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였나 낮에 낮잠을 조금 잔 관계로 밤에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난 이럴 경우 2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책을 꺼내 읽는 경우이고 또 하나의 경우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는 것이다.

특히나 유난히 잠이 오지 않을때 읽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나에게 있어선 최고의 수면 치료제이다. 읽는 도중 몇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느샌가 보면 난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하나의 해결책은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는 경우인데 이럴 경우는 책을 읽는 것 보다는 조금 귀찮아진다.

우선 음악을 듣는 경우는 CD를 꺼내기 위해 침대에서 어쩔수 없이 일어나야만 하고 한동안 뭘 들을까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기 때문에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해야 한다. 또한 밤인 관계로 어쩔수 없이 헤드폰을 껴야 하는데 이 헤드폰이 문제다. 헤드폰을 끼게되면 몸을 뒤척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자면서 자주 몸을 뒤척이는 사람일 경우에는 절대 해서는 안될 행위이기도 하다(특히나 내 여자친구처럼 옆으로 누워자는 사람은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한다.또 은근히 소심한 면이 있는 나는 헤드폰을 자주 끼면 난청이 될 수 있다는 경고기사를 읽은 후로는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헤드폰을 피하기도 한다.)

 

맨눈으로 밤을 지새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 때 나의 Best Choice는 언제나 푸르니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prelude를 감동에 떨며 듣다가도 3번의 sarabande 쯤 가면 난 어느새 잠들어 있다.(대체 난 언제쯤이나 가야 맨정신으로 무반주 첼로조곡 전부를 들을 수 있을 건지 원! )

 

잠이 오지 않아 TV를 어쩔수 없이 봐야할 경우 난 주로 홈쇼핑을 주로 본다. 난 원래가 홈쇼핑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여자친구가 홈쇼핑을 즐기는 관계로 자연히 그쪽 세계(?)를 알게 되었고 또 그게 은근히 감칠 맛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 후론 심심할때면 홈쇼핑을 본다. 물건 팔아볼려고 온갖 미사여구로 무장된 호스트들을 지켜보는건 웃찼사나 개콘을 보는것 보다 나한텐 더 큰 재미를 가져다 준다.

 

홈쇼핑을 보다가 지겨워져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나에게 충격적인 영화로 다가온게 있었으니 그게 바로 <허공에의 질주>였다. 볼려고 하던 영화가 아닌지라 극 초중반부터 보게 되었는데 보는 도중 "아 물건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왜 이걸 이렇게 늦게 봤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예전에 리버 피닉스가 약물중독으로 요절했을때 그저 아이다호의 그 압도적으로 잘생긴 배우 정도로만 여겼는데 이 영화를 본 후 새삼 리버 피닉스의 영화들을 찾아 보게 될 정도로 강력한 영화로 다가왔다. 영화 자체로도 뛰어났지만 음악은 더 훌룡했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특히나 리버가 줄리어드 오디션에서 친 모차르트의 Fantasy는 그가 그저 그런 배우라고 기억되기엔 너무 뛰어난 것이었다. 게다가 영화 전반에 흐르는 James Tylor의 의 멋진 가사와 함께 감동적인 엔딩은 영화의 주제를 실로 멋드러지게 압축해 보여주었다.

 

극 도중 리버(대니)가 음악 선생님인 필립스의 집에서 실내악 연주회가 열려 찾아가 볼려고 하자 리버의 아버지는 부르주아지의 속물근성이 판치는 곳이라며 가지말라고 강압적으로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1988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서도 이른바 Classics이 어느새 부르주아지의 음악으로 대변되어버린 현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다가왔다.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고전음악(당시에는 아니었겠지만)을 듣는 청중은 자유로웠다. 음악을 듣는 내내 떠들어 대는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먹을 것을 파는 사람도 있었고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례해보이고 난잡해보인다.(아마 오늘날의 가수 콘서트장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진정한 음악의 역할이 아닐까한다.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 청중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음악을 이해시키는데는 그들이 그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가 하는데 있지 않을까?

