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내 단짝 소꼽친구가 혼인을 했다. 그것도 선본 남자를 십일간 매일 열번을 본다음 혼인을 결정하고 두달만에 결혼식을 해치운 다음 외국으로 간다. 

분식집 메뉴도 네번은 바꾸는 녀석의 과감한 선택에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결혼할 때는 괜찮았는데 그녀석이 혼인을 하고 나서 병이 났다. 하필 그리 추운날 청담동에서 결혼을 해서 치마에 얇은 코트를 입고 바람을 마구 맞아줬더니 말이 안나왔다. 

콧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고통이지만 나같은 수다쟁이가 말을 못하게 되다니...  

나는 휴일 늦잠이 없는 수다쟁이다. 옆지기는 말없는 늦잠꾸러기다. 주말 아침이면 혼자 반찬도 하고 재활용도 분리수거해두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나름 바쁘다. 그리고 잠자고 일어난 짝꿍에겐 말폭탄을 던진다.. 

이번 일요일 아침엔 청담 바람을 맞았더니 너무 고단해서 집안일을 미루고 띄엄띄엄 팅커스를 읽었다. 섬세한 글인데 음미하며 읽지 못해 책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너는 추운 아침에 가슴이 몹시 아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편치 않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세상이지만 여기에는 갈등이 가득하고 따라서 우리가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갈등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조차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중략) 

그리고 네 가슴 아픔에 화가 날 때는 기억하라. 너는 곧 죽어서 땅에 묻힐 것이라는 사실을. 

- 89쪽 

그녀는 아내가 되고, 이어 어머니가 된 충격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깨우러 가 침대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이들을 처음 볼 때 주로 느끼는 감정이 원망, 상실감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당황한다. 그 감정들이 너무 무시무시 해서 그녀는 그것을 집안을 다스리는 겹겹의 엄격함 밑에 묻어버렸다.  

- 109쪽 

아, 그래요, 그래,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우리가 가진 게 겉모습 말고 뭐가 더 있겠어요. 

- 199쪽 

라임 상자에서 코를 들어올릴 때면 기분이 상쾌해져 어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입 밖에 내놓는 아내, 회오리와 소용돌이를 일으켜 뭔가를 모은 다음 불쾌한 침묵, 얇은 얼음처럼 발밑에서 꺼지며 네가 지금 물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침묵 속에 담아두는 일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내. 

-215쪽

 아무 것도 안하고 널브러져 주말을 보내고 나면 심장이 아프다. 

너무 소중한 무엇이 손가락으로 술술 빠져나간 느낌이다. 

공인받은 초절정 낙관주의 베짱이도 평화로운 밤이면 너무 잔잔한 일상에 화가 나기도 하고, 뜻대로되지 않을게 분명한 주중에 나날에 우울해지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베짱이 수다쟁이니까 우울도 크게 소리쳐 외쳐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덧글>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계속 블로그에 등장중인 식탁 사진을 이번주에도 올려본다. 

많은 분들이 꾸러미를 궁금해 하시기에 어찌 오는지 보시라고 올려본다. 꾸러미에서 온 늙은호박으로 부침개 지지고, 묵이랑 두부은 무치고, 냉동실에 쳐박아둔 해산물 구제 차원에서 오징어무국, 꽃게탕 끓여 먹으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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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1-01-1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운 겨울에 결혼했는데,,그날 눈도 내리고,
와 밥상이 참 깔금하네요,맛나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3   좋아요 0 | URL
울보님도 겨울에 혼인하셨군요.
저는 다행히 올겨울에 따뜻한 날이여서 좋았답니다.

사실 모양새와 맛이 상관관계가 ㅎㅎㅎ

웽스북스 2011-01-1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휘모리님 짱이에요. 잘할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정갈하고 깔끔하게 잘하다니!!!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4   좋아요 0 | URL
제가 왜... 밥상 밖에 공개를 못하는지 아시나요...

라로 2011-01-1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다 괜찮은데 "오징어 무국인데 오징어도 무도 안보이네."에서 빵 터졌어요!!!!ㅎㅎㅎ
제 남편은 자기가 안 차리는 밥상이 맛있는 밥상이라더군요,,ㅎㅎ
님의 짝꿍도 그러지 않을까요? 사랑스러운 휘모리님,,,,아주 잘 하고 계시네요~~.^^
정갈한 님의 모습처럼 밥상도 정갈하니 깔끔하고 맞깔스러워 보여요,,,오징어와 무는 가라앉아서 안 보이지만,,^^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5   좋아요 0 | URL
에... 제 옆지기는 감놔라 콩놔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담당은 설겆이가 줄어들게 반찬통채 먹지 않는다고 어제도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으흐흐흐

하이드 2011-01-1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다 보내는 그런 주말 보내고 심장까지 아프고 그러지 마세요 ^^
금요일의 미스터리와 맥주 한 잔이 없어진 건 상당히 아쉽지만, 한 상도 좋... 네요.라고 말하기엔 이건 제겐 너무나 먼 그림의 떡 ㅡㅜ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9   좋아요 0 | URL
요즘 추워서 밖에 안나가니 우울한가봐요.
태양을 볼 시간이 주말밖에 없으니 무조건 나가줘야하는데 ㅠ.ㅠ
미스테리는 금요일에 읽었어욧!!!
맥주는 토요일에 그 혹한에 술을 엄청먹고 감기가 들어버려서 ㅠ.ㅠ
하이드님 밥상이 멋지다는 걸 전다 알고 있다구요!

