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영국소설은 개관하면 주로 '돈과 성(性)'에 대한 가정 멜로 드라마였으며 현대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은 영국의 계층 및 젠더(Gender)에 대한 불안과 이 둘 사이의 연결점들을 다룬 온갖 사항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와는 달리 모험과 여행을 다루는 전통도 있는바, 이는 영국의 해양제국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전통 또한 현대소설에 잘 드러나 있는데, 이는 초기의 모험적 여행 이야기를 따르면서 국내 생활에 대한 비평을 제공해 준다. 이 커다란 세 주제-돈과 계층, 성관계와 gender, 낯선 문명의 입장에서 본 서구 문명-가 영국 Modernism의 그 어느 소설에서보다 D. H. Lawrence의 소설에서 가장 강력하게, 문제 의식을 조성하며 교차되고 있다. Lawrence는 James Joyce가 지녔던 문학적 기교와 적절한 어휘에 대한 면밀한 관심 같은 것은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E. M. Forster 식의 은근한 humanism을 보일 인내심도 없었다. Lawrence는 Marcel Proust, Virginia Woolf와 동료 modernist들이 추구한 의식의 내향적인 묘사를 주로 유럽이 지닌 죽음에의 염원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이렇게 깊이 소외된 Lawrence의 비전이 너무 명백하고 천박한 자기 도취적이라고 해도 그 어느 작가보다 당대의 정서적, 지적 삶을 직설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겠다.

 

  더욱이 Lawrence의 작품은 하나의 큰 모순덩어리로서 거의가 그의 가정생활에 보란 듯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모순은 당대의 보다 큰 테두리인 문화적인 dilemma에서 분리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다시 말하자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의 문학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시대의 객관적인 상황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Lawrence는 "내 생각에 작가는 자신의 책-진정한 책이라면-속에 모든 것을 쏟아놓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실제 창작에서 이 말과 거의 어긋나지 않았다. Lawrence의 전기작가인 Richard Aldington의 적절한 표현대로 "거대한 미화된 자서전"인 그의 소설은 주변의 인물과 사건을 닥치는 대로 이용했는데, 그 취급의 태도가 Joyce나 Proust까지 포함해서 20세기의 모든 modernity의 병폐를 치유할 방책이 들어 있다는 확신-예언적이고 Freud 식이라는 말을 듣는-을 견지했다.

이런 측면에서 누군가 Lawrence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copy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Eliseo Vivas의 지적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Lawrence가 자신의 체험을 내재화한 후 이 Sons and Lovers를 씀으로서 자서전적인 체험을 넘어선 새로운 의미와 형태를 부여해 주었음을 밝히고 있다.

No one will of course want deny that many literary artists exploit their own experience as matter of for the composition of their works. But it is too often forgotten that a literary work is not a picture taken by a photographic camera and that to the degree that the artist is creative, what he has taken from experience is thrown into the furnace of his mind, where often, at depths far beyond the reach of consciousness, it loses its identity and gains new form, new significance, and a capacity for resonance that is altogether lacking before the act of composition. Sons and Lovers is a novel that should serve as a good test of this claim. 

다시 말해서 Lawrence의 경우만큼 그의 개성이 강력하게 그의 문학작품 속에 투영된 작가도 드물 것이다. Lawrence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Sons and Lovers도 이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Lawrence의 초기 대표작이자 가장 널리 읽혀지고 논의되어 온 소설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인간관계의 불행과 파탄을 통해 현실이 가하는 심각한 구속의 양상을 보여주는 한편 주인공 Paul이 의식의 발전을 거치면서 그런 속박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탐색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이 소설의 백미이자 가장 절실한 감동을 주는 마지막 부분에서 Paul이 어둠의 세계로 침몰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도시의 불빛으로 돌아서는 반전도 예술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성급하고 서툰 결말처리가 아니라 주인공 Paul의 성숙이라는 작품의 내적 논리를 따른 결말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Sons and Lovers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 할 수 있겠다.

 

II. 아들과 연인

 

2.1아버지와 어머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또한 각자의 개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때론 대립되는 성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결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우리는 갈등을 겪는다. 그러기에 인간이 고고한 자아(the single proud self)를 손상시키지 않고 타인과 결합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Lawrence도 일생을 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투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양친의 부부생활이 원만치 못하고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경험을 토대로 부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문제야말로 Sons and Lovers에서 그가 표출시키고자 한 중요한 주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Paul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Morel부부의 결합은 애초부터 이 둘의 관계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열정의 힘으로 가능했고 두 사람 인생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의의를 지녔다. 청교도 집안 출신에다 아버지의 엄격한 도덕심을 물려받은 Gertrude는 자신의 삶이 "사고와 정신 탓으로 차단되고 옥죄여 백열광같이 된(baffled and gripped into incandescence by thought and spirit)" 데 비해 Walter의 유연하고 생기 넘치는 몸에서는 "마치 초의 불꽃같이 삶의 감각적인 불꽃이 흘러 넘치는(sensuous flame of life, that flowed from off his flesh like the flame from a candle)" 놀라운 발견을 한다.

 

  Dorothy Van Ghent는 Morel을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자연인으로 보고 Gertrude는 이를 거부하는 이상화한 원리에 사는 이성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대조되는 두 사람의 신분계층이 어쩌면 두 사람을 더 끌리게 한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결혼의 현실에 부딪혔을 때는 그들을 처음에 끌렸던 그 모든 매력들이 사라지게 되고 만다. 결국 이들은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공감에 도달하지 못한다. Walter가 밀린 빚을 갚지 않고 어머니의 집을 자기들 소유라고 거짓말한 일이 계기가 되어 부부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Gertrude에게 그의 행동은 참을 수 없는 느슨한 도덕관념과 부정직함을 뜻하지만 돈 관리나 소유문제를 신경 쓰는 일 없이 지내온 Walter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 그녀가 Walter로 하여금 절대 금주하도록 만들고자 한 것 역시 참다운 이해를 결여한 무리한 시도이다.

 

어느 날 Walter가 탄광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교회 목사와 부인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한다.

