

 

남편 칼라일이 잘 아는 직장동료와 바람나서 딴 살림을 차린 아내 아일린이었지만, 아일린의 도움으로 훌륭하고 탁월한 베이비시터, 웹스터부인을 얻게 된 칼라일이다. 하지만 칼라일은 갑작스럽게 큰 열에 휩싸인다. 홍역처럼 다가온 열병을 겪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웹스터부인이 남편과 함께 유모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쩔!

 

아일린에 의해 자기 가정에 구원자같이 왔던 웹스터 부인이 떠나게 되고, 열병에 걸린 남편에게 아내는 남편의 생체리듬에 대해 조언을 하면서 아플 때 기록을 꼭 남기라고 충언(?)까지 한다. 웹스터 부인이 떠난다고 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칼라일은 이제 두 아이, 세라와 키스를 둔 이혼남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 그의 현실이다. 가정의 모든 리듬과 흐름이 또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런데,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의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싸우기까지 했지만-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대성당, 254p)

 

 

 

칼라일의 decision

애기들 내팽개치고 떠난 아일린, 그러면서도 애기들 때문이라도 계속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일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칼라일은 이 대목에서 결정을 내린다. 결정decision는 명사이고, ‘결정을 내린다’, ‘결단하다의 동사는 영어로 decide이다. 이 말은 de(~로부터from)라는 접두어와 cide(자르다to cut)의 의미를 담고 있다. 칼라일의 새로운 결단은 아일린으로부터 잘라내는 삶이다. 재수없는 여자를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크눌프Knulp의 존재적 의의

카버의 이야기에서 다시 헤세의크눌프의 이야기로 가보자.

폐결핵이 걸린 크눌프에겐 지금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는 처지이다. 그때 신과의 대화를 나눈다.

 

이제 그만 만족하도록 해라...그 모든 한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모든 일이 선하게 그리고 제대로 일어났고 그 어떤 것도 다르게 흘러가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정말 보지 못하는 것이냐? 그래, 너는 지금 어엿한 신사나 기술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또 저녁에는 잡지를 읽고 싶다는 것이냐? 당장에 도망쳐 나와서 숲 속의 여우들 곁에서 잠을 자고 새덫을 놓거나 도마뱀을 길들이게 되지 않겠느냐?”

 

이 말에 크눌프는 기분이 다소 좋아지고 자기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보아라...나는 오직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필요로 했다. 너는 나의 이름으로 방랑을 했던 것이고, 정착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향수를 조금씩은 일깨워 주어야 했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일을 했던 것이고 조롱받기도 했다. 네 안에서 내가 조롱을 받는 것이고, 내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나의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무엇을 누리든, 무엇으로 고통을 받든지, 나는 항상 너와 함께했었다.”(크눌프, 140p)

 

 

크눌프는 방랑자였다. 어디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나그네였다. 크눌프에겐 사생아도 있다. 그 아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고 그런 여력도 없는 크눌프였다. 그러나, 신은 크눌프에게 정착하려는 성향을 지는 사람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향수를 조금씩은 일깨워 주었던 게 바로 크눌프였다.

 

   

 

헤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 Knulp

젊을 때 크눌프는 목적 없이 떠도는 방랑자로 비쳤다. 라디오 광고방송에선 비행청소년들을 선도하는 듯한 메시지로 헤세의 크눌프 이야기의 결론부분을 아주 구슬프게, 그것도 팬플루트 배경음악까지 깔아가면서 메시지를 던졌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크눌프는 단순히 방랑자의 삶을 살다가 비극적인 돌싱으로 죽어가는 인물이 아니라, 크눌프의 삶도 타인들에겐 필요한 존재였고 필요한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크눌프는 헤세의 심장을 많이 닮아 있다. 그는 어디에도 얽매이길 싫어했던 인물이다. 집안이 전부 개신교 선교사, 목사의 집안이었고 그 또한 목사수업을 위한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튀어나왔다. 탈출했다. 그의 삶의 수레바퀴가 그에겐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 종교적인 굴레들과 수레바퀴 속에서 그는 언제나 크눌프처럼 유리하고 방황하는 자유를 탐닉했다.

 

 

 

크눌프적 존재, 아일린

레이먼드 카버의 <>에서 나오는 칼라일의 아내, 아일린은 크눌프버젼으로 볼 수도 있겠다. 또 한 작가의 스토리를 보자. 그 작가는 스승의 부인과 사랑에 빠져 도피행각을 했다. 세 자녀와 교수인 남편을 내팽개쳤다. 그리고서 새롭게 사랑에 빠진 작가와 인생을 향유한다. 그 작가는 바로 채털리부인의 사랑D.H.로렌스이다. 불륜남이 바로 로렌스였다.

