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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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극단과 기다림이 삶의 전부라고 말하는 두 자매가 나온다. 이건 초반이니, 자매의 가치관이 쭉 가게 될 지 어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관도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늘 선택에 강요 당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극단이 아니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니나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1930-1940년대 독일을 살았던 니나의 정신상태와 결정과 경험에서 오는 삐뚤빼뚤한 착란들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극단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는 의견이 때때로 더 옳게 보인다. 명확한 것을 안정으로, 불명확한 것을 불안으로 느끼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알레고리와 알고니즘, 추상성 속에 놓인 시대의 상처와 불안이 개인의 삶을 어찌 좌지우지하지 못하겠는가.

 

이제 믿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이 살아있는 증명이라는 것을. 대신 믿는다. 죽은 듯 고요한 삶 속에도 아니, 평온해보이는 심장 안에 요동치는 불꽃이 숨어있기도 한다는 것을. 니나는 모든 것이고, 니나를 탄생시키기에 그즈음 독일의 불안은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다름을 향해 그토록 처절하게 내달려왔으면서 차이를 알기 무섭게 상대를 쳐내는 교묘함. 고통과 격정이 살아있는 증거라면, 어째서 니나는 지금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왜 슈타인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인해 온전히 그에게 안기지 못하도록 만든 것일까.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내 인생은 그냥 사라지고 있으며 나는 살지 않았다는 불안감, 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영원히 내 인생은 작은 궤적 속에서 움직일 뿐이라는 불안감들입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한테서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 무슨 오만인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어>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언가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까봐 불안합니다. 그 무언가를 영원히 상실할까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pp.20-21)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던가. 사랑을 내려놓음으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 말하는 대신 침묵을 택하는 일, 묻기 전에 끙끙앓는 일, 니나처럼 뒤늦게 안 사실에 대해 이제와서 돌이키려 하지 않는 일 모두 용기로만 가능했다. 고전문학이 다 그렇지만 지독하게도 밑줄을 많이 그었다. 누구에게나 좋게 읽히는 책, 누구든지 좋다고 하는 책, 작가도 작품도 너무 유명해서 흠이 없는 책은 유난히도 태클을 걸고 넘어지고 싶은 법. 그래서 더 줄줄이 문단마다 밑줄을 아니 포스트잇을 붙여뒀을까. 붙이는 것도, 떼어내는 것도 모두 내 것이나, 붙이는 나와 떼어내는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삶이 불편한 사람은 니나를 보며 전후 불안에 미쳐버린 광기어린 여자의 하염없는 독백, 쓸데없는 하소연으로 일축할지 모른다. 니나의 갈구하는 삶 전부를, 그녀 안에 도사리는 불안과 광기와 체념을 감싸기가 벅차다. 그래, 이건 벅찬 일이다. 동시에 어린 날들 날 괴롭힌 모든 고민이기도. 어째서 내가 너로 인해서만 증명되나. 모든 화두를 풀지 못하는 숙제에 맞춰놓고 낑낑대다 날이 새도 그때는 두렵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못된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됐다. 그런 내가 요즘 데스노트를 쓴다. 없어져버려라, 쓰고나서 멈칫, 어쩔 땐 움찔, 그렇게 심장에 못을 하나쯤 박아넣는 기분을 느낀다. 피노키오 인형이 되어가는 고독을 맛본다. 흔들리지 않도록 꽝꽝 박혀버린 못, 스며들 수도 튀어나갈 수도 없는 불안. 불안 속에 더욱 또렷한 나의 존재감. 나는 불안으로만 존재한다.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p.101)

 

몸이 다 커버렸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망설임없이 니나를 만나야 한다.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힘 없는 승객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내 안에 무엇을 키우며 사는지 알고 싶다면 그래도 니나를 만나야 한다. 니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비로소 모든 것이 된 여자. 슈타인의 마음 속이나 언니의 삶의 지표에서도, 니나 자신의 의식 안에서도 모두 불완전함으로서 완벽해진 여자다. 니나는 사랑을 갈구하지만 곁에 가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재능을 타고 났지만 더 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고도 집시여인처럼 하염없이 헤맨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삶. 흔들림이 그녀를 뿌리째 털어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을 노래하는 건 시인만이 아니었나 보다. 늙은 남자 슈타인이 어린 여자 니나를 욕심낼 때 슈타인은 이러한 모든 니나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녀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하겠다는 뜻이다.

 

누가 누군가를 가질 수 있는가.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갖지 못한 건 니나였을 뿐인데 슈타인은 모든 것을 갖지 못한 것과 같다. 뿌리, 용기, 안정, 평온, 사랑이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많은 것을 가진다. 불안, 흔들림, 경이, 전율, 열망, 폭발하는 삶의 의미들. 척박한 삶의 빈틈으로 하염없이 스며드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퇴치가능한 불안이 아니었다. 훨씬 더 밑바닥에 존재했다. 소극적인 그의 사랑을 비웃을 수 없었다. 그를 홀대할 수도 없었다. 나는 완전한 절망을 원했다.

 

내 시가 형편없다면, 정말로 형편없어서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감상적이고 싸구려라면, 나 자신의 내부에도 감상벽과 싸구려 경향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야. 누구든 그가 쓴 것과 똑같아. 이걸 분리시킬 수는 없어. 만약 언니가 좀더 날카롭게 주의해 본다면, 모든 가짜를 꿰뚫어볼 수 있을 거야. 슈타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아.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 (p.119)

 

나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유혹 당하는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지, 인간적으로 매료 되는지 비교적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소용돌이 치는 느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알 것 같으면서 알 수 없어 다시 안달한다. 그래, 나는 안달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할 때 소용돌이는 얼마나 미치도록 안락한가. 여기도 저기도 아닌 곳이라던가. 숨을 곳과 증발할 곳이 있어 평온함을 느끼던 삶. 뽐내고 아는 체 하고 싶어 안달하던 삶.

 

나는 니나가 느끼는 감정과 니나의 삶,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니나처럼 살지 못하는 언니, 니나를 사랑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는 슈타인의 심장, 어느 한 곳에 놓이지 않는 수선화 같은 삶을 알 것 같다. 강처럼 흐르고 싶지만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는. 갖기는 싫고 남주기도 싫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원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어 고뇌하는. 모든 것들. 이름 없는 뚜렷한 것들.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영역의 중요한 혹은 사소한 일부분들. 무엇을 사랑했었나,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내 심장은. 내가 원하는 것과 이루어진 결과가 꼭 같아지는 날이 오기나 할까. 나의 질문은 공허한 공간을 떠도는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에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한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니나가 자신의 인간적인 영혼을 인식할 때까지 무슨 일이 더 일어나야 할 것인가? (p.123)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에 비교적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여자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감싸야 한다. 총소리, 숨소리, 한숨소리가 지배하던 땅이 있었다. 인종 싹쓸이가 위험한 이유는 숙청 자체가 아니라 남은 자들의 혼란 때문이다. 혼란. 대재앙. 홀로코스트. 테러. 척결. 땅과 지배 전쟁이 타당성에 골몰할 때, 니나는 내면에 귀기울임으로서 침잠한다.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는 더이상 이 땅에서 사람 답고 여자 답고 어른 답게 살지 못한다. 겪지 않고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버린다.

 

버림 받은 삶, 책임 지는 삶, 극단의 삶, 본능의 삶은 되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던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삶도 있지 않던가. 어떻게 나를 빼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인가. 편린으로 가득 찬 편협한 경험을 전체의 보편적 진리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좋아하는 것, 아는 것, 느끼는 것으로 어떤 영혼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살아가는 일이 벅찬 감동이라는 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영혼을 어느 누가 증명해 보일까. 만약 내 안에 이것들이 없다면 나는 어떻게 나아가며 무엇으로 나를 멈추게 할까. 아무도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 알겠다

 

그런데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불편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몰아갑니다. 당신은 나를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어떤 때는 성숙한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나는 그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p.127)

 

초반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실들이 중후반을 지나며 차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니나의 삶. 슈타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 자유, 평화, 고독, 용기, 어둠, 갈망, 열정 등등. 니나의 언니가 읽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 니나와 함께 머문 며칠 간의 대화, 마지막 니나의 언니와 슈타인의 만남 등으로 꾸려진 이 소설은 정확히 누군가의 가슴 정중앙을 겨냥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순응하게 하는 특유의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자유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거대담론이 없었다. 니나는 바로 그 자유를 위해 사랑마저 회유당한 장본인이었고, 슈타인이나 니나의 언니 의견과는 달리, 나는 니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누군지 그게 슈타인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어 초조했다.

 

아마 그녀는 나를 사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나는 그녀가 내 안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만 사랑할 수 있었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혼란스럽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노여워했다. 그러나 나는 자기 합리화나 안일한 생각들을 폄훼하는 그녀의 고귀한 습관이 나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pp.177-178)

 

지금에서야 말이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로 종결짓기에 이야기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니나 신드롬. 우리가 니나에게서 본 것, 내가 니나에게 마지막까지 바란 건 사소하고 잔인한 사랑은 아니었다. 어째서 니나가 되길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까. 어째서 니나는 그 불안과 흔들림으로 모든 남자들의 불씨가 되었나. 하는 것들에서 자주 멈칫했다. 도망가지 않는 것과 손을 맞닿아 보는 것. 하지만 그를 위해 피해버리는 것. 이 모든 것을 글로 쓰기가 두렵고 벅차다. 니나는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더 깊고 은밀한 곳의 간절함인 것 같다. 모든 순간에 나서 싸움으로서 존재를 드러내었던 니나가 결국 슈타인을 만나지 않고 영국으로 가버린 것으로 나는 모든 생의 의지를 본다. 어째서 슈타인에게만 그토록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는지. 삶의 위험한 순간들마다 그에게 상담했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를 거부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비록 두렵기는 하겠지만 전혀 해는 안 되는 법.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p.190)

 

마지막에 이르면서 드디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상처와 도전으로 얼룩진 삶이야 말로 니나가 불안했던 이유이자 용기였다는 것도. 평온한 세상이었다 해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기에 적절치 않은 여자였을 것이다. 모험과 도전으로 너울거리는 격정스런 일생이야 말로 그녀가 가장 바랐던 삶이니까. 가만히 앉아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 없을까 외치는 우리의 심장에도 니나의 붉은 열정 한 가닥이 박혀있음을 이제는 알겠다. 무언가는 유혹하고 나는 유혹을 외면하고 유혹은 누군가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 똬리 틀고 기다린다는 걸. 꺼내줄 날만을 학수고대 한다는 걸.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p.370)

 

그러면 이제 우린 니나처럼 한치 두려움 없이 -행여 두렵더라도-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그물에 걸려 징징대고만 있을 것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내 삶에만 도전과 모험과 기적이 없다고 목소리 높일 것인가. 다 여기, 삶의 한가운데 있는데!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주도권은 원하지 않는다 해서 넘겨줄 수도 없는 일. 아마 니나는 불꽃으로 장미가시로 빛으로 모두의 안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서 니나는 열정이고 용기다. 오래도록 꺼져서는 안될 빛이다. 빛은 나를 향해서만 비친다. 한 줄기 빛은 나를 따를 것이고 나는 눈감지 않을 것이다. 니나가 그러했듯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켰듯이.

