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자 2
장용 지음, 양성희 옮김 / 조율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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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나 드라마 중 많은 작품들이 1930-40년대의 상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인 탕웨이의 [색계]라는 영화이다. 영화가 너무 탕웨이라는 여배우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당의 시대상황과 이런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느끼는 배우들의 감정연기가 잘 드러나고 있다. 


영화에서 탕웨이의 위장 신분인 막부인이 암살하려는 대상이 친일인사인 미스터 이(양조위)이다. 당시 중국은 중일전쟁으로 인해 상해와 난징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안도시가 일본에게 점령당한다.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에 버금간다는 끔찍한 난징 대학살이 발생한다. 난징의 인구 100만명 정도가 잔인하게 학살 당하고 20만명의 여성이 강간 당하고 살해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동족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는 중에서도 일부 친일파 세력과 국민당에서 장제스에게 밀린 왕위가 상해에 친일정부를 세운다. 상해에서는 이런 친일정부와 함께 국민당과 공산당의 스파이들이 활동하고, 이런 스파이들에 의한 친일인사들의 암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영화에서의 미스터 이는 이런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막부인과 동료들은 이런 친일파를 암살하는 스파이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미스터이와 막부인은 둘 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색계]라는 영화는 사실 장아이링이라는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녀 역시 당시 상해의 왕위정부로 알려진 친일정부의 인사와 결혼을 하는 등 당시의 시대상황을 직접 경험한 여성이기도 하다. [위장자] 같은 시대 배경인 원작 소설을 드라마와 했다. 그리고 한국에 출간된 [위장자]라는 책은 원작소설이 아닌 드라마의 시나리오 작가인 장용에 의해 쓰여진 작품이다.




[위장자]는 상해의 재벌 가문인 명씨 가족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집안의 사업을 관할하고 있는 누나 명경, 왕위 정부의 재무 장관이 되어 친일인사로 비난을 당하는 형 명루, 그리고 부잣집 막내 도령으로 한량 역할을 하는 막내 명대가 등장한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이는 역할과 달리 그들은 다른 직책을 가지고 있다. 명루는 사실 공산당 후원세력이었고, 명루는 암호명 독사로 활동하는 국민당 스파이였다. 막내 명대 역시 암호명 독전갈로 활동하는 국민당 스파이였으나, 후에 국민당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공산당으로 전향하게 된다.


1권에 이어서 2권에서는 이들의 치열한 첩보 싸움이 전개된다. 명루는 자신의 신분을 감춘채 자신의 옛사랑이자, 지금은 왕위정부의 첩보조직인 76호의 정보처장인 왕만춘을 이용해 자신의 첩보 작전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겉으로는 친일인사로 활동하고, 속으로는 옛연인인 왕만춘 뿐만 아니라 누나인 명경과 동생이 명대까지 이용해야 하는 잔혹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심한 갈등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냉혈함을 비난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토로한다.


"내가 감정도 없는 냉혈한인 줄 알아? 일본 놈들이 내 나라를, 내 고향을 수탈하고 우리 민족의 존엄을 말살하는 걸 보면서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목숨을 버리려는 전사를 어떻게 감정도 없는 놈이라고 욕살 수 있지? 생사를 넘나들며 투쟁하는 전사들에게 어떻게 냉혈한이라고 말할 수 있어? 뭣 때문에?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절대 버릴 수 없는 가족마저 희생시키니까? 그래, 난 동포와 가족을 희생시켜가며 이 가면을 쓰고 있지. 나도 이 가면이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그런데 꼭 그렇게 내 상처를 후벼 파야겠나? 정말 의리 있는 동지군!" (P 289)


명대 역시 자신의 형을 죽여야 하는 임무에 까지 감당할 정도로 극단으로 내 몰린다. 특히 그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활동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가 왕위 정부와 밀무역을 하고 있는 부패한 장면을 보고 낙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훈련소에서 부터 함께 했던 동료인 우만려와의 사랑 대신, 공산당 스파이이자 자신의 약혼녀인 정금운과의 사랑을 선택한다. 결국 국민당 정부가 만든 함정 임무에서 우만려는 주고, 명대까지 포로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이미 또 다른 계획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속고 속이는 첩보전 속에서 명대는 선택의 갈등에 놓이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중국의 현대사 역시 우리나라처럼 굴곡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장자의 삶을 살면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생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죽음이 가치가 있을까? 시대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멋진 소설이었다.