 

    

 

크눌프적 작가, D.H.로렌스

하지만, 로렌스의 생애의 새로운 국면은 프리다(Friede)라는 독일 여성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노팅검 대학 시절의 스승인 위클리(Weekley) 교수에게 취직알선을 부탁하러 갔다가 그의 아내인 프리다와 만나게 되었다. 중상류의 가정에서 하녀를 거느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던 프리다는 답답하고 무료함까지 느끼던 터였다. 예리한 눈에 당돌하기까지 한 27세의 청년에게서 프리다는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찾았고, 로렌스는 프리다야말로 그가 이제껏 찾았던 여자였음을 직감했다. 프리드리히 본 리히토(Friedrich von Richthofen) 남작의 딸인 독일 태생의 프리다는 사회적 지위, 연령, 인생의 경험 등에서 그를 능가했다. 지성적이고 개성이 강한 프리다는 이 청년과의 사랑을 위해서 곧 세 자녀와 남편을 버리고 고향인 독일의 메쯔로 떠났다.

 

 

 

로렌스의 새 연인, 프리다는 카버의 <>의 아내 아일린과 비슷한 인물이다. 아일린,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고 그림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불륜남을 만나면서 해소된 것이다. 무슨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냐고?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크눌프에게 있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그 옛날 첫 사랑, 프란치스카의 존재나, 더 나아가 크눌프 자신의 존재도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며, 카버의 단편에 나오는 칼라일의 아내, 아일린의 존재도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냥 아일린은 칼라일에게 크눌프Knulp적인 존재였다. 인생을 각성시키는 존재였다. 카버가 그걸 적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레이먼드 카버는 작품 속에서 이런 문장을 남긴다.

 

 

암시가 가장 중요한 거야.”(237p)

 

 

 

레이먼드 카버의 일상의 힘

레이먼드 카버(1938-1988)는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에 3살 연하의 소녀와 결혼을 하여 그 다음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카버의 삶은 생계를 위해 피 말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현실과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 이상 가운데서 그는 30대에 생활고와 아내와의 불화로 인해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된다. 단편 <>은 두 아이를 혼자서 양육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가 단편소설을 썼던 것은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장에 생활비가 없기 때문에 짧게 쓴 소설을 팔아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제재소 일꾼, 집배원, 주유소 직원, 화장실 청소부의 생활 가운데 부딪히는 일상들을 다룰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글이 힘이 있었던 것은, 그의 일상에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피말리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하나의 힘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관찰의 힘>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또 다른 힘, 관찰의 힘

작가 김중혁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믿음과 소망과 관찰, 그 중에 제일은 관찰이다’(무엇이든 쓰게 된다, 10p)라는 말을 남겼다.

 

    

 

오기렌의 관찰의 힘

'관찰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폴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라는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브루클린의 담배 가게 주인인 오기렌12년 동안 매일 아침 7시 정각에 똑같은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사람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의 그물에 담긴다. 어느 날 그는 단골손님인 소설가에게 자신이 찍은 4천 장이 넘는 사진을 보여주게 되는데, 소설가가 사진집을 너무 빨리 넘기자 이렇게 말한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김중혁 10-11p)

 

 

 

치열했던 카버의 삶

카버는 치열한 생계의 현장에서 사물과 사건을 제대로 매일 관찰하면서 글을 써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그런 인생을 살면 많은 것을 양보해야만 해요. 자기 인생을 살 수가 없어요.”카버가 1982년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글에 대해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고 했다. 카버는 단편 <보존>이란 이야기에서 냉장고가 고장났는데 돈이 없어 기사를 부를 수가 없는 내핍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카버는 그런 삶을 소설로 썼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더러운 리얼리즘의 작가이다?

20세기의 영국의 문학계는 미국 문학의 동향에 대해 비위가 거슬린 모양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에 대해 더러운 리얼리즘이라고 했다. 내면의 것을 터트려주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모든 것을 독자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을 영국의 비평가들은 더러운 리얼리즘이라고 했을까! 이런 영국과 미국간의 문학적인 거리감과 냉기서린 감정의 기운은 문외한인 나에게 일종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문학에 대한 편견을 벗고 바라본 영국작가, 로렌스

하지만 이 자존심을 과감하게 내려놓은 이가 바로 D.H.로렌스이기도 하다. 당시 영국인이었던 로렌스가미국고전문학연구란 책을 출판했다는 것 자체가 영국문학계로선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로렌스는 문학을 순수문학 그 자체로 대하면서 미국고전문학을 훑어주는 비평가로서의 진수를 그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비평서이다. 외설작가 로렌스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할 정도의 탁월한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해본다. 로렌스의 이 책을 보고 내가 로렌스란 작가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이먼드 카버가 시를 쓰다

아무튼 카버의 단편이 주는 미학의 힘은 카버의 일상의 힘, 관찰의 힘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가 시를 썼다는 사실이 또 다시 심쿵하게 했다. 레이먼드 카버는 비가 많이 내리는 동네, 오리건 주에서 태어났다. 이 시의 제목도 <>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하루 종일 이대로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잠시 그 충동과 싸웠다.

 

그러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항복했다. 비 내리는 아침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로.

