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버티는 삶에 대하여

 

대학 때 연극공연을 한 적 있다. 그것도 <로미오와 쥴리엣>. 배역은? 당연히? 로미오였다. 의아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때는 가슴에 터질 듯한 뭔가가 있어서 분출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학회장이 나더러 로미오를 하라고 했다. 나는 단번에 승낙했다. 암튼 원어공연을 했었다. 연극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내가 대사를 치면서 침을 많이 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에 몰입을 하니 관객들이 웃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로미오와 쥴리엣>,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것을 알고 같이 죽는다는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하는 데서 오는 절망감이 죽음으로 결론이 난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사랑하는 사람 없이 삶이 가능한가?’, ‘사람이 사랑 없이 살아 갈 수 있는가?’라는 것이 주제이다.

 

 

세상 천지에 마음 둘 곳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의 모하메드는 자신의 생을 내 빌어먹을 생’(271p)이라고 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자신의 생을 그렇게 표했다. 상처투성이의 이 14세 소년은 자신의 나이가 10세인 줄 알고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요, 상처다발인 모하메드에겐 머리 속에 끊임없이 맴도는 질문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라몽 의사 아저씨는 내 우산 아르튀르를 찾으러 내가 있던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343p)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에 책 앞부분에 이런 말이 있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남녀관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 듯 하다. 그 사랑은 하밀 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인정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만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137p)

 

 

어디 의지할 데 없는 모하메드에게 사랑, 인정은 인생을 버팀목이자 기둥이었다. 탁아소와 같은, 그리고 그곳에 모인 애들은 전부 고아와 다를 바 없는 집,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서 함께 사는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을까? 학교를 다니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정말 빌어먹을 인생인 모하메드는 자신에게 손 내미는 롤라 아줌마나 나딘 아줌마에게 아예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하메드의 마음에는 68세의 95kg의 거구의 엉덩이로 생계를 유지했던 전적이 있는, 유태인 포로 수용소에서 비참함을 경험한 적이 있는, '그동안 나는 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짓을 다 당했다'(304p)고 고백한 로자 아줌마가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애증관계가 아니라 그것은 사랑이었다.

 

 

 

소설을 읽고 소설의 기운이 내 전신을 감돌 때 느끼는 그 무엇...로맹 가리구나! 이런 느낌! 전율이다.

 

 

 

사진을 보면, 마호메트가 우산을 가지고 있다. 이 우산은 아르튀르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호메트에게 장난감이 아니다. 이것은 마호메트의 친구이자 동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살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해야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있는가?”

 

 

로자 아줌마 곁을 끝까지 지키는 소년 마호메트의 마음이 너무 짠하다.

 

 

 

로맹 가리가 왜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이중 작가활동을 했는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에 대한 비난과 오해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의미>리뷰에서 다뤄서 건너뛰겠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로맹가리는 자기 앞의 생에서도 한 사람, 로자 아줌마를 향한 사랑을 디테일하게,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그려주고 있다. 14세 소년이었기에 가능한 설정이었다.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대방출 될 것 같아 멈춘다.

    

 

작가의 마음을 여행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구나 싶다. 로맹 가리를 향한 나의 이런 맘도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나?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사랑이 없다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 보면 '마음속에 오래토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5p)라고 이야기한다. 버티는 것도 사랑해야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로미오와 쥴리엣>은 문학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비극적인 결론이 났지만, 우리의 생은 그런 비극이 발생해선 아니 될 것이다. 사랑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가장 먼저,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면서 버티는 것이 <자기 앞의 생>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싶다. 버티는 것 자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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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19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배우 출신이셨군요 !

로맹 가리의 작품들은 편차가 있습니다.
갠춘한 것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죠.
로맹 가리 본인의 이름으로 발표한 70년대
작품들은 솔직히 쫌...

