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라, 그는 죽지도 않았고, 잠들지도 않았다-----

그는 삶의 꿈으로부터 깨어났을 뿐----

폭풍우치는 환영 속에서 길 잃은 자는 바로 우리.

유령들과 무익한 싸움만 지속하며

미친 듯한 황홀경 속에서 우리 영혼의 칼날로

베어지지 않는 공허를 내리친다.---<우리>는 썩는다

마치 납골당의 시체들처럼. 공포와 슬픔이

날이면 날마다 우리를 비틀고 우리를 소모시킨다.

그리고 싸늘한 희망들이 우리들 살아있는 육신의 진흙속에서

벌레들처럼 우글거린다.


셸리의 Adonais의 한 구절을 읽다 입술을 깨물어 버렸다. 비릿한 피맛이 났다.


이건 좋지 않다. 아주 좋지 않다.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질병과도 같다. 이 시는! 이 시는 나를 병들게 한다.


병들어 아프지 않기 위해 난 황급히 운동을 시작한다. 매달린다. 철봉에

그리고 당긴다. 하나 둘, 셋....

승모근과 활배근은 아직 당길 힘이 남아있다.

하지만 허약해진 팔이 날 지탱할 수 없다.


어느새 난 약해져 버린 것이다.


예전엔 16-20개 가량이나 했었는데 이젠 고작 8개에도 바들거리는 내 몸이 싫다.

약해져서 너무나도 약해져서, 치기어린 사내의 글귀에도 흔들거리는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서서히 스는 세상의 녹으로부터 나를 지켜야 한다. 기름칠을 해야 해.

바로 지금부터!

입안에서 퍼지는 비릿한 피맛이 투쟁에의 결의를 다지게 한다.


강해질꺼다. 나는!


모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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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숭배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행복을 선사한다.


Written by Hermann Hesse


어제 봄비가 내렸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내리는 비는 보기에도 참 청승맞아 보였다. 빗소리 들으며 침대 속에 푹 파묻혀, 청승을 떨고 있노라 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의 나른하면서도 왠지 블루지(bluesy)한 목소리는 권태 2, 습관성/체질적 우울 1, 비로 인한 짜증 1을 믹싱 글라스에 넣고, 스터링(Stirring) 해 놓은 멋진 칵테일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뜬금없이 시작해서 뜬금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도 그랬다.

비도 오고, 꿀꿀해 보여서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란 노래를 불러주었다.

난 가사를 외우는데 영 젬병이라 언제나 그녀에게 첫 음을 물어보아야 한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해? 가사가 기억이 안 나네.”


“늙어서 그래. 푸후훗!”


잠시 후 그녀가 먼저 선창을 시작하면, 곧 내가 따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의 노래는 언제나 그녀의 선창으로 시작해 합창으로 끝을 맺는다. 갑자기 텐션이 오르고 기세가 붙어서 윤상의 ‘이별의 그늘’도 부르고,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도 불렀다. 그리고 이것저것 찝쩍이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이 노래 이영훈이 작사, 작곡한 거 맞지? 가사가 심상치 않어.

이 노래 분명 자기 얘기일 거야. 그치 않냐?”


“당연하지. 이런 가사 상상만으론 절대 못쓰지. 이거 체험이야. 생생한…….”


“라일락 꽃향기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되는 거 있잖아. 곡명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아! 맞다. 라일락도 봄에 피잖아. 한 오월 정도 되어서, 이 가사 보면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이 부분 있잖아. 분명히 사랑하는 연인이랑 5월에 헤어진 거야. 분명하다니까.”


“글치. 옛날 노랜 참 가사가 좋았어. 옛날 노래의 가사는 다 시였지. 한 편의 아름다운 시. 현진영이나 박남정의 댄스 가요도 가사 한 번 훑어봐.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였다니까.”


어쩌구저쩌구... 


“우리의 사랑도 언젠가 퇴색되거나 싸늘하게 식어버릴지도 몰라.

그걸 생각하면 참 서글퍼. 그렇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지.

내가 죽는 것이 가슴 아픈 유일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고 말이야.”


잠시 침묵...

 



“갑자기 나스타샤 킨스키가 생각나네. 참 예뻤는데... 테스에서 정말 죽였지 않냐?

앞으로 테스가 다시 리메이크 되어서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나스타샤 킨스키만큼 해내지는 못할 꺼야. 완벽했어. 테스 그 자체였지.”

 


“응! 정말 예뻤어. 모니카 벨루치와 더불어 여자인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황홀한 외모를 가졌지.