 

그렇게 모두 그물을 찢어낸 작은 구멍 사이로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므로. 그 안에 진짜 내가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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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3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수다쟁이님의 소재에서 봤어요.
저 표지의 여성분이 작가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적이게 생긴 외모가 마음에 들어서 책에도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2-03 20: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다쟁이님 서재에서 봤어요. 제 책장에는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필독서지만 저는 예전부터 필독서들은 다 멀리해요ㅋㅋㅋ 그래서 이렇게 컸지요^^

비로그인 2012-02-0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쓰셨군요, 흐흐~ 저는 이 책 리뷰 못 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책이든 그것에 대해서 리뷰를 못 쓰겠어요. 손글씨로 글을 쓸지, 키보드로 쳐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고, 문단별로 핵심 내용을 구분해야 하나 그냥 일기처럼 솔직하게 써야 하나, 이래저래 어렵게만 느껴져요. <활자잔혹극>의 유니스처럼 되는건 아닌가 몰라요 ㅠ ㅠ

아이리시스 2012-02-03 21:08   좋아요 0 | URL
어맛, 수다쟁이님이다ㅋㅋㅋ 요즘 말예요. 카뮈와 지드를 쓰고, 사르트르를 쓸 수 있다면 모든 소설의 리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테의 수기]도. 난 이거 읽지도 못하겠어요. 진도가 너무 안나가서.. 백만년동안 읽을 것 같아요. :)

너무 많은 게 오면 오히려 쓰지 못하는 거고 어려운 책일 수록 당연히 쓰지 못하겠고 그렇죠! 얼마나 억지로 썼는지 막상 독서를 끝내니까 이 책은 남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뿌듯했죠. 근데 읽으면서 막 써둬서 올릴 수 있었어요. 내가 썼지만 나도 못 읽겠는데 누가 읽을지 궁금( '')


문단구분은 읽는 사람을 위해, 쓰는 건 수다쟁이님 마음대로! 알았죠?ㅋㅋㅋ
유니스가 어쨌는데요? 리뷰를 못 읽어서 읽으러 가요.

2012-02-03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2-02-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 멋진 리뷰예요. 제가 읽고 갑니다. 한 글자도 안 빼놓고-

아이리시스 2012-02-03 21:31   좋아요 0 | URL
땡큐 베리 머취. 꼭 다 읽고 독후감 써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2-0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진짜 멋진 리뷰..아까 와서 읽다가 나머지는 지금 읽었어요. 어렵기도 하지만 문장들이 좋아요
근데 전 이 책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희 집 책꽂이에 있었는데도 한 번도 읽지 않았어요.
제목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50대가 되면 읽어보겠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2-03 21:33   좋아요 0 | URL
역시! 난 대역죄를 지어도 내 편이 되어줄 분들이 있는 거였어..( '') 뭐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요. 제가 문학학사를 딴 사람이 아니고 '이과반'에서 자연스럽게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다면 절대 말렸을 거예요. 이걸 읽어서 어쩌겠다는 거예요. 히틀러나 홀로코스트 관련 책 하나 읽는 게 낫지 하면서요. 그러니까 50대에도 읽지 마요ㅋㅋㅋ 60대에 읽어요, 현맘님.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페크pek0501 2012-02-0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의 리뷰를 쓰셨군요.
제가 표지가 닳도록 읽은 책이랍니다. ㅋㅋ

"얽매이기 싫은 삶을 감당하려면 고독을 감수해야 한다. 본능대로 살기 위해 원하는 것 앞에 더 원하는 것을 놓을 수밖에 없다." - 난 가끔 이런 문장을 쓰는 아이님의 나이를 의심하게 돼요. 너무 성숙하셔서...ㅋㅋ
그리고 우리 아이님의 특징은 열거법을 좋아하신다는... 것... 나도 배워 써먹어야징...

아이리시스 2012-02-05 01:51   좋아요 0 | URL
저는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서 표지가 닳을 것 같았어요, 페크님.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었는데 사건 없이 물흐르듯 그것도 한 발자국 뒤에서 편지나 일기 같은 것들로 대해서 그랬나 봐요. 의도와 장치였을 테지만 그 공허가 지루하다고도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다 읽어서 너무 좋아요. 움직이지 않으면 저절로 되는 게 없으니까요. 이해하든 못하든 끝까지 읽어두는 게 올해 목표예요. 저는 기승전결과 정리가 명확한 페크님표 글쓰기를 배울래요.

주말 잘 보내세요.
밤에 순대국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가 불러 잠을 못자고 인터넷 뒤지고 책 뒤적이고 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4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지요.그런데 북한방문 이후 북한에 우호적인 글을 쓰면서 린저를 둘러싸고 우리나라에서는 보수 진보의 싸움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그런 싸움도 좀 잠잠해져서 다행입니다만...

아이리시스 2012-02-05 01:53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북한방문 얘기를 들었어요.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요. 그 부분을 건드리면 우리나라에서는 답이 안나오니까.. 제3의 눈으로 보는 우리를 우리는 잘 받아들이지 않으니까요.

노이에자이트님 오랜만. 그리고 좋은 주말 밤 되세요!

가연 2012-02-0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지나가려다가ㅎㅎ 생의 한가운데일때 읽은 책인데 이젠 삶의 한가운데가 되었군요, 중반까지는 정말 눈한번 안깜빡이고 읽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왠지 힘이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나는 슈타인처럼 사랑하기는 싫지만, 그러나 슈타인처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라고 당시에 읽으면서 여겼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가 되어버렸구먼요, 풋. 당시에 이 책 속편이 있다고 해서 백방으로 구하려고 했었는데 결국 포기했었답니다. 이것도 지금은 아무래도 좋구먼요, 하하.

아이리시스 2012-02-05 01:57   좋아요 0 | URL
민음사만 그렇게 번역한 것 같아요. [이방인]이 [이인]이 될 때 저는 좀 당혹스러웠어요. 가연님 반가워요. 어렵고 꽉찬 리뷰들 가끔 보거든요!

슈타인처럼 사랑하면 정말 외롭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둘이 사랑한다 해서 반드시 슈타인처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아무래도 좋지만.. 저는 스무살 때 친구와 연인이 되어서 이미 10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보내고 있고, 그래서 슈타인처럼 사랑하는 일이 앞으로 올지 안올지 모르지만 그렇게 평생을 갖지 못한 채 욕망하며 지켜보는 사랑이란 게 있을지 상상도 못하겠어요.

또 오세요. 하하.

맥거핀 2012-02-0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연님처럼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는 책입니다. 늘 세계문학전집 목록이나, 아니면 중고생이 읽어야할 소설 목록에 들어있던 책인 줄로만 알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군요. 살짝 겉보기만 한 느낌으로는 쉽게 손이 갈 책인듯 싶지는 않네요. 현재의 내가 책 속의 자아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요. 내 생의 한가운데는 커녕, 근처로도 가기 힘든데 어찌 니나의 삶 가운데로 가겠습니까. (물론 겉보기만 한 제 탓이겠지요.)

아이리시스 2012-02-05 02:03   좋아요 0 | URL
모두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쉽게 손이 가지도 않는 책인 것 같아요. 제가 벼르다 읽은 것치고는 크게 감명 받지 못한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상황과 마음가짐이 맞을 때 확 다가오는 거잖아요?!

맥거핀님 말이 맞아요. 내 생의 한가운데는 커녕, 근처로도 못 가겠고 책 속의 니나의 삶과 자아를 감당하기에 우리 개인의 삶이 너무 벅차요. 언젠가부터 뭘 읽고 보고 해도 푹 빠져들지 못해요. 그래서 자극적인 거 더 자극적인 걸 찾고! 자꾸 반복돼요. 겉보기만 한 탓 아니고 정확히 짚어내신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제 린저가 말년에 윤이상 전기도 썼더군요.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2-06 17:40   좋아요 0 | URL
윤이상이 누구더라..( '') 하아.. 아.. 작곡가!

그런데 노이에자이트님, 루이제 린저가 남긴 다른 소설도 있나요? 정말정말정말로 이것밖에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제대로 번역이 안되어서 그런가.......

마녀고양이 2012-02-0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는 슈타인을 니나의 방식대로 사랑했지만, 그것은 지나가버린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우리는 선택하고 자신을 만들어나가고 어떤 것을 버리며 다시 자신을 만들어나가니까요.
과연 말이죠, 니나가 슈타인을 버린걸까요, 슈타인이 니나를 버린걸까요?
저는 슈타인이 니나를 놓아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생의 한가운데> 속편인 <빛 그리고 그림자>는 모두 편지이고, 니나의 입장에서 씌여진 글입니다.
그녀의 정열과 절망을 읽을 수 있지요. 그리고 니나의 단 한명의 남자에 대해서, 너무 슬퍼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절대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은,
니나가 단편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구절, 박수치라고 말하는 가식이라면서 지워버리는 구절이었답니다.
우리의 삶이, 글 쓰는 과정이, 말하는 과정이, 그런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아이리시스 2012-02-07 17:01   좋아요 0 | URL
속편이 있다고 가연님이 그러셨는데 마고님은 그것도 보신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슬아슬 잡힐 듯 하면서 몰랐던 것들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는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에요. 저는 니나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돌아서고, 조화를 이루되 내 자리를 확실히 다질 줄 아는 여자요.

저도 그 구절이 우리의 글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자신감이 넘쳐서 아니다 싶으면 delete키를 속시원히 누르고 새로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알량한 것도 자꾸 모아둡니다. 도움도 안되는 걸...........

마녀고양이 2012-02-07 19:2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속편 구하느라, 난리치고 구해서 가지고 있지요.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일인걸요... ^^

아이리시스 2012-02-07 20:50   좋아요 0 | URL
90년이나 사신 분이잖아요. 한 작품만으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생의 한가운데>는 전후 문학인데도 별로 전후스럽지 않게 읽히고 니나를 보면서 저도 전혜린을 떠올리고 뭐 어느 정도 예민이 극에 치닫는 기질이나 성향이 있어야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보통 사람보다 강한 통찰력을 갖는데 좀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게 당연한 것도 같고요. 니나 보고 싶다............런던에서 뭐하고 살아요? 어떤 편지가 들었어요?

문득, 니나 같은 엄마를 둔 아이들은 불안하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내 엄마가 집에 계시면서 된장찌개 냄새 풍겨주셔서 저는 불안함을 거의 모르고 자랐는데 요즘은 엄마 들어오실 때 제가 된장찌개 끓이고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2-02-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루이제 린저가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굉장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전집도 나오고 그랬어요.헌책방에 가끔 나오던데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범우사에서 <옥중기> 외 몇 편이 번역되어 있어요.작가 서문이 재밌어요.

아이리시스 2012-02-07 17:06   좋아요 0 | URL
[요즈음에 와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제 와서야 깨닫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미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거란 현재 속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거요, 노이에자이트님?

음................ 이 작가분 정말 장수하셨네요... 요즘으로 보면 별 게 아닌건가..
보통 작가나 예술가들은 단명하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02-07 20:58   좋아요 0 | URL
그런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여하튼 왜 <옥중기>를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가 된 경험을 꽤 길게 썼으니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아이리시스 님이 인용한 문장은 어디에서 구했나요?

