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
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래 / 이엠아이(EMI)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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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와 'What am I to you'는 내게 국보급. 악보가 어딨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 치면서 흉내내려고 했다. 체르니 100번,30번 친 동생은 피아노를 전혀 못치는데 나는 40번,50번도 뗐기 때문에 까먹은 상태는 아니라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는 가능하나 노래를 못-_-해서 첫 번째 좌절. 두 곡은 몇 년 동안 자장가였고, 'Young Blood'는 여전히 벨소리인데다가, 'Sinkin' Soon'을 듣다보면 반드시 레이 찰스 앨범도 듣게 되는데, 그럼 그날 밤 잠은 완전히 설치게 된다. 이건 부활하고는 또 다른 이유로. 자꾸 찾게 되는 무의식이 취향과 관심, 애정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녀의 정규앨범들을 얼마나 닳도록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 엄청, 많이,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함께 줄세울 엄청난 수의 다른 뮤지션들이 있다.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있는 건 언제나 문어발로 존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유 없이.

 

처음부터 노라 존스는 바르게 안착했다. 첫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적이지만 듣는 대중 개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떤 지점을 개척했다. 혼자 좋아하면서 분위기 잡고 싶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은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스러울 만큼. 노라 존스가 누구에게나 친근한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못됐다. 취향을 나누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지가 별로 없다. 실제로 재잘재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얘기하는 사람은 J 뿐이다. 함부로 재단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유일한 가족 아닌 가족. 다들 아는 분야, 읽은 책, 들어본 음악에 숟가락 하나 더 못 얹어서 난린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늘 헬스장 뛰어다니고 드라이브 하는 것 같은데 책은 언제 읽는지,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닮아간다. 정확히는 내가 닮고 싶다. 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나가는 얘를.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나를 견뎌야 하는데(그럴 경우 타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가려고할 때면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진중함은 늘 나를 붙잡는다. 나를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나는 늘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시도때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것, 도착해서 짐을 풀 때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비밀과 거짓말>을 쓰고나서 은희경 작가가 애기했던 '역마살'인데 나는 그건가. 여튼 뭔가 궤도에 올리면 울궈먹는 대신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소설가에게는 역마살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살붙이고 숨결 불어넣고 사랑하고 애증하다 언젠가 보내야 하는데, 그걸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책을 더 읽거나 공부를 더하면 되는데, 공감력이나 감성이 모자라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과 공감력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일반인을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느낀다. 가식이 아니라 뼈저리는 고통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탐색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노라 존스는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잡식성이고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재즈에 대해 모른다(음악잡지 재즈피플을 몇 달 받아보면서 알았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쉬웠다). 두 번째 좌절. 굳이 비교하면 나는, 재즈 < 컨트리,인데 그래서 노라 존스 < 올리비아 뉴튼 존,이다. 제이슨 므라즈는 두 장르 모두를 넘나들지만 그의 곡들은 한국사람 정서에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기가 쉽고, 좋아하는 사람 찾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쉽고, 싫어한다고 하면 모두 확 달려들어 공격해올 태세. 참고로, 나는 안 싫어한다. 좋다. 부산 콘서트. 라이센스 공연은 예전에 갔던 스위트 박스 이후로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비싼 돈 들여 공연 갔다가 얄궂은 일로 죽어라 싸워서 헤어질 뻔;;(갑자기 이게 왜..)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제이슨 므라즈의 새 앨범 월드투어 첫 스타트가 부산이란 게 신기하고, 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를 동경하던 언젠가처럼 아련해진다. 좋겠다, 가수는.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온 세계 도시들을 누빌 수 있다니. 그래도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나는 지금 노라 존스 새 앨범에 리뷰를 덧붙이고 있다.

 

얼마 전 맛보기로 싱글이 발매되었다. 'Happy Pills'는 여전히 상큼하고 부드럽고 강했지만, 그동안 귀가 예전 곡들에 적응했는지 쉽게 마음으로 듣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가능해졌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곡들의 느낌이 나를 나이먹게 한다. 이게 3월이었나, 어쨌든 그러면서 잊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충동이다보니, 우연히 앨범을 구하게 돼서 들을 수 있을 때 얼른 들었다. 처음부터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가사의 뜻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동이 한걸음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말리는 마음의 느낌으로 한 곡씩 마음에 넣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또 이 곡들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상관 없었다.

