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느즈막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보니 하늘이 그렇게 청명할 수가 없더군요. 오늘같은 날에는 평소 밀린 잠을 한 번에 몰아서, 말그대로 소나기 잠을 자야함이 마땅하지만 이렇게 날 좋은 날 그냥 잠자리에 움츠리고 있는 것이 별로 좋지 않은 일이라 싶어 주섬주섬 대충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갔어요. 3년전에 다니던 교회 아이들과 다녀온 이후로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양화진에 가기로 작정을 하였지요. 왜 하필 그곳이냐구요? 요즘같은 때, 내 삶에 무언가 자극제가 필요하다 싶었어요. 내 존재의 각성을 요청할 그 무엇말이죠. 그래서 생각한 곳이 양화진이었구요.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여전히 '거룩의 향'이 가득했습니다. 느티나무 가득한 그곳은 오래 전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왔다가 순교한 분들의 묘소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무덤부터, 훗날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한국 땅을 잊지 못했던 이들까지 선교자들의 무덤은 가득했고, 그만큼 그곳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조용했습니다. 다시금 무덤을 돌아보며 저는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자신의 나라도 아닌 타국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복음을 전하다니......' 어떤 이들은 선교사들이 들고 왔던 복음의 본질을 질타하며, '식민 사관'이라는 미명 하에 온곤한 선교적 가치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들은 분명 '제국'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 오직 그것만을 보노라면 저는, '선교'라는 테제 이전에 '신앙'이라는 차원에서 그것이 결코 가볍거나, 쉽게 평가될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무거운 걸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나섰습니다. 조그만 이정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길은 다양하지만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던 간디 선생님의 말도 맴돌았습니다. 그들과 같은 길을 갈 순 없지만, 또한 같은 가치관과 신앙의 양태를 가질 순 없지만 어떤 길에 내가 서있든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분명한 확신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봄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마음 끝자락에서도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합정역으로 향하는 모퉁이길에서 또 반가운 만남이 있었어요. 작은 헌책방이 보입니다. 헌책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습니다. 물론 그 곳에 소장된 책들 또한 하나같이 새것들입니다. 터가 터인지라 그 새 책들 또한 기독교 관련 서적들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책 두 권 골라 가게를 나섰습니다. 주인 할머님의 미소도 잔상처럼 따라나섭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들어선 지하철 역사에서 저는 작고 예쁜 로즈마리, 그리고 산수유를 샀습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 지나가면서 바라본 작은 화원에 진열된 요 녀석들을 저를 보고 손짓하는 느낌, 꼭 그런 느낌이었어요. 딱 내 새끼다하고 집었습니다. 그리고 이 밤 저는 창 곁에 그 녀석들을 두고, 흐뭇한 미소를 보냅니다. 산수유 녀석은 무덤덤하고요, 로즈마리는 제 후각을 통해 미소를 보내고 있군요. 아 오늘같으면 날마다 좋은 날이겠습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