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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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반적으로 이런 글은 너무나 무미건조하다. 빈의 프랑스 남자 마르텔이 쓴 보고서처럼 기술적이다. 책이 몇 절이나 되는지, 한 절당 종이는 몇 장이며, 제본 상태나 바느질 구멍의 개수 같은 내용만 그득한 것이다. 난 이 글은 좀 다르길 바랐다. 그 책을 거쳐간 사람들의 느낌, 그 책을 만들고 사용하고 보호한 수많은 손들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 글이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심지어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기술적 문제에 관한 논의 사이에 양념 노릇을 할 역사적 배경 부분을 썼다 고쳤다 했다. 나는 다양한 종교의 공존, 여름밤에 아름다운 기하학적 정원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 아랍어를 쓰는 유대인이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 이웃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필사자나 채식사의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 기술의 세부사항을, 중세 제본소가 어떠했는지를, 그런 기능공들이 어떤 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그 느낌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러고는 종교재판과 추방이라는 극적이고 끔찍한 반전과 관련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자 했다. 나는 화재와 난파와 공포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P348~349)

이 책이 추구하는 바가 이 구절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People of the Book 책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자유와 고향. 유대인이 그토록 원했고, 그들의 신이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전해준 두 가지. 

(P414)

종교와 전쟁 속에서 책과 함께 한 사람들의 생사고락.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책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작아지고, 그 다양함으로 인해 작은 책은 특별하고 아름다워졌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나. 그걸 위해 왔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했듯이 우리가 다르게 남아있으면서도 서로 소통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공통성을 발견해 가는 것, 모든 차이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개방적이면서도 확장적인 네트워크, 우리가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살 수 있는 마주침의 수단들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색채를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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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ore 2009-07-0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는 일이 바로 나. 그걸 위해 왔네'

음 . 그렇게 생각해요 _

무해한모리군 2009-07-05 23:52   좋아요 0 | URL
제라드 맨리 홉킨스라는 사람의 시의 일부래요.

이 책에서는 사랑 고백에 사용되요..

'내가 하는 일이 바로 나. 그걸 위해 왔네.
세라, 당신은 내 운명이오. 내가 하러 온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오.'

라는 메모를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보내요 ^^
 
밀레니엄 3 - 하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완결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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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참 다양한 주제를 건드려왔다. 그것도 우리 사회 문제 중 근원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소재로 다뤘다.

증오범죄, 그 중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회사가 잘 나갈때 보너스와 월급으로 돈을 왕창 챙기더니 회사가 어려우면 사원들만 짜르려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난도 한 축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국가권력에 남용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탄나는 것을 이야기 한다. 한 소설에 이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6권이라는 분량은 물론 때로는 어려운 경제 용어와 스웨덴식 이름이 즐비한 사건을 이해하기가 머리가 아플 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약간의 고난을 극복하면 이 껄렁껄렁한 68년 정신을 가진 자유주의자가 나쁜 놈들을 꽁꽁 묶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소재의 매력과 함께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나는 그 속의 매력적인 여성들을 꼽고 싶다. 그녀들은 유능하고 강하고 섹시하다. 남자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오랜 연인인 에리카 베르예르는 유능하고 지적인 경영자이고 섹시하고 자유로운 여성이다. 여자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삐쩍 마른 소년 같은 천재 해커다. 어린 시절부터 받은 사회와 국가의 학대와 편견 속에서도 결코 자존을 잃어버리지 않은 강한 여성이다. 모니카 피구에롤라는 우리나라의 국정원과 유사한 조직인 헌법수호대의 사명감 강한 직원이자 스포츠를 즐기는 강한 근육질의 여성이다.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매력적인 여성 케릭터들로 채우고 있다. 여성은 맨날 울고 짜는 연약한 케릭터거나 도무지 책임감 없고 감정적이기만한 케릭터들로 채워진 소설에 지겨워졌다면 이 소설의 여성들을 만나보시라.

