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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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두드리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정식 암기는 수면 중에 이뤄진다던 강사의 말은 실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잠은 더이상 죄책감을 실어나르진 않았다. 그때 만났다. <고령화 가족>은 읽었는데 늘 이 책이 명치에 걸려 있어서 최근작을 읽기 위해 먼저 읽었다. 폭발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현실로 꿈으로 삶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갉아먹었다. 빠져들기 쉬웠기에 나오기도 쉬웠고, 다시 들어가기도 쉬웠다. 시도때도 없이 먹히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했다. 8년째 책장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이 이것 뿐인 건 아니었다. 장식용이었던 시절, '스토리'는 무작정 매력적인 소설의 요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읽지 않았다. '폭발하는 힘'이나 '이야기의 끊임없는 향연'이란 뻔한 수식어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는 없나 싶던 우려는 금세 반감되었다. 내 영역이 아닌 곳을 넘본 것 같은 민망함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한 줌 쥐고 머리로 걸러 손으로 타이핑 했을까. 나는 비로소 내 안에 존재하던 모든 이야기를 지웠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잘 안다.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은 사실 쓸 거리가 없어 쓰지 '못하는' 거란 거. 그만큼 표현력은 중요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동시에 충족 되어야 가능한 영역이 소설이고, 서사력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봉이다. 물론 이야기만 하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가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문학인들이 고민해야 할테지만 독자로 존재하는 동안만큼은 골치 아픈 판단을 피해갈 수 있어 좋다. 물론 판단을 종용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흡인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정작 이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앞서 출발한 모든 소설의 서사 앞에 우뚝 섰다. 어디서 본 듯도 하고 들어본 듯도 하며 약간 신파 같고 또 뻔한 여자의 일생이 담겨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소설은 우리 모두의 생활이고 삶이다. 신화이자 전설이고 현실이자 판타지다. 모든 영역에서 이처럼 또렷하고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벽돌공장의 신화는 모든 이들의 삶을 그러모은다. 그들은 살아왔지만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다. 소설의 '실용성'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일테지만 소설이 실용적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고래>를 들이밀고 더이상 책임지지 않겠어,하는 건 문학도로서 아쉽긴 할 것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가깝고도 먼 세상을 묘사한 이런 장면이 고스란히 상상돼서 좋다. 이 소설은 정말로 차라리 영화를 닮았다.

 

그리고 바다를 보았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끝나고 눈앞엔 아득한 고요가 펼쳐져 있었다. 곧 울음이 쏟아질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해의 섬들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멀리서 아른거렸고 그녀가 앉아 있는 바위엔 끊임없이 파도가 부딪쳐 포말이 일었다. 무심하게 고깃배 위를 오가며 끼룩대던 갈매기들이 어느샌가 쏜살같이 해수면으로 날아들어 물고기를 낚아올리기도 했다. (p.49)

 

읽던 날은 하늘에서 강아지가 떨어진 날이었다. 독수리 먹잇감이 될 뻔하다 땅으로 낙하한 귀여운 강아지는 좋은 주인의 품에 날아들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 정도가 어울린다. 금복과 춘희와 이 특이한 모녀를 둘러싸거나 둘러쌌었던 모든 이들의 이야기 만찬으로 초대되려면 말이다. 나보다는 부모님과의 나이차가 더 세기 빠른 이 훈남 작가의 프로필 사진과 약간은 촌스러운 시대에 대한 삶의 수다.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자꾸만 다음 페이지로 빨려들어 얼른 끝을 보고 싶었다. 춘희와 금복과 쌍둥이자매와 노파와 애꾸눈 딸. 남자보다는 여자의 삶에 눈길이 더 갔다. 그리고 춘희와 점보(코끼리)의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에 더 눈물 지었다. 이 시대, 소설은 얼만큼 위로할 수 있나. 얼만큼 소통할 수 있나. 얼만큼 빠져들 수 있나. 문학을 배운 적이 없고 소설가를 꿈꾼 적이 없다던 등단이 늦은 어느 작가의 첫 장편소설 이후 8년. 한국문학의 길이 늘 새로웠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낱 출판사의 작품상 하나가 문단 전체를 뒤집을 순 없을 터, 여전히 고민하고 지리멸렬하며 난삽하고 재미없고 진부하고 뻔하고 미숙하다. 훌륭한 한국문단의 작가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독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기에 만족할 만큼 작품수가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주어(나)와 뻔한 수식어(아름다운 꽃)와 뻔한 연결어를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을 수년 전부터 했지만 늘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결심한 것보다 더 빈번하게 써왔다. 고민의 길에는 정답이 없었다. 시간이 변화를 예고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좋다. 3대로 흘러내려오는 노파-금복-춘희의 삶이, 토속 역사소설처럼 깔리는 배경에도 굴하지 않고 전복해버리는 시공간적 배경, 환상적 수다가 작렬하는 멈춤없고 끝없는 이야기가, 그녀들이 늘 조금 넉살스럽고 단단하고 헤프고 고풍스럽지 않은 것이 전부 다 좋다.

 

그날 이후, 완전히 앞을 볼 수 없게 된 대신 그의 눈앞엔 기억 속에 담겨 있는 풍경들이 아무 때고, 순서도 없이 불규칙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먼 과거에서부터 눈이 멀기 전까지의 긴 시간에 걸쳐 그의 인생을 모두 기록한 사진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유년희 풍경과 전쟁터에서 목격한 온갖 끔찍한 장면들, 그리고 중국으로 건너가 벽돌공장을 다닐 때 보았던 낯선 이국의 풍경들, 그리고 떠오를 때마다 언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가족들의 얼굴, 또한 버드나무 아래에서 벌이던 금복과의 정사와 혼자 남발안에 남아 벽돌을 굽고 있을 때의 한없이 쓸쓸했던 겨울의 풍경 등, 그의 전 생애에 걸핀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필름에 담아둘 수 있었다면 한 평범한 사람의 생애에 그토록 많은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 또한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토록 많은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는 한편, 인류학과 사회학, 역사학과 심리학 등 여러 인문학 분야에서 더할 수 없이 귀한 자료가 되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 모든 장면들은 몇 년 뒤, 그가 버드나무 아래 개울가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p.266)

 

