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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그대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그리움이 불이 되는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놓았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 중에 흩어지는 너그대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후배 녀석의 마음 아픔을 마주하며, 

문득 이 시를 떠올렸다. 

우리는, 그가 혹은 그녀가 그리워지는 순간에는 

다른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속절없이 우는 것 밖에는 아무 할 것이 없다. 

그런게 사랑이고, 그런게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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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이성선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

 

간만에 뜨끈한 글맛에 취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보는 한희철 목사님의 글, 참 좋습니다. 서두를 읽다가 좋은 시 있어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무심한 세상이라지만 무심하게 스치는 사람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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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걸이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밭 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 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사는 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

 

저물고 있는 한 해. 매해 세밑에 서면 늘 그러하듯이 올해도 여전히 저는 후회로 얼룩진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노해의 시, '해거리'를 접하며, 남은 며칠동안이라도 땅심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감나무에도 해거리가 필요하듯이 제 삶에도 해거리가 필요하진 않았었는지요. 오늘의 절망보다는 내일의 희망을 품고 살겠다는 제 자족적 의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야무진 꿈일지도 모릅니다. 스무날 남은 12월, 12월은 본디 '완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였나요? 비록 미완이 될지라도 오늘만큼은 다짐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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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2-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의 시와 단상이 지금 제게 힘이 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제가 늘 바라는 것이죠. 12월은 '완성'을 뜻하나요?
몰랐네요. 전 완성을 바라지 않을래요. 그저 조금씩 나아질래요^^
바람결님에게도 저에게도 남은 이 해의 나날이 알차게 영글면 좋겠어요.

바람결 2007-12-11 20:49   좋아요 0 | URL
혜경님께 힘이 되었다니요!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완성은 바라지도 않겠다는 님의 말이 얼마나 겸손한지요.
저 또한 그저 조금씩 나아지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남은 며칠동안의 이 한 해 잘 해거리하시고,
잘 마무리하시길 빕니다.^^
 

고래를 기다리며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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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11-0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의 시간은 무언가를 염원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할 터. 그러니 기다림을, 그러다 지치겠지만 그래도 기다림을 마음에 두고 살지어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이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하리라.
 

단풍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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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10-3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야 할 것들을 기꺼이 버려두고 왔습니다.
아프지요, 아프지요.
하지만 방하착에 이른 운신은 비로소 물이 들테죠.
가장 황홀한 빛깔로요.

프레이야 2007-10-3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 좋으네요. 시월의 마지막날, 왜 이리 쓸쓸도 한지요..

바람결 2007-11-01 00:39   좋아요 0 | URL
시 참 좋지요, 그나저나
쓸쓸하셨다구요...
저 또한 많이 쓸쓸했던 날이었습니다.
시월이 지나면 가을이 갈 것만 같아
더욱 그러했습니다.

쓸쓸함...가을이 남기는 마지막 선물인가요...?

비로그인 2007-11-0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바람결 2007-11-05 12:13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알리샤님~^^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님도 잘 지내고 계신지요?

날이 춥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날 되었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날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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