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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교회를 오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오침을 즐길 수 없었던 건 정한아의 소설,<달의 바다> 때문이었다. 소설이 그 본성상 독자들에게 "재미"를 전해주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내게 더할 나위없는 재미를 주었고, 그 때문에 나는 대략 서너시간의 이동 시간을 뜬 눈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비단 재미 뿐이랴. 꿈과 현실을 오가는 극적인 거리로부터 오는 존재의 괴리, 그리고 괴리 너머, 작은 희망의 조짐은 읽는 내내 나를 끄덕이게 했다. 어쨌거나 <달의 바다>는 내게 몇 번의 비수를 꽂았는데, 폐부 깊숙히 박힌 두 구절만 일단 적어본다.

"가끔 저는 꿈을 꿔요. 사방이 탁 트인 우주 속에서 거추장스러운 장비 없이 걸어다니는 저를 보는 거예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저는 푸른 지구가 보이는 곳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통통 튀어오르기도 하죠. 두 발을 박차고 팔을 휘저으면 한없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어요. 엄마도 그런 곳이라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저와 함께 우주 속을 걸어다닐 수 있을 텐데요. 꿈에서 깨고 나면 갖고 있던 걸 뺏긴 것처럼 허허로운 마음이 되지만, 그래도 저는 멈추지 않고 다시 꿈을 꾸려고 이불을 끌어당겨요."(61쪽)

"이 배우들은 모두 요정들일세. 이젠 대기 속으로, 엷은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렸지. 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환상의 세계처럼 저 구름 위에 솟은 탑도, 호사스러운 궁전도, 장엄한 신전도, 이 거대한 지구도, 마침내 다 녹아서 지금 사라져버린 환상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걸세. 우리 인간은 꿈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고 이 허망한 인생은 긴 잠으로 막을 내리게 되지."(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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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정말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또 그렇게 살기 원한다면 '삼난三難'을 각오해야 합니다. 첫째는 가난이요, 둘째는 비난이고, 셋째는 고난입니다. 그것들을 지혜롭게 받이들이지 않고서 평화를 위해 산다는 것은 분명 꿈같은 이야기일텝니다."

어제부터 기독교 청년 아카데미의 봄 강좌, <평화학교-분쟁지역 평화활동의 실례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첫 시간 '개척자들'의 송강호 님께서 소중한 강의를 해주셨고, 윗 글은 그 시간 말씀하신 한 대목이다. 진정 '평화'를 몸소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난도, 비난도,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그 말에 나는 죽비를 맞은 듯 마음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하고보면, '평화'는 삶의 구체 속에서 이해되고, 적용되기 보다는 희망이라는 관념의 터울 위에 높이 쌓아올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 평화란 가난과 비난과 고난이라는 삶의 비애를 단호하게 마주하지 않고서는 결코 올 수 없다. 나는 그 자명한 진리를 재삼 확인할 수 있었고, 관념 속에서 부류하던 '평화'를 몸의 언어로 살아내리라 다짐하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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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기를 추구하고 있는 저의

자아로부터 자유롭기를 저는 바라나이다.

 

_메블라나 젤랄룻딘 루미, <사랑 안에서 길을 잃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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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빠져 나가지 않는 한 우리 삶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빠져 나가야 할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일까요?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우리가 결별해야 할 어두운 그림자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원망과 미움, 이런 것이 우리 영혼을 질식시킵니다. 우리 얼굴을 어둡게 하고, 천진하게 웃지 못하게 하고, 다른 이와 더불어 마음을 열고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미움과 원망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아름다웠던 관계는 깨지고, 거리감이 생깁니다. 어쩌다 만나도 뜨악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 다가서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죄는 ‘소외시키는 힘’이라는 말은 얼마나 적확한 표현입니까? 죄는 멀어지게 하는 힘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로 상처를 주고받는 게 사람입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후입니다. 그 일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삶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_김기석, 청파교회 2007.12.30 주일오전예배 설교 "오늘, 용서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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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니 온갖 용서할 것들 투성이입니다. 그것들 중에서도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용서가 먼저이지 싶습니다. 어두운 그림자로 그득 들어찬 제 내면을 용서하지 않고서는 나와, 나의 '나'는 분리된 채로, 파열음을 내며 살아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거나 나를 용서하는 일로부터 타인을 용서하는 일까지 제가 (누군가에게)남긴 무수한 상처들과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응시하고, 용서하는 일부터 올해는 시작해야할 듯 싶습니다. 지난 몇 달동안 혼란스러웠던 내면 풍경을 정리하고 제 삶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들을 들춰내야겠습니다. (어느 누군가와의) 아름다운 관계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행복할 수는'없기에 그렇습니다. 저 자신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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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못된 놈들이 결국 불쌍한 인민을 속였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은 저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걸까요?"

스승이 말했다.

"이런 우화가 있는데 들어보았나? 어느 날 나귀에 짐을 싣고 길을 가던 상인이 멀리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도적 떼를 보았지. 그래서 나귀에게 '빨리 가자. 놈들에게 붙잡히겠다'하고 말하자 나귀가 묻기를, '놈들에게 붙잡히면 저들이 내 등에 지금 지고 가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울까요?' 그가 정직하게 대답했지. '그러지는 않을 게다.' 그러자 나귀가 이렇게 말했다네. '어차피 무거운 짐을 질 바에야, 그게 누구의 짐인들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

스승이 제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백성에게는 낡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우는 것이 같은 주인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경우가 흔한 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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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우리는 '정권 교체'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속아야 하는 걸까요? 언제까지 우리는 법과 제도를 고쳐서 이 땅에 정의를 이루자는 선동에 휘둘려야 하는 걸까요? 아아, 언제까지 우리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의 열쇠인 '사람'을 외면한 채 엉뚱한 데서 목자 없는 양떼처럼 헤매야 하는 겁니까?

 주님, 온 세상이 그러고 있다 해도 저는 그 눈먼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렵니다. 옛날 베드로가 그랬듯이 저도 '고기'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남은 세월 살고 싶습니다.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던 주님,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_이현주, <보는 것마다 당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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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12-1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대선이라지요?
오늘 버스 안에서 무심코 책을 넘기다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결국 '사람'을 외면한 변화는, 그것이 진실일 수 없다 싶었습니다.

'누구를 뽑을거냐? 누가 과연 인물이냐?'라는 질문을 부쩍 많이 받는 요즘,
침묵으로 일관하였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인다운 정치인'이나 '정치인다운 사람' 혹은 '사람다운 정치인'말고
그저 '사람다운 사람'을 찍으라고요.
법과 제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람보다는,
그 길을 사람으로부터 찾고 사람만이 희망의 열쇠임을 자각하는 사람을 뽑으라고요.

그만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네요.

프레이야 2007-12-19 10:2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방금 찍고 들어왔어요.
제발 사람을 보아야할텐데 걱정입니다. 아닌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요..
무엇이 사람들을 그리 만들었는지 한심하단 생각이 들어요.
날이 차갑지만 쨍~하니 좋습니다.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가닥을 잡아가듯 님께서도 그런 12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냥 바람결님의 기도소리가 듣고 싶어집니다.^^

바람결 2007-12-19 12:16   좋아요 0 | URL
일찍 다녀오셨군요?
저는 이제 슬슬 투표하러 갈려구요.
누구를 찍든 이번 투표는
제 마음에 주는 표 한 장이에요.
사람이 희망임을 알고, 사람답게 살라는^^

아쉽게도 제 기도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있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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