 

토스카니니가 처음으로 자신의 연주회에서 무례하게 떠들거나 야유를 보내는 청중을 쫓아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게 관행이 되어버려서 고전음악을 들으러 갈때는 격식을 차려야만 하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모든 사람의 음악을 소수의 사람의 음악으로 스스로 한정짓기 시작한  Classics은 정말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듣는 음악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영화에서 리버는 줄리어드의 오디션에 평범한 캐주얼 복장으로 참여한다. 다른 연주자들은 모두 격식을 차린 정장차림이지만 그는 그냥 면 Shirts에 청바지,겨우 보잘것 없는 작은 넥타이만 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 터지는 음악은 절대 Casual 하지 않았다. 오디션이 끝난 후에 심사위원이 말한다. "당신의 재능은 정말 뛰어난데 도대체 누구에게 사사받았냐고?"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사사받지 않았다. 그냥 그의 어머니에게 배웠을 뿐이고 스스로 재능을 닦아왔다. 그는 말한다. "이사를 자주 다녀서 여러사람에게 배웠다고...하지만 당신이 아는 유명한 누구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없다고."

 

얼마전 고클에서 양성식이라는 연주자가 이준호라는 청중이 올린 공연후기담으로 발끈해 한 적이 있다. 물론 연주자도 사람이기에 발끈해 하는건 결코 흠이 될 수 없다. 또한 이준호라는 군인이 올린 글 또한 다소 무례한 언사로 쓰여져 있는데다 오해의 소지도 충분히 줄 수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난 두 사람의 글이 아닌 그 두 사람의 글 뒤에 올려져 있는 리플을 읽다 깜짝 놀랐다.

 

자신도 음악을 전공하고 있다는 한 여성분이 올린 글에는 <청중의 횡포>라는 말이 쓰여져 있었다. 언제부터 클래식이 아니 음악이 일방적으로 청중에게 주어지는 하사품이 되어 온 것인지.. 음악은 창조자와 청중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던가? 위대한 작가였던 버지니아 울프의 우울증이 가장 심각해졌을 시기는 자신의 작품이 발표되고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 때가 아니었던가?

 

요즘처럼 이렇게 청중이 철저히 무시되고 간과되어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전문 평론가의 한 줄 기사에는 촉각을 곧두세우면서 가장 직접적인 교감을 나누어야 할 청중의 의견이나 반응은 마치 음악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무식한 자들의 헛 메아리처럼 치부해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아닌 우려가 내마음을 사로 잡았다. 양성식과 이준호의 논쟁의 핵심은 음악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연주자는 자신들이 전문적으로 몇년에 걸쳐 스코어를 공부하고 연주해 왔기 때문에 그들이 더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다는 것이고, 청중은 이런저런 cd나 매체를 통해 다년간 그 음악을 들어왔기 때문에 청중들도 작곡가의 의도 쯤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두 사람 모두 틀렸다. 멘델스존의 의도는 그 자신 밖에 알지 못한다. 음악이든 책이든 일단 창작되어 공개되면 그것은 모두의 것이다. 실제로는 10정도의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다른 가치관과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창작을 무한대로 확대 재생산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핵심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에서는 네루다가 자신의 시를 연애편지에 무단 도용해 문제가 생기자 마리오에게 그 시는 내 것이니 함부로 여기 저기 쓰지 말라고 하자 마리오는 "아니오 선생님! 그 시는 그 시를 읽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항변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청중에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지 존경받아야 할 존재는 아니다. 연주자로써의 존경은 청중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모든 연주자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클림트의 키스

얼마전 신문기사에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전반에 불고 있는 말러 열풍에 대해 소개되었다. 이 신문기사에 의하면 오늘날의 말러 열풍은 전세계적이며 유수의 레코드 레이블,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에 의해 말러의 음악이 녹음되고, 연주되며, 공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부천 필하모니의 말러 사이클 연주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나또한 카페에서 감감님(deeew)의 엘리아후 인발의 공연후기담을 읽고 한동안 듣지 않았던 말러 CD를 꺼내 들었을 정도니까 새삼 말러 열풍에 대해 의심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세계는 말러를 듣고 연주하고 남기고 있다. 어떤 매체로든지 말이다.

신문에선 "오늘날 왜 말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사후 90년이 지나 100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말러의 음악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라고 쓰고 있었다.

 

오늘날 왜 말러인가? 사람들이 베토벤과 모차르트만 듣다 이제 그만 질려 버린걸까? 아님 전세계의 언론/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 자본에 의해 유태인 작곡가에 대한 과잉된 홍보물의 결과일까?( 그동안 말러를 열심히 소개하고 연주한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레너드 번스타인 모두 유태인이다.) 그 모두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만이 전부인건 아니다. 오늘날 불고 있는 말러 열풍의 본질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한다.

 

말러는 당대에 성공한 지휘자 겸 작곡가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 자신을 설명할 때 항상 자신은 고독하며 불행하다고 느꼈다.

