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심판을 가하는 그대들의 공포는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보다 훨씬 크구나.


Written by Giordano Bruno (異端訊問에 회부된 그가 화형장에서 적들에게 남긴 유언 중)


한 인간이 있다.


그는 한 여성에게 그가 가진 모든 증오와 혐오와 냉소를 퍼부어 주었다. 모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그녀는 정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다시 한 번 참을 수 없는 비아냥과 조롱이 더해졌다. 그런 직후에 그는 그녀에게 가한 모든 증오와 냉소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어떤 정의”를 위해서라고 남은 마을 사람들에게 강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내세우고자 하는 정의는 모두를 위한 것이나, 대중은 어리석은 것이기에 희생양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정의의 제단을 올려다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자신은 그 누구에게나 공정한 자이며, 정의를 위해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서슴없이 베겠다며 사람들에게 신뢰를 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정의를 위해서라면 비록 연맹을 한 자라 할지라도 언제나 빈틈을 보이거나 열등하다고 느끼면, 그 즉시 “악즉참(惡卽斬)” 해버리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나서 언제든지 빈틈이 보이면 그 악한 본성을 기꺼이 드러내려는 성향을 가진다.”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강인한 철혈의 법을 적용하는 것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전히 희생자의 피가 흐르는 제단에 우뚝 선 그는 자신의 철혈의 법을 선포했다.


1. 지금부터 다른 마을에 가서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발설치 말라.

2. 다른 마을에서 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발설하거나 적어둔 이는 그 즉시 삭제토록 하라.

3. 집에서 만든 물건은 마을의 시장에 내놓되 다른 마을의 시장에 내 놓아서는 안 된다. 또한 다른 마을에 또 다른 집을 소유한 자는 그 집을 그대로 소유하게는 허용하나, 그 집의 물건을 마을내부로 반입할 수는 없다.

4. 우수 상품으로 선정되어 마을 시장 상을 획득한 물건 또한 그 마을 내부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5. 위의 계명을 어기는 자는 파렴치한으로 그 즉시 악즉참한다. 누구도 그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바이다.


법이 선포되자 마을 사람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전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법이었고, 마을 사람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선포였기 때문이었다. 소란과 번민이 계속되자 그는 “법 적용을 거부하는 자는 정의롭지 못한 자이며, 뒤가 구린 자임이 틀림 없다.” 라고 외쳤다. 또한 이들을 감싸는 이 또한 그들의 잇속을 대변하는 자이며, 패거리 주의에 빠져있는 자다며 고함치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 몇이 나서 “왜 당신의 법이 정의로우며 따라야 하는 지를 말해주시오.” 라고 하자 “나는 어리석은 너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니라.” 라고 말하며 나는 이 마을에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왔노라고 외쳤다.


그럼 그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를 어디 한번 보여주시오 라고 마을 사람이 말하자 그는 그 말에 대답치 아니했다. 그리고는 “나는 이미 너희에게 보여주지 않았느냐. 내가 그 무기를 들고 찌르자 견디지 못한 마녀는 이미 달아나지 않았느냐. 그 여자가 정의로웠다면 내 무기를 능히 견뎌냈으리라.”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마을 사내가 하나 나서 “내 보기에 그건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가 아니라 모욕이라는 이름의 무기였소.” 라고 하자 그는 냉큼 나서 “이 사내야 내보기엔 너 눈이 멀었는데 가당찮게 네 놈이 무기를 볼 수는 있겠느냐!”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무기는 논리와 이성이라는 이름의 무기가 아니라 모욕이라는 이름의 무기였다. 이에 사람들이 나서 “이 거짓 선지자야! 당장 너의 무기를 보이지 아니하면 너를 마을에서 추방하겠다.”고 하자 그는 슬그머니 마을에서 꼬리를 감췄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리로 돌아가


“이보게나. 내가 알라딘 마을이라는 곳에  갔었는데, 그 곳엔 여전히 어리석고 착하기만 할 뿐인 멍청이들이 살고 있었다네. 내가 한 칼을 휘두르자 다들 어쩔줄 몰라하더군. 내 친히 나서 그 마을을 이미 아작내었으니 관심들 끊게나.” 하며 혼자 희희낙락하였다.


첨언해서


주관 없는 객관이 있을 수 없으며 객관 없는 주관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는 이미 자신의 주관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세계이다. 자신의 정의가 반드시 모두의 정의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그 인간이 알아주었음 한다.


또 하나!


성악설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성악설이란 말 그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타고 난다라는 것인데 이는 그 전제에 고정불변하는 절대 악의 실체를 인정하는 가설이다. 절대의 선과 절대의 악이 실체하는 것이었다면, 철학의 모든 문제는 이미 2000여년도 더 전에 모두 해결되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빚어지는 모든 악이 그 악의 실체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 모든 원인을 그 악의 실체에 돌려버리면 간단히 해결되겠지. 하지만 선한 의도로 행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악한 행위로 탈바꿈되어 버리는 일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세계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또한 의도를 전혀 가늠할 수없는 자연의 대재앙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선과 악의 문제는 여전히 철학의 근본문제로 남겨진 것이다.


