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키노 > 매니아 추천앨범 2

매일 수많은 음반들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음악을 듣는 우리들 역시 하루하루 거기에 따라가기가 벅찬 것이 사실이다. 신보를 구입해놓고 몇 번 듣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앨범을 들어야 하니 이야말로 원통해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몇 년 전 구입한 앨범들은 새롭게 선보이는 신보들 틈바구니에서 맥도 못 추고 저 깊숙한 곳에 숨어서 당신을 노려볼지도 모른다. 제발 날 좀 한번 쳐다봐 달라고... 그 앨범들도 처음에는 닳고 닳도록 들으며 동고동락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한 때 연인보다 더 열렬히 사랑했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또는 정말 명반인데 모르고 지나쳐 갔었던 앨범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마도 여기 소개하는 앨범들은 모두가 나름대로 매니아 정신에 입각해 들었던 것들일 것이다. 그 때의 그 매니아 정신을 다시 한번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저 높이...

글 / 문양미 in changgo.com
디자인 / 정미선 in changgo.com

Bob Marley - Catch A Fire(Deluxe Edition) (Tuff Gong, 1973)

밀라노에서 교황보다 많은 군중을 모으고 7명의 여인에게서 11명의 자식을 낳고 3,000만 달러의 재산을 남기고 녹색종이라는 희귀병으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세계적인 뮤지션 밥 말리의 첫 번째 앨범으로 피터 토시(Peter Tosh), 버니 리빙스턴(Bunny Livingstone)이 함께 하여 전세계에 레게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함은 물론 웨일러스(Wailers)라는 밴드명을 국제적으로 인식시키게 된 앨범이다. 드넓은 백사장과 높은 하늘로 대변되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빈민 소굴지이기도 한 자메이카 출신인 밥은 이 앨범과 이후 계속해서 발표한 앨범들을 통해 ‘자메이카 = 레게’라는 공식을 안착시킨 세계적인 뮤지션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까지 한 그의 역할은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밥 말리’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감으로써 수많은 추종자들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앨범은 특히 2001년 리마스터링되어 'Island Records'에서 재발매되어 두 곡의 보너스트랙까지 담겨있는데 바로 ‘High Tide Or Low Ride’와 ‘All Day All Night’가 그것이다. 절로 어깨를 흔들게 만드는 흥겹고 독특한 리듬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듯 내뱉는 보컬이 블루스적인 필도 느끼게 하는 ‘Concrete Jungle’, 일정한 규칙에 의해 반복되는 리듬 라인이 곡을 이끌어 가는 ‘400 Years’, 앨범 발표 당시인 70년대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여성 코러스와 심벌을 최대한 이용하여 유치한 듯 하면서도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Baby We've Got A Date' 등 이 앨범 수록곡을 통해 그는 스스로 ‘빈민굴의 락’이자 ‘반동의 음악’을 노래한다.


Eric Clapton - Eric Clapton(Remaster) (Polydor, 1970)

이미 전세계의 기타 매니아들에게는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정받은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의 솔로 데뷔앨범으로 이전 야드버즈(Yardbirds), 크림(Cream), 블라인드 페이쓰(Blind Faith)에서 이미 기타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충분히 쌓아오고 선보인 후 발표한 좀 더 편안하고 인간적인 측면에 기대고 있는 앨범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이전 밴드에서 보여주었던 테크니컬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연주인으로서의 역량보다는 송라이팅과 다른 멤버와의 화합에 더욱 정진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그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자신감과 인간미 넘치는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기타리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아주 편안하고 듣기 좋은 멜로디를 선사하는 작곡가와 별 꾸밈없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매력을 주는 보컬리스트로서도 인정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뭐니뭐니해도 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는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성격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느낌이지 않은가. 물론 이런 푸근한 느낌은 최근 배나오고(?) 너털웃음 짓는 모습에서 더 느낄 수 있지만 이 앨범에서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 욕심 없어 보이는(사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앨범 자켓에서처럼 아무리 무게 있게 폼 잡고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작부터 경쾌한 느낌을 주는 ‘Slunky’에서의 블루스 리듬은 트럼펫터 짐 프라이스가 그 흥겨움을 더해주는데 짐과 에릭의 협연은 꽉 짜여져 있는 완벽함보다는 즉흥적인 임프로바이제이션의 매력을 맘껏 발산시키고 있으며, ‘Bad Boy’에서의 끈적이는 기타 리프와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느긋하고 여유 있는 보컬은 일종의 관록미까지 느끼게 한다. 특히 녹음이 무성하고 활기가 넘치는 한여름 해변가를 연상시키는 시원스러운 보컬과 함께 이 앨범에서 그나마 가장 긴 기타 솔로를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트랙 ‘Let In Rain’은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Fear Factory - Digimortal (Roadrunner, 2001)