며칠 전에 줄리엣의 죽음을 모티프로 삼은
연쇄살인마급 정신과의사가 등장하는 소설
을 봤는데, 역시 고전의 변주는 영원한 모
양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9 09:23   좋아요 0 | URL
배우는 뭘요~그냥 우연찮게 어쩌다보니 한거죠 70년대면 진세버그랑 같이 있을땐데 ㅎ

북프리쿠키 2018-09-19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연극 하셨으면 대단한데요.
것두 로미오를~!!
라면 끓여줄 의향 충분히 있..ㅋㅋ

카알벨루치 2018-09-19 12:31   좋아요 1 | URL
괜히 부풀려졌네요 ㅜㅜ할 사람없어 한거나 마찬가지인데~라면은 먹갰습니...ㅋㅋㅋㅋ

stella.K 2018-09-19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학회장이 로미오역을 하라고 하는 걸 보면
카알님 미남이신가 봅니다.
아무나 로미오 역 안 맡는데 말입니다.
근데 줄리엣은 누구...?ㅋ
암튼 잘하셨습니다. 그때 못하셨으면 아쉬워서 어쩔뻔했습니까?^^

카알벨루치 2018-09-19 16: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하고 싶은게 있을때 해야합니다 저도 연극같은거 진짜 못할줄 알았는데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대사도 우아 진짜 우째 외웠는지~근데 외워지더군요
다들 엉뚱한 상상하지 마시고 제가 그때 연극이라도 해서 한줄 글로 쓸수있다는거 그게 너무 좋은거죠^^

cyrus 2018-09-19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미오면 주연급 배역 아닙니까? ㅎㅎㅎ 특별하고도 소중한 경험을 하셨네요. ^^

카알벨루치 2018-09-20 08:46   좋아요 0 | URL
늘 내성적이어서 교회선 친구들이 워낙 연극을 잘해 전 북한군 쫄병같은 단역만 맡았는데~ㅋㅋ그때 첨으로 주연맡고 그 친구들이 꽃다발까지 들고 와서 축하받았죠 ㅎ그때 경험이 지금 생각해보니 참 소중하네요

카알벨루치 2018-09-20 08:51   좋아요 0 | URL
그 비슷한 시기에 교회에서도 주연을 한번 맡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ㅎㅎ

페크(pek0501) 2018-09-20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할 때는 뜨겁게 하되, 마음 안의 중심은 잃지 않기. - 이게 제가 생각하는 연애관인데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ㅋ

카알벨루치 2018-09-20 13:09   좋아요 0 | URL
페크님은 그런분 같아요~^^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

 

 

이기호의 반전

 

이기호를 참 좋아한다. 난 이기호가 기독교인인 줄 알았다. 내가 읽은 책들이 전부 교회와 관련되어 있었다. 성령충만기,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그리고 이번 소설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이게 언뜻 보기에는 그냥 단순한 방화사건을 다루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목양교회의 방화사건이 주 소재이다. 더군다나 동네이름도 목양면소재지다. 목양牧羊이란 말은 기독교적인 용어이다. 흔히 목사를 목회자라고 할 때, 목회牧會=목양牧羊 이란 말과 동일하게 사용된다. ‘양을 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양으로 비유하셨기에 그런 의미로 전해진다. ‘목양면에 위치한 목양교회에 방화사건이 났다. 이것은 이 방화사건이 기독교에 대한 스토리라 예측할 수 있겠다. 범인을 잡지 못해 형사가 등장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목양교회를 둘러싼 문제를 파헤치는 게 이 소설의 스토리이다.

 

이기호의 작가의 말이다.

 

하나님은 뭐,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고요.’

........

올 여름은 그렇게 많이 더웠쟎아요. 하나님은 뭐 그것도 관심 밖이셨겠지만.’(168p)

 

 

 

작가 이기호의 세계관

 

이 말은 이기호 작가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은 작가 이기호의 세계관을 반영해준다.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정말 살다가 살다가 이런 폭염은 없었다. 하지만, 이기호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은 이런 더위를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세계관적인, 철학적인 용어로 이기호가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신이 더 이상 인간의 세계에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폐쇄체계’(closed system)라고 부른다.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신은 더 이상 인간사와 우주의 영역에 아무런 터치도, 개입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신념체계이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개방체계’(opened system)이다. 이 말은 신이 여전히 인간사와 세상사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믿는 신념체계이다.