아이리시스 2012-02-07 21:19   좋아요 0 | URL
아................... 알라딘에서 책 찾으니까 거기 서문이요....................( '')
그렇군요.
저는 오래된 책을 막 구해서 읽을 정도로 부지런하거나 하나에 골몰하는 사람이 아닌데 21세기에 나온 새로운 번역본이 없어서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이에자이트 2012-02-08 17:50   좋아요 0 | URL
<옥중기> 범우사 판은 읽기에 어렵지 않습니다.활자도 큰 편이죠.염려 말고 읽으세요.다른 출판사 것에 비해 값도 적당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0 23: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구나. 고맙습니다^^

2013-03-1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6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 - The Road to Guantanam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전쟁의 땅을 아냐고 또래에게 묻는다. 알 리가 없지. 우린 전쟁의 상흔을 안은 곳에 사는 거지 전쟁의 땅에 살고있는 게 아니잖아.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잠시 휴전하는 중이라고 해도 알 리가 없지. 설상가상 내겐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줄 어른도 안계신다. 폭격기 한 번 맞아보고 싶다거나 최루탄, 화염병 날아다니는 거 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할아버지만 중3때 돌아가시고 모두 건강하시다)는 분명 그 시절을 사셨는데도, 내가 듣기론 그저 가난 뿐이다. 가난. 뿌리 없고 실체만 있는 그것만이 명확했다고 식구들 모두가 아니, 아빠와 엄마가 말했다. 전쟁영화를 잘 못 본다. 목이 달아나는 장면에 몸서리쳐져서가 아니고 지독한 학살이 오히려 지루하기 때문인데, 그게 인간이 동물을 학살하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어서 비위 상한다. 그건 내 사정이고, 세계는 또 나와 상관 없이 제멋대로 잘 돌아가기 때문에 그걸 알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요 몇 년간 전쟁에 대해 그러니까 전쟁으로 인한 부수적 갈등이나 해당 국가의 관계들,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중동이긴 했지만 모두 서구 선진국들과도 관련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식민 쟁탈전이 결국 모두 전쟁과 관련 있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연장선상에서 전쟁영화가 봐지기도 한다. 외면한다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맘 편한 것도 아니라서 바로 그것들이 끈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쏟아지는 전쟁영화 수집에 꽤 열을 올렸다. 그러니까 '제목' 말이다. 어느 영화가 어떤 전쟁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정보. 그리고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관련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없애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온 1세기 역사를 가진 관타나모 수용소는 여전히 굳건히 살아남아 전쟁범이나 정치범의 자유를 뺏고 있으며, 영화는 세미다큐 형식으로 만들어진 실화 바탕의 작품으로 사실감과 진정성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관타나모는 쿠바 동부에 있는 관타나모주의 도시로,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결과로 1903년 이래 미국의 해군기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관타나모는 미국의 중남미 군사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 기지 역할을 한다. 미군 관할 아래 거대 수용소가 생겼고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사상,전쟁범에 대한 구속과 구타,고문,학대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범 수용이 아니라 무관한 이들을 정치범으로 둔갑시키려는 강압적 처우에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우리 역사에도 공공연했던 인권유린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잘못된 진실과 제멋대로식 억압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한다. 혐의 있는 자, 혐의가 진실로 밝혀진 자에 대한 심한 고문에도 하물며 인권유린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죄 없는 자, 혐의는커녕 상관없는 자를 잡아와 고문하는 것에는 응당 책임이 따라야 한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생긴 지 1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껏 처우나 시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이득과 기득권 보호를 위해 방해되는 이들이 모진 대우로 죽어가거나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유엔과 안보리가 아무리 '국가안전보장'을 외쳐도 해당 국가(미국)만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실제로 미국은 국제사회에 나와 인권에 관한 가장 높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사실상 자국 보호라는 명목 아래 엄청난 인권유린을 타당화 시키고 있다. 제 나라에 불리한 것은 법으로 취급도 안할 뿐 아니라 모두 중동 테러리스트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영화다. 그들이 좀 더 신중을 기하고, 명확한 법집행에 매달렸다면 이런 실화는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잘못된 일을 타당화 시키기 위해 또다른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매커니즘이 반복된다. 어느 날 영국 청년 셋은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간다. 결혼식을 위해 먼저 떠난 주인공까지 모두 넷. 파키스탄계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 영국에 터전을 잡은 이들은 중동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도 친밀감도 갖지 않은 채 단순한 목적으로 향했을 뿐이다. 하필이면 9.11 테러 며칠 후. 그리고 돌아가지 못할 줄 몰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도록. 3년 가까이 가족들과 친구들 얼굴을 못 보게 되고 친구 하나를 잃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도 술렁이긴 마찬가지다. 도착 전에는 몰랐지만 막상 파키스탄 전역이 긴장과 도가니 상태였다. 소문이 꼬리를 잇고, 소문이 소문을 물고 늘어져 진실이 되었다. 청년들은 궁금했다. 파키스탄에만 있자니 지루해서 무작정 국경을 넘을 생각을 한다. 별로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다. 칸다하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멀미나 먹는 문제 빼고는 비교적 잘 도착했지만 현지 상황은 달랐다. 밤마다 낮마다 엉뚱한 곳에서 폭격이 시작됐고, 폭탄이 터져나가 많은 사람이 죽었다. 소문은 더 흉흉했다.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가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 팔,다리,목이 없는 시체가 즐비하고,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사람들도 다반사. 단테가 묘사하지 않은 지옥이 그곳이었다. 미군에게 붙잡히거나 수상한 낌새를 주게 되면 한참을 잡혀 있어야 했다. 깊은 구덩이를 파서 수상한 사람들은 한 번에 사살한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영국인 청년들은 자신이 영국인이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하기만 하면 미군과는 친구가 될 수 있고, 금새 풀려나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차츰 현실이 그렇지 않아지고, 미국 정부의 아프간 압박과 폭격은 도를 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잡혔다. 영국인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순식간에 탈레반 추종자가 되어 알 카에다의 정보와 빈 라덴의 주거지 실토를 압박당해야 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기만 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없이 수상하다는 점만으로 눈이 가려진 채 총구에 겨눠져 군용차에 올라타 수용소로 끌려가는 영국 청년을 비롯한 각계 중동계 출신들. 그들이 간 곳은 쿠바 관타나모. 부시가 대우는 적당하고 인도적이라고 발표하는 바로 그 관타나모 수용소다. 영화는 생각했던 그대로 진행된다. 실제 주인공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간중간 삽입되어 생동감 있는 현실을 전해준다는 것과 비교적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점, 영화라기 보다 다큐라고 하는 게 훨씬 어울린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수업용으로도 교육용으로도 교양용으로도 좋은 작품이다. 간단해서 이해 못할 구석이 한군데도 없는데 자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 인도주의적 인권대우라니, 이런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나. 나라는 존재는 티끌보다 더 작아서 제 나라 부당 재판에도 뭐라하지 못할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재판 하나 없이 주황색 죄수복을 입혀 눈도 가린 채 아무렇게나 끌고 와서 수용소에 갖다 넣고 인권을 유린하는! 어이없는 정부가 말이다. 이게 과연 전시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처법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일까. 무작정 끌고 와서 살인자 취급하는 게? 검색 몇 번으로도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끔찍하고 잔인한 실상들을 볼 수 있다. 그 고문법 하며, 진실 찾기가 아니라 겁주기식 군 작전들로 점철된 곳에서 과연 진짜 중동 테러리스트 탄생을 바라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보복 공격을 낳을까 두렵다. 그곳은 그런 식으로 미 해병대에 의해 접수되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테러리스트, 살인자로 만드는 비밀의 장소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전혀 유쾌한 내용이 아닌데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몰입을 당한 건 오랜만이었다. 인간 살인병기들이 아니라면 이건 전혀 무의미한 일이다. 테러범 축출이나 살인범죄 퇴출에도 전혀 도움될 리 없는 인력 낭비였다. 이런 소모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겁주기나 협박용인가. 중동계 유럽인까지 전부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려는 게 목적이라면 적어도 기준을 정해야 한다. 자국의 타당성을 내세우기 위한다거나 본때를 보여주려고 피부색 판별로 무조건 잡아들이는 건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선진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테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 할 매듭이 딴 데 있고, 미국이 그 문제를 바로 서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바, 절대 관타나모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어쩌면 영원히 인권유린의 사각지대가 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처럼 무고한 영국 청년이 2호, 3호 계속 나올 것이고 나오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전시라 해도, 재판 없는 구금과 살인이 있을 수 있을까.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많은 것을 묻지만 대부분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행여 오해가 풀렸다 해도 몇 개월간 고통 받은 무고한 이들의 인권유린과 고문,구타를 어떻게 보상할지 궁금하다.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힘 없는 국가들이 늘상 이렇게 당해줘야 하는가. 이럴 때 보면 유엔과 안보리, ICJ의 존재는 더없이 무의미하다. 이미 벌어진 일 수습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기구. 그것만으로 이 세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청년들은 곧 꺼내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듣게 되고, 서로 친구들이 자신을 알 카에다 조직원으로 고발했다는 억측 아래 부당한 자백을 강요 당한다. 고급 정보는 고급 '수' 아래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던가. 비밀정보원이라던가. 비로소 미국이라는 나라에(이 수용소가 미국의 아래서만 힘을 과시하는지, 러시아,독일,영국도 가세하는지 모른다) 눈먼 돈이 어마어마할 지도 모른다는 눈먼 감상법이 나온다. 한둘도 아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사람 하나 사형시키는 데에 어마한 돈이 든다는데, 배보다 배꼽이 큰 격 아닌가. 하나 잡겠다고 둘셋넷다섯, 몇인지도 모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자국민들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을까. 제 나라 세금이 쓰이는 요량을 좀 보면 화가 날 만도 한데! 그곳은 서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고는 이리 끌고갔다 저리 끌고갔다, 전통이랍시고 행해지는 명예살인 욕할 가치도 없는 체제 속에 운영되는 곳이다. 벽도 없이 동물원 우리 같은 철창 안에 한 명씩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게 생활하는 삶은 이미 동물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한 트럭인데 포로로 잡혀와 얼마간 보낸 이들의 삶이 최악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덜하다고 볼 수도 없다. 일반인을 포로로 잡는 전쟁은 문명의 것이 아니다. 과거 아이들이나 여자를 인질이나 포로로 잡았던 전쟁들은 최고 악질 전쟁으로 손꼽혀 왔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면서 테러가 끊기기를 바라고, 테러를 축출하기를 바라며, 중동과 화해하기를 바란다. 양심이 사라졌나 보다. 특별구역이라는 수용소 D구역은 더 심하다. 가지도 않은 아프간에 갔다며 비디오를 보여주고는 니가 저기 있는데 설명해 보라거나, 손과 발을 바닥에 묶어놓고 못 움직이게 하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그런 인권유린은 그야말로 장난이다. 미쳐버리거나 버티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걸 이 강한 청년들은 머지않아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강해졌다.