모니카도 말레나와 라빠르망에 나올 때엔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너무 아름다워서.”


“모니카도 최근에 보니까 많이 늙었더라. 서글퍼. 시간이라는 것만큼 냉혹한 것은 없지 않나 싶어. 나는 시간 속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라는 에밀 시오랑의 절규가 생각나는군.”


“시간은 모든 걸 앗아가 버리지만, 추억만은 앗아가지 못해!

름다움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지 못하지만,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지. 모니카 벨루치도 나스타샤 킨스키도 지금은 그 미모가 퇴색되어 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이 출연했었던 오래된 영화에, 그리고 그 시간에 함께 했었던, 자네의 빛났던 청춘의 뒷그림자에 여전히 여신의 모습으로 살아있을꺼얌.”


“호! 그 말인즉슨...”


“덕수궁 돌담길에, 그리고 언덕 밑 정동길에 여전히 오월의 꽃향기가 남아 있다는 소리야.”


“그래서 결론은?”


“결론? 결론은 있을 때 잘해 라는 소리야. 나 있을 때 나한테 충실하란 말이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알아들었어?”


“응. 알겠어”


그녀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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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神도, 그리고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Written by Horatius


나는 내 여가 생활의 대부분을 무용한 것에 쓴다. 지인(知人)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우관계를 넓혀 인맥을 쌓는다던지, 자신의 커리어(Career)를 개발하고자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던지 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상당히 유용한 일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다만 하는 일이라고는 짬나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듣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교우관계를 넓히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내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는데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관심은 있으되 게으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도 후달리며 살고 있는데, 거기다 채찍질까지 해야 되겠느냐? 정도의 속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최하층 노예들뿐이었다. 귀족들과 왕들은 내내 게을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마찬가지요.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걸 염두에 두고 있노라면 더 빨리 소모하고, 더 빨리 죽어 나자빠지라는 채찍질이 곱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다.


근데 나보다 훨씬 영악하고 품위 놓으신 분들까지 예전에 이런 생각을 다 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버틀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조르쥬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을 참고 하시면 되겠다.


지금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것은 그런 유용한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무용한 것들 때문이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들에 내 유용한 가치들을 소모하고 있는데도, 이것들이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게 찬탄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한다.


온갖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종종 만들곤 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서 이렇게나 솔직히 밝히고 있다.


무용한 사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단 하나의 구실은, 우리가 그것에 강렬히 찬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상당히 무용하다.


암! 그렇고말고. 이런 쓸데없는 것에 내 유용한 가치(시간, 돈)를 투자하고 있는데 즐거움이 아닌 분노와 희열이 아닌 짜증이 몰려온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력이 차츰 감퇴하고 있는 것을 요즘 느끼기에, 이젠 노트를 하나 마련해 목록을 작성해 두어야 겠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 분노가 어느덧 퇴색해버려 망각해 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벽에 매달아 놓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날을 벼리던 월왕 구천(句踐)까지는 안 되더라도 말이지.


목록의 맨 위에는 이렇게 적어야지.


1.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작가(두 번 다시 이 분노를 잊지 않도록)


 아멜리 노통브, 파울로 코엘류, 마루야마 겐지, 호어스트 에버스, 요시모토 바나나, 퍼트리샤 콘웰, 제임스 패터슨, 미키 스필레인, 공지영...


2. 이젠 그만 사도 좋을 작가(이젠 약발 다 됐어!)


알랭 드 보통,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파트리크 쥐스킨트...


3. 긴가민가 (아직은 조금만 더 지켜볼까)


빌헬름 게나찌노, 장 폴 뒤부아, 조너선 사프란 포어, 로버트 실버버그, 수잔 손택, 강유원, 실비 제르멩, 줄리언 반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슨 매컬러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존 버거,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 파스칼 키냐르, 움베르토 에코, 러브크래프트, 미셸 투르니에,


4. 출판되어서 나오는 대로 다 사자.


곰브로비치, 페터 한트케, 밀란 쿤데라,


예술가에게 혹독한 비평이나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감내해야 할 일이다. 다른 공산품이나 서비스와는 달리 이건 반품내지는 환불이 안 되는 거니깐 말이지. 보고 났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를 정도로 한심한 작품이었다던 지, 잠이 쏟아질 정도로 지루했다고 해서 반품이나 환불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나? 각자의 취향의 다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건 옷이나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지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불공정 거래란 말이지. 선불로 땡겨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 온갖 혹독한 비난과 비평에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지. 예술가라는 직업은 말이야. 이번 목록은 작가에만 국한했는데 말이지 다음에는 연주자나 공연가 쪽으로도 범위를 넓혀야 겠다. 이건 무용한 것들에 관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유용한 작업으로 남을 듯하다.


ps>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임을 미리 밝혀 두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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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 코에료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 바나나도 거의 동의. 보통씨는 너무 좋아서 제외. ^^ 나머지 작가들은 제가 많이 접해보지 않은 관계로 보류.

