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발전은 추악함을 만들어내는 원흉이다.


written by oscar wilde




오늘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利器)  중 최고인 지하철을 탔다.

무더운 날씨에도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지. 속도 빠르지. 게다가 시간 철저히 지키지

정말 지하철만한 게 없지 싶었다.




짜증이 함박눈처럼 폭폭 쌓여가는 더위에,

지하철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나에게 외려 유쾌한 기분마저 안겨 주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내 앞에 앉자마자 기분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난 최근의 패션trend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지켜야할 최소한의 에티켓엔 관심이 무지 많다.




무릎 위 15센티는 올라갔을법한 짧은 short pants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리고 앉아

형형색색 빛나는 얄궂은 쪼리에 맨발을 꼼지락거리며,

땀에 흠뻑 젖음직한 running shirts를 입고 연신 부채질 하고 있는,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쪼리는 슬리퍼라네. 슬리퍼는 실내에서 신는 것이야.

야외에서 굳이 신어야 한다면 해변이나 강가에서 신을 것이지.

도심 한복판에서 쪼리라니?




그리고

런닝은 말 그대로 운동할 때, 특히 달릴 때 땀을 흡수하기 위해 입는 속옷이라네.

그건 겉옷이 아니야. outer가 아니란 말일세.

자네의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겨드랑이 좀 가려줄 수 없겠나?

거뭇한 겨드랑이를 다 드러낸 채 부채질을 할 정도로 덥다면

차라리 왁스를 덕지덕지 쳐 바른 그 긴 머리나 짤라보지 그래?

한결 더 시원할 텐데...




예부터 멋은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데 있었다.

옷의 시초는 보온이 아니라 치장에 있었으며,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데 있었다.

지금도 열대우림의 원시부족을 지켜보라.

그들은 전혀 옷을 입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신이나 장신구로 자신의 몸을 가린다.

멋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진정한 멋은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감추는 데 있다.

 

(다음의 사진은 거리의 멋진 일반인들을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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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모자에 블루셔츠, 그리고 셔츠에 색상을 맞춘 포켓스퀘어

그리고 깔끔한 베이지색 린넨 자켓.

이렇게 겹쳐입어도 시원해 보이면서 멋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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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색상의 스웨이드 슈즈. 자세히 보면 포켓 스퀘어와 안경을 구두 색상에 맞추신

그리고 브이 존에 떡하니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린 색상의 넥타이

보색대비닷! 미술시간에 배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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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그저 배울게 너무나 많은...쿨한 네이비 자켓에 면바지

거기에 브라운 색상의 멋들어진 몽크 스트랩 슈즈. 지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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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american tradi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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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대저 노익장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전혀 신경을 안 쓴 듯한 자연스러움이 녹아드는 진정한 일상의 멋을 보여주신 할아버지

더워서 양말이 신기 싫으면 쪼리를 신지말고 저렇게 슬립 온을 신으란 말이닷!

페도라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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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도 안 달린 구식 자전거를 타고도 이런 포스라면... 쩝!

 

 

classic복식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탑재가 전혀 안되어 있는,

몇 몇 스타일리스트라는 작자들이 tv에 등장하면서부터 요상한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피케셔츠에 넥타이를 매질 않나. 포멀 슈트에 로퍼나 스니커즈를 신기지 않나. 재킷에 후드 티를 겹쳐있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풍습이냐고?




복식에 대한 아무런 진지한 연구도 없이, 연예인이나 모델들에게 지들 쪼대로 아무렇게나 쳐 입혀 놓구선, 개성 왈왈하는 꼴이라니. 더 웃긴 건 저번에 m-net보니까 지들 꼬라지는 더 지랄같으면서 지나가는 멀쩡한 사람 붙잡고, 이렇게 입으면 안된다는 둥, 촌스럽다는 둥 지껄여 대더라.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무례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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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즈 연주가들 중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라산 할아버지

시각 장애인이었으면서도 어떻게 저런 스타일을 소화해 내었는지

두눈 멀쩡히 뜨고도 저런 멋을 못 부리는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겨! ㅠㅠ


마지막 결론: 더워도 옷 좀 입고 다니자.

동네 아저씨들이 란닝꾸에 딸딸이 신고 다니면 꼭 욕하는 것들이

니네들은 왜 그러고 다니냐? 걸칠 건 좀 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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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요즘 바깥나들이를 안 하는터라 세상사람들 옷 입는데 무심했어요. 미국에도 실용성의 신 앞에 망가진 패션빅팀들은 널렸지요. 유러피안의 로망. 저는 지난 두달 도쿄에 있으면서, 그네들의 센스에 감격했습니다.