 

노라 존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피아노' 때문인데, 우연찮게 [Live in Paris] 앨범을 듣다가(다이애나 크롤도 파리 라이브 앨범 있는데! 그것과 달리 노라 존스의 이건 해외앨범인 것 같다)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모든 곡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놀랐다. 편곡의 힘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라이브의 현장성도 물론이고, 새삼 감탄하다가 역시, 좋겠다, 가수는. 으로 귀결. 사실은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운 거지만. 전에 데이트 하던 날, 걔 성격 답게 말 꺼내자마자 114에 묻고 서면 뒤져서 '애플스토어' 가서 아이팟 충전기 사왔다. 2만원 생각하고 갔다가 4만원이래서 잠시 놀랐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한데다가, 어차피 없으면 안되고, 안사고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샀다. 산 건 잘 한 일이었지만 4만원 충전기+USB잭이 불안하게 덜렁거리는 걸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기존고장도 그래서 났는데, 원래 쉽게 고장나도록 만들어 놨던 거군, 하면서 애플 씹다가 그냥 잊었다. 며칠 지나니까 역시 돈이 좋아,이러면서 아이팟으로 밤마다 <패션왕> 무한반복과 각종 영화들 섭렵을...( '') 자연히 노트북은 자료 옮길 때만 쓰고, 그즈음 엄청나게 인문서를 사모으고,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인터넷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으로 무장한 다음,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보고는 이제 프로이트와 융을 읽겠다며 책장을 다 뒤져서 엉망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군데군데 파전과 부추전을 굽고, 돼지고기 엄청나게 넣어서 보글보글 매운 김치찌개도 끓이고, 두부랑 호박 숑숑 썰어서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양념소고기를 엄청나게 볶아서 상추쌈을... 먹긴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노라 존스와 상추쌈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노라 존스는 충분히 갖다 붙이는 대로 간다니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나른하고,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이건 틀렸다. 슬픈 거랑 달콤한 건 반대말이 아니니까. 그래도 맞다. 낮을 슬퍼하면서 밤에만 피어나는 장미 같다. 노라 존스를 들으면서 생각도 안 나는 많은 악기들을 배워볼 생각을 했다. 처음 'Sunrise'를 듣게 된 건 누가 피아노 치며 그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그렇게 강해 보이는 거다. 연약할 때 연약하고 강할 때 강해서 사랑받는다. 강약을 잘 알아야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노라 존스는 그런 여자처럼 노래하고, 그녀의 여성성에 환상을 품게 한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희미한 첫사랑의 느낌. 그녀를 보며 늘 피아노 치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던 내가 드디어 피아노 연주하는 타인에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노라 존스가 있는 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p.s. 내가 딱 보편적 취향이다 싶은 게, 매번 '미는 곡'이 좋다. '숨겨진 곡'이나 '끼워진 곡'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이나 욕도 안듣고 이러고 대충 사는 거겠지,싶어서 세 번째 좌절. 이번 앨범자켓은 이전보다 더 예쁘다. 통에 든 포스터도 저 자켓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실 문 앞에 붙이면 욕실이 환해질 것 같아서 내 방 말고 욕실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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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라진 노라 존스, Happy Pills 들으면서
    from A Month in the Country 2012-05-13 10:48 
    일요일 아침 노라 존스 신보 'Happy Pills' 라이브 무대 녹음 동영상 보면서 들으면서 시작한다. 내가 알던 노라 존스가 확 달라졌다. 맛보기 동영상만 있어서 얼마간 곡에만 취해 있었는데, 오, 그녀, 이제보니 외모까지 달라졌다. 그러나 어쨌든 더 좋다. 신선해서 다 좋다. 바람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오늘은 집에만 있고 싶은데, 꽃 들고 사뿐사뿐, 외출이다.
 
 
맥거핀 2012-04-2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제이슨 므라즈가 내한하는군요. 어제 보니 가가도 왔던데..노라 존스도 몇 번 한국에 온적있지 않나요? 옛날에는 저도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오면 막 가고 이랬는데, 이젠 왠지 좀 시큰둥. 그래도 매닉스가 한국오면 가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어요. 빚내서라도 가야지.

아이리시스 2012-04-22 22:18   좋아요 0 | URL
아, 맥거핀님은 서울 사시죠? 여기 부산에서는 그런 거 오면 많이 신기해요. 가수들이 연말마다 일부러 부산 내려와 지방공연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미술전시회가 더 취향..인 것 같아요. 사실 좋아하는 것과 공연가는 건 좀 다르잖아요. 노라 존스가 좋지만 굳이 공연가서 손 흔들며 듣고싶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많이 왔을 걸요. 이거 어제(그제?) 쓴 건데, 간만에 검색해봤더니 많이 왔었더라고요. 이젠 왠지 좀 시큰둥222. 저도 가고 싶은 공연은 몇 개 있는데 빚내서 가고 싶을만큼 음악팬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도 가수들 좋아했지만 보러 뛰어다닌 적은 없고. 저는 대체로 얌전하게 좋아했어요.