데쓰메틀의 강렬함과 인더스트리얼의 차가움을 동시에 내재하는 퓨전 사운드로 90년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피어 팩토리의 네 번째 앨범으로 초기 데쓰메틀적인 느낌보다는 하드코어적인 사운드를 시도하고 있다. 독특한 앨범 자켓에서부터 연상되는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유전자 복제로 인한 불안감과 환경파괴로 인해 예견되는 공포감은 피어 팩토리의 음악적 원천임과 동시에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차갑고 비인간적인 기계적인 느낌을 테크놀로지에 의존하지 않고 밴드 스스로의 기량으로 디지털 사운드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들의 확고한 의지를 결연시켰다. 이번 앨범에서 역시 그러한 내용은 변함이 없으며 단지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 사운드면에서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결국 피어 팩토리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피어 팩토리인 셈이다. 그들은 역시나 전자음악의 요소를 배제한 채 심플하고 깔끔한 사운드로 곡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디노 카자레스(Dino Cazares)의 건조한 기타 리프와 레이몬드 헤레라(Raymond Herrera)와 크리스찬 올데 울버스(Christian Olde Wolbers)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리듬 라인은 그대로이다. 단지 버튼 C. 벨(Burton C. Bell)의 데쓰메틀적인 그로울링이 좀 더 하드코어적인 보컬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앨범은 전체적으로 좀 더 유연한 멜로디를 양산시키고 있다. 그루브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What Will become', 건조한 기타 리프와 공격적인 드러밍이 파괴적인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창출해내는 ‘Damaged', 속사포적인 드러밍과 보컬 역시 헤비함의 전형인 동명 타이틀 ‘Digimortal’, 복잡한 아이디어를 결속해주는 것을 뜻한다는 첫 싱글 ‘Lynchpin’ 등 이 앨범에서 피어 팩토리는 전체적으로 멜로디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인더스트리얼의 차가움에서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Jamiroquai - Travelling Without Moving (Work, 1996)

펑크적인 사운드에 애시드 재즈, 소울, R&B,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혼합하여 그들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자미로콰이의 데뷔앨범 [Emergency On Planet Earth]가 영국 앨범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면서 영국에서 그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세 번째 앨범 [Travelling Without Moving]은 그들을 전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발굴림하게 만든 계기를 마련해준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가장 자미로콰이다운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상업적인 성공과 더불어 음악성마저 인정받고 있는데 무대에만 서면 독특한 춤을 보여주는 제이슨 제이 케이(Jason Jay Kay)의 소울풀한 보컬이 가장 돋보인다. 물론 제이슨은 이에 대해 자미로콰이는 원맨 밴드가 아니라 멤버 모두가 조화를 이룬 팀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밴드라고 말을 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동안 1집과 2집에서 탄탄하게 쌓아온 연주력을 바탕으로 이 앨범에서는 그들이 진정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실험정신 가득한 음악들은 언제 들어도 펑키한 느낌이 물씬 풍기면서도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든다. 제이슨의 말로는 ‘When You Gonna Learn'의 Part 2 정도가 될 것이며 그루브한 멜로디와 고심한 가사들의 결합체라고 하는 타이틀 곡 ‘Virtual Insanity'에서부터 70년대의 디스코 사운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듯한 신나는 ‘Cosmic Girl', 경쾌한 타악기 연주가 곡의 시작을 알리는 라틴리듬의 ‘Use The Force', 경건하고 심오한 드럼 비트와 날카롭게 울부짖는 듯한 현악 선율이 어떤 슬픔을 가져오는 ‘Everyday’ 등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 세련됨과 독특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혼합 사운드가 가득하다.

Jane's Addiction - Ritual De Lo Habitual (Warner, 1990)

올 여름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공연 때 함께 내한했던 제인스 어딕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만큼의 기대를 갖고 보았던 이들의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은 한마디로 제인스 어딕션은 음악을 정말 잘한다는 것이었다. 결성된 지 10년이 넘는 중견 밴드임에도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요즘 새로이 등장하는 신인밴드보다도 기억해주지 않은 이들이지만 그만큼 골수 매니아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들이 바로 제인스 어딕션일 것이다. 그만큼 천재적일만큼 사이코 집단 제인스 어딕션의 음악은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두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마력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들의 뛰어난 음악성 때문이다. 혹자가 표현하듯 ‘정말 센세이셔널 하고, 주술적이며, 파격적이고 컬트적’이다. 이 앨범은 이들의 두 번째 앨범으로 완성도 높은 음악성과 독특한 컨셉,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안타까운 앨범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조차 판매량이 저조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뉘앙스와 깊이가 느껴지는 심오한 멜로디가 대중성과는 별 인연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페리 파렐(Perry Farrel)의 비음 섞인 독특한 고음의 보컬과 날카롭고 타이트하게 전개되는 데이빗 나바로(David Navaro)의 기타 연주, 에릭 애버리(Eric Avery)와 스티븐 퍼킨스(Stephen Perkins)의 그루브한 리듬감은 이들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데이빗의 펑키한 기타 리프가 귀에 가장 잘 들어오는 대중적인 곡 ‘Been Caught Stealing', 도입부의 나레이션부터 주술적인 느낌을 주는 'Three Days', 여백 없이 꽉 찬 듯한 타이트한 연주가 집중력을 높게 만드는 마지막 곡 'Classic Girl' 등 앨범의 매끄러운 곡 구성과 더불어 하나도 버릴 곡이 없는 완성도 높은 앨범이다.