이 소설의 작가는 아나키즘적인 사회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의제인 '자유로운 개인'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이다. 그러기에 보수주의의 핵심기치이다. 민주사회에선 이미 이루어져 있을 듯한 이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침해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국가보안법이다. 도대체 이법으로 잡혀들어간 대학생들이 기천은 된다니 과연 우리가 북한 인권 운운할 때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예는 장애인에 대해 일방적인 시설 수용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한 사회의 시민으로 독립적으로 살 권리를 달라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노숙 중이다. 쉰이 넘은 어른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요구를 들어주기가 이렇게 어려운 사회라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법과 제도의 '존재의 취지'를 실현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권력자들에 의해, 주류 언론에 의해, 자본가들에 의해 너무 쉽게 조작되고 잊혀진다.

이 작품의 남자주인공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 그는 조그마한 독립신문을 출판하는 언론인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핵심고리는 언론의 Watchdog으로서의 역활이다. 의회 민주주의의 견제를 받지 않는 세력은 현대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 지고 있는 사포 즉 우리나라의 국정원 같은 조직 뿐만 아니라, 점점 국경도 없어지는 자본 그 자체도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바로 국가권력의 남용, 자본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 때로는 불법은 아니지만 부도덕한 사회 일반 현상에(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나 철거촌 문제를 보라) 대한 언론의 여론 형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제 며칠 안이면 미디어법이 고쳐진다고 한다. 시민들을 위해 짖어야할 언론을 도둑손에 먹이를 받아먹게 하려는 희한한 시도가 진행중이다. 사실 우리의 주요 언론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그 흔한 르포 책하나 제대로 내 놓은 법이 없다. 그런데 이제 쥐꼬리 만큼 남아있던 공공성마저 씨를 말리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하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사회 시스템의 희생양 리즈베트는 우리 사회의 소수가 아니라 다수다. 내 주변 가족과 친구의 다수가 비정규직이며, 용산에서 불탄 다섯명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중산층 가장들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블롬크비스트가 없다.  그리고 불롬크비스트를 도와주던 선한 권력도 없다.  

그럼 우리끼리 뭉쳐 이겨내는 수 밖에 없다. 아직은 별 힘이 없는 독립 언론들도 지켜야 하고, 이유없이 죽은 내 이웃의 죽음의 원인도 밝혀내야 한다. 누가 대신 짖어주지 않으니 우리가 짖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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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09-06-2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소설은 여주인공이 대단하죠?
스티그 라르손이 살아있었다면 10부작까지도 쓸 뻔 했다네요...

리뷰 고마워요, 휘모리님.

무해한모리군 2009-06-28 23:51   좋아요 0 | URL
노후 대비로 쓴 소설이라는데, 법원이 사후에 평생을 함께 한 동거녀에게 이 책의 판권에서 나온 수입을 '정식 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현실에서도 제도의 문제가 개인의 삶을 많이 구속하네요. 라르손은 하늘에서도 참 슬플듯..

ansunduck 2011-10-2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회적 약자에 대해 사회적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오히려 힘있는 자들을 편들고 있는 현실고발

【 S.O.S.&확산요망】
현재일본장기거주중(영주권.
일본공안경찰이 가담한 범죄피해[관민이 공모하여 쥐도새도 모르게 재산강탈?]를 받고 많은 증거를 가지고 호소중
국가권력을 악용하여,온갖수단을 동원하여 무마/은폐를 꾀함
일본경찰에 살해당할뻔한 일도 경험.

http://blog.naver.com/ansunduck(새로개설한 한국어블로그
http://blog.daum.net/ansund59(통제되어 현재정지 상태인 블로그
http://blog.yahoo.co.jp/ansund59 (일본어

관계공무원의 실명게재와 저의 개인정보를 전부 공개하여 허위가 아닙니다
한일 양국의 많은 정치가,변호사,언론,인권단체등은 침묵뿐으로
많은 분들의 관계기관에 제보,참여로 진상규명을 간절히부탁드립니다

Twitter: koreaan59


P.S.
상기의 블로그들은 통제로 표시해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표시되지 않을 때는 Daum과 네이버서버에 문의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집에서는 항상 표시되고 투고가 됩니다만,가끔 외출해서 표시하면,
URL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유해사이트로 표시됩니다.]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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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사람이다. 모든 세대가 이 시기 배워야 할 것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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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09-06-1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사야하나....'완전 고민 중입니다. "지금은 99도입니다."(사야지 하는 마음.)