보르헤스 2007-02-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el/ 리스트 다 만드시면 저두 구경가도 되겠죠?
아프락사스/알랭 드 보통 저두 참 좋아했습니다만, 어느때부터인가 늘 같은 얘기만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꽃노래도 삼세번이면 질린다던가 뭐 그런거죠 ^^:
 

 

나에게 심판을 가하는 그대들의 공포는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보다 훨씬 크구나.


Written by Giordano Bruno (異端訊問에 회부된 그가 화형장에서 적들에게 남긴 유언 중)


한 인간이 있다.


그는 한 여성에게 그가 가진 모든 증오와 혐오와 냉소를 퍼부어 주었다. 모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그녀는 정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참을 수 없는 비아냥과 조롱이 더해졌다. 그런 직후에 그는 그녀에게 가한 모든 증오와 냉소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어떤 정의”를 위해서라고 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강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내세우고자 하는 정의는 모두를 위한 것이나, 대중은 어리석은 것이기에 희생양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정의의 제단을 올려다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자신은 그 누구에게나 공정한 자이며, 정의를 위해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서슴없이 베겠다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정의를 위해서라면 비록 연맹을 한 자라 할지라도 언제나 빈틈을 보이거나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 즉시 “악즉참(惡卽斬)” 해버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나서 언제든지 빈틈이 보이면 그 악한 본성을 기꺼이 드러내려는 성향을 가진다.”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강인한 철혈의 법을 적용하는 것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전히 희생자의 피가 흐르는 제단에 우뚝 선 그는 자신의 철혈의 법을 선포했다.


1. 지금부터 다른 마을에 가서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발설치 말라.

2. 다른 마을에서 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발설하거나 적어둔 이는 그 즉시 삭제토록 하라.

3. 집에서 만든 물건은 마을의 시장에 내놓되 다른 마을의 시장에 내 놓아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마을에 또 다른 집을 소유한 자는 그 집을 그대로 소유하게는 허용하나, 그 집의 물건을 마을내부로 반입할 수는 없다.

4. 우수 상품으로 선정되어 마을 시장 상을 획득한 물건 또한 그 마을 내부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5. 위의 계명을 어기는 자는 파렴치한으로 그 즉시 악즉참한다. 누구도 그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바이다.


법이 선포되자 마을 사람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전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법이었고, 마을 사람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선포였기 때문이었다. 소란과 번민이 계속되자 그는 “법 적용을 거부하는 자는 정의롭지 못한 자이며, 뒤가 구린 자임이 틀림 없다.” 라고 외쳤다. 또한 이들을 감싸는 이 또한 그들의 잇속을 대변하는 자이며, 패거리 주의에 빠져있는 자다며 고함치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 몇이 나서 “왜 당신의 법이 정의로우며 따라야 하는 지를 말해주시오.” 라고 하자 “나는 어리석은 너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니라.” 라고 말하며 나는 이 마을에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왔노라고 외쳤다.


그럼 그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를 어디 한번 보여주시오 라고 마을 사람이 말하자 그는 그 말에 대답치 아니했다. 그리고는 “나는 이미 너희에게 보여주지 않았느냐. 내가 그 무기를 들고 찌르자 견디지 못한 마녀는 이미 달아나지 않았느냐. 그 여자가 정의로웠다면 내 무기를 능히 견뎌냈으리라.”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마을 사내가 하나 나서 “내 보기에 그건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가 아니라 모욕이라는 이름의 무기였소.” 라고 하자 그는 냉큼 나서 “이 사내야 내보기엔 너 눈이 멀었는데 가당찮게 네 놈이 무기를 볼 수는 있겠느냐!”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무기는 논리와 이성이라는 이름의 무기가 아니라 모욕이라는 이름의 무기였다. 이에 사람들이 나서 “이 거짓 선지자야! 당장 너의 무기를 보이지 아니하면 너를 마을에서 추방하겠다.”고 하자 그는 슬그머니 마을에서 꼬리를 감췄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


“이보게나. 내가 알라딘 마을이라는 곳에  갔었는데, 그 곳엔 여전히 어리석고 착하기만 할 뿐인 멍청이들이 살고 있었다네. 내가 한 칼을 휘두르자 다들 어쩔줄 몰라하더군. 내 친히 나서 그 마을을 이미 아작내었으니 관심들 끊게나.” 하며 혼자 희희낙락하였다.