 

    

 

전자(폐쇄체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세계대전과 수많은 질병과 재난이 일어난 후 인간의 처한 절망과 재난에 대해 더 이상 신의 존재를 용납할 수가 없다, 신은 죽었다God is dead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이론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이 실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불상사가 인간사에 가득할 수 있단 말인가?’후자(개방체계)는 인간사와 세계사, 우주사가 여전히 혼돈과 무질서가 가득하고, 카뮈가 말했던 부조리가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여전히 인간과 세계와 우주에 개입하고 합력한다는 것을 믿는 이론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믿음이 좋은(?) 이들이 선택할 것이다. 전자보다 오히려 더 고지식하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나,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부류는 후자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기호의 최근작이 문학적으론 용납할 수 있으나, 신앙적으론 굉장히 불쾌한 작품이다.

 

 

 

이기호의 기독교 삐딱하게 보기: 욥기 43

그래서, 이 소설은 이를테면, <이기호의 삐딱하게 본 기독교><이기호의 기독교 삐딱하게 보기>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성경의 욥기를 가져와 <욥기 43>이라고 붙인 대목도 그러하다.

성경의 욥기는 총 42장으로 기술되어 있다. 작가 이기호는 욥기, 그 다음 장을 쓴다는 의미에서 43장으로 부제를 붙인 듯하다.

 

 

 

, 이기호는 당대의 의인이자, 청렴결백하고 신심이 대단하다고 소문난 욥Job을 하루 아침에 재산과 가문과 집안과 자녀들을 망하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신이 악창(나병, 문둥병 종류의 종기)이 나게끔 내버려둔 하나님이 못 마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욥기>는 욥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셔서 자녀들도 10명이나 다시 주시고, 집안의 경제력과 가문과 모든 부분에서 이전보다 더 배가된 축복을 해주신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런데, 작가 이기호는 이렇게 끝난 욥기에다 43장을 추가한,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를 기록했다. 이기호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기호의 관점은 굉장히 인간적인 관점이고, 하나님에 대한, 신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작품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 이기호의 오류

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기호가 욥기를 제대로 읽었다면, 발생하지 말아야할 오류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첫째, 욥기 전반부에서 욥의 집안이 망하고 자신의 몸뚱이가 악창이 났을 때,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고 저주했다는 대목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욥은 자신의 모든 상황과 불행이 괴로운 나머지 자신과 자신의 생일(출생)을 저주했지, 하나님을 저주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욥은 인생이 완전 풍비박산 났고, 그로 인해 세 친구가 위로차 욥을 방문하게 된다. 이들은 욥의 슬픔을 1주일 정도 동참하면서 위로한다. 그러다가 욥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욥에게 추궁한다. 심문하듯이 이야기한다. ‘죄가 있으면 빨리 회개하라고, 네 죄 때문에 이런 재난이 온 것이 아니냐? 네가 모르고 있는 죄가 있을 수 있으니 빨리 회개하라고 말한다. 이 말들이 칼이 되어 욥의 가슴에 못이 박힌다. 욥은 지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이기호의 첫 번째 잘못된 이해는 욥이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내용인데, 그것은 구약성경의 이야기와 맞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기호는 욥에게 악창이 발바닥에만 났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의 발바닥에 악창이 나자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인물이었죠(166p)’.

-‘...자신의 발바닥에 난 악창이, 때론 어떤 슬픔의 도화선 같은 역할을....(167p)’.

 

 

하지만, 구약성경은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욥기 27)라고 되어 있다. 이기호가 작품을 쓰고자했다면, 욥기를 제대로 섬세하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욥은 발바닥만이 아니라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란 말은 전신, 온 몸이 문둥병같은 악창이 걸렸단 말이다. 욥이 발병(?) 난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고름이 흐르고 건드리면 부스러지는 문둥병, 나병과 같은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욥이었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 타이밍에 욥이 하나님을 ,신을 저주했다면, 하나님은 욥에게 그런 시험test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 이기호가 욥기 43장이란 부제까지 달았다면, <욥기>를 더 제대로 면밀하게 검토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욥기에 대한 해석

작품에 대한 이야길 하기 보다 먼저 구약성경의 <욥기>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과 나의 개인적인 해석을 이야기하고 싶다.

