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센스 - Perfect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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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집을 나선 동네 기운은 상쾌하고도 청명했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 플라타너스(였으면 좋겠지만)로 느껴지는 나무들이 줄지어 새파랗긴 했으나 한겨울이었다. 호수가 있었고, 벤치가 있었다. 어렵게 눈을 비비며 나왔는데 여권을 놓고 온 친구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올 때까지 새벽 공기를 맡으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는데, 지도가 필수였다. 그곳은 암스테르담, 우리는 네덜란드어를 몰랐다. 네덜란드어란 게 존재하는 지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을테니, 어떤 언어였대도 몰랐을 것이다. 역이름이 큼지막하게 씌어 있어도 한눈에 박혀 들어오지 않아, 아무도 없는 텅 빈 기차 안에서도 숨을 죽였다. 뿌연 창밖으로 암스테르담의 마트와 운하와 자전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글자가 아니라.

 

틀린그림찾기 능력은 탁월했다. 친구와 반대 방향으로 앉아 고독을 씹으며 혹은 깔깔 거리며 목적지 역을 눈에 심고 한눈을 팔지 않았다. 코스를 세었던가. 온 감각을 세워 긴장했더니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 탔던 기차의 최종역이 어디인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서울을 떠난 기차의 끝이 빤하듯, 암스테르담 지리에 훤한 누군가에 의해 금새 찾을 수 있는 정답이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찾아봐야 내겐 낯선 곳, 낯선 세상, 알 수 없는 영역일 뿐일테니, 다 부질없는 일일 터였다. 그곳을 기억하게 하는 건 진하디 진한, 한국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코코아 향이었다. 초코향일 수도, 코코아향일 수도, 둘 모두일 수도 있다. 달콤함이 진하면 써지는 거라고 그때 생각했었다. 이정표도 표지판도 우리의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을 만큼 관광객들이 왕왕 찾아오는 유명지여서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걷는 길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들풀들과 까르르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인근 학교 학생들, 마침 개폐중인 다리, 동화 같은 풍경, 돌아가는 풍차를 볼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로 우리는 들어가는 중이었다. 잔세스칸스. 그곳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풍차마을이었다.

 

풍차마을하면 어린 시절 본 [플란다스의 개] 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치즈도 우유도 풍차마을 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네덜란드 풍경에 들어있긴 했지만 풍차마을이 꽤 여러 개 있음에도, 잔세스칸스였던 이유는 하필이면 그곳이 여행책자 안에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 속 파트라슈와 할아버지 그리고 네로가 살던 풍차마을은 벨기에라는 걸. 그래도 많은 여행객들이 이 만화를 떠올리며 잔세스칸스에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도 있었다. 벨기에의 플란다스 지방에 있는 풍차마을이라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을 가진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반 고흐 뮤지엄 때문에 암스테르담에 기어코 들러야 한다고 우겼던 나의 또다른 소망이었다. 친구는 두말않고 따라나서 주었고.

 

잔세스칸스의 코코아향. 잔세스칸스로 가는 길의 코코아향이 당시의 풍경과 함께 먼저 떠오르면, 그때 이곳저곳에 눈길을 멈추며 길을 걷던 나와 친구를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떻게 헤매었는지, 무슨 꿈을 이야기했는지까지 생생하고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 후각이란 기억을 동반하는 것, 이라고 이 영화가 얘기하기 전에도 나는 알 것 같았다. 후각을 잃으면 추억과 기억을 모두 잃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후각을 잃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두려웠다, 마구 돌이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이클과 수잔도 피해자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대표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 마이클은 레스토랑의 생선요리 전문 쉐프, 수잔은 전염병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레스토랑 맞은 편에 수잔이 살고 그들은 자주 부딪치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처음에는 후각, 다음에는 미각, 다음에는 청각, 다음에는 시각. 인간의 감각이 오감이라면 단 하나 빼고는 모두 잃은 셈. 원인 모를 감각 상실 앞에 인류는 속수무책,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잠복기는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은 감각 하나를 잃을 때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적응하려 애쓴다. 결과는 있지만 원인이 없기에 슬픔조차 사치일 지도 모른다. 이유가 없어 되돌려놓지 못한다. 적응할 만 하면 다음 감각을 잃는다. 짐승의 생살을 뜯고, 간장을 마시고, 남은 음식들은 모두 뒹군다. 거리는 고함과 혼란으로 마비되었다.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어김없이 그들도 전염된다. 모든 거리, 모든 나라, 모든 세상, 모든 인류가 냄새를 못 맡고, 음식 맛을 알지 못하고, 소리를 못 듣고, 앞을 볼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극은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서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것. 여자가 남자를 불러도 남자는 듣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한다 말해도 여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고, 따라서 모든 냄새를 잃어가는 동안 추억도 잊혀진다. 다른 감각.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잃은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감각으로, 혹은 네 감각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또 다른 감각으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느끼고 사랑한다.

 

마침내 그가 그녀의 곁으로 가고, 그녀가 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맨다.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당신도 없고, 당신이 없는 세상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같이 있기 때문이다. 잃으면 채울 수 있고, 채우다 보면 잃어버리기도 한다. 완벽하고 완전한 것이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살자. 질긴 삶,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은 게 생의 신비로움일 것 같다. 그가 그녀에게 니가 가진 건 눈과 입과 가슴과 성기 밖에, 니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티비 보는 것과 섹스 밖에 없지 않냐고, 저기 가서 업드려 다리를 벌리거나 꺼져버리라고 소리 지를 때, 세상의 침묵과 어둠을 보았다. 고독이 아름다운 것, 이라고 누가 말했었나. 고독은 아름답지 않다. 정적. 그것은 끔찍하고 지독하다. 가버려, 사랑해, 그것은 온전히 동일한 마음이었다, 적어도 영혼이 빠져나간 그에게는. 어쨌거나 나는, 온전하게 당신을 느낄 수 있다. 다행인 건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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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해요.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다는 것이.
아이님의 문체는 다른 사람의 글과 섞여 놓아도 이젠 알 것 같아요. 제가 그 문체에 적응이 된 듯...해요.ㅋㅋ
"후각이란 기억을 동반하는 것," - 전 왜 이 문장에 끌렸을까요?

