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웹 사이트를 오락가락하다가 뒤늦게 김규항 님과 진중권 님의 '논쟁'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분을 앉아서 꼬빡, 내용 파악에 몰두했드랬지요. 그리 비상식적이라거나, 비합리적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글 한 토막이 불씨가 되었더군요. 몇 번을 되짚어가면서 읽어보았지만 제 눈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3의 눈'이란 늘 그런 것이어서 당사자의 내밀한 감정까지 짚어낼 수는 없겠지요. 글의 어느 대목이 마뜩찮게 느껴졌는지 감정의 동요가 퍽 심하게 느껴지는 글이 반론으로 접수되었더군요. 재차 이어진 반론과 그에 대한 또 다른 반론이 거듭되면서 원의原意가 점차 흐려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논쟁의 공방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는지, 논객 두 어 분의 주장이 거칠게(?) 추가되면서 그만큼 소통의 여지 또한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말이란 원래 믿을 것이 되지 못해서 말을 거듭하면 할수록 ‘단절만 완성해가는’(김훈) 경우가 다분한데요, 꼭 그러했습니다. 논쟁이란 말 자체의 함의가 ‘말다툼’이고 보면 ‘그렇지, 뭐’하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논論이라는 말이 ‘진술하다’는 뜻과 동시에 ‘고하다’, ‘여쭈다’라는 뜻 또한 지니고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분명 말하는(혹은 글쓰는) 태도나 방식 상의 문제가 도드라져 보입니다. 상대방의 글 속에서 행간을 읽어내고자 하는-겸비謙卑의 자세가 포함된-진지한 노력이 결핍된 ‘논쟁’은 쉬이 ‘질펀한 말言들의 성찬’에 불과하기에 정신의 아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난이 내깔린) 비판의 포화 속에서 두 분 모두 치열한 고뇌의 산물로 내놓은 글들이라 충분히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불통의 벽은 높아져만 가는 듯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담아내기에 앞서 포용과 배려의 마음이 전제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두 분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철학적 지식도, 정치적 식견도 심히 모자란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허나 이 논장論場이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사상의 난장煖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네요. 문득 루미의 문장 한 구절을 되내입니다.
"상호 이해는, 같은 언어를 말하는 데서 오지 않고 같은 지혜를 말하는 데서 온다. 혀를 서로 나누는 것보다 가슴을 서로 나누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