文은 이웃소년, 어부, 걱정, 생선장수, 칼잡이 등 그밖의 모든 금복의 남자 중 가장 오래 남는다. 집안력으로 눈이 멀어갈 때나 의붓딸 춘희에게 벽돌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점보 잃은 그녀의 새 친구가 되어준 것, 금복에 대한 소유욕이 집착적이지 않은 것 등 온통 외로움과 고독으로 뭉친 사내지만 그의 눈이 멀었을 때 본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한 사람의 생애가 남긴 이미지가 위 네 문장에 보편성을 띤 채 담겨있다. '고래'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광경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고래문양으로 만들어진 금복의 영화관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얼마나 많은 고래들의 인문학이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인가. 삶이 하나의 수수께끼 혹은 미로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수련은 은교 같다. 이미 여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남성성을 획득하려 하는 순간 금복에게 수련은 다시 태어나면 훔치고 싶은, 젊고 아름다워서 훼손하고픈 대상이다. 결핍과 질투는 계열이 같고, 젊음과 늙음, 남자와 여자, 세대는 필연적으로 전복된다. 전반적으로 전쟁 겪은 세대가 금복이라는 여성의 권력에 의해 주물러지는 현실이 그렇다. 남자의 꿈은 여자의 영역에 존재하고, 단 한 번도 금복을 능가하는 남성성을 가진 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술술 흘러간다고? 작가는 여자가 아니면서, 여자 금복에게 남자를 투여했다. 그러고보면 이 소설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 중 없는 이야기가 없고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다. 신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기 전에 이 둘은 하나였다. 성이 전복되는 순간 이야기는 성경, 전설, 신화, 구전 등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채 진행된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것들(불온한 것들)이 이해도 되고 수긍도 되고 동의도 되고 그런 것 같다. 바깥에서 보기에 고래는 그저 거대한 한 덩어리일 뿐이지만 고래(상어) 뱃속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크고 넓은 각각의 방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바깥의 화자와 속의 화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고래 등과 고래 뱃속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면서 확장했다 축소했다를 반복할 수 있는 읽기다. 남은 기간이 길면 세세한 부분을 보고, 시간이 짧을 경우 전체적으로 덩어리를 기억하라던 말은 암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마 그 방법이 이 시대 소설의 영역확장에도 도움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흡인력은 숨가쁜데 앙금처럼 남은 이 미친 몰입감의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작가는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나를 끌고 들어갔단 말인가. 삼키면 언젠가는 뱉는 것이 세상의 이치건만 여전히 당혹스럽고 낯선 영역이 단지 나만의 체험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그나저나 춘희를 빼먹었네. 얘는 왜 이렇게 몸매,성격,운명 뭐 하나 멀쩡한 데가 없는데도 자꾸만 자꾸만 예뻐해주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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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5-2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작년에 읽었어요, 꽤 늦었죠. 그 전에 이미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고령화 가족>을 읽은 터라 더 인상깊게 여겨지더군요. 21세기에 쓰인 가장 놀라운 (한국)장편소설, 이라는 건 확신할 수 없지만 최고의 등단작 중 하나인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신인이라서 그런건지 신인이라 그럴수 있었던건지. 천명관 씨는 자신의 등단작을 넘기 위해 애쓸 수 밖에 없을거라는 많은 이들의 의견에 얼마간 동의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5-24 21:51   좋아요 0 | URL
재밌긴 한데 저는 소설이 스토리텔링만 가능하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가만보면 내용이 약간 신파같기도 해서요. 시대상이 그래서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는데 이거 읽으면서 내내 <혼불>이나 <토지> 그런 시대극이 생각났거든요. 그런 대하소설에 담긴 엄청난 인간군상이 단권에 담겨있는 건 놀랍지만 신인이기에 가장 놀라울 수 있었던 것과 문학상에 이변을 일으킨 수상작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이 책 사실은 오래 전에 읽으려다 여러 번 관둔 적이 있어서 저는 기대가 좀 없었어요. 유일하게 본 <고령화 가족>도 별로였고.. 가족을 다룬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최근 읽은 소설 중 술술 넘어가고 술술 읽히는 걸로 봤을 때 확실히 흡인력은 있었어요^^

이진 2012-05-2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 아이님 <고래>읽었군요!
저도 마침 팟캐스트 듣고는 읽고보고 싶어서 샀고, 지금 제 책상에 떡하니 얹혀있는데 아이님께서도 읽으셨다니 저도 얼렁 읽고싶어요. 지금은 수행기간이라 빡세서 도저히 못 읽겠고(마음먹으면 읽을 수는 있지만) 음, 내달에 읽을까요.
석식먹으러 가야겠어요. 갔다와서 리뷰 다시 읽어봐야지 ㅎㅎ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5-24 21:54   좋아요 0 | URL
아.. 그..누구지..팟캐스트요? 빨간책방 아닌가. 소이진님 페이퍼에서 봤는데 읽다가 또 까먹..( '') 그거 예고편때부터 기다렸다가 두 번 다 올라온 첫날 들었었는데..(아이팟 충전기 샀으니까요ㅋㅋ) 요즘은 [서정욱의 미술토크]인가 그거 주로 듣거든요. 짧은데 화가 한명한명 시대사조 하나하나의 요점을 확 짚어내주는 것 같아요. :)

수행평가기간..( '') 누나가 뭐 도와줄 거 없어요? 자료찾는 거 이런 거는 해줄 수 있는데.. 석식 먹고 야자하고 피곤하겠어요! 이제 집에 왔어요, 소이진님?

댈러웨이 2012-05-24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이거, 이책도 장바구니에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천명관, 이 사람 무지 셀 것 같은데, 그래요?

뻔한 수식어, 주어, 저도 고치려고 의식 많이 했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아이님, 센 작가들로 요즘 한국 작가들 세 명만 좀 추천해줘요, 라고 나 막 부탁해도 되요? ㅎㅎㅎ
(김연수 성석제 김영하 배수아 한강 박민규 빼고요 =>이 중에는 좋아하는 이도 있고 별루인 이도 있음요.)

왜 배를 두드리고 잤을까? 아이님 잘 때 배 두드리고 자요? 막 이렇게 아이님이랑 친한 척하고 싶은데... 음... 거리 지키기... --;;

잘 자요. ^^

아이리시스 2012-05-24 22:09   좋아요 0 | URL
저도 정상적(?)인 시간에 알라딘 들어오고 싶어요. 어젠 피곤해서 썼던 글 두 편 올리고 쓰러졌어요ㅋㅋ
저는 60년대생들로는 전경린, 하성란, 정미경을 추천하고요. 보편적이지만 신경숙을 제일 좋아해요.('깊은슬픔'이나 '풍금이 있던 자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같은 거요) 세 작가의 책이 신경숙보다 들 팔리는 게 단지 신경숙 작가의 네임밸류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전부 대학 때 읽어서(그땐 작품집들도 좋았는데요, 저는 단편을 워낙 싫어해요, 좀 몰입하면 끝나ㅠㅠ) 지금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70년대생부터는 한국소설 거의 안 읽었어요. 뭐랄까, 한국문학이 주는 아련함이 최근 세대로 올 수록 없어지면서 아무래도 좀 더 동시대성을 갖잖아요. 그게 별로라서요..

배수아는 지나치게 시니컬하면서 난해하고, 한강은 지나치게 감정과잉이라서 스타일이 정 반대지만 둘 다 저는 별로거든요. 그래서 요즘 한국 작가들은 전작 스타일 보다는 잘 선별해서 작품별로 한 권씩 읽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히히히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요ㅠ 누워있다가 잠든 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배를 두드리고 잤을까요ㅠ(두드렸을 수도 있음) 거리.. 물리적 시간적으로도 우린 충분해요, 댈러웨이님!!!

댈러웨이 2012-05-25 16:49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엔 한국 작가들은 단편이 좋더라구요. 반대로 외국 작가들의 단편은,,, 읽은 건 별루 없지만... 영.
추천작가가 전부 여성작가네요. 인상적이에요. 고마워요. ^^

아이리시스 2012-05-26 21:05   좋아요 0 | URL
꼭 여자만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저는 뭘 고를 때 호불호가 명확한 스타일은 아니예요. 그렇게 사니까 발전도 없고 여튼 고집쟁이가 돼서요. 저 원래 한고집 하는데 들키기 싫어요.푸핫. 사람한테도 안그럴려고 해요. 세상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여러명이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ㅎㅎ 좋고 싫은 건 분명 있겠지만 그건 취향일 테니 그것만 접하는 건 치우칠 여지가 많잖아요. 제가 말한 작가들은 댈러웨이님이 다른 분이 아니라 저(!) 저한테 물으셨으니 나름 제일 제 스타일로 호호. 제가 저분들의 소설에 끌렸던 것 같아요. 남의 것을 읽는 것과 내가 쓰고 싶은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읽은 게 별로 없어서 추천이 저렇게 된 거예요. 별로 없어요ㅠㅠㅠㅠ

제가 다시 잘 읽어보고 좋은 거 추천하고, 댈러웨이님이 읽으시고 추천하고, 우리 다시 추천놀이 하면 안될까요?ㅠㅠ

맥거핀 2012-05-24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소설 재미있기는 재미있나봐요. 제가 아는 한 분은 이 책보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때 지나쳤다고 하던데...나도 읽어볼까..오..shining님이 21세기 최고의 등단작 중 하나라고 했군요.