말러 자신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나는 고향이 없다. 세가지 의미에서 모두 그러하다. 즉 오스트리아에서는 보헤미안으로서 이방인이었으며, 독일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이방인이었고, 유럽에서는 유태인으로서 이방인 이었다."

 

말러가 30세에 궁정 오페라단의 총감독으로 임명이 되자 당시 빈의 분위기는 당혹 그자체였다. 이 때의 분위기를 잘 설명한 자료가 슈테판 츠바이크(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입니다.^^)의 <어제의 세계>라는 자서전에 잠시 나온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사람에게 제일류 예술기관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당시 빈의 당혹스런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해주고 있다. 그만큼 말러는 당시에 유명인사였고 성공한 예술가였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을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말러의 정신분석을 담당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말러가 유년시절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 고통이 그를 지배하고 있어서 때로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살 충동까지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부유했지만 고집스럽고 강직했던 아버지는 연약하기만 한 어머니를 매우 거칠게 다루었고 말러는 이를 보고 아버지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였기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고는 짧은 가출이 고작이었을 뿐이었다. 그의 이런 유년시절의 경험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편애로 나타났고 또한 연이은 형제들의 죽음(14형제중 10명이 죽고 살아남은 남은 형제들도 불행했다.)으로 그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았다.(이렇게 나만 행복하게 살아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심정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는 말러가 평생 좋아하던 작가가 쇼펜하우어,니체,도프토예프스키였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이란 책에 보면 도프토예프스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인해 간질과 도박으로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죄책감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하려 했다는 재미난 정신분석이 나옵니다.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길)

 

말러의 음악을 한마디로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난 슬픔이여 안녕이란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제목으로 표현하고 싶다.(물론 여기선 안녕이 Goodbye란 뜻이지만) 말러 음악의 특징은 온음계적 화성에 불협화음이 있는 화음을 집중적으로 사용하여 거기에서 선율을 만들어내는 선적 대위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불협화음의 요소로 인해  처음 말러를 듣는 사람은 웬지 거북하고 낯선 느낌을 자주 갖게 된다. 하지만 말러는 그런 불협화음안에 민속가극의 서정성을 부여함으로써 때론 매우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 내곤 한다. 특히나 제 5번 교향곡의 장송행진곡에 이은 아다지에토는 말러의 서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즉 말러음악의 특징은 불협화음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절망감,고독,운명적인 비애를 강렬히 표출해 내지 않고 내면에서 조용하게 정화시켜버림으로써 슬픔을 인내하는 바로 그런 매력을 갖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 인류가 대지에 두발로 선 이래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겪고 있지만 내면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

더이상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표현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모두들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그건 정치형태일뿐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건 고도로 조직화된 자본주의이다. 삶의 지배자가 봉건영주에서 거대자본으로 탈바꿈 했을뿐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살 수 없다. 단지 우린 거대 자본이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속에 계속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야하는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거대 자본에게 있다라는 것이 옳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말러 자신은 외면적으로는 성공한 유명인사였고 예술가였지만 내면은 항상 고독하고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의지할 상대가 필요했고 그것을 3명의 여인에게서 찾았다.

 

1. Marie Hermann ................  말러의 어머니

2. Alma Marie Schindler........  말러의 아내

3. Maria Anna......................  말러의 첫째 딸

 

주목할 점은 이 세 여인의 공통점이 Marie 라는 이름에 있다라는 것이다.즉 말러의 삶을 지배했던 이  세여성의 이름이 우연히 Marie 였다는 것은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해 버리기는 힘들다. 또한 단지 Mother 컴플렉스에 의한 보상심리에 불과했다고 해버리기엔 말러 자신이 주는 예술적 영감으로 볼 때 그렇게 치부해버리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

말러 자신이 카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이 마리아 라는 이름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게 옳다. 영원히 방랑해야하는 운명을 가졌다고 믿었던 말러 자신의 마지막 영혼의 안식처가 바로 영원한 모성을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러의 마지막 유언이 "모차르트! 모차르트!" 였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만의 Requiem을 창조해내었듯이 말러 자신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리아 안나(첫째딸을 선홍열로 잃었다)를 잃은 후에 말러는 극심한 공황상태를 겪었고 건강도 차츰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 9번으로 하지 않았던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다. 이렇게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말러가 마지막으로 지휘한 곡은 부조니의 <나의 어머니의 무덤에서의 자장가>였다는 것은 그가 어느 정도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영혼의 안식처를 준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1911년 말러는 빈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마리아 안나의 옆에 묻혔다. 영원한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말러에게 열광하는 것은 우리 또한 영원히 방랑할 수 밖에 없는 보헤미안 신세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작은 영혼을 의지할 만한 곳이 없게 되어버린 각박한 세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잃어버린 우리가 그나마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이 말러의 음악밖에 남지 않은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제가 추천하는 음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 레너드 번스타인(뉴욕필)/ 카랴얀/클라우디오 아바도