 

청년들은 거짓 자백을 강요 당하고, 미군은 억지 자백을 받아내어 겨우 재판대에 세운다. 그 어린 청년들이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대단한 정보통 미국이란 나라가 청년 하나의 거주와 발자취를 과연 조사할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까. 너무도 확연하게 영국에 존재했던 청년들의 출입국 기록을 증명할 능력이 없어서? 폭력, 사기 등으로 국가에서 내린 명령의 일환인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알리바이는 더 명확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들은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기만 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그들의 아집과 오만과 위험은 상당했다.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는 21세기 선진국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 공공연하나 없는 일도 치부하는 여전히 통용되는 일들. 좋은 국가는 좋은 점을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나쁜 점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척 까짓 수치에 불과한 GDP 순위로 위선 떨어도 슬럼가나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아이들이 굶는 국가를 좋은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99%가 죽지 못해 사는데 1%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잘 산다고 그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나중에는 지친 청년이 비협조적이고 호전적이라는 이유로도 억압하고 학대한다. 더 엄격하고 심한 폭력이 묘사되지는 않지만 없는 죄를 고백해야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이 있을까.

 

가족과 변호사와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고, 알리바이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을 들먹이면서 수용소에 더 붙잡아놓는다. 마침내 죄가 있어 수용되었었다는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하지 않을 경우 집에 보내줄 수 없다고 협박한다. 그들로선 인권유린과 거짓자백요구, 고문,감금,부당심문 등에 자물쇠를 채울 근거가 필요했고, 관타나모 수용소의 타당성을 인정 받아야 했을 것이므로. 청년은 거부한다. 세 청년이 구분 되지만 나로선 셋을 구분하여 이해하기가 벅찼다. 셋에게 내려오는 모든 불합리가 한 사람 아니 전체 포로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처럼 보였다. 이들이 여기서 이렇게 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소의 죄수들에게도 자국 죄수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국가처럼 보였다. 1000명에 달하는 무혐의 죄수들 중 단 10명이 기소됐지만 그들에게서도 역시 혐의를 찾을 수 있는 강력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으며 그러고도 한 마디 사과나 본인들 잘못을 인정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자유 수호를 위한 명예로운 구속'이라는 수용소 D 앞의 글귀가 그들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입증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거의 3년을 죄없이 수용소에서 보낸 후 억류가 풀린 영국인들이 돌아온다. 비로소 석방되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영국이라는 국가에서도 별 수 없었던 셈이다.(테러범죄는 '정치범 불인도' 사유에 해당해 설사 영국이 나섰더라도 석방시킬 수 없었을 것) 이유와 배경이 어쨌건 현 지구에 알 카에다는 테러리스트가 맞다. 그래서 피부색과 인종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이 타당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행여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중 한 명이 알 카에다나 탈레반 수장이었다 하더라도 미군이 수용소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용서될 것인가. 형법에 '한 명의 가해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 피의자가 될 지도 모를 선량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유일한 단서인데, 지구 어느 땅도 이 말이 또렷하게 지켜지는 곳이 없어 씁쓸할 뿐이다. 죄 없는 이가 끔찍한 곳에 잡혀갔다 3년 만에 겨우 나왔는데 이게 석.방.인.가. 한 명의 청년은 실종되었고, 영국으로 돌아온 세 청년 중 하나는 예의 그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셋은 여전히 영국에 살고,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말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으며, 수용소 생활 이전과 이후의 삶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더 좋은 쪽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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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3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전에 덧추날려주는 센스를 한 번 발휘하고 가야겠지말입니다.
아이리시스누나님리뷰는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역시 좋습니다.
아, 역시 이런게 아이리시스님이지! 하게되는 리뷰어요.
헤헤, 난 잘게요. 굳밤

:)

아이리시스 2012-01-31 01:06   좋아요 0 | URL
히히히, 소이진님, 리뷰쓰면 어디선가 갑자기 알고 달려오는 것 같다니까요.
오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예뻐라..^^
잘자요. 좋은 꿈 꿔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키 커요^^
굿나잇~^^

p.s. 본인이 정말 예쁘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해요.

페크pek0501 2012-01-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소이진님을 따라해서..."자기전에 덧추날려주는 센스를 한 번 발휘하고 가야겠지말입니다."

ㅋㅋ 요렇게 해 놓고 퇴장합니다. 난 나중에 인쇄해서 꼼꼼히 볼까 봐요. 어디에 무엇을 틀리게 썼는지, 검사해야쥐...ㅋㅋ 그리고 지적질해야쥐...하면서... 이것 농담인지 아시죠? 나나 잘할게요. ㅋㅋ 언제나 반가운 아이님, 예뻐 예뻐!!!

아이리시스 2012-01-31 22:57   좋아요 0 | URL
페크님은 '자기 전' 아니시라는ㅋㅋㅋ 제가 자기 전에 올리니까 소이진님은 항상 자기 전에 온다는^^

인쇄하고 싶은 글들은 종종 만나지만 사무실이 아닌 한 꽤 귀찮은 일인데 페크님 만세. 틀린 곳 없을 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예쁘니까요! -_-;;

마녀고양이 2012-01-3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무척 좋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리님, 불과 이 땅에 전쟁이 몇십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실감나지 않지요?
한번도 전쟁을 겪어보지 못 한 세대가 저랑 아이리님 세대인지라, 항상 이렇게 평안할거 같구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광주 사태도 있고 그 이전에도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지만, 아직도 전시 중인 나라에 비한다면... ㅠㅠ

아이리시스 2012-01-31 22:55   좋아요 0 | URL
좀 흔들흔들 우리 세상이 아닌 것 같지만 이것보다 좋은 교육용 비디오가 없겠다 싶어요.
정치적으로는 그렇다 쳐도 경제를 위협받는 저희 세대가 썩 더 낫다고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폭격 맞는 것보다는 확실히 다행인 것 같아요. 저 이스라엘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데 요즘 중동영화를 들입다 봤더니 없던 겁이 생기고 있어요. 거기서 위험한 일 당하기는 너무 무섭잖아요ㅜ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31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마고님 말씀처럼...그래요 정말.
이 땅에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전쟁은 있지만 그래도 우린 물리적 전쟁은 없으니까 그나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요.

아이리시스 2012-01-31 22:53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을 매번 하면서도 주제가 비슷한 영화를 보고 또 충격 받고 또 다행이다 싶고 그래요^^
휴.. 그런데 전시.. 어른들도 별로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조부모님들께 여쭤본 건 아니고 부모님이 들은 얘기가 있는지 늘 물어보는데 저희 부모님은 시골이었고 어렵게 사셨고 뭐 그런 기억만 있대요.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전쟁마다 얼른 막내리고 지구상 전쟁도 좀 끝내면 좋겠어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너무 끔찍하잖아요. 이건 최근 꽤 여러 편 본 것치곤 상위권에 속하는 유익한 영화예요.

맥거핀 2012-01-3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설마 이 영화도 IPTV에서도 보신겁니까? 이런 좋은 영화들도 IPTV에 있다면 꽤 괜찮을 거 같은데. 마이클 윈터바텀의 몇몇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에서 흥미롭고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것 같아요. 저는 아니지만, 나름 매니아층이 있는 감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았을 때 감독의 다른 영화인 <인 디스 월드>가 연상되기도 하구요..혹시 이미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이리시스 2012-01-31 22:50   좋아요 0 | URL
아, 이거 제가 어떻게 봤더라? IPTV에는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가 올라오구요. 이건 하드에 잠자던 파일인데 출처를 까먹었어요. 관심분야여서 당시에 챙겨놓은 것 같은데 DVD가 품절이에요. 이거 보면서 감독 검색은 못해봤는데 <인 디스 월드> 재밌겠어요. 안봤어요. 그런데 이렇게 경계에서 들려줘도 저는 극영화보다 더 재밌기만 하더라고요. 다큐를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극화되지 않아도 충분히 극적인 현실이라 그렇거나..^^
 
플립
로브 라이너 감독, 레베카 드 모네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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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빠져들었는지 콕 집어내지는 못하지만 20대 초반 하염없이 빠져들었던 중국인이면서 프랑스어로 쓰는 작가, 샨사의 소설 <바둑 두는 여자>는 중국문학을 잘 몰랐던 내게 일제침략기의 만주를 배경으로 낯설고 아련하고 기이하면서 신비롭고 안타까운 시대의 이야기를 펼쳐주며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 소설은 만주로 파병 온 일본군 장교와 한 중국 소녀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1930년대 급박한 도시의 모습과 개인의 삶을 바둑판 위의 게임이 진행되는 것마냥 보여준다. 그래서 바둑게임은 영화의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현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바둑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이 게임은 누군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되는 것, 굴러가고 흘러가야 할 모든 것이었다. 소녀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떠안고 온 힘을 다해 바둑을 둔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뿐, 절망과 슬픔과 고독의 구렁텅이가 아무 것도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소녀가 만난 것 또한 바둑 두던 광장이었다. 서로의 아픔과 간절함, 고독과 절망을 알아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둘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런 시대, 그런 시절, 그런 시간들. 그럴 수 밖에 없는 정황들이 명명백백하다. 아픈 만남은 비극적 결말을 낳고, 소설은 비로소 이보다 더 희망적일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를 묻는다. 모든 것이 반어법이었다. 이보다 절망을, 이보다 구속을 느끼냐고 묻는 소설에서 나는 비극으로나마 서로의 가까이에 옮겨 앉는 두 주인공들을 보았었다. 총소리, 시체, 울음, 데모, 억압,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흘러 넘치던 꽉 막힌 슬픔의 시대였다.

 

그리고 <플립>은 바로 그 바둑게임을 온전히 화면으로 옮겨온 영화다. 하지만 <바둑 두는 여자> 속 처연함과 결연함, 안타까움이 이 영화에는 없다. 사실 두 작품은 서로 비교할 만한 대상도 아니고 비교될 대상도 아니며, 내용상으로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마음, 상황이 교차한다는 것이 닮았다. 이곳에 소녀가 있고, 저곳에 소년이 있다는 것이 닮았다. 여기 소년의 마음이 있고, 저기 소녀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 닮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영화판 <그 남자, 그 여자> 아니, <그 소년, 그 소녀>다. 눈치챘겠지만, 소년과 소녀다. 작은 남자와 작은 여자 아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말이다. 쾌활하고 발랄하고 천진하고 순수하고 어여쁘고 밝고 화사한 아이들. 우린 이 영화를 보며 어린시절을 불러오게 된다. 그 시절에는 내 옆에 누가 있었던가, 자전거가 있었던가, 인형이 아니면 우산이 그것도 아니면 사탕이, 장미꽃이, 문구세트가, 숨바꼭질이, 귤 한바구니가 있었던가. 그 시절이라면 나, 할 말이 끝도 없이 쏟아질 것처럼 하염없지만 매몰차게 막아버린다. 감당할 수 없다. 그 밞음, 수줍음, 눈부심, 순수함들을 감히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다. 다른 모든 것 앞에 단 하나, 작은 손! 그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손은 참 작고 희고 깨끗했다. 아무 것에도 노출되지 않아 무엇에도 닿은 적이 없는 손. 세상 때 묻지 않고, 세상 짐 얹지 않고, 세상 아픔 스며들지 않은, 서로를 향해 반짝거리며 서로 잡아주기를 기대하던 작은 손. 그것만이 떠오른다. 전부가 아니지만 거의 모든 것인듯, 달뜨게 떠오른다. 해질녘 풍경도 떠오른다. 좀 더 놀고 싶은데 들어오라고 저녁 먹자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와 찌개 냄새, 아쉬워하던 우리의 고무줄 놀이, 숨바꼭질, 달리기 계주 그런 것들. 결국 완전한 어둠이 거리를 잡아먹고 나서야 잔뜩 잔소리를 듣고 우리들은 집으로 끌려들어갔다. 그것들은 파노라마처럼 두서없고 정처없이 자꾸만 흐른다. 찰칵.