마늘빵 2007-08-1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보르헤스님 간만입니다. 아 이런 말은 뭣하지만 저는 '노출'해주시면 고마워서... 크크. 그나저나 밑에 있는 일반인들 참 멋있습니다. 저렇게 나이들어가고 싶습니다.

조선인 2007-08-1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전 초록 넥타이에 한 표입니다. 최고 최고~

비로그인 2007-08-1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 시원한 글이예요. 전에 석호필이 와서 찍은 옷광고를 보고서 혀를 끌끌 찼는데 말이죠. 뭐 그리 덕지덕지 입혔누..하고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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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다른 게 아니라 다시 떠오른 추억일 때가 종종 있다.




written by 프란츠 올리비에 지스베르 “착각”중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견고한 벽을 쌓는 일과 같다.




자신의 주위에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쌓아올려

바늘 하나 들어갈 수조차 없는 단단하고 견고한 벽을 쌓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가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새로이 아는 것도 귀찮아지고, 새로 배운다는 것도 성가신 일이 된다.

그저 예전에 알던 것, 예전에 좋아하던 것, 예전에 사랑했던 것만을

자꾸만 되새김질 하게 된다.




스탕달의 <적과흑>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사랑(amour)을 라틴어로 아모르(amor)라고 한다.

그러니 죽음은(mort)은 사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사람은 죽어가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에 한층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




새로이 무언가를 알고,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엔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예전에 사랑했었던 것을 다시금 되씹고, 주워 삼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근래엔 지나간 옛 노래가 좋아졌다.

김광석, 유재하, 이문세, 윤상, 미스미스터 등등

노래가사와 가수 이름은 지나간 세월과 함께 이미 잊어버렸지만

불현듯 절로 입에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들이 그리워졌다.




나에게 재즈는 그 지나간 옛 노래만큼은 체화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엔 재즈를 거의 듣지 않는다.

모르지. 

찬바람이 불면

스쳐가는 바람 뒤로 그리움만 남는 계절이 되면

다시 재즈가 그리워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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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다시 운동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몸의 실루엣을 만드는 작업이겠지만,

 

시작한 이후로 통 입맛이 없다.

 

매 끼마다 닭 가슴살과 오이, 당근, 달걀흰자를 먹어대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수도사의 고행과도 같은 저녁 식사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요즘은 통 보지 않던 tv를 켰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마침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난 인류 멸망의 징조를 예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쿠쿵!


오프라 윈프리는 3명의 독신 여성을 초대해 그들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런 저런 가벼운 담화를 나누었다.

 

초대된 3명의 여성은 경제적으로는 아무 불편이 없어 보였다.

한 명은 소아과 의사였고, 다른 한명은 변호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남성들이 독신 여성을 바라봄에 있어서 가장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인,

외모에 있어서도 그들 3명은 평범한 편이었다.


그 중 한명은 남성을 사귀기 위해,

유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을 올려놓았다고 고백했다.(아마도 그녀는 유태인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명은 개 공원에 산책 나오는 남성들에게 쉽게 말을 걸기 위해 애완견을 한 마리 구입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30대 후반의 소아과 의사라고 소개했던 여성이,

자신은 이미 결혼을 포기 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정자은행에 정자 기증 신청을 해 놓았다는 은밀한 사생활을 마침내 털어 놓고 말았다.


정자 기증 신청이라니!

생식하고자 안달이 난 암컷 생명체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종(種)의 미래라니!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살펴보라!

인류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생식을 위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수의 수컷이 하나의 암컷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생식을 위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손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런 사태를 유발하게 만든 현대문명 자체에 나는 깊은 회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즉 우리가 이루어낸 진보라는 것의 정체가 결국 이런 것이었나 하는…….


정보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개인과 집단, 혹은 개인과 개인과의 소통은 점차 힘들어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결국 각 개인은 분자 단위로 원자 단위로 쪼개어져 고립화될 것이 분명하다.

가상 사이버 공간에 불과한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종(種)의 미래란 종말 외에 무슨 대안이 있을까?


정자 기증자라는 것의 정체 또

결국 다수의 여성이 “현재” 선호하는 소수의 특정 유전자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런 소수의 특정 유전자만이 유전자 풀을 장악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미래”에 있어서 종의 다양성과 적응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만약 그 소수의 특정 유전자에 치명적인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나 병이 발생한다면?

인류전체는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작정 ‘들이대는’ 유전자가 필요하다!