 

"A man gets that caked up wi'th' dust, you know, that clogged up, down a mine, he needs a drink when he comes home."
"I am sure he does," said the clergyman.. . . . . .
Whereupon he laid his arms, black with coal dust, on the white cloth.
"Goodness man, it's a clean cloth!" exclaimed Mrs. Morel involuntarily. It was the only clean cloth.
"Am I to have my dinner in the yard, like a dog?" he shouted.
"There was no question of the yard," replied his wife coldly.
He kept his arms on the table cloth.
"When a man's been drivin' a pick into'ard rock all day, Mr. Heaton, his arms is that tired, 'e doesn't know what to do with'em,"
"I can understand it,"said the clergyman.
The miner was a sort of strange beast to him. (pp.50-51)

 

  석탄먼지가 엉겨 붙어 시꺼먼 Morel의 팔이 아내의 새하얗고 깨끗한 식탁보 위에서 뚜렷이 부각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장면은 그 갈등이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Heaton 목사까지 아울러 Walter Morel이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계급적 벽이 이들을 갈라놓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Mr. Heaton은 Morel의 말에 이해한다고 대꾸하지만 곧바로 화자는 그 이해라는 것이 제스쳐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한다. 결국 목사에게 광부 Morel은 "일종의 낯선 야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 comment의 효과와 더불어 Lawrence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Morel의 모습을 통해 참된 공감이 결핍된 상황에서 그 스스로 겪는 모멸과 자격지심을 드러내 보인다. 작품 속에서 Walter Morel은 자기 스스로, 더 나아가서 주위의 가족들에 의해 심각한 소외현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는 그들 삶이 처한 물질적 빈곤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경제적인 궁핍함임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Morel은 광부들만 가지는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과 "친밀한 더불어 살기(intimate togetherness)"의 시골의 지역적인 특색을 빙자한 친구들과의 일과 후의 술자리는 Mrs. Morel에겐 하나의 상처이고, 스트레스이다. 생계의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아내에게 따뜻한 보살핌이 결여된 Walter의 행동은 '가장'으로서 아주 무책임한 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동료들의 부추김으로 아내에게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것도 그 한 예로서 두 사람의 갈등에 성 차별적 사회의 편견이 끼여들어 더욱 그 갈등을 심화시키는 양상을 잘 보여준다.

 Walter에겐 부부간의 이 심한 간격을 메울만한 지혜도, 능력도, 여유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폭음으로 생계를 쪼들리게 함으로써 아내에게 복수하는 Morel은 이미 남성다움이나 생명력과는 거리가 먼 졸렬한 남편이다. 여기에서 역시 "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를 야수처럼 거칠게 바꾼" 동료들로 이뤄진 이곳 광부 공동체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이처럼 Morel부부의 관계 파탄은 사실상 그들 삶의 기반인 탄광촌 전체의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밥벌이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아내와 자식들이 함께 하는 가정 생활에서 밀려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였다는 Lawrence의 언급을 생각해보더라도 한편으로 모렐 가정의 불행이 그 지역 광부 계급의 전형적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출신계급의 차이라는 그들 부부의 예외성은 이러한 전형성을 더 풍부하게 하는 한가지 요소로서 포괄될 수 있겠다.

 

술에 취해 들어온 Morel이 아내에게 서랍을 던져 이마가 찢어지고 거기서 흐른 핏방울이 어린 Paul의 머리칼로 스며드는 장면은 Morel이 William의 금발을 짧게 깎은 후 Morel부인의 분노가 폭발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식들과 어머니가 하나의 영혼으로 묶이고 Morel이 떨어져나가는 과정에서 강렬한 시적 이미지를 남기는 사건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격한 언쟁과 행동을 자세히 그려 보이는 대신 작가는 어린 Paul의 관점에서 언덕 아래 광막한 어둠을 배경으로 집 앞 물푸레나무가 바람에 시끄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가정 불화의 고통(the anguish of the home discord)"과 같았다고 쓴다. 암흑과 바람에 흐느끼는 나무는 실제로 부부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진 와중에 Morel가족의 집을 에워싼 풍경이자 동시에 그들의 불행을 생생하게 전하는 상징(symbol)이 된다.

 

He might hit their mother again. There was a feeling of horror, a kind of bristling in the darkness, and a sense of blood. They lay with their hearts in the grip of an intense anguish. The wind came through the tree fiercer and fiercer. All the cords of the great harp hummed, whistled, and shrieked. (p.77)

  Julian Moynahan은 "술 취한 뒤의 Walter Morel의 장광설은 부인의 세련미와 지적 우월성에 대한 표현 할 수 없는 그의 찬미의 마음을 감추어 준다(Morel's drunken tirades hide an inarticulate admiration for her real refinement and intellectual superiority)"고 하였다.Walter는 솔직한 광부이다. 솔직한 인간이다. 그는 평소 부인에 대한 모든 맘을 침묵하고 있다가 술이 취했을 때는 타인들처럼 감정적이 되어서 억눌려진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푸레나무 소리가 Morel에겐 자장가 같은 음악인 반면 아이들에게 그것은 어머니를 때릴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시끄러운 폭언이나 식탁에 주먹질하는 소리와 동일시되기에 거의 "악마의 소음(demoniacal noise)"로 느껴진다. 탄광에서 죽게 해달라("Let him be killed at pit." p.85)고 기도할 정도로 심화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반대로 어머니에 대한 Paul의 강렬한 애착은 이처럼 "심장을 누르는 격렬한 고통"에서 나온 만큼 뿌리깊은 것이다. 나무소리와 함께 어둠은 가정의 불화와 함께 그들 삶의 갇힌 전망과 위협적인 삶의 여건을 상징하는 배경이다. 인적 드문 거리에서 불과 가로등 하나 뒤에 광대한 어둠을 뒤로하고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장면에서도 역시 어둠은 이런 의미의 상징성을 띤다.

 

 Lawrence의 양친과 같이 Sons and Lovers의 Walter Morel과 Gertrude Coppard의 결혼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즉 상반된 성격-"culture 대 half-culture", "mental consciousness 대 primitive animalism"등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2.2어머니와 아들들

 

 Walter에게 기대치가 무너진 Mrs. Morel은 애정이 아들에게 옮겨가게 된다. William은 'a man, young, full of vigour, making the world glow again for her.(p.63) '한 존재였으며 뿐만 아니라 '...someone to turn to if Morel failed.(p.80)'이었다. 이처럼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광산에 보낼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반대했고 보다 더 향상된 생활을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Morel부인은 William에 대한 감정의 이면에는 그녀의 이상을 실현 시켜주는 아들로서의 감정 이상의 것이 잠재해 있었다. 실제로 Morel부인은 항상 아들이 성공하여 "common people"로부터의 탈피를 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Paul의 원형(archetype)이라 할 수 있는 장남 William이 London으로 120파운드나 되는 급료를 받고 막상 취직하러 갈 때에는 기뻐하지 않고 계속 자기 곁에 있기를 바랬다. 이것을 모성애로만 단지 치부하기에는 그 강도가 너무나 강하다. 일종의 지나친 집착이다.

 

It never occurred to him that she might be more hurt at his going away than glad of his success. Indeed, as the days drew never for his departure, her heart began to hoped in him so much. Almost she lived by him. She liked to do things for him....(pp. 72-73)

 

  William이 London을 떠날 무렵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을 빌면서 다리미로 아들의 칼라를 윤이 반짝반짝 할 때까지 다리고 손질해 주었다. 이것은 아들을 "polite society"에 내보내서 중산 계급으로 키우려는 Morel부인의 꿈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아들에게 칼라-흰 칼라는 사회적 출세를 상징한다-를 걸어준 사람은 어머니이지만 칼라로 과시되는 생활은 아들 William에게는 부자연스럽고 답답했다. 그것이 주는 상처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마찬가지였다. William은 어머니가 다려주었던 그 칼라에 스침으로 일어난 단독(丹毒)과 폐렴으로 죽는다.