 

나는 이 삶을 또 다시 살게 될까?

용서할 수 없는 똑같은 실수들을 반복하게 될까?

그렇다. 확률은 반반이다. 그렇다.

(시로 납치하다, 106p) 

 

 

어떻게 이렇게 현실적인 고백이 있을까? 이 시는 10대에 첫눈에 반해 결혼을 한 첫사랑인 아내, 하지만 육아와 생계의 무거운 짐,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다 알코올중독이 되고 결국 그 아내와 이혼하고서, 이제 자신의 인생의 굴레에서 조금 벗어나 안정을 찾았을 때 쓴 시라고 한다. 그의 인생은 실수투성이였다. 10대에 결혼을 하다니....부터 시작해서 끝이 없는 실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실수,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 불행?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카버가 폐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비평가들의 절반 이상이 말한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실제로 받진 않았지만, 내겐 레이먼드 카버는 이미 노벨상 작가인 셈이다. 치버와 함께 릴레이소설을 쓰기도 했던 카버, 너무 탁월하다. 단편 <기차>가 바로 치버에게 바치는 그 릴레이소설이다.

 

암시가 가장 중요한 거야.”(237p)

 

 

 

No pain, No gain

카버에게 불행이 없었다면, 진정한 카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카버의 인생에 불행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인생 중간에 어찌 알았겠는가!

 

 

헤르만 헤세는 종교적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세 번이나 결혼을 했다. 전쟁반대론자로서 당해야 할 무수한 출판금지, 헤세는 히틀러 집권 기간인 1933-1945년 사이 독일에서 총 20권의 헤세 저서가 나왔지만, 고작 481권의 문고본 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동생 한스가 자살을 했다...하지만, 헤세는 그래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그리고 85세에 세상을 떠난다. 카버는 노벨상도 못 받았고, 중년의 나이에 죽었는데, 그래도 헤세는 좀 더 낫다. 하지만, 그 누구의 불행의 경중을 가타부타하며 논하겠는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진출처: http://lagoazul.tistory.com/9

    

 

 

레이먼드 카버도, 헤르만 헤세의 스토리도 우리에겐 Knulp 적인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작품도, 삶도, 인생도 거울과 같이 우릴 비추며 각성시키는 존재, 크눌프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그런 이야길 했는데, 누구인지는 기억을 못하겠다.

 

그 사람의 성공의 요인은 바로 불행이었다

 

 

 

 

Epilogue...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9p)

 

    

 

우리는 모두 크눌프Knulp와 같은 존재이다.

크눌프Knulp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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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1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8-12-22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횡무진왕이시다..... 심지어 장면 전환이 기름 바른 듯 매끄러워.....

카알벨루치 2018-12-22 09:53   좋아요 0 | URL
그럼 나도 왕 같은거 되는건가요? 화면전환 왕????? ㅎㅎㅎ

syo 2018-12-22 09:55   좋아요 1 | URL
모두가 하나씩 왕 되는 세상 알라딘 세상 좋은 세상!!ㅎ

후애(厚愛) 2018-12-24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되시고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메오 2018-12-24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치님도 메리크리마스^^ 행복연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18-12-24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행복한 겨울 보내세용 ㅎㅎㅎ

저는 여전히 크눌프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삶들이 다 다른거야 당연한데 유독 크눌프는 그 방랑자적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여전히 제 삶과 책을 분리하지 못하는 제 탓입니다요ㅠㅠ

카알벨루치 2018-12-24 17:52   좋아요 1 | URL
크눌프 아니 모든 작품을 대할 때는 다양한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관점의 다양성,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크눌프의 프란치스카로 인한 어린시절의 상처로부터 자유하지 못했기에 더 방황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헤세가 종교적인 환경 가운데 자라면서 그게 자신에겐 큰 짐으로 다가왔기에 신학교를 뛰쳐나갔다고 봅니다

그런 삶과 이력이 크눌프에 녹아나있다고 보고 싶어요 작가들은 인생의 세세한 것을 결코 놓치지 않는 분들이라 더 델리키트한 면이 있죠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읽고 사유하다보면 내게 맞는 작가나 작품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더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허접한 댓글이 위안이 되시길...

munsun09 2018-12-24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도 좋은 책 소개 많이 해 주세요^^

카알벨루치 2018-12-24 17:54   좋아요 1 | URL
제가 뭘 소개할 수 있을까요 느낀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것에 전 그냥 너무 감사합니다 ^^

scott 2018-12-24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을때마다 항상 감탄합니다.
헤세의 크눌프-카버-로렌스로 이어지는 리뷰 한편의 산문이네요.
해피메리 크리스마스

* ☆╂ ☆ * ☆
*☆/▦\*☆*☆
___l∩l__*.*__♬

카알벨루치 2018-12-24 19:07   좋아요 0 | URL
댓글에 담긴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해요 스콧님! 🎶☕️

레삭매냐 2018-12-24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는 써야 모름지기 페이퍼라고 할 수
있겠군요 ㅋㅋㅋ

한 해 동안 책과 함께 하시느라 수고 많으
셨습니다. 새해에도 또 새로운 책들과 함
께 달려 BoA요...

