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xes have a hole and bird of the air have nets.
but The Son of Man has no place to lay his head.
written by Jesus Christ
Whoo! 그래 오늘 크리스마스다. 근데 나 지금 혼자가 돼 버렸다. 뭐 그렇게 됐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혹은 그것이 일시적이든, 잠정적이든, 영구적이든 간에 이 험한 세상에 달랑 혼자 몸으로 내팽겨질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하나 불러주는 사람 없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불러주는 사람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는 거다.
모비 딕의 이스마엘(아브라함의 버림받은 아들, 방랑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처럼 입술이 근질근질해지고 텁텁함을 느낄 때, 동짓달의 장마를 만났을 때처럼 마음이 울적해질 때, 울적한 마음으로 괴로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남의 모자라도 벗겨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는 한시라도 빨리 문을 박차고 나가는 거다.
난 곧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물은 별거 없다. 혹독한 밤의 기운을 잠시나마 막아줄 캐시미어 목도리 하나, 등산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다가 내가 다시 빼앗은 손난로 하나, 랭보의 시집하나, 그리고 몸을 데워줄 와인 한 병! 아 음악도 빠질 수 없지. CDP도 챙기자.
달랑 은전 2개로 대서양을 거쳐 일본해까지 가버린 이스마엘에 비하면 난 꽤나 준비가 투철했다. 크흐흐흐 자 이제 방랑의 시간이 왔다.
아! 막상 나와 보니 무지 춥다. 젠장할! 이런 날씨라니 나온 지 5분 만에 투철했던 내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벌써 코끝이 찡하고 귀때기가 아프다.
휘파람을 불어볼려 했으나 입이 얼얼하니 벌써 굳었다. 나지막하게 랭보의 나의 방랑을 읊조려본다.
나의 방랑
쏘다녔다. 터진 주머니에 두 주먹 쑤셔 넣고,
짤막한 외투도 이상적으로 헐었고,
하늘 아래 걸어가던 나, 시의 여신이여 나는 그대의 충복이었다오.
오, 릴라! 내가 꿈꾸었던 찬란한 사랑들이여!
내 단벌 바지에 커다란 구멍 하나,
꿈꾸는 엄지동이, 이 몸은 발걸음마다
시를 뿌렸노라, 내 여인숙은 큰곰자리에 있었다오.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대고,
길가에 앉아 내 별들의 몸짓에 귀 기울이곤 했다오.
9월의 이 멋진 밤, 나는 이마에 떨어지는
이슬방울등 속에서 정력의 포도주를 느끼곤 했다오.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내 가슴 가까이 한쪽 발을 치켜들어,
상처 난 내 구두의 고무 끈을 나는 리라처럼 잡아 당겼노라!
톨킨의 호빗이라도 된 양, 시를 읊다보니 노래도 절로 나왔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차디찬 대기가 내 허파로 들어오자 짜릿하면서도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차디찬 공기가 뜨거운 내 심장과 폐를 만나 증발무(蒸發霧)라도 만드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허파에 공기방울이 차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죽는다면 기네스에 오를 수 있을지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벌써 고지는 눈앞에 섰다.
여긴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난 시추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었다. 그녀석이랑 종종 오르곤 했던 동네 야산 아니 언덕 쯤 되려나? 나무벤치가 하나있고, 레몬빛 가스등이 하나 서 있다. 그 녀석은 종종 여기서 소변을 보곤 했었는데... 문득 그 녀석이 그리워졌다.
품안에서 어느새 따뜻하게 데워진 와인 한 병을 꺼냈다. Bottle by bottle! 여기서 오줌을 싸곤 했던 그 녀석을 향해 건배!
꺼내든 와인은 Jacobs Creek Chardonnay Pinot Noir. 바로 요 녀석이다.
<사이드웨이>란 영화에서 피노-누아 품종에 관해 주워듣고,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 사 놓았었다. 마일즈란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피노는 까다롭고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이지만 그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와인이지. 신경 안 써줘도 아무데서나 자라는 카베르네와는 달라. 끊임없이 신경 쓰고 돌봐줘야 하는 골치 아픈 녀석이지만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맛을 지녔거든.”
헹! 정말 멋지지 않아? 난 풍류라고는 전혀 모르는 따분한 녀석이지만, 이런 소리를 듣고도 그냥 지나치는 무감각한 놈은 아니다. 한때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사과향 칼바도스를 사기위해 온 동네 주류shop을 뒤진 적도 있었다. 결국 아직 못 먹어봤지만...
파아란 침묵은 어느새 나랑 레몬빛 가스등이랑 지금은 곁에 없는 그 녀석에게도 내려왔다.
지금 모두가 고요하다.
인간은 침묵 속에 있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말이든 애써 하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자신의 내면으로 가만히 침잠해 들어가 나를 바라봐야 할 그 시간이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피카르트는 말했던가.
음악의 소리는 말의 소리처럼 침묵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평행하는 것이며,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하기 시작하는 침묵이라고 말이다. 음악의 마지막 소리가 사라졌을 때보다 침묵이 더 잘 들릴 때는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난 그가 말했던 그 절대의 침묵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난 가만히 CDP 를 꺼내어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Gerry Mulligan의 <Night Light>!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의 밤에도 정취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제리 멀리건의 이 음반만큼 그 정취를 잘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Bee Bop이나 Hard Bop의 통렬하고도 찌를 듯한 열정은 여기엔 없다. 이른바 Westcoast Jazz라고 불리는 Cool의 무덤덤함에 별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법 하지만, 저항과 반역이 항상 들끊는 열정과 분노로만 나타낼 수 없는 것처럼, 무서우리만치 차갑고 날카로운 냉소 또한 저항과 반역의 한 방법인 것이다.
메마른 잿빛 도시의 밤!
밝지만 따스한 온기를 줄 수 없는 네온의 불빛처럼 그렇게 Cool은 찾아온다.
그것이 쿨의 진정한 매력이다.
고독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있을 때 찾아오는 법이 아니던가. 지금 혼자 있는 나보다 함께 있을 그대들에게 고독이 찾아오지 않을는지...
지금 고독을 느끼는 그대들에게도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