아이리시스 2012-05-25 00:13   좋아요 0 | URL
네! 재밌어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요즘 집중이 잘 안되는데도 이 책만 펴면 잘 읽히더라고요. 오..저 말은 문단에서 했을걸요. 출판사에서 써먹었거나..언론플레이에서 했거나.. 샤이닝님은 21세기 아니고, 최고의 등단작이라고..( '')

맥거핀님 읽어요. 우리 다 읽었으니까 맥거핀님만 보시면 돼요!!! 아, 소이진님도 봐야 되고^^

이진 2012-05-25 00:40   좋아요 0 | URL
오, 맞아요. 21세기 최고의 등단작. 안 읽었지만 왠지 그럴거 같아요.
그런데 첫문장은 제 스타일 아닌 거 같아 보여서 걱정은 살짝 되는데.

아이리시스 2012-05-26 21:0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주말 잘 보내요^^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 융, 둘 사이에서 실험자 혹은 수제자로 활약했던 사비나 슈필라인의 이야기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성적 결핍과 연관시켜 모든 연구를 진행하고, 그의 제자 융은 처음에는 가담하지만 점점 그것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다른 요소의 힘을 깨닫게 되면서 연구에서 빠져나와 무의식 세계를 주장한다. 한편, 어릴 때 아버지의 학대로 피학적 성도착증을 가지고 있는 슈필라인은 이들의 연구대상자로 선정된 여자다. 철저하게 관찰, 분석 당하면서 우연찮게 아내가 있는 담당의사 융과 육체적 사랑(이라기엔 설명하기 불가능한 끌림)으로 발전하면서 아슬아슬한 관계의 끈을 이어간다. 내쳐지기도 하고 연구의 중점에서 영감을 주는 인물로 활약하다가 결국 아동정신분석의가 된다. 영화 속에서 그리는 이들의 갈등은 연구분석 그리고 프로이트와 융이 공유하거나 어긋나는 이론 그리고 둘 사이를 오가는 슈필라인의 대립이 전부다. 또 융의 평생 동반자 토니 볼프와 오토 그로스 박사도 나온다. 이들의 실제 삶을 얼마나 조명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실존 인물들 얘기를 풀어놓는 심리게임 영화라는 점에서, 모든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와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후 대학 때 몇 권 샀던 프로이트를 읽으려고 찾긴 했는데 혼자 읽기만 하면서 소화시킬 양도 아니고 질도 아니고 해서 인터넷 서핑으로 이름 모를 이들의 보고서 겸 글들을 종종 읽었다. 프로이트는 상대적으로 융보다 훨씬 유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이론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왔음으로 그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공부하기에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그가 꿈을 비롯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건 맞지만(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도), 그의 유명세 못지 않게 융의 연구도 유용하고 기발했다. 이건 찾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저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실용적 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정신분석은 물론 여러 심리학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을 찾아보았다. 내게는 이게 좀 더 쉽고 유익할 것 같다. 이론은 조금씩 차근차근 공부하며 읽어나가겠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 책을 보았다.

 

이 책은 내가 얼마나 나를 속이고 있는가, 지금 내가 아는 나는 과거의 나와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이론과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다룬다. 표지가 끌리지 않아 걱정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탄탄하고 훨씬 좋다. 하루키의 <1Q84> 리뷰 얘기를 해보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참 많이 좋아했고, 당시에는 안 읽은 소설이 없을 정도로 전작했으며, 하루키가 보여주는 문학적 세계관은 늘 확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리뷰를 쓸 수 있었다. 1984년과 1Q84년이 교차되는,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대비시켜 이곳에서의 나와 저곳에서의 나를 서로 다른 사람 즉 타인으로 봤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단 한 번도 같은 시공간에 있은 적이 없을 뿐더러,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에고(자아)인 셈이다. 이렇게 텍스트를 읽을 경우, 예를 들어, 그제의 나,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가 전부 달라진다. 각각의 '나'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를 만날 수 없으며, '나'를 찾아 헤매는 또다른 '나'의 노력은 헛수고이며, 이 게임은 계속되는 '나 속이기'일 뿐이다. 이름하여 에고 트릭. 이 책은 하루키와도, 1Q84와도, 프로이트와 융과도 전혀 관련없는 독자적인 책이지만 이런 배경지식과 개인적 기대치를 안은 채 읽었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우리가 접하는 엄청난 수의 영화들이 이미 에고 트릭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반전영화라고 하면 절반 정도는 에고와 에고, 나와 나의 싸움이다. 똑똑해진 관객은 쉽게 속아주지 않는다. 이 책에는 에고 트릭을 겪는 많은 예의 사람들이 나온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아주 커다란 것까지. 때로 삶과 생활 전부를 휘청거리게 하는 이런 것도 있다. 육체는 남자였지만 항상 여자였다고 말하는 어떤 남자는 여자가 되지 않고(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고도) 태어난 젠더에 순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스스로는 물론 세상을 만족시킬 수 없었으니 한 순간도 떳떳하게 행복할 수 없었다. 이들은 불행하다. 마음을 좀 확장시켜 보자. 그들을 인정한다고 하는 것 또한 역차별 발상이며 상관 없다고 하는 것은 더한 차별,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나와 상관 없을까. 만약 내 가족이라면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 있을까.

 

흔한 말, 나를 믿는다는 말은 자아 트릭에서 기인한다. 하루키의 문학을 관통하는 것 또한 굳이 얘기하자면 에고 트릭에서 시작된다. 늘 이 세상과 저 세상, 이쪽의 나와 저쪽의 나에 대해 얘기하고, 또 이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하루키의 문학적 키워드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 하루키가 나오는 건 아닌데 자꾸만 연결시키고 있다. 누구도 누구의 한때를 다 알지는 못하는데, 그걸 알려는 연인들의 과거집착만큼 웃긴 게 없다. 이를테면 우린 각자의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고, 알지도 못하는 영역 밖의 존재니까. 자아에 대한 모든 것. <에고 트릭>을 설명하는 한 줄. 다양한 철학적 관점과 방법론으로 설명하는 이 책은 생긴 것 이상으로 많이 어렵고 난해하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의 주목적이 미래에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를 살펴보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인간성을 조명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자주들 한다. 이 주장이 옳다면,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인간성'이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왔다는 사실만은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가타카>가 그리는 현실은 사람이 유전적으로 조작된 '적격자'와 자연 임신으로 태어나 열등한 '부적격자'로 나뉘는 세계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단순노동이나 지적 작업 등에 맞춰 선택적으로 길러지는 사회도 볼 수 있다. <타인머신>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수천 년에 걸쳐 엘로이와 멀록이라는 두 종족으로 진화해가는 모습을 그린다. <매트릭스>에는 모든 경험이 알고 보면 가상현실인 인류도 등장한다. 그들의 실제 육체는 누에고치 같은 캡슐에 갇혀 있으며,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인체에서 발생되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간성이 고정불변일 필요가 없고, 이론적으로 인간 같은 피조물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pp.274-275)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영화로 설명해주는 부분이 제일 쉽긴 하네. '자아'를 열두 가지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다보니 한 단락 한 단락이 철학자 이름 투성이다. 쉬운 책이 아니라 적어도 기본적 철학지식을 요한다. 이 책에서처럼 자아는 환경과 기질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고 또 아예 달라지거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자아의 개념으로 봐도 둘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현생과 사후 삶 또한 어떻게 생각하는 자아이냐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한, 정말로 끝일 때만 백퍼센트 확신한다. 육체와 자아에서 다중 자아, 사회적 자아, 성격과 자아, 사후의 생까지 나아가는 자아의 고찰이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분명한 것은 어떻게 변하든 한 사람의 존재로서 본질은 변함 없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소중히 하는 것과 나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자아가 어떤 경로로 확장되고 철학적 지평이 얼만큼 넓어져도 변할 수 없는 질량 불변의 진실이다. 

