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품절


나는 김규항이 옹호하며 재단언하고자 하는 '80년대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의 오류를 제거한,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106쪽

책임질 수 없는 구호들만을 남발하는 걸로 자신의 정의(근본적인 변화)에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그건 자신들이 '물적 토대(힘)'를 갖고 있기에 곧 정의롭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오도된 것이다. 자신의 말(구호)에 책임지고, 그 말에 '물적 토대(힘)'를 부여함으로써, 말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만이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지 않게 된다.-111쪽

그렇다, 예술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것은 우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의 무능력을 절감하게 한다. 이것은 마치 데리다가 반 고흐의 그림에서 구두끈이 반쯤 풀려/조여 있는 걸 두고 이중의 구속을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우리의 잘난 예술은 우리를 (껴)안아주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놓아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담배나 (꼬나)물고 그것의 주변만을 서성거릴 뿐이다. 문빡에서. 그러다가 문득 자각한다. 우리 자신의 숭고함을!-130쪽

'하이틴 로맨스'를 거의 읽어본 게 없어서 여기선 장르의 시학을 구성할 수 없지만, 내식으로 말하면 '로맨스'는 셋이 나오고, '포르노'는 둘이 나온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138쪽

흔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적'이라고 일컬으며 축복하지만, 그건 기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거야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일이지만, 그리스도는 신이며 최소한 신의 아들이 아닌가? 벼룩이 뜀뛰기를 잘하는 게 기적이 아니듯이, '특별한 존재'가 기적을 연출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기적은 다른데 있다.(중략)진정한 기적은 바로 그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음'이다. 그걸 나는 '기적 없는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159쪽

여기서 음미해볼 대목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바로 '몰락하는 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규정. 책세상판의 번역을 옮기면,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런 자들이야말로 저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222쪽

"여인들에게 가려는가? 그러면 채찍을 잊지 말라!"고 큰소리친 걸로 돼 있는 니체지만(그마저도 늙은 여인이 일러준 말이었다!), 오히려 길들여진 건 여인들이 아니라 니체다(그는 채찍을 들고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를 길들여주세요!"). 해서, 내 생각에 그가 말하는 '위버맨쉬'란 오직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남자들이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223쪽

즉 권위의 신비한 토대는 '관습'이라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법에 대한 상당히 래디컬한 관점이다. 거기에 견주면, 관습법(불문법)과 성문법을 구분하는 상식(적인 관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다. 사실 '관습법'이란 말은 이러한 관점을 가로막는 알리바이는 아닐까? 마치 관습으로서의 법 말고 다른 법이 또 있다는 듯이 암시하는? 비유컨대, 관습법과 성문법의 관계는 니체에게서 은유와 개념의 관계와 같다. 개념이 '닳아빠진 은유'인 것처럼 성문법이란 '닳아빠진 관습법'에 다름 아니다.-232쪽

법의 정초 혹은 정립은 그러한 정초적 폭력에 근거한다. 요컨대, 법(의 힘)은 폭력에 대립적이지만, 법(적 권위)의 기원에 놓여 있는 것은 폭력이다. 기원적 폭력. 이것이 데리다가 기술하고 있는 (본질적으로 해체 가능한) '법의 구조'다.-235쪽

"여성을 위한 첫걸음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부당하고 굴욕적인 것으로, 자신의 수동성을 행위에의 실패로서 경험하는 것이다"-294쪽

"오늘날 미국에 대한 문제는, 그것이 새로운 세계 제국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는 것, 즉 그런 척하면서도 무자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국가로서 계속 행동한다는 것이다" -296쪽

즉 상품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순환하지만, 인간들의 순환은 점점 통제되는 것이 그 진실이다. 물론 이런 건 대한민국도 만찬가지다. 문제는 '지나친' 세계화가 아니라 '모자란' 세계화다.-296쪽