말러 교향곡 5번: 카라얀(빈필)/바비롤리/레너드 번스타인

말러 교향곡 6번: 피에르 불레즈/번스타인(빈필)

말러 교향곡 8번: 게오르그 솔티/브루노 발터

말러 교향곡 9번: 카라얀(1982년 녹음)/번스타인(1988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말러와 개인적으로 친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브루크너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요?  시골뜨기에 어눌한 사투리를 가진 촌스러운 오르가니스트, 조울증에 신경 강박증으로 쓸쓸할 때면 나뭇잎이나, 길가의 돌, 여자의 옷에 달린 진주를 세거나 심지어 도나우 강가에서 모래 알갱이를 세는 기벽을 가진 정신질환자, 평론가들이 질타한 것처럼 일체의 교양을 가지지 못한 무식한 늙은 촌노( 부르크너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신문도 구독하지 않았다.) 그 모두가 브루크너를 얘기하는 거라면 맞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브루크너를 대자연과 덧없는 인간의 생애를 노래한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브루크너를 얘기하다보면 항상 빠지지 않는 두사람이 있습니다. 한사람은 얼마전 카페에서 소개된 브람스고 또 다른 한사람은 바그너 입니다. 니체가 지적한 것 처럼 당시의 음악계는 두 사람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더러운 진흙탕 싸움을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바그너에게 있지는 않겠지만 당시의 그런 문제들을 야기한 당사자는 분명 바그너에게 있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적 재능은 의심할 바 없으나 바그너의 인격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나칠 정도의 탐욕과 배신으로 얼룩진 그의 사생활은 수많은 정적들을 만들어 내었고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은채 바그너의 열렬 신봉자가 되어버린 브루크너 또한 그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바그너의 성격에 대한 간단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당시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이었고 바그너 자신의 제자이기도 하며 열렬한 신봉자의 한 사람이었던  한스 폰 뵐로의 아내 코지마(리스트의 딸이기도 합니다)를 유혹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드레스덴의 혁명사건으로 말미암아 체포령이 떨어져  무일푼이 된 바그너를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취리히의 재벌 베젠동크의 아내를 유혹하여 은혜를 그 자신만의 방법으로 갚은 얘기등등 제 아무리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알고나면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그의 성격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르크너의 경우 그 자신은 전혀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당시의 이런 세태속에 자연히 말려들어가게 되었고 바그너의 음악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음악가와 평론가에게 온당하지 않은 비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의 음악은 생전에 결코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연주되지도 못했습니다. 브루크너는 바그너로 인해 겪어도 되지 않을 이런 시련을 받아야만 했지만 그 자신은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신실한 애정을 평생 보였습니다.(바그너에게 제 3 교향곡을 헌정한 일이라든지 바그너가 죽자 그를 추도하는 뜻에서 제 7번 교향곡의 아다지오에서 바그너 튜바를 사용한 장엄한 코다를 선사한 일이 있습니다.)

반대로 바그너의 경우( 참 고약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한스 폰 뵐로의 소개로 존경하는 바그너의 앞에서 선 브루크너가 흥분하여 헌정하기로한 교향곡이 2번이었는지 3번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어서 다시 바그너의 집으로 찾아가 "트럼펫로 시작하는 D단조 쪽입니까?"라고 묻었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던 브루크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바그너 답게 그는 브루크너의 얘기만 나오면 "아 그 트럼펫"하고 야유스런 웃음을 지었다고 하니 브루크너의 바그너에 대한 사랑은 짝사랑이었음에는 분명한 사실입니다.(바그너는 항상 브루크너를 만날때마다 그의 교향곡을 전부 자신이 연주해 주겠다고 했지만 한번도 그 약속을 지킨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자신의 헛소리로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약속을 지키기위한 어떤 노력도 애써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바그너 자신의 아들의 증언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다시 그의 음악으로 돌아가서  아다지오와 피날레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대적할 만한 작곡가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고 저또한 그렇다고 느낍니다. 특히 7,8,9번에 이어지는 후기 3대 교향곡의 아다지오는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항상 전 견고한 벽을 느낍니다. 1악장에서 부터 시작하여 한개 한개의 음표들로 차츰차츰 거대하고 장엄한 벽을 쌓아갑니다. 누구도 부술수 없는 거대한 벽을 치밀하게 계산된 대위법으로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선율들로 견고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리구선 마지막 피날레에 장엄한 코다와 함께 그 벽을 산산히 부수어 버리지요.. 전 그게 브루크너의 참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브루크너의 음악은 함께 듣는 것이 아니지요.. 어두운 구석진 골방에서 혼자 들어야지만 "아 이게 브루크너구나" 하는 참을수 없는 격정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만 구석진 골방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브루크너 또한 그렇게 들어야지만 합니다. 그게 저의 브루크너 감상법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음반

