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꼬발랄 코믹스 4 밍꼬발랄 4
김혜련 지음, 라임스튜디오 그림, 밍꼬 감수 / 겜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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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초등학교 4학년 꼬밍이에요
밍꼬발랄 정말 잘 보구있구요
책도 정말 재밌어요
캐릭터도 너무 귀엽구요
완전 짱짱입니당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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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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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라이프를 소망한 적이 있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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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가문
시바 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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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我(아)와 非我(비아)의 투쟁이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에서

 

역사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새로이 해석되어지기 마련이다.

역사소설을 읽는 독자들 또한 기존의 역사적 지식이 아닌 무수한 사료의 파편 속에서 새로이 구성되고, 해석된 창조된 역사를 원하기 마련이다. 시바 료타로의 패왕의 가문은 이러한 역사소설의 특유의 재미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패왕의 가문은 오닌의 난 이후 계속 된 봉건 다이묘들간의 암투와 빈번한 국지전 상황을 종식시키고,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근 270여 년간 일본의 평화시대를 안착시킨 에도 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시바 료타로는 죽어서는 신으로 추앙되었고, 270여 년간 일본의 사상과 문화, 윤리를 사실상 지배한 천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한마디로 미카와 촌뜨기로 보고 있다. 미카와라는 지역은 네덜란드, 포르투갈을 비롯한 서구문물을 급속히 흡수하고 있던 노부나가의 오와리와는 달리 중세 봉건적 농민사회의 성격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촌놈들이 살던 동네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서부터 약한 국력 탓에 오와리의 오다, 슨푸의 이마가와 등 세력이 강한 다이묘들의 인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에야스가 내일을 기약할 수 조차 없었던 극도의 난세 속에서 결국 천하인에 오를 수 있었던 단 한가지의 장점이 바로 똘똘 뭉쳐진 촌놈 근성이라는 것이다.

 

도쿠가와의 아는 바로 미카와의 촌놈 근성이란 것이었고, 그의 삶은 아가 아닌 비아와의 끊임없는 투쟁이었다. 시바 료타로는 미카와를 이렇게 기술한다. 강렬한 갯내음과 싱싱한 풀내음이 열기 속에서 코를 찌른다. 길섶에 늘어서서 이에야스를 향해 고개 숙인 영민들의 장대한 기골하며 검은 살갗, 이를 드러내 웃는 모습도 스루가 사람들처럼 그리 우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얼굴이건 이에야스를 올려다보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소리를 지를 듯 넘치는 감동과 슬픔을 억누르는 그들을 보고 이에야스는 이 땅에 오로지 이들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가혹한 난세 속에서 정세에 따라 이리저리 부평초처럼 떠돌던 다른 전국시대의 영주민들과는 달리, 미카와는 끈끈한 주종관계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심과 음습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일본 전국시대는 수많은 다이묘들이 이해득실과 정세에 따라 합종, 연횡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하극상도 서슴지 않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도 꿋꿋이 중세 봉건적 질서를 지키며, 토속적이며, 소박한 정토종 신앙에 따라 생활했던 사람이 이에야스였고, 그 기반의 중심에 미카와의 민초들이 있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이다. 사실상 전국시대를 무력으로 종식시키고, 새로이 근세를 열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측근의 암살로 인해 황망히 주저앉고 말았다. 오다 노부나가의 유산을 뒤이어 받은 이가 우리에게 임진왜란(임진전쟁)으로 잘 알려진 토요토미 히데요시이다. 굳건한 신분사회를 유지되었다면, 그리고 노부나가에게 발탁되지 않았더라면 절대 다이묘가 될 수 없었던 비천한 신분의 소유자였다. 노부나가는 중세 봉건적 질서를 완전히 해체해 버린 인물이다. 능력이 있다면 신분여하를 막론하지 않고 중용함으로써 신분질서를 붕괴해 버렸고, 히에이잔, 이시야마 본원사를 비롯한 사원세력의 토벌로 중세 신앙적 질서와도 이별하였다. 기존의 다이묘들이 농업경제에 기반하였다면, 노부나가는 자유로운 유통질서의 확립과 관세철폐를 비롯한 적극적 상업경제에 바탕을 두었다.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호족 중심의 농민병이 아닌 전쟁과 치안만을 담당할 수 있었던 상비군을 둠으로써, 병농분리와 함께 계절과 수확에 상관없이 항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해 두었다. 노부나가만이 이 비범한 계획의 입안자였고, 실행자였다. 노부나가의 사후, 정권을 장악한 히데요시에게는 굳건한 기초가 없었고, 노부나가의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할 역량 또한 부족했다. 그에게는 중세 봉건적 질서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창립하고 수행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탐하는 다이묘들을 설득시키고 위협하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해야 했다.

 

그러한 상황을 이해시키고자 시바 료타로는 패왕의 가문의 마지막 전투를 세키가하라가 아닌 고마키- 나카쿠테 전투로 한정하였다. 아마도 노부나가의 유산을 온전히 이어받지 못한 자들이지만, 그래도 비범했던 두 사람의 전투를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중세의 연공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임진왜란(임진전쟁)을 일으켜야 했던 히데요시와 중세 봉건적 질서를 끝까지 고수했던 이에야스와의 전투가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정체성을 매우 잘 드러내어 준다. 