"레닌의 독특한 의견이 처음으로 명백히 소개된 저술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이 저술은 필요한 타협을 통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실용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모든 가능한 타협을 무시하고 명료한 급진적 관점-우리의 개입이 해당 상황을 변개시킬 수 있는 방식에서만 개입이 가능한-을 채택한다는 의미에서 레닌의 무조건적 상황 개입 의지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변개시킨다'는 'change'의 번역이고, '해당 상황'은 '상황의 좌표들'을 가르킨다. 그리고 '모든 가능한 타협'은 '모든 기회주의적 타협들'을 뜻한다. 그러니까 레닌의 관점은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다는 게 아니라 무조건적인 개입을 통해서 현실의 좌표들을 변화시키고 이론을 관철시킨다는 것이겠다.-314쪽

진정한 레닌주의자와 정치적 보수주의자 간의 공통점은 이들이 자유주의적 좌파의 '무책임성'을 거부한다는 사실이다.-315쪽

"전 지구적 자본주의-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전일성을 침식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기획은 억압된 지린의 관점에서 현재의 전 지구적 상황에 개입하면서 스스로가 진리의 대변자로서 행동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단언할 것이다."-317쪽

"그것들은 이제 기성 질서와 체계를 위협하는 반란과 탈주가 아니라 오히려 기성 질서 자체가 허락하고 용인한 한도 내에서의 반란과 탈주라는 느낌이 더 짙다." 즉 펑크는 분명 기성의 질서나 체계에 시위하고 반항하지만, 그러한 시위/반항 자체가 오히려 체계의 정상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330쪽

오늘날 진정한 사상의 자유란 게 있다면 그것은 지배적은 자유민주주의적, 탈이데올로기적 합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갔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최상의 이념이고 체제다. 같은 통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그러한 의문에 저는 전략적으로 '레닌'과 '레닌주의'란 기표를 부여하고자 합니다.-336쪽

정치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체제 아래 놓여 있었지만 20세기의 문화적 발전이란 것이 저는 산업적 근대성이 대중에게 행복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공통적인 유토피아적 꿈의 변주라고 생각해요.-339쪽

그래, 경제가 핵심이야. 전투는 거기서 결정될 거고, 우리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마법을 깨뜨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합니다.-343쪽

레닌을 반복하는 것은 레닌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것, 그가 잃어버린 기회를 반족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레닌'은 무엇보다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사고 금지'의 상황을 중단시킬 강력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레닌'이란 기표는 우리가 다시금 사유하도록 허락받았다는 것, 바로 그것을 뜻합니다. -347쪽

"나는 철학이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철학은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각자의 운명 속으로 내팽개치고 마는 것이다."-409쪽

다만, 시오랑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유부단 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이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기의 표시이다"-409쪽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412쪽

문학이란 성채는 인간들이 써놓은 최우량의 텍스트들로 구성된다. 이 텍스트들을 읽고 음미하는 일을(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고답적인 어투의 육법전서 따위를 읽는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오만의 대가는 현실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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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 - 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를 넘어 새사연 신서 4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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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대해 우리가 궁금한 것은 뭔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황당무개한 경제 상황 전개의(대출받아 산 집값이 반토막이 난다거나, 몇 년간 모아온 종자돈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원인을 알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궁극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어떻하면 되는지 이다. 

우리는 아고라의 미네르바에 왜 열광할 수 밖에 없었을까? 노조 탄압의 대명사인 대기업의 대변은 SERI의 이야기를 믿겠는가, 입만 열면 '지금이 투자적기, 내년 5% 성장' 운운하는 뻥쟁이 정부를 믿겠는가, 아니면 허구헌날 대책없이 신자유주의 종언만 부르짖는 자칭 진보를 믿겠는가. 황당하긴 하지만 '대출을 줄이고 생필품을 쟁여두라'는 미네르바가 더 믿음직해 보일 수 밖에 없다. 