Nickelback - Silver Side Up (Roadrunner, 2001)

99년 발매된 니켈벡의 두 번째 앨범 [State]가 코어적인 사운드와 하드락적인 사운드가 뒤섞여 정체불명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면 세 번째 앨범 [Silver Side Up]는 애매모호했던 코어 사운드는 사라지고 하드락적인 면모로 탈바꿈한 채 포스트 얼터너티브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96년 발매된 이들의 데뷔앨범 [Curb]가 캐나다에서의 이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코어적인 사운드에 헤비니즘을 덧입힌 두 번째 앨범은 이들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발굴림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훨씬 하드해지고 헤비해진 대망의 세 번째 앨범 [Silver Side Up]은 이들에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앨범은 발매 전부터 첫 싱글 ‘How You Remind Me’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뒤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빌보드 차트 1위까지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하드함을 바탕으로 멜로디 위주의 사운드를 펼치고 있는데 자칫 촌스러움을 유발하여 너무 자주 들으면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대중적으로 다가가기에는 쉬운 듯하다. 특히 이는 ‘How You Remind Me'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데 몇 번만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이들의 성공을 이미 예견하고도 남을 만큼 친숙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크리드(Creed)라이브(Live)의 중간 지점에 있는 듯한 채드 크로거(Chad Kroeger)의 감각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보컬은 니켈백 자체는 물론, 이 앨범의 음악적 스타일을 규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한 기타 리프위에 오버더빙되는 이색적인 보컬이 재미를 주는 ‘Woke Up This Morning’,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강렬한 락필을 느끼게끔 하는 연주와 역시 이에 잘 따라가는 보컬이 신선함을 주는 ‘Too Bad’ 등도 추천 트랙이다.

Nirvana - Mtv Unplugged In New York (DGC, 1994)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세상을 떠난 후 발매되어 상업적이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만큼 너바나의, 아니 커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바나의 팬이라면 당연히 소장하고 있어야 할 가치 있는 앨범이다. 공연 당시 커트가 공연장의 분위기를 직접 연출했는데 공연장에는 백합과 촛불 등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고 한다. 너바나의 팬들에게는 너바나 최고의 앨범이라는 찬사는 물론 정규앨범보다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앨범으로 곡 중간 중간 이야기하는 커트의 목소리 역시 공허한 듯 하면서도 매혹적이며 노래할 때의 그의 목소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환호하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커트의 기침 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 공연 후 얼마 안 지나서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놔둔 채 혼자 떠났는데 아마도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절함을 감출 수 없다. 데뷔앨범 [Bleach]에 수록되었지만 국내에서는 꾸준히 사랑을 받은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하지만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About A Girl’, 커트의 절규하는 듯한 보컬이 듣는 이 조차 힘겹게 만드는 ‘Pennyroyal Tea’, 마지막 곡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까지 한 곡도 버릴 것 없는 그야말로 100%의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다. 커트의 분노, 호소, 절규가 그대로 담겨 있는 너바나 최고의 앨범.


Paul McCartney - Driving Rain (Capitol, 2001)

국내에서는 존 레논(John Lennon)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때문인지 폴 메카트니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존이 편안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라면 폴은 좀 더 까탈스럽고 귀족적인 이미지가 풍기지 않은가. 이러한 것은 분명 대부분의 대중들에게는 반감을 사기 쉬울 테고 말이다. 음악에서는 어떠한가. 사실 둘의 음악적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지 누가 더 뛰어나고 누가 더 부족하다고 평가내릴 만한 것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앨범은 우리나라에서는 좀 뒤늦은 감이 있는 2002년 4월에 발매되었는데 락큰롤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무난할 폴의 칭호를 무색케 하지 않을 정도로 락큰롤 음악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고전적인 음악으로 돌아가려 애쓴 흔적이 다분하지만 99년 발표한 [Run Devil Run]에서처럼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척 베리(Chuck Berry),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래리 윌리엄스(Larry Williams) 등 지나치게 대가들의 곡들을 수록하거나,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r), 이안 페이스(Ian Paice) 등의 노익장 역시 과시하지 않는다. 단지 러스티 앤더슨을 통해 젊은 감수성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대가들의 연주가 빠진 이 앨범은 그래서인지 이전 폴의 화려함이 아닌 순수하고 내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는 자칫 침잠되어있는 사운드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연륜과 편안함이 두루 묻어나는 앨범이지만 락큰롤답게 첫 번째 곡 ‘Lonely Road'에서부터 전형적인 락큰롤 사운드를 표방하고 있다. 마치 비틀즈(Beatles) 시절처럼 말이다. 하지만 곡들이 고루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곡 ‘From A Lover To A Friend’에서의 어쿠스틱 사운드는 요즘 부각되고 있는 젊은 감성의 어쿠스틱 사운드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곡 ‘Freedom’은 애초 미국 테러 사건의 기금 마련을 위해 쓰여질 싱글로 만들어졌다.


