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 (양장)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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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한 인물에 대한 인상이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내게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소설 속의 두 인물이 있다면,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 [태백산맥]의 김범우라는 인물일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는 여린 심성에도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이 되겠다는 신념으로 노파를 살해한다. 그리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며 내면의 싸움을 싸운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선악의 싸움을 느낄 때마다 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생각이 났었다. 라스 콜리 니코르가 내면에서 싸움을 싸우는 인물이라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라는 소설 속의 김범우라는 인물은 외부에서 극단적인 좌우익과 치열한 싸움을 싸우는 인물이다. 해방정국에 모두들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나 민주주의자가 될 때, 김범우는 자신만의 신념으로 민족주의의 길을 걷는다. 결국 두 세력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으로 나누어져 서로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 그럴 때면 나는 김범우라는 인물이 생각난다.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보다 국가와 사람이 중요할 텐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태백산맥]이란 책은 벌써 20년도 넘은 시절에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역사 소설의 황금시대였고, 특히 10편짜리 역사소설들이 인기를 끌었었다. 그중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후에 출간된 [한강]같은 작품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흔히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좌편향적인 시각에서 해석할 때가 많다. 그로 인해 작가나 작품 역시 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태백산맥은 결코 한쪽의 시각에서 치우친 작품이 아니었다. 작가는 양극단적인 염상진이나 염상구와 같은 인물들 속에서 민족주의자인 김범우란 인물을 통해 해방과 6.25로 이어지는 혼란 시기에 우리가 가야 했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의 길이었다. 작가의 시각은 결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모두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와 한민족을 유린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민족끼리 중심을 잡고 역사를 헤쳐나가야 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너무도 끔찍한 역사의 비극들이 일들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소설의 시작은 해방정국에서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난 전라도 벌교의 혼란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벌교에서 공산주의자로 잠입해 있던 염상진이란 인물이 그를 따르는 정하섭이나 하대치와 같은 인물들과 함께 여순 반란 사건에 참여해 벌교 지역을 장악했다. 그러나 진압군이 들어오자 염상진과 일행들은 지리산 쪽으로 도주를 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벌교라는 지역과 그 지역에 사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해방 후에 한국 사회가 거쳐야 했던 좌우익의 극한 대립과 혼란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김범우라는 인물을 통해 모두들 양극단으로 치우칠 때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런 시각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은 바로 김범우가 한때 김범우의 집안의 머슴이었던 문 서방과의 대화이다. 여순 반란 사건이 터지자 김범우는 문서방 집으로 피신을 하고, 문서방은 읍내의 상황을 김범우에게 전달해 준다. 이 과정에서 문서방은 땅을 공짜로 준다는 공산주의자들의 말에 혹해서 김범우에게 묻는다.

"긍께 말이요, 염상진인가 위원장 동무란가 허는 사람이 말하기를, 지주덜 전답을 싹 다 빼앗갖고 소작인덜헌테 골고로 골로로 갈라준다고 혔다는디, 고것이 참말이었을께라?"

그러자 김범우는 이런 공산주의의 허구를 쉽게 이야기 해 준다.

"문 서방, 문서방은 문 서방 이름으로 된 땅을 갖고 싶지요?"
"하먼이라, 살아생전에 안 되먼 저승에 가서라도 풀고 잡은 소원인디요."
"그럴 테지요. 만약 그 소원이 풀려 열 마지기쯤 논이 생겨 농사를 지었는데 그 쌀을 몽땅 빼앗긴다면 어떻게 되겠소?"
"워메 워메, 그럴라면 염병헌다고 농새를 지어라?"
"그렇지요, 농사지을 필요가 없지요. 그럼, 쌀을 그냥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다 나라에 내놓고 배급을 타다 먹으면 어떻겠소?"
"미쳤간디요? 지가 진 농새 죽이 끓든 밥이 끓든 지 손으로 간수하는 맛이 살제 무신 초 친 맛이라고 배급을 타다 묵어라. 동냥아치도 아니겄고, 그런 농새도 안 지어라."
"그런 농사도 안 짓겠다면, 그럼 이런 것은 어떻겠소? 그 누구의 명의도 아닌 수백 마지기 논에 공동으로 동네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정해진 양을 배급 타먹는 것 말이요."
"허어, 갈수록 태산이시웨. 아, 니 것도 내 것도 아닌 논에 그눔의 농새 자알 되야묵겠소. 쎄 빠직 일헐 눔 하나또 웂을것일께 가실허고 나먼 쭉징이만 수북헐 농새 지나마나 아니겄소?"