무해한모리군 2009-06-16 09:00   좋아요 0 | URL
힘든 순간엔 지금이 99도라고 생각하라고, 99도인데 지금 포기해버리면 너무 아깝다 라고 말하더군요..
사셔도 후회하시지 않을듯 합니다~
전 20일날 코엑스에서 하는 저자 싸인회 갈려구요 ^^

카스피 2009-06-1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민주 항쟁이라!! 2009년의 6월도 지금 부글 부글 끓고 있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6-16 09:01   좋아요 0 | URL
아직 99도 인듯 합니다 ^^
끓어넘치기 위해선 1도가 모자란..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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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이 세번째 그림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그의 그림 읽기는 남다르다. 그는 그림에서 시대를 읽고 그 속의 사람들의 고통을 읽어 낸다. 그것도 아주 쉬운 언어로 말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서경식 선생은 재일조선인이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일본으로 이주되나, 패전이후 시민의 권리를 빼앗겼고, 종국에는 조국의 분단으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져 무국적자가 되거나 반쪽짜리 조국을 선택해야 했던 한일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디아스포라임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의 두 형 역시 한국의 군사정권에 의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그 자신이 시대의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근대 폭력의 증언자, 그 자체다.  

   
  우리 근대인, 혹인 현대인에게 자신의 형제나 가족 중에 '예술 내지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이념이나 이상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싫을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위의 문장은 고흐의 동생 테오를 얘기한 대목이다. 재일조선인 빨갱이로 몰려 조국에 투옥된 두 형을 둔 가족으로서 한번도 내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절절함이 느껴진다. 고흐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고통안에 있지 않기에 남의 고통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경식은 고통안에 있는 사람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이 책의 여는 글에 그는 '왜 한국의 미술은 예쁘기만 할까?'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진다. 그리고 과연 주제성이 있는 작품은 예술성이 떨어지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는 내가 우리나라 현대미술관에서 느꼈던 질문의 다름 아니다. 고난한 우리의 일상은 도대체 그 삐까번쩍한 건물 어디에 있는가? 아름다운 것은 중요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인가?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진 오토딕스는 나치의 위협하에서 자신이 본 그대로의 전쟁을 그린다. 유태인 화가 팰릭스 누스바움은 유대인으로서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고통을 생생히 그림으로 남겼다. 누가 그 그림을 보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겠는가?  

이 책에 수록된 작가들이 감동을 주는 것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철저하게 그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그려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가 느끼는 슬픔이 되었든지, 혼란이 되었든지 말이다.

나는 우리의 예술가들이 이 시대를 생생히 증언해 주기를 바란다. 80년 광주는 죽음을 결의하고 시청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패배의 역사가 아닌 저항의 역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계속 짖고 짖어야 한다. 그래서 죄있는 자들이 잠못들게 해야한다. 우리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했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힘이 없지만 지금도 알고 있고, 잊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을 관통했던 그 고통의 기억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이 고통을 기반으로 우리는 연대하고 싸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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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광장에 계시겠네요. 광화문 사거리 부터 전진 배치 되어 꽉 막힌 느낌을 주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09-06-10 23:52   좋아요 0 | URL
아.. 조금은 맥이 빠지는 판이었던거 같아요. 더 자유롭게 터져나와야 할텐데요..

머큐리 2009-06-11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맥이 빠져도 계속 앞으로 나가야겠죠...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6-11 08:08   좋아요 0 | URL
저야 뭐 ^^ 여기저기 구경다니고 재미있었습니다.
중앙판은 별로 재미가 없어서 --;;
해이님 만나서 빵은 선물로 줬는데, 머큐리님도 찾아볼걸 그랬나? ㅎㅎㅎ
 
예술의 시퍼런 날은 역사를 현재를 잊지 않는다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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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역량이란 원래 무엇인가. 그것은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독창적인 수법으로 그려내는 인간적인 역량이다.-8~9쪽

다른 한편, 식민 지배를 받는 형태로 근대를 경험한 '우리'는 현재도 분단과 이산이라는 현실 곳에 있다. 그러한 현실로부터 태어나는 미의식은 일본과 같은 근대국가의 전철을 밟지않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의 일부 현대미술에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보고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더 철저하게 바라보고, 더 격렬하게 창조하라!-12쪽