 

첫 시나리오를 쓰면서 불이 켜졌다 꺼졌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페이드인,아웃 기법을 의도적으로 많이 넣었다. 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씬이 끝날 때마다 계속 하얘졌다 까매졌다 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시나리오가 빈약해 기술적으로 채우려는 욕심의 발로였는데, 그날 작품 발표 시간에 태클이 엄청 들어왔다. 말이 토론이지, 토론당할 시나리오들이 아니라는 걸 민망하게도 우리끼리 잘 알고 있었다. 빨강 머리에 빨강 코트, 빨강 구두를 신은 여자가 새벽마다 이부자리에 누군가를 눕혀놓고 흰 이불을 덮어준 채 얼그러진 화장을 하고서 또각또각 출근하는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인기척 없는 이불 속 인물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언제나 이인분의 밥상을 차린다. 심지어 느릿느릿 움직이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천천히 흔드는 섹스도. 기이하면서 고독한 지하방 인생.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말이 안되는 퇴폐적 시나리오는 사실 어디선가 졸업작품으로 감상했던 독립영화 장면을 나름 포착해온 거였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붉은 빛이나 불안한 듯 흔들리는 흰 조명,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기법이 필요했던 거였다. 어떤 애가 F.I/F.O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읽기가 부담스럽다고 했고 거기에 교수님이 종지부를 찍었다. 교수님은 우리의 빈약한 글에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신사였다. 나는 내용상 의도였다고 어쭙잖은 변명이라도 하려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못했고,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나는 내가 쓴 작품에 타당성을 주장하지 못했던 자책을 안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왜 그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설사 그게 타인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대도 나는 말해야 했던 것이다. 알지만 그게 필요했다고, 나는 이 시나리오가 영화가 된다면 잦은 F.I/F.O이 등장해도 좋다고 해야 했다. 그게 내 의도였으니까.

 

여자아이(줄리)는 옆집에 사는 남자아이(브라이스)가 좋다. 항상 남자아이를 주목하고 다른 여자 애에게 다정하거나 친절하면 신경 쓰인다. 그래서 졸졸 쫓아다니며 묻고, 관찰하고, 신경쓴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귀찮다. 왜 날 따라다니는지 어째서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는지 짜증날 지경이다. 마을 어귀 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나더러 올라오라고 소리친다. 친한 척 하고 날더러 자꾸 뭘 해주려거나 해달라 한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나무 위에 올라와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 나무에 오르면 세상이 짠 하고 펼쳐지면서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그것들이 다 발밑에 있는 듯 행복한데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들이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거기에 새집을 짓는 것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줄리네 꼬꼬들은 달걀을 참 많이 낳는다. 동네 아주머니는 줄리에게서 그 달걀을 사기로 하고, 줄리는 종종 꼬꼬가 낳은 달걀로 용돈을 번다. 브라이스가 이 달걀을 먹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기르는 꼬꼬가 낳은 달걀은 식구들이 다 못먹을 정도로 많다. 브라이스에게도 갖다 줘야지. 브라이스는 줄리가 주는 달걀이 달갑잖다. 줄리네는 돈이 없는 걸까. 어째서 정원 관리를 안하고 저런 곳에서 닭을 기르는지 모르겠다. 더러운 정원에서 사는 닭이 낳은 달걀에는 균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족 누군가의 말에 줄리가 매일 가져다주는 달걀을 버리기로 한다. 줄리는 브라이스가 내다버린 달걀을 발견한다. 처음부터 어째서 말하지 않았니. 줄리는 다시 심하게 상처받는다. 이제 정말로 브라이스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줄리네 아빠는 정신이상을 앓고 있는 동생(줄리의 삼촌) 때문에 많은 돈이 든다. 그래서 정원을 가꾸는 데에 큰 돈을 들일 수가 없다. 줄리의 부모님은 종종 다투지만, 줄리도 아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느 날 아빠를 따라 삼촌을 만나고 온 다음, 알게 된다. 아빠가 옳다는 것을. 도서관에서 브라이스를 본다.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외면하기로 했지만 우연히 브라이스가 친구와 하는 대화를 듣게 된다. 그들은 내 삼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브라이스의 친구가 말한다. 난 그 아이의 삼촌이 그렇다는 걸 들으니까 그 아이가 그런 이유를 알겠다. 그 아이가 이상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줄리는 완전히 상처 받는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동조해버리는 브라이스 때문에. 이제 브라이스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브라이스는 줄리의 무화과 나무, 달걀, 삼촌 이야기를 모두 안 이후로 그녀를 무시하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애의 뒷모습과 표정에 늘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그 애는 날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삼촌에 대한 일로 많이 기분이 상했을 거야. 줄리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이 못지 않게 속이 상한다. 어쩌지. 아 어쩌지. 이제 줄리는 더더욱, 더군다나 나를 봐주지 않는다.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녀는 매몰차게 나가 버리고 친구들에게 비웃음만 듣는다. 그래도 괜찮다. 어떻게 하면 줄리의 화가 풀려, 예전처럼 나를 귀찮게 하며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줄까. 어떻게 하면. 딱 하나 있다. 내가 줄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줄리를 위해 무화과 나무를 심기로 한다. 그녀의 집 정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자랄 때까지는 날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래, 무화과 나무를 심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그녀가 나온다. 우리 같이 나무를 심는다. 우리. 그애가 내 정원에 묘목을 가져왔다. 무화과 나무를 심고 있다. 세상에, 브라이스의 눈이 달라 보인다. 아무래도 여전히 브라이스와의 첫 키스 기회는 지나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심은 나무가 자랄 때까지. 예쁜 나무와 다정한 우리들과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마을 풍경. 추억은 그런 것들일 것이다. 사람과 풍경, 인상 속에 숨어있던 많은 시간들. 그것을 편리하게 추억이라는 두 글자로 뭉뚱그려 부리는 것일 테다. 브라이스와 줄리가 나무를 심는 광경은 내가 가진 모든 추억을 압도할 만큼 멋졌다. 함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그 시절에서 해방된 건 언제였을까. 그때, 내가 아홉 살이고 그가 열 살이었을 때에 소년은 종종 옷걸이로 맞았다. 뭘 잘못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소년은 다락방으로 기어서 도망갔다. 우리집 하고 똑같이 생긴 방인데도 소년의 집에 들어갔다가 무척 경이로운 기분을 느꼈다. 거기 짜부러진 옷걸이가 아무데나 널려 있었다. 옷이 걸린 것과 매로 변용된 옷걸이. 아 옷걸이.

 

기억은 때로 단편적이고, 그 단편적 기억을 차례로 늘어세우면 그것이 종종 전부가 된다. <플립>은 작은 여자아이와 작은 남자아이의 순수하고 화사한 연애 이야기지만, 순수한 발랄함과 아직 어린 마음과 공존하는 영악함을 보자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때 나도 그가 전부였었다. 그를 보기 위해 잠을 자고, 일어나고, 피아노를 치고, 공부를 했다. 참 작은 소년, 소녀였는데(당연히 우리 둘 뿐인 건 아니었다, 동네에는 족히 한 다스는 될 법한 소년,소녀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주 다 커버린 어른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감정은 커서는 가질 수 없는 거였다. 학생 때의 사랑은 기념일을 챙기는 데에 열올리는 "보여주기식 사랑"이었고, 성인이 된 후의 사랑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더 가여워하는 "나를 향한 사랑"이었다. 참 예뻤다, 어린 시절.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꽈배기 공장이 있고 친구들이 엄청 많던 동네. 나는 그곳에 살았던 어린시절을 따뜻하고 안락하고 조용하지만 함께 뛰어놀 친구가 없는 아파트에 살던 시절보다 훨씬 영예롭게 기억한다. 누구에게나 아련하게 떠오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을 불러오는 것은 자유, 그 시절을 빨강 머리를 고수한 주근깨 빼빼 마른 앤이나 안소니와 테리우스 사이를 방황하던 캔디, 이집트를 호령하던 피부 검은 왕비 클레오파트라, 오스트리아 공주에서 프랑스 왕비가 된 비운의 여인 마리 앙투와네트와 함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책이나 TV 속에 존재했지만 그 시절, 온 동네를 휘감으며 몰려 뛰어다니던 우리는 오로지 우리 아니, 내 안에만 살아있다. 불러올 추억이 있다는 것은, 이미 몸이 다 커버린 여자가 아주 작아서 서로 부딪칠까 겁이 났던 작은 손을 기억하는 일은, 기가 막힐 만큼 매혹적인 일이다. 강렬하면서 신비롭고 그래서 아무 데나 가라앉아 버려도 좋을 만큼 황홀한 일이다. 안녕, 내 어린시절. 그리고 당신의 어린시절. 내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는 어린 날의 시간들이 버겁지만 보물이다. 이건 정말이지 감동이고 매혹이고 황홀 그 자체다. <플립>을 볼 때만큼은 어깨에 얹힌 어른의 무거운 짐 살며시 내려놓고 잠시나마 줄리와 브라이스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지. 내가 줄리라면 브라이스가 있을 것이고, 브라이스라면 반드시 줄리도 옆에 있을 것이다.

 

브라이스가 줄리를 잃지 않는 법

 

1. 세상이 한 눈에 보인다는 줄리(가 좋아하는) 무화과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함께 올라가줄 것

2. 줄리네 집 정원에서 자란 꼬꼬들이 낳은 달걀을 맛있게 먹어줄 것

3. 줄리가 사랑하는 삼촌, 줄리의 삼촌을 사랑하는 줄리의 아버지, 그로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될 줄리의 가족을 존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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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머머머머머, 아이리시스님. 제가 여태껏 안자고있던 보람이 있어요! 브리핑을 계속 훑는데 낯익은 닉네임이 올라오길래 역시 아이리시스님은 늦게 주무셔, 하면서 생각없이 들어왔더니 세상에나, 세상에나 [플립]!
저 이 영화 처름에는 줄리가 너무 제가 생각하는 그런 귀엽고 예쁜 꼬마아이상이 아니라서 시큰둥하게 봤는데 웬걸 보면볼수록 빠져드는거 있잖습니까... 영화 끝나고 이틀동안 패닉에 잠겨서 뭔가를 할 수가 없었어요. 패닉이라기보다는 여운이 남아서. 꼬맹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달달하고 아련한지. 또 잠시동안 그 브라이스를 연기한 배우에게 흠뻑 빠져서 그가 출연한 영화도 찾아보고는 했었지요. 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 요즘 플립을 잊고 살았었는데 아이리시스님이 보셨군요! 정말 재밌지요? 정말 이런 영화 다시는 못 찾아볼 것 같습니다 ㅎㅎ

아이리시스 2012-01-17 00:42   좋아요 0 | URL
어머머머머머, 우와 소이진님이다ㅋㅋㅋ 아 근데 졸려 죽겠어요. 몸이 계속 안좋아서 하루에 절반을 자는 듯ㅋㅋㅋㅋ 이거 봤구나, 엄청 좋아하구나, 소이진님. 꼬맹이들 예뻐요. 그리고 소이진님도 꼬맹이에요, 그걸 알아야 할텐데 히히히. 꼬맹이 때는 꼬맹이 소리 듣는 거 싫죠?3=3=3=3 화질이 너무 좋아서 영화에서 막 빛이 발하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것과 별개로 나는 이제 정말로 나이를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소이진님도 그 여자아이를 훗날 아이리시스 누나 나이 되어서 생각하면 그럴 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막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 마구마구 보여줘야 하는 거예요, 그죠?