아이리시스 2011-12-27 20:11   좋아요 0 | URL
문체 바꾸기가 엄청 어려운 거더라고요. 책 읽을 때마다 문체가 변해요. 제대로 적립하려면 필사를 해야 해요. 저는 오정희. 문체라기엔 거창하지만 마음에 드는 걸 막 따라하게 돼요. 드라마 대사 따라하듯이요.ㅋㅋㅋ 후각을 잃으면 추억을 다 잃는 거라고 영화가 얘기했어요. 엄마 냄새,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 어린시절 뛰어놀던 들판, 이런 것들이 지워진다고.

요즘 비문이 엄청 많죠? 이렇게 쓰면 안되는 걸 아는데, 말을 하다가 다른 말이 생각나면 어우러지게 고치지 않고 뒤에다 갖다 붙여요ㅋㅋㅋ 예를 들어, 첫문단 맨 마지막 문장이요.ㅋㅋㅋ

페크님, 저는 이제 하루에 한 번만 알라딘 들어오려구요! 이걸 줄여야 다른 걸 하더라고요. 그래도 서재이웃분들 새 글은 꼬박꼬박 보러올거예요! 그러니 새 글 많이 부탁드려요.^-^

맛난 저녁 드세요~^^

맥거핀 2011-12-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을 잃으면 인간이 인간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걸까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나라는 존재 속에 감각이라는 것이 과연 몇 퍼센트나 채우고 있을까, 그게 빠져 나가면 그 빈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어떤 책에서 보니까, 인간의 감각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이 후각이라고 하더라구요. 늙더라도 최후까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맡았던 장례식장의 향내음이나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의 냄새 같은 것. 그래서 후각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영화가 말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전 여친의 향수냄새를 아직도 기억..응?)

아이리시스 2011-12-28 17:08   좋아요 0 | URL
그게 맞아요.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냄새로 기억하는 시간, 장례식장 향내로 기억되는 날, 그걸 이 영화가 후각을 잃으면 추억을 잃고, 추억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한 것. 예전 여친의 향수냄새로 그녀를 기억하는 것도 빙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은 알아봅니다. 후각,미각,청각,시각을 잃었음에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헐리우드스럽지 않고, 독일영화니까요! 그런데 헐리우드 배우로 영어를 쓰면서 만든. 저는 이런 영화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12-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각, 미각, 청각... 오감각의 이야기에서,
라면을 떠올리는 나는? 역시 술 먹은 다음날의................ 에휴휴.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의 페이퍼는 참 신기해요. 역시 댓글이랑 다르단 말이야.
얼굴을 봐야 알건데, 역시 신비로와... ㅋㅋ. 호기심 엄청 자극하는 나의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12-29 15:00   좋아요 0 | URL
풀어가는 방식이 특이한 영화고, 저는 좋았어요. 오감이 예민한 편은 아니고 저는 비위가 약한 편인데 오감이 사라진 세상은 차라리 죽어버려도 좋을 만큼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마고님.

라면 드셨어요? 해장국을 드셔야 하는 거 아닌가??? 페이퍼랑 댓글이랑 다르다는 게, 댓글은 수다스럽다는 거죠, 페이퍼는 아닌데! 그게 아닌가ㅋㅋㅋ 전에도 그런 얘기를 Y님께 들었는데 그게 마고님이랑 같은 의미일까요?(갸우뚱) 히히히히히히히.

신비댓글 다 달고 저는 갑니다. 호호호.
 
내가 사는 피부 - The skin I liv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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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모도바르 감독의 열렬한 팬이고, 그로 인해 알지 못하는 스페인에 대해 우호적이며, 그를 알기에 이 영화는 지나치게 실험적일 거란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영화 [페이스 오프]를 오래 전에 학습했다면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질 것. 감독의 역량에 비추어 볼 때 충격적 혹은 자극적 장면이 있을 수 있지만 시도 자체가 신선한 반면, 스토리는 빈약할 가능성이 있을 것.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텍스트 파악 능력 하나는 지나치게 뛰어나다. 시리즈는 첫 회, 영화는 초반 10분, 어쩔땐 포스트와 시놉만으로도 핵심을 꿰뚫을 수 있다. 타인에게 적용 불가능하지만 내게는 안성맞춤인 분별력이다. 그때그때 갈증에 화답하는 무언가를 취사선택하는 데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대견한 능력을 지닌 나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겉모습의 변화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가. 당연히, 없다. 영화 [비밀애]에서는 윤진서가 쌍둥이란 걸 몰랐던, 사랑한 남자와 그 남자의 형(동생)을 동일시 하여 두 남자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가던데, 행여 착각할까봐 말하는데, 밝히자면 이 영화는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한 남자의 복수와 집착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한 남자의 복수와 집착이 불러온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눈치 빠른 관객에게는 너무 뻔하다. 시종일관 긴장되지만, 스토리텔링도 가능한 내게는 일찌감치 결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등학교 때 사진부는 학예제 기간에 그 해 휴일마다 각자 또는 모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오래된 필카로 조리개와 피사체 조절을 해가며 찍은 각자의 사진을 걸었다. 새까만 천으로 교실 전체를 도배하고 단체 액자에 통과된 사진들을 넣고 보기좋게 배열해 걸어놓는다. 밤 늦게까지 꾸미고 또 달아서 블링블링하게 보이도록 애를 썼다. 감시 다니는 선생님들이 껄껄 웃으며, 공부를 그토록 골몰히 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하실 때까지. 그러나 우리의 꿈은 서울대가 아니었다. 파노라마. 사진필름과 폴라로이드 즉석사진이 사진부 기념선물이었는데, 그런 파노라마 말이다. 한 장씩 뜯어내도 이어붙이면 그건 분명 우리 필름이었다. 기억에 잊히지 않는, 우리만의 것. 일상에 주렁주렁 매달린 추억. 내 사진에는 무궁화꽃도 있었고, 시골집 마당에 말려놓은 대추를 그러모으는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학예제가 끝나면 뒤풀이를 갖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학교에 오면 모든 것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다. 특별함 뒤의 일상은 그 전의 것과 성질이나 질량이 조금은 다르다. 그것들이 그 시절을 견디게 했었다. 착각이었나. 정성들여 붙였던 천을 모두 뜯어내면 이전의 숨통 막히는 교실이 돌아오는 것이다. 다시 입시전쟁. 잠시 딴 길로 샜었다.