 

  William의 죽음은 Mrs. Morel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부인은 Walter보다도, 더 나아가 차남인 Paul보다도 장남인 William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이다. William의 죽음은 어머니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고 이로 인해 기력이 쇠해졌을 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조차 상실한 허탈한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 Pauldprps 이것이 어지간한 고통이 아니었다. 결국 심약한 Paul조차도 자리에 눕게 되자 그 때서야 어머니는 애정을 죽은 William에서부터 살아있는 Paul에게로 옮겨지게 된다.

 

"I should have watched the living, not the dead."...Mrs. Morel's life now rooted itself in Paul(p.159).

  Paul은 어머니의 지나친 애정과 기대 속에서 자신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모친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전혀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조그마한 집을 마련하여 어머니와 단 둘이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장래 포부일 정도로 Paul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변형시키고 있다.

His ambition, as far as this world's gear went, was quietly to earn his thirty or thirty-five shillings a week somewhere near home, and then, when his father died, have a cottage with his mother, paint and go out as he liked, and live happy ever after. That was his programme as far as doing thing went. But he was proud within himself, measuring people against himself, and placing them, inexorably. And he thought the perhaps he might also make a painter, the real thing. But that he left alone(p. 113).

이러한 모자관계는 아버지인 Walter가 탄광에서의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어머니에게 "I am the man in the house"(p.112) 라고 말하는 Paul의 말에서 나타나며 Oedipus의 가장 애욕적인 면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어머니 또한 Paul과 단둘이 있을 때는 마치 그들이 부부 사이인 것처럼 자신의 심적인 고통과 슬픔을 아들과 함께 나눈다. Paul은 세월이 흐르면서 정신적인 성장을 해가지만 여전히 어머니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애정적 결합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2.3 Paul과 연인들

 

  우리 인간이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자아가 형성된다고 볼 때 어머니와의 사랑은 인간 관계의 필수적인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사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머니가 최초의 애정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본능적이고도 무의식적 행동이다. 그러나 Morel부인은 성인이 된 William과 Paul에게 조차도 정상적인 모성애 그 이상의 것을 아들들에게 쏟으며 성인이 된 그들의 실체를 부정하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왜곡되고 굴절된 애정이야말로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Morel부인은 간과하고 있다. Morel부인의 왜곡된 애정은 Arthur를 제외한 두 아들, William과 Paul의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씨앗이 되어서 그들의 심적인 뿌리가 어머니에게로 돌려지고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줄기와 잎만을 주게 되는 병적(病的)인 구도를 띄게 된다.

그 첫째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Mr. Morel과 Mrs. Morel의 관계이며, 둘째가 장남 William과 Lily의 관계이며, 셋째가 Paul과 Miriam의 관계이며, 넷째가 Paul과 Clara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Mrs. Morel을 한 점으로 하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에서 그들 남녀관계의 심리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William은 다른 모든 점에서는 어머니에게 만족감을 주었지만 여자 관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 속에서 성장하면서 많은 애착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그가 London에서 Lily와 사랑을 할 때 자기는 어머니에게 매여져 있음을 깨달았으며, 어머니를 다른 여자보다 우월하고 압도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그는 Lily를 맞아 혼자 돌아와서 애인에 관하여 어머니와 끝없이 의논하고 어머니를 좋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고백한다.

 

"You know, mother, when I'm away from her I don't care for a bit. I shouldn't care if I never saw her again. But, then, when I'm with her in the evening I am awfully fond of her."
"It's queer sort of love to marry on", said Mrs. Morel, "If she holds you no more than that!"(pp. 149-150)

이것은 William이 Lily를 아내로 맞이하느냐 혹은 헤어져야 하느냐를 판단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공유하고 있는 생활을 의식한 나머지 내적 분열을 일으키고 장래의 우유부단한 생활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William이 그 자신의 자아는 인생을 향연을 추구하지만 한편 어머니에 의해서 형성되어진 자아는 그의 자유로운 생활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싸워야 할 대상은 "Oedipus Complex"적인 어머니가 아니고 William의 생활을 전체를 소유하며 통제할려는 지배자로서의 상징인 어머니이다.

 

2.3.1 Paul과 Miriam

 

  Paul은 15세 때 Leivers 가족이 사는 Willey 농원에 가서 Miriam이라는 수줍은 처녀를 만나 정신적인 영혼의 교제를 한다. 두 사람 모두 자기들의 우정은 platonic한 면을 넘어서지 않고 있고 그들의 사랑이 추상적인 고차원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Paul이 성적인 충동을 제하려고 애쓴 것이 아니고 그녀와의 육체적인 사랑을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수성을 절대로 주장하는 청교도의 전통이고, 그들의 어머니들이 종교적이어서 집안 일조차 종교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Miriam은 사랑을 종교적이고 아주 순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Paul의 모든 것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그녀의 태도는 "to draw all of him into her"(p.239) 라고 말한 데서도 나타나 있다.

 

  Paul과 Miriam의 사랑은 너무 느리게 너무 무의식적인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그가 이성(異性)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은 Morel부인이었다. Morel부인은 Paul이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여 괴로워하고 그가 Miriam을 만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은 바로 Paul이 빵 굽는 것에 주의를 차리지 못해서 빵을 태우게 된 것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어머니는 "Because you were engrossed with Miriam"(p.259) 이라고 지나치게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Morel부인의 일종의 질투이며, 자기편애이다.

 

  이런 상황에서 Paul은 이성을 사랑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son=lover로서의 애정 사이에서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어머니의 "love-bondage"의 힘이 너무나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Paul은 Miriam과의 사랑을 부정하려고 자주 그들의 관계가 친구관계라는 것을 주장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그녀와의 교제가 어머니의 마음을 괴롭게 할 뿐 진정한 사랑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 can only give friendship-it's all I'm capable of -it's a flaw in my make up. The thing overbalances to one side-I hate a topping balance. Let us have done."(p.271)

  여기에다 덧붙이자면 Paul이 Miriam에게서 물러난 또 하나의 이유는 Miriam의 정신 편향적인 사랑abstract love때문이었다. Paul에겐 사랑이라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동반되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교제가 계속되면서도 늘 Miriam은 그것에 대해 마치 탈세속적인 존재인 수녀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madonna적인 성역(聖域)과 인간미에 Paul의 감각적인 정열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결국 Paul은 Miriam과 성애를 나누지만 "only a ritual slaughter"에 불과하므로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Paul은 Miriam에게 "I don't want another mother"(p.361) 라고 외치면서 헤어지자고 한다.