그렇다고 작가가 단순히 공산주의자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해방정국의 혼란을 묘사하면서 친일파들이 공산주의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다시금 정권을 잡고, 한때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해방정국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지주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땅을 넓히고, 소작인들은 계속해서 그런 지주들에게 학대를 당하면서 속에 분노를 끓고 있는 모습들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이런 배경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해방정국에서의 광기이다. 양극단으로 치달아 서로를 죽여버리려는 광기를 공산주의자와 민주주의자가 서로를 학살하는 장면을 통해 그래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소설적인 재미가 있다. 역사소설의 매력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흘러가는 소소한 스토리일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역사소설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반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태백산맥에는 바로 그런 소소한 이야기가 있다. 인생들의 굴곡진 삶들이 녹아있다. 그래서 이 책이 계속해서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배경에서 어느덧 7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광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한다. 서울에서의 웬만한 아파트값은 10억이 가는 상황에서, 한 채가 아닌, 여러 채를 늘려 가며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조금만 부의 균형이나 복지를 이야기하면 모두 공산주의 사상으로 매도를 한다. 반대편에서는 치솟는 전셋값과 월세값을 감당하지 못해 계속해서 외각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가진 자들은 모두 적폐 세력이 된다. 이런 극단적인 대립이 계속될수록 사회는 불안해지고, 해방정국과 같은 혼란스러운 세상이 된다. 마치 [태백산맥] 속의 해방정국이 그대로 오버랩 되는 상황이다.

 

자기 것을 조금 양보하고, 서로를 조금 더 생각해 주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결국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김범우와 같이 양쪽으로부터 비난과 배척을 당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20년 만에 읽은 태백산맥의 현실이, 20년 전이나 바뀐 것이 없는 지금 현실과 너무 비슷해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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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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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은 환경에서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신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직장을 퇴직하고 용돈벌이라도 할 겸 건물 청소 일을 하게 되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러 갔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건물 관리인이 있고, 그 관리인 밑으로 라인들이 있고, 이런 라인들을 잘 타고, 관리인에게 잘 보인 사람은 편안하고 좋은 곳을 청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험하고 힘든 곳을 청소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사소하게 부딪히는 시비와 갈등들을 견디지 못해 얼마 일하지 못하고 관두게 되었다고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씁쓸하게 말을 하셨다.

겉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는 곳도 막상 들어가서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다툼이 있지 않을까? 반면 그런 얽힌 인간들의 모임들에 나름 따스하고 사사로운 정들도 있지 않을까? [조선통신사]라는 소설은 어쩌면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조선통신사로 알고 있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건너간 500명의 통신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때는 조선의 중흥기로 불렸던 영조 말년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금주령을 내리면서 엄한 국법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당연히 통신사들 역시 엄한 국법이 존재하고, 기강이 서 있다. 그러나 500명의 무리에는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다 모여 있다. 인솔자인 정사 조엄이나 부사 인임배 조사관 김상익과 같은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로 서얼 출신의 문사들이나 중인들인 통역관들, 군관들, 그리고 각 사람들의 종, 격군, 군사, 소동들까지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모여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잡다한 무리들이 부산에 모여서 일본을 다녀오는 332일의 이야기이다. 얼핏 왕이나 암투, 반란,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 등이 빠진 역사소설이어서 밋밋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위나 아래 없이 그곳만의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도 권력싸움이 있고, 소소한 정이 있고, 갈등과 화합이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매우 해학스럽게 다루고 있다. 읽노라면 어떤 역사소설 못지않게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는 이야기이다. 500명의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고 통솔해야 하니 얼마나 일이 많을까? 마치 [주만치]라는 영화에서 하나의 장난감 퍼즐에서 밀림의 수많은 동물들이 튀어나오듯이,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라는 한 문장 속에서 잡다한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지도자인 정사 조엄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일행은 갑자기 모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소, 군대 장사들은 마음과 힘을 한 가지로 의지하오, 우리 행차는 명색이 가닥이 많고 지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소, 까마귀 떼와 무엇이 다르겠소? 그 5백인을 통솔하기는 실로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기보다도 벅찰 것이오." (P 18)