- 이 책은 리뷰어스 클럽의 지원을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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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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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나라가 온통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 상황을 보면서 '과연 우리 국민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빠진다. 이런 결과는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때 어느 정도 예견되었음에도 많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이 정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선거나 여론, 의식 등에서 나타나는 국민들의 생각이  때로는 어리석고 집단광기에 빠져 있을 때가 있다. 그렇게 어리석고 집단 광기에 빠진 상태에서 선출된 지도자는 비이성적인 통치를 하게 되고, 그 피해는 모두 국민들이 지게 된다. 왜 국민들은 어리석은 판단을 하거나 집단 광기에 빠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단지 우리나라 국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이런 의문을 제기한 학자가 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Sebastian Haffner)라는 학자이다. 나치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후에 근대 독일 역사에 관한 책들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는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이란 책이 있고, 이 책은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히틀러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시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다루고 있는 역사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독일 민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이들이 다른 민족보다 특별히 호전적이어서인가? 작가는 독일민족이 특별히 호전적인 민족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대체 무엇 때문인가 자문하게 된다. 도이치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전쟁을 좋아했더란 말인가?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도이칠란트의 전체 역사를 보면, 그러니까 약 1000년기까지 도이치 사람은 전쟁을 많이 하지 않았고, 특히 전쟁을 도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유럽의 중앙에 자리 잡은 도이칠란트는 근대 초기 이후로 일종의 거대한, 여러 면에서 완충지대였다. 다른 나라들이 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도이칠란트 내부의 거대한 충돌들이 안에서 벌어지기는 했다. 슈텐칼덴 전쟁, 30년 전쟁, 7년 전쟁 등등...... 하지만 내부에서 이런 전쟁들이 밖을 향한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도이치 제묵은 20세기에 두 번이나 그런 공격성을 드러냈고 또 그로 인해 몰락했던 것이다." (P 13)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 민족을 그렇게 전쟁의 광기 속으로 내몰았을까? 저자는 그 원인을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정에서찾는다. 저자가 이 책에서 독일이라는 이름 대신, 도이칠란트나 도이치 제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비스마르크에서부터 히틀러까지의 제국이 독일의 민족국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이치라는 단어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하는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독일민족주의가 자극을 받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북부 도이치 제국이 성립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여러 국가들이 민족주의로 통합이 되어 국가가 형성되었을 때는 그 응집력이 안에서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이다.


이런 도이치 제국의 성립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우리에게는 철혈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비스마르크'이다. 그러나 저자는 비스마르크가 전쟁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보다는 억제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프로이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두 차례 전쟁으로 도이치 제국이 성립된 이후, 팽창주의보다는 현상유지정책을 펼쳤다고 말한다. 당시 통일된 도이치 제국이 가장 염려한 것은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더 나아가 독일 주변의 강대국들이 프랑스와 연합하여 독일을 공격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했다. 즉 프랑스-러시아-영국 동맹을 통해 독일이 견제 당하는 상황이다. 비스마르크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 이런 상황을 가장 피하려고 했고, 그로인해 식민지 확대나 군비확대를 통해 주변 강대국들을 자극하는 일을 최대한 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사후 빌헤름2세가 통치하면서 갑자기 낙관주의적인 사고가 독일에 팽배했다. 상업적인 발전을 통해 독일민족의 우수성이 강조되고, 결국 주변 강대국들을 힘으로 누를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들이었다. 당시 독일은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발칸반도와 폴란드 지역에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되면, 프랑스와 또한 전쟁을 하게 되어야 했다. 비스마르크 시대는 이렇게 서부와 동부에 두 가지 전투를 만드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더 나아가 영국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빌헤름 시대의 낙관주의로 인해 그들의 자신감이 넘쳤고, 결국 프랑스와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후에 영국과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면서, 빌헤름 제국은 몰락하게 된다.