Queen - A Night At The Opera (Hollywood, 1975)

의 네 번째 앨범인 [A Night At The Opera]는 한 편의 장중한 오페라를 몇 분의 노래에 축약시켜놓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퀸은 이 앨범을 통해 기존 사이키델릭한 락 사운드에 심취했었던 음악에서 오페라와 락을 접목시킨 오페라락으로의 변모를 시도하였다. 그러한 오페라락은 퀸음악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현재 발렌시아(Valensia)발렌타인(Valentine) 같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는데도 큰 몫을 했다. 퀸의 가장 대중적인 앨범임과 동시에 퀸 사운드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는 이 앨범은 전형적인 오페라락 사운드를 구현하는 ‘Bohemian Rhapsody’,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은 팝 발라드 ‘Love Of My Life’ 등 히트곡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 혼자서 코러스까지 모두 소화한 가히 완벽한 오페라 한편이라고 할 수 있는 ‘Bohemian Rhapsody' 한 곡만으로도 퀸이 얼마나 대단한 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잘 짜여진 곡 구성과 웅장한 스케일의 사운드에 반해 감미롭고 아름다운 멜로디, 멤버들의 뛰어난 배킹 보컬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명반임에 틀림없다.


U2 - Boy (Island, 1980)

아일랜드의 락음악을 전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려놓은 우상 유투의 데뷔앨범으로 완성도 높은 이들의 뛰어난 음악성을 이 앨범에서부터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핍박과 피의 역사 아일랜드를 휴머니즘적인 생각으로 소박하게 노래하는 정치적인 신념은 유투 음악의 바탕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사상이며 이는 곧 조국 아일랜드의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 온갖 난잡한 사운드가 혼재되어 있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보통 데뷔앨범과는 확연히 차이를 드러내는 이 앨범은 데뷔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유투의 노선을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인식시켜주는 그야말로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투의 이후 발표한 앨범들만큼 상업적인 성공과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다른 앨범들이 워낙 명반이어서 그렇지 이 앨범 역시 앨범 음악적인 아이템과 사운드적인 연출 면에서는 유투의 진가를 확실히 발휘한 수준 높은 음악성을 자랑하고 있다. 앨범 자켓의 인물은 보노의 집근처에 살았던 소년의 모습으로 앨범 타이틀 [Boy]와 아주 잘 어울리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미소년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보노의 독특하면서도 사람을 끌어드리는 매력이 가득한 보컬과 엣지(The Edge)의 개성적이면서도 유투만의 사운드를 잘 이끌어내주는 기타 사운드는 데뷔 앨범부터 유투의 잠재된 가능성을 충분히 드러내준다. 음악은 물론 이들의 따뜻하면서도 열정적인 인간성마저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특히 세 번째 트랙 ‘An Catch Dubh'의 후반에 나오는 엣지의 기타 솔로는 편안함과 더불어 결코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마력까지 불러일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Ladies and Gentlemen




 

나는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습니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에요.

Oscar Wilde의 The Picture of Dorian Gray 중에서


오늘 아침 면도를 하다 거울을 봤다.

약간 덥혀진 증기로 인해 뿌옇게 서린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어! 언제 여기 잔주름이 생겼지?”


어느새 내 얼굴 위로도 삶의 고단한 편력들이 아로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죽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단숨에 빼앗아 가는 법이지만 늙음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부패시켜버린다. 갖고 있던 열정도, 꿈도, 사랑도, 시간의 침식아래 서서히 퇴락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난 죽음보다 늙음이 두렵다. 존재를 상실하는 것보다 존재가 부패되고, 퇴락되어가는 것이 더 두렵다.

 Walter Raleigh 의 우울한 시구가 떠오른다.


믿지 못할 꿈처럼 나의 기쁨은 막을 내렸고,

내 좋았던 시절은 모두 과거로 돌아갔다네.

사랑도 잘못 되었고, 환상도 완전히 물러갔고

그 모든 지난 일 중에서 슬픔만이 남아있다네.