이진 2012-01-17 01:30   좋아요 0 | URL
크크크. 괜찮아요 어차피 실제로 덩치는 꼬맹이 아니거든요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아이리시스누나 나이괜찮은데, 그렇게 안 어른인데 ㅎㅎㅎ 제 아는 사람 중에도 아이리시스님하고 나이가 비슷하신 여성분이 계신데 그분도 플립 좋대요... 이건 어느 세대나 다 좋아할만한!!

아이리시스 2012-01-18 16:0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안 어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구나, 어느 세대나 다 좋아할만한!! 그나저나 소이진님, 덩치는 꼬맹이 아니에요? 아.. 덩치는 꼬맹이 아니구나.. 그래도 소이진님은 꼬맹이에요. 동생은 몇 살이에요?^^

이진 2012-01-21 21:11   좋아요 0 | URL
앗, 늦었다 ㅋㅋㅋ
동생은 이제 중2에요. 여동생은 중1. 그런데 여동생하고는 안친하고..
남동색하고도 썩 ㅋㅋ

아이리시스 2012-01-25 01:40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소이진님은 형도 되고 오빠도 되는 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어른스럽구나.. 하나 뿐인 줄 알고 물어본 건데 둘이나! 동생들 데리고 살기가 힘들어요, 그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AYLA 2012-01-1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남자 아역이 어쩜 그렇게 정석 미국 훈남으로 생겼죠? 여자 아이는 정석 미녀는 아니지만 매력터지는 스타일이었고..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웠었네요 ^^

아이리시스 2012-01-18 15:43   좋아요 0 | URL
LAYLA님 안녕. 저 예전에 알라딘에 둥지 틀기 전에 LAYLA님 서재 많이 놀러갔어요. 제가 댓글 남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 영화 좋다는 글 보고 본 건데, 역시, LAYLA님이랑 소이진님은 보셨네요. 귀여워요. 그즈음 어릴 때 추억들이 몇 개 있는데 막 떠올랐어요. 저는 학교는 아니고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동네에서 ^^

blanca 2012-01-1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보고 싶어지는 플립인데요? 넘 사랑스러워요. 브라이스가 줄리를 잃지 않는 방법, 이것도 넘 귀여워용. 처음 쓰는 이야기는 뭐든 자기 자신한텐 가치 있는 것 같아요. 첫사랑, 첫애처럼요. 빨간 머리 앤! 아래에도 있네요. 이 책, 이 만화를 보면 자동으로 유년이 환기되는 것 같아요. 두서없는 댓글이 되어 버렸는데 사랑스러운 페이퍼였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1-18 15:46   좋아요 0 | URL
딸이 좀 더 크면 좋겠지만 지금도 같이 봐요, blanca님. 내용을 모두 알아버리셨어도 참 사랑스럽고 재밌을 거예요. 저도 blanca님처럼 빨강 머리 앤을 책세트로 보고 싶은데(저 1권만 있거든요) 그걸 읽을 엄두가 안나요. 아래 DVD는 꼭 사고 싶어요. 근데 드라마화로도 몇 번 됐는지 여러 개가 있어서 하나 보고 나면 또 볼까 의문이에요. 저는 플립이 좋다는 소문 듣고 본 건데 좋더라고요. 애들만으로도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얘기를 만들어내는지^^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1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좋아했던 이웃 소년들이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부산의 김태희잖아요~~

전 다 지나고 알아채는 타입이라 재미없는 여자죠.눈치없고 분위기 없는...켁

아이리시스 2012-01-18 15:51   좋아요 0 | URL
현맘님, 저는 김태희가 아닌걸요. 현맘님만 그렇게 상상하시는 거라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웃 소년들은 아니지만 어릴 때 꽈배기 공장이 있던 동네에, 다세대 주택 바로 옆집에 한 살 많은 오빠를 저는 좋아했어요. 예쁘게 보이고 싶었어요. 저는 그때 못 생겼지만 꽤 똘똘했는데 ^^

눈치없다고 지금 연애 시작할 때 저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근데 알아도 안다고 어떻게 얘기해요? 연애를 시작한 지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안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01-18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내용으로 봐서는 믿고보는 롭라이너 영화 같네요. 저는 영화도 영화지만 초반부에 얘기하신 <바둑 두는 여자>라는 책에 아주 흥미가 가네요. 바둑 둘 줄 아세요? 아..개인적으로 바둑 잘 두는 여자보면 너무 멋있어요. 바둑 TV 같은데서 얼굴 찡그리고 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류기사들이요. (저는 바둑을 나름 '좋아만 하고' 잘 못 둡니다.)

아이리시스 2012-01-18 15:54   좋아요 0 | URL
역시 귀여우신 소이진님과 LAYLA님이 벌써 보신 거라는;; <바둑 두는 여자>를 저는 중국소설을 거의 모를 때 읽고 중국소설의 대표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는요, 중국일주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요. 그러다가 북경에 가려고 티켓까지 사려했는데 그냥 못가게 되었어요.

맥거핀님 저는 바둑 못 둬요. 오목이라면 잘해도ㅋㅋㅋ 예전에 배우긴 한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없는 거더라고요. 괜히 다시 배우고 싶어요, 멋있다니까!!

2012-01-18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다들 어떻게 알고 보신 걸까요.
영화도 소설도 탐이 납니다. 기회 될 때...
여튼 연애를 하면 아이도 자신을 어른으로 느끼는군요. (겪어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말이에요.) 그리고 중고생의 이벤트 연애보다 대학생의 자기애 충만한 사랑보다, 그보다 더 순수한 사랑은 그 전 나이에 있을 수 있는 것이군요. 여러 모로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1-18 15:56   좋아요 0 | URL
정말로요. 애들은 자기들이 다 컸다고 느껴요. 지금 볼 때 고등학생들이 애기 같아도 그때의 저는 제가 다 컸다고 느끼잖아요. 섬님, 오랜만인 거죠? 저는 막 좋다고 보기에는 제가 좀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릴 때 동네의 저는 이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순수함이 듬뿍 담긴 예쁘고 아름다운 영화였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Shining 2012-01-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은 정말 여러가지를 보고 읽으시는군요. 감탄하게 됩니다+_+
미드 <24>와 <힐링캠프>와 영화와 책까지, 언제 다 하시는건가요?ㅋ
저도 이런 알콩달콩한 영화를 보고싶은데, 어제 <밀레니엄>을 봤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1-18 16:00   좋아요 0 | URL
[24]는 이제 오늘로 시즌5를 끝내요. 제가 1월 들어 시즌3를 시작했는데 6일마다 시즌 갱신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4개 남은 에피소드를 나중에 저녁에 꼭 보려고요ㅋㅋㅋ 근데 그건 샤이닝님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알라디너들도요. 어떻게 일하고 책읽고 그것도 이렇게 꾸준히 많이! 가능한지 상상을 못하겠어요. 저는 하나만 해도 늘 뻗어버려요. [밀레니엄] 재밌었어요? 저는 스웨덴판 봤는데 영화보다 책이 더 낫겠다 생각했어요. 그냥 그럴 것 같다고..( '') 스웨덴 겨울풍경은 정말 아름답던데요. 할리우드판이 더 별점이 높던데요. 샤이닝님도 꼭 플립 보세요^^

마녀고양이 2012-01-18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님 요즘 어때요?
그래도 영화 리뷰는 열심히 올리시니, 잘 계시는거 맞죠?

밑에 <브라이스가 줄리를 잃지않는 방법>이 참 좋네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생각나요.
난,, 저런거 참 좋더라, 사소하고 아껴주는 저런 문구.

아이리시스 2012-01-18 16:0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마고님. 저는 잘 살아있어요. 아무 것도 안해도 시간이 잘 가서 어제는 몸이 나른해서 뻗어버렸는데 오늘은 또 괜찮아요. 잠 엄청 자버렸어요. 맞다, 그렇지 않아도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마고님이 좋다고 하신 거 안까먹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보려고 해요! <플립>은 모두 좋아할 만한 영화니까 마고님도 코알라도 꼭 보세요^^

마녀고양이 2012-01-18 16:12   좋아요 0 | URL
까먹을까봐 <플립>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굿 다운 로드 받아서 봐야징~

아이리시스 2012-01-18 16:26   좋아요 0 | URL
굿 다운로드 짱!!! 저희는 집에서 쿡 TV 컨텐츠비 얼마나 나가는지 몰라요. 엄마가 자꾸 드라마도 돈을 내시려고 해서 약간 불법 다운로더가 되긴 했지만요ㅋㅋㅋㅋ
 
포미니츠 SE (2disc)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 모니카 블리브트리우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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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고 있을 때 엄마는 홈쇼핑에서 검은콩과 땅콩&호두 맛의 대용량(크다는 뜻 아니고 많다는 뜻) 두유를 구입했다. 주문했으니 택배 아저씨를 외면하지 말고 잘 받으놓으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아니라 엄마가 두유를 맞이했다. 무거운 박스를 경비실에서 낑낑대며 들고올 뻔 했으니 이런 구세주여. 스물 네 개들이 네 박스. 자그마치 아흔 여섯 개. 내가 허리띠 졸라매야 되니까 당분간 홈쇼핑에서 뭘 좀 사지 말라고 바로 어제 얘기했는데, 푸하하, 엄마 또 질렀어ㅋㅋㅋ 이왕 산 거 맛있겠네, 식전에 하나 받아들고 낼름 빨대 꽂아 몇 모금, 그리고나서 김치볶음밥을 먹었는데 그만 배탈이 나는 바람에 먹다 남은 두유는 식탁에 놓고 화장실 다녀온 다음 혹은 한끼 식사 더한 후 또 한 모금, 다시 배가 살살 아파질 것 같은 기우에 또 식탁 위. 이게 바로 하나를 세 개처럼 먹는 방법이다. 96개를 언제 다 먹을 거며, 이걸 다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탈이 날지 무서워졌다. 그리고 <포 미니츠>를 봤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보려고 고른 영화지만 크리스마스즈음부터 연말까지 북적북적 부웅 하고 뜬 마음은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정작 크리스마스는커녕 연말에도 단 한 편의 영화조차 보지 못했다.

 

두유와 <포 미니츠>는 어쩐지 잘 어울려서 하루쯤 밥 안 먹고 커피 안 마시고도 거뜬할 것 같다. 행복하다. 전기매트의 온도를 한껏 올려 엉덩이가 뜨거울 만큼 따뜻한 곳에 앉아있자니 안락함에 벅차오른다. 노트북 옆에는 읽어볼까 하면서 방금 책장에서 뽑아온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제발 날 좀 읽어주세요, 소리친다. 못 읽어줄 것 같은데, 새삼 너무 두꺼워보여. 