 

 

 

 

 

 

 

 

 

 

 

 

 

 

 

 

20대 초반 어정쩡한 독서가 약이 아니라 독이었음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호기심에 섣불리 손댔던 많은 철학서와 이론서들이 그때 그 도서관에서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 발목 붙잡고 늘어진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지배의 쾌락과 복종의 쾌락으로 관심이 갔다면 사드와 로렌스를 읽으면 됐을텐데 파졸리니의 <살로소돔의 120일>도 충격적이고. 갑자기 예쁜 키이라 나이틀리의 나체열연이 생각나서 이 강렬한 영화 이미지를 이 책들이 깰 수 있을까 싶다. 예고편도 심의반려된 그 가학적 성행위가 나는 전혀 불편하지도 않더라. 욕망이, 그보다 더한 욕망이 세상천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데. 솔직한 게 나쁜 게 아니라 억지스럽고 강요된 행위가 나쁜 것이다. 이성과 욕망으로 모든 것을 풀려던 이 위대한 철학 분석가들의 이론이 오늘날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가는 별도로 하고, 결론 없이 과정만 있는 이 영화가 프로이트와 융의 세계를 아주 잘 그려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의문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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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5-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상사를 인물들의 행적 중심으로 따라가면 참 재미있더군요.누군가를 열렬히 존경했다가 나중엔 실망해서 결별하는 경우를 보면 영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프로이트와 융의 이야기가 그렇죠.한국사람들도 처음엔 프로이트의 매력에 빠지다가 이게 좀 이상한데...하고 의심할 때부턴 융에 관심을 갖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리시스 2012-05-17 17:49   좋아요 0 | URL
융이 사비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프로이트가 틀렸다는 걸 깨닫는 게 영화스럽기는 해요. 둘째줄 셋째줄은 저도 내내 생각하고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상대적으로 융이 덜 알려져서 그렇지 프로이트만 대가는 아닌 듯 한데요.. 저는 지금껏 프로이트 이론이 아주아주아주 절대적인 줄로만 알고 지냈었어요ㅠㅠ

마녀고양이 2012-05-1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에고 트릭이라는 책 잼나겠네요....
프로이트, 융, 아들러, 안나 프로이트, 코헛, 위니컷.... 정신분석에서 뿌리가 나온 이론들을 읽으면
정말 머리가 핑핑 돌아가요. 창시자들은 참 머리가 좋았다는 생각과 함께 복잡하게 생각하길 좋아했나봐 싶기도 하고,
그래서 현실에 적용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복잡한 우리 심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긴 하지요....

다들 천재들이예요, 천재... 아, 내 한계가 너무 분명하게 요즘 느껴져서, 그거 받아들이기 연습 중이예요, 헤.

아이리시스 2012-05-17 17:47   좋아요 0 | URL
네, 마고님께 필요한 책일까요? 심리학이 아니라 철학이라서 너무 어렵게 느껴졌어요. 저는 딱 한 가지만 알겠어요. 제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만 잘난 사람은 없구나.. 철학자들은 제각각 본인들이 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론을 창시했지만 어느 것도 전복시키는 의견이 또 나온다는 점에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제일 대단한 게 아닌가.. 이 복잡한 것들을 다 읽고 이해해야 하니까요..

천재는ㅠㅠ 아무리 어려운 것도 쓴 사람이 있는데 읽는 것 정도는 해야한다는 게 제 독서철칙인데 조금만 파고들면 포기하고 싶어져요. 시작도 못해요. 마고님 한계는 어떤 한계........ 없는 것 같은데요?ㅋㅋㅋ

cyrus 2012-05-1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비나라는 여인은 진짜로 실제 인물인가요? 은근히 프로이트와 융과의 사제 관계가
픽션 주제로 사용되네요. <살인의 해석>이라는 소설도 그렇고요 ^^

위에 마고님이 말씀하셨지만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우연히 심리학 전공 강사님 말씀을 듣은 이후로부터는 막상 공부하려는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정말 프로이트, 융에서부터 요즘 심리학자들의 학문적 사상을 이해하는 데만 해도
학부생 시절 때 머리에 쥐가 났다면서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

아이리시스 2012-05-17 17:43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실존인물 맞아요. 나오는 등장인물 모두 실존인물이에요. 볼 때는 좀 재밌고 네이버 평점도 제 생각보다 훨씬 높던데 저는 영화 자체가 그렇게까지 기발하거나 특별한 건 모르겠어요. 워낙 프로이트와 융에 대해 모르니까 좀 찾아볼 계기를 마련해준 것 빼고는요. 역시 시작은 관심으로, 완성은 전집으로..( '')

심리학 재밌을 것 같아요. 저는 뭘 가르쳐주는 것에 젬병이라서 선생님의 역할이 별로인데 심리학도 사람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비슷하게 느껴져요. 마고님처럼 한다면 재밌어 보이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ㅠㅠ 노이에자이트님 말씀도 맞고요. 프로이트는 요즘 좀 특출나지 않죠. 반박이론이 훨 많고 의심살 수밖에 없는 말을 많이 하던데요..히히. 실상과 동떨어져 보면 재미있는 분야예요. 저는 무슨 '학'으로 끝나는 거 정말 싫어요. 쥐나요ㅠㅠ 행정학보다 행정법이 좋아요ㅋㅋㅋ (비교하는 거 봐라..)

맥거핀 2012-05-18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인저러스 메소드..저 영화 심히 평이 별로라서, 끙..그러고 있어요. 좀 다른 얘기인듯 한데, 인간의 학문에 대한 욕구라는 게 단순하게 지적인 측면에서 발현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프로이트와 융도 저 사비나라는 여자에 대한 어떤 감정(?)이 없었다면 그렇게 대가는 못 되었을듯..(인류사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순수한 지적동기 외에 때로는 정말 하찮은 이유 때문에 연구되고, 탄생한 것을 생각해보면요. 물론 프로이트와 융이 하찮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아이리시스 2012-05-19 00:10   좋아요 0 | URL
우리끼리 말인데 재미없어요, 맥거핀님. 평론가들 평이 별로인 건 이백프로 이해가 되고도 남아요. 학문에 대한 욕구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으로 접근해 독서를 하는 게 낫고, 프로이트와 융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본들, 대다수 책 한 권 안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요. 그런데 극영화의 재미까지 앗아가니, 다큐나 다름 없어요.하하하.(우리끼리만 해야 되는데 공개적으로 말한다-_- 근데 저는 이승기 보면서 <군주론> 읽는 여자잖아요ㅋㅋㅋ 얼마나 기특한 선택인지 요즘 <더킹 투하츠> 완전 울트라 캡숑 짱 재밌거든요!

맞아요. 결국 그들도 지적인 측면에서가 아니고 누군가를 반박하는 이론을 창시하기 위해서, 욕망에 의해 그 또한 전복되고요. 정말로 영화 속에서 프로이트가 이론만으로 자꾸 '성적 결핍과 욕망'을 융에게 설득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근데 이런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좋기란 정말 힘들고 어려울 것 같긴 해요.

Shining 2012-05-1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맥거핀님처럼 이 영화, 혹평만 들어서 과연 보게 될지 모르겠어요_-; 하지만 코스모폴리스였던가요? 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한 영화는 여전히 기대중입니다. 그런데 패틴슨이 잘 생긴 얼굴인가요? 전 정말 모르겠던데_- 근데 영화를 고르는 취향은 조금 예상(예상이래봤자 <트와일라잇>시리즈로 선입견이 생겼을 뿐이지만)외더군요, 이 배우.

그런데 아이님, 갑자기 생각난 건데 로만 폴란스키 뒤는 언제 하실 거에요?ㅎㅎ(놀라셨죠?^^)

아이리시스 2012-05-19 00:19   좋아요 0 | URL
저는 하이틴스러운 <트와일라잇>도 보다가 때려쳐서.. 워낙 그런 거 안 좋아해요. 노력을 몇 번이나 했는데 도저히 못보..( '') 영화가 취향이 아닌 경우 감독,배우는 별로 저한테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고요. <코스모폴리스>가 <데인저러스>랑 같은 감독인 거죠? 예전에 하정우가 고현정이랑 드라마 <히트> 하고난 후 뜨니까 그전보다 훨씬 많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지위가 되었다던 그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원래 그 시리즈가 본인에게 그런 선택 아니었을까요?-_-;(그렇다고 하기엔 이전 필모그래피가 많이 후진데..)