아침부터 시작된 씁쓸함은 종일 나를 괴롭혔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러곤 잠시동안 천장에 비쳐지는 그림자들의 희롱을 묵묵히 견뎌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스탕달의 말처럼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에 있다. 우린 그렇게 만들어 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TV를 봤다. 아! 반가운 사람을 나왔다. 제레미 아이언스다! 내가 좋아하는 정말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이다. 이란 다소 기묘한 이름의 영화였는데, 모로코의 이국적인 풍경과 Patricia Kaas가 부르는 Jazz Standard를 들을 수 있어서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던젼 앤 드래곤즈였다.^^)보다 많이 늙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멋있었다. 그는 정말 내가 닮고 싶은 외모를 가졌다.





가끔씩 여자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나랑 제레미 아이언스랑 둘 중 누가 더 멋지냐?”

“그걸 말이라고 해! 터진 입이라도 말은 바로 해야지. 당연히 제레미지.”

“야! 나도 아는데, 그렇다고 바로 직사포를 때리냐? 아씨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짱나네.”

“흐흐. 확실히 제레미가 나은데 자네도 자네만의 멋이 있어.”

“그게 뭔데?”

잠시 침묵

“자네는 일단 착하고, 성실하고.....”

“야! 됐어! 관둬.”

 

자신이 가장 아름다울 때 죽을 수 없다면, 결국은 시간의 끊임없는 침식과 맞서 싸워야 하리라. 끊임없이 투쟁하고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승리하며 그렇게 마치 戰士의 몸에 새겨진 상처의 각인처럼 우리의 얼굴에도 그렇게 주름이 하나씩 늘어갈 것이다.


그 주름진 얼굴이 부끄럽지 않은, 오히려 당당해 보이는 그런 전사의 얼굴이 갖고 싶다. 삶의 고난함과 치열함을 그대로 드러내도 결코 추하지 않은...

 



 

아이언스처럼 멋지게 늙는다면,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하이드 > edward hopper

  • Image Summer Interior
    1909 (100 Kb);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Chop Suey
    1929 (130 Kb); Oil on canvas, 32 1/8 x 38 1/8 in; Collection Barney A. Ebsworth
  • Image Hotel Room
    1931 (150 Kb); Oil on canvas, 60 x 65 inches;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 Image New York Movie
    1939 (110 Kb); Oil on canvas, 32 1/4 x 40 1/8 i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Image Office at Night
    1940 (120 Kb); Oil on canvas, 22 1/8 x 25 inches;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 Image Summer Evening
    1947 (130 Kb); Oil on canvas, 30 x 42 inches; Collection of Mr. and Mrs. Gilbert H. Kinney
  • Image Rooms by the Sea
    1951 (140 Kb); Oil on canvas, 29 x 40 inches;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 Image Morning Sun
    1952 (160 Kb); Oil on canvas, 28 1/8 x 40 1/8 inches; Columbus Museum of Art, Ohio
  • Image A Woman in the Sun
    1961 (140 Kb); Oil on canvas, 40 x 60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Sun in an Empty Room
    1963 (160 Kb); Oil on canvas, 28 3/4 x 39 1/2 inches; Private collection
  • Image Chair Car
    1965 (120 Kb); Oil on canvas, 40 x 50 inches; Private collection
  • Image Sunday
    1926 (150 Kb); Oil on canvas, 29 x 34 in;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 Image Drug Store
    1927 (210 Kb); Oil on canvas, 29 x 40 inches; The Museum of Fine Arts, Boston
  • Image Prospect Street, Gloucester
    1928 (180 Kb); Watercolor on paper, 14 x 20 inches; Private collection
  • Image Early Sunday Morning
    1930 (130 Kb); Oil on canvas, 35 x 60 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The Circle Theatre
    1936 (130 Kb); Oil on canvas, 27 x 36 inches; Private collection
  • Image Gas
    1940 (160 Kb); Oil on canvas, 26 1/4 x 40 1/4 in;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Image Nighthawks
    1942 (120 Kb); Oil on canvas, 30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 Image Rooms for Tourists
    1945 (220 Kb); Oil on canvas, 30 x 40 inches;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 Image El Palacio
    1946 (120 Kb); Watercolor on paper, 20 3/4 x 28 5/8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Pennsylvania Coal Town
    1947 (160 Kb); Oil on canvas, 28 x 40 inches; Butler Institute of American Art, Youngstown, Ohio
  • Image Road in Maine
    1914 (150 Kb);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Blackhead, Monhegan
    1916-19 (220 Kb); Oil on wood, 9 3/8 x 13 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 Image The Mansard Roof
    1923 (240 Kb); Watercolor on paper, 13 3/4 x 19 inches; The Brooklyn Museum, New York
  • More details House by the Railroad
  • Image Light at Two Lights
    1927 (130 Kb); Watercolor on paper, 14 x 20 inches; Collection of Blount, Inc., Montgomery, Alabama
  • Image The Lighthouse at Two Lights
    1929 (130 Kb); Oil on canvas, 29 1/2 x 43 1/4 inche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 Image Corn Hill (Truro, Cape Cod)
    1930 (110 Kb); Oil on canvas, 72.4 x 108 cm (28 1/2 x 42 1/2 in); McNay Art Institute, San Antonio, TX
  • Image Cape Cod Afternoon
    1936 (130 Kb); Oil on canvas, 34 x 50 inches; Museum of Art, Carnegie Institute, Pittsburgh, Pennsylvania
  • http://www.whitney.org/

