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역량이란 원래 무엇인가. 그것은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독창적인 수법으로 그려내는 인간적인 역량이다.-8~9쪽
다른 한편, 식민 지배를 받는 형태로 근대를 경험한 '우리'는 현재도 분단과 이산이라는 현실 곳에 있다. 그러한 현실로부터 태어나는 미의식은 일본과 같은 근대국가의 전철을 밟지않고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의 일부 현대미술에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보고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더 철저하게 바라보고, 더 격렬하게 창조하라!-12쪽
창작을 위해 나는 낙관을 필요로 한다. 멜랑콜리는 나의 재능을 키우는 원천이 되지 못한다. 싹이 튼 꽃은 햇빛을 욕망한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나는 아이처럼 소리쳐 울어야 할까?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멜랑콜리, 이 말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울려, 너무나 괴롭다.-51쪽
나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으나, 나의 예술은 고향의 토지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 바다 사이에 낀 이 좁고 기다란 토지입니다.-52쪽
아무도 구걸하지 않는 사회라는 이상-나 자신에게도 이것은 이상이다-이 지독한 좌절에 직면한 현장을, 그렇게 지나쳐도 괜찮단 말인가?-71쪽
일견 평화롭게만 보이는 정물화의 배후에는 '신대륙'이나 아시아에 대한 침략, 약탈, 식민지화의 역사가 가로놓여 있다. 17세기 네덜란드회화를 반짝이게 하는 물감에는 미국 서눚민, 아프리카인,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었다. (중략) 17세기 회화가 담당했던 역활을 20세기에는 tv가 하고 있다. 값싼 바나나에 섞여 있는 것은 유해한 농약만이 아니라 중남미와 필리핀 농민들의 피와 눈물이기도 하다.-78~79쪽
우리가 사람들의 운명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중략) 돈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누르고,(아직 희망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공산주의 원리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사물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점점 커지리라 믿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위대하고 보편적인 양식과 감정에 도달할 유일한 가능성을 본다.(창작자의 고백,독일리얼리즘 1919~1933 도록에서 재인용)-84쪽
그이 생가에는 '고명한 화가이자 휴머니스트, 여기에서 태어나다'라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원래 게라시 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자 휴머니스트, 오토딕스 교수, 여기에서 태어나다'라는 비문을 새기려 했는데, 딕스는 거기에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나는 시장이 '교수'라고 한 것을 거부했다. 나는 교수가 아니라 노동자의 자식으로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라는 말도 쓰지 못하게 했다. 너무 과장된 말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휴머니스트라는 말만 그대로 쓸 수 있었다.-189~191쪽
가령 시엔과의 동거 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진정한 약자와 만났을 때,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없으니까 한다. 이게 고흐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비겁함과 보신, 유약함과 결단력 없음과 어리석음 때문에 거기까지 하지 않고, 앞서 말한 풍경에서처럼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려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 한다는 말이죠.-304~305쪽
고흐는 적당히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하나가 됩니다. 가령 이런 면이 동거인이던 시엔에게 좋았을지 어떨지 문제가 되지 안흣ㅂ니다. 고흐 자신도 불행했을 터이니, 불행으로부터 구원받고 싶은 인간 입장에서 보면 고흐같은 인간은 역귀나 마찬가지죠.-305쪽
우리 근대인, 혹인 현대인에게 자신의 형제나 가족 중에 '예술 내지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이념이나 이상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싫을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312쪽
그것은 화가가 신체성을 자각해가는 역사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힘의 강약이 신체에 전해져 화가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붓 대신 거친 돼지털 붓으로 그리면, 시각적으로도 다른 것이 나오게 됩니다. 화가에게는 몸으로 전해져오는 감각이 있습니다. 근대회화는 이 감각을 강하게 의식했습니다.-316쪽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화가의 욕구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림하고 관계를 맺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고 싶다는 욕구지요. 한 줄의 선으로 그리면 끝나버릴 것을 점으로 그린다면....(웃음) 점을 찍다 보면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요.-318쪽
화면상에서의 효과도 있습니다만, 시간을 체험하고 싶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점묘만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319쪽
그런식으로 공공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반역이라고 말하면 지나칠지 몰라도, 기존의 형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허가를 얻는다는 것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공간에 가서 자기가 사용하고 싶은 만큼 사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서 공공 공간이라는 이름값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352쪽
어쨌거나 사람들이 하나의 결정된 규범에 따라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훌륭하지만, 동시에 필요할 때에는 그런 규범을 타파하는 힘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355쪽
기억의 싸움이란 지금 기억되고 있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입니다.-355쪽
기억을 잠재우지 않겠다는, 죄 있는 인간들을 잠들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중략) 그러니 부디 여러분도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반드시 그걸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60쪽
저는 마지막으로 싸움과 예술, 예술과 싸움의 결합을 한 번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주제주의적으로 정치적인 테마의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싸움에 관여하는 예술의 질은 떨어진다느니, 예술과 싸움은 무관하다느니 떠드는 일본의 상황이야말로 특수하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중략) 예술에 관련된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들과 자신의 예술을 떼어놓고 생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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