 

[내가 사는 피부]가 다루는 소재가 아무리 신선하다 해도 내게 이 텍스트는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너무도 뻔하게 막을 내려버린다. 반전은 경악할 만큼 짜릿하지 않았고, 전율은 제작자의 의도만큼만 일어났다. 아쉬운 영화다. 우라질, 눈치 빠른 관객, 나. 하지만, 당신도 눈치 빠를 필요는 없다. 그는 자동차 화재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내는 거울 보기도 힘들만큼의 화상을 입었고 어느 날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딸은 다른 이유로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아빠의 곁을 떠났다.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의 아내와 딸. 그의 사투가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가 아내와 딸을 비로소 찾았다는 것. 그러나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 인간은 종종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방법과 절차의 기로에 선다. 그의 선택은 비교적 간단했는데, 그것이 엄청난 비극적 결말을 불러온다. 돌이켜보면 비극은 이미 예고된 일인데 관객은 놀랍게도 그 순간, 윤리선택을 강요당한다. 너라면, 당신이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관객은 대답이 없다. "선택의 문제이지 이치의 문제, 나아가 윤리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나는 감히 질문의 화살을 당신에게 돌린다. 영리하다. 감독이 영리하니 덩달아 나도.

 

비극인 줄 알면서 계속 걷는 길이 있다. 세상의 모든 드라마는 그렇게 탄생한다. 나라면 가지 않을 길, 그들은 기어이 간다. 부딪치고 깨지고 울고 아파하면서, 오해의 지난한 시간을 견딘 후, 끝내 희극이 되기도 하더라. 하지만 비극으로 시작된 길은 어렵다. 그저께 TV에서 [동행]이라는 현장르포를 보면서 가난은 되물림 되지만, 가난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테니, 같은 가난이라도(같은 어려움이라도) 걷는 방향은 각자 다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TV 속 엄마는 알콜 의존증 보다 약간 나은 상태였다. 스무살 아들부터 공부하고 싶어하는 딸, 지체 장애로 시설에 있는 아들, 열 살의 귀여운 딸까지 네 자매를 감당해야 할, 남편을 보낸 엄마였는데,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니 대학은 엄두도 못 내고 공장에 취직해 밤낮없이 일하는 큰 아들은 물론, 한창 어리광 부리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야 할 막내 딸에게도 엄청난 짐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큰 딸은 매일 밤 술을 찾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 지었다. 나로서는 엄마가 없어야 아이들의 짐이 덜어질 것 같았다. [내가 사는 피부]를 보며 떠올린 건 하나의 잣대로 무언가를 재단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과 과학윤리는 실효성을 넘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생명윤리를 짓밟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정답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과제다. 영화 [네버 렛 미 고]는 둘의 가치충돌을 근본적으로 묻는 영화지만 멜로로 풀어내면서 충격을 완화시킨다.

 

섹스는 아내, 권위와 주도권은 딸에게 통한다. 지독히 불편하지만 그것을 한 사람에게 투영하면 끝은 비극이다. 남자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싶어했기에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 분노의 끝이 자멸이라면 분노를 멈추는 것이 낫다. 단순한 과정의 진리를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로 파멸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지나치게 극화된 분노는 타당성과 인내심을 잃는다. 내 안에서 [내가 사는 피부]가 좇는 지점이 뻔하게 느껴졌던 것도 많은 이야기들이 분노와 복수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부재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실재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비교적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직은. 그래서 충격적이지만 슬프다. 아내와 딸을 잃고 절망하는 그의 모습에 나를 동일시할 수가 없었다. 그것 뿐이다. 그게 이해됐다면 이 영화를 다 이해했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있어서는 안될 일. 그래서 내가 하는 말. 제발 부탁인데, 내가 아닌 것들은 부디, 내 안에 살지 말아요, 제발. 나는 정말로 일주일만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 내가 아닌 것들은 나가, 얼른 나가버려. 난 내 편만 가지런히 모아 줄세워서 같이 다음 세월로 건너가게. 일주일 시간준다, 얼른 나가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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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2-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리뷰는 이렇게. 이 영화 개봉했군요. 윗분도 포스터이야기를 하셨는데,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번역 제목도 영 마음에 안들구요.(중의적으로 해석되니까. 하긴 저래서 망하면 다 배급사 탓. 감독탓은 아님.ㅎㅎ)

아이리시스 2011-12-25 13:54   좋아요 0 | URL
영어제목이 이라면 지나치게 솔직한 번역이네요, 촌스러-_-;; 제목만으로 감이 확 오는 건 좋은데, 소재도 확실히 신선하고 놀라운데, 그래도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별로라는 뜻이에요. 아님 제가 컸나 봐요. 자극이 충격적이지가 않았어요. 오래 전에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항상 놀랍거나 가슴이 뛰거나 했었는데요. 스페인어의 우울함 마저도. 개봉관도 몇 개 없을 듯한데, 저 알모도바르를 극장에서 본 적이 오래 전이라 그런 건 그렇다쳐도, 아, 설렌 맘으로 극장에 가질 못해서 별로였을까요? 만약 맥거핀님에게 이 영화 되게 좋으면, (그건 다 맥거핀님 탓. 제 탓은 아님.ㅎㅎ)

아, 멜로에 가깝다고 하신 [드라이브]를 구하려고 노력해야겠어요, 불끈!
맥거핀님에겐 특별한 크리스마스인가요?^^

Shining 2011-12-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영화 개봉했어요?+_+ 근데 예상보다 별로애요?ㅠ 저도 알모도바르 광팬이라(반가워요!) 이 영화도 꼭
보고 싶었는데ㅠ 심지어 이 영화 때문에 원작이라는 <독거미>도 읽으려고 하거든요. 뭔가 아쉽네요ㅠ
그나저나 질투는 와도 된다니, 너무 귀여운 것 아닙니까^^

어제 새벽에는 눈이 잔뜩 내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아요. 저도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별일없이 보냈습니다.
오늘은 일어나서 영화 한 편 보고 이제는 케빈과 함께 하려고요-_-*