앞 뒤 안 가리고 무조건 들이대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말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도(mix & match) 때론 멋들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다가오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선 무작정 들이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창조하시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라는 사명을 내리셨다니

우리는 이에 따름이 지극히 합당한지라,

아직 혼자인 독신남성과 여성들은 부지런히 서로에게 들이대야만 하는 것이다.


여행을 계획 중이라서 그런지 오늘 아침엔 여행 가방 사는 꿈을 꾸었다.

난 아주 단순한 편이라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유난히 잘 들어맞는 편이다.

꿈의 출처가 아주 명확하고, 나의 무의식도 분석하기 용이하다.

평소 봐 둔 가방이 몇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무작정 들이대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면세점에 가봐야겠지.

그리고 가격을 보고 흡족해 하거나 아니면 절망해야겠지.

 

Anyway, 오늘 잡생각은 여기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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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2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방이 상당히 비싸보입니다. 꽤 넓습니다. 저도 얼마전 인터넷서 싼거 질렀는데 그냥 그래요. -_- 실물을 보고 사야하는건데.

비로그인 2007-04-2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용준이라도 되시려는 건가요?
매끼니마다 닭가슴살 이라니요...^^
가방이 벽돌 두어개 넣고 다니다 여차하면 시위현장에서 꺼내어 던져도 좋을 정도로 튼튼해 보입니다 :)

하이드 2007-04-2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이대는 건 들이대는데, commitment에 문제가 있겠지요. 남자도... 여자도. 오늘 샘소나이트블랙라벨 사러 갔다가, 따끈따끈한 알랙산더맥퀸 하얀색 하드케이스에 소가죽코팅한거 보고( 가방에 막 근육 있어요. 뭐랄까, 보면 알아요 >.<) 기절하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어요. '그런건, 이코노미와는 안 어울려, 지 비행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들고다닐만한 죽이는 가방이더군요 ' 내가 찜해놨던 그린/레드 가방도 특이한데, 알랙산더 맥퀸 가방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버렸어요. 크허헉

보르헤스 2007-04-26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생각하신 것 처럼 좀 비쌉니다.^^: 오래 쓸 것을 생각하고 구입하려는 것이지요.
체셔고양2님/ 배용준처럼 되려는 것도, 될 수도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런건 아니구 운동은 사실 식이요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믿기에 그렇습니다
kel님/ 오호! 그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날카로우십니다.
하이드님/ ㅎㅎ 알렉산더 맥퀸꺼 저도 봤습니다. 여행용 하드 케이스는 이미 여럿 있는지라 꿋꿋이 잘 참았지요. 전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통 소가죽 쵸코렛색 슈트게이스를 보고난 후 속이 뒤집어졌답니다. . 그 아름다움에 그리고 경악스러우리만치 잔인한 가격에 말이죠.
 

때로는 사랑 그 자체가 사랑하는 대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대상에 자신의 욕망을 자연스레 투영시키고, 자신의 욕망이 투영되어 반사된 그 모습에 스스로 찬탄해 하며, 행복해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욕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진실 또한 언제나 입에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씁쓸하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러한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진실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위장하고, 서로 속이며, 상충되는 욕망들을 저울질하며 타협하는 것이다.


여기 놓인 모든 것들은 나의 투영된 욕망의 부산물들이다.


율리시즈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격: 38,000원


 

율리시즈는 벌써 몇 번째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것인지 기억에도 가물거릴 지경이다. 처음엔 범우 비평판 율리시즈를 사려 했으나, 일단 4권으로 구성되어 꽤나 거창스러울 뿐 아니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20세기 영문학의 최고봉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율리시즈를 당연히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황당한 지적 허영심과 함께, 가격이 매우 경제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oxford판 율리시즈를 구입하고 말았다. 웬걸! 이건 완전히 성문종합영어로 영어 공부하는 것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독한 맘으로 시작한 영어 공부가 1-2달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처럼, 난 총 20장으로 구성된 성문종합영어 중 8장 ‘동사의 종류’ 편을 영원히 넘어서지 못했다. 8장까지는 무지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있지만, 그 이후론 연필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던 내 성문종합영어! 나에게 oxford판 율리시즈가 바로 그러했다. 1300페이지에 4000여개의 주석 거기다 조이스 관련 희귀 화보까지 들었다니 꽤 마음이 동하긴 하지만, 율리시즈는 나에게 무지 지루했었다는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닌텐도 DS

 



 

가격: 141,000-23,8000원


 

얼마 전 부산으로 향하는 새마을 호 기차를 탔다. 내 옆자리에 재수 없게 생긴 대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걸어와 앉았다. 그는 나를 흘낏 쳐다보고선 가방에서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곧 그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가 곁눈질로 자꾸만 그것을 쳐다보자, 녀석은 이내 내 욕망을 눈치 채고 말았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화려한 ‘demonstration‘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소프트웨어를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며,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이에 난 풀이 죽고 말았다. 분했다! 녀석의 고까운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다니! 30대에 닌텐도를 산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녀석이 알아주었음 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악!


