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차를 사면서 모사이트에서 만원을 주고 샀는데
귀엽게 생기긴 했지만, 플라스틱이고(나는 유리를 기대했다)
뭔가 밀폐력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뚜껑 모양새다.
가지고 있는 피도와 비교해보면 피도에 손을 들어주고 싶고,
진공력만 놓고 보면 차라리 락앤락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면 누구나 어느 시점이면 경험하는 일을 겪은 거예요.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져나가 끔찍한 폭력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바라기는커녕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에요. 그 사람이 절 보는 표정으로 저도 상대방을 바라봤어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내 몸 안에 내가 산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257쪽
지하철에서2 최영미다음역은 신림 新林역입니다.내리실 문은 오른쪽 옳은 쪽입니다.다음 역은...안내방송이 이바구하는데 문득 나는 굳게 다문 왼쪽 입口로 나가고 싶어졌다한번 그렇게 생각을 만드니생각이 어설픈 욕망으로욕망이 확실한 신념으로휙휙 건너뛰는왼쪽으로 왼쪽으로돌아가는 고개, 되돌리려는 아침지각 10분 전, 5분 전, 아아 1분 전,얼굴 없는 시간에 쫓겨헤어무쓰 땀내 방귀 정액의 끈끈한 주소 없는 냄새들에 떠밀려이리 흔들 저리 뒤뚱그래도 악! 생각할 한뼘 공간 찾아 두 눈 흡뜨고 아둥바둥 무게 잡는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지상에서 지하로지옥철로 외로이 밀려난 게 아닐까이런 의심 날마다 출근하듯 밥 먹듯 가볍게 해치우며가볍게 잊어버리며철커덕,다음 역은 신림 新林역입니다내리실 문은 오른쪽 옳은 쪽입니다다음 역은......-79쪽
삼십세 최승자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살은 온다.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트고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95쪽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 신현림나는 어떻게 될까내년이면 내후년 십년 후면... 살아 있을까결혼과 아이라는 참호 속에 기쁘게 처박혔을까우주의 그 단순한 요구를 따르기엔 그것이 진정 희망이 되기엔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빙벽의 의식은 깨지지 않고휴식도 혁명도 없이 나날의 영구차에 실려나의 나, 나의 당신은 붕괴되고 있다우리가 기댄 의자가 썩어가고 동판처럼 빛나던 당신 얼굴이 두려움으로 부식되고 있다영화[그날 이후]처럼 종말이 오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는 종말감에 감염되고 잔혹한 희망은 우리의 피를 비워버린다(중략)바다의 수술실을 떠나는 기차표가 밥보다 고마운 때다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다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다-151쪽
28년을 가난하게 살아왔다한번도 풍족하게 뭔가를 누려본 기억이 없다.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하늘을 원망하거나 부모를 미워해본 적도 없다.난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하고, 그런 삶을 사는 나에게 익숙했다.다만 예측하지 못한 것은...가난한 나의 삶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작년보다 올해가 나쁘고, 어제보다 오늘이 나쁘다.매일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뭣보다 가장 나쁜 것은...빚에 쫓기고 있다는 사실보다 빚을 갚고 난 뒤의 삶에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가난... 또다른 빚...죽을 때까지 끝없을 비참함.단지 살아 있기 위해,사는 동안 끊임없이 버둥거려야 할 뿐이라는 것이다.끝없는 비참함보다 비참한 끝을 보는 편이 낫다.이제 그만, 여기까지.-157~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