 

 

 

욥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재난을 겪는다. 최고의 부호이자 정직하며 의인이며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가정이 망하고, 자녀들이 참변을 당하고, 재산이 날아가 버리고,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중이시다. 친구들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상처만 주고 있다. 우리도 그런 적이 있지 않은가! 상처입은 사람 앞에서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을 때 그게 얼마나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되는가! 너무 큰 슬픔 앞에선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공감과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친구들은 몰랐던 것이다. 욥이 그런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욥기 말미에 가면 하나님이 욥을 만나주시고 욥은 하나님에 대해 소위 말하자면, ‘은혜를 받게 된다. 그리고서 이전에 잃어버렸던 모든 재산, 가문, 배경, 명성, 권력, 자녀들까지도 배가되는 축복을 받는다. 여기서 보통 기독교 설교자들이 흔히 우리가 고난과 역경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잘 견디면 배가되는, 넘치는 축복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길 하면서 욥의 이야기를 자주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주의에 물든 해석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다 죽었는데,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물론 우리의 상실의 상처는 새로운 사랑의 대상에 생겨나면서 덮이기도 하고 아물기도 한다. 하지만, 욥기의 인생을 보면서 다소 성공주의, 번영주의에 찌든 시각으로 봐 온 한국교회의 강단의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서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목하고자 하는 구절이 욥기 42:10이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이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여기에 보면, 욥의 반전의 포인트가 숨어있다. 욥은 고통의 극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그리고서 자신의 상처입어 만신창이가 된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말의 드릴과 언어의 송곳으로 후벼 파낸 친구같지 않는 친구(3+1)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용서가 포함된 기도이다. 기도는 입만 벌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입술까지 차 올라가서 혀끝에서 나오는 용서의 기운이 언어로 터져 나와야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은 어설픈 신이 아니시다. 대충 복채 받고 한쪽 눈을 슬쩍 감고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일처리하시는 주술사나 상사가 아니시다. 사람의 진심, 진정성이 배여 있지 않은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 욥은 진정성이 있는 기도를 드렸다. 그것은 욥이 하나님을 욥기 말미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욥기 42:10의 해석:‘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작가 이기호에겐 그 하나님이 불편하겠지만, 그 하나님과의 욥의 대면은 욥을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했다. 그리고서, 자신의 영혼의 가슴을 베어온 친구들을 위해 용서하고 화해하는 기도를 한다. , 여기서 욥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과 형편의 개선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처지도 완전 딜레마인데,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다니......그런데, 욥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기도’, ‘타인(친구)을 위한 기도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기독교의 정신이고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고 따르는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버렸고, 온 인류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따르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내가 불편하고 힘들고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들지만, 타인을 위해,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고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본질이고, 욥의 기도의 본질이었다.

 

 

 

 

욥기 42:10의 해석: ‘여호와께서 욥이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러할 때, 신이신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욥이 자기 기도만 열나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욥과 함께 만났던 그 친구들조차도 하나님께서 만나주신다.  상처받은 인간인 욥이 다시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서는 것에 욥기의 핵심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욥기 42:10에서 ①과 ②가 원래 더 강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대목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욥기 42:10의 해석:

 

 

그러고 나니,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고 축복의 내용이 덧붙여진다. 하지만, 과거의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마지막에 덧붙여진 배가된 축복, 더 강화된 복덩어리에 포커스를 두었다. 그것은 복음을 왜곡한 것이다.

욥의 회복은 회복의 결과인 축복이 아니다. 욥의 회복의 중심은 바로 용서와 화해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서는 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다. 축복과 성공은 중요한 본질이 아니다.

 

 

 

삐딱한 기독교, 삐딱한 이기호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수많은 세인들이 비판을 한다. 솔직히 한국교회는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덩치를 엄청나게 키웠다. 또한 그 덩치를 불리는데 주력을 했었다. 외부적으로는 덩치가 커졌지만, 실상 내면은 곪아터진 상태에서 세인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돈과 권력과 인기와 명예와 스캔들과 부정직 등...어느 것 하나에도 자유롭지 못한 기독교를 작가 이기호는 이기호대로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품에서 보면, 

최근직 장로가 아들 최요한 목사에게 교회를 세워 주었다는 것은 교회세습문제를 다루는 듯 하다. 최근직 장로의 간증집회의 허실은 한국교회의 과장된 은혜주의를, 최 장로와 최 목사의 부자관계가 시원하지 못한 채 상처가 해결되지 못한 것은 교회가 부피가 커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정의 회복,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의 회복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은?

