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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지음, 정금나.김은정 옮김 / 삼인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의 앞부분에 연필로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더 강조되는 부분은 형광펜으로 그어야지, 하며 두가지 펜으로 책을 읽다 101페이지에서는 형광펜도 모자라 별표치고 ‘아니다 그냥 형광색 물에 통째로 페이지를 담그는게 좋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캐슬린 배리의 관점에 따르면 한국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거진 완성된 나라이지 않는가 하고.
베이글녀, 꿀벅지. 미디어에서 연예인의 특정 신체부위만을 따로떼어 이름 붙이는 것이 진심으로 칭찬이던 대략 10여년 전,(말라야하는 데 특정부분은 통통해야한다니, 무슨 소리없는 아우성도 아니고. 살을 빼라는 거여 말라는 거여 하나만 했어도 문제지만 그 두개를 다 하고 쳐자빠져있던 여혐의 시대...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화나가나서 하....) 나는 20대였다.
당시 한국의 젊은 여성에게 꼬리뼈 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된장녀’. 하필 그시기에 20대였던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머리가 비어보여서도 안되지만 남자를 이겨먹을 정도로 똑똑해서는 안되었고, 명품백은 커녕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였으며, 혹시라도 남자한테 얻어먹으면 큰일이 났다고 한다... 더치안하면 된장녀....되기 십상..(응?)
“난 너한테 얻어먹지도 않고, 데이트 했어, 그러니까 난 개념녀지^^??” 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때 남자들에게 마냥 얻어먹는 것이 불편했던(밥을 사주겠다고 하면, 커피라도 꼭 사야 속이편했던...)맥락에 뒤에는 혹시 된장녀처럼 보일까봐라는 자기검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웩......) 여하튼 이 환장할 멸칭에 대해서는 곱씹을 수록 화가난다.
‘모든 여성은 (사고팔 수 있는) 섹스’라는 관념이 기저에 깔리지 않고선 공감대를 사거나 유포가 될리가 없는 말아닌가.. 된장녀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쓸데 없이 비싼 여성이라면, 적정한 가격의(소위 가성비가 좋은) 여성이 ‘개념녀’였던 거다. 환장하겠는 게, 개념녀가 된장녀보다 좋은 게 아닌데도 나는 된장녀이고 싶지 않아서 개념녀인 척 했던 거..... 팔 생각이 없었는 데, 이미 가격표 붙여서 팔리고 있었던 거.. 온 세계가 가부장제의 매트릭스였어......@@...
싸고 비싼 것- 값을 매기는 건-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지는가? 남자다. 성을 사는 것은 누구인가? 역시 남자다. 된장녀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당연 남자일테다. 처음에 맞아맞아 하며 공감하며 이 용어를 사용했을 사람들? 다 남자였겠지. 그 때 그 남들은 여자를 대체 뭘로 보고 있었던 걸까.
뭐 어렵지는 않다.
“여자란? 답: 섹스해주는 기구(p.39)” 였겠지.
그런데 그때 우리는 왜 그 말에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던 걸까.
도리어 자신을 검열하며 때로는 먼저 나서서 나는 된장녀가 아님을 항변했던 걸까.
...
미러링이 없었다면, 메갈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p. 101)
“다른 방식은 있을 수가 없다. ... 매춘을 마치 성착취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곧 성적 비인간화가 본래의 인간 조건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
매춘은 일탈로 여겨져왔지만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그 일탈적 성격을 잃어가고 있는데, 왜냐하면 매춘이 점점 더 정상적인 섹스 경험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춘 여성이 자신의 행위를 노동이라고 변호하고 장려할 때 그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부과된 일탈의 딱지를 중화시키겠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을 위한 섹스의 교환을 그저 단지 섹스로만 취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섹스’라는 명명하에 포괄되는 모든 형태의 대상화와 비인간화가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섹슈얼리티의 매춘화가 완성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매춘의 섹스가 정상화되는 방식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상화와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속에서, 섹스의 경험은 성적 고양이 있었는지 아니면 성적 비하가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어진다. 매매춘의 정상화는 자유 의지 또는 동의만이 강조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산물이다.