아이리시스 2011-12-25 14:04   좋아요 0 | URL
예.상.보.다. 별로 맞는데, 제가 이상한가 해서 관련기사들 보니 "감독의 실패"라는 의견도 있네요. <독거미>도 저 예전에 관심 있었어요. 그런데 책이 더 나을 수도, 저는 책을 읽으면 영화를 보지 않아요. 영화를 보면 책을 읽지 않고. 같은 텍스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참, 저 온 사이트를 뒤져 [윈터스 본]을 찾아냈어요, 샤이닝님 영화결산 보고나서요. DVD 가격이 너무 바람직하지가 않아서요. 영화 DVD는 영화를 한 번씩 본 담에 좋은 걸 사요. 그나저나 새삼 느낀 건데, 수도권 문화인들이 전용관 없다고 투덜대도 상영관이 하나씩 있는 게 어디예요ㅠ 이 영화 제 생각에 부산에서 개봉도 안할 것 같은데 서울에는 개봉일 이전인데 벌써 하더라고요. 역시 여긴 문화의 불모지. 내년에는 수도권에 살거예요, 불끈!(마음대로 될까요?)

Shining 2011-12-26 00:21   좋아요 0 | URL
하하^^ 맞아요, 아직(?) 좀 비싸요. 비밀이지만, 저도 소장까지는 좀 망설여져요. 저도 진짜진짜 좋아하는 것, 언제든지 생각나면 꺼내볼 수 있는 것만 DVD 소장하는 편이라, 아직은요. <아이엠러브>는 사고 싶지만_-*

아, 서울 가서 보셨구나. 그래도 부산은 좀 낫지 않아요? 저는 더 작은 도시에 사는데ㅠ 부산도 보기 힘들다니 위안반(ㅋㅋ)씁쓸함반이네요. 수도권에 살고 싶으신 이유가 영화때문이에요?(웃음) 아이리시스님이 원하신다면야 뭐든 안 되겠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2-26 01:09   좋아요 0 | URL
아, 샤이닝님 서울 아니었어요? 그렇구나.. 그럴리가요. 영화 때문이라면 저는 영화감독이 되었게요? 히히히. 준비중인 시험이, 합격하면 국제공항으로 발령날 확률이 제일 커서.. 그것 말고는 제가 정치욕도 없고 성공욕도 별로라서, 천성이 딱 예술가 체질이라서 바쁘고 복잡한 서울이 두려워요. 큰 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는 건 알지만, 이제 별로 큰사람 되고 싶지 않네요, 스무살 땐 그랬는데. 그러니까 내년에 수도권은 그냥 꿈입니다요!! 저는 부산이, 부모님 옆이, 여기 친구들이 다 있는 걸요. 이제와서 터전을 옮기는 일이 힘들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저는 가능하다면 전원주택 살고 싶은 사람.

근데 진짜 케빈과 함께 하시다니ㅋㅋㅋ 샤이닝님 짱! 전 그거 안본지는 오래 됐어요. 기억도 안 나네.. 하하하.

Shining 2011-12-26 01:23   좋아요 0 | URL
엇, 지금 접속중이신가요?+_+ 어쩐지 신기하네요. 네, 저는 비교적 소도시에 삽니다(웃음). 저도 그래요. 예전에는 뭔가 큰물에서 놀고 싶고, 모던하고 시크하게(뭔 말인지ㅋ)도시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만사 다 귀찮고, 큰 사람이 되고 싶지도 큰 사람이 될 것 같지도 않아요(하하). 하지만 아이리시스님 꿈이시라면 기대해보는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ㅋ

말도 안 되는 영화 보느니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왔다 갔다 봤는데 나름 괜찮아요(쿡쿡).

Mephistopheles 2011-12-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꽤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찬찬히 찾아보면 스페인 영화 재미도 있고 잘 만드는 것 같아요.(절대 하몽하몽이라는 영화를 감동(?)깊게 봐서 말하는 건 아니라는..)

아이리시스 2011-12-25 22:45   좋아요 0 | URL
저는 스페인 영화 좋아해요. 생각나는 건 별로 없지만 할리우드보다는 유럽 스타일, 이라고 훗날 생각했어요. [하몽하몽] 저도 본 것 같아요. 근데 기억이 전혀 안난다는.. 메피님도 영화 많이 보시는군요. 서재에 왜 처음 가봤지?(갑자기 반말..) 잊고 있던 영화가 메피님 땜에 생각났어요!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눈치없게도, 별점 깎아내린 여자인 거죠, 저. 거기에다 저를 믿는 윗분들에게 실망감을 확..( ") 알모도바르의 "욕망"에 관한 영화들이 워낙 좋았었어요. 메피님도 보시고 쓰시면 구경가겠습니다~^^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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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보이지 않게 흔들렸다. 시간을 죽이는 일이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았고 새처럼 날기 위해 그보다 몇 배 갈고 닦으며 움츠려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랍어 시간]에 일어난 두 남녀의 부딪침,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 이런 것들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자기탐색. 시간 속에 뭉뚱그려 새롭게 피워내는 티끌만한 무엇.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 언젠가 말간 손으로 바흐와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나와 콩쿨에 나갔을 때 객석 대신 옥상에서 한 송이 꽃을 들고 기다려주던 오빠. 가장 예쁘지 않았지만 가장 예쁜 줄 알았던 아홉 살에 세상에서 제일 잘 보이고 싶었던 이는 그 뿐이었음을, 그가 아직 남자이기 이전에.

 

언제 헤어졌었지. 잠시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잘 지어진 새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이사온 후 오빠를 만났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동네 아이들 모두 모아놓고 생일파티를 할 때면 생일선물로 문구세트를 사주던,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채 잘보이려 애썼던 사람. 그러니까 내가 열한 살, 그가 열두 살 즈음 본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소식은 간혹 들었어도, 대면할 일은 없어서 내가 그런 것처럼, 그도 간혹 나를 생각하는지, 정확히 말하면 내 아홉 살 즈음과 피아노 콩쿨 후의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던 작은 손의 저를 기억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마 시간 속에 흩어진 추억 속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시간일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와 그녀의 희랍어 시간처럼, 그와 그녀의 버티듯 흘러내려간 삶처럼, 그와 그녀의 하룻밤처럼, 그와 그녀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 내딪던 순간처럼.