저도저도 로만 폴란스키 세번째 비공개로 쓰기 시작한 그 페이퍼 로그인할 때마다 보면서 한숨 쉬어요.푸하하하. 이런 것조차 몰입과 지속이 불가능한 이런 인격이라니-_-
 
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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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쯤 쓴 헤밍웨이 저작권 만료 페이퍼 후에 딱 두 권을 샀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가지고 있는 옛날 전집에 있긴한데 관심 밖이었다. 예전에 읽은 건 <노인과 바다> 뿐인데 사실 그것도 기억에 없긴 마찬가지다. 읽으나마나. 어쨌거나 처음부터 장편 초기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관심이 있었다. 첫 아내 해들리와의 추억을 담아낸 소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에 나오는 여인이 바로 이 회고록에 나오는 아내일 것이다. 폴라 매클레인은 헤밍웨이가 쓴 1920년대 파리 시절에 대한 회고록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A Moveable Feast)>를 읽다가 해들리 엘리자베스 리처드슨을 두고 말한 대목,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를 마주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해들리에 대한 전기 작품을 읽기 시작했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헤밍웨이와 파리의 아내> 도서상세페이지에서) 그가 계기로 삼았다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또 한 권은 <킬리만자로의 눈>인데 이건 아직이다.(중,단편 편식이라서) 초기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와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번갈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산문체라 더 빨리, 더 현실적으로 잘 읽혔다. 개인적으로 재미는 별로였지만(여긴 파리도 아니고, 파리에는 헤밍웨이를 능가하는 나만의 눈부신 추억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감정이입이 힘들 수밖에) 흥미를 능가하는 소소하지만 특별한 그 무엇이 여기에 있었다.

 

제목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가.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과의 친분과 그녀 집에 드나들던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 피카소가 있었던 것, 뒷부분에 자세히 할애되는 스콧과 젤다와의 인연 등은 이미 우디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봤던 바, 아, 이 책을 토대로 파리에서의 헤밍웨이를 생각하면 당시(1920년대) 거리마다 카페마다 반짝였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파리를 떠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헤밍웨이는 작품을 위해 고뇌하는 외로운 영혼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아내 해들리가 언제나 함께 있으므로 가난과 고독, 무료한 일상을 더욱 풍부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들도 태어난다. 그야말로 평화로움 속에서 일렁이는 풍요로운 삶이다. 경제력으로만 보면 그럭저럭이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야 한다는, 써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기에 단 한 번도 삶의 지위에서 바닥인 적이 없었다. 헤밍웨이의 육성으로 직접 듣는 다양한 파리의 인간군상과 경마 혹은 경륜에 대한 단상, 좋아하고 또 영감받은 여러 명의 작가에 대해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p.51)

 

화려하지 않지만 특별한 일상은 더 큰 화려함보다 더욱 수려하게 휘어잡는다. 걷고, 사색하고, 글쓰고, 책읽고, 다른 작가나 화가를 만나면서 얻은 소소한 영감을 그는 소중히 여긴다. 호오로 가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정해주는 것이 글쓰는 이의 미덕이기도 할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축제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웠다. 가난한 것마저도 탐스럽게 느껴졌다. 배고플 때 빵냄새가 더 고소하게 느껴지고, 세잔의 그림이 더 또렷이 보인다는 헤밍웨이가 뤽상부르와 여느 카페들을 오갈 때, 나도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관심은 작가에 한하지 않고 음악과 그림에까지 미친다. 에밀 졸라, 에즈라 파운드, 스타인 여사,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투르게네프, 고골, 톨스토이, 캐서린 맨스필드, 장 콕토, 콜 포터, 제임스 조이스, 헨리 제임스 등에 대해 얘기하는 모든 의견들이 한 줄기 빛처럼 독서의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한다. 헤밍웨이니까, 파리니까 이 모든 것이 축제다.

 

나는 장편 소설을 써야 한다. 그러나 정제된 문장으로 소설을 완성하려고 애쓰다 보니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장거리 달리기를 연습하듯이 우선 조금씩 조금씩 긴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했다. 전에 리옹 역에서 가방과 함께 원고를 잃어버린 그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앚기 젊음 그 자체만큼이나 허망하고 변덕스러운 젊은 나이의 순진한 정서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원고를 잃어버린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 소설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p.87)

 

파리의 거리마다 책을 파는 노점상이 있고, 무엇 하나 허투루 보는 법 없는 이 젊은 미래의 소설가 헤밍웨이는 당시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원고료로 아내와 함께 알뜰살뜰 살았다. 넘치는 돈은 아니었지만 부족하다면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럭저럭 함께 의논하고 나누며 좋아하는 것들을 사고 하고 즐겼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의미 그 자체로. 그는 파리에 체류했던 20대(1921-1926)를 1957년 가을에서 1960년 봄 사이에 회고록으로 썼다. 그리고 1964년 출간되었다. 덧붙여진 헤밍웨이의 상세한 연대기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사진 컷을 구경하면서 비로소 환상의 그가 실제의 그로 환생하는 느낌이다. 작품을 읽는데 작가를 꼭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영화를 보는데 배우를 반드시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작가를 먼저 알고 작품을 읽는 것과 작품을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자를 실행하려 한다. 기억나지 않는 <노인과 바다>를 뒤로하고 장편소설 대신 회고록의 에세이를 먼저 고른 건 분명 의지였지만 한편 그를 만나는 가장 쉽고 아름다운 방법이긴 했다. 헤밍웨이의 화양연화.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라는 헤밍웨이의 말 전에 나는 이미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 가서 여전히 또렷하지만 약간은 빛바랜 추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내가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파리도 헤밍웨이 못지 않은 나의 화양연화다.

 

가난했다. 모든 것이 없었다. 젊었다. 가장 행복했다. 가진 게 없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간절히 바라고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지독하게 글과 책에 매달렸던 젊은 날의 순간이 바로 나의 화양연화였다. 비록 파리는 아니지만 내게도 그렇게 지금을 표현할 날이 과연 올까.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벗은 채 오롯이 과거로만 쓰인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크다. 아무 것도 없어서 모든 것이 있었던, 가난과 고독이 인생 가장 혹독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그런 날들을 나는 지금 만들고 있을까.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노트르담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생루이섬과 시테섬, 센강의 차가운 반짝임이 아름답다고는 느꼈지만 대부분의 경우 파리는 내 것이 아닌 적이 많았다. 마레 지구로 들어섰다 길을 잃었고, 작가(및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찾아다니다 지쳐 나가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 지금도 제 2의 헤밍웨이들이 파리의 어느 대로와 골목에 늘어선 노천카페와 술집을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간절히 쓰여지길 바라는, 쓰고싶은 어떤 글 한 줄기를 생명줄처럼 붙잡고서.  

 

주류를 꽉 잡은 미국문학보다 선호해온 건 늘 유럽문학이었다. [외국문학감상]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학 때 전공수업은 그래서 지금까지 어쩌면 먼 훗날까지 여전히 유용할텐데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금각사'를 능가하는 문학이 내게는 오랫동안 드물었다. 작가편식이 뿌리 깊었던 탓에 박혀있는 기억이 쉽게 순위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 샐린저보다 헤밍웨이를, 헤밍웨이보다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헤밍웨이의 파리. 기호야 어쨌든 문학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만큼은 국가,지역,시대를 따지지 않았던 문학의 거장들. 그들의 한때와 헤밍웨이의 20대를 들여다보는 여정은 즐겁다.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는 기회와 영광, 나는 분명 파리에 있을 때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곳이, 추억이 앞으로 나를 얼만큼 괴롭히고 또 살게 할 지를. 그때도 지금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엉뚱하게도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고 싶어졌다. 글쓰기 열정을 가능하게 하는 그 힘. 언제쯤 온전히 그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잘 사는 것 그리고 잘 쓰는 것.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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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5-1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헤밍웨이를 읽기로 했었는데 다른 책들때문에 분명히 밀릴거에요.
그런데 위의 책은 아이님 리뷰때문에 먼저 읽어요.
'줄줄이 엮이는 작가들'때문에 도저히 미룰 수가 없겠어요.
(중학교때 무지 재미없어 하면서도 헤밍웨이 전작했어요. 음, 이제보니 번데기앞에서 주름잡는 격이군요. ㅎㅎㅎ)

아이님의 화양연화는 아직까지도 계속되는 것이기를 바래요. 그래야만 하니까.