이런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빌헤름 제국의 몰락이 탄생시킨 기형적인 지도자가 바로 '히틀러'이다. 저자는 도이치 민족이 크게 두 가지의 잘못된 생각이 히틀러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나는 1차세계대전은 자신들이이긴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도이치 정부는 국민들에게 전쟁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만을 전해 주었다. 그러기에 도이치 민족들은 패망 전까지도 전쟁에서 자신들이 거의 다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패전 소식이 들리고, 치욕적이고 무거운 배상이 담긴 베르사이유 조약을 승인해야 했다. 그들은 이것이 모두 정치가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위대한 정치가가 나타나면 자신들이 주변 강대국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러시아 영토에 대한 집착이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진정한 목표는 러시아영토 점령이었다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도이치제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거의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었고, 심지어는 후에 히틀러가 점령한 러시아의 영토에 버금가는 지역을 점령하기까지 하였다. 이때 도이치 민족과 히틀러의 생각에는 러시아는 쉽게 점령할 수 있는 나라였다. 만약 프랑스와 영국의 방해만 없다면 독일은 방대한 동부 영토를 차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10년 전후의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해 혼란한 상태였고, 1940년대의 러시아는 스탈린 체제의 조직화된 국가였다.

 


 

 

이런 두 가지의 허황된 생각이 히틀러라는 인물을 탄생시켰고, 도이치 민족들을 히틀러가 제시한 허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국 히틀러와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 더 전에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정에서 가졌던 도이치 민족의 낙관주의적인 허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하찮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1933년 3-7월에 일어난 일의 증상으로 생각할 수는 있다. 이 시기에 일어난 그 온갖 불법에도 불구하고, 강제수용소 설치나 마구잡이 체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분명한 반유대주의 정책의 처음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광법위한 주민 계층 사이에서 하나의 확신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위대한 순간이다.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순간, 신이 보내신 한 사람, 민중 한가운데서 일어난 지도자를 찾아낸 순간이다. 그가 기율과 질서를 찾을 거고, 민족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아, 도아치 제국이 새롭고 위대한 시간을 맞이하게 해줄 거다.'라는 확신. 히틀러가 정치 장면 전체를 실질적인 저항도 없이 깨끗이 청소해버리고, 자신의 대열 밖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에 맞서 저항하거나, 계획을 무산시킬 사람이 없는 상황을 만들도록 해준 것은 바로 이런 분위기였다." (P 228)


저자의 이런 견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책임을 독일민족보다는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이나 상황에 돌리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역사상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이런 시대적 흐름이나 분위기에 빠져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도이치 제국의 성립과 몰락,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패전으로 인한 독일의 혼란과정들을 읽으며, 지금의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다. 몇 십년 후 역사는 이 시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 정부가 들어서고, 몰락하는 과정에서 과연 지도자 한 사람의 책임나 국정을 문란케 한 몇 사람의 잘못만을 지적할까? 아니면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혀 집단 광기에 빠져 열광했던 우리들의 잘못을 지적할까? 읽는 내내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곱씹으면서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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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이야기 -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사이먼 하비 지음, 김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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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해적이야기가 단골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캐리비안 해적]과 같은 영화가 흥행을 하고, 최근에는 블랙세일즈와 같은 해적 이야기의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말을 타고 몽골 초원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DNA가 남아 있다면, 미국과 유럽인들에게는 대서양이나 카리브해를 누비던 항해가나 해적의 DNA가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대항해시대로' 알려져 있는 15세기에서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면, 당시 해적들이 일반인들과 쉽게 거래를 하고, 주변의 항구에 정박해 생활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국가와 연합애서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해적이란 범죄집단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밀수 이야기]라는 책을 읽으며 당시의 배경과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밀수이야기]는 포르투칼과 스페인의 지리적 발견으로부터 시작해서, 대항해시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밀수가 어떻게 세계역사와 경제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밀수를 단순히 몇몇 개인이나 집단의 범죄행위로 보기 전에, 밀수가 얼마나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비록 대항해시대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밀수에 '낭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 시대의 분위기를 이야기한다.


처음 밀수는 지금의 보호무역주의에 대립하는 자유무역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역사성 처음으로 대서양의 패권을 잡은 나라는 포르투칼이었다. 당시는 인도에서 수입하는 향신료(주로 후추)의 무역이 성행했는데, 이 항신료는 수입하고 항로를 확보하는데 가장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포르투칼 왕 마누엘이다. 그는 그의 업적때문에 '식료품의 왕(Grocer King)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마누엘의 업적으로 인해 포르투칼의 제일 먼저 인도양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향신료의 항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자신들 외의 무역을 모두 밀수로 치부해 버렸다. 당연히 이해 대항하여 독자적으로 밀수를 행하는 세력들이 생겨났다.


