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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하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완결 ㅣ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참 다양한 주제를 건드려왔다. 그것도 우리 사회 문제 중 근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소재로 다뤘다.
증오범죄, 그 중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회사가 잘 나갈때 보너스와 월급으로 돈을 왕창 챙기더니 회사가 어려우면 사원들만 짜르려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도 한 축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국가권력에 남용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탄나는 것을 이야기 한다. 한 소설에 이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6권이라는 분량은 물론 때로는 어려운 경제 용어와 스웨덴식 이름이 즐비한 사건을 이해하기가 머리가 아플 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약간의 고난을 극복하면 이 껄렁껄렁한 68년 정신을 가진 자유주의자가 나쁜 놈들을 꽁꽁 묶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소재의 매력과 함께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나는 그 속의 매력적인 여성들을 꼽고 싶다. 그녀들은 유능하고 강하고 섹시하다. 남자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오랜 연인인 에리카 베르예르는 유능하고 지적인 경영자이고 섹시하고 자유로운 여성이다. 여자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삐쩍 마른 소년 같은 천재 해커다. 어린 시절부터 받은 사회와 국가의 학대와 편견 속에서도 결코 자존을 잃어버리지 않은 강한 여성이다. 모니카 피구에롤라는 우리나라의 국정원과 유사한 조직인 헌법수호대의 사명감 강한 직원이자 스포츠를 즐기는 강한 근육질의 여성이다.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매력적인 여성 케릭터들로 채우고 있다. 여성은 맨날 울고 짜는 연약한 케릭터거나 도무지 책임감 없고 감정적이기만한 케릭터들로 채워진 소설에 지겨워졌다면 이 소설의 여성들을 만나보시라.
이 소설의 작가는 아나키즘적인 사회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의제인 '자유로운 개인'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그러기에 보수주의의 핵심기치이다. 민주사회에선 이미 이루어져 있을 듯한 이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국가보안법이다. 도대체 이법으로 잡혀들어간 대학생들이 기천은 된다니 과연 우리가 북한 인권 운운할 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예는 장애인에 대해 일방적인 시설 수용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한 사회의 시민으로 독립적으로 살 권리를 달라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노숙 중이다. 쉰이 넘은 어른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요구를 들어주기가 이렇게 어려운 사회라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법과 제도의 '존재의 취지'를 실현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권력자들에 의해, 주류 언론에 의해, 자본가들에 의해 너무 쉽게 조작되고 잊혀진다.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 그는 조그마한 독립신문을 출판하는 언론인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고리는 언론의 Watchdog으로서의 역활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견제를 받지 않는 세력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 지고 있는 사포 즉 우리나라의 국정원 같은 조직 뿐만 아니라, 점점 국경도 없어지는 자본 그 자체도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바로 국가권력의 남용, 자본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 때로는 불법은 아니지만 부도덕한 사회 일반 현상에(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나 철거촌 문제를 보라) 대한 언론의 여론 형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제 며칠 안이면 미디어법이 고쳐진다고 한다. 시민들을 위해 짖어야할 언론을 도둑손에 먹이를 받아먹게 하려는 희한한 시도가 진행중이다. 사실 우리의 주요 언론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그 흔한 르포 책하나 제대로 내 놓은 법이 없다. 그런데 이제 쥐꼬리 만큼 남아있던 공공성마저 씨를 말리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하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사회 시스템의 희생양 리즈베트는 우리 사회의 소수가 아니라 다수다. 내 주변 가족과 친구의 다수가 비정규직이며, 용산에서 불탄 다섯명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중산층 가장들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블롬크비스트가 없다. 그리고 불롬크비스트를 도와주던 선한 권력도 없다.
그럼 우리끼리 뭉쳐 이겨내는 수 밖에 없다. 아직은 별 힘이 없는 독립 언론들도 지켜야 하고, 이유없이 죽은 내 이웃의 죽음의 원인도 밝혀내야 한다. 누가 대신 짖어주지 않으니 우리가 짖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