조엄의 예언처럼 떠나기 전부터 사건사고가 많다. 사람들을 채우고, 물건을 나르고, 그 과정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조엄의 몫이지만, 역시 벅차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통신사의 문사인 원중거와 선장의 다툼이다. 조선 후기 문사들을 대부분 서인이었다. 원중거는 작은 벼슬을 한 중인이었다. 나름 자부심과 서인에 대한 열등감이 똘똘 뭉쳐 있다. 그것이 계속해서 분란을 만든다. 역관이 중인들이 무시를 했다고, 이들의 비리를 파헤치려다가 통신사 행령 안에 큰 분란을 만들 뻔한다. 다행히 조엄의 중재로 무마된다. 그러나 또다시 선장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서 무리를 이탈한다. 함께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다른 문사들까지 움직이면서 일이 커진다. 작은 무리 안에서도 치열한 위치 싸움이 계속된다. 어쩌면 세상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할까?

일본에 가서도 일이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종놈들은 일본인이 선물해서 자신들을 덮고 자게 한 이불을 가져가겠다고 데모를 하고, 지진을 만나기도 하는 둥 크고 작은 일이 계속 벌어진다. 심지어 일행 중에 한 명의 일본인에 의해 암살까지 당한다. 이렇게 온갖 사건들을 담으며 그들은 조선 땅으로 돌아온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당시의 조선 후기 시대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만큼 작가가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는 내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해학이 읽는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문의 말투와 예전의 단어들이 사용되지만, 이 또한 읽다 보면 금세 적응이 된다.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읽고, 고심했는지가 소설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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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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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역사와 인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네이버 캐스트에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즐겨 본다. 그중에 관심을 끌었던 연재는 파워라이트 ON에서 연재되던 경철 교수의 '서양 근대 인물열전'이었다. 근대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와 배경,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럽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연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라는 책이다.

주경철 교수는 서양 근대 역사에 매우 권위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사실 근대 역사라기보다 중세 역사에 가깝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세 말엽 정도가 될까? 근대의 영향을 미치는 유럽의 절대왕권과 그로 인한 민족국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또 콜럼버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터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근대의 문을 열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두 8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네이버캐스트에서 연제 되던 인물 중에서 빠진 인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카트린 드 메디시니라는 인물이 빠진 것이 가장 아쉽다. 인터넷 연재에서는 이 부분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이다) 앞의 네 명의 유럽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고(잔다르크는 좀 애매하지만, 그녀 역시 프랑스 왕실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이 인정되는 인물이다), 뒤의 네 명은 근대 문명에 기여를 한 인물들이다.


