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 밤도 역시 그녀는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 올 그녀의 인생도 고독한 밤들의 기나긴 연속처럼 생각되었다.
결코 구겨지지 않는 시트 속의, 긴 병(病)이 묻어나는 그 어느 침울한 고요 같은 고독한 밤들의 연속.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만져지는 미지근한 옆구리라도 있는 것처럼 팔을 본능적으로 뻗쳤다.
그리고 그 누구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
그는 그녀만을 사랑했다.
다만 오늘 저녁은 그녀와 헤어지면서 그녀의 슬픔 같은 것을 느끼긴 했지만 뭐라 말해주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녀는 그에게 몇 마디를 막연히 물었었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없는, 아무에게도 결코 줄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와 남아 있어야 했고 그녀와 육체관계를 가졌어야 했다.
그것이 또한 여자를 안심시키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걷고 싶었고, 길을 쏘다니고 싶었으며, 방황하고 싶었다.
Written by Francoise Sagan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사랑하는 그녀의 쓸쓸한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난 성급히 수화기를 내려버렸다.
마치 손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나는 뭐가 그리도 급했던 걸까? 왜 그랬을까?
침대에 가만히 누워 그녀를 떠올려본다.
난 분명 그녀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막연한 단절감이나 괴리감이 나와 그녀에게선 느껴진다. 난 그 감정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무언가 말해주어야 할 것 같고,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고, 덜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왠지 모르게 답답하다. 그래서 난 그녀와의 통화를 성급히 끊어버린 것이다. 지금 이 시간 후회하고 있지만, 다시 전화기를 들기엔 그 무게가 납처럼 무겁다.
그녀는 외로울까? 아마 분명 그럴 테지. 하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만 하는걸까?
오디오의 play 버튼을 눌렀다. Ben이다!

고즈넉이 들려오는 풍부하면서도 힘찬 블로잉과 ‘츠스스’하며 겨울 안개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소리의 여운.
‘Ben webster, 그의 Tenor Saxophone은 벨벳과도 같은 소리를 낸다.’ 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느린 발라드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하고 깊은 사운드가 질 좋은 시폰 벨벳처럼 몸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풍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겠지.
어느덧 Ben 이 What's New를 부르기 시작했다.
What's new?
How is the world treating you?
You haven't changed a bit
Lovely as ever, I must admit
What's new?
How did that romance come through?
We haven't met since then
Gee, but it's nice to see you again
What's new?
Probably I'm boring you
But seeing you is grand
And you were sweet to offer your hand
I understand.
Adieu!
Pardon my asking what's new
Of course you couldn't know
I haven't changed, I still love you so
떠나보낸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그의 근황을 물어보며,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의 가사지만
나에겐 ‘당신은 물론 모를 테지만, 난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마지막 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그래 비록 난 잠시 그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했지만, 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해.
그녀를 만나야겠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볼 거야.
what's new?
그리고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

로트렉의 the kiss의 연인의 사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 그는 그런 이유로 잠시 그녀의 곁을 떠나있었을 테지.
그리곤 그녀를 정말 사랑한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다시 돌아온 거야. 사랑하는 그녀의 곁으로.
그런 그를 그녀는 따뜻하게 맞아준거야.
그녀의 눈물이 나에게 그걸 말해주는 것 같아
I haven't changed, I still love you so
BEN 당신도 나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었던 거지?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