Kitty 2011-01-18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휘모리님 결혼한지 10년차쯤 되신 것 같은 너무나 훌륭한 밥상!!!!!!!!!!!!!!!!!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7   좋아요 0 | URL
원래 말이죠.. 새댁들이 10년된 것처럼 차리다가 막 귀찮아져서는...
전 여름전까지만 밥상을 차릴 계획을 하고 있어요..
아흑 덥겠다.

순오기 2011-01-1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훌륭한 밥상이에요.
꾸러미 좋은 거 같아 막내의 아토피 때문에 신청할까 했는데
막내도 기숙사 들어간다는 말이 있어 아직 결정은 못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8   좋아요 0 | URL
광주야 나가면 맛난 곳들이 줄지어 있을거 같아요~
막내가 아토피가 있군요. 겨울이라 힘들겠어요.
저도 많이 건조한 피분데 아주 힘들게 넘기고 있거든요 --

양철나무꾼 2011-01-1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것도 안하고 널브러져 주말을 보내고 나면 심신이 탄탄해지는 것 같은데...ㅋ~.
너무 바지런하신 것 아녀요?^^
암튼 전 님의 너무 잔잔한 일상이 왕부럽습니다여~!!!

무해한모리군 2011-01-18 08:58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양철나무꾼님 왜...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가 간 것같은 서글픔이요..

fiore 2011-01-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주말 누가 결혼할까 싶었는데 여기에--;; 그나마 토요일이었던 게 다행일까요;;

감기 괜찮으세요?

헌데 첫번째 사진에서 보라색은 뭔가요? :)

무해한모리군 2011-01-18 10:04   좋아요 0 | URL
생긴건 양상추인데 맛은 치커리 비슷해요..
영어로 이름이 어려워서 ㅠ.ㅠ
아직도 투병중...

무스탕 2011-01-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뚝배기에다 찌개를 끓이시다니요! 전 무겁고 귀찮아서 뚝배기 다 치워버렸는데;;;
생선접시도 이뿌고 수저받침도 이뿌고 알라딘 물컵도 이뿌고...
전 신혼초에 오이랑 풋고추만 먹고 산거 같은데 말입니다요. 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1-18 12:38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더 경악스러운건 저게 신혼살림이 아니라 제가 결혼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라는거죠 ㅎㅎㅎ

아~ 전 정말 혼자서도 잘 살 케릭터인듯 ㅎㅎㅎ

다락방 2011-01-1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생활 하면서 저런 밥상을 스스로 차리고 또 다 드시고 나면 설거지도 하고 또 가끔 빨래도 하고 그러면서 살고 계신가요, 휘모리님? 와- 진짜 존경합니다.
전 어쩌다가 설거지 한번만 해도 역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은 직장생활만 해야지 살림은 할 수 없다고 널부러져 버리거든요. 그리고 그 둘을 굳이 비교하라고 하면 저는 살림이 더 힘들어요. 살림 진짜 빡세지 않아요? 그런데도 엄청 잘 하시는듯 ㅠㅠ

만약 저라면, 스팸만 사다가 맨날 구워먹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1-01-18 18:22   좋아요 0 | URL
쓰레기들을 섭취하며 아주 긴 세월을 보냈지요...
그러다 어느날 더이상 먹을 수가 없게 됐어요..
아흑 지겨워서 말이죠..
다락방님..
저도 엄마랑 살고 싶어요 흑흑흑
먹는 것빼고는 완전 더럽게 살고 있답니다 --;;

잘잘라 2011-01-18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러미! 위력적이군요.
꾸러미! 저도 신청할래요.

울산 지역은 '자연드림' icoop생협이 꽉 잡구 있어서 지난 번 페이퍼를 애써 외면했지요. 생협 가입한지 얼마 안됐걸랑요. 그런데 이번 페이퍼를 보니 도~저히 안되겠어요. 뭘 살까 뭘 먹을까 고민 안해두 된다는게, 젤 큰 장점인듯!!! 땡스투 휘모리님^^

무해한모리군 2011-01-18 18:21   좋아요 0 | URL
꾸러미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실거예요. 저는 생협도 이용하고 마트도 가고 집앞 시장도 이용하고 막그래요 ㅎㅎㅎ

괜찮은 인연을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후애(厚愛) 2011-01-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는 다 나으셨어요?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배 고파요.ㅜㅜ 맛 있겠당~ 먹고싶당~~~

무해한모리군 2011-01-20 21:34   좋아요 0 | URL
아직도 훌쩍거려요.
서울은 정말 엄청엄청 추워요!
후애님 계신 곳도 춥죠?
우리 건강조심!

같은하늘 2011-01-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걸린지 일주일째네요?
감기는 약먹으면 일주일 안먹으면 칠일이면 낫는 병이라는데 어때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정갈한 밥상 구경하다가 생선 접시가 우리집이랑 똑같아요.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1-24 08:50   좋아요 0 | URL
아 저 생선접시 누구네 돌잔치 갔다가 얻었어요 으흣.
아직도 투병중이고 입위가 다 헐어서 완전 헐크예요 --

같은하늘 2011-01-24 11:44   좋아요 0 | URL
우째요~~ 어여어여 좋아지시길 바래요~~~
ㅋㅋ 저도 저 생선접시 돌잔치 갔다가 얻은건데...

따라쟁이 2011-01-2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제 주말도 주말이 아니에요. 청소하고, 정리하고, 빨래하고, 점심하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하고 설겆이 마치면 아홉시에요. 아.. 그렇게 지난 주말도 갔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1-01-25 09:19   좋아요 0 | URL
그게 제가 집안 사람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특별히 해놓은 것도 없고 집은 지저분 한테 시간은 왜 많이 들까요? 초보라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