2009년 초 MB시대 개막과 미국발 경제위기 직후 나온 이책의 미덕은  

첫째, 현재 경제 위기 원인에 대한 쉬운 해설 

둘째, 외국에서 나온 책을 좋지도 않은 머리로 국내 상황에 적용해 보려고 용쓸 필요없이 연구소에서 적용해 정리해 주었으며, 

셋째 의뭉거리지 않고 우리의 대책을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하나 우울한 점은 책이 나온지 반년 정도 흐른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이 책이 제시한 경제 해결책의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 책에서 우려한 여러 상황의 징후가 벌써 여기저기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경제를 위한 대책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공기업 민영화는 멀쩡하게 수익내는 기업을 투기금융권에 팔아넘기는 것이라는 것. 또 국민의 세금을 들여 살려놓은 은행이 과잉수익추구로 자금중계와 직접금융의 역할 상실로 외환충격완화과 기업의 유동성 확보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는 점, 따라서 은행의 공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고용기능이 약한 대기업의 지원을 줄이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대한 생존기반 확보가 가장 중요 하다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빈부격차감소와 내수진작을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용진작은 앞서 말한 중소기업육성과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에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MB가 뭘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위기에 서 있는지 인식하니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의지가 새삼 불끈한다. MB가 서민경제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물증들을 한편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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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미가 당기는 책 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6-01 08:09   좋아요 0 | URL
쉽게 쓰여진 대중서입니다. 아마 익히 아시는 내용들일 수 있지만, 쭉 이렇게 남이 정리해준 것을 읽다보면 지금 중요한게 무엇인지 스스로 맥이 더 잘 잡히는 듯 합니다.

그나저나 이 온갖 재벌 지원법들은 어쩌나요.. 벌써 유월이 무섭네요 --;;
 
오늘의 네코무라 씨 하나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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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누구나 네코무라씨를 필요로 한다.
네코무라씨는 집안일의 명수이고,
티브이 프로를 보며 함께 낄낄댈 수 있는 친구이며,
생긴 모습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고양이이다.
최적의 하우스메이트라 할만하다. 

네코무라씨는 부모도 포기한
삐뚤어진 십대를 위해 몇 일씩
정성을 다한 밥상을 준비해
마음을 돌릴 줄 아는
세심한 고양이 이기도 하다. 

마음씨 맵씨 솜씨를 갖춘 고양이 네코무라씨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그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된다. 

올 상반기 내가 만난 최고의 만화다.
거기 외로운 당신에게 특히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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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김은식 지음 / 이상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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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9년생 포항 사람이지만 어려서 부터 해태의 소녀팬이었다.

이것으로 내가 집안내에서 받은 박해만해도 책한권은 낼 법한데, 나에 앞서 만년 꼴찌 삼미의 팬이었던 73년생 저자가 맛갈나는 글로 80년 광주, 김대중, 해태 타이거즈를 키로 우리 사회의 근현대사와 야구사를 훑어냈다. 

나는 스포츠의 묘미는 돈으로도 합리적 전력으로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그 1%의 불가능성에 있다고 본다. 돈과 최강 선수진을 가진 삼성이 해태의 번번히 물먹는 모습, 그 덕분에 우리집 남자들이 펄쩍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집안네 약자였던 내게 얼마나 통쾌했는지 말로 다할 수 없다. 

여기 광주, 내 가족의 피로 얼룩진 거리에 밥벌이를 위해 매일 나서야 했던, 두사람만 모여도 살피는 눈이 달라붙고, 막걸리 국가보안법이 횡횡하던 그 시절 유일하게 사람들이 모여 목놓아 목포의 눈물을 외칠 수 있었던 그 곳의 소중함을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아무리 3S 정책에 의해 시행한 프로야구일지라도 해태타이거즈가 광주사람들에게 준 위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리라. 