갑자기 빚내서라도 간절한 무엇이 있다는 게 부럽네요. 요즘 좀 다 재미없는 것 같아서요..

이진 2012-04-2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나도 알라디너 분들의 음악가 사랑에 동참해보고 싶어요. 얼마전 다락방님이신가 누노의 팬이시라며 글을 올리셨는데 아이님은 노라 존스! ... 두 분다 처음들어보는 사람들이라 안타까움의 눈물을. 그래도 노라 존스 한번 들어보고 싶은걸요. 팝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밖에 안들었는데... 일단 재즈. 흠

아이리시스 2012-04-24 16:06   좋아요 0 | URL
응. 소이진님은 처음 들어보니까 다락방님이 소개하시는 노래도 듣고, 제가 소개하는 노래도 듣고! 그러면 얼마 지나지않아 누나 나이 되어야 아는 것을 빠르게 어린 나이에 모두 습득^^

근데 날씨 왜이렇게 더운 거예요...갑자기... 힘빠지게!!!

댈러웨이 2012-04-2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아이리시스님, 저 지금 무척 흥분했어요. 새 앨범 곡들 찾아서 듣고 있는데, 너무 좋아서. 이거 노라 존스 맞아요? 1. 곡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은 뭐죠? say good bye 같은 곡. 2. 앨범 사진, 여지껏 보아 온 노라 존스 이미지 중 가장 섹시한걸요.

3집 딜럭스 판으로 달랑 한 장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sinkin soon이 있는 앨범(^^), 노라 존스는 음색이 무난하다고 해야할까 격하게 애정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격해지네요. ㅎㅎ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My blueberry night에서 주드 로와 그녀는 참 이뻤어요. 그런 거 따라하고 싶어지쟎아요. ^^

아이리시스 2012-04-24 16: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우리(?)는 앨범이 나오면 반드시 구매를..( '') 난 뭐 내 저작권주장 그런 것도 못하겠어요.(아..너무 솔직한가..) 대체 내가 나오지도 않은 판을 어떻게 구한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그것도 우연히...

이 댓글 보고 다시 들어봤는데 say good bye 정말 그러네요. 섹시해요. 저는 나른한 목소리에 언뜻 섹시함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은 정말 그러네요. 격하게 애정 다시 한 번 하는 중이에요.하하.
뭐니뭐니해도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 짱!!! 그런 거요? 키스각도?ㅋㅋㅋ

비로그인 2012-04-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저는 그런 공식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노라존스=돈노와이.
이 글을 보니까 공식을 조금 확장하고 싶어지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2-04-24 16:11   좋아요 0 | URL
나도 노라존스=돈노와이. 동감!
나는 공식 좀 확장했어요. 수다쟁이님도 해봐요. 그리고 한영애말고 또 추천해줘요!
나윤선하고 오지은은 원래 좋아하는데 한영애 좋더라고요^^
(나한테 추천하진 않았으나 내가 읽으면 나는 내가 추천 받은 거 같아가지고 막 신나서 들어봐요)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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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앨리스 워커를 잇는 미국 흑인여성작가.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는 이 짧은 문장이 맘에 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도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을 읽고 영감 받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하니, 이 평가는 넘치는 것도 모자란 것도 아닐 것이다. '미국흑인'이나 '여자들', '페미니즘'에 꽂힌 건 아니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촘촘히'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드 <멜로즈 플레이스>를 떠올렸다. 시즌1로 막내린 미스터리 형식의 멜로인데, 흑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멜로즈 플레이스라는 펜트하우스에 세들어 사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변주곡이라는 점에서만 닮았다. 세입자들은 각자 비밀을 갖고, 사랑과 우정, 배신과 질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평범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멜로즈 플레이스의 마당에 있는 수영장에서 주인여자가 시체로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이 죽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세입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미스터리 구조다. 옴니버스라기에는 뭣하지만, 같은 장소의 공동체적삶을 묘사해내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이 책은 참 따뜻하면서도 무엇보다 쉽게 읽히고 재밌다.