카알벨루치 2018-12-24 20:02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콜 백만개!!!! ~Happy together!

서니데이 2018-12-24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날씨가 차갑지만, 가족과 함께 따뜻하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희선 2018-12-25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쟁 때 헤세 책이 독일에서 나오지 못했지만, 지금은 독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도 하더군요 오래 살아서 노벨문학상도 받았네요 카버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했는데 그걸 못 쓰고 죽었습니다 대학에서 술을 마시고 학생을 가르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죽기 전까지 열해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폐암으로 죽었군요 첫번째 부인하고는 좋은 친구로 지냈다고도 하던데...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잘한 사람 많지요 그런 사람은 대단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여러 가지 아픔이나 힘든 일을 겪지만 그걸 다른 것으로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카알벨루치 님 성탄절 마음 따스하게 보내세요


희선

카알벨루치 2018-12-25 14:29   좋아요 0 | URL
전 카버와 치버를 같이 알게되서 두사람의 생애가 헷갈릴때가 있어요 ㅎㅎ고통이 에너지가 된다는 것은 보편적인 적용이 될 순 없겠죠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겠죠 ㅎ해피 클스마스 입니다~

페크(pek0501) 2018-12-25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보니 제가 갖고 있는 책이 많아서 뿌듯합니다. ㅋ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가는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5 14:31   좋아요 0 | URL
장서가 이신 페크님께서 이런 책들은 당연히 소장하시겠죠 페크님 거실 한번 훔쳐봤는데 광장이더군요 그리고 아픔이자 삶인 청소기도 ㅋㅋㅋㅋ

coolcat329 2020-05-04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눌프를 읽고 왔다가 카버의 책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찾아 <열>을 읽었네요 ^^ 분명 읽었는데 전혀 전혀 기억이 안나서 당황스럽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크눌프와 카버의 단편 <열>,더 나아가 로렌스까지 연결해서 쓰신 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프란체스카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됐네요~

카알벨루치 2020-05-05 10:32   좋아요 0 | URL
잘지내시죠? 암튼 감사드려요 휴일 행복하소서!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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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올해의 문장

나도 한 번 해보자 싶어 시도해본다. 근데 이거 30개까지 올려야 하는거 아닌가요? 볼라뇨의 글은 빠져들기가 수월치 않다. 끝만 보고 달리고 있다. 마지막에 이 작가가 내게 줄 선물이 무얼지 기대하면서...



(다 읽은 후)




아...또 이 맛은 무언가요? 볼라뇨의 매력이 이런 것인가요?

<작가의 조국은 여럿일 수 있지만, 그 조국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통행증은 글의 품격>

우아...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니 오오....볼라뇨,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인 듯!


레***님, 감사해요^^

내 생각에는 나름대로 재주가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재주, 뭐랄까?, 자기 자신 속으로 숨고, 자기만의 꼬투리에 갇혀 있고, 내면에 파묻히는 재주이다. 다른 이들은 그런 재주를 벗어던지고,
커튼을 걷고, 망각해 버렸다(128p)

<작가의 조국은 여럿일 수 있지만, 그 조국에 도달하기위한 유일한 통행증은 글의 품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품격만을 생각하는 창작 행위는 아찔한 낭떠러지 위 계곡 길을 걷는 것처럼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적 순수성과 그 치열함을 지키려면 문단의 우상, 유혹, 관행 등과 위험한 대결을 벌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생존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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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2-21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올해의 문장 아직도 진행 중인가요? 끝난 줄 알았는데...

근데 불라뇨가 빠지기 어려운가요?
작가의 책은 아니고 작가에게 헌정하는
여러 작가가 쓴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작가를 찬양하던데...

카알벨루치 2018-12-21 15:30   좋아요 1 | URL
2018년 나만의 문장은 1/10까지 하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1 15:39   좋아요 1 | URL
남미문학, 라틴문학 맞나요? 이쪽은 제가 문외한이라서 그럴수도 있어요 정치적 사상적 배경이 전무하니. 곧 끝이 보이니 모든이가 찬양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겠죠 ㅎ

카알벨루치 2018-12-21 16:22   좋아요 1 | URL
왜 찬양하는지 알겠습니다 와우~

레삭매냐 2018-12-21 1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읽으셨군요 <칠레의 밤>...

8년 전엔가 열린책들에서 볼라뇨 시리즈를
내겠다고 했을 당시의 짜릿함이란 정말 !!!
이루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저희 독서모임에서 제가 하자고 했다가 까
였다고 지난 달에 말했는데 아무도 기억하
지 못하시더군요 ㅇㅇ

계속해서 달려 주시기 바랍니다.