많은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 옹호를 지지하는 이유를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에서 찾을 수 있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에는 매매춘의 낙인을 없애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비매춘 여성들이 매매춘을 옹호하는 것은 스스로와 매춘 여성 사이의 구분을 더욱 강조할 필요성에서 오는데, 특히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로 인해 성행위 자체에서는 두 집단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매매춘이라는 것이 ‘정상적인’ 섹슈얼리티가 단지 매매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비매춘 여성들이 자신이 창녀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특정 여성들을 매춘부라고 부르건 ‘성 노동자’라고 부르건 간에 어쨌든 그들을 분리된 범주로 묶어두는 것이다. 비매춘 여성들의 매매춘 옹호를 통해서, 비매춘 여성들과 매춘 여성들 사이의 분리가 유지된다. ‘성인들간에 동의한 섹스’(의 매매ㅡ옮긴이)를 하는 여성들이 ‘성 노동자’라고 불린다는 것을 앎으로써, 일반 여성들은 자신들이 결혼, 데이트, 익명적 관계, 무불 성관계에서 똑같은 섹스를 하더라도 창녀로 보이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되는 것을 안다.”
성매매는 많은 여성문제 중에, 나와 가까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그것은 정말로 내 문제이며 본질에 가까운 문제였다.
˝나는 된장녀가 아니야 = 나는 창녀가 아니야˝
매춘과 매춘이 아닌 것의 분리를 통해 여성은 자유로워지는 가?
아니다. 아니었다.
성매매 합법화/불법화/양성화? 매춘은 동의에 의한 섹스라고?
틀렸다. 전제가 틀린 질문이다.
질문을 돌려주자.
성을 구매하는 자는 누구인가.
성은 구매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아주 중요한 통찰을 준다.
매매춘 자체가 비인간화 된 섹슈얼리티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것은 동시에 모든 성착취(‘성착취란, 여성을 섹스로 환원시킴으로써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p.17)의 토대이자 조건이 된다는 것. 그것이 많든 적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매매춘이 존재하는 한 여성의 억압(혹은 가부장제)은 존속하리라는 것. 슬프게도 한국사회는 끝없이 섹슈얼리티를 매춘화하고 있다는 것.
매춘(혹은 성상품화)이 정상인 상태로 보일만큼.
성매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고들 한다. 가져다 대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의지의 문제겠지. 얼마전까지 나에게 있어 실현 불가능한 것 처럼 여겨졌던 것은 온국민이 다 함께 마스크를 차는 것이었다. + 그걸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 역시 매우 불편했고 불편하지만, 뭐 바이러스가 그만큼 퍼지기 쉽고 유해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너무 신기하게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조심하는 오늘들을 보며 따지고보면 불가능한 것도 없지 싶기도 하다.
사실 매매춘이야 말로 바이러스 못지 않게 해로운 폭력의 온상 같은 데, 법으로 딱 정리해버리면 안되나요? 이 책에 나오는 스웨덴 모델로다가. 현!실!적으로 온 국민이 모두 매일 마스크 쓰는 것 보다는 쉬운 것 같은 데... 아, 성구매자는 그게 안되나? 설마 마스크 쓰는 것보다 힘들라고? 모든 남성이 성매매를 하는 건 아닐 테니, 일부! 만 불편해도 참으면 되는 거잖여. 뭐? 그런데 진짜 경제가 마비될 수가 있다고? 설마? 코로나 보다 더?
"(p.46) 사회의 성적 탐닉 상태는 남성지배의 정치적인 성과이다. 성차별주의와 함께 지배는 성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여성의 몸에 전달된다. 섹스가 대상화되고 인간이 단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매개물로 환원될 때 성적지배는 몸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이것이 매매춘의 기본 토대이고 섹슈얼리티의 매춘화를 통해 매매춘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 P46
"(p.93) 성 착취를 촉진시키는 사람들이 매춘과 포르노에 참여하는 여성의 선택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성폭력에 대항하는 캠페인이 여성의 동의를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접근은 모두 남성의 성적 권력을 가부장적 억압의 체계, 즉 계급으로서의 남성들이 여성을 섹스 계급으로 환원하여 종속시키고 있는 체계로부터 분리시킨다." - P93
"(p.120)성 착취는 억압이다. 이 말은 성 착취가 피억압자 집단 안에서 수용되고 심지어 장려될 것임을 뜻한다. 억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형태의 억압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 그리하여 나는 동의의 문제나 강제의 개념은 법적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매매춘을 강간으로부터 잘못 분리시킨다고 본다. ... 여성들이 증명해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창녀가 아니라는 사실, 즉 그들은 섹스를 위한 몸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점점 더 "싫다는 말은 싫다는 것"(No means No)이라는 캠페인 수준으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들은 강간이 섹스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이 두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 취급하고 있다. 해방 투쟁은 이러한 얕은 수준의 요구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성적 권력에 전면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여성들이 우리의 온전한 해방을 쟁취하겠다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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