그 후 스페인이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카리브해와 대서양의 지배자로 떠오른다. 스페인 역시 스페인에서의 독점적인 무역권을 주장하면서, 자신 외에 거래를 밀수로 취급한다. 스페인은 강한 함선들과 요새를 통해 이런 독점적인 무역권을 굳건히 한다.


이때 유명해진 인물이 '존 호킨스'와 '프랜시스 드레이크'라는 해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드레이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영화나 책을 통해 많이 접해 본 적이 있다. 해적이면서도 엘리자베스 여왕과 협력해서, 계속해서 스페인의 무역로를 공격했고, 결국에는 영국함대와 함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인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드레이크의 사촌형으로 알려진 호킨스에 대해서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당시 스페인은 영국을 비롯한 각국의 해적으로부터 카리브연안을 지키기 위해 메넨데스라는 제독을 임명했었는데, 그의 뛰어난 전술에 맞서 호킨스는 카리브 연안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며 밀수를 행했다.


이런 상황은 동인도제도나 남중국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의 밀수품의 품목 중 가장 값진 것은 향신료였는데, 특히 지금의 몰루카 제도가 향신료의 가장 큰 생산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이 지역에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이곳 역시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밀수꾼들의 끊임없는 탐험지였다.


결국 당시의 밀수는 포르투칼이나 스페인, 네덜란드 같이 해상무역을 선점하고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나라들에 맞서 해상무역의 후발국가들이 추구하던 자유무역적인 방식이 강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물론 밀수가 항상 이렇게 낭만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밀수로 인해 피해는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편과 관련된 중국시장이었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은 중국에 끊임없이 아편을 밀무역했고, 나중에는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중독되었다고 한다.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정부가 아편 밀매를 금지하자, 영국이 함대를 일끌고 아편 배들을 보호하며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아편전쟁이다. 이것은 국가가 밀수를 이용해 국가의 부를 채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외에도 밀수를 통해 문화재를 가져오는 사례도 언급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시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들을 통해 프랑스와 미국에 주요 문화재들을 약탈 당한 사건이 있다. 이 책에는 근대에 서구에 의해 중동과 아시아, 남미 등에서 광범위한 문화재 밀수가 행해졌으며, 심지어는 유명한 작가인 앙드레 말로까지 그의 부인 클라라와 함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물을 가져오는 일에 가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문화제 밀수를 범죄라기 보다는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로 보았던 왜곡된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후반에도 이 책은 현대에도 얼마나 밀수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지를 언급한다. 특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다이아몬드 밀수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시에라리온과 같은 나라에서는 품질 좋은 다이아몬드가 생산되고, 이것을 놓고 내전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시 다이아몬드가 무기와 거래가 되고, 내전이 더 심각해진다. 이렇게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는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악명이 붙어서 밀수를 통해 유럽과 미국의 부유층들에게 판매가 된다.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밀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딱딱하게 세계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처럼 재미있게 글을 쓰며 세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러 방면을 이야기하다보니 세계사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시간이나 장소순서로 나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 중에 시간이나 장소, 인물들이 수없이 나열되다 보니 조금은 집중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밀수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사와 경제사를 바라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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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7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7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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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전세대가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란 세대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할 때는 이미 베트남 전쟁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가 훨씬 전에 끝났지만, 초등학교 내내 방공교육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비극 등을 귀에 못이 밖히도록 들었다. 특히 킬링필드는 하루 수업을 빼먹고라도 전교생이 봐야 하는 방공영화의 명작?이었다. 그 후 자라면서 뉴스를 통해 동유럽이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 통일이 되고, 고르바초프와 옐친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해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과 옐친 시대의 러시아의 군부 구테타 과정을 거의 생중계에 가깝께 텔레비젼으로 시청한 것이다. 특히 열친에 대한 소련 군부 세력의 쿠데타 시도는 고등학생의 시기임에도 매우 관심있게 보았다. 뉴스를 통해 소련의 구데타 과정을  보면서 다시금 냉전체제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구테타가 진압되는 과정을 뉴스를 통해 그대로 보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나이에 세계 정세에 이처럼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지금의 나도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이런 세계정치의 관심으로 인해 이번에 레디세고 출판사에서 출간한 [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파스칼 보니파스'라는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 소장이 1945년부터 지금까지 현대세계의 변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의 세계라는 3부로 구성되어 있고,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어떻게 냉전체제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붕괴되었는지를 통해 현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심도있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1부 냉전에서는 독일의 패전처리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세계질서가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이고, 제대로 힘을 구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소련뿐이었다. 물론 미국은 당시 핵무기를 통해 소련보다 훨씬 우위의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을 통해 미국은 소련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 이것은 소련이 전후 동유럽과 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 과정을 스탈린의 날카로운 판단과 루스벨트의 안일한 판단의 결과로 본다.