 


 

이 책의 제일 먼저는 잔다르크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잔다르크 편과 다음 부분의 부르고뉴 공작 편을 읽으며 프랑스와 영국의 왕실의 복잡한 계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영국의 영토들이 많이 있었고, 이로 인해 100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인 샤를 7세(아직 정식 국왕은 아님)와 영국 왕 헨리 6세는 프랑스 왕권의 정통성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왜 프랑스 왕이 영국 왕과 정통성 자리를 놓고 싸워야 하는가? 이것은 복잡한 유럽 왕실의 계보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유럽은 민족국가의 개념이 약했었고, 왕실들은 서로 결혼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기에, 다른 나라의 왕의 자손이 본국에서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뒷부분에서 나오는 카를 5세이다. 자세한 상황은 책에 있는 도표를 참조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샤를 7세의 정통성을 세워 준 인물이 잔다르크이다. 잔다르크는 우선 천사의 계시를 받고 왕과 싸워서 종교적 정통성을 세워준다. 또 오들레앙을 영국군의 포위에서 해방시켜 왕이 그곳에서 대관식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 정치적 정통성도 세워주었다. 그럼에도 후에 잔다르크가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샤를 7세의 행동을 보면, 아마 잔다르크는 샤를 7세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2장의 브로고뉴 공작들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당시 유럽에서 절대왕권이 생기기 전에 프랑스에서 가장 세력 있는 영주가 브로고뉴 공작이었고, 이들은 프랑스 동쪽 지방과 독일의 서쪽 지방 대부분을 다스리고 있었다. 브로고뉴 공작들은 대대로 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했으나 마지막 브로고뉴 공작인 담대공 샤를 1세와 프랑스와 루이 11세의 전쟁에서 브로고뉴 공작이 패함으로 국가 건립의 꿈은 모순된다. 저자는 만약 이때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면 지금의 유럽 판도는 달랐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브로고뉴 공작의 땅들은 마지막 상속자인 '마리'라는 여성에 상속되고,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언 1세와 결혼한다. 그리고 그 땅들은 후에 샤를 5세에게 대부분 상속된다.

중세 유럽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마 신성로마제국일 것이다. 이 신성로마제국의 가장 유명한 황제 샤를 5세의 이야기는 3장에서 언급된다. 그는 상속을 통해 지금의 에스파냐 영토와 앞에 언급한 브로고뉴 공작의 땅들, 그리고 기존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땅들과 이탈리아의 땅들까지 모두 물려받는다. 지금으로 봐도 대제국이지만, 문제는 그 땅들이 모두 분리되어 있고, 각 지역마다 고유의 제도가 있었기에 통일왕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럽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독특히 했고, 특히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막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의 통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분주하게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잘 알려진 헨리 8세의 호색과 폭군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호색한이자 폭군이 근대 영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뒤의 인물 이야기 중에서는 역시 코스테스와 말린체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흔히 잉카제국의 학살자로 알려진 코스테스에게 사실은 그를 도운 원주민 말린체라는 여성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 남미인들은 말린체를 반역자처럼 여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도 사연이 있고, 그 사연에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단지 유럽 역사나 그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을 이야기할 뿐 아니라, 그 인물들이 가졌던 고뇌나 갈등들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매우 공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제국을 위해 분투했던 샤를 대제의 고민이나, 구원에 대한 불안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공감을 가지게 했다. 책을 통해 이미 사라진 인물들의 삶과 내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고, 이 책이 그런 흥미를 가져다 줌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이후에 출간될 본격적인 근대 편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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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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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꿈을 꾼다. 백마 탄 멋진 왕자를, 아름다운 궁정과 같은 집을,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질 로맨스를...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소녀들은 이렇게 꿈을 꿀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런 로맨스는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삶은 장미 빛보다 진흙 빚을 닮아 있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진흙 빛 속에서도 장비 빛을 피워내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그래서 삶은 살아간다고 표현하지 않고, 살아낸다고 표현하는 것 아닐까.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내 계획과 다른 현실 앞에서도 그 삶을 억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이기며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 있다. 요즘 드라마로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임당 빛의 일기]의 원작 소설이다. 우리는 흔히 사임당을 생각하며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아홉 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조선의 천재로 불리는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로만 생각한다. 특히 시와 서화에 능한 고귀한 여인의 이미지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사임당을 굴곡진 삶을 산 영인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먼저 현대의 지윤이란 여성을 이야기한다. 지윤은 일류 대학의 강사이면서, 정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여인이다. 출세 가도를 달리는 남편과 자식과 며느리, 손자 자랑에 바쁜 시어머니, 그리고 너무나 똑똑하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아들을, 지윤에게는 모두 것이 버겁다. 특히 그녀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 학계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민 교수의 밑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민 교수가 새로 발견한 안 겸의 [금강산도]라는 작품을 진품으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다가 학계에서 매장을 당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사임당의 일기를 발견하고, 그 일기 속에 숨겨진 금강산도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현대의 지윤과 과거의 사임당의 삶이 반복되며서 진행된다. 사임당은 어린 시절 시와 서화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조선의 천재 화가 이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임당이 쓴 시가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간신들의 눈에 거슬리면서 그 화를 당하게 된다. 사임당은 그 화가 이겸에게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별 볼일 없는 이원수라는 사람과 결혼한다. 소설이며 드라마에서 이원수라는 인물이 너무 형편없이 묘사되어서, 실제 이원수라는 인물이 알았다면 몹시 기분 나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결국 사임당은 항상 사고만 치는 남편과 네 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한양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이제 그녀에게 삶은 아름다운 장미 빛이기보다는 진흙 빛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삶을 당당히 살아가며 빛으로 바꾸어 간다.