 

처음에는 4분이라는 제목을 가진 촌스러운 영화에 대해 써볼 생각일랑 없었다. 제목이 이게 뭐야. 영어로 바꾼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 적막함을 못 이겨 틀어둔 영화가 30분쯤 혼자 재생되고 있는 걸 몇 번 건성으로 눈길 주었던 영화다. 껌뻑이는 눈으로 보다가 반쯤 눈을 감기도 하고 졸고 그러다 푹 빠져버렸다. 일어나서 맨 정신으로 봐야겠다 하면서 다시 일어나 끄고 잤다. 영화는 무의식과 무지로도, 혼돈과 적막 속에서도 봐지는 거란 걸 깨닫고는 경이로웠다. 피아노 연주(연습)가 나오기 전이었는데도(지리한 스토리였는데도) 홀랑 빠져버린 것을 두고 그 흔한 "감동"이라고도 못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음악영화가 좋았다. 평범한 사람의 천재성을 아름다운 하모니와 연주의 혼합으로 그릴 때 감동은 뻔할 만큼 닳아있는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웠다는 것과 학창시절 예고나 음대를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는 사실만으로 피아노는 특별했다. 클래식을 들을라치면 꼭 피아노로 연주된 곡만을 원했다. 씨디도 그렇게 골랐다. 그런데도 내 인생이 아니 내가 피아노를 피해버린 건, 피아노를 전공하면 정말 하고 싶은 작곡도 배울 기회가 생길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도 나는 종종 피아노를 지겨워했고, 악보 없이 즉흥연주 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다 그렇게 하던데, 난 악보 없이는 아무런 건반도 누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음악천재가 아니었다. 악상이 절로 생각나고 마음 가는대로 변조하여 연주하는 황홀스런 연출은 진정 천재적 피아니스트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orz

 

예고와 수능 예체능반과 예술대 음대 같은 것들의 특수성을 스폰지보다 가볍게 버린 나는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길이 내 길이 될 수도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나 두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보면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종종 떠올려보는 것 외에 내 인생은 피아노와 어떠한 관련도 없다. 엄마가 거실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피아노를 자꾸 버리자고 하는 것과 싸우는 일 말고는.

 

나와는 반대로 <포 미니츠>의 제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도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는 아이다. 피아노를 쳤었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아빠가 원하는 것만을 칠 수 없었던 그녀는 피아노를 버렸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크뤼거는 어느 날 행동과 말투가 거칠고 난폭해서 교도관조차 혀를 내두르는 냉소적인 제니를 만나고는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거부하는 그녀에게 억지로 피아노를 가르치려 한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여느 때처럼 분노와 발작에 휩싸여 담당 교도관을 때려눕히고 감금되는 제니가 안쓰럽고도 아쉬운 크뤼거는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장에게 제니의 피아노 콘테스트 참가 허락을 받아낸다. 이제 매일 제니와의 피아노 연습을 진행해야 하는 크뤼거는 피아노 뿐 아니라 아직 작고 여린 여자아이의 투정과 상처, 외로움과 침잠하는 자아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좋아지는 관계에도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제니는 시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고 교도관은 연습 중에도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다. 거대한 벽 앞에 닫혀가는 서로의 마음들. 

 

제니가 교도소에 온 이유, 크뤼거가 오랫동안 매일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이유가 설명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황홀하고 아름답다. 나이를 뛰어넘은 두 여자의 우정, 서서히 열려가는 마음과 싹트는 믿음, 서로의 비밀공유, 예술혼으로 결합되는 잔잔하면서도 안고 싶어지는 거대한 피아노 선율까지 감동의 준비와 발사를 온몸으로 갖춘 완전한 영화다. 눈치 챘겠지만 영화는 내내 제니의 첫 연주 "4분"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가 제 안의 슬픔, 분노, 오열, 자아, 고독을 온전히 꺼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크뤼거가 되어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가슴 졸인다. 때로는 제니가 되어 연주를 하기도 하고 작은 가슴 안에 흐르는 예술의 혼을 쥐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4분"은 더없이 황홀했다고 많은 리뷰가 쓰고 있었다. 새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였다고 쓰지는 않으려 한다. 그저 연주, 누구보다 멋졌지만 누구와도 달랐던 미숙하기만 했던 말썽부리는 발작쟁이 제니의 연주만을 가슴 깊숙이 기억할 것이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지만 어느 곳에서나 온다. 가슴 안의 감정들을 폭발시킬 수 있을 때에, 어떤 것을 제 진심을 다해 온 마음으로 잡으려 할 때에, 같지 않지만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니가 무엇을 하든 내가 지켜보고 웃어줄 것이라는 마음이 집결할 때에 비로소 기적은 일어나고 감동은 탄생하며 한 편의 영화는 사소하기 그지없을 지라도 내게 최고가 된다는 것을, 아직 모자란 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2012년은 겨우 일곱 번 째 날을 지나고 있을 뿐이니까. 앞으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계획은 사소하고 큰사람이 되기를 바란 적 없지만 감동있는 해가 되기를, 감동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꿈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이었음을 뒤늦게나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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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1-0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유가 무려 아흔 여섯개나 있다는 말씀이신가 말입니다!
ㅡ크으, 또 제가 두유 킬러인데 부럽습니다... 요즘에 그러고보니
집에 두유를 사놓질 않네요. 생각난김에 말해야겠어요.

포미니츠 은근히 멋진 이름인걸요 제게는 ㅋㅋ
게다가 음악영화라는 말입니까... 하아, 또 한 번 구해봐야겟군요 ㅠㅠ

아이리시스 2012-01-09 14:57   좋아요 0 | URL
며칠 지나버려서 두유는 많이 사라졌어요, 소이진님ㅋㅋㅋ
이게 독일영화라 지루한 것까지 견디며 보라고는 못하겠어요.
어릴 때는 그런 게 좀 싫지 않아요?
재밌는 걸로 봐요, <어거스트 러쉬>나 <비투스>가 더 나을 것 같아요^^

월요일 잘 보내요~^-^

프레이야 2012-01-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도 꿈이 하늘에 닿길 바래요. 풍선처럼 두둥실 기분좋게 높이요~~
이 영화 가슴 아프더군요.
그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어른의 몫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 천재소녀의 광적인 4분 연주가 무척이나 강렬했던 기억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1-09 15:00   좋아요 0 | URL
히히,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제 올해 결심은요, 일단 봐야지 하는 책은 망설이지 말고 다 사는 거예요.(기준이 까다로움)
저는 읽는 것보다 사서 모아두는 게 더 귀찮아서(집에서 안 읽은 책이 차이면 정말 싫어요-_-;;)
책이 있을 곳은 도서관이나 출판사나 서점 이라고 생각하는데요ㅋㅋㅋ

천재소녀의 4분은 굉장했어요. 건반을 누르지 않고도, 몸으로도 하는 연주라..
역시 천재는 다른 거였어요, 프레이야님ㅜ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쇼핑은 아니었지만, 그 두유를 맛 종류별로 6박스나 사서 쟁여놓고 먹고 있는 1인..ㅋㅋㅋ
아침에 나갈 때 하나씩, 어디 갈때 하나씩 들고 나가고, 밤에 뭔가 먹을 거 없나 두리번 거리다가 하나씩들...
그래도 아직 2박스가 남았는데 그래도 본전 뽑았다 싶어요.

피아노 전공을 생각하셨다니...그런데 안하시길 잘 했어요..ㅋㅋㅋ
난 잘 모르지만, 전공하는건 많은 희생을 부르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은.
그냥 취미가 좋지 않을까..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1-09 15:12   좋아요 0 | URL
아는 언니가 있어요. 언니는 정말로 예중,예고,음대 나와서 유학을 생각하던 찰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세상에, 사람의 인생은 정말 한 순간에도 바뀔 수 있는 거더라고요. 재능도 함부로 과시할 게 못되고,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언니는 재능도 있는데다 공부도 정말 잘했어요. 임용고시 준비하고 있어요. 음대만 다녔는데 교직이수가 힘들어져서 교육 대학원으로 갔어요. 순식간에 다른 진로를 택해야 했던 언니도 얼마나 엄청난 스트레스였을까요. 전에 갔었던 결혼식장은 그 언니의 오빠 결혼식이었어요. 제가 여러 사람 낚았던;;

두유는 자꾸 손이 가고 걱정도 한 트럭이고 그래요. 우유가 체질에 안 맞아요. 음식 탈이 많이 나요, 저는. 고기도 1주일에 1회 이상이면 어김없이요. 현맘님, 근데 두유는 살이 안찌나요? 이렇게 달콤한데?ㅋㅋㅋ

Shining 2012-01-10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건 모두 문재인씨 때문이에요(흑).
요즘 자는 시간도 부족해서 알라딘도 못 들어오고 참고 있었는데ㅠ
하지만 어차피 날아간 잠, 글도 쓰고 아이리시스님 서재도 들어오고 좋네요^^(하지만 눈은 벌겋다는거;)

이 영화 오랜만에 보네요, 저는 몇 년 전에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봤어요. 관객들 몰입도가
굉장히 좋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나요.

감동과 꿈도 빌어주시고, 어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려나봐요(후훗). 마지막 문장, 그대로
아이리시스님에게 돌려드릴게요. 이런 글 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1-10 18:08   좋아요 0 | URL
엉뚱한 뉴스 보느라 앞부분 잠시 놓쳤는데 참 좋았죠 오랜만에 호호호. 따뜻하고 정겨웠어요. 정말 힐링되는 느낌. 저는 다른 천재들은 별로 안부럽고 남의 얘기네 이러고 마는데 피아노는 아쉬운가 봐요. 그래서 피아노 연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그래요. 좋아하는 것이 많이 안다는 것과는 달라요;;

근데 샤이닝님, 뭐하신다고 잠이 모자라신 거예요- 그 와중에 방문 받은 행복한 서재의 주인입니다, 저는 행복해요, 와우~@.@ 히히히히. 샤이닝님께도 항상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진심 바라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요.^^
 
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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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에 조카가 넷이나 생.겼.다. 그 전까지는 하나도 없었다. 사촌들이 다 고만고만한 또래에다가 결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했고, 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하는, 이제 우리 집안은 시작이었다. 그런데 결혼이 진행되기 시작하자, 조카가 생기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결혼식과 조카까지는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아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또는 짐스러워하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생긴 것이다. 사촌 조카들을 살면서 몇 번이나 보게 될지, 걔네들에게 이모나 고모라는 호칭으로 몇 번이나 불리게 될지 모른다. 아이들이 귀엽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교과서로만 배웠다. 아무리 귀여워봐야 내 아이는 아.니.다. 내가 낳지 않았다. 그건 아마 내 동생이 결혼하여 친조카가 태어나 나를 고모라고 불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낳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해야 철이 들거나 인간이 된다는 말은 거기에서 나왔을 것 같다. 아기 보면 귀엽고 예쁜 거 나도 알지만 내가 만들고 내 안에서 나온 아이와는 다를 것 같다. 누구보다 이해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낳지 않은 아이다. 그 아이가 다친다 해서 내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고, 그 아이가 없어진대도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싶지는 않을 것이다. 짐작컨대,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가 없으니까 모르는 것이다. 니콜 키드먼의 기분 같은 것. 같은 슬픔을 겪은 니콜 키드먼의 남편 기분 같은 것. 그러니까 베카와 하위가 아들을 잃은 기분 같은 것, 예를 들어, 슬픔, 절망감, 자괴감, 죄책감 같은 걸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안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내 슬픔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간혹 꽤 답답한 기분이 된다. 난 종종 엄마,아빠의 죽음으로 그 문제를 치환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내가 낳지 않.았.다. 이런 나는 결혼해 입양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이런 나니까, 거리두기를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건방질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장담할 수가 없는 걸 보면.