 

브루크너 4번 교향곡 Romantic- 칼뵘,한스 크나버츠부슈

브루크너 7번 교향곡- 카라얀, 첼리비다케, 쥬세페 시노폴리

브루크너 8번 교향곡- 첼리비다케, 카라얀, 푸르트벵글러

브루크너 9번 교향곡-카라얀, 시노폴리, 첼리비다케

 

맨처음에 나온 지휘자의 음반을 제가 가장 선호하는 음반이고 그 다음 순서로 매겨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루크너의 마지막 소원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칩니다.

브루크너는 평생을 St. Florian 성당의 오르간연주자로 생을 보냈는데 자신이 연주하던 그 오르간 밑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stella.K > 갤러리, 박물관 미술관련 사이트 모음


 
 

 
 
 

갤러리

가나아트센터 http://www.ganaartgallery.com
가산화랑 http://www.gasan.co.kr
갤러리 아미 http://www.amigallery.co.kr
갤러리 아트사이드 http://www.artside.net
갤러리 아트플라넷 http://www.artpla.net
갤러리 헬로아트 http://www.helloart.co.kr
갤러리그림 http://www.grimmart.co.kr
갤러리대아 http://www.artinseoul.co.kr
갤러리미즈 http://www.kafnet.com
갤러리사비나 http://www.gallerysavina.com
갤러리스꾸 http://www.suku.co.kr
갤러리시우터 http://www.siuter.com
갤러리썬&문 http://www.g-sunnmoon.com
갤러리아츠윌 http://www.artswill.com
갤러리인 http://www.galleryihn.com
갤러리현대 http://www.galleryhyundai.com
공간화랑 http://www.kongkan.com
공화랑 http://www.gonggallery.com
광화문갤러리 http://www.sejongpac.or.kr
국제갤러리 http://www.kukje.org
그림사랑 http://www.kissart.co.kr
금산갤러리 http://www.keumsanart.com
다도화랑 http://www.dadoart.com
대안공간풀 http://www.aaart.co.kr
동원화랑 http://www.idongwon.co.kr
로댕갤러리 http://www.rodin.co.kr
명동화랑 http://www.gallerymd.com
모로갤러리 http://morogallery.com
무심갤러리 http://www.moosimgallery.co.kr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http://www.kcaf.or.kr
문예회관미술관 http://www.artcenter.taegu.kr
박영덕화랑 http://www.koreart-gallery.com
백송화랑 http://www.in4dong.co.kr/baiksong.htm
샘터화랑 http://www.gallerysamtuh.com
서울갤러리 http://www.seoulgallery.co.kr/
선화랑 http://www.sungallery.co.kr/
세모화랑 http://www.semoart.co.kr/
세종화랑 http://www.me2u2.co.kr/sejongga/
송아당화랑 http://www.songadang.co.kr
아트선재센터 http://www.artsonje.org
아트센터나비 http://www.nabi.or.kr
예화랑 http://www.galleryyeh.com
운보갤러리 http://www.woonbokorea.com
윙갤러리 http://www.winggallery.co.kr
유나화랑 http://www.webart.co.kr/gallery/yuna
이목화랑 http://www.yeemockgallery.com
인사아트센터 http://artscenter.kcaf.or.kr
전원갤러리 http://www.jeonwongallery.com
쥴리아나 갤러리 http://www.julianagallery.com
코아트 갤러리 http://www.koart-gallery.co.kr
토아트 갤러리 http://www.koreapotters.com
표화랑 http://www.pyoart.com
하우아트갤러리 http://www.howart.com
Albright-Knox Art Gallery ttp://www.albrightknox.org
Tate Gallery http://www.tate.org.uk