라틴 작가들 정말 매력적입니다. 전 최초의
스페인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밀로
호세 셀라의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1 20:13   좋아요 0 | URL
까였다고 ㅋㅋㅋ진짜 이 책 레삭매냐님만 믿고 달렸습니다 대화랑 지문이랑 띄워쓰기도 안 해주고 젠장...


읽는데 눈은 가는데 생각은 따로 놀기도 하고 대단한 은유와 비유와 상징이 있는 듯해서 재독했다는 레삭매냐님 의도를 알 것 같기도 해요~

마르케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햐~참 엉클하신 볼라뇨 엉클이시구만요

암튼 레삭매냐님 아니었다면 볼라뇨를 몰랐을텐데 빌린 책 한달만에 읽었는데 이 책 중고라도 사놓아야하나 고민됩니다 ㅋㅋ감사 감사 또 감사🙏

2018-12-21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1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카알벨루치 > 쉽고 재미난 세계사 책을 찾는가?

<서양미술사>의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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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12-19 21:5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대단하신 서니데이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syo 2018-12-19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7이면 syo는 아직 syo는 커녕 s도 못되던 시절인데, 벌써 카알님은 알라디너셨군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카알님껜 뭐 당연한 일이지만요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9 22:24   좋아요 0 | URL
2007년 그때 알라딘의 블로그는 이렇게 활성화되지 않아서 여긴 거의 잘 들어오지도 않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글 올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올해 4월인가 5월에 왔는데, 기록이 이렇게 남아있으니 그래도 감사하네요!

달인 이런거 함 해보고 싶었는데 알라딘 와서 책도 더 보게 되고, 글도 더 쓰게 되고 좋은 분들, 그리고 그 머시기 거시기 가까운 도시에 책을 다 섭렵하는 젊은 총각(소라고 하기도 하고, 쇼라도 하기도 하고ㅋ)도 만나서 소통도 하고 고마워요!

기록을 보니 저같이 말주변 없는 1인이 댓글로 best에 들어가다니 참 신통하기도 하지만 다 좋은 이웃 만나서 그런 것 같네요

그 댓글 가운데 소님댓글도 많을 듯 합니다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달인...절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달인 엠블런 진짜 존경스러워보였어요 꼭 달고 싶었는데 막상 달고나니 약간의 헛헛함? 역쉬 모든 것은 자기만족이고, 자기주관에서 비롯된 평정심이 제일 중요한 듯 합니다

쇼님, 서재의 달인은 당연한 것이고 인생의 진정한 달인이 되시길~응원합니다요 ^^

syo 2018-12-20 00:01   좋아요 1 | URL
말주변이 없으시다니요..... 이런 장문의 댓글을 좔좔좔좌르르좔좔 달아놓으셔놓고 왠말씀을ㅎㅎㅎㅎㅎ

해주신 응원은 잘 받고 내년에도 소처럼 우직하게 읽는 소총각이 되겠습니다.ㅎ

카알벨루치 2018-12-20 00:06   좋아요 0 | URL
앗! 벌써 신년인사 들어가는겁니까? 역시 다독가는 앞서 가시네요 쇼님 같은 분이 있어 알라딘이 꽉 차 보이는듯 합니다 !

cyrus 2018-12-20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07년 저때 연말이라고 저는 대학생 동기들과 술 먹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0 18:19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지요 ㅎㅎㅎ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탈무드

 

 

 

 

한 사람의 영향력, 한 사람의 힘-오스카 쉰들러


  <쉰들러 리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가 크라코프 유대인 수용소로 이송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전멸의 위협 속에서 오스카 쉰들러라는 독일인 군수품 제조업자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처음에는 값싼 노동력을 얻는 데 관심이 더 많았던 쉰들러는 유대인 동료들을 보살피게 된다. 이들은 그의 가족이 되며 그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전쟁이 끝난 후 쉰들러는 전범이기 때문에 도망칠 수밖에 없다. 영화의 감동적인 장면, 유대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려고 차에 올라 막 출발하려는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쉰들러가 체포될 경우 연합군이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그가 자신들에게 한 일을 적고 서명까지 한 편지를 건네준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금니를 뽑아 만들어

누구든지 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세상을 구하는 자이다.”

라는 히브리 탈무드의 글귀를 새긴 반지도 그에게 준다. 쉰들러는 자신의 금배지로 유대인 한 사람을, 자신의 자동차로 열 명 이상의 유대인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감정이 복받친다.
 
그는 더 많이 구할 수도 있었는데라며 울먹인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는 빠르게 현재로 되돌아온다. 쉰들러 공장의 실제 생존자들과 영화에서 이들의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 50년 후 쉰들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무덤에 모였다. 생존자들이 그의 묘비를 지날 때, 화면에는 두 줄의 자막이 뜬다.
         
현재 폴란드에 남아 있는 유대인은 4,000명이 안 된다.”
쉰들러 유대인들의 후손은 6,000명이 넘는다.”
 