 

이에야스의 정체성은 중세 봉건적 질서의 완성, 지속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승리자였다. 천하인이 된 이후로 그는 가신단에게는 녹봉의 원천이 되는 영지를 제한하였고, 굴복한 다이묘들에게는 광대한 영지를 주는 대신, 정치적 입지를 제한하였다. 히데요시가 그 연공적 질서를 벗어나지 못해 가신단에게 광대한 영지를 제공하고자 임진전쟁을 발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는 달리 이에야스는 그 연공적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그 미묘한 균형을 잘 이루어 놓았다. 그것이 이에야스의 천하였고, 그 천하의 중심에는 미카와 근성이 있었다. 노부나가, 히데요시의 상업경제가 아닌 질박한 농업경제와 철저한 신분, 연공적 질서를 완성함으로써 260여년간 일본의 평화를 이루어 내었다. 이에야스의 천하는 미카와의 확대였고, 그 과정에서 미카와적인 것과 어울리는 것은 철저히 모방하고, 습득했다. 오랜 시간 노부나가와의 혈맹관계 속에서도 노부나가의 전술이나 모략, 상업경제는 철저히 배제 하였고, 오히려 그에게 가장 큰 패배를 안겼던 다케다 신겐의 전술과 모략을 배워나갔다. 그에게 노부나가는 非我였고, 신겐은 我였다. 어떤 의미에선 이에야스는 신겐에게서 그의 미래를 보았다 라 하겠다.

 

역사만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언명을 진리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이에야스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비로소 그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노부나가의 천재성도, 히데요시의 호방함도 갖추지 못했지만 시바 료타로가 그를 패왕으로 일컫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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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구들방을 데우다 - 서양식 벽난로와 전통 구들의 만남
이화종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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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봐야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중에서

 

언제나 살아오면서 난 리얼(real)을 부러워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체험이 아닌 책이나 비주얼 매체를 통해 얻은 버츄얼(virtual)한 것이다. 즉 난 입만 살은 놈이란 뜻이다.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양 해도 실제로 해보라면 서툴기 짝이 없고, 제대로 해낼 수도 없었다.

리얼과 버추얼의 차이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난 몸으로 새겨진 지식만이 참 지식이다라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최근에 시골에 집을 짓고 가끔씩 생활하면서 귀농, 귀촌에 대한 낭만적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막연히 공기좋고, 물 좋은 시골에서 안빈낙도적인 삶을 상상해 오던 난, 때때로 모기와 벌레들에 시달리고, 뙤약볕아래서 풀을 베느라 몸살을 앓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땀에 눈에 염증이 생기는 등 온갖 리얼리스틱한 일을 겪으면서, 루카치가 말한 낭만적 시대는 리얼이 아니라고 확고히 느꼈다.

 

"벽난로, 구들방을 데우다" 그런 낭만적 시대를 찬양하는 책이 아닌 풀과 벌레와 흙을 실로 만지며 살아야 하는 불편함에 대해 진솔히 얘기한다는 점에서 리얼한 책이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혹은 이따금 들려서 귀농인인 척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리얼한 삶을 얘기한다. 구들방에 산다는 것은 그저 몸을 뉘는 공간의 변화가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해준다.

구들방과 벽난로의 장점을 취할려면, 그것에 우선하는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고 이를 즐길줄 아는 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구들방을 만드는 기술보다는 오히려 책의 절반을 소박한 삶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는데 더 할애했다.

 

난 건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서 앞부분의 도면을 한참을 들여다보고서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자인 내가 문외한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첨단 주택에 살면서도 토목기초공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감을 전혀 잡을 수가 없었다. 책에 첨부된 동영상을 여러번 봤지만, 어디까지나 버추얼이어서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책을 읽고서 저자를 만나서 도제처럼 구들방 놓는 것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작은 쥐나 새도 스스로 살 곳을 스스로 지으며 살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뽐내며 사는 우리들은 자기 살 집 도면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니 새삼 나의 헛지식이 우습게 보였다.

 

다만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에 보다 체계적으로 구들장 공사의 세부적인 디테일이 설명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사진 자료가 부족해 구들장 공사의 전체 공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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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written by Nietzsche

 

인터넷을 통하여 촛불시위 과잉진압 동영상을 봤다.

동영상의 전부가 진실은 분명 아닐 것이겠지만,

시위대가 먼저 선동을 했든, 아님 진압대가 먼저 폭력을 휘둘렀든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공권력이란 탈을 쓴 잔혹한 폭력을 목격했다.

 

군화발에 짓밟힌 한 명의 여성의 모습에서

난 무력감과 타오르는 증오를 느겼다.

 

보수적인 언론의 사설을 무기로 언제나 나와 입씨름을 하시던

아버지도 요즘엔 별다른 말씀을 안하신다.

아버지도 느끼셨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아버지가 그토록 옹호하시던 그들의 "당"과 정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

폭력에 대해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촛불시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우려가 든다

 

우리에겐 무도한 폭력에 응해 똑같은 폭력으로 그것을 응징한 경험이 거의 없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줄곧 기득권층이나 외세에 의해 진압되었고, 묵살되어왔다

그런 경험이 우리의 역사에는 수도 없이 많다.

성공한 혁명은 언제나 폭력이 함께 있어왔다. 그것이 전혀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해도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게밈이론에서도 이런 Tic for Tat 전략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영상을 보면서 난 보복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 무력감이 언젠가 절망감으로 바뀌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약자의 비공격성, 약자가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비겁함 자체

그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하는 것은 여기에서 <인내>

라는 미명이 되고, 또 저 미덕으로 불립니다.

복수할 수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 <용서>라고 불리기 까지 할 것입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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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02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