전쟁이 끝나기 전, 독일의 진군에 충격을 받은 스탈린은 소련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위성국을 이용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스탈린은 유고슬로비아의 지도자 티토와 그의 보좌관 질라스에게 "이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 양상이 다르다. 영토를 가진 세력이 그들 고유의 사회적 시스템을 강요하게 된다. 각 세력은 군대가 앞으로 나아간 거리만큼 자신들의 체제를 심을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그러나 루스벨트는 스탈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 교섭 상대자가 소비에트의 지도자를 독재자로 묘사하자, 루스벨트를 이렇게 반박했다. "나는 스탈린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고 미고 있소,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처럼 만약 내가 그에게 대가 없이 어떤 것을 준다면 그는 어떤 영토이든 합병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이 오도록 나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이오." - P 20-1


루스벨트의 이런 안일한 판단의 결과는 동유럽의 대부분, 더 나아가 그리스와 터키까지 소련의 영향을 미치게 했고, 그 후 프라하의 봄 사태와 같이 동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학살과 철권 통치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울러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쳐 남북이 북단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혼란기에는 누가 더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과감하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후에 이어지는 체제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전후 소련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미국은 핵무기를 통해 한동안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곧 핵무기를 개발하고, 영국과 프랑스까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에 빠지게 된다. 결국 냉전체제는 핵전쟁의 공포 속에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대 세력이 서로를 견제했던 시기이다.



2부 데탕트에서는 이런 냉전체제가 부드럽게 변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데탕트는 냉전체제의 붕괴가 아니다. 저자는 데탕트가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핵확산의 방지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같아지면 가지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서로 대화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 과거의 극단적인 대립이 누그러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데탕트 시기에도 위기는 발생햇다. 대표적인 것이 쿠바의 미사일 위기이다. 원래 민족주의자였던 쿠바의 카스트로는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에 대항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미국의 위협에 맞서 소련을 끌어들이고,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소련은 쿠바에 핵 미사일 설치한다. 원래 미국은 유럽에 핵무기를 배치함으로서 소련에 직접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었던데 반해 소련은 당시 기술로 소련 본토에서 미국에 직접적인 핵무기 위협을 가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쿠바 사태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결국 케네디의 결단으로 이 위기가 타계된다.


 

 


비록 쿠바 위기에서 미국이 소련의 양보를 받아냈지만, 그 후 데탕트 시대에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서 여러 전쟁과 대립에서 계속해서 손해를 보게 된다. 반면 소련은 인도차이나반도나 남미,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등에서 자신의 세력을 펼치게 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강한 미국을 다시금 주장하게 된다. 그 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 정책으로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3부 양극화 이후의 세계에서는 소련의 붕괴 이후에 평화로운 세계질서의 가능성이 걸프 전쟁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걸프전쟁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경제적 위기를 맞은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생했다. 레이건 이후 강한 미국을 주장하고, 소련 붕괴 이후 세계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며 걸프전쟁이 발발한다. 이 전쟁이 결국 911테러까지 이어지고, 세계는 아직도 혼란 가운데 있다. 특히 이런 지정학적인 전쟁 위협과 함께, 2000년대에 이르러 금융위기까지 발생하면서 세계정세는 한층 더 불안해졌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다시금 민족주의자인 푸틴이 정권을 잡으며 세계평화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상황이다. 저자는 은연 중에 고르바초프의 양보가 서방, 특히 미국의 경제적인 보상을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가 다시금 옛소련의 향수 속으로 들어갔음을 이야기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고르바초프를 도울 준비가 돼 있었다. 두 나라는 고르바초프를 동서 대립의 종말을 가져온 결정적 인물로 인정했고, 파트너로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평가받는 보리스 옐친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두 인물의 판단에 있어 정반대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전략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상상 가능한 모든 이익을 챙겼다. 고르바초프이건 소련이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런데 굳이 공산주의 체제 유지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무엇을 더 억을 게 있다는 말인가? 미국은 대립이 끝났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경쟁관계는 여전하다고 봤다. 소련이 공산주의 국가이건 아니건 영토의 규모나 그들의 소유하고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봤을 때 경쟁자로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 소련에 왜 선택의 여지를 남긴다는 말인가? - P 247-8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정까지는 아직 다루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과정에서 전개되어 갈 가능성이 크며, 우리나라는 또 다시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봐야 되는 상횡이 될 수 있고 생각한다. 남중국해 문제나 사드 문제가 이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요한 방향을 가르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1945년에서부터 현대까지 지정학적 관점에서의 냉전체제의 형성과 붕괴 과정을 매우 쉽게 표현하고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세계정치의 흐름을 지도와 저자의 명쾌한 설명으로 흥미롭게 이어가고 있다. 현대 세계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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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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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를 알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의 일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의 역사를 통해 조금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해서일까? 과거 실패를 통해 다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지 않고, 반대로 과거의 성공을 통해 조금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지만 역사를 통해 그런 시각과 판단력을 기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마치 조각 퍼즐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진리를 어떻게 현대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나온 책이 있다. 일본인 저자 '사토 마사루'의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이다.
 