 

 

소설이 너무 잘 읽혀서 금방 읽었지만, 읽고 난 후 느끼는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믿는 기독교가 욕을 먹는다는 데서 오늘 불편함의 후유증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기독교의 본질, 기독교의 기본정신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반성, 자기성찰, 자기회개’(Self reflection)에 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오셨을 당시에 비판을 엄청나게 하시면서 회개하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비판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을 따라 비판해야 하지 않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시대와 세대와 세계와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었다. 비판해야만 했다. 당시 종교세계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나 밖의 세상과 세계를 비난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비난해야 한다. 북한이 자아비판을 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냉철한 자아비판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 진정한 교회의 회복, 기독교의 회복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자기를 훈련하지 않고 세상을 훈련시키려고 덤벼드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복음서에 보면 세리는 회당에 들어갔지만,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단지 고개를 쳐박고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읊조릴 뿐이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고개를 빳빳히 쳐들고 자신의 공적과 업적과 헌금과 헌신의 행위를 나열하면서 기도랍시고 했던 것이다.

 

 

진정한 종교의 리더들이라면, 먼저 자기반성’‘셀프리플렉션이 끊임없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진정한 종교의 능력이 발산되어지는 것이다. 비폭력의 영웅 간디가 밤마다 물레질을 하면서 자아비판’, ‘자기반성이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소설가에 비친 한국 기독교,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비친 하나님’, 그리고 직업을 무직으로 배치하고 인터뷰 대상에 등장시킨 작가 이기호...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신데, 이기호에겐 그냥 '백수'로 비쳐지는 것이다.

 

 

 

10, 하나님(????, 무직)

 

 

 

너무 흥미롭게 읽었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슬퍼지는 것은 가슴에 눌린 답답함과 갑갑함의 무게 때문일까? 소설 읽고 마음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에릭 시걸의 <닥터스>에 보면 의사를 '상처입은 치유자'로 표현한다. 의사들은 수술하는 기계가 아니라 그들도 여전히 상처입을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들은 '상처입은 치유자'로 서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도 '상처입은 치유자'란 말을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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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7 09:05   좋아요 0 | URL
교회가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제 자신부터 그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마음이 들게 하는 소설입니다 이기호의 비판이 오히려 고맙네요

레삭매냐 2018-09-1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논문 수준이네요.

이기호 작가가 성경의 해석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소설을 읽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욥의 고난에서 소설의 모티프를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스타에서 본 글인데 이런 글이 있더군요.

˝예멘 난민 500여 명 때문에 이 나라가
이슬람화 될꺼라 말하기 전에

개신교 인구 천만(?)이어도 예수 그리스도
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회개하라.‘

금번 명성교회 사태에서 마귀타령 하는 목
회자(저는 삯꾼이라고 생각합니다)가 참담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7 10:38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자기성찰과 자기회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기호 작가가 부당한 고통에 대한 신에 대한 불만이 모티브가 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2018-09-1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면을 끓이며>를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대만족이다. 근데 읽는도중에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아침은 우유 한잔에 식빵에 뉴텔라 발라 먹었는데. 결국 끓였다. 대파 많이 넣고. 김훈이 청량감을 강조한 것처럼...












런데 .......................................................................................................................................................................................................................................................................................................................................................................................................................................................................................................................................................................................................................................................................................................................................퍼졌다 젠장!





그래도 잘 먹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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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09-14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왔을 적에 라면 냄비 이벵을
해서 출판사가 과태료를 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카알벨루치 2018-09-14 11:55   좋아요 0 | URL
라면냄비 이뱅이란 말이 뭔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ㅋ

레삭매냐 2018-09-14 16:53   좋아요 1 | URL
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에
출판사에 라면냄비를 주는 이벤트
를 진행했다는 말이랍니다 -

카알벨루치 2018-09-14 21:14   좋아요 0 | URL
이벵 ㅋㅋㅋ그랬군요 진짜 라면 냄비 주면 좋은건데 과태료까지 ...쩝 라면줘도 좋은뎅

cyrus 2018-09-14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같이 비 오는 날, 라면 먹기 딱 좋은 날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8-09-14 12: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stella.K 2018-09-14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혹시 탄수화물 중독은 아니죠?^^