    Railroad Sunset Hopper to Mid-Century: Highlights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on continuous view
    Leonard & Evelyn Lauder Galleries, Floor 5
    An entire century of American art can be seen through the rich holdings of the Whitney’s permanent collection. The first half of the exhibition chronicles the development of American art from the exuberant expressions of early twentieth-century realists to later modernist experiments in abstraction. Highlights of the exhibition include a special concentration of Edward Hopper paintings, George Bellows’s boxing masterpiece Dempsey and Firpo (1924), Georgia O’Keeffe’s sexually suggestive abstraction Music—Pink and Blue II (1919), and Joseph Stella’s paean to mechanization, The Brooklyn Bridge: Variation on an Old Theme (1939).



    Edward Hopper, Railroad Sunset, 1929
    Oil on canvas, 29 1/4 x 48 in. (74.3 x 121.9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Photograph by Bill Jacobso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945 Madison Avenue at 75th Street
    New York, NY 10021
    General Information: 1 (800) WHITNEY

     http://www.artic.edu/aic/index.php

    $159
    per person
    at american
    Select
    Check to compare
    Leave:
    May 27
    6:10 pm Depart  Philadelphia (PHL)
    Arrive  Chicago (ORD) 7:37 pm
    Non-stop American Airlines
    Return:
    May 28
    1:02 pm Depart Chicago (ORD)
    Arrive  Philadelphia (PHL) 4:00 pm
    흐으으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avest Home




     

    우리는 꿈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Written by William Shakespeare


    “그녀”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별다른 얘긴 아니었다. 친구랑 간단히 술 한 잔 하기 위해 외출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숙지(?)시킨 후, 잘 갔다 오란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른바 그 한 통의 전화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구속력을 확인하는 “연인들”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 중 하나였다.


    사랑의 본질이 아직도 고린도 전서 13장 9-12절 말씀(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아니 되며.....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에 있다고 믿는 순전한 분들께서는 생각을 좀 달리하시길 바란다.

    하느님 스스로도 자신은 질투하는 하느님이라 하셨으니(이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 해당되는 모순 어법으로) 고린도 전서 말씀은 한 마디로 개구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사랑은 오래 참을 수도 없고(특히 육체적으로 더욱 그러하다.) 사랑은 온유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매우 뜨겁고, 때로는 매우 차가울 때도 있다.) 사랑은 성내기가 다반사다.(평화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다면, 권태기가 아닐까하고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각설하고 즉 사랑에는 구속이 당연히 따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온전한 자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사랑이다.

    이른바 자발적 노예상태에 자신을 기꺼이 놓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단 몇 분간의 그녀와의 짧은 대화로, 나는 그녀에게 아직까지는 확고한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약간의 만족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 후에 커피 한 잔을 마셨고,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두 서넛 편을 읽었다. 마침 마음에 드는 구절이 몇 개 있는 터라 그녀에게 나중에 읽어주기 위해 갈피를 해 두었다.


    어느덧 권태가 서서히 밀려들어왔고, 난 Sir Roland Hanna의 Apres un reve (꿈꾼 후에)를 듣다 잠이 들고 말았다. “꿈꾼 후에”는  “Les Berceaux(요람)” 과 더불어 가브리엘 포레의 모든 가곡(Lied)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유려한 선율을 가지고 있는 후기 걸작중 하나로 첼로 곡으로도 많이 편곡되어 연주되는 편이다. (시간이 되신다면 미샤 마이스키나 다닐 샤프란의 첼로 독주곡을 반드시 들어보시길 바란다.)

    가곡의 매력이라면 어디까지나 시와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으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예술 양식이라는데 있다. 

    즉 가곡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를 띄고 있는 셈이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실제로는 전혀 그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권태를 수반한 잠에 취해 ‘꼬박꼬박’ 졸고 있던 나는 잠시 후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생각엔 꽤나 “푹” 잔 것 같은데 오디오에선 포레의 “꿈꾼 후에”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내가 잠에 취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일종의 시간적 감각을 상실해버리는 이상야릇한 경험을 한 것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통화중 난 내가 잠 안자고 목 빠지게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는 주의사항을 남긴 터라 괜스레 미안한 맘이 들었다.

    사실 기다린 게 아니라 잠에 취해 있었다면, 분명 실망을 할 터여서 난 그녀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일종의 양심적 보호조치인 셈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친구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확인 되었고, 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난 참으로 유치한 놈이구나!”