이 책의 저자가 역사를 기술하는 가장 큰 목적은 '아날로지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아날로지란 비슷한 사물을 연관해 내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을 역사에 적용하면, 현재의 어떤 사건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연상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닮아 있다면, 과거의 사건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사건을 조금 더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을 독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정리해 해설하고자 한다. 통사적인 접근으로 세계사를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사를 통해 아날로지적인 관점을 기르기 위한 책이다. 아날로지란, 비슷한 사물을 연관해 사고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아날로지적인 사고가 중요한 이유는, 이 사고 방법을 체득하고 있다면 미지의 사건과 맞닥뜨렸을 때도 '이 상황은 과거에 경험했던 그때 그 상황과 흡사하다'라는 판단과 함께 대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4-5


 

저자가 현대를 독해하기 위해 제시하는 역사의 큰 주제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제국주의'이다. 저자는 현대를 과거의 제국주의에서 이어진 신제국주의 시대로 본다. 결국 과거의 제국주의와 신제국주의는 닮아 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발전했다. 자기 국가의 자본을 지키고 팽창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무력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2차례의 세계대전이 발생했다. 신제국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소련의 붕괴 이후, 이제는 이념보다 자본이 세계를 지배한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도 서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저자는 과거 제국주의의 전쟁 위험이 현대의 신제국주의 안에서도 존재한다고 본다. 이것이 제국주의라는 키워드로 세계를 읽는 작가의 아날로지적인 사고이다.
 
두 번째는 '민족주의'이다. 저자는 제국주의를 통해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 자신의 국가를 강하게 하기 위해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이 강조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내셔널리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통일된 언어나 문화, 종교 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제국주의하에서는 국가 주도의 통일성을 강조하게 되고, 타민족을 압박하게 된다. 이것을 관주도 내셔널러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관주도 내셔널리즘은 양날의 검이다. 이를 통해 통일국가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타민족의 반발을 일으켜 나라가 분열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상황이 근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로이센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헝가리와 체코 등 다른 민족들에게 독일어와 오스트리아의 민족성을 주입시켰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헝가리와 체코가 독립하게 된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구소련과 중국, 심지어는 일본 내에서도 이런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세 번째는 '종교'이다.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 두 종교의 공통점을 민족성보다 세계종교에서 찾는다. 기독교나 이슬람은 민족성보다는 자기 종교를 통해 세계 통일을 꿈꾼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의 EU와 이슬람의 IS이다. 이들은 민족국가보다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적 연맹을 꿈꾼다. 결국 종교와 민족주의는 적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통치자들은 이것을 교묘히 이용해 제국 내의 종교성을 억압하거나, 민족성을 억압하는데 사용했다. 현대의 종교분쟁은 민족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겼다. 반대로 저자는 현대의 민족적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한 종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역사의 전쟁과 사건 속에서 저자는 그것들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줄기를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과거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종교가 지금 현대 역사까지 이어지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본다. 결국 이 세 가지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현대에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인 역사학자가 이처럼 넓고 객관적인 역사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아베 정권의 편협한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세계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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