잘 읽고 가요.

아이리시스 2012-05-17 17:38   좋아요 0 | URL
진짜 저 작가들도 제대로 읽은 게 없어요. 책읽는 사람이라는 게 살짝 민망한데 그래서 어디가서 책읽는다고 말 안하려고요ㅋㅋㅋ 오, 중학교때 헤밍웨이 전작하는 댈러웨이님이라니. 저는 아니예요, 번데기가 나 아닌 거죠?ㅠㅠ

화양연화. 그 영화 볼 때 참 어려워서 싫던데 이제 좀 알겠어요, 조금이지만 알게되긴 되더라고요. 그래야만 하니까. 이 말 좋다, 댈러웨이님. 당위성 부여.

프로필사진 저거 좋아요, 새삼 발견하고 기뻐함ㅋㅋㅋ

댈러웨이 2012-05-17 22:07   좋아요 0 | URL
1. 번데기'라는 표현 이제 보니까 잘못 쓴 것 같은데,,, 나쁜 뜻 아니었어요. ㅎㅎㅎ

제가 뭐 헤밍웨이 작품들을 알고 읽었겠어요?
4권인가 5권 두꺼운 전집으로 있었는데, 것도 세로줄. (집에) 읽을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생각나는 건 파라과이 다리 나오는 거, 그거 하나.

2. 위에 올라온 <당신과 나 사이>,

나 또 첫 민망댓글 달기 싫어서 여기다 남김요.

밥 먹듯이 책을 읽었다니, 아이님,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또 어떻게 그렇게 모든 걸 다 한꺼번에 잘 할 수 있어요?

3. <에고트릭>, 심리학쪽인 줄 알았는데 철학이에요? 끄응...

4. 좋아하는 영화 딱 두 개, 그 중의 하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래도 또 보고 싶은 영화. 생각만 해도 어쩌지 못하겠는 영화.


아이리시스 2012-05-19 00:37   좋아요 0 | URL
좋은 뜻에서 번데기요.. '헤밍웨이 전작=번데기' 요게 저 아니란 거예요, 댈러웨이님.히히히.

이야, 다들(댈러웨이님 포함) 어릴 때 굉장히 독서를 하신 것 같아요. 저는 책 안 읽으면 다닐 수 없는 학과에 다녔기 때문에 그때 잠시만 밥 먹듯이 책을 읽었어요. 20대 중반은 아예 책과 거리가 멀었고 지금 생각하면 질에는 별로 신경을 안썼던 것 같아요ㅠㅠ

아, 그렇다면 다시 봐야겠어요, 화양연화. 저는 기무라 타쿠야 좋아해서 <2046> 좋아해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좋지만요^^ 또 한 편의 영화는 뭐예요? :)

맥거핀 2012-05-1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정말 헤밍웨이 때문에 알라딘도 그렇고, 여기저기 이야기들이 많군요. 내년에는 포크너와 헤세라던데..이런 식으로 가면 매년 새로운 저작권 만료 작가들로 출판사들의 디자인경쟁, 번역경쟁이 이어질듯..좋은건가요?

아이리시스 2012-05-19 00:39   좋아요 0 | URL
아..포크너와 헤세요? :)

몰랐던 사실이에요.하하. 그럼 헤밍웨이 죽.. 돌아가신 후 다음 해에 포크너와 헤세가 죽.. 돌아가셨다는 거네요! 그래봐야 읽는 사람만 또 읽을 텐데요, 뭐. 개인적으로는 새 번역이 나오면 책 가격만 올라가기 때문에 고전은 별로 안 땡겨요.새 책이라도.하하하.

포크너는 잘 모르겠지만 헤세는 나올 것 다 나온 것 같아요, 민음사에서. 다른 출판사에서는 몰라도 읽을 책이 충분히 있어서 헤밍웨이만 할까 싶어요. 헤밍웨이는 사후에 유족들이 출간을 엄청 반대해왔다고 했거든요.

자목련 2012-05-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를 만나보고 싶은 아주 맛난 글이에요.
이 책에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전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을까 해요. 알라딘에서 멋진 필통을 사은품으로 걸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한데, 그 필통이 탐나긴 해요.ㅎㅎ

아이리시스 2012-05-19 00:41   좋아요 0 | URL
네, 나와요. 셰익스피어&컴퍼니 이야기 나와요, 자목련님.

<킬리만자로의 눈> 사면 필통 줘요? 오오, 저 5년째 제주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사온 필통 쓰는데 바꿀만큼 이뻐요? :)

프레이야 2012-05-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댈러웨이님 페이퍼로 이미 끌렸는데
아이리시스님 리뷰로 완전히 불났어요. 땡스투유~
지름신을 부르는 리뷰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5-19 00:43   좋아요 0 | URL
파리를 회고하며 썼다면 헤밍웨이 아니었더래도 어느 작가라도 샀을 것 같아요.하하.
프레이야님께도 읽고 쓰는 것,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다가가야 할텐데!

책상 위에 두고 간혹 펼쳐볼 것 같아요^^
 

 

 

 

그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주에 심어둔 뿌리깊은 아픔처럼 유재하의 가사들이 딱 그랬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찾아갈 용기같은 것은 내지 못할 터였다. 그때마다 누구에게 얘기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걸레가 물을 머금는 것마냥 가만히 시간을 훔친 것도 여러 번. 추억? 음악? 어느 것이 어느 것 앞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딱 한 번 우연히 만나도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와 종국에는 쿵하고 내려앉는 마음을 추어올리게 만들었다.「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들은 건 나가수 2의 생방 두 번째 무대 김건모를 통해서였다. 노래는 곧, 유리에 내 모습을 비추며 어딘가로 가려했던, 신은 구두가 데려다줄 것으로 믿었던 모든 시간들을 폭풍처럼 몰고 오고 있었다. 김현식-유재하-김광석으로 이어지는 이 비련의 거인급 뮤지션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해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존재는 그들의 태생이 아니기에, 제때 그들을 탐내며 살지는 못한 세월의 차이가 컸기에, 멀리할 수도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달랐는데 이건 분명, 운명이었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엇갈림 속에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 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 내곤 또 잊어버리고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사가 시네, 시. 다른 가사도 그랬지만 세어보니 스물 여섯의 첫 음반에 담긴 곡이므로 더더욱 시네, 시. 감수성이 말랑말랑 터질 것 같은 어느 때. 그 시절 그 때를 참지 못해 폭발시키는, 하지만 여전히 누르고 억제하는 어떤 것들이 이 곡에 숨어 있다. 1990년대의 20대를 영화 <건축학개론>이 그린다면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1980년대의 20대를 더 내밀하고 정교하게 불러내고 있다. 이 곡에서 나는 우리 엄마도 보고 우리 아빠도 본다. 그들이 찾던 꿈과 세상을 접한다. 그래, 순간이 쌓여 세월이 되어 여기까지 흘러흘러 온 것을. 비로소 다시 듣는 추억. 이 곡은 반드시 우리보다 훨씬 오래 된 먼지쌓인 추억을 들려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나는 너무 젊고, 젊음은 쌓여진 시간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 훌쩍 나이들고 싶다고 썼었다. 정말이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으며 온갖 만물이 활짝 깨어난다는 바로 그 봄을 견뎠다. 어디선가 이름모를 향을 묻힌 바람이 불어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지 않아도 괜찮은 게 좋았다. 항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렇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도 좋았다. 좋아서 아무에게도 말 못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달려가 그곳에 가자고 말했다. 묻지 않아도 알고 있는 곳에, 함께. 이어폰을 나눠끼고 이 곡들을 들을 것이다. 배낭 매고 기차 타고 손 놓지 않은 채 깊은 산 속 계곡숲으로 놀러가던 어느 여름 오후처럼 이번에는 계획이 없었다. 살짝 건드리고 가는 공기가 바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여정일 터였다. 극한으로 몰고가지는 말라는 말에 더이상 가혹해지지는 않으련다.