닉 혼비는 피버피치라는 책에서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 충성심이라는 것은, 용기나 친절 같은 도덕적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결혼도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관계는 아니다. 바람을 피우듯이 잠깐동안 토튼햄을 기웃거리는 아스날 팬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물론 축구팬에게도 이혼은 가능하다. 그러나 재혼은 불가능하다. 나의 경우 지난 23년 동안 아스날로부터 도망칠 궁리를 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럴 방법은 전혀 없었다"

라고 언급했다. 

내게도 10년의 해태 팬을 생활 중 말미의 몇년, 모기업 부도로 주요 선수들을 모두 팔아치우고 시즌 최하위를 맴도는 해태를 보면서도 떠날 수 없었고, 진정 해태를 위해서 안타까웠고 어떻게든 이름이라도 지키기를 바라는 애끓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해태가 기아로 바뀐 이후 나는 야구와 이혼을 했다. 더이상 돈이 아니라 긍지로 이기는 스포츠는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한국 프로야구의 부침과 명승부는 근성이라는 건 무엇인지, 약자라도 한번 강자의 발꿈치를 물기 위해 도전하는 용기는 어떤 것인지를 눈물겹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아마와 프로 초창기의 선수 혹사는 전설처럼 떠돌지만 그래도 팀의 한승을 보태기 위해 했던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선수 한사람 한사람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언급하며 정리해 준다.

광주, 김대중, 해태타이거즈 어느 하나라도 당신의 마음을 흔든다면 이 책은 매력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나는 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처절하게 싸웠던 그들을 기억하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흐르는 눈물을 누가 볼새라 훔치며 읽었다. 

<책 속의 몇 구절> 

P252~254

 그러나 한국 야구는 다르다. 거의 해마다 팬들에게 단순한 꼴찌 이상의 비애를 맛보게 했던 나의 사랑 삼미와 후계자도 없이 증발해버린 쌍방울은 물론이고 막강한 정치력과 자금력을 가지고도 항상 슬픈 골리앗 역을 맡아주었던 무관의 제왕 삼성, 서울을 연고지로 가졌지만 별 볼 일 없었던 LG와 두산, 그리고 가장 많고 열성적인 팬을 가졌지만 그들에게 짙은 한만 쌓아준 롯데. 그리고 그 시절 '대한민국의 양키즈, 혹은 요미우리'라고 믿어왔던 9회 우승의 해태 타이거즈 마저 IMF의 직격탄을 맞고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며 깊은 상처를 주고 사라진, 저마다 한과 꿈과 좌절과 낙담의 역사 속에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고만고만한 난장이들의 모자이크. 중심이 없는 주변들의 세계. 그래서 저마다 한 편으로는 각자 경험했던 승리의 위대함으로 우열을 다투다가도 때로는 반대로 각자 감내해야 했던 뼈아픈 굴욕과 비애를 가지고 순위를 가리려는 팬들의 사회. 당장은 티격태격하면서도 한 세월 지나 떠올리면 서로를 동정하고 공감하며 함께하고 나눌 것이 있는 이야기 덩어리. 

 그래서 꼴찌 팀 삼미의 옛 팬이 오늘 해태 타이거즈를 그리워한다. 강자였지만 약자의 방식으로 싸웠고 승자였지만 패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팀. 그래서 약자와패자들도 얼음 계곡물에 몸 한 번 담그고 정신 바짝 차리면 강자의 발목이라도 한 번 물어뜯을 수 있다고 악을 쓰며 항변하는 듯했던 그 몸짓들을 그리워 한다. 그래서 전라도라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누명으로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눌리고 밟히면서도 고개 빳빳이 쳐들고 일어섰던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을 빌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밀쳐지고 떠밀려지는 세상에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빠르고 경쟁적인 세상에서 우아한 야구를 보여준 삼미슈퍼스타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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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5-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프로야구에 관한 또 한권의 책이군요.
근데 휘모리님은 포항분이네요^^ 제 고모가 포항근처 구룡포의 사시고 계시거든요.뭐 예전에 과메기 자주 얻어먹었는데 휘모리님도 과메기 좋아하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2 16:29   좋아요 0 | URL
과메기는 별로 안좋아고, 돈배기(고래고기를 다져 산적모양으로 만든 것)은 좋아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09-05-2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와닿습니다.광주 광역시에 살거든요.
포항 하면 저는 보경사 골짜기 폭포가 생각납니다.방송에서 봤는데 정말 멋지더군요.가보셨는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4 20:05   좋아요 0 | URL
어머 보경사를 가보셨군요..
제가 즐겨가는 나들이 코스랍니다.
저는 무등산이 참좋아요.
고3때 광주를 처음 갔을데 그 잔잔한 풍경이 어찌나 좋던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5-25 15:20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만 봤어요.자주 가다니 좋겠습니다.
무등산은 가물어도 골짜기 물이 안 마르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카스피 2009-05-2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휘모리님 돔베기는 고래고기가 아니고 상어고기인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4 20:04   좋아요 0 | URL
아니 그게 상어였단 말입니까 ㅎㅎㅎ
제수로 늘 쓰면서도 뭐 잘 몰랐다는거..