Hamilton watch "Jazz Master"

 



 

가격: 890,000 원


장 폴 뒤부아의 “케네디와 나”를 보면 소설의 화자인 소설가 폴라리스는 바람난 아내와 더불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치료차 병원을 찾아간 그는 담당의사에게서 예기치 않은 해밀턴 시계에 대한 아주 은밀한 고백을 듣게 되는데, 케네디가 암살당하던 날 병원의 간호사였던 누이가 의식을 잃은 케네디의 손목에서 해밀턴 시계를 몰래 훔쳐 나와, 그것을 병원의 의사인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 고백을 들은 후 폴라리스는 해밀턴 시계에 대한 끝없고도 강렬한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데, 결국 그는 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의사를 협박해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진 해밀턴 시계를 강탈하고야 만다.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진 해밀턴 시계의 한 편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것을 상상하며 폴라리스는 행복에 젖어든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서 해밀턴 시계에 대한 끝없고도 강렬한 유혹에의 갈증에 시달렸고, 그 갈증을 이겨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나 역시 항상 꿈꾼다. 해밀턴 시계의 한 편에 내 이름이 멋지게 새겨지기를……. 캐주얼 시계는 이미 여럿 갖고 있는데, 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이 문제로다!


Thorens TD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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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3,600,000원


나에게 음악은 들고 다니는 것이었지,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릴 적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음악을 듣는 것이 나에겐 꽤 호사였다. 새로 출시된 워크맨 모델들을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부단히도 많은 레코드 테이프를 사 모았었다. 내 음악인생에 LP는 애초 존재치 않았다. 테이프를 사 모으는 것이 식상해질 무렵엔 이미 CD가 출시되기 시작했고, LP는 그저 사양길에 접어든 구식에 불과했다. 내가 LP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땐 이미 LP는 생산이 중지된 상태였고, 오래된 중고 물로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토렌스 턴테이블은 나에겐 결코 가질 수 없는, 향유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대체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차가우면서도 견고하게 느껴지는 바디와 육중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이는 톤 암. 돈이 돈 값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미묘한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구두가 다 거기서 거기지, 시계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게 들리지만, 그 사람들은 로망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미(美)란 예술이란 대부분 그런 상당히 무용하기 그지없는 가치에서 출발하는 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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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0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즈 어제 서점에서 봤는데 지금까지 봤던 책 중 제일 두꺼웠어요. 허. 읽을 엄두를 못내겠더라구요.
 

 

천국에 jazz가 있을까 없을까?


아직 천국에 가본 적이 없는 터라 확고하게 있다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철없는 아담과 이브가 사과 하나를 몰래 따먹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그들의 후손인 우리 인류를 수세기 동안 단죄해 오신 엄격하신 “주” 하나님께서 태생부터 ‘악마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던 블루스나 재즈를 즐겨 듣는다는 것을 아시고 결코 용서하실 리 없다는 것을 난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 즉 나는 지옥행 열차를 미리 예약해 둔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도 악마의 음악에 대한 유래는 꽤나 폭넓게 퍼져있다. 우선 기억나는 것을 되짚어 보면, 타르티니(Giuseppe Tartini:1692-1770)의 악마의 트릴을 들 수 있겠다. 타르티니가 1713년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라는 무시무시한 요구를 거절치 못하고 받아들이자, 이에 흡족한 악마가 그 보답으로 타르티니에게 초절한 바이올린 기교로 아주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 주었는데, 그 곡이 바로 악마의 트릴이라는 기막힌 얘기다.


또한 19세기 후반 바이올린의 마신(魔神)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의 초절기교를 소유했었던 파가니니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무수한 소문에 시달려야 했었다.


악마 혹은 유령에게 영혼을 팔거나 접촉한 사람의 얘기는 문학적으로도 사람들에게 많은 흥미를 유발 시켜서, 괴테의 ‘파우스트’ 라던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주제가 되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초월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된 음악가는 타르티니와 파가니니 뿐만은 아니었다.


델타 블루스의 전설적 가수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1911-1938)도 그 중 하나였다.