 

머리가 멍멍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 순간이 바로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달려왔다. 혼자 착각해서 내게 위험이 닥친 줄 알았단다. 그러면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 바보같아. 무슨 일이 생길 게 뭐가 있다는 거야. 어제는 웃었고 오늘은 비가 온다. 이 앨범들을 몇 번째 재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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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14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이 유재하와 김광석을 듣는구나....중학교때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어요. 늘어져 소리가 이상해지면 또 하나를 사야했죠^^ 나도 그때 어렸어서 이 시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의 냄새를 맡으며 그 시절을 살아냈던 위로의 노래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립다....

아이리시스 2012-05-16 16:38   좋아요 0 | URL
그 정도 감성은 아니고.. 어쩌다가요, 현맘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으하하. 정말로 그럴 때가 있었죠. 저 중학교 때 룰라 엄청 좋아했는데.. 고영욱이.. 그러고보면 사람 좋았던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노래 정말 좋아요!

댈러웨이 2012-05-1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동영상 보고 폭풍같은 회한이 밀려오던 참이였는데... 아, 태그가 저렇게 가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마지막 문단 읽으면서 미소를. 요즘의 아이님. ^^

아이리시스 2012-05-16 16:32   좋아요 0 | URL
결혼식이요, 6월이라서 코디를 벌써 하려고 해요, 푸하하. 동갑내기 사촌오빤데 저한테 들어올 압박 생각해서 이쁘게라도 하고 가야한다는 압박감이.. 이건 반농담인데,

정말정말 옷이 너무 이쁘더라고요. 욕심이 좀 많아서 눈을 안 돌리려고 하는데 봄옷은 정말로 봄바람 나라고, 카드값 폭탄을 부르는 것 같더라고요. 괜히 보고 왔어,,ㅠㅠㅠㅠ

2012-05-14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6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5-1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좋아라~ 아이리시스님^^
주말에 김건모가 저 노래를 골라 부를 때 너무 좋았어요.
그리곤 넣어뒀던 유재하 음반 찾아 계속 듣고 있어요. 부르면서요.ㅎㅎ
80년대를 보낸 20대^^ 훌쩍 나이들고 싶은가요?^^ 천천히 드셔도 돼요.
그래도 나중 느끼기엔 훌쩍 들었다싶으실 거에요. 적요한 봄밤이에요,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2-05-16 16:2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댓글이요, 봄노래처럼 폴폴 좋은 공기로 들려왔어요. 저 노래 1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건모 좋아한 적이 없는데 노래가 엄청 색다르게 다가왔어요. 사실은 저는 나가수랑 불후의 명곡2 엄청 좋아해서 넋 놓고 맨날 봐요.하하하. 프레이야님 노래 듣고 싶다..아아..^^

또 재생시켜요, 유재하 음반. 근데 몰랐는데 왜 앨범이 통째로 다 곡이 좋아요? 으아,,
 

내가 아무리 아티스트를 동경한다고 해도, 예술가의 삶을 통째 욕심낸 적 많았어도, 자칭 예술애호가이긴 해도, 이 책은 궁극적으로 내 '과'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언제나 내 편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데 누가 내 편이 아닌지는 본능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도 책도. 그리고 여기서 아니라는 건 어딘가에서 보지 않거나 어떤 촉매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알지 못하고 넘어갔을 책이라는 뜻이다. 내가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차라리 과학책이 가깝지, 이 책을 들게 된 이유는 TV에서 하는 유일한 책 프로그램 <즐거운 책 읽기>를 우연히 봤는데 추천책으로 나오기에. 더불어 지난 방송에서 다룬 책들을 이리저리 뒤져 몇 권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당장 사서 읽기에는 읽던 책이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아티스트'는 아마 화가/소설가/시인/디자이너 등 프로들만을 일컫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품은 뜨거운 열망 한 조각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굳이 예술이라 이름 붙이지 않고도 창작과 열정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하는 책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엄청난 고뇌로 갖지도 못한 드로잉 실력으로 화가의 세계를 평정하겠다거나 독자적 시세계에 빠져 세상을 뒤집을 시를 써보이겠다 이런 꿈 애초부터 꾸지도 못한다. 어렵다. 내게 예술로서의 모든 것들은 먹고 이야기하고 자는 사이사이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무언가를 볼 때 좀 더 깊고 넓은 눈으로 '재밌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줄 뿐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양분하면 전자가 훨씬 큰 구성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하나를 하면 둘이 달려들고 둘을 하면 셋이 보여 결국 원망하거나 신세타령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못한 채 주저앉기 십상인 게 내 삶이고 보통 사람의 삶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 중에는 같은 시간을 사용하면서도 이것도 해내고 저것도 해내면서 소소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싶은 것이다. 이왕이면 책도 좀 읽고, 영화도 좀 보고, 사람들 얘기도 듣고, 여행도 하면서 골고루 관심 좀 가져보고 싶은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 교수는 셰익스피어와 심슨 가족 중 어느 쪽이 더 고차원적인 취미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학생이 심슨을 즐긴다고 말하면서도 반대로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을 더 고상한 취미로 꼽는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이 모든 현상들을 이론화하거나 철학자들의 입을 빌어 예를 들며 상세히 설명하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나도 일상에서 한 번쯤 생각해봤던 것들이다.(우연찮게 이 페이퍼를 쓰기 시작하면서 마이클 샌델을 읽었다, 뒷북치는 건 민망한데 그래도 요즘 인문학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중이어서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후딱 읽었다, 쉽긴 쉬웠다, 그런데 일 년에 한두 권 책 사보는 사람에게도 쉬운 책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이게 결론!) 그러면서 깨달았다. 일반인들의 모든 판단은 거의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내려진다는 걸. 어째서 심슨보다 셰익스피어냐 물으면 상대를 설득시킬 요령있는 답변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부터 내가 좀 속물적으로 느껴졌다. 어쨌든 심슨보다는 셰익스피어다!

 

 

 

 

 

 

 

 

 

 

 

 

 

 

 

아무도 어떻게 가는 길이 올바른 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숲을 보려는 노력 정도는 기울일 수 있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국은 내 능력치에서 보는 세상은 숲보다는 나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어느 책에서도 예술가가 되는 법이라든지 예술가로 성공하는 법 따위의 지름길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앞서 예술의 길을 걸었던 어떤 사람에게서 그 길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듣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뭉클함을 예술적 열망이 아니라고 부인하기란 어렵다. 그래, 예술이든 정의든 찾아가는 길은 어렵고, 미로를 헤매다 돌아나오는 길을 찾아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 뿐이야. 이런 쉬운 결론이 이 많은 페이지를 읽고나서야 비로소 나오다니.