 

2.3.2 Paul과 Clara

 

  Paul이 Miriam과 헤어질 무렵 Clara를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이후로 별거생활을 하는 여인이었다. Lawrence는 정신성을 대변하는 Miriam을 등장시킨 후 그녀와의 관계를 접고, 육체성을 대변하는 Clara를 등장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Miriam의 모델이 된 Lawrence의 한 때 연인이었던 Jessie Chambers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The Clara of second half of the story was a clever adaption of elements from three people, and her creation arose as a complement to Lawrence's mood of failure and defeat. The events related had no foundation in fact, whatever their psychological significance. Having utterly failed to come to grips with his problem in real life, he created the imaginary Clara as a compensation.

 

  어쨌든 Miriam을 떠나 Clara와의 교제로 들어선 Paul은 한 여성의 속박에서 풀려나 또 다른 여성의 속박에 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Clara가 별거중인 남편이 있는 부인이라는 점만을 제외하고는 Miriam과는 대조적으로 어머니 Morel부인에게 그리 나쁘게 비치진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Morel부인이 Clara는 Miriam처럼 Paul에 대하여 정신(영혼)적인 지배력을 빼앗기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모른다. Clara는 Paul보다 연상이고 육감적이어서 그녀와의 접촉은 Miriam과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맛볼 수 있게 한다.

 

  Paul은 Clara의 상처 난 자긍심을 관계를 맺음(sex)를 통해서 치유해간다. 또한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기계적인 성교만이 존재할 뿐 서로의 영혼을 얼싸안는 그러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Clara로 대변된 그녀의 육체성, 그것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Paul 자신이 말한 것처럼 열정의 의의는 "타인과의 진정한 교류"이지만 어머니에게 털어놓듯이 Paul은 Clara가 비판하거나 말할 때 거의 듣지 않으며 작가가 지적하듯 Clara 또한 Paul의 진정한 자아를 알지 못하며,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Paul은 어머니 곁을 떠나 Clara와의 육체적이며 관능적인 세계를 몰입한 채 이 같은 사실을 어머니에게 숨기고 굳게 맞물려 있는 모자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고민하지만 그것은 모친 때문에 자기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애인들은 생각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친은 아직 생존해 있고 그녀의 질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몹시 고민하고 불안에 빠진다. 애인들이 모두 자기를 사랑하고 결혼해 주기를 원하지만 모자간의 사랑으로 인해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Paul은 어머니에게 왜 자기는 Clara에게 참된 자아를 줄 수 없느냐고 불평하자 그녀는 이유를 "You haven't met the right woman."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Paul은 "I shall never meet the right women while you live."(p.427) 이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Oedipus Complex가 내재된 Paul과 Clara의 관계에 또 다른 문제는 Clara의 spirituality가 너무나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Paul은 Clara를 통해 sensuality의 만족은 얻었지만 spirituality의 결핍으로 인해 그녀의 품에 있으면서도 고립감을 느낀다.

'What is she, after all?' he said to himself. 'Here's the seacoast morning, big and permanent and beautiful; there is she, fretting, always unsatisfied, and temporary as a bubble of foam. What does she mean to me, after all? She represents something, like a bubble of foam represents the sea. But what is she? It's not her I care for'(pp.384-385)

Clara는 항상 Paul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Paul에게도 Clara에 대한 불만은 내재되어 있기에 둘의 관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Clara는 Paul의 불안한 그 관계를 포기하고 전 남편인 Baxter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Ⅲ. Paul의 Dilemma에 내재된 희망

 

  Paul의 두 연인관계는 모두 좌절되고 말았다. Miriam에게선 육체적인 면의 결핍과 Clara에게선 정신적인 면의 결핍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들이자 연인'이었던 어머니의 애정의 뿌리 때문이었다. Paul의 진정한 awareness는 Morel부인의 부재(不在)를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재생되어질 것을 독자들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Paul의 연인이자 어머니였던 Morel부인의 암으로 인한 죽음은 Paul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극심하게 보여준다.

 

She would wake up. She would lift her eyelids. She was with him still. He bent and kissed her passionately. But there was coldness against his mouth. He bit his lip with horror.
Looking at her, he felt he could never, never let her go. No! he stroked the hair from her temples. That, too, was cold. He saw the mouth so dumb and wondering at the hurt. Then crouched on the floor, whispering to her: 'mother, mother!'(p.427)

 

  어쨌든 어머니가 죽은 후 Paul의 생활은 그를 엄습해 오는 어둠과 정신적 쇠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 준 사람은 어머니였으며 더욱 절실히 그녀를 열망한다.

 

Paul felt crumpled up and lonely. His mother had really supported his life. He had loved her; in fact, faced the world together. Now she was gone, and for ever behind him was the gap in life, the tear in the veil, through which his life seemed to drift slowly, as if he were drawn towards death.(p. 435)

그러나 그는 이제 자기 혼자서 생을 직면해야 했다. 사실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He did not want to die; he would not give in. But he was not afraid of death. If nobody would help, he would go on one.(p. 436)
She was the only thing that held him up, himself, amid all this. And she was gone, intermingled herself. He wanted her to touch him, have him alongside with her.

But no, he would not give in. Turning sharply, he walked towards the city's gold phosphorescence. His first were shut, his mouth set fast. He would not take that direction, to the darkness, to follow her. He walked towards the faintly humming, glowing town, quickly.(p. 448)

 

  작품의 마지막 장면인 위 대목에서 Paul은 Nottingham 밖의 들에 홀로 서서 어머니를 따라 무덤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몸을 돌린다. 즉 Paul은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아 성취가 가능한 "the city's gold phosphorescence"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어머니의 죽음은 아들이자 연인으로서의 Paul의 죽음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그녀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예속되었던 Paul이 예술가적 인간으로 해방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머니의 아들인 Paul의 재생이기도 한 것이다. 아들의 자아를 지나치게 구속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자아 해방을 위하여 궁극적으로 없어도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아들과 연인'이라는 굴레는 Paul에게 있어 하나의 dilemma이다. 그러나 Paul은 그 dilemma속에서 한 동안 방황하며 주춤하지만 self-awareness를 찾는 방향을 보여주는 소설의 말미는 dilemma 안의 희망인 것이다. Dilemma에 내재된 희망을 찾아 나서는 Paul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Ⅳ. 결 론

  'Sons and Lovers'는 가장 전통적인 연대기적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 말했듯이 Lawrence의 방법은 순진한 자서전적 소설가가 그의 소설의 소재가 개인적인 회상의 성격이 짙다는 것을 별로 감추려고 하지 않으면서 시도한 그러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Sons and Lovers가 단지 한 광부의 가정의 습관과 생활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가지의 관념(idea)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된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관념이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일어나는 유기적인 불화이며, 그것은 처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애정의 냉각에서 나타나고, 다음에는 어머니가 아들들을 남편 대신으로 삼으려는 시도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들이 자연스러운 성인이 되기 위한 투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데서 나타난다.