로버트 존슨은 교차로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최고의 기타 테크닉을 가지게 되었지만, 자신의 추악한 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으로 그의 사후 당시 흑인 사회에 널리 퍼진 얘기였다. 하지만 사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 친구에 의한 독살에 의해서였다. 천재 재즈 트럼페터였던 리 모건이 여자 친구의 질투에 의한 총격으로 사망한 사실을 되짚어 보면 그의 독살 또한 그리 낯설지도 기괴해 보이지도 않아 보인다. 최근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 총 지휘를 담당한 the blues의 연작 중에서 warming by the Devil's fire편은 로버트 존슨의 이런 에피소드를 주제로 삼아 블루스의 근원을 심도 있게 추적해 보였다. 여하튼 악마에 사로잡혀 불운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는, 로버트 존슨의 일대기는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어 사회 전반에까지 멀리 퍼져나갔고, 최근엔 미국 인기드라마 ‘Supernatural' 의 소재로까지 채택되었으며, 우라사와 나오키의  인기 만화 “20세기 소년”에까지 전용되었다.

 

 

블루스와 그의 사촌격인 재즈가 악마의 음악으로 치부된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니체의 문제적 저서인 ‘도덕의 계보학’을 들지 않을 수 없겠다. 니체는 이 저서에서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라는 도덕 개념의 어원학적 발달사를 들쳐보면서, 우리의 도덕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자면 니체는 독일어 Gut(좋음:good)의 어원학적 발생을 고트인 이라는 민족의(본래는 귀족의) 이름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슬며시 제기하고 있는데 난 이 주장을 적극 지지하는 바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블루스의 발생은 백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의 work song(노동요)과 Gospel(흑인영가)에서 유래되었는데, 블루스의 시작은 가스펠에서 “오 주여!”라는 가사를 “오 내 사랑”으로 살짝 개작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지나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고매하신 성직자분들께서는 그들의 숭고하고 고귀하신 찬송이 고작 남/녀간의 사랑 놀음이나 술타령, 악덕 농장주들에 대한 비난과 풍자에 쓰이는 것을 결코 앉아서 보고 계시지만은 않으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권력을 적극 활용해가며, 블루스와 재즈를 영혼을 해치는 위험한 악마의 노래라고 선전하며 신도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기존 가치에 저항하며 반역의 기치를 올렸던 예전의 그리스도교 성직자들은 더 이상 비참한 자, 고통 받는 자, 가난한 자, 무력한 자, 궁핍한 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존의 귀족적 가치(좋은=고귀한=강력한=아름다운=행복한=신의 사랑을 받는)등식을 뒤엎고 새로운 가치의 전환(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떠올려 보라)을 민중들과 함께 이루어 냈지만, 그 가치 전도의 과정에서 민중들로부터 새로운 권력을 획득한 자들로 변모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에 새로이 저항하고 반역하고자 하는 역동성을 그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된 것이다.


블루스와 재즈는 가장 비참한 자, 무력한 자,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들의 노래이다. 궁핍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고통스런 영혼의 목소리가 바로 블루스와 재즈가 되었다. 1960년대 민권운동과 블랙파워 운동의 중심에선 어김없이 블루스와 재즈가 불려졌다.  마틴 루터 킹의 암살로 저항의 목소리가 힘없이 꺾여나갔을 때도 블루스와 재즈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며, 기꺼이 그들을 위해 노래해 주었다.


인간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는 어느새 전 세계에 울려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화답해 주었다. 이제 블루스와 재즈는 소울, 리듬 앤 블루스, 록앤롤, 힙합 등 다양한 목소리로 변조되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로소 악마의 음악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천상에선 바흐가 아니 모차르트가 혹은 브루크너와 바그너가 연주될 지도 모르겠다. 파르지팔의 성배의 테마가 내내 천상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겠지.(아니 바그너는 그 인간 됨됨이로 보아 지옥에 있을 것이 분명할 터이다 ^^.)

 


 

그리고 천국에 있는 축복받은 자들은 저주 받은 자들이 벌 받는 것을 보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축복을 더욱 기쁘게 여기며(신학대전의 교부 철학자. 토마스 폰 아퀴나스의 말이다.) 그들의 천박한 복수를 만끽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50분간의 설교에도 교회 의자에서 몸서리치는 자들이 영원한 설교와 찬송을 어찌 견뎌내려 하는지!


지옥엔 내가 사랑한 수많은 사람들이 미리 와 있을 터이다.


선 하우스, 머디 워터스,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클리포드 브라운, 존 콜트레인, 마일즈 데이비스, 리 모건, 루이 암스트롱, 사라 본,,,, 등등

바로 그 사실이 내가 지옥행 열차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비록 지옥의 겁화에 몸을 불사를지언정 그들과 함께라면, 함께 블루스와 재즈를 부를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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