 

나는 아직 행간 사이에 묻어나던 그 또는 그녀의 사연을 되새기고 있다.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면, 어쩌면 내 모든 것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경험, 아픔, 시간, 실수, 기쁨, 슬픔, 어려움, 오만, 편견, 시기, 질투를 포함한, 포개지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남자에게 과거의 남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언 아닌 명언은 인간의 나태함을 부분적으로 잘 알고 공감한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된 언어로 나온 말이다. 서글픔 만큼 울림도 큰 소리. 과거에 어떤 사랑을 얼만큼 했든, 미래에 만나는 남자는 내 모든 과거를 끌어안아 추억으로 공유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품었다. 나는 나일 뿐, 누군가의 나였다고 해서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를 그렇게 보듬을 것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므로.

 

사랑의 시간. 사랑을 시간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희랍어 시간] 속 남녀의 희랍어 시간을 사랑으로 뭉개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앞뒤 문맥, 상황, 추억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여자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는 지독히도 시력이 나쁘다. 둘이 영영, 어쩌면 아무 것으로도 서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는. 침묵과 빛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작가는 썼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영공 속에서 부딪치는 이야기로 나는 읽는다. 나를 털어놓고 너를 듣는다는 것은, 너를 털어놓고 나를 듣는 것만큼 중요한 얘기. 남자와 여자의 개인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보다, 혼자만 자신의 것을 터지기 직전까지 안고 가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미칠 듯 만져졌다. 잡히지 않는 것에 안달내지 않는 그들의 많은 것이 편안했다.

 

팔랑거리며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사랑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더라도, 존재가 존재를 알아본다면 그것은 기척이 아니라 기적이 아니겠는가. 꽃씨처럼 훌훌 날아가 앉고 싶은 곳에 살포시 내려앉아 뿌리내리면 그것이 탄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없이 추락하는 [희랍어 시간]의 남자와 여자를 구해준 것은 불행히도 내가 아니다. 지독히 침잠하는, 어둠 속으로 떠밀리는, 당신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끝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간과 행간, 문장과 문장 사이로 비집고 밀려들어오는 추억 때문이다. 내 추억. 궁극적으로는 내 기억. 모든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지기도, 아쉬워지기도, 아련해지기도 하는 삶.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도 그때에 소리 없이, 빛 없이, 언어 없이, 몸짓도 없이, 사랑을. 허락없이 사랑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는 시간을 드릴게요.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 드릴게요. 우리, 온전한 만남을 기약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은 미안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여전히 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당신이 있을 거예요. 내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시간은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이나 당신이 내가 되는 것에 놓이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언제나 당신 속에, 당신은 언제나 내 속에, 우린 그렇게 어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서로에게 얽혀있을 테니까요.

 

두려웠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기 전에,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맞추었지요.

 

이마에.

눈썹에.

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맞추는 것 같았어요.

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막한 어둠이 고였어요.

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

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올랐어요. (pp.189-190)

 

 

다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언어로 심장을 느끼게 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듯, 각자 살아가던 그들이 희랍어 시간에 하나로 만나듯, 우리 또한 어느 순간은 하나가 될 거라고 안주하고 있었다. 마모된 감정은 남자의 두 세계로 쪼개어져버린 정체의 자아와 미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든 여자의 자아와 만나 더 너덜너덜해졌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이해'라는 하나만으로도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삶.

 

 

 

또르르 흐르는 눈물 방울 하나를 억지로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다. 똑, 하고 소리나며 떨어질 때까지. 적어도 물방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마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이다. 내 것들이 또는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당신도 나에게 그러길 바라지만, 어렵다면 반드시 나를 거쳐가라고, 당신의 아픔도. 왜 배우는지 모르는 희랍어를 붙잡고 씨름하던 여자와 어째서 가르치는지 알지 못하던 남자의 앞으로의 만남이 자꾸만 나를 덮치는 듯 해서 얼른 책을 치워버렸다. 어렵다, 닿는 것. 어쩌면 한 번도 그러질 못했을 거란 생각 때문에 고통스럽다.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신에게 전달하려는 뭉클한 이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어떤 면에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많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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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1-12-0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잘 썼어요? 어떻게 두 번 써도 이렇게 잘 써요-_-?
저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비교되니까 리뷰는 안 쓸거에요(큭큭).

아이리시스 2011-12-09 15:05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어요? 그리고, 퍼왔지 두 번 쓴 거는 아닌걸요. 큭큭.
리뷰써요. 근데 별로 할 말이 없어지는 책이긴 해요. 언어 대신 이미지로 다가오니까.
알았죠? 리뷰 꼭 써주세요ㅋㅋㅋ

저 요즘에 <나도, 꽃!>에 미쳐있어가지고 사실 여러 드라마에 미쳐있지만요. 그저께, 더군다나 지난주, 지지난주에 읽은 책의 감동은 이미 잊었어요. 히히히. 화이팅!

프레이야 2011-12-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사랑스러운 리뷰에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5:07   좋아요 0 | URL
고마운 프레이야님. 사랑스럽..사랑스럽..다니, 엄청 감동이에요.ㅠ.ㅠ

맥거핀 2011-12-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돌아오면서 스마트폰으로 리뷰를 읽었었는데, 댓글은 이제서야 다네요. 참 리뷰가 좋네요. 뭐라고 그래야하나. 문장이 물흐르듯 읽힌다고 할까요. 다음 문장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그 문장이 있는 느낌이랄까. 좀 다른 얘긴데, 관계를 만드는 것은 `희랍어`같이 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나 아님 뭐..`광역학`같은;; (`희랍어시간`이 아니라, `일본어시간`이면 왠지 없어보이기도(?)하고..)

아이리시스 2011-12-09 15:13   좋아요 0 | URL
이야, 읽고 쓰기를 나누어하는 분이셨습니까, 맥거핀님은. 언제나 고마워요. 어째서 희랍어인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맥거핀님이 정리해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일본어 시간"은 확실히 없어보이기는 하네요, 큭큭. 베트남어 시간이어봐요.ㅠㅠ 확실히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가 주는 아련한 느낌을 의도한 소설이긴 해요. 이 소설은 아련하게 다가갔다 터치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원래 고대,중세에 좀 관심이 많고, 그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련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솔직히 얘기해서 감히 희랍어를 배우겠다 이런 결심은 못할 것 같고(그거 배워서 어디쓰게요ㅠㅠ, 필요한 것도 못하고 하기 싫은데ㅠㅠ) 플라톤은 좀 읽어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럼 저를 내년에는 여기에서 볼 수 없을 거예요, 하하.