창작을 위해 나는 낙관을 필요로 한다. 멜랑콜리는 나의 재능을 키우는 원천이 되지 못한다. 싹이 튼 꽃은 햇빛을 욕망한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나는 아이처럼 소리쳐 울어야 할까?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멜랑콜리, 이 말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울려, 너무나 괴롭다.-51쪽

나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으나, 나의 예술은 고향의 토지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 바다 사이에 낀 이 좁고 기다란 토지입니다.-52쪽

아무도 구걸하지 않는 사회라는 이상-나 자신에게도 이것은 이상이다-이 지독한 좌절에 직면한 현장을, 그렇게 지나쳐도 괜찮단 말인가?-71쪽

일견 평화롭게만 보이는 정물화의 배후에는 '신대륙'이나 아시아에 대한 침략, 약탈, 식민지화의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17세기 네덜란드회화를 반짝이게 하는 물감에는 미국 서눚민, 아프리카인,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었다. (중략) 17세기 회화가 담당했던 역활을 20세기에는 tv가 하고 있다. 값싼 바나나에 섞여 있는 것은 유해한 농약만이 아니라 중남미와 필리핀 농민들의 피와 눈물이기도 하다.-78~79쪽

우리가 사람들의 운명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중략) 돈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누르고,(아직 희망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공산주의 원리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사물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점점 커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위대하고 보편적인 양식과 감정에 도달할 유일한 가능성을 본다.(창작자의 고백,독일리얼리즘 1919~1933 도록에서 재인용)-84쪽

그이 생가에는 '고명한 화가이자 휴머니스트, 여기에서 태어나다'라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원래 게라시 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자 휴머니스트, 오토딕스 교수, 여기에서 태어나다'라는 비문을 새기려 했는데, 딕스는 거기에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나는 시장이 '교수'라고 한 것을 거부했다. 나는 교수가 아니라 노동자의 자식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라는 말도 쓰지 못하게 했다. 너무 과장된 말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휴머니스트라는 말만 그대로 쓸 수 있었다.-189~191쪽

가령 시엔과의 동거 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진정한 약자와 만났을 때,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없으니까 한다. 이게 고흐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비겁함과 보신, 유약함과 결단력 없음과 어리석음 때문에 거기까지 하지 않고, 앞서 말한 풍경에서처럼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려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한다는 말이죠.-304~305쪽

고흐는 적당히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하나가 됩니다. 가령 이런 면이 동거인이던 시엔에게 좋았을지 어떨지 문제가 되지 안흣ㅂ니다. 고흐 자신도 불행했을 터이니, 불행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은 인간 입장에서 보면 고흐같은 인간은 역귀나 마찬가지죠.-305쪽

우리 근대인, 혹인 현대인에게 자신의 형제나 가족 중에 '예술 내지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이념이나 이상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싫을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312쪽

그것은 화가가 신체성을 자각해가는 역사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힘의 강약이 신체에 전해져 화가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붓 대신 거친 돼지털 붓으로 그리면, 시각적으로도 다른 것이 나오게 됩니다. 화가에게는 몸으로 전해져오는 감각이 있습니다. 근대회화는 이 감각을 강하게 의식했습니다.-316쪽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웃음) 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318쪽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점묘만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319쪽

그런식으로 공공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반역이라고 말하면 지나칠지 몰라도, 기존의 형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허가를 얻는다는 것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공간에 가서 자기가 사용하고 싶은 만큼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서 공공 공간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352쪽

어쨌거나 사람들이 하나의 결정된 규범에 따라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훌륭하지만, 동시에 필요할 때에는 그런 규범을 타파하는 힘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355쪽

기억의 싸움이란 지금 기억되고 있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355쪽

기억을 잠재우지 않겠다는, 죄 있는 인간들을 잠들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중략)
그러니 부디 여러분도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반드시 그걸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60쪽

저는 마지막으로 싸움과 예술, 예술과 싸움의 결합을 한 번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주제주의적으로 정치적인 테마의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싸움에 관여하는 예술의 질은 떨어진다느니, 예술과 싸움은 무관하다느니 떠드는 일본의 상황이야말로 특수하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중략) 예술에 관련된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들과 자신의 예술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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