 

언젠가 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것. 모르는 마음이 얼마나 알고 싶은 마음이 되는지, 이건 공부도 아니고 책으로도 배울 수 없어서 어쩌면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나는 모성애나 부성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스토리에 심히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다. 나도 여자고, 가정적인 사람인데, 아예 모르지는 않겠지만 시어머니께 아이 맡겨놓고 바깥 일 하면서 아이가 조금 넘어지거나 데었다고 팔짝팔짝 뛰거나 동동 거리면서 시어머니에게로 모든 탓을 돌려버리는 아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기가 키우든가. 그래서 말인데, 엄마는 자기 아이가 소중한 만큼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기 아이가 그토록 소중한데 어째서 다른 아이에게는 친절하지 못하는가. 먹이사슬의 관계에서 가장 공감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할 때 나는 분노를 넘어 짜증스럽다가 어쩔 때는 슬픔을 느꼈다. 다른 아이에게 처할 수 있는 일이면, 자기 아이도 처할 수 있다. 내 아이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면 다른 아이에게도 생길 수 있고, 자기 아이를 용서할 수 있으면 다른 아이도 용서할 수 있다. 안될 일이란 게 세상에 없다. 여기까지는 사족. 나는 요즘 영화가 아니라 영화 보는 나에게 몰입하느라 한껏 들떠있다. 영화가 궁금하면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보시라. 리뷰에는 영화 이상의 내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다.

 

니콜 키드먼의 히스테릭한 연기에 물이 올랐다. 아름다운 그녀는 최근 몇 년간 정말로 아름답게 나이 먹어가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파란 눈의 여자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좋아하는 헐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과 나오미 왓츠에 의해 느껴가는 나날, 베카로 분한 그녀가 남편과 함께 아이 잃은 부부들의 슬픔을 나누고 공감하며 치유하는 모임에 나갔을 때 느끼는 다 부질 없다는 감정도, 남편 하위가 그곳에서 어떻게든 부부 사이를 회복하고, 아들 잃은 심정을 다스려 아내와 잘 살아보려는 행동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슬픔을 다스리는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둘이 함께 낳아 사랑을 주며 키웠어도, 아빠와 엄마의 애정의 깊이가 다르다. 이상한 일이지만 애정이 달라서가 아니라, 내면을 다스리는 슬픔과 치유의 작동 매커니즘이 달라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아들과 함께했던 비디오 영상을 보며 밤마다 눈물짓는 남편과 동생이 낳은 아이에게라도 아들의 옷을 입혀 아들을 느끼고 싶은 아내. 자신에게로 향하는 모든 애정과 소통의 끈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리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세상 속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는 남편이 있다. 비교적 일상 속에서 이들은 행복한 듯 보인다. 그래, 슬픔이 어떤 사람 안에 온전히 농도 100%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어쩌면 착각. 차례로 찾아오는 낮과 밤을 차례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오면, 그땐 절망의 나락으로 치닺는다. 슬픔이 바닥을 칠 때까지 자신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꺼내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몫.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두 부부가 위안을 찾은 방법은 아쉽게도 바깥을 통해서였다. 슬픔을 다스리는 방법이 달랐던 두 사람이 비슷한 사람을 만남으로서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 그룹에서도 꼼짝 않던 이들을 움직이게 한 건 하느님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사람이었다. 실수를 되새기고, 남아있는 원인을 원망해보고, 행복을 밀어내고, 안락함을 추방해도, 궁지에서 인간은 동아줄을 붙잡아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하기에. 일상 와중에 문득문득 찾아드는 아들의 흔적을 간직해야 옳을지, 그 반대일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의 슬픔은 이해나 공감과는 별개로, 오롯이 내 것일 수가 없는 것이 진리다. 집을 팔고, 옷을 버리는 일처럼, 간직하거나 내버리는 것은 슬픔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울음의 강도로 슬픔을 판단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베카는 자기 엄마의 같은 슬픔에도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이든 자기 상처가 제일 크다고 재단해버린다. 그 틈에 눌린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안에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겠지. 언젠가 구멍이 생길 때까지. 누군가를 잃은 자리를 또다른 것이 대신한다는 말을 나는 믿을 수 없다. 내 슬픔이 당신 것이라는 것도.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것들 중 오로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면 그것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의 나락에 있을 때에는 누군가가 내 슬픔에 공감한다 해도 가식으로만 보인 적이 많았다. 공감이 진심인 줄 알면서도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용서와 화해, 소통과 공감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보편적으로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강조하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치유보다 타인의 배려가 나았던 적이 없었다. 결국 길어올리는 슬픔의 주어는 나였다. 내 몫이었다. 바깥을 돌아보았다. 세상이 내 편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다 주고 싶은 적도 하나도 갖기 싫은 적도 있었다. 베카와 하위를 이해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슬픔을 이해한다기보다,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한다. 하느님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듯, 냉소와 무관심으로 자위하면서 잊혀져가기를 기다린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아들과 관련된 흔적들, 집과 개, 옷을 버리려는 아내와 아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두고 그리워하며 일상을 찾기를 원하는 남편. 천사가 된 아들은 어느 것을 더 좋아할까. 감히 부모의 불행과 몰락을 바라겠는가. 정답은 하나지만, 때로 그 정답을 찾아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들. 그래서 신은 몰두와 열정과 망각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잊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몰두와 망각 뿐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곁을 떠나고 바꾸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위한다.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아이는 더군다나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부모들은 그것을 안다. 같은 그룹에 있던 개리로 인해 깨어지는 가정을 보고만 하위는 다시 베카에게로 돌아와 그녀를 감싸안으려 한다.

 

실제로 위태위태한 가정이 아들의 죽음으로 결합되는 것도 봤고, 이혼만 보류했지 10년째 따로 살며 딸을 결혼시키는 것도 봤다. 그때마다 의아했던 건 의외로 단단해 보이는 가정도 들여다보면 흠이 있기 마련이고, 작은 흠만으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베카의 아픔을 겪었던 베카의 어머니가 말한다. 절대로 괜.찮.아.지.지.않.는.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주머니 속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넣고 걸어가는 것 같은 인생이지만 그것이 없어진 아들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그마저 소중하다고. 아파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충고였다. 깨지거나 합쳐지거나, 둘 중 하나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부 사이. 영원히 하나란 없는 가깝고도 먼 친구. 동반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떻게 지리한 시간들을 견뎌나갈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용서하고 내려놓을 것인가, 미워하며 지고 갈 것인가. 평행이론이 이런 식으로 씌여 위안을 줄지는 몰랐지만, 그래, 내가 하필 조금 슬픈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려나. 그리워하는 것보다 있을 때 지켜주는 것이 영원히 더 나은 일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돌멩이, 그런 돌멩이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밖에. 아들이 부모의 몰락을 바랄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부모의 행복, 그것이 자식의 행복이니까. 언제, 어느 순간이든 그것만 기억한다면 아이 잃은 부모가 불행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 시간을 들여 보고싶은 영화는 아니었는데, 누구나 돌멩이 하나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잡았다 놓았다 한다는 것을 알고나니 세상이 조금만 슬퍼졌다. 구성도,연출도,스토리도 지극히 평범 또 보통인데, 마지막 장면, 손 꼭 잡은 부부가 왜 이렇게 부럽기만 한지. 스포일러가 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그들이 서로에게 돌아가서 정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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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이리시스님 요즘 폭풍 리뷰, 페이퍼 날려주시는걸요!
나도 지금 영화 리뷰 쓸거 3편 있는데 아이리시스님의 미친듯한 필력에 제가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ㅠㅠ

아이리시스 2011-12-28 17:15   좋아요 0 | URL
3편이나 있어요? 버럭!!!!!!!! 써주면 잘 읽을게요. 그렇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고ㅋㅋㅋ 저보고 미친듯한 필력이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게 쓰는 게 질을 높이는 방법입니다.(응?)

저는 지금 다음 페이퍼를 준비중. 근데 이건 좀 오래 걸리겠어요! 보름 정도ㅋㅋㅋ

맥거핀 2011-12-2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특이해요. 래빗 홀. 토끼구멍.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래요? 아이리시스 님의 리뷰를 보니 아무래도 영화 내내 힘들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주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일 듯 싶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좋고 알찬 리뷰를 쭉쭉 뽑아내면 어떡합니까. 일주일에 한 편 쓸까말까한 사람도 있는데..동종업계(?)에 있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아이리시스 2011-12-28 17:09   좋아요 0 | URL
토끼구멍에 진정한 스포일러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로 착한 영화라서 숨을 안 쉬어도 별로 힘들지가 않아요. 히스테리 부리는 걸로 보여요.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는 아이를 잃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중점을 뒀으니까요. 일주일에 한 편 쓸까말까한 맥거핀님 리뷰는 엄청 길고 알차고, 저는 그렇지 않잖아요. 동종업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1-12-29 0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2-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돌멩이 때문에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돌멩이 때문에 함께 있는거 아닐까 싶어요.
마음 속 돌멩이 하나 없다면, 무엇하러 타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붓겠어요?
알라딘 서재에서 만난다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자기 자식에 대해서 말한다면, 더욱 걱정도 되지만 지나치게 걱정도 되더라구요. 그런거죠,
이성을 제대로 챙기지 못 하고 내 아이가 당하면 더욱 승질나고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잘나면 좋겠고
나의 아이를 통해서 내가 못 다 이룬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삼촌이나 이모나 고모가 더욱 현명해질 때도 많은거 같아요. ^^

아이리시스 2011-12-29 14:56   좋아요 0 | URL
돌멩이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한때는 돌멩이가 제게만 있는거라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돌멩이가 슬픔일 수도 있지만 분노나 아픔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무언가에서 점점 벗어났어요.

이 영화는 [퍼펙트 센스]보다 그렇게 다가오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부부의 심리를 그리는데 부부가 되어본 적도 아이도 없는 제가 이해할 수가 없죠. 제가 저 상황이라면, 이라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했달까. 어줍잖게 안다고 했었던 것들을 이제는 모르게 됐어요. 하지만 아이가 없어지는 영화 같은 걸 아이가 생겼을 때도 보고 싶을까요. 이런 주제로 미스터리,스릴러,드라마 영화나 책 너무 많아요. 올해 읽은 것만 해도 벌써ㅠㅠ

2011-12-29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1-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멩이라는 표현이 좋네요. ㅋㅋ

자식 잃은 슬픔을 생각하니, 이렇게 큰 일을 당하지 않고 사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생각 들어요.

나이 한 살씩 먹어가면서 이젠 큰 행복을 달라는 기도 대신 큰 슬픔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게 욕심이 작아지는 것이겠죠.^^

생각 깊은 글 쓰신 아이리시스님에게 좋은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