비로그인 2009-05-2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순철, 한대화, 조계현, 이강철, 선동렬 그리고 당시 막내 이종범. 당시 저는 예를 들어 빙그레 이글스와 경기가 있다면 빙그레에서 나오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지 않고 해태를 응원하곤 했었죠. 굳이 지역연고에 따라 팀을 응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저도 해태를 응원한 이유가 이성적이라거나 합리적이었던 건 아니죠. 서울 살면서도 LG트윈스를 무지하게 싫어하기도 했고요.

무해한모리군 2009-05-24 20:07   좋아요 0 | URL
저는 장채근을 좋아했어요~
아하 리플리님께는 반골의 피가 흐르는게 아닐까요?
 
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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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좌파로 불리는 김규항이 강독의 형식으로 마르코복음을 읽고 자기나름의 해설을 덧붙였다. 

저자는 예수를 교리대로 살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즐기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말하는 자, 즉 '먹고 마시길 즐기는 자'로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실은 인생의 진짜 즐거움과 진짜 행복을 좇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리는 자로 해석한다. 

여자, 아이들, 병자, 변방 이민족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가장 낮은 자를 섬기는 임금으로 살았던 예수의 삶을 성서의 구절들을 하나하나 인용해 밝혀본다. 많은 이적들 어디에도 '나'를 세우지 않고 '당신의 믿음'이 그들을 살렸다고 말하며,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애끊는 마음으로 함께하면서도 위선적인 율법자, 지배자에게는 누구보다 단호한 분노를 보인다. 

오늘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하느님에게 축복받은 것', '예수는 비폭력주의자' 였다는 주장들이 예수 자신의 의중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도 보여준다.  

예수는 결코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축복받은 사람으로 인정해 가난한 사람은 반대로 죄가 있는 것처럼 소외시키지 않았으며, 이교도와 천대받던 세리들, 죄수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오히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단언하지 않았던가. 저 높은 곳의 하느님이 아닌 우리 눈 앞에 일어나는 불의와 학살과 온갖 참상 속에서 함께 고통받는 분으로서의 하느님, 곧 가장 약한 어린아이 하나를 섬기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 같이 보았던 사람이 예수이다.   

예수의 평화는 저항으로서의 평화였다는 것을 밝힌다. 평화는 무작정하게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가 아니라 '온 세상이 잃어버린 조화를 회복하는 것'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노력이야 말로 평화로운 일이라고 봤다. 실제 예수는 예루살렘의 회당앞에서 사제들과 결합해 높은 가격에 제물을 파는 장터를 생의 마지막 날들에 엎어버린다. 또한 지배자 로마군대를 인민에게 들린 귀신에 비유하여, 돼지 몸으로 보내 호수에 빠트려 죽이는 서슬퍼런 비유도 서슴치 않는 이 이기도 했다. 