카알벨루치 2018-09-14 18:19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커피중독입니다 ㅎㅎ아 배고파 ~

북프리쿠키 2018-09-15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면은 무조건 남이 끓여줘야 맛있는 법이지요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5 11:24   좋아요 1 | URL
그럼 북프리쿠키님이 하나 끓여주소서 ㅋ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9-15 13:52   좋아요 1 | URL
아~상상되자나요ㅋ

카알벨루치 2018-09-15 17: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인공 정찬우(1929-1970)는 실존인물이다. 고인의 유일한 자손이 평생 남몰래 보관해온 수기를 작가가 받아들었다. 장롱 깊은 곳에 50년 동안 쳐 박힌 원고는 손만 대면 떨어져나갈 정도였다. 그 수기의 내용들이 스토리화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이다.

 

 

 

정찬우는 전북 고창 출신이다. 그는 일제 말기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가담했다가 평양으로 귀환한다. 그 바람에 그의 운명은 바뀐다. 정찬우는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을 생생히 기록했지만, 그의 존재 자체를 감추고 싶었던 가족들에 의해 수기는 어두운 옷장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한 출신이었지만, 정찬우는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유능한 엘리트관료가 된다. 김일성대학에는 식민지 시절에 이름을 날리던 많은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삼팔선 이남이 미군정과 손잡은 친일세력의 세상이 되면서 분노한 이들이 월북한 덕분에 김일성대학은 당대의 최고의 지성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교수진을 이루고 있었다.

 

 

 

195074,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22살의 푸르른 청춘의 기운이 가득한 정찬우는 당으로부터영남지방 교육위원으로 임명된다. 약혼녀를 놔두고 진해로 내려간다낙동강 12단고지는 전쟁의 아수라장이었고, 진동고개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북측과 남측의 옥신각신하는 전투의 현장 가운데서 정찬우가 직접 보고 듣고 목격한 것들이 소설로 나타난다.

 

 

 

인민군이 도시를 장악하면 민중들은 김일성 만세’, ‘인민군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연합군이 장악하면 민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유엔군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댔다. 나라의 민심은 무력 앞에 그렇게 스스럼없이 굴복했던 것이다.

결국 정찬우는 진주의 임시 포로수용소, 광주 중앙포로수용소, 대구형무소에서 포로로 수용하게 된다. 전쟁의 위기는 인간의 심성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마음 그 깊은 심연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온 사방에 이봉춘이 같은 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시대의 권세를 좇아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들이 언제나 권력을 쥐고 있으니 한심하지요. 명색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산주의자가 저런 자들을 이용해 공포정치를 하더니 반공주의자들 역시 저런 자들을 앞세워 사람을 억압하니 참 우스운 세상입니다.“(191p)

 

 

저마다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몸부림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이전에 보여줬던 대의명분과 의지와 외침은 그 전쟁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넘쳐났다. 민중도 그러했는데, 군인이라고 별 수 있는가! 지도자들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인민군의 서울 수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송을 해서 피난을 가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승만은 대전을 거쳐 부산까지 일찍이! 서둘러! 재빨리! 안전하게! 겁나게 빨리! 내려간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36계를 놓으면서도 라디오방송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가만히 있으라!였다. '피난가지 않아도 된다. 서울은 안전하다.'

 

 정말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이 이 모양인가! 이승만은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옆의 참모들이 너무 내려온 거 아니냐고 해서 머쓱한 나머지 대전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정말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더 가관인 것은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는, 라디오방송 듣고 피난 가지 않은 백성들을 빨갱이로 취급하여 잡아 죽이는 미치광이 짓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날 이승만 정부의 좌익 학살이 워낙 극악했던지라 저는 정말 치를 떨었습니다. 전쟁으로 남조선 민간인이 백만이 죽었다면 그 중 삼분의 일은 이승만 군대가 직접 잡아 죽인 남조선 민중일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 놈들이 또 무슨 악마 같은 짓을 할지 저는 겁이 납니다.”(247p)

 

 

지도자가 그 모양인데, 백성들을, 민중들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눈치를 잘 살핀 자들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정찬우 같이 우직한 자들은 평생 절망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법무관이 정찬우에게 법정에서 느낀 감상을 말해보라고 한다.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약소민족의 비애라면?”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215p)

 

 

정찬우는 김일성대학출신의 엘리트였고 필적도 좋을 뿐만 아니라 심지가 굳은 사람인지라, 다른 이들처럼 박쥐같이 앞면 몰수하고 처신하지 않았던 결과로 징역 10년형을 받는다.