맥거핀 2011-12-10 00:56   좋아요 0 | URL
뭐 읽고 쓰기를 나눈다기 보다는 요즘에 주로 퇴근할 때 스마트폰으로 알라딘 글들을 읽어요. 그런데 뭔가 댓글을 남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제가 워낙 폰으로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해서요. (터치 자판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댓글은 집에 와서 컴퓨터로 남기고 있어요.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그리고 그럼 플라톤은 읽지 마셔요.^^

아이리시스 2011-12-11 02:25   좋아요 0 | URL
엄청 힘들더라고요, 터치로 글쓰기. 저는 문자도 잘 안한다니까요. ㅠㅠ 뭐, 맥거핀님의 두 번 방문에 감사하다는 얘깁니다. 플라톤은 어쩌겠어요, 맥거핀님이 원하신다면^^

좋은 주말 되세요, 여기서 인사드려 죄송해요.^-^

마녀고양이 2011-12-09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어쩜 좋을까..

아이리시스 2011-12-09 15:15   좋아요 0 | URL
아휴, 왜 어쩜 좋을까..(하아..)

2011-12-09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2-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 그래서 누군가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게 어려울 때가 많아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6:04   좋아요 0 | URL
누군가와 같은 느낌.. 맞아요, 사랑조차도 농도와 색깔로 보면 부모-자식, 연인 간, 형제자매간, 모두 같지가 않잖아요. 참 신기해요.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 이를테면 마음, 같은 건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요. 전달했다고, 전달하고 있는 거라 믿을 뿐이라고 저는 꽤 예전부터 종종 생각해요.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금 내 감정이 막 달아오른 게 아닌데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하는 관계가 연인이기도 하고요. 아마 그런 식이라면 <희랍어 시간>의 두 남녀는 절대로 서로를 서로에게 이해시킬 수 없을 거예요. 엇나가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ㅠㅠ

2011-12-1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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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와 두 번째가 뻔.하.다.고. 느꼈다. 그녀니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 아무리 부정해도 그녀의 소설을 내가 좋아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또 내게 책을 들게 하니까.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괜찮을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어떨까. 그러다 비로소 일곱까지 왔다. 마지막이 표제작이었다. 중간에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건조해졌다. 느끼는 내가 그럴 수 있고, 그녀의 문체는 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요즈음 나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관대함을 표방한 우유부단은  매력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쭙잖은 선함보다는 차라리 악함이 낫다. 적어도 솔직하니까. 나는 지금 둘다 놓칠까 전전긍긍. 어느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모두에 민폐를 끼치는 중이지만, 다만 아련함이 있었다. 내 몸이 다 성장하기 전에 읽은 오래된 소설집에는 환상과 비일상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꿈길을 거닌 적도 있는데, 여기에는 없잖아. 실망보다는 세월이 만져졌다. 내친김에 끝까지, 마지막 페이지 전에는 일어서지 말자. 종종 내 독서에는 타협과 협상이 없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서른이 지난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채와 함께 지냈던 이십대가 즐겁기만 했다는 얘긴 아니다. 나는 채가 내 곁에 있었던 이십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여겼던 적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이 막연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채를 거기에 두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 밤에 아예 잠을 자지 않은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때 인간의 나이는 서른까지라고 써놓았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p.254) 

여기저기 삶의 헛헛함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작품마다 페이지마다. 어쩌다 눈을 감으면 인물들이 박차고 나올 것만 같다. 우리들 뭐 하나 다를 게 없군요. 내가 당신을 읽듯 당신이 나를 읽는다면, 우린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말해 무엇하나. 그조차 공허한 울림으로 퍼질 것을. 닿지 못한 공기는 되려 서리가 되어 시린 눈에 맺힐 것을. 따뜻하게 그리려는 이야기를 차갑고 건조하게 읽는 나는 어딘가 비뚤어진 곰인형같다. 강아지 다섯 마리를 마당에 풀어둔 터라 택배가 와도 우편이 와도 아빠는 대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낮은 대문 위로 손을 번쩍 올려야 택배 기사나 우체부가 건네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강아지가 있어서요. 자꾸 나가려 해서 문을 열 수가 없네요.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한 마리가 눈에 밟혀 나머지 다섯 마리마저 잃을까 두려워 자꾸 문을 건다. 나도 아빠도. 친구를 잃은 녀석들은 반드시 나가려는 의지가 없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일 필요가 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어도 반드시 그 아이여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픈 이유는 이어지는 일상과 드문드문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힘들 게 하는 것은 부재하거나 힘들거나 윽박지르거나 싸워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일상으로 솟구치듯 떠오르는 기억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게 한낱 소설 따위로 명확해지다니,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직 덜 배운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나는 늘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60년대보다는 70년대가 나았고 80년대보다는 90년대가 나았고, 그리고 지금이 낫다고. 개인적으로도 이십대보다는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졌다는 것. 그토록 막연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모두 다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련만 마음이 연애감정에서 멀어지자 자유로워졌다. 쓸쓸한 자유. (p.231)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는 내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한데 당신은 내가 가진 걸 빼앗겠다고 한다. 나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미처 말하기도 전에 간혹 뺏기고 싶은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취재를 하고 언론공부를 하고 기사를 쓰고 지역 신문사의 대학신문팀에서 레이아웃, 학보를 발행하고 발송하면서 먹던 점심의 자장면 맛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았다고. 울고불고 했던 나쁜 기억의 찌꺼기는 이미 다 사라졌다고. 그때 당신은 왜 그랬었냐고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신부가 예뻤냐고 묻기 전에 그때의 내가 어떠했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할 것 같다. 갚지 못한 빚을 평생 짐으로 안고 가야 했던 남자와 반대편에서 거꾸로 달려오는 헤드라이트를 피하지 못해 풀숲에 처박힌 남자, 너와는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 연인의 말을 들어야 했던 여자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는 있어도 의문이 침묵으로 치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질의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일갈했다.