"울먹이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임당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다. 삶이 참 어렵다. 매 순간 풀어야 할 문제 같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기에 버틴다.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딸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안정을 되찾는다. 눈물이 그치고 기와집 담장에 피어 있는 분홍빛 패랭이를 보며 웃어본다. 북평촌에서 보던 꽃을 낯선 땅에서 보니 더욱 반가운 것이다." (P 189)"



그리고 이런 사임당의 일기를 보며 지윤 역시 무너져 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지윤은 사임당 일기를 가방에 집어넣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방금 읽은 사임당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사라지고 나앉게 생긴 처지가 마치 자신의 일 같았고, 사임당의 셋째 아들 현룡은 하는 말이며 행동이 꼭 은수 같았다. 어디서 뭘 하는지, 일만 저질러놓고 사라진 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지금의 민석과 닮아 있었다." (P 190)



소설은 또 한때 사랑을 약속했으나 서로 다른 길을 가며, 멀리서 서로만을 바라보는 이겸과 사임당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임당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 이유를 몰라 20년 동안 파락호로 살던 이겸은 다시 사임당을 만나며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사임당의 아들 현룡을 조용히 후원한다. 이 과정에서 사임당을 적수인 민치겸과 휘음당과도 대결을 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내내 이루어지지 못한 사임당과 이겸의 사랑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현실을 긍정하고 그 현실을 살아내는 삶에 대한 사임당의 열정이 느껴졌다. 아직 상편만이 출간되어서 하편은 읽지 못했지만, 하편에 이어질 휘음당과의 대결과 밝혀질 금강산도의 비밀들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현실의 지윤은 또 그녀의 버거운 삶을 어떻게 이겨낼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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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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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CTV의 백가강단은 중국에서도 매우 알려져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나 인문학의 전문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어 유명한 강사들을 배출했다대표적인 강사가 삼국지 강의의 자오위핑이다. 고대 삼국지의 인물들의 통치와 전략을 현대 경영에 접목시켜 강의를 해 매우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서 위즈덤 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런 백가강단의 또 한 명의 인기있는 강사인 리산 교수의 [전국칠웅]이란 강의가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강의는 [춘추오패]라는 강의 뒤에 이어진 강의로 춘추전국시대 중 후반기인 전국시대 20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나라가 멸망 후 중국은 약 450년 간의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진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제후들과 귀족들이 스스로 왕으로 지칭하며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던 시기였다. 특히 전기의 춘추시대에 비해 후기의 전국시대에는 주나라의 황제를 섬기는 최소한의 규율마저 사라지고, 오로지 강자가 약자를 집어 삼키는 끔찍한 약육강식의 시대가 벌어진다. 이 중 가장 강대한 패권을 가진 7나라를 전국칠웅이라고 부른다.