김규항은 예수가 왜 사형을 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로마 뿐만 아니라 로마에 빌붙은 같은 민족 지배층, 또 이스라엘의 전통과 역사를 지키고 백성들을 돕고 있는 것처럼 일견 보이지만 온갖 율법들로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바리사이인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탄압을 받는다. 즉 지배체제에 의해 사행당했다고 보는 것이다. 

김규항은 갈릴래아 변방, 로마와 유다의 지주들에게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땅의 한 청년이 매시아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등불이 되었으며 왜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를 말한다. 김규항의 책속의 예수는 2000년 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거짓 믿음과 거짓 교회가 판치는 이 사회에, 이 잔인한 자본주의 시대에 그저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죽음으로서 아니라고, 바르게 사는 삶은 '나를 이해하고, 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태일은 학교를 다닌 기간이 다 합쳐야 4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노동법을 읽고 제 목숨을 버릴 줄 알았다. 여기 무수한 책을 읽은 나는 참으로 알고 있는지 반성이 된다. 

<책속의 구절들> 

P13

예수는 새로운 사회의 실체는 그 체제나 법 같은 형식에 있는게 아니라 바로 그 사회 성원들의 지배적인 삶의 방향과 결에 있음을 되새겨 준다. 

P32

예수에게 하느님은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다정한 엄마와 같은 존재다. 예수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누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와 대화하려 하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P54~56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인자는 또한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중략)

하느님이 사람을 괴롭히고 옥죄기 위해 율법을 준게 아니라 사람을 더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율법을 준 것이다. 사람을 괴롭히고 옥죄는 율법은 더 이상 하느님의 율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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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 제도가 사람을 위해 생긴것이지, 사람이 제도를 위해 살지 않는다. 최근 장애인분을 위해 정류장이 아닌 병원 앞에 세워준 버스기사에게 벌금을 부과한 판사는 이 점을 고민해 봐야한다.

P68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인간이 만든 종교체제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의 성실과 충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벌이고 있는 역사,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의 참여인 것이다.

P73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하고 느끼는 건 물론이려니와 삶에 새겨 실천하는 것이다.

P80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사람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세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일어난 혜택은 시나퍼의 그늘처럼 모든 사람,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적대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진다. 역사에서 보듯 세상의 변화는 늘 그래왔고 지금 이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지금 쉬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P103

하느님 나라 운동에 임하는 사람은 운동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쓰이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P110

진정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중략)

누구든 제 능력과 개성에 맞추어 정직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P185

남보다 많이 갖는 게 축복이 아니라 내 것을 없애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게 축복이라고 말한다. 

P196

정교분리 원칙은 교회가 무작정 정치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교회가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거나 야합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다. 

P210

가난한 사람은 남보다 적게 가짐으로써 모든 사람이 고루 갖게 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며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그러므로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그대들의 것이니.

복되어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그대들은 배부르게 되리니.

복되어라, 지금 우는 사람들!

그대들은 웃게 되리니.

(루가 6:20~21)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김규항씨와 같은 한신대 출신의 신학자입니다. 학자인 만큼 일목요연하면서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게 쓰여진 책입니다. 평소에 의심이 가던 성서의 많은 구절들이 이 책을 읽고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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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5-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서는 전 세계 많은 이들이 믿는 기독교의 경전이지만 의외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무척 많습니다.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몰몬교도 나오고 통일교도 나오고 요즘 말썽이 많은 JSM(?)인가도 있고 아무튼 타 종교에 비해 의외로 이단이 많은 종교지요.
이 책도 지은이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책들중의 하나인것 같군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읽기 좀 그렇겠지만 나름대로 이런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5-22 16:31   좋아요 0 | URL
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 아니겠습니까?
가끔 염화미소를 떠올리는데, 부처가 연꽃을 들어올리는 마음을 아는것처럼 시공을 넘은 예수의 마음의 이해,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닥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나름 독실하신데, '똥누는 것도 예수쟁이처럼'이 모토십니다. 참 맞는 말인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