    Sir Roland Hanna는 Tommy Flanagan과 더불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성기를 맞았던 디트로이트 재즈를 대표했던 거장으로 본 작에선 Classical하면서도 서정적인 피아니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Roland Hanna는 유난히 음주와 마약으로 얼룩진 Jazz계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그의 전작인 Milano, Paris, New York, Finding John Lewis는 위대한 비브라포니스트이자 MJQ의 일원이었던 밀트 잭슨과 존 루이스에게 헌정하는 음반으로써, 후배가 선배에게 경의의 의미로 앨범을 헌정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동시대의 연주자가 동료에게 아낌없는 경의와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그의 이름 앞에 붙은 Sir라는 기사작위는 라이베리아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에 대한 보답으로 라이베리아 대통령이었던 William V.S. Tubman에 의해 수여된 것으로, 그 어떤 기사작위보다도 더욱 값진 것이라 하겠다.

     

     

     

     


     <죽여주게 섹시한 비너스 레이블의 앨범 자켓 "제발 가져줘 라는 느낌이랄까!">

     

    특히나 이번 작은 Bach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첼로 대신 베이스의 피치카토 주법으로 창의성 넘치는 표현력과 초절한 테크닉을 선보였던, 베이스의 거장 Ron Carter와 유연하고 리드미컬한 드러밍(Druming)을 들려주는 Grady Tate와 함께 아주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사운드를 창조해 내고 있다.

    게다가 더욱 애틋한 것은 2002년 11월 13일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타계한 Roland Hanna의 마지막 유작이란 점이다.


    난 또다시 Apres un reve(꿈꾼 후에)를 들었다.

     

     


    Dans un sommeil que charmait ton image

    너의 영상이 사로잡았던 꿈속에서


    Je revais le bonheur ardent mirage,

    나는 꿈꾸었네! 신기루 같은 열렬한 행복을,


    Tes yeux etaient plus doux, ta voix pure et sonore,

    너의 두 눈은 마치 극광으로 반짝이는 하늘처럼,


    Tu m'appelais, et je quittais la terre

    너는 나를 불렀지, 그래서 나는 땅을 떠났다


    Pour m'enfuir avec toi vers la lumiere,

    빛을 향하여 너와 함께 도망치기 위해,


    Les cieux pour nous entr'ouvraient leurs nues,

    하늘은 우리를 위해 살며시 열었지 그들의 구름을,


    Splendeurs inconnues, lueurs divines entrevues,

    미지의 찬란함, 살짝 보인 신성한 섬광,


    Helas! Helas! triste reveil des songes

    아아! 꿈에서 슬프게 깨어나다니


    Je t'appelle, o nuit, rends-moi tes mensonges,

    나는 너를 부른다. 오, 밤이여 돌려주렴. 내게 너의 환상을,


    Reviens, reviens radieuse,

    돌아오라 아름다운 이여,


    Reviens o nuit mysterieuse!

    돌아오라 오 신비로운 밤


    늦은 밤 그녀가 별 탈 없이 곱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쇼스타코비치의 두 얼굴

    언젠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인 올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최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는 소개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데, 며칠전 교수신문(06. 05. 04)에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음악비평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이 또한 옮겨온다. 그의 생일은 9월에 있으므로 가을에야 보다 성대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될 듯하지만, 미리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기사를 가끔씩 읽어보기로 한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대개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옮여오는 식이 될 것이다. 이번 기사는 허영한 한예종 교수가 기고한 것으로 '冷戰은 그의 음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가 그 타이틀이다.

    -레닌과 스탈린, 흐루시초프의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드미트리히(*'드미트리'가 맞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격변하는 20세기의 세계사와 소련의 역사가 그대로 반영된 흥미로운 주인공이다. 조연급이면 피할 수 있었던 비난의 초점이 됐고 그를 사이에 둔 소련과 서방세계의 지속적인 갈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쇼스타코비치가 진정으로 소련 공산당의 충실한 당원이었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렇게 행세를 한 것인지의 문제다. 절묘하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작곡가 자신은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 자아비판을 하면서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국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어쩌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수많은 암시를 흘리고 있었다.

    -교향곡 1번(1925)으로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소련이 최고로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긴 쇼스타코비치에게 위기가 오기 시작한 건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 때문이었다(*얼마전 이 오페라의 원작인 레스코프의 <므첸스크군의 멕베스 부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34년에 초연됐던 이 오페라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러 온 스탈린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사랑받던 오페라가 순식간에 비판의 초점이 됐다. 1936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위기를 넘기게 한 작품이 바로 지금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제5번이다. 이 교향곡이 1937년에 초연된 그 날 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교향곡이 감격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소련 최고의 작곡가로 복권된 그는 1938년 신문과 인터뷰에서 “교향곡 5번이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응답이라고들 하니 매우 기쁘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잘못을 반성했다고 보기에는 충분치 못한 답변이었다.