 

학교에서 배운 사상이론은 단순했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헝클어놓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던 이봉춘도 그랬고 박창섭도 그랬다. 어쩌면 정찬우 자신도 정신분열의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진리나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북 아니면 남을 선택해야 하고, 공산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정신을 분열시켜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찬우는 그만 벽에 기대 눈을 감고 말았다.’(227p)

 

정선생, 이 기회에 지나온 이야기나 좀 해보시오.”

......

참으로 기구한 팔자요.”

이북에는 근로자가 살 만하다지요?”

 

 

정찬우로서는 싫은 질문이었다. 이북에는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듯 얕추 보는 이들도 못마땅했지만, 진실한 내막도 모른 채 이북을 지상천국이라고 동경하는 이들도 어리석어 보였다. 각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그 양편의 편견을 없애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251p).

 

 

좌익 중에서도 극좌파이던 박창섭.이봉춘이나 우익 중에서도 극우파인 이간수장이나 모두 선량하고 약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정신병자들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현실적인 인간일 뿐이다. 또 얼마나 가문과 가족에 충실한 인간들인가? 이남이나 이북이나 그런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게 현실 아닌가? 좌익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고 우익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실권을 잡은 자들은 따로 있다. 이들은 기생충이 아니라 바로 몸뚱이가 되어버렸다.’(274p)

 

 

 

수감생활은 고문의 연속이었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감옥에선 끊임없이 정찬우가 북한의 고위 관료이기 때문에 전향서를 쓰기를 원했다. 북한의 지도급이 전향하면 다른 포로들에게도 막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같이 10년형을 받았던 동지 심영숙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찬우는 전향서를 쓰게 된다.

 

내가 전향서를 쓰게 된 것은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나로서는 완전히 공산주의와 절연할 뿐만 아니라 민족진영에서 굳세게 살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고로 이미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이탈자가 된 것이며, 반겨하건 푸대접하건 자유진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나로서는 심각히 생각한 끝에 새로운 각오로 전향서를 썼다. 내가 전향한 동기는 이러하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그는 자신의 전향에 대한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서,

시간은 모든 것을 판정하는 가장 위대한 스승’(310p)이기 때문이다....

 

 

 

정찬우는 101일 새 정부 수립과 대통령 취임식을 맞이하여 가석방된다. 그토록 자유를 그리워했던 그가 출소한다. 하지만 자신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아버지는 반 년 전에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토록 자유를 그리워했던 정찬우. 하지만 모진 고문과 고생의 후유증으로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병명도 모른 채 숨진다. 떠나고 남은 유일한 혈육은 생후 5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의 엘리트 출신의 전쟁포로, 정찬우는 정말 우직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품에 권총을 품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해 명분을 찾지 못했기에, 그 권총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찬우의 인생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유의 향기를 제대로 잘 맡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정찬우가 말한다.

 

 

"정의로운, 정의의 전쟁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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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14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에서 비극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세월호 때도 가만 있으라고 했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판정하는 스승이라
기 보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괴자가
아닐까요.

저도 시간 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4 12:2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 제가 추천을 ㅋㅋ황송하여라 ㅎ
 

오늘은 저희가족이 도서관에서 책 많이 빌려 읽은 가족에 선정되어 상을 받았네요! 문상 3만원! 책 많이 읽는다고 상도 주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도서관이 있어 너무 행복한데 상까지 받아 더 행복한 날! 아이들과 햄버거 먹고 상 받은거 인증샷 날립니다! 년말에는 서울에서 액자도 보내준다고 하네요 상하고는 인연이 잘 없는 제가 독서로 상 받으니 너무 좋네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상도 받고 ㅎㅎ


이 3만원 문상으로 제가 쓸까요? 아니면 애들에게 양보??? 애들에게 양보해야겠죠 ㅎㅎ


오늘 빌린 책, 애들이 너무 많은 책을 빌려 제 책은 이 3권밖에 못 빌렸네요~예전에 내가 애들 카드 많이 애용했으니 ㅋ

앤디 위어의 <마션>,
<체 게바라:20세기 최후의 게릴라>,
김숨의 <한 명>.