첨언해서


주관 없는 객관이 있을 수 없으며 객관 없는 주관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이미 자신의 주관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세계이다. 자신의 정의가 반드시 모두의 정의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그 인간이 알아주었음 한다.


또 하나!


성악설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성악설이란 말 그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 난다라는 것인데 이는 그 전제에 고정불변하는 절대 악의 실체를 인정하는 가설이다. 절대의 선과 절대의 악이 실체하는 것이었다면, 철학의 모든 문제는 이미 2000여년도 더 전에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악이 그 악의 실체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 모든 원인을 그 악의 실체에 돌려버리면 간단히 해결되겠지. 하지만 선한 의도로 행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악한 행위로 탈바꿈되어 버리는 일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세계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또한 의도를 전혀 가늠할 수없는 자연의 대재앙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선과 악의 문제는 여전히 철학의 근본문제로 남겨진 것이다.


Nos habitat, non tartara, sed nec sidera Cooli:

Spiritus, in nabis qui viget, illa facit.


성악설이라... 그대 다시 한 번 나를 웃겼다.


둘!

그만큼 공공의 선과 윤리를 강조하며, 단 몇 십원 몇 백원의 비리에도 몸을 떠는 당신은 한 여성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을 가했다. 설사 그대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모욕을 가하고 혼자 낄낄대는 모습은 나에게는 심히 불쾌했다.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두는 법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려보라. 그대에게는 한바탕 비웃고 지나쳐버릴 가벼운 일과에 불과했는지는 모르나 그 상처를 받은 이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명심하라.


셋!

내가 함부로 당신을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가차없이 베어버리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당신은 어쩌면 고독 속에서 절망해서 야수성만을 길러온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난 느꼈다. 철학자 라울 바네켐은 “절망하는 의식은 질서를 위협하는 자가 되게 한다.”라는 말을 남겼지. 이번의 중복리뷰 사태를 지켜보면서 난 그 진리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니체는 “인간은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비극과 투우와 십자가의 처형을 즐긴다. 그리하여 인간이 스스로 지옥을 안출해 내었을 때, 보라! 그곳이야 말로 그의 지상천국이었다.” 라고 그의 저서에서 썼었지. 니체가 말한 인간의 모습과 당신의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언제까지나 달아나 보라! 그대의 고독 속으로. 그곳엔 절망만이 존재할테니까.


넷!

알라딘을 아작내었다고 혼자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몽테뉴가 떠오르더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당신이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당신 엉덩이 위일 뿐이야. 그렇지 않나?


언젠가 리뷰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정말 잔인한 폭력은 견딜 수 있어도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나 봅니다. 비록 내가 틀리고 그대들이 맞다 하여도, 단지 중복리뷰를 공론화하기 위해 몇 몇의 희생자들을 골랐다고 하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도 옳지 않게 느껴집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소수는 희생되는 것이 당연한 겁니까? 만약 그 소수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그 때에도 가차 없이 칼을 자신의 목에 겨누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심판의 공포에서 두렵지 아니하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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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번 논쟁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보르헤스님을 '제대로'만난 것입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추천.

보르헤스 2007-01-1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번 논쟁을 통해서 아프락사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즐찾해두었습니다. ^^

antitheme 2007-01-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앞으로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07-01-1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어떤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조용히 추천만 누르겠습니다.

2007-01-15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1-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글입니다. 성악설을 지지 운운했을때부터 저는 위서가라는 작자의 글을 주의깊게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자체가 굉장히 나이브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자기는 논리적이라는데.. 전혀 못느끼겠고.(장광설과 논리적인 것을 착각하고 있는 듯) 자신과 뜻이 다른사람은 황빠니 된장으로 비약시키니 인간성도 글러 먹은거 같고, 성악설이라..실컷 웃읍시다. (프로이트가 굉장히 억울해하겠는걸? 분석할 것도 없는 걸 분석하는데 골몰했으니 ㅋ )

paviana 2007-01-1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글도 잘 읽었어요. 논리로 무장했다고 주장하는 무지하게 어렵고 몬 말인지도 모르겠는 글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네요.^^
글구 테츠님 아름다운 이미지만큼 댓글들도 어찌나 아름답게 하시는지 님에게도 감동했어요.ㅎㅎ

보르헤스 2007-01-1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titheme 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배워야지요. 즐찾해두었습니다.
다락방/ 가끔씩 제 서재에서 뵙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속사이신 님/ 네. 저는 그 사람에게 혐오와 조롱대신 연민을 보냅니다. 그 사람의 삶은 아마도 사막같은 황폐함만이 있을 듯 하네요. 누구도 믿지 못한다니... 길을 걸을 때도 항상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겠지요. 누가 나를 찌르지는 않을까하고..
테츠님/ 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단단한 감옥에 스스로 자신을 가둔 자는 갇힌 창 살 밖의 풍경만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전부인 걸로 착각하며 살아가죠. 불쌍한 사람입니다.