그의 유대인 십장이 말했듯이, 오스카 쉰들러가 한 일 때문에 후손들이 존재한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이제 장면은 스위스로 옮겨간다
    


한 영화의 영향력, 한 영화의 힘


  199610월 크리스토프 마일리(Christoph Meili)는 방금 영화관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유대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 스위스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극소수이다. 석 달 후, 마일리는 자신이 경비원으로 일하는 취리히의 한 은행에서 의례적인 순찰을 돌고 있다. 그는 종이뭉치가 쌓여 있는 방을 지나다가 낡은 책이 가득 찬 두 개의 큰 상자를 발견한다. 그 전에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상자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다가 그 책이 제2차 세계대전 때 기록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책 한 권을 옷 속에 숨긴 채 순찰을 마친다. 그는 책을 집으로 가져와 좀더 자세히 보다가 이것이 베를린에서 몰수되어 나치로 넘어간 유대인의 재산목록을 정리한 서류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일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쉰들러 리스트>에서 나치가 유대인의 귀중품을 강탈하는 장면과 쉰들러가 한 일을 기억했다. 그는 후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라고 했다.
그는 정말 뭔가를 했다. 다음날 그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너무 커서 문서 세단기에 들어 갈 수 없었던 두 개의 원부(原簿)를 발견했다. 그는 취리히의 한 신문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한 유대인 문화 단체에 연락을 취했지만 그들은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다이너마이트예요. 손 대기에는 너무 위험합니다.”

크리스토퍼 마일리의 이야기는 '영화와 영성'이란 책에 나온다.         

 

 

마침내 마일리는 작은 유대인 신문사를 찾아갔고, 그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이야기는 온 세상에 알려졌다.  곧 스위스 시민들은 마일리를 이스라엘의 스파이 혐의로 고소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생명을 위협했다. 스위스 은행은 국가 기관이며 신성 불가침한 곳으로 여겨진다. 그가 은행의 비밀을 훔쳤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마일리의 아버지까지도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미쳤니? 왜 유대인을 돕는거냐?”


  아이러니하게도 마일리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여 받아들여진 최초의 스위스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으로 인해 스위스 은행들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 및 유대인 단체들과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금액은 125천만 달러에 달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10년이나 걸려 이 영화를 만든 유대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 이야기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리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여기 이 영화의 힘이 있다. 

 

 

 

오스카 쉰들러, 그리고 한 사람, 크리스토퍼 마일리


  한 사람의 영향력, 오스카 쉰들러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한 사람의 작품,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은 크리스토퍼 마일리의 잠자고 있던 양심을 일깨웠다.

 

 

 

 

 

 

 

 

 

 

 

Reference:

 

Beverly Beyette, “A Modern-Day Schindler Faces the Conseqquences”, Los Angeles Times, 19 August 1998, sec. E, p. 1: David Haldane, “Swiss Whistle-Blower to Attend Chapman”, Los Angeles Times, 19 November 1998, sec. B, p.5. 로버트 존스톤, 영화와 영성, 전의우 역(서울: IVP, 2003), 29-32.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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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딸 아이가 요즘 트와이스의 <yes or yes>를 듣는다. 요근래 뉴스에 트와이스의 이 곡이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넘겼다고 한다. 그래서 들어봤는데 잘 만들어진 자본주의 엔터테이먼트 패키지구나 싶었다! 아시아전체를 향해 대만인 쯔위도, 일본애도 영입하면서 종합선물셋트로 준비했나보다 싶다. 근데 요즘 방송에선 여자애들이 아니라 남자애들이 얼마나 환호하는지...남자애들이 인제 <오빠부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전세대의 남아선호사상의 결과물인가 그런생각을 해 보았다. 딸내미가 이렇게 질문한다.


“아빠, 내가 20살이 되면, 저 언니들 40살 되는거야?”


아이가 9살이니, 트와이스 멤버들의 나이는 40줄 안이겠구나 싶다. 영원한 젊음은 없다는 생각을 아이의 한 마디를 통해 또 느낀다. 


 

 


2

예전에 미국의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의 죽음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 젊은이의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 그는 그가 평소 좋아하는 포르쉐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도로에는 그를 찾는 팬들의 행렬이 자주 있다고 한다. 그가 나이들어 자연사했다면, 보여줄거 다 보여주고 살다가 죽었다면 그렇게 팬들이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1955년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비명횡사한 것은 얼마나 큰 비보인가! 그런데 행복한 죽음이란 있을까?





3

정미경의 소설 <내 아들의 연인>중에서 <너를 사랑해>에 보면, 음식점에 나온 메뉴에 대한 이야길 한다.



‘죽은 낙지, 죽어가는 낙지, 막 죽은 낙지, 죽고 싶은 낙지...’ 



