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神도, 그리고 서점의 기둥도

시인이 평범하게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Written by Horatius


나는 내 여가 생활의 대부분을 무용한 것에 쓴다. 지인(知人)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우관계를 넓혀 인맥을 쌓는다던지, 자신의 커리어(Career)를 개발하고자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던지 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 상당히 유용한 일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다만 하는 일이라고는 짬나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듣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교우관계를 넓히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내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하는데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관심은 있으되 게으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도 후달리며 살고 있는데, 거기다 채찍질까지 해야 되겠느냐? 정도의 속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최하층 노예들뿐이었다. 귀족들과 왕들은 내내 게을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마찬가지요.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걸 염두에 두고 있노라면 더 빨리 소모하고, 더 빨리 죽어 나자빠지라는 채찍질이 곱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다.


근데 나보다 훨씬 영악하고 품위 놓으신 분들까지 예전에 이런 생각을 다 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버틀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조르쥬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을 참고 하시면 되겠다.


지금 내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것은 그런 유용한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무용한 것들 때문이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들에 내 유용한 가치들을 소모하고 있는데도, 이것들이 내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게 찬탄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한다.


온갖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종종 만들곤 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서문에서 이렇게나 솔직히 밝히고 있다.


무용한 사물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단 하나의 구실은, 우리가 그것에 강렬히 찬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상당히 무용하다.


암! 그렇고말고. 이런 쓸데없는 것에 내 유용한 가치(시간, 돈)를 투자하고 있는데 즐거움이 아닌 분노와 희열이 아닌 짜증이 몰려온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력이 차츰 감퇴하고 있는 것을 요즘 느끼기에, 이젠 노트를 하나 마련해 목록을 작성해 두어야 겠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이 분노가 어느덧 퇴색해버려 망각해 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벽에 매달아 놓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날을 벼리던 월왕 구천(句踐)까지는 안 되더라도 말이지.


목록의 맨 위에는 이렇게 적어야지.


1.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작가(두 번 다시 이 분노를 잊지 않도록)


 아멜리 노통브, 파울로 코엘류, 마루야마 겐지, 호어스트 에버스, 요시모토 바나나, 퍼트리샤 콘웰, 제임스 패터슨, 미키 스필레인, 공지영...


2. 이젠 그만 사도 좋을 작가(이젠 약발 다 됐어!)


알랭 드 보통,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파트리크 쥐스킨트...


3. 긴가민가 (아직은 조금만 더 지켜볼까)


빌헬름 게나찌노, 장 폴 뒤부아, 조너선 사프란 포어, 로버트 실버버그, 수잔 손택, 강유원, 실비 제르멩, 줄리언 반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슨 매컬러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존 버거,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 파스칼 키냐르, 움베르토 에코, 러브크래프트, 미셸 투르니에,


4. 출판되어서 나오는 대로 다 사자.


곰브로비치, 페터 한트케, 밀란 쿤데라,


예술가에게 혹독한 비평이나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감내해야 할 일이다. 다른 공산품이나 서비스와는 달리 이건 반품내지는 환불이 안 되는 거니깐 말이지. 보고 났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를 정도로 한심한 작품이었다던 지, 잠이 쏟아질 정도로 지루했다고 해서 반품이나 환불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나? 각자의 취향의 다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건 옷이나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지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건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불공정 거래란 말이지. 선불로 땡겨먹고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 온갖 혹독한 비난과 비평에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참아야 하는 것이지. 예술가라는 직업은 말이야. 이번 목록은 작가에만 국한했는데 말이지 다음에는 연주자나 공연가 쪽으로도 범위를 넓혀야 겠다. 이건 무용한 것들에 관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유용한 작업으로 남을 듯하다.


ps>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임을 미리 밝혀 두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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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울로 코에료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 바나나도 거의 동의. 보통씨는 너무 좋아서 제외. ^^ 나머지 작가들은 제가 많이 접해보지 않은 관계로 보류.

보르헤스 2007-02-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el/ 리스트 다 만드시면 저두 구경가도 되겠죠?
아프락사스/알랭 드 보통 저두 참 좋아했습니다만, 어느때부터인가 늘 같은 얘기만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꽃노래도 삼세번이면 질린다던가 뭐 그런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