아내를 잊지 못해 아내와 살던 집의 마당에 화분을 키우던 남자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꽃과 나무를 훼손해버린 자괴감과 남편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멀리멀리 도망가버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20년 전 자신을 보고 도망쳤던 첫사랑을 찾아가 그때 왜 도망쳤냐고 묻는 남자의 깨달음과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집에 들였던 어떤 여자의 공허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를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달이 환하고 별이 반짝이는 그런 밤 아니 어둠 속에 머리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또는 평상에 나란히 앉거나 누워 산들바람과 꽃과 나무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밤, 핫바와 우동, 어묵을 먹겠다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와 한밤 중에 카트가 터질 만큼 장을 봐서 빈 집에 가서 밤새도록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다 일어나 해장으로 라면을 끓여먹던 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추운 밤에 커플끼리 거리를 달려 바닷가 앞에 차를 대고 조개구이를 먹던 일, 다 먹고 비틀비틀 방파제를 걷던 일. 우리의 이야기와 시간이 칵테일처럼 뒤섞이고 흔들려야 가능했던 모든 것들. 거기 우리가 있고 풍경이 있다.

목련나무에 새가 날아앉아 출렁거리는 것 같아 목련나무 쪽을 쳐다보았으나 무성한 잎새가 여름 밤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을 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름 밤하늘엔 별들이 가득 떠 있고 산들바람을 타고 마당의 치자향이 은은히 코끝에 맡아졌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 날이 새도록 얘기를 하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p.73)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그 공기, 웃음, 친밀감, 온도가 예전의 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모두 알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사실이 우리를 그립게 하는 지도 모른다. 치자향이나 아카시아향, 하늘하늘 흔들리는 가을의 코스모스를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하면 경운기의 뒷자석은 나를 포함한 꼬마들 모두의 차지가 되었다. 올라타면 터덜터덜, 덜덜거리며 논길, 밭길, 들판을 달린다. 청량한 산을 뒤로한 맑은 냇물이 흐르고,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을이면 대추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코스모스가 우리들 옆으로 지나쳐갔다. 과거에서 끄집어 내지 않고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말이 아니라 글로 전한다. 행동이 아니라 뜻으로 전한다. 어느새 추억이 글과 말로만 읽힌다. 서른 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던 어떤 이의 절규처럼. 아무리 잡으려 해도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처럼, 당신처럼 자꾸만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달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밤구름에 대해서, 어딘가 물이 많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 같은 저 느릿한 달의 움직임에 대해서. (p.115) 

말하기 어렵더라도 지금 말해야 하는 이야기다. 아련히 지나가버린 이야기지만 꺼내야 하는 이야기다. 씌어진지 오래된 일곱 편의 소설은 무지개빛으로 하늘 가까이에 떠 있다. 나를 불러내주세요. 모두 꽃처럼 나무처럼 단정하고 소중한 존재이지 않았나요. 행여 잃어버리더라도 슬퍼마세요. 시절은 시절을, 시간은 시간을, 아쉬움은 아쉬움을, 하지 못한 고백은 하지 못한 고백을, 해주고 싶은 말은 해주고 싶은 말을 불러오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사라져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아무리 잊어도 나만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설사 당신이 나를 거쳐 가더라도 혹은 갔더라도. 기억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빠른시일의 망각도 능력일 것이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 얼른 잊어야 할 이야기,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모든 것들을 작가는 꺼냈다. 감당은 독자의 몫. 책을 덮을 즈음 딱 한 가지가 궁금했다. 나에 대한 당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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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읽으셨군요...
부럽습니다... 하아

그런데 그러니까... 뻔해도 재밌다는 거 맞지요? ㅋㅋㅋ
아, 이놈의 이해력ㅋㅋ

아이리시스 2011-12-01 23:22   좋아요 0 | URL
다 읽은 제가 부러운 거예요?! 읽으면 되지요. 논다면서욧! 소이진님이 저는 백만배는 부럽다.. 하아.. 거 어쩌려고 그래요, 세 달 남은 강의.. 얼른 화이팅해요!^^

아, 이놈의 질투ㅋㅋ

잘잘라 2011-12-0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과 제가 모르는 아이리시스님만의 그(녀)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끝에 가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되는.. 그런 리뷰^.^;;

아이리시스 2011-12-01 23:25   좋아요 0 | URL
저는 원래부터 소설집을 되게 싫어했어요. 아련한 옛느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서.. 표지는 초록인데.. 모르는 여인들 되게 예뻐요. 우리처럼 글로 대화하구요, 우리처럼 서로 너무 좋아하게 돼요. 우리 너무 친해지지 마요, 어쩌면 슬퍼질 수도 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0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뎅과 핫바...먹고 싶어요.ㅋㅋ
신경숙의 여인들보다 아이리시스님의 그와 그녀들이 더 궁금해 지네요.

아이리시스 2011-12-01 23:29   좋아요 0 | URL
요즘 밤마다 초콜릿을 폭풍흡입하고 있는데, 우리집 차가 두 대인데(한 대는 고물) 하나는 아빠, 하나는 동생. 두 분 다 안계신다는..( '') 아아, 고속도로 어묵이랑 핫바 먹고 싶어요, 현맘님. 날씨도 춥고! 인터넷 뱅킹이 안돼서 오늘 하루종일 인터넷에 붙어 있으니 눈이 아파 죽겠어요.

저의 그와 그녀들은 어딘가에서 잘 살겠죠. 근데 그 신부를 제가 알거든요. 둘다 과선배였으니까. 자장면에 얽힌 추억은 좀 유치하고 질투나고 그런 거예요. 어이없게도,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스무살일 때부터 지금까지 헤어지지도 않았다니, 어쩐지 진짜 엄청나게 어이없다.. 흙흙. 급한 김에 오뎅탕이라도 드세요, 현맘님. 겨울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ㅡㅡ;;

2011-12-02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그다드 카페 UE (무삭제 확장판) - 아웃케이스 없음
퍼시 애들론 감독, 마리안느 제게 브레히트 외 출연 / 에이나인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못하던 내게 언니는 "기어이 너를 두고 가는 나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날 거다" 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그렇게 언니는 떠나버렸다. 가버렸다. 애인의 이별통보였음 에잇, 까짓, 하면서 침이나 퉤, 뱉어줬을 상황이었다. 나는 다 잃었다. 쓸쓸해졌다. 언니가 있던 날에도 외롭고 뻔하긴 했을 것이다. 언니가 가버린 후 달라진 것은 실제로 많지 않았다. 언니의 빈자리가 그리 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래, 원래 난 언니 없이도 씩씩했는데 아가야- 하며 이뻐해준 언니가 곁에 있어 분명 더 행복하기도 했겠지만, 나약하게도 어째서 다시 씩씩해지지 못하는 거지, 바보같이. 그런 생각도 간혹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잊었다 여겼지만 사실 아무 것도 잊혀진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결단코. 그리고 나는 쓴다. 