 

 Lawrence가 이 관념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그의 소설의 인물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스러운 삶의 존재 여건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인간이 자연의 다른 생물들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리듬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 대한 거역 행위는 모든 사람들의 완전하고도 종국적인 개성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소유하려 하고, 또 다시 아들들을 소유하려 하고, Miriam이 Paul을 소유하려고 하듯이 다른 사람들을 소유하려는 뒤틀려진 욕망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Lawrence는 이러한 삶에 대한 반역 행위가 현대인의 질병이라고 보았고 이 질병은 성관계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도 나타나 있으며, 인간을 개인으로부터 경제적 소유물이나 군사적 단위나 이데올로기의 자동 인형으로 변형시켰다고 보았다.

 

  Lawrence의 세계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든 서로 구별하여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독립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개성(otherness)"이 인정되는 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에 창조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이나 사회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든지, 자연을 인간이 표현하기 위한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경우, 아니면 사람이 타인들을 사적인 소유물로 만들려고 할 경우에는 인간은 자신의 자아를 파괴하고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Sons and Lovers'에서는 소유욕의 충동이 삶과 사랑의 인간관계를 왜곡시키고 혼란시키고 있다. 그러한 소유욕은 각 개인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삶과 사랑의 기초가 되는 것은 원초적인 독립성(otherness; 개별성)에 있다고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또한 더 나아가 Lawrence는 그 자신의 개성이나 그의 상대자의 개성이 아니라 존재(being)자체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Stephen Spender는 Lawrence를 가리켜 "가장 희망에 찬 작가"라고 불렀다.

그는 암흑의 신들은 불가피한 신비의 상징들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감각이 그 감각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물체들의 독립성을 깨닫게 되고, 그리고 한 개인과 그 개인의 외부에 있는 힘 사이의 연관성을 알게 되며, 이 힘이 그의 내면에 새로운 정신 상태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신비한 시점을 의미한다. Lawrence는 가장 희망에 찬 현대 작가이다. 그 이유는 그가 인간의 한계성 너머에 있는 인간 이외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이러한 인간 이외의 세계를 인간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Lawrence의 이러한 작품세계는 세인들이 말하듯 이른바, '생명력', '원시성'이라고 일컫는데 과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이 평생토록 자신의 지병인 폐병과 끈질기게 싸우면서 '불타는 창작열'로 작품을 썼다는 그의 삶의 흔적이 그의 작품을 입증해 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의 Sons and Lovers는 그의 정신사의 투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파헤쳐 가면서 온전한 독립성을 만들어 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작(大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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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5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것은 그야말로 진짜 ‘논문‘인가요?? 엄청나다.

카알벨루치 2018-11-06 00:42   좋아요 0 | URL
글쓰는게 힘들어서 이걸로 퉁칠려고요 요즘 글이 잘 안 써지네요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고 이거 머하는건지 ㅜㅜ

얄라알라북사랑 2018-11-06 00:50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생각하며 읽었어요.
최소 한 주 이상을 투자해야 쓸 수 있는 소논문같아요....

syo 2018-11-06 01:02   좋아요 1 | URL
뭔놈의 ‘퉁‘을 이런 어마무시한 글로 치시나요..... 클라스가 장난 아니셔요.

카알벨루치 2018-11-06 01:10   좋아요 0 | URL
퉁친다는 말은 지금 글을 못 적으니 옛날 쓴 걸로 넘어가자는 의미ㅋㅋ 알라알라님 이거 졸업논문입니다 아련한 추억이 묻어난 논문입니다 다시 이렇게 쓸래야 쓸수도 없는 그때의 페이퍼입니다 그땐 왜 로렌스에 꽂혔는지 ....^^모두 감사합니다 ~굿잠하세요!

북프리쿠키 2018-11-06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숨좀 고르고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당ㅎㅎ

카알벨루치 2018-11-06 09:01   좋아요 1 | URL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요^^ㅎㅎ

2018-11-0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07 12:21   좋아요 1 | URL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에 들어가서 통사론 시간에 영어에 수학이 있는걸 보고 충격받은건 제 인생 최고의 충격입니다 학문은 다 통하는구나 느꼈죠!

레삭매냐 2018-11-07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는 ...

진짜 수준 있는 논문이었네요 :>

카알벨루치 2018-11-07 14:00   좋아요 0 | URL
전공하면 다들 마지막엔 하나씩 쓰는 짜집기 논문입니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
 

1권은 너무 재미나게 읽어서 2권도 후다닥 읽어버릴 줄 알았는데 약간의 포즈pause가 발생하는 듯 하다! 2권으로 넘어가는 동안에 중간에 두 권의 책을 읽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부엔디아 집안의 기상천외하면서도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무슨 마법에 빠진듯한 느낌이다 천관명의 <고래>의 확장판과 같은 느낌, 거대한 서사! 마술적 사실주의라는데 난 그건 모르겠고, 김겨울의 책 읽다가 쇠불도 당긴김에 빼라고 많이 추천하길래 읽어더랬는데 진도가 좀 잘 나가길 바라~

나도 마르케스를 읽고 있다는...




<백년의 고독>을 읽는 와중에 읽은 책:

<독서의 기쁨>과 <내 아들의 연인>

김겨울의 <독서의 기쁨>이 책은 무수한 작가를 추천해준다 그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 뭔가 좀 끄적였음 하는데 시간되면 적고 싶다...


정미경의 <내 아들의 연인>은 내가 왜 이토록 좋은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나 싶을정도로 좋다 단편집인데 문체나 문장이나 내용이 하나같이 다 별5개를 주고 싶다 한번 더 리뷰를 구체적으로 했음 좋겠다


공교롭게도 어제 내가 발끈한 김겨울, 그리고 전은주 두 작가가 동시에 추천한 작가가 바로 “정미경”작가이다! ‘김애란’보다 더 고급지다고 해야 할까? 김애란의 <비행운>의 슬픔과 고통은 ‘과다노출’이라면, 정미경은 ‘은근노출’(?)인데 굉장한 여운이 있다 좋다...순전히 내 생각이다 <비행운>도 적을게 있을텐데...오늘은 요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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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11-03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마르케스를 읽고 있다는....ㅋㅋㅋ
전 조르주 바타유도 읽고 있다는...의 그것과 흡사하네요..^^

카알벨루치 2018-11-03 09:19   좋아요 1 | URL
또 제 가슴에 🔥 을 지르고 가십니다 ㅜㅜ

페크(pek0501) 2018-11-03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년의 고독>을 오래전 완독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개인차가 있는 책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8-11-07 17:00   좋아요 0 | URL
읽으면 읽을수록 콩가루집안의 비릿함이 느껴지는데 그 무게감이 굉장합니다~

공쟝쟝 2018-11-03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근 노출이라니... 정미경...!! 읽고 싶네요. 이렇게 다음달 장바구니는 10만원이 되고..