전국칠웅의 나라의 왕들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유명한 인재들을 모으기도 하고, 정치나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강대국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자기독선과 욕심에 빠진 어리석은 왕들로 인해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시대에 최초의 강대국인 된 나라는 위(魏)나라였다. 위나라를 처음 강성하게 한 위문후는 인재들을 모으고, 군사조직을 정비해서 주변 나라들을 정비하며 강대국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을 인재들을 등용하고, 그 인재를 믿고 일을 맡기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그 예로 악양장군과의 일화를 든다. 위문후의 명령을 받아 중산국을 정벌하러 간 악양장군의 3년간의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위나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멋진 전공을 자랑한다. 그러자 위문후는 곁에 있던 신하에게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오게 한다. 그곳에는 3년간 악양을 비난한 수많은 글들이 쌓여 있었다. 결국 전방의 장군이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후원해 주는 후방의 왕의 역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아랫 사람을 믿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기도 하다. 이런 위문후의 리더십으로 위나라는 전국칠웅 중 초기에 가장 강력한 강대국이 되고, 주변 나라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뒤의 위무후와 양혜왕을 거치면서 위나라는 세력을 잃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왕이기도 한 양혜왕은 전국시대의 패왕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부모님대의 영광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요즘말하면 경험이나 실력도 없으면서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사업을 말아먹는 재벌 3세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시대에는 주요 3대 전쟁이 있었다. 계릉전쟁, 마릉전쟁, 장평대전이다. 이 중 계릉전쟁과 마릉전쟁은 주로 위나라와 제나라간의 싸움이었고, 모두 양혜왕때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패전으로 위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의 양혜왕은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겠다는 야먕으로 같은 위나라와 함께 같은 3진으로 불리는 형제국가인 조나라와 한나라와이 연합을 깬다. 그리고 동쪽으로 눈을 돌려 약소국인 동쪽 나라들을 점령해 간다. 이 과정에서 조나라와의 갈등이 생기고, 결국 조나라의 구원 요청으로 당시 힘을 키우고 있던 제나라가 참전을 한다.


당시 제나라에는 우리가 손자병법으로 잘 아는 손빈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략으로 두 커다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릉전쟁에서는 위나라 장군 방연과 위나라 태자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그로 인해 위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그후 잠시 제나라가 위세를 떨치다가 동쪽의 진나라가 법가 사상가인 상앙의 개혁을 통해 강대국이 된다. 그리고 제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이라는 곳에서 전국시대 최대의 전투를 벌인다. 후에 장평대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조나라 왕 조효성왕은 무리한 승리 욕심에 전장에 있는 노장인 염파를 불러들이고, 전공에 대한 욕심으로만 가득찬 조필을 내보낸다. 조필은 승리의 욕심에 염파가 2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방어진을 나가서 진나라를 공격하다가 포위를 당해 전사한다. 그리고 진나라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 시킨다. 이 장평전쟁을 통해 진나라를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고 후에 전국을 통일한다.



왕이 통치하는 고대국가에서 제왕의 리더십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뛰어난 재상이나 장군이 있었도, 그 재상이나 장군을 믿어주고 사용하는 왕이 없다면 그들은 재능을 발휘 할 수가 없다. 뛰어난 염파 장군을 불러들인 조나라의 조효성왕의 경우가 이것이다. 결국 이렇게 옹졸한 왕의 잘못된 리더십의 피해는 백성들이 그대로 지게 된다. 장평대전에서의 희생된 40만 군사와 백성들은 한 사람의 잘못된 리더의 오판으로 인한 희생양이기도 하다.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허황된 욕심과 간신들의 감언이설에 빠진 지도자들의 실정은 모두 백성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이 책은 전국시대의 흐름과 왕들의 통치과정, 전쟁의 진행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딱딱한 인문서나 경영서와는 달리 흥미로운 전국시대의 역사와 전쟁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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