     

     

     

    -교향곡 5번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 악장 피날레는 다소 급격하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급전되면서 활발하고 밝은 분위기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의 급변과 체제 순응적인 쇼스타코비치를 연결지으려한다. 긍정주의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러한 피날레를 만들어 넣어 정부의 비난을 피하려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다소 인위적인 미학적 잣대를 내세워 서방세계의 음악계가 추구하던 모더니즘을 비판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는 바로 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비판을 받았고 그보다 다소 쉬운 음악적 내용을 지닌 교향곡 5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작품으로 보았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음악은 소리라는 추상적 매체를 사용하는 장르여서 가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구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사가 없는 순수 기악음악의 경우 아무리 구체적 내용이 명시된 표제음악이라 하더라도 그 제목과 달리 감상되고 해석되어질 여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작곡가의 직접 언급이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서 작곡가가 직접 이 곡은 강이다, 또는 이 선율은 나무다, 라고 말하지 않는 한 작곡가가 진정으로 담으려고 한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해석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곡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과 자신의 의견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말하자면 “당신들이 이 곡이 이러하다고 하니 나는 기쁘다” 정도에서 멈춘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내용으로만 이해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러한 태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은 천박하기까지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의 선율이 등장하는가하면 엄숙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사용된 ‘운명’ 모티브까지 나온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조합에서 의미를 찾느라 부산했지만 정작 작곡가는 이 곡의 특별한 내용의 존재를 부인했고 단순히 ‘장난감 가게’와 같은 분위기라는 설명만 제공했다. 또 한번 그의 알다가도 모를 작품 해설(?)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이번에는 다소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전쟁 교향곡인 교향곡 7번은 흥미있는 일화와 함께 순수 기악음악으로도 일정한 구체적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나치군이 소련을 침략하자 쇼스타코비치는 곧바로 군에 지원하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지붕을 지키는 소방부대에 편입된다. 소방 모자를 쓰고 지붕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소련의 거의 모든 신문에 실렸고 서방 언론에서도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변신한 작곡가의 모습을 흥미롭게 다뤘다. 같은 해 8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났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남아서 그의 교향곡 7번의 일부를 완성한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직접 이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사태가 위태로워지자 당 지도부는 레닌그라드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는 이번에는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작곡자는 긴 내용의 줄거리를 직접 밝히고 있어 그 내용의 해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받는 레닌그라드 도시와 소련 동포를 묘사하는 1악장으로 시작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4악장으로 끝나는 교향곡이라는 것이 작곡자의 변이었다. 비록 가사는 없지만 작곡자의 설명이 수긍이 가는 음악적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생애 말년에 이 교향곡이 레닌그라드가 포위되기 전에 이미 구상됐고 성경의 94번 시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교향곡에서 전쟁 분위기를 피하기는 어렵다. 행진곡 풍의 리듬과 북소리는 전쟁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쇼스타코비치를 철저하게 체제 순응적인 작곡가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그처럼 극적으로 작곡된 교향곡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스탈린 사후, 쇼스타코비치가 선보인 첫 작품이 프로그램이 없는 교향곡 10번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24살의 피아노연주자 엘미라 나지로바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녀의 이름 ‘엘미라’로부터 이끌어낸 선율 동기(미-라-미-레-라)와 작곡자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나온 선율 동기(D-Es-C-H/우리말 음이름으로 옮기면 레-미b-도-시)를 서로 얽혀 놓고 있다. 교향곡 10번은 다시 한번 비평가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정치적 상황이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한 쇼스타코비치는 평소와는 달리 강력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결국 1954년 4월 초에 열린 작곡가 연맹 대회에서 이 불필요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듯이 작곡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며 “이 작품에서 나는 인간의 감정과 열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끝맺는다. 이 교향곡은 어떤 정치적 해석도 어려워 보인다. 극히 사적인 쇼스타코비치만이 존재하며 이 점을 그는 반성해야만 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그의 교향곡을 해석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으로 체제 순응 작곡가였다면 그의 교향곡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해석되고 그렇지 않다면 부당한 정부의 압력에 대항한 서구식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서방세계의 음악관은 철저하게 미학적 자율성을 중시했기에 미학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상반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의 배경은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당시로서는, 또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냉전 시대적 대결 구조다. 쇼스타코비치를 소련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과 그를 서방 세계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암투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다. 분명한 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양면성 중 한 면을 강조하며 자기편으로 유도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 양면을 모두 진정한 쇼스타코비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6. 05. 08.

     

     

     

     

    P.S.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게 쇼스타코비치의 평전인데, 국내에는 아직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론과실천, 2001)밖에 나와 있는 책이 없다(진의성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책이다). 유력한 평전(들)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