근데 김숨의 위안부소설은 꼭 읽어봐야할 것 같아 대출했는데, 조금 두렵네요 지난번 <흐르는 편지>읽고 하루종일 힘들었는데...또 다시 그렇게 될까봐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읽어야 한다는 그 어떤 의무감에 빌리긴 했습니다...휴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서 떨립니다 아...이런 느낌 아실래나?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아침에 페이퍼 쓰고 괜히 칼 세이건 읽고 싶어 <코스모스>를 읽는데 이거 좀 재미나서 다 읽어버리고 싶다는. 과연...


독서대국으로 성장할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저희 가족이 그 운동에 일조하였음 합니다~모두 즐거운 저녁시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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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18-09-1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축하드립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2 20:43   좋아요 1 | URL
이런 기분은 또 첨이네요 3만원 보다는 으쓱한 느낌^^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ㅎㅎ 그래도 지금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라 생각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09-12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또 다른 상이었네요. 축하드립니다. 코스모스. 전 읽는 내내 경이로웠습니다.^^;
서재 멋있네요!

카알벨루치 2018-09-12 20:45   좋아요 1 | URL
저긴 반서재입니다 안 읽은거만 모아놨죠 언제 읽을지~다 사진의 조작입니다 부러워마소서~ㅋㅋㅋ

syo 2018-09-12 2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런 걸 주는 도서관도 대단하지만, 그걸 받는 가족도 대단합니다. 역시 카알님. ㅎ

카알벨루치 2018-09-12 22:11   좋아요 2 | URL
syo님도 저거 대번에 받을만한 분이란 걸 전 압니다 우리 광독서쟁이 syo님~오늘 가을의 이마 만지고 왔네요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8-09-12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축하드려요^^:) !

카알벨루치 2018-09-12 22: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억쑤로 부끄럽네요 이런 축하받으니 ㅡㅡ;😵

비로그인 2018-09-12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부럽네요ㅠㅠ 저는 절대로못할겁니다ㅋ

카알벨루치 2018-09-12 22:15   좋아요 2 | URL
할수 있습니다 저희집과 도서관은 20분거리~ㅠㅠㅋ

2018-09-12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9-13 1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3만 원은 너무 적게 느껴지네요. 책 읽는 가족에게는 최소 문상 20만 원은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09-13 12:27   좋아요 0 | URL
강추 좋아요! 백만개!!!!!!

AgalmA 2018-09-13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가 아니라 가족상이라 더 의미깊고 축하할 일이네요^^! 가족인데 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3 14:07   좋아요 1 | URL
그래도 감사감사~공짜는 무조건 감사감사 ㅎ AgalmA님 덕에 제가 읽고 바로 쓰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묵히고 숙성시켜 ~근데 글쓰기도 쉽지 않네요! ㅎ나중에 다시 AgalmA님 글 보러가야겠네요 저때 제대로 못 읽은게 있어~슝!

단발머리 2018-09-13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카알벨루치님^^
저희 가족도 두 번이나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었는데 우리에게 왜 문상은 없는 걸까요? 동네가 어디신가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3 17:35   좋아요 0 | URL
반땅할까요???ㅋㅋ 상도 줘야죠 상장만 주면 안되죠 두번씩이나 받으셨다니 선배님으로 모시겠습니당!

레삭매냐 2018-09-13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쨕쨕쨕 ~

축하드립니다. 예전에 무슨 독후감 대회에
응모했더니만 상장 하나 틱~하니 주던데 -

문상 너무 부럽사옵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3 21:17   좋아요 0 | URL
전 레삭매냐님이 책 나누고 기부하는게 넘 대단하시고 부럽습니다 ~전 동생들한테 책선물할까 준비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