작가는 <낙지>에 대한 상태를 설명하면서 거기에 감정을 이입해주고 있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상사인, 영감의 자산관리인인데 싱글인 된, 영감의 애인으로 자신의 연인인 Y를 추천한다. 두 사람은 8년 연애했지만 결혼 이야길 못 하고 있다. 순전히 경제적인 부담으로 결혼을 못한 것도 있다. Y는 시립대 강사이다. Y윤교수는 정직이 되기 위해 2억이 필요했다. 애인의  출세(?)에 도움을 주지 못한 주인공 나는 자신의 상사인 ‘영감’의 대리애인(?)행세의 에이전시가 되버린 셈이다. 그것은 결국 거스를 수 없는 탁류에 휘말리게 된 꼴이 된다. 애인을 위해 해 준다는 게 그게 말이 되느냐? 근데 나이 먹어가면서 세상살이는 우리 뜻 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지켜야 할 morality가 있지 않는가!




4

“7월은 지나갔어. 우린 꽤나 멀리 왔어. 돌아서면 그 순간 우린 둘 다 소금기둥이 되는거야. 봐. 이렇게 비가 끊임없는데. 소금기둥이 되어 녹아내릴 일만 남는거야. 지금은 돌아설 수가 없어. 돌아갈 곳은 다 무너져 버렸고, 그냥 앞만 보고 걸어야 되는거야.”(52p)





주인공 나와 윤교수Y는 돌아갈 수가 없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야기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져버린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변주하여 이젠 두 사람 다 소금기둥이 되어버려서 녹아내릴 일만 남았다고 한다. 



5

사랑하기에 뭐라도 해주고 싶어 영감과의 다리를 놓아준 그 일이 두 사람의 인생의 발목을 잡고야 말 것이다. 출세를 위해 영감과의 관계를 이어갈 Y, 그 가운데 자책하며 깊은 공황을 일으키는 주인공, 단편의 스토리의 마지막 장면이다...Y는 담담하고 꽤나 평온해보이는데, 주인공 나는 눈물을 흘리기만 한다. 




6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세속의 유혹,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의 손을 잡아버린 파우스트 같은 행색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유혹에 넘어가 심장을, 영혼을 빼앗겨버렸다. 그걸 정미경 작가는 <낙지>에 비유하는 듯 하다. 산낙지의 운명은 결국 죽음인데, 산 낙지, 죽은 낙지 구분하며 흥정을 매기고 결국 산낙지도 죽을 운명인데...정미경의 표현이 기가 막히다. 마치 두 사람의 이야길 해주는 듯.



 

 


 

7

헤르만 헷세의 <크눌프>를 읽고나면 헛헛해진다. 첫사랑 프란치스카가 라틴어학교를 다니는 크눌프에게 사랑고백을 받자 거절한다. 그 이유는 라틴어학교를 다니는 고상하고 지성적인 크눌프는 자신에겐 매력은 별로인 것이다. 그녀는 크눌프보다 연상이기도 하고 육체노동자의 애인이 되고싶어했다.  아마도 크눌프를 애인으로 보기보다는 이쁜 동생 정도로 바라보지 않았나 싶다. 크눌프는 첫사랑의 애인이 되고자 우등생의 라틴어학교를 포기한다. 막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카는 다른 노동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웃옷이 풀어헤쳐진 채...




8

크눌프의 이 트라우마와 상처는 일생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향자는 첫사랑, 프란치스카를 말년에 한번이라도 보고자했으나 그녀는 이미 죽었고 그의 삶의 난파선은 침몰하기 일보 직전이다. 어느 누구에게 구애받지도 않고 구속되지 않았던 리벌리스트이자 방랑자 크눌프...




9

크눌프는 첫사랑 프란치스카가 자신의 기다림을 헛되게 날리지만 않았어도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음도 지나가고, 모아둔 것도 없고, 가족도 없고, 늘 배회하며 방황했던 방랑자, 크눌프의 말년은 지독히 을씨년스럽다. 폐결핵의 치료과정도 거부한채 병원행을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한 크눌프는 이제 죽어가고 있다.




10

 후회와 절망과 회한과 허무가 가득한 크눌프와 신, 하나님과의 대화의 핵심은 “이제 그만 만족하도록 해라!”(140p)이다. 트라우마도, 상처도, 방황도, 방랑벽도, 지병도 다 크눌프의 존재의 책임인 것이다. 크눌프는 젊은 날이 즐거웠다. 하지만 늙어 병든 크눌프에겐 그것은 한낱 추억에 불과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난 다시 돌아갈래!!!”라고 아무리 외쳐도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정미경의 단편 이야기처럼, 소금기둥이 된 크눌프에겐 비만 내릴 일이 남은 것이다. 녹아내릴 일만 남은 것이다. 




11

<크눌프>의 이야기는 신과의 대화 부분이 ‘인간(크눌프)의 책임’에 대해 다룬다면, 이기호의 <목양면방화사건>에 나타난 마지막의 하나님의 독백은 ‘너무나 무책임한 신’의 모습으로 비쳐져 안 그래도 ‘신은 죽었다’고 하는 시대와 세대의 판에 하나님이란 존재는 더 정떨어진, 두번 다시 보기도 싫은 역겹고 찌질한 스토커 같은 뉘앙스를 풍겨버렸다. 