 

 

나 요즘 이런 영화들을 감상하고 있다. <까미유 끌로델>이나 <클림트>, <아르테미시아>, <라 비 앙 로즈> 정도는 봤어도 이런 류의 전기영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봐야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 만삭의 몸으로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라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던 잔느가 있었다. 아르테미시아보다 더 아니, 세간에 알려진 게 몇 년 되지도 않은 헌신적 사랑의 대명사로 꼽히는 프랑스 여류화가. 모딜리아니의 아내로 더 알려지는 게 그녀에게는 행복한 일일 듯 싶다. 영화 평점이 엄청 높은데 상상만으로도 사랑이 눈부시다. 그녀는 어렸고 자기 또한 화가지망생이었는데 까미유와는 달랐다. 물론 모딜리아니도 로댕과 달랐을 것이다.(여자는 남자하기 나름) 아무리 사랑해도 배우자의 광기 어린 예술의 혼과 좌절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빔 벤더스는 독일의 세계적 무용수 피나 보쉬의 춤을 실제인 것마냥 생생하게 카메라로 잡아낸다. 이렇게 얘기하는 나는 <블랙 스완>을 보기 전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탈리 포트만이 좀 부담스럽다. 페이스 자체는 좋아하는 상이 아닌데, 그래서인지 기대 되면서도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자꾸 피해가는 듯. 그래도 <클로저>랑 <브이 포 벤데타> 때 좋았는데.

 

그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어록에 남아있을 정도니까 내가 들은 말은 아니다. 영화에 내 인생을 한정시키기엔, 이 세상엔 영화 이외의 것이 너무 많다. 나탈리 포트만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티스트 웨이가 꼭 이들처럼 대단한 인생을 살거나 대단한 작품을 남기거나 대단한 사랑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아프게 눈부신 이 모든 시간들을 가만히 앉아 폭풍감상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외부와 내부 에너지 모두가 달리는 느낌이다.

 

대체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잃어버린 게 뭘까. 비교적 상실감에는 무통증으로 지내고 싶은 편이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지금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아티스트 웨이에 대해서는 나는 알 수 없는 걸까.

뭘 더 알아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 된 천경자를 다룬 다큐를 보고, <스타 인생 극장>의 구혜선이 드로잉을 검사받는 수업시간을 보고, 한 송이 꽃 주위를 팔랑거리는 얼룩덜룩한 무늬의 나비를 보았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나비의 날갯짓을 보며 아직 보지 않은 두 작품을 떠올렸다. 어떤 상관관계가 작동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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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10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얼렁 토끼드롭보고 소감을 남겨줘요.
난 어제 다봤는데 도저히 쓰려해도 쏟아지는 잠 때므네...
지금도 막 자려던 참! 아이님 굳밤 :---))

아이리시스 2012-05-10 18:55   좋아요 0 | URL
이름 뭐였지, 하여튼 귀여운 꼬마소녀 사랑하는 소이진님이 리뷰 써야죠^^
요즘 나는 오드리 햅번의 영화들을 감상하고 있어요. 감상이래봐야..( '')

소이진님 진짜 잠오는데 썼나 봐요ㅋㅋㅋ

비로그인 2012-05-1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 저도 졸리네요. 해야할 일의 비율이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을 크게 압도한다는 건... 정말 원망스럽지만 현실이네요. 그래서 자꾸 늦게 자게 되나봐요. 어떻게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자야지 직성에 풀리거든요. 예술적 열망!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은 과연 날때부터 그렇게 태어났을까요?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천재들은 미래의 에너지까지 땡겨와서 화르르 불타오른 거라구요. 근데 오래 살면서 천재처럼 잘 해나가는 사람도 있으니 그저 낙담할뿐 ㅠ
또 내일 꾸벅꾸벅 졸텐데... 새벽시간을 도저히 포기 못하게써요 아이리시스님 ㅠㅠ

아이리시스 2012-05-10 18:58   좋아요 0 | URL
스무살 때부터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알았고, 덕분에 졸업하고 출근해야할 때 날마다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뭐 죽으면 죽는 거고 이런 마인드로ㅋㅋㅋ 잘 살고 있어요. 수다쟁이님, 미쳐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딱 수다쟁이님 나이에 감수성 돋는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거니까 잘 새겨들어야 해요!

오래 살면서 천재면 어딘지 모르게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아요? 꾸벅꾸벅 졸면서 오늘 하루도 잘 보냈습니까? 오늘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려왔나요? 진짜 궁금.

cyrus 2012-05-1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가들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들의 사랑이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독특하면서도
정말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느낄 때가 있어요, 특히 로뎅과 까미유 스토리 같은 경우에는
까미유가 너무나 불쌍하더라고요, 까미유에게 남동생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까미유를 정신이상자로
여기더군요. 그리고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 스토리는 미술가 사랑 이야이 중에 너무 비극적이면서도
슬픈거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5-10 19:01   좋아요 0 | URL
아.. 나는 막 뱃속의 아이 슬퍼서 못 그랬을 거 같고.. 혼자 키우는 것도 너무 겁났을 거예요. 이런 상황 자체가 비극적이에요ㅠㅠ 일반인들도 물론 가슴 아픈 사랑과 견디기 힘든 좌절,고독 같은 것들을 겪는 영화같은 삶이 있지만 예술가들은 사연 하나 없는 사랑이 없네요. 그래서 로댕과 까미유도 모딜리아니와 잔느도 너무 슬퍼요. 이제 너무나 유명해졌지만 그럴 수록 더 영화 같아요. 이미 영화지만..( '')

댈러웨이 2012-05-10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이런 페이퍼 고마워요. 이렇게 딱 한마디만 남겨요, 라고 오전에 댓글 달려다가 대문에 너무 크게 난 포스트라 도망갔어요.
이런 페이퍼 정말 고마워요. 이번엔, 소개해 주신 영화들에 꽂혔어요.

p.s. [젊은 예술가의 초상], 김종건 교수 역 /범우사 편 가지고 있는데, 글 흐름 유려하고, 역주, 책 읽기 좋은 편집 등 나무랄게 없다는. (번역이 좋다는 얘길 제가 어디서 들었겠죠? ^^) ([율리시스]/생각의 나무에서 펴낸 것도 김종건 교수 역이죠.) 뭐, 참고하시라는. ( ")

아이리시스 2012-05-10 19:0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이 신간인지 몰랐어요. 무서운.. 저 책도 그런 것 같은데. 여튼 큰 대문 거기 올라가면 주눅 들어요ㅠ 선별 좀 했으면 좋겠어요 엉엉ㅠ

댈러웨이님과 잘 어울리는 영화들 같아요. 느낌이요.. 영감에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에요^^

p.s. 아, 그렇군요. 잘 몰라서 그냥 깔맞춤으로 민음사 사려고 했어요. 번역 좋다고 소문나고 댈러웨이님이 참고하라면 당연히 참고해야죠! [율리시스]와 같군요! 둘 다 눈독들여야겠네요. 도서관을 이용해도 안 읽히고 사도 안 읽히는 [율리시스]겠지만 여튼 뭐 베개로 쓰든지 하겠죠. 고맙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5-1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군요..ㅎㅎ
예술가는 정말 어려워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도 어려운데...ㅋㅋㅋ.
예술가들에게는, 혹은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에겐 가끔 '정의'보다 '도덕'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뭘까요? 전 제가 그림을 어렸을 때 그렸어도 그걸 이해 못했기에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그 '과'가 아닌 것 같은. 근데 웃긴게 그걸 인정하면서도 일종의 소외감이나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니까요. 마치 모짜르트를 질투했던 살리에르처럼.

아이리시스 2012-05-11 17:09   좋아요 0 | URL
현맘님이 그림/디자인 하시는 걸 저 꼭 보고 싶어요.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다들 그런 걸 느끼지 않을까요? 일상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그 지점이 바로 예술가를 예술가답게 하는 신비전략이기도 하니까요. 평범한 삶보다는 비극적인 삶이 더 부각되고, 문창과에도 미대에서 음대에도 오로지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몇 안되니까요. 제가 본 국문과 친구들이 누구나 어려운 책을 아주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요. 더 중요한 무언가가 보통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일 때 그들은 진정한 예술을 탄생시키는 건가 봐요. 뮤지컬 모차르트가 여름에 시작하던데요. 문득 그거 현맘님이랑 보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캐스팅이 뭐 좀.. 뮤지컬은 정말로 전문분야로 남겨둬야 하는데 요즘은 아이돌, 가수, 배우 인기에 기대 섣불리 캐스팅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하여튼 뭘 말만 시작하면 이야기가 산으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