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낡은 책을 뒤졌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하고, 왠지 구색도 전혀 맞지 않는 낡은 장정의 책 한권을…….




그 책엔 500원이라는 믿기 힘든 가격표와 한땐 내 나이였음직한 나이든 청년이 서 있었다.

당시엔 선홍색이 분명했을 빨간 잉크의 만년필로 적어놓은 낯선 글씨체…….

여기저기 줄도 그어놓았고, 맘에 드는 구절은 책장의 하얀 여백에 빼곡 적어놓았다.




지금의 당신이 아닌 1971년 당시의 당신을 지금 뵙니다.




-남자와 교제가 없는 여인은 차츰 퇴색한다. 여자와 교제가 없는 남자는 차츰 바보가 된다.




쿠쿡! 당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슬기롭게 행동하기에는 슬기로움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구절이네요. 전 얼마 전에야 비로소 도스토예프스키의 4대 장편을 겨우 읽었답니다.




-여자는 예술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들러리들이 내는 소음에 매혹된다.




하하하! 저보다도 여자에 대해 더 냉소적이신데요? 근데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결혼하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 그 밖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큿! 정말 위험한 발언인데요. 아무래도 어머니께 고해바치는 편이…….




-죽은 자에게 치욕은 없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네엣. 그냥 모른 척 해드릴께요. ^^:




-암참새에겐, 남편인 수참새의 우는 소리가 짹짹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무척 훌륭한 노래인양 들린다.




하하하! 네네 알겠습니다. 확실히 지퍼 채우겠습니다.




-생활에 굶주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즉 한잔 하고 싶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를 마셨다.




이번 추석엔 맛난 포도주 사들고 찾아뵐게요. 아버지! 그 때까지 몸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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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Su 2007-09-0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버님께서 꽤나 멋지신 감성을 지니셨는데요 :-D

하이드 2007-09-0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미하엘 부르벨의 <앉아있는 악마>네요.
오래간만입니다. 점점 퇴색해가는........ 하이드입니다.

보르헤스 2007-09-0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퇴색이라니요? 여전히 강인한 포스를 뿜고 계시던데요 ^^

구영탄 2007-09-1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명이 '보르헤스'라 그런가, '경전'(?)을 집필했다 해야하나 '서사시'(?)를 쓰셨다고 해야 하나. 선인(先人)들의 경구와 한자, 라틴어(아니면 개망신)까지 섞여 '가오다시' 확 잡힌 글을 보면서 '풉'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위서가님은 “악즉참(惡卽斬)”을 서슴치 않는 '거짓 선지자'(!!!!)로 등장하셨으니 내가 우려하던 위서가 수난사는 '보르헤스'에 의해 쓰여지는가 보다. 그런데 수난사가 아니라 '조조'처럼 묘사되고 있으니 후일 이학인 같은 사람이 나타나 '위서가판 창천항로'(?)라도 집필하진 않을지, 위서가님도 곤혹스럽겠군.



그토록 조롱하던 '성녀'(聖女)와 '제단'(祭壇)', '제사장'의 존재를 고백하시는데다 위서가란 '이단자'의 '말씀'까지 등장시켜서 그 극적 효과가 더욱 배가되고 있다. 게다가 알라디너들의 지금 모습이 '집성촌'의 안녕을 흔드는'거짓 선지자'에 대항한 '성전'(聖戰)처럼 묘사되어있다. 엽기 함수(?)나 만드는 찌질한 3류 인생인 내 말이 맞을 때가 있구나.
너무 안타까워서 알라디너분들께 '샤를마뉴'가 나타나시길 빌겠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제사장이신 황빠 마태우스는 아닌거 같네요
http://www.kyobobook.co.kr/booklog/myBooklog.laf?memid=allagri

구영탄 2007-09-1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야오이' 정도는 써주었길 기대했구만. 저 정도 밖에 못 되는군요. x
위서가 | 2007-01-15 15:04:01.813
아, '야오이' 정도는 써주었길 기대했구만. 저 정도 밖에 못 되는군요. x
위서가 | 2007-01-15 15:04:0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