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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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가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 상대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무작정 주먹을 날린다. 그 대가로 망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지만,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그는 계속해서 상대를 향해 달려든다. 상대는 차츰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공포까지 느낀다. 그럼에도 상대는 그를 꺽어 놓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했던 일본과 그 일본을 응징해야 했던 미국의 상황이 아닐까?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으로 돌진했을 때 과연 일본은 스스로도 미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일본제국 패망사]라는 책은 열자마자 그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본의 광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번역되기 전부터 [THE RISING SUN]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평양 전쟁에 관심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번역이 되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분량과 막대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끓어오르는 기점이 되는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페이지만 무려 1400페이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그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일본은 잔혹한 군국주의의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책장을 열고 처음 접하는 사진들은 태평양 전쟁의 잔혹한 사진들과 일본의 광기 어린 군국주의의 사진들이다. 그리고 바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폭주하는 1936년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과정은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여러 번 접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태평양 전쟁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물론 저자인 '존 톨런드'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무모한 팽창주의를 지적하면서도 시종 일본에 우호적인 필치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일본이 왜 그렇게 무모한 전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매우 세밀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서양인은 도조 장군과 일본 지도자들이 히틀러나 그의 군대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마땅히 무슨 벌이든 받고 불행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일본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재난에서 벗어나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다시 존중받는 지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전쟁 중에 번번이 야만족처럼 행동한 나라와 그 국민을 우리가 어떻게 존중하고 칭찬하게 되었단 말인가? 대체로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이 책은 그런 의문과 함께 아시아의 지형을 바꿔놓은 전쟁을 둘러싼 물음들에 대한 필자의 답변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리고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P 37)

 

이 책의 1936년의 황도파로 불리는 육군의 젊은 장교들의 반란 사건(2.26사건, 또는 쇼와 유신이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시작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후, 나름 아시아의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유럽 열강들처럼 국제공항으로 인한 서민층들의 가난과 자원의 빈곤으로 인해 허덕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남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육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부폐한 관리를을 암살하고, 군인 중심의 군국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며칠 만에 무산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 일본의 핵심 권력은 대부분 육군 장교들에게 주어지고, 일본 안에는 군국주의적 야망이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알려진 베이징 근교의 일본군과 중국군의 충돌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겉으로는 아시아를 서구의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아시아 전체가 다 잘 살게 한다는 대동아 정책을 주장하며,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난징학살같이 30만 명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무자비한 폭력성이 존재한다. 아마 이것이 일본을 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일본의 지도부는 중일전쟁의 과정에서 적당한 선에서 중국정부와 전쟁에서 타협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의 맛을 본 일선 군인들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정도로 폭주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안정을 위협하는 두 가지 맹독 - 게코쿠조와 기회주의-이 다시 나타났다. 중국에서 또 한 번의 큰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육군대신 스기야마가 협상의 문턱을 높여버렸다. 그런 다음 중국 북부 주둔군 사령관이 예기치 않게 고노에와 참모본부의 특별 명령을 거스르고 베이징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 중략- 장제스가 진정으로 협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고노에는 평화를 위한 지름길을 택하고 '일본의 이상을 공유하는' 중국인들과 거래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1월 16일 그는 '제국 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을 중단할 것이며 협력을 원하는 새로운 중국 정권의 출범과 성장에 의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P 120)

 

그러나 폭주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일본은 중국에서의 철수를 결심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히틀러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가 무력화된다. 그러자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기는커녕 중국을 넘어 동남아 지역까지 욕심을 낸다. 저자는 이것을 일본의 기회주의라고 부르고, 이 작전을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의 전쟁이 1940년까지 질질 끌자, 일본 참모본부는 그해 안에 완전히 승리하지 못하면, 병력을 차츰 철수시키고 중국 북부에 공산주의를 막을 방어부대만 남겨놓기로 비밀리 결정했다. - 중략 - 히틀러의 손쉬운 승리에 도취된 일본군 지도부는 생각을 바꿔 '버스를 놓치지 말자!'라는 구호를 채택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석유 및 기타 절박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진격할 때가 다가왔다. - 중략-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한때, 중국에서 물러나는 것을 감수했던 일본군은 유럽에서 히틀러가 얻은 갑작스러운 행운에 유혹을 받고 동남아시아의 자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P 132)

 

물론 이렇게 파국으로 폭주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집단 광기 앞에서 이성적인 목소리는 쉽게 묻혀 버렸다.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을 입안한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고 예견하지도 못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자체의 생존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일본에게 인도차이나는 고무와 주석, 텅스텐, 석탄, 쌀 등의 자원이 넘치는 '길바닥에 놓인 채 누군가가 주워가기만을 기다리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 중략-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마쓰오카의 반발이 있었다. 또 대본영에서 생각이 더 깊은 사람들은 앵글로색슨 국가와 알력을 빚을 것을 예건 하기도 했다. 이 일로 육군 참모총장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황은 눈물을 흘리며 사직했다." (P 136)

 

이런 과정은 진주만 공습까지 그대로 반복되며 이어진다. 군국주의 집단들이 ABCD국가(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와 전쟁을 통해 태평양으로의 영토를 확대하려고 하고, 미래를 보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이에 제동을 걸려한다. 그러나 한 번 폭주한 군국주의자들은 결국 6척의 항공모함에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싣고 진주만을 폭격한다. 이 과정에서 도조 총리대신이나 야마모토 함장 같은 군구주의자들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주하게 되고, 결국 일본을 나락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폭주를 근원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하극상이라고 부르는 게코쿠조이다. 젊은 육군장교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 (할복의 형태로 자주 나타남) 폭주하고, 지도부나 정치인들은 마지못해 동조하는 과정이다. 흔히 말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에 올라타는 형식이다. 아마 지금의 일본인의 정서의 대부분에도 이런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다. 아베 총리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동조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회주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의 탐욕이다. 겉으로는 양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회만 되면 승냥이처럼 먹이를 향해 달려든다. 심지어는 그 먹이가 당장은 맛이어 보이지만, 독이 될 것이 분명해도 무조건 달려든다. 당장의 탐욕을 막을 집단적 이성이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주사변, 중일전쟁, 동남아 침략, 진주만 공습 등으로 일본 군국주의가 폭주한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으로는 매우 공손하게 보이지만,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승냥이처럼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동시에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 감추어진 본성을 이해하게 하는데 매우 귀중한 책이다.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에서 저자는 미국적인 시각에서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쓰고 있다. 아마 일본의 진짜 적은 미국이 아니고 소련이었고, 미국이 조금만 더 양보했으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신 일본이 소련을 견제했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현대 미국이 일본에 가지고 있는 시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대상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럼에도 저자는 나름 일본의 행동 근본에 있는 그들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자료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왜 그들이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깊이 있게 접근을 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데 너무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일 갈등이 극에 다다르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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