 

 

 


'내, 내 목소리가 뭐 어쨌다는 것이냐? 내 목소리는 원래 이러하거늘....말투가 뭐 어떻다고 그러느냐? 나는 3천년동안 계속 이 말투였느니라 . 말 좀 끊지 말고 계속 들어보아라....모른다! 나도 모른다! 왜 불이 났는지, 무엇이 쇼파를 불태웠는지, 어떻게 불길이 치솟았는지, 내가 어찌 아느냐? 네가 지금 나를 트집 잡으려 하는 것이냐?....에이씨, 진짜.....왜 또! 뭐! 뭐가 또 문제냐! 뭐가 상관이 없다는 게냐? 네가 사물의 상관있고 없음의 차이를 진정 아느냐?....에이씨, 진짜....뭐라고....? 뭐가 안 들린다고? 왜 내 말이 안 들린다고 하는 것이냐? 내 목소리가 얼마나 큰데.... 이래도  안 들리냐? 이래도....? 이래도....?'(이기호, 151-159p)

 

 

 

 

 

젠장, 이기호에겐 하나님은 짜증쟁이 중2같은 인성과 말투이고 방화사건의 원인도, 범인도 모르는 유한한 존재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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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신교 신학자, 카알 바르트Karl Barth를 좋아했다. 내 아디도 칼 바르트의 칼Karl이다. 칼 바르트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불리운다. 신학노선을 따지자면 그는 보수주의에서 보면 다소 지나치고, 진보주의에서 보면 다소 밋밋한 노선인 “신정통주의”노선에 서 있다. 난 그의 신학노선을 모두 지지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다소 리버럴liberal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가! 단 한가지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신학자',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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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대의 종교와 신학이 더 이상 신의 존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미가 없다면서 신학자들조차도 신Godless, godless의 자유주의 신학theology놀이를 하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사람’이기 때문이다(신학에 ‘神’이 빠지면 학문의 존재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교단에 따라 신학노선이 달라 Karl Barth에 대해 대단한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나의 노선은 그렇지는 않다. 단지 두개의 세계대전의 참상과 비극으로 인해 하나님 없는 듯한 세계처럼 보이는 지구촌에, 그 신이라는 존재가 그토록 인간계에 침묵하며 방관할 수 있냐면서 신의 부재를 주구장창 외칠 때였다. 그 때....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어필한 신학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좋아한다. 칼 마르크스, 칼 융, 칼 뵘, 칼 포퍼 등도 있는데 내게 칼은 칼 바르트의 칼인 셈이다!


 

 

-칼 바르트의 폭탄은 바로 <로마서 강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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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푸코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은데 그가 동성연애자였다가 말년에 에이즈로 고통당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최애하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하루전날 자신이 에이즈환자란 사실을 폭로한 사건, 그리고 그는 1991년에 죽었다. 누구에게 핑계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인생의 책임이다. 크눌프의 책임이다. Y의 연인의 책임이다. 푸코, 머큐리...그들의 업적과 공적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존 치버도 동성연애의 기운이 있고, 영국의 웸Wham의 조지 마이클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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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사실 하나, 사람이 죽을 때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것을 누가 선택하고 싶을까? 나도 싫다. 치매가운데 구차하게 연명하는 말년은 정말 두렵기까지 하다. 나도 잘 죽기를 기도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서 출발한 에이즈는 예외인 듯 하다. 모든 삶과 죽음은 인간의 책임이 다분하게 배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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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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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시작되면 언젠가 죽음이 반드시 온다. 출생이 복되듯 죽음도 복되어야 한다. 인생의 구조가 그런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출발하면 끝이란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내가 붙잡고 있으면 역사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셈이다. 가야 오고, 또 가야 온다. 당대가 지나가면 후대가 오기 위해 당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찌그러져야 한다. 그게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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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귀중한 죽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잠시 생각해 본다.

삶이 오면, 죽음도 오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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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17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님 알고 보니 그 칼이셨군요. 많고 많은 칼 중에 유독 제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바로 그 칼 ㅎㅎ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7 18:55   좋아요 0 | URL
그 칼입니다 ㅋㅋ

stella.K 2018-12-17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짐작은 했는데 벨루치는 뭔지 모르겠어요.
바르트의 뭐 로마어 버전인가요?ㅋ

맞아요. 사람이 몇 살을 살던 죽을 때 잘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7 19:35   좋아요 1 | URL
벨루치는 세속적인 이름에서 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그건 담에 페이퍼에서 공개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잼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18-12-17 19:46   좋아요 1 | URL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좋아하시다니...ㅠ
다음 페이퍼가 궁금하군요. 내일 공개하실 거죠?ㅋㅋ

카알벨루치 2018-12-17 19:52   좋아요 1 | URL
낼 공개해야하는 압박 메카니즘 들어왔슴돠 아~말해놓고 안할라 했더니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