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낡은 책을 뒤졌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하고, 왠지 구색도 전혀 맞지 않는 낡은 장정의 책 한권을…….
그 책엔 500원이라는 믿기 힘든 가격표와 한땐 내 나이였음직한 나이든 청년이 서 있었다.
당시엔 선홍색이 분명했을 빨간 잉크의 만년필로 적어놓은 낯선 글씨체…….
여기저기 줄도 그어놓았고, 맘에 드는 구절은 책장의 하얀 여백에 빼곡 적어놓았다.
지금의 당신이 아닌 1971년 당시의 당신을 지금 뵙니다.
-남자와 교제가 없는 여인은 차츰 퇴색한다. 여자와 교제가 없는 남자는 차츰 바보가 된다.
쿠쿡! 당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슬기롭게 행동하기에는 슬기로움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구절이네요. 전 얼마 전에야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의 4대 장편을 겨우 읽었답니다.
-여자는 예술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들러리들이 내는 소음에 매혹된다.
하하하! 저보다도 여자에 대해 더 냉소적이신데요? 근데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결혼하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 그 밖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큿! 정말 위험한 발언인데요. 아무래도 어머니께 고해바치는 편이…….
-죽은 자에게 치욕은 없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네엣. 그냥 모른 척 해드릴께요. ^^:
-암참새에겐, 남편인 수참새의 우는 소리가 짹짹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무척 훌륭한 노래인양 들린다.
하하하! 네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지퍼 채우겠습니다.
-생활에 굶주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즉 한잔 하고 싶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를 마셨다.
이번 추석엔 맛난 포도주 사들고 찾아뵐게요. 아버지! 그 때까지 몸 편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