미술관련 싸이트

I LIKE U http://www.ilikeu.com/
아트 존 http://koreanart.net/kr/
아트 스케프 http://www.artscape.co.kr/
코 아트 http://www.kor-art.com/
위대한 화가들이 신전 http://my.dreamwiz.com/nj0618/main-frame.html
아트 선재 http://www.artsonje.org/html/main_han.html
가나아트 닷 컴 http://www.ganaart.com/
오픈 아트 http://www.openart.co.kr/
러비 http://www.lovee.co.kr/
인터 갤러리 http://myhome.shinbiro.com/~designC/intergallery.htm
묵객 http://mukgeak.com/default.html
쌍용갤러리 http://www.ssy.co.kr/korean/read/gallery/
빈 아트 갤러리 http://binart.com/gal/g0.html
세모아트 http://www.semoart.co.kr/
미사 갤러리 http://www.missagallery.com/
공간 갤러리 http://www.kongkan.com/
중국화랑 http://hualang.hihome.com/
고흐화랑 http://gogh.play.co.kr/
사이버미술대학카페 http://cafe10.daum.net/_c21_/home?grpid=aVV

아트스퀘어 http://www.artsquare.co.kr/
전국미술교사모임 http://art.labor.co.kr/메인/link.htm
미술사랑 http://member.hitel.net/~k2mssr/sitemap.htm
토우아트(미술관련 사이트 모음) http://www.towooart.com/Goodsite/misulsite.htm
광주비엔날레 http://www.gwangju-biennale.org/
이 갤러리 http://www.egallery.co.kr/
가피 아트 http://www.1art1.com/
삼 갤러리 http://galaxy.channeli.net/yesok/
아트서울 http://www.artseoul.net/
갤러리 http://myhome.shinbiro.com/~artworld/
한 그림 http://members.tripod.lycos.co.kr/mingsoo/
한국문화예술진흥원 http://www.kcaf.or.kr/hyper/Ktrart_main.html
갤러리 중앙 http://my.netian.com/~galcha/
국제 갤러리 http://www.kukje.org/
다도 아트 http://www.dadoart.com/
코 아트 http://www.kor-art.com/
미술아 놀자 http://www.ppp.pe.kr/
도림 아트 스페이스 http://myhome.netsgo.com/nambm/
코리아 아트랜드 http://www.koreaart.co.kr/
코리아 web art http://www.webart.co.kr/
미술평론가 최병식 http://myhome.elim.net/~choibs/
이광우 미술이야기 http://my.netian.com/~rodin/
아트 리뷰 http://www.a-r-t.net/
아트센터 http://www.artcenter.co.kr/
아트 앤 아츠 http://www.axisoft.co.kr/arts/kwelcome.html
신한화구 http://shinhanart.co.kr/
나우아트 http://www.nowart.co.kr/
다다넷 http://www.dadanet.co.kr/
다도아트플라자 http://www.dadoart.com/
규장각 http://kyujanggak.snu.ac.kr/
문화재청 http://www.ocp.go.kr/
싸이버 색채 과학연구소 http://myhome.thrunet.com/~donghokim/index.htm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http://www.buddhapia.com/buddhapi/kor/hanbul/culture/art/
옹기이야기 http://myhome.netsgo.com/xboy2/
울산갤러리 http://art.ulsaninfo.co.kr/
원시예술 http://myhome.shinbiro.com/~kbyon/khome.htm
웹 아트 http://www.webart.co.kr/
인터 아트 코리아 http://www.artin.com/
전국미술 교과 모임 http://art.labor.co.kr/default.htm
제 3 도예 벽화 연구소 http://3.co.kr/
최병식 미술비평과 예술세계 http://myhome.elim.net/~choibs/
판화공방이야기 http://arts.co.kr/
페인터 코리아 http://painter.co.kr/
한국인터넷협회 http://www.5netart.com/

미술전문지 사이트


문화게릴라 http://cafe.daum.net/namoo30
디자인넷 http://www.designnet.co.kr
디자인신문 http://www.designnews.co.kr
미술과 담론 http://art.centerworld.com/discourse
미술세계 http://www.misulsegae.com
월간미술 http://art.joins.com
월간일러스트 http://illusthouse.com
아트인컬쳐 http://www.artinculture.co.kr
월간까마 http://www.cama.co.kr
월간사진 http://www.wolgansajin.co.kr
월간서예 http://www.m-seoyea.co.kr
이미지 속닥속닥 http://neolook.net
사진예술 http://www.withnet.com
디자인 신문 http://www.designnews.co.kr/
미술전문지 아띠 http://www.artee.co.kr/
월드 아트넷 http://www.worldartnet.com/