클리오 2007-01-1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운 글들 속에서 보르헤스 님 글들을 참 인상깊게 봤습니다. 제가 하고싶었던 말들도 이곳에 몇몇 있군요.. 덕분에 님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 일이 제게 좋은 책동지를 잃은 손해만 끼친건 아니군요..(아! 이걸 위안이라고..) 자주 뵙겠습니다.

보르헤스 2007-01-1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 다소 개인적 감정에 치우친 글이라 읽기에 거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클리오님/ 떠나신 분은 참 안타깝습니다. 여대생님은 서재는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두 클리오님을 알게 되서 기쁘게 생각해요.
 


 
 

 

 

그 여자


이 밤도 역시 그녀는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 올 그녀의 인생도 고독한 밤들의 기나긴 연속처럼 생각되었다.

결코 구겨지지 않는 시트 속의, 긴 병(病)이 묻어나는 그 어느 침울한 고요 같은 고독한 밤들의 연속.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만져지는 미지근한 옆구리라도 있는 것처럼 팔을 본능적으로 뻗쳤다.

그리고 그 누구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


그는 그녀만을 사랑했다.

다만 오늘 저녁은 그녀와 헤어지면서 그녀의 슬픔 같은 것을 느끼긴 했지만 뭐라 말해주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녀는 그에게 몇 마디를 막연히 물었었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없는, 아무에게도 결코 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와 남아 있어야 했고 그녀와 육체관계를 가졌어야 했다.

그것이 또한 여자를 안심시키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걷고 싶었고, 길을 쏘다니고 싶었으며, 방황하고 싶었다.



Written by Francoise Sagan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사랑하는 그녀의 쓸쓸한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난 성급히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마치 손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나는 뭐가 그리도 급했던 걸까? 왜 그랬을까?


침대에 가만히 누워 그녀를 떠올려본다.

난 분명 그녀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막연한 단절감이나 괴리감이 나와 그녀에게선 느껴진다. 난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무언가 말해주어야 할 것 같고,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고, 덜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왠지 모르게 답답하다. 그래서 난 그녀와의 통화를 성급히 끊어버린 것이다. 지금 이 시간 후회하고 있지만, 다시 전화기를 들기엔 그 무게가 납처럼 무겁다.

그녀는 외로울까? 아마 분명 그럴 테지. 하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만 하는걸까?


오디오의 play 버튼을 눌렀다. Ben이다!

 


 

고즈넉이 들려오는 풍부하면서도 힘찬 블로잉과 ‘츠스스’하며 겨울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리의 여운.

Ben webster, 그의 Tenor Saxophone은 벨벳과도 같은 소리를 낸다.’ 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느린 발라드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하고 깊은 사운드가 질 좋은 시폰 벨벳처럼 몸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풍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겠지.

 

어느덧 Ben 이 What's New를 부르기 시작했다.


 

What's new?

How is the world treating you?

You haven't changed a bit

Lovely as ever, I must admit


What's new?

How did that romance come through?

We haven't met since then

Gee, but it's nice to see you again


What's new?

Probably I'm boring you

But seeing you is grand

And you were sweet to offer your hand

I understand.


Adieu!

Pardon my asking what's new

Of course you couldn't know

I haven't changed, I still love you so


떠나보낸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그의 근황을 물어보며,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의 가사지만

나에겐 ‘당신은 물론 모를 테지만, 난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마지막 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그래 비록 난 잠시 그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지만,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그녀를 만나야겠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볼 거야.


what's new?

 

그리고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

 



로트렉의 the kiss의 연인의 사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그는 그런 이유로 잠시 그녀의 곁을 떠나있었을 테지.

그리곤 그녀를 정말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다시 돌아온 거야. 사랑하는 그녀의 곁으로.

그런 그를 그녀는 따뜻하게 맞아준거야.

그녀의 눈물이 나에게 그걸 말해주는 것 같아

 

 I haven't changed, I still love you so

 

BEN 당신도 나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거지?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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