빈 자리.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좋아한 선배와는 아무 일, 정말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대의적으로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래서 좋아하는 게 이런 건지 확인해야 하는 첫사랑이 시작되지도 못했는데(친구들은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의도치 않게 배신을 거듭하던 친구 몇과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날 기다리던 게 맘 시린 이별, 언니와의 이런 이별이라니 당혹스러웠다. 지리멸렬한 일상이 이어지던 바그다드 카페에서 짜증만 용솟음치던 여자가 보석같은 시간을 선사해주었던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선물이었다. 다시 꿈을 써봐. <바그다드 카페>는 내내 너무 좋았던 시절, 어째서 좋은지 모르는 시절, 그때의 나와 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언니가 가르쳐준 <모나리자 스마일>과 <엘리자베스 타운> 만큼이나 이 영화가 좋아졌다. 90분 러닝타임 내내 소중한 한 때가 별처럼 반짝거리는 저 너머로 간다.   

언니와는 훗날 만났다. 언니는 학교를 떠났지 날 떠난 건 아니었으니까. 반말이 존대말로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고, 스무살 내가 스물 대여섯, 일곱, 여덟, 아홉 만큼 커버리고 언니도 그만큼 더 어른에서 어른이 됐지만, 중간중간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완전한 이별은 아니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완전한 이별이란 없는 것 아닌가. 훗날, 내가 꾸린 첫 번째 여행의 기대를 이해하고 "네 꿈을 응원해" 라고 말해주던 언니. 생애 처음 받은 커플링에 대해 가장 먼저 "축하해" 라고 말하던 언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요? 하는 나름 심각한 질문에 귀찮아 하지않고 쿨하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던 언니. 내 첫 책이 나왔을 때도 소리소문없이 또 한 번 내 휘황찬란한 꿈을 응원하던 언니. 한 번도 언니를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언니가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한 알짜배기 소소한 마음들을 종종 전수 받았고, 나름대로 잘 가고 있다고 믿었다. 누군가에게 나도 언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언니 하나. 

하나를 잃으면 다음 것이 와서 빈 자리를 대신한다. 아리랑 가사를 남기고 떠난 언니가 가고 나에게는 다시 언니가 생겼다. 하늘이 언니 대신 또다른 언니를 보내준 걸까.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나. 우린 삼총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언니가 있어 좋은 점은 비벼댈 언덕이 있는 것. 나보다 먼저 온몸으로 부딪친 언니를 통해 배우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언니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알아갔다. 한 번도 언니가 필요하지 않았는데(언제나 내 꿈을 응원하는 다정한 오빠가 있었으면 했다) 언니가 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의 관계, 세상과의 부딪침, 우정과 사랑의 상관관계, 사랑의 성공담과 실패담, 어린 환상이 진짜 현실이 되는 과도기와 경계 같은 것들까지, 오빠는 가르쳐줄 수 없는 것까지 언니를 통해 배울 수 있었으니 내게 언니가 있는 건, 그것도 하나, 둘, 셋이나 있는 건(심지어 꼬맹이였던 스무살 시절부터 나를 아는 피섞이지 않은) 축복 아닌가. 두 명의 언니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많은 이야기와 추억으로 보냈으니 내 성장은 이할쯤 언니들의 덕일지도. 

조바심은 되도록 내려놓고 살면 좋다. 다른 것들은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은데 늘 조바심이 많아서 날 보던 그는 간혹 불안해했다. 이 영화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이십 대, 나를 뒤흔들던 많은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혼자 바그다드 카페에 가려 애를 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하고 삭막하고 부스럭거리는 황금빛의 모래먼지가 좋았다. 어둑어둑 해가 질 때면 선홍빛 세상이 온 공기를 휩싸는 낯선 풍경을 미칠듯 갖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 좋았다. 어설픈 간판에 불이 들어오는 바그다드 카페와 주유소와 모텔, 어디에나 있을 듯 하면서 어디에도 없는 곳. 오래 그리워질 것이다. 가지지 못하는 것을 욕심내는 사람은 얼마나 추한가. 지나가버린 것에 추억이 남는 거라면 아직 오지 않은 것에는 무엇이 남는가.   

창문을 활짝 열고 힘차게 달리다보면 바그다드 카페와 만날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 모든 것을. 당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아주 작은 곳에서 뭉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당신을 웃게 하는 일. 마술을 부려 사람들을 마법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 여기서는 불가능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바그다드 카페에 가면 커피와 웃음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정다운 친구가 기다리고, 황홀한 마술이 손짓하고, 하늘색 행복이 춤을 춘다. 거기에 당신과 내가 있다. 이런 안성맞춤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날에는 느껴지지 않던 것까지 보았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당신과 나의 약속은 한 때의 아련한 추억. 바그다드 카페가 그런 것처럼 당신으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당신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이건 크고도 작은, 귀여운 희망사항. 당신을 위한 나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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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11-30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부르는 사막의 정경과 마술쇼가 생각나요.
더없는 위안이 되어주는 영화였어요.
아이리시스님의 글처럼 따뜻했어요.^^

아이리시스 2011-11-30 21:34   좋아요 0 | URL
어휴, 저는 계속 긴장을 했다니까요. 적막하고 메마른 땅에 저렇게 서로를 못 믿다 행여 범죄스릴러가 되지는 않을까.. 영화 봤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프레이야님 글만큼 따뜻했을까요.. 저 역시 프레이야님 글 보면서 위안을 많이 받아요.^^

2011-11-30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