외국미술관 박물관 사이트

토국립박물관 ry http://www.npg.org.uk/live/index.asp
Petersburg Salvador Dali Museum http://www.npg.org.uk/live/index.asp
Vatican Museum http://www.christusrex.org/www1/vaticano/0-Musei.html
World Wide Arts Resources - Museums http://www.wwar.com/
구겐하임 박물관 http://www.louvre.fr/
뉴욕현대미술관 http://www.moma.org/
런던 자연사박물관 http://www.nhm.ac.uk/
렘브란트 미술관 http://www.rembrandthuis.nl/flash.html
루브르 박물관 http://www.louvre.fr/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http://www.metmuseum.org/
미국대학살 박물관 http://www.ushmm.org/
스위스 자연사 박물관 http://www.nhm.ac.uk/
아트 뮤지움 http://www.byu.edu/moa/
올세이 미술관

http://www.musee-orsay.fr:8081/ORSAY/accueilMO/HTML.NSF/732927420973f9b5c12564280045edf6/322da73321db3942c1256714004e756a?OpenDocument 유터주립 미술관 http://www.utah.edu/umfa/
이탈리아 고고학 박물관 http://www.crs4.it/OLD/RUGGIERO/MUSEO/mus_ind.htm/
퐁피드 미술관 http://www.cnac-gp.fr/Pompidou/Home.nsf/docs/fhome
한미박물관 http://www.koma.org/

http://www.kyohaku.go.jp/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 http://www.metmuseum.org/
네오나르도 미술관 http://www.leonardo.net/
로스엔젤레스 미술관 http://www.lacma.org/
루이지에너 현대 미술관 http://www.louisiana.dk/dansk/
몬트리올 미술관 http://www.mbam.qc.ca/sommaire.html
미국자연사 박물관 http://www.amnh.org/splash.html
보스톤 박물관 http://www.mfa.org/
세계의 박물관 http://www.icom.org/vlmp/
스미소니언 http://www.si.edu/
에르미타쥬 미술관 http://www.hermitage.ru/
온타리오 아트 http://www.ago.on.ca/
웹 뮤즈움 파리 http://www.ibiblio.org/wm/
클리브랜드 박물관 http://www.clemusart.com/
Art Gallery of Ontario http://www.ago.on.ca/
Art History http://rubens.anu.edu.au/
Art History Resources on the Web http://witcombe.sbc.edu/ARTHLinks.html
Ashmolean Museum http://www.ashmol.ox.ac.uk/
Asian Arts http://www.asianart.com/index.html
Bayly Art Museum http://www.virginia.edu/~bayly/bayly.html
Birmingham Museum of Art http://www.popularcategories.com/
British Museum http://www.thebritishmuseum.ac.uk/
Brooklyn Museum http://wwar.com/
Columbia Museum of Art http://www.scsn.net//users/cma/
Denmark National Museum http://www.natmus.min.dk/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http://www.dhm.de/
Deutsches-Museum http://www.deutsches-museum.de/index.htm
Diacenter for the Arts http://diacenter.org/
Exploratory Science Museum http://www.exploratory.org.uk/
Finish National Museum(Helsinki) http://www.fng.fi/
Incredible Art Department http://www.artswire.org/kenroar/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http://www.nga.gov/
National Gallery of Canada http://www.rom.on.ca/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미술관련 사이트 : empas

꽃마리 : 김필연시인의 서재

고흐의 편지: 김보영님 포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전 여자친구와 전화 통화도중 잠깐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정작 음악, 그자체를 감상하기보단 그 뒷얘기에 더 관심이 많다는 얘기였다. 여기저기 가이드북이나 전기, 평론 등에서 읽은 얘기로 음악을 이해하려한다는 태도는 잘못되었단 것이었다.

물론 그녀말이 전적으로 옳다는건 나도 어느정도는 납득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어떤식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음악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대중가요나 pop같은 경우는 멜로디가 귀에 쏙쏙 들어오거나 가사가 맘에 들면 그것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인 경우 가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언어로 쓰여져 있고 멜로디 또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교향곡인 경우 40-70분 가량 되니까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이다.

어쨌든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것을 즐긴다는 말과 동격이라면 난 그 나름대로 음악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이드북이나 전기,평론따위에서 주워들은것이언정 거기서 명반이라 이름붙여진 음반들을 애써 찾아보고 들어보는 과정이 나에겐 꽤나 흥미진진한 것이니 말이다.