카알벨루치 2018-11-03 22:07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너무 좋아요 문체 문장 단어 스토리...’구멍 깊은 귀’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에 제일 첫 이야기 '너무 한낮의 연애'에 양희와 필용의 대화이다.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사랑한다며?"

",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

"사랑하는 건 맞쟎아. 그렇잖아."

",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22p)

 

 

"오늘은 어때?"

......

"그렇죠. 오늘도."

"오늘도 그렇다고?"

"사랑하죠. 오늘도."(25p)

 

 

굉장히 사실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사랑한다. 젊은 때는 그렇지 않은가! 천년만년 영원히 사랑하고 결혼해서 애기 낳고 그렇게 그렇게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랑을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이별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도 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지니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뭐 이런 대단한 표현을 빌려오지 않아도 어느 정도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오늘은 사랑해?”

오늘은 어때?”

내일은?”

모르겠어요.”

.....

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냐? 김금희 소설가!

 

 

이웃님들, “오늘은 어때요?”

 

 

토마스 칼라일이 <오늘을 사랑하라>는 시를 썼다.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 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

오늘은 영원 속의 오늘.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없다.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이다.

오늘이 30번 모여 한 달이 되고,

오늘이 365번 모여 일 년이 되고,

오늘이 3만 번 모여 일생이 된다.

 

 

오늘이다. 111, 이 날은 지인의 생일이라 더욱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제대로 된 독서 2년차로 들어가는 111일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주부이다. 주부가 독서를 통해 변화된 삶을 책으로 기술했는데, 삶의 변화의 자기 이야기 보다는 많은 이들의 명언들을 옮겨놓고 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몸을 지치게 하여 육신은 굶주리게 한다. 또한, 생활을 곤궁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한다. 그러한 이유는 이로써 그 마음의 참음성을 담금질하여 비로소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역량을 키워서 전에는 이룰 수 없던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라

-맹자(21p)’

 

책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의 잡초가 수북하게 올라온다’(38p)

 

-진짜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의 스토리, 책의 문장들, 글들이 내 마음에 내장되지 않으면, 마음의 온갖 심란한 잡초들이 나를 뒤흔든다. 근심과 염려와 걱정과 스트레스와 짜증이. 그래서 허지웅이 말한 것처럼, ‘한 문장이라도 내가 가슴에 부여잡고 버티는 것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책읽기는 나와의 지루한 싸움이다.

슬럼프란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슬럼프다.’(63p)

 

책읽기는 일시적인 쾌락이 아닌 꾸준한 지속이다’(64p)

 

‘...그러나, 세상은 당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볼테르’(67p)

 

다산께서 유배지에서 20년 계시면서 저술에만 힘쓰다 복사뼈에 3번이나 구멍이 났다.”(115p)-<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현재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톨스토이

 

저자는 새벽에 일어나 조용하게 <논어>를 필사했다고 한다. <논어>뿐만 아니라 <도덕경>, <명심보감>, <대학>, <중용>, <손자병법>을 모조리 필사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알아서 알면, 나는 백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을 읽어서 알면, 나는 천번을 읽는다.”-주자

 

영혼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 한다...책은 영혼이 밖을 내다보는 창문이다-헨리 비처

 

 

오늘을 사랑하라,

<>이 말이 너무 좋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으면, 365일이면 365권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330권의 책을 읽었다. 독서를 수치화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지금은 수치가 필요한 시기이다. 아직 초짜이기에.

 

오늘 낮에 김겨울의 <겨울서재> 유튜브 방송을 잠시 보았다. 내가 랜덤으로 시청한 그 방송의 주제는 언박싱 영상이었다. 자신에게 온 택배를 뜯어보이면서 방송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그런 방송인 셈이다. 근데,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신간 책을 몇 권 보내줬나 보다. 4권이 각 출판사에서 택배로 날라온 것을 언박싱했다.

근데, 마지막에 등장한 책이 <1천권 독서법>이었다. 근데 김겨울이 그 책을 보면서 약간의 쓴 웃음, 비웃음을 날려보였다. 김겨울이 이전의 방송영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는 <1천권 독서법>을 읽고 독서를 시작한 사람이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좋지는 않았다.

 

그 책의 저자, 전안나님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사회복지사이다. 독서를 통해 육아우울증을 극복하고 생기 넘치는 삶을 사는 작가이다. 김겨울은 이를테면, 독서를 자연스럽게 할 수 밖에 없는 심리학도요, 철학도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도 다녀왔고, 영어도 어릴적부터 조기교육을 해서 발음도 엄청나게 좋더라. 근데, 그 책에 대해 그렇게 쓴웃음을 짓는 것은 조금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독서에 이르게 되는 동선이 있다. 그 동선이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고, 다소 드라마틱한 동선을 가진 사람도 있다. 저자 전안나는 후자의 인물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나는 블로그 이웃이기에 여러 가지 소식들을 들으면 도전받는다. 그분이 실제 독서를 통해 변화되었고 지금은 독서에 대한 강의와 재능기부도 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때, 김겨울이 보기엔 <1천권독서법>이란 제목이 비위에 거슬렸을 것이다. 이처럼 마케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라니. 그래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내가 <1천권독서법>저자의 대변인이 아니지만, 그 책을 통해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았기 때문에 한 마디 했다. 김겨울이 아직 20대에 다독가 되어서 그렇게 발언할 수도 있겠다 싶다. 편견은 무서운 것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삼천포로 빠질 뻔 했다. 근데, 우리가 흔히 '삼천포로 빠진다'는 문장을 사용하는데, 제 지인중에 삼천포출신이 계신데, 이런 말 굉장히 싫어하신다. 자신의 고향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발끈하시는 셈이다. 이것도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피츠제랄드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했던 말이 또 생각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때 모든 사람이 너처럼 유리한 상황에서 자라난 것이 아님을 기억하렴'(카알벨루치 의역)

 

모든 독서가는 made가 아니라 making일 뿐이다

독서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made된 독서가는 없다. making하는 과정에 다들 있을 뿐이다. 김겨울이든, 전안나이든 어찌됐든, 독서를 통해 삶이 더 풍성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다. 오늘을 사랑하면 그 오늘이 쌓이고 쌓여 축적된 무언가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다들 오늘도 Reader의 삶을 사는 행복을 누리시길

 

 

 

 

  *그리스도인 독서가를 위한 Tip>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성경을 하루에 10장씩 읽으면 4개월이면 1독을 할 수 있다. .구약이 총 66권이다. 장수는 총 1,189장이며 54,385절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에 10장씩 읽으면, 10X 30X 4=1,200장이 되는 셈이다. 셈으로 하면 그렇다. Try it!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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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11-0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일일책 독서가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깊이 있는 독서와 일일일책은 서로 반비례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슬픈.ㅜ.ㅜ