Nos habitat, non tartara, sed nec sidera Cooli:

Spiritus, in nabis qui viget, illa facit.


성악설이라... 그대 다시 한 번 나를 웃겼다.


둘!

그만큼 공공의 선과 윤리를 강조하며, 단 몇 십원 몇 백원의 비리에도 몸을 떠는 당신은 한 여성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을 가했다. 설사 그대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모욕을 가하고 혼자 낄낄대는 모습은 나에게는 심히 불쾌했다.


“모욕을 주는 사람은 그 모욕을 모래 위에 쓰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은 청동에 새겨두는 법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려보라. 그대에게는 한바탕 비웃고 지나쳐버릴 가벼운 일과에 불과했는지는 모르나 그 상처를 받은 이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것을 명심하라.


셋!

내가 함부로 당신을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가차없이 베어버리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당신은 어쩌면 고독 속에서 절망해서 야수성만을 길러온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난 느꼈다. 철학자 라울 바네켐은 “절망하는 의식은 질서를 위협하는 자가 되게 한다.”라는 말을 남겼지. 이번의 중복리뷰 사태를 지켜보면서 난 그 진리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니체는 “인간은 지상의 그 무엇보다도 비극과 투우와 십자가의 처형을 즐긴다. 그리하여 인간이 스스로 지옥을 안출해 내었을 때, 보라! 그곳이야 말로 그의 지상천국이었다.” 라고 그의 저서에서 썼었지. 니체가 말한 인간의 모습과 당신의 모습이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언제까지나 달아나 보라! 그대의 고독 속으로. 그곳엔 절망만이 존재할테니까.


넷!

알라딘을 아작내었다고 혼자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몽테뉴가 떠오르더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당신이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당신 엉덩이 위일 뿐이야. 그렇지 않나?


언젠가 리뷰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정말 잔인한 폭력은 견딜 수 있어도 잔인한 이성은 견딜 수 없나 봅니다. 비록 내가 틀리고 그대들이 맞다 하여도, 단지 중복리뷰를 공론화하기 위해 몇 몇의 희생자들을 골랐다고 하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나도 옳지 않게 느껴집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소수는 희생되는 것이 당연한 겁니까? 만약 그 소수가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그 때에도 가차 없이 칼을 자신의 목에 겨누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심판의 공포에서 두렵지 아니하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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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이번 논쟁에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보르헤스님을 '제대로'만난 것입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추천.

보르헤스 2007-01-1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번 논쟁을 통해서 아프락사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즐찾해두었습니다. ^^

antitheme 2007-01-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앞으로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07-01-1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어떤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조용히 추천만 누르겠습니다.

2007-01-15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1-1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글입니다. 성악설을 지지 운운했을때부터 저는 위서가라는 작자의 글을 주의깊게 보지 않았습니다. 사람자체가 굉장히 나이브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자기는 논리적이라는데.. 전혀 못느끼겠고.(장광설과 논리적인 것을 착각하고 있는 듯) 자신과 뜻이 다른사람은 황빠니 된장으로 비약시키니 인간성도 글러 먹은거 같고, 성악설이라..실컷 웃읍시다. (프로이트가 굉장히 억울해하겠는걸? 분석할 것도 없는 걸 분석하는데 골몰했으니 ㅋ )

paviana 2007-01-1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글도 잘 읽었어요. 논리로 무장했다고 주장하는 무지하게 어렵고 몬 말인지도 모르겠는 글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네요.^^
글구 테츠님 아름다운 이미지만큼 댓글들도 어찌나 아름답게 하시는지 님에게도 감동했어요.ㅎㅎ

보르헤스 2007-01-1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titheme 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배워야지요. 즐찾해두었습니다.
다락방/ 가끔씩 제 서재에서 뵙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속사이신 님/ 네. 저는 그 사람에게 혐오와 조롱대신 연민을 보냅니다. 그 사람의 삶은 아마도 사막같은 황폐함만이 있을 듯 하네요. 누구도 믿지 못한다니... 길을 걸을 때도 항상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겠지요. 누가 나를 찌르지는 않을까하고..
테츠님/ 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단단한 감옥에 스스로 자신을 가둔 자는 갇힌 창 살 밖의 풍경만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전부인 걸로 착각하며 살아가죠. 불쌍한 사람입니다.

클리오 2007-01-1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운 글들 속에서 보르헤스 님 글들을 참 인상깊게 봤습니다. 제가 하고싶었던 말들도 이곳에 몇몇 있군요.. 덕분에 님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 일이 제게 좋은 책동지를 잃은 손해만 끼친건 아니군요..(아! 이걸 위안이라고..) 자주 뵙겠습니다.

보르헤스 2007-01-1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 다소 개인적 감정에 치우친 글이라 읽기에 거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사실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클리오님/ 떠나신 분은 참 안타깝습니다. 여대생님은 서재는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두 클리오님을 알게 되서 기쁘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