 

난 브람스를 들을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둘 있다. 한 사람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프랑소와즈 사강이고 또 한 사람은 '국부론'으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이다. 아담 스미스가 떠오르는 이유는 브람스와 아담 스미스 둘다 사색적이고 성실하며 단정한 인격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는 지극히 소심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들을때면 이 소심하고 사색적인 신사였던 브람스가 그가 평생 사모해오던 슈만의 미망인, 클라라 슈만과의 사랑이 실제로 이어졌다면 4악장은 반드시 지금과는 달라졌으리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게 되고 이건 나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브람스의 교향곡 제 1번과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 운명과 종종 비교를 하곤 한다. 둘다  C단조의 조성이 같고 주제도 "고난에서 환희"로 이어지는 방식이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난 이 두 음악을 들을때면 괜히 한편의 영화를 설정하고 그 주인공으로 각각 베토벤과 브람스를 떠올린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주인공은 온갖 고난을 헤쳐나와 결국 적들을 패배시키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엔딩롤이 올라간다. 하지만 브람스의 교향곡의 주인공은 다르다. 고난을 겪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는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스스로의 고독으로 침잠해 들어가게 되고 결국엔 쓸쓸한 미소와 함께 작은 평온을 얻는데서 끝이 난다.

 

항상 이런저런 잡다한 상상을 하며 음악을 듣는 습관 때문에서인지 최고의 음반을 선정함에 있어서도 이런 내 상상과 잘 맞아 떨어지는 분위기의 음반만을 고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음반 둘을 골라보았다.

나만의 최고의 브람스 음반은

1. 첼리비다케,뮌헨필의 브람스 교향곡 1번(EMI)

2. 푸르트벵글러, 북독일교향방송악단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이 둘을 선정했다.

 

첼리비다케의 브람스는 말그대로 내 상상과 딱 맞아 떨어진다. 평생 브람스와 브루크너에 전념해온터라 그 자신의 해석도 뛰어나지만 첼리비다케만의 비애가 잘 살아있다(다들 아시겠지만 베를린필 단원들이 무려 144회나 함께 공연해온 첼리비다케를 차버리고 단원들에게 큰돈을 안겨줄것 같던 카라얀을 지휘자로 선임한 사건으로 인해 한때 첼리비다케는 방랑아닌 방랑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 고독과 비애는 브람스 연주에 탁월한 아우라로 나타난다. 특히나 2악장과 3악장의 선율은 첼리비다케의 울분이 느껴지는듯해 더더욱 감동적이다.

 

푸르트벵글러! 연주 그자체만으로 평가하자면 사실 첼리비다케도 이에 못 미친다. 1악장부터 푸르트벵글러만의 천재적인 템포조절과 광폭적인 힘이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고 말해야 할까? (저절로 어깨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는 걸 느꼈다)

다른 지휘자들의 연주와는 확실히 다르다라는 걸 초보자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조지 셀의 브람스는 너무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칼뵘은 유려하나 평범했고, 카라얀은 모든 점에서 빠지진 않으나 항상 2% 부족하다.(그의 베토벤,말러,시벨리우스 모두 뛰어난 명반이지만 항상 그에게는 뭔가가 빠져있다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아르농쿠르는 웬지 너무 연약한 듯한 느낌이랄까?

 

굳이 둘 중에 한 음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첼리비다케를 고르겠다. 푸르트벵글러의 브람스는 그야말로 특별하나 그건 푸르벵글러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이지 브람스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이라 할 순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은 그야말로 베토벤 그 자체이다. 힘이 넘치고 의지적이며 굳건하다. 또한 푸르트벵글러의 뛰어난 인품에 덧붙여져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樂聖 베토벤의 위대성을 표현해 내는데 있어서는 푸르트벵글러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람스는 다르다. 베토벤이 강인한 의지와 힘으로써 상대를 압도해 나간다면 브람스는 절제와 고요한 미덕으로 상대를 어우른다. 그는 결코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이 브람스의 매력이자 힘이다.(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의 이런 미덕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평생 타인과 논쟁하려 하지 않았다.-그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바그너와는 정말 그 성격이 정반대이다.)

 

한스 폰 뵐러가 그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듣고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 드디어 나타났다라고 외쳤을때 그는 어땠을까? 그의 성격상 아마 들어내놓고 좋아하진 않았을것이다.(바그너 였다면 희희낙락했겠지만) 그저 겸손한 태도로 조용하고 은근한 미소만을 띄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