겨울님 영상 뭔지 알겠어요.ㅋㅋ 저도 봤는데 그땐 저도 살짝 잉(?) 했죠.^^;; 카알벨루치님 말씀처럼 독서법 책 많이 읽다 보면 저런 류의 제목에 선입견이 생기는걸 아니까 이해는 가는데, 그걸 그대로 영상에 표현 하실줄은.ㅎ

직접 읽지 않았다면 해당 책에 대한 판단은 보류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읽고도 같은 생각을 했다면 솔직하게 별루다 말하는게 맞구요.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책도 누구에겐 인생을 바꾼 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정치적으로 나쁜 의도를 가지거나 거짓을 쓴 책이 아니라면 세상에 무조건 별루인 책도 무조건 나쁜 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02 00:00   좋아요 0 | URL
지금 제가 돌아보면 <1천권독서법>이 굉장히 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알라디너들 중에는 어마어마한 지식인들과 독서가들이 많으니깐요 전 지금 <독서의 기쁨>을 읽고 있어요 김겨울씨! ㅋㅋ이 작가 참 대단하다 싶네요 거침없고 열정적인 독서가란 생각이 듭니다 타인에게 삶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자기자신에게 인정받으면 그게 가장 행복한 독서인데 싶네요 젊은 독서가, 김겨울에게도 배울점이 많은데 싶어요 김겨울씨도 그리 유복치 않은 가운데 살면서 독서가가 된 것을 보고 있네요 독서를 하다보면 자기계발서가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하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고. 괜한 이야길 제가 했나 싶기도 하고. 책과 사람을 분리할 래야 분리할 수 없으니 제가 언급한 것이기도 하고...ㅎㅎ근데 좀전에 영상 올렸죠? 보러가야겠네요 ㅎㅎㅎ

세상틈에 2018-11-01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윤미화)님의 <깐깐한 독서본능>이란 책 조심스레 추천드립니다. 꽤 오래 된 책이지만, 1주년 기념해서 독서 뽐뿌 많이 받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1-02 00:01   좋아요 0 | URL
자꾸 추천하면 안되는디 ㅋㅋ감사요

레삭매냐 2018-11-02 1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 보면 권수에 연연하게 되지 않을까요.

초보 선수 시절에는 그놈의 양에 목 매달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무슨 대수랴... 나보다 훨씬 다독
가들이 강호에 넘치는데 - 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만의, 내가 찾아낸 작가들에 몰두하게 되는거죠.

물론 헛수고도 많이 하고...

전 최근 <블랙 어스>란 책에 관심이 땡겨서 도서
관에서 빌렸다가 어지러운 번역투에 도저히 다
읽을 자신이 없어서 과감하게 반납했답니다.
독서에서도 손절매가 필요하더군요.

카알벨루치 2018-11-02 10:41   좋아요 0 | URL
그놈의 반역 ㅋㅋ~요즘 권수가 뭐가 중요하나 싶어요 근데 꼭 1000이란 숫자는 챙기고싶은 ㅋㅋ한번은 해보고싶은거 있죠? 책을 읽고 숙성하는 시간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건 알겠는데 일일일책이면 그건 좀 힘들겠죠!? 일단 종횡무진 좌충우돌 달려가볼랍니다 ㅎ

stella.K 2018-11-0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년이 좀 더 걸리겠군요.
주일 날은 안 읽고, 가끔 건너 뛰기도 하니까.ㅋ

저 1일1책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워낙에 책을 늦게 읽는데다 완독 추구형이라.
하루에 책 권이면 완독은 불가능하겠죠?
그냥 중요한 싶은 쳅터 몇 개만 읽게되지 않나요?

카알벨루치 2018-11-0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이죠~부분독하면 찜찜해서! 하루에 한권 뗀다 생각하고 읽는거죠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해야하니 더 부지런해야하는데...깊은 독서가 힘들수도 있겠죠! 말그대로 하루 한권 독서를 말하는데 중요한건 정신이고 본질이겠죠 하루도 쉬지않고 독서하는게 중요한 것이겠죠! 그냥 자기 취향에 맞게 독서하는게 제일 중요하지요

stella.K 2018-11-02 16: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대단해요!

cyrus 2018-11-0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재미에 푹 빠지면 세어보지 않아도 읽은 책의 권수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도 레샥매냐님처럼 읽은 책의 권수에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서 ‘100권 읽기’, ‘1000권 읽기’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딩하라>가 나오면서 다독 중심의 독서법이 널리 알려지게 됐죠. 제목과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다독 중심의 독서법에 대한 책들이 자주 나오는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8-11-02 17:0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ㅎ예전에 이지성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싫어지더군요 얄팍하다고 해야할까 암튼 알라딘엔 고수분들이 많아 좋네요 ~ ㅎㅎ

페크(pek0501) 2018-11-0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오래전 성경을 사서 읽었죠. 다 읽지는 못했지만 줄을 많이 긋고 읽었어요. 좋은 구절이 많아서요.
다시 볼 책들 중 하나로 꼽습니다.

오늘을 너무 사랑하는 1인이올시다...

카알벨루치 2018-11-03 14: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굿뜨!

공쟝쟝 2018-11-03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한낮의 연애 드라마화된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기대되요 ㅋ
 

겨울서점의 김겨울이 낸 책, 독서의 기쁨을 보면, ‘책을 산다는 것’...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곁에 두고, 그 작가의 말과 글을 끌어안고, 그 책이 언제든 나의 세계를 침범하기를 허용‘(72p)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말이 너무 좋다. ’좋아하는 작가의 말과 글이 언제든 나의 세계를 침범하기를 허용한다.......자주 그래 줄 것으로 믿고 이번 10월달에도 어김없이 질러버렸다. 읽는 것보다 요즘은 지르는 속도가 더 빠른 듯하다. 아...어쩔!!!! 좋아하는 작가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인 듯하다. '마르케스'가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추천하시길래 바로...11월엔 페소아가 내게 기쁨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미뤄둔 작가들이 자길 좀 쳐다봐달라고 아우성인 듯 한데, 어쩔....

 

 

*약속을 정해야 겠다. 읽은 책 수 보다 구매한 책 수를 절대 넘기지 말것!!!

 

 

 

 

-<불안의 서>는 랩커버까지 씌워주는데 괜히 설레더군요. ㅎㅎ

 

허세만 가득차서 참 어쩔 수 없네요. 이번 달엔 <호모데우스>읽는다고 다른 책들을 잘 못 읽었네요. 20권 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요즈음은 읽기를 조금 쉬고 있습니다. 쉬고있다기 보다는 막 읽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랄까? 무언가를 강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은 셈이죠. 물 흘러가듯이 읽고, 쓰고, 그렇게 해보고 싶네요. 오늘로써 제가 제대로 독서한 지 딱 1년 되는 날, 1517년의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을 일으킨 날이기도 하네요. 저의 허세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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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31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많이 읽으셨네요.
김형석 교수의 책이 눈에 띄네요.
뭐라고 썼을지 궁금합니다.

저도 요즘 물 흐르듯 읽고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손에 잡히는대로.
그랬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군요.
예전엔 지금 읽고 있는 책도 다 못 읽었으면서 무슨 새 책을 건드려
했는데 그런 강박 보단 그냥 편하게 읽자는 쪽에 마음을 두기로 했습니다.ㅋ

그런데 불안의 서는 랩핑을 한 게 야한 책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ㅎ

카알벨루치 2018-10-31 15:29   좋아요 0 | URL
읽은게 아니고 지른겁니다 ㅜㅜㅋ

2018-10-31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0-31 15:46   좋아요 1 | URL
우앙우앙우앙!!!!!

2018-10-3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10-31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많이 지르셨어요.ㅋ
책 부자십니다.
저도 다음달에 지르려고 장바구니에 책들을 담아 두었는데 너무 많아요..ㅠㅠ
책 욕심은 끝이 없나봅니다. ㅎ

카알벨루치 2018-10-31 15:46   좋아요 0 | URL
동지가 많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여긴^^

세상틈에 2018-10-31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크게 지르셨네요.^^ 저는 그냥 5년 안에 읽을 것 같다 싶으면 걍 사버려요.ㅎ 그렇다고 돈이 남아 도는 게 아니고;;; 덜 먹고 덜 마시고 덜 입고 덜 타고 해서 사는 거죠. 이게 더 즐거우니깐요. 책장에 있는 책들 중, 읽을 책을 고르는 재미는 다른 무엇(영화 보기 빼고)도 따라오기 힘드네요. 그나저나 이번에 지르신 것들 진짜 읽을 만한 책 천지네요.ㅎㅎ 보는 제가 다 설렙니다.^^

카알벨루치 2018-10-31 15:58   좋아요 0 | URL
눈이 호강을 합니다~세상틈에님 덕에 지른 책도 좀 있죠 근데 5년안에 볼 책이면 질러버린다는 그 철학 제가 조금 도용하겠습니다 북튜브 잘 보고 있어요 중독이 강한 남자~~~~(개콘버젼)

레삭매냐 2018-10-31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앙드레 말로의 <희망>은 샀지만
읽지 않았습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은
작년에 읽은 책 중에 최고의 책 중에
하나였고요...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는 처음 나왔
을 적에 읽긴 했는데 생각만큼 감흥이
오지 않더군요.

스베틀라나 아지매의 책도 사기만 하고
안 읽었네요. 그런 책들이 너무 많아요...

대단하십니다.

카알벨루치 2018-10-31 23:59   좋아요 0 | URL
대단한건 보스턴레드삭스이고 광독의 레삭매냐님이시죠^^전 눈팅만 하는 초짜~<저지대>참고하겠습니다~푹 주무세요!

서니데이 2018-10-3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내일부터 11월이 시작입니다.
좋은 한 달, 기분 좋은 30일 채우시면 좋겠어요.
따뜻한 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10-31 23:5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께서 왕림해주셨네요^^늘 건강하시고 11월도 멋진 소통 기대합니다~

공쟝쟝 2018-11-03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난 담부터 어쩐지 정가서 안보던 유튜브까지 보면서 김겨울님 북튜브 시청중랍니다.. 재미져요.. 그리고 생각보다 북튜버가 많더라구요.. 책안읽을 땐 북튜브보면서 또 책 읽어야지 하는 악순환~ 벨루치님 저랑 최근 독서목록 많이 겹쳐서 기뻐요 :)

카알벨루치 2018-11-04 00:03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영광입니다 ㅎㅎ
 

이 책은 아주 얇다. 저렴하게 구입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정말 묵직하다. 특별히 이 시리즈 책들은 참 잘 나온 듯 하다. 번역자가 지인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도는 빠지면 안된다. 하루 중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기도'가 빠지면 안  된다. 그게 어디 쉬운가? 하지만, 그건 습관이 되어야 하고 삶이 되어야 한다. 삶이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로는 기도 이야기 하지만, 제일 안 되는 것은 바로 기도가 아닐까 싶다. 기도는 죽을때까지 매일 같이 가는 것이다.

 

1구원을 위해서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11-12p)

 

2기도하는 습관은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운데 하나입니다(14p).

-18:7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그들은 하나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신앙의 의무 가운데 개인기도만큼 소홀히 여겨지는 것도 없습니다(20p)

-개인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기록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무시하거나 지나치려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상한 심령이 된 이후에 엄중한 간구가 출현합니다.

 

4기도는 큰 위로를 주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나는 수십만의 군대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두렵다는 말은 대영제국의 메리여왕의 말이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5기도에 진력하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경건에 이르는 비결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위대한 성장을 이루는 주된 방편은, 개인기도에 부지런히 힘쓰는 습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합니다.”(36p)

 

6신자들이 신앙이 퇴보하고 배역에까지 이르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인기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영적인 중병에 걸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게 타락하기 전 붜, 이미 개인적인 타락은 은밀히 진행됩니다(40p).

 

7기도는 행복과 만족에 이르는 가장 탁월한 길입니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울 수밖에 없습니다.”(41p)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이시리로다”(55:17)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춧돌을 놓은 것, 첫 삽을 떠야...노아가 방주를 짓기 위해 쓸 나무를 처음 쓰러뜨린 날이 있었다(51p).

언제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하는가?

‘-그것은 바로 기도의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처음 부어지는 때(52p)’이다.

회심한 호텐토트 사람 왈 주여, 저의 모든 원수로부터 구원하소서, 무엇보다 악한 제 자신에게서 구원하소서!”

기도를 위해서도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꺼지지 않는 성전의 불처럼, 기도가 일상에서 계속 타올라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 것 때문에,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는다. 냉랭한 기도는 불없이 드리는 제사이다.

 

17세기 위대한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브루스 목사를 향해

그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번개와 같았다.”고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기도는 영혼의 맥박이며, 영적기상도이다.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로 남으면 좋겠습니다(72p).

 

이 책의 번역자는 나의 대학원동기였다. 1학년 때 룸메이트였기도 하다. 나보다 몇 살 위인 형님은 언제나 영어로 듣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스터디도 같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역시 번역가의 길을 가셨네, 잘됐다! 근데, 행님이 진짜 많은 책을 번역하셨다! 우아! 역쉬! 그 실력이 어디로 가지 않는다.

 

 

*번역가 장호준님의 번역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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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0-31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존 라일! 학교 때 그의 설교집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나네요.^^

카알벨루치 2018-10-31 15:00   좋아요 0 | URL
그시절에 존 라일을 읽으셨다니 역쉬 그때부터 엄청난 포텐셜을 가지고 살아오셨네요 우아 스텔라님 굿뜨~

stella.K 2018-10-31 15: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어요.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해서 딱 한 권 읽었을 뿐이어요.
지금은 그의 책이 많이 나온 걸로 아는데 다시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