 

토니 모리슨은 원래 몇 권 갖고 있어서 앨리스 워커와 글로리아 네일러를 함께 사들였다. 이들은 흑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이든 문학의 주제든 인종학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비슷한 선에 존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는 이제 내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서 저지른 주문이었다. 한동안 누구의 아픔에도 발 담그기 싫은 무료함이 계속되긴 했어도, 브루스터플레이스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여자들의 인생은 나를 실망시키지도, 들뜨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지막까지 응시한 나는 마음으로만 오래도록 그녀들의 거칠 것 없는 행복을 빌었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명제를 상기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대상불문하고 누구나 신파가 아닐까 싶어서 짧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여자 일곱. 이들은 모두 과거나 현재에 내면의 상처, 한정된 상황, 흑인이라는 인종 안에 갇혀 부당한 어떤 일들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이다. 고정된 세상의 시선에 맞서 싸우는 여자가 있는 반면, 그저 살아가는 여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체념하는 여자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녀들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하나 더 공통점을 찾자면 어떠한 연유로 이곳, 브루스터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기억을 통한 시간의 흐름은 마치 용해된 유리와도 같아서 분명하지 않다가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구체화할 수 있다. 3년이란 세월이 한 번의 대화, 한 번의 눈길, 한 번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다. 또한 한 번의 정신적 고통이 산산이 부서져 3년이란 세월에 고루 뿌려질 수도 있다. 시간은 말이 없고 아리송하여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날마다 조금씩 사라지지도 않는다. 한평생이 거품처럼 사람을 현혹시키는 투명한 파도를 타고 흘러가다가 이따금 기대하지 않았을 때 제멋대로 의식 위로 튀어 올라 물보라는 일으키는 한편으로 시간은 소용돌이치며 사람의 마음속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p.70)

 

매티는 사탕수수 내음이 온 초원을 가득 채우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았다. 아버지는 교인에 아주 엄격한 분이어서 딸의 안전을 위해 많은 것을 금지시키며 키웠다. 집집마다 넘치는 일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와있던 일꾼 부치와 걷다가 의도하지 않게 그에게 남자 냄새를 맡게된 건 울퉁불퉁한 그의 팔근육과 사탕수수를 쳐내는 화려한 칼놀림이 아니라 푸른 초원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전해준 사탕수수 내음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혼모가 되었고,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았다. 죄인처럼 고향을 떠나 아들 바질을 낳았고, 아무도 받아주는 곳 없이 떠돌다가 아무 대가 없이 자기와 아들을 받아준 미스 이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 손녀 시엘까지 넷이 한 집에서 산다. 20대에 미혼모가 된 그녀는 장장 30년을 이 집에서 보낸다. 아들 바질을 물고 빨고 감쌌던 매티의 母情의 끝은 결코,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바질의 엇나감과 나약함을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매끄러운 길

청명한 날

그런데 나는 무엇 때문에 홀로

이 길을 여행하고 있는가

얼마나 기인한가

사랑이라는 길이 그토록 쉽다니

저 앞에 우회 도로가 있는 걸까? (pp.132-133)

 

본격적 이야기는 느즈막히 브루스터로 오게 된 매티와 한때 매티가 고향을 떠났을 때 함께 지내다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헤어졌던 에타가 매티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시작한다. 옴니버스 식이라 일곱 명의 흑인여자들의 삶을 조명하고는 있어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연대의 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에타는 남자에게 기대 한평생 편안하게 살아간다. 남자들을 탐색하여 사랑을 빙자하지만 개중에는 정말로 사랑한, 사랑받은 남자들도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치게 짧고 마지막은 항상 보잘 것 없었다는 사실만 빼면. 착실한 신도인 매티를 따라나섰다가 교회에 출장예배 나온 우즈 목사와 서로, 감정의 교란을 벌인다. 에타는 그가 자기 목적을 모르는 줄로 알지만 우즈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특하다. 이 능숙한 게임은 보는 나마저 아릿하게 한다. 이 여자들에게는 어째서 하나같이 편리한 삶이란 없는가 하고. 그녀의 사랑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룻밤의 정사는 사랑으로 시작되지 못한 관계를 반영하는 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키스와나는 흑인계 중에서도 꽤 안정적인 삶을 일군 부모님 품을 떠나 브루스터로 왔다. 아프리카계 이름으로 바꾸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브루스터 주민들과 연합하여, 흑인에게만 유독 가혹한 많은 상황들을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잔소리가 달갑지 않지만 키스와나는 그것 또한 사랑에서 나온 거란 걸 안다. 엄마는 딸이 부모님 그늘에서 편히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궈내겠다는 '혁명'의 동기가 보잘 것 없다거나 중요치 않다고 여긴다. 한편, 말다툼은 본질을 벗어나 바깥 궤도를 공전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서로를 이해하거나 가만 두게 될 것이다. 엄마와 딸이니까. 매티를 처음 받아줬던 미스 이바의 손녀 시엘은 집을 들락날락하는 남편 대신 홀로 딸을 키우다시피 한다. 시엘의 남편 유진은 매티 또한 달가워하지 않으며 뱃속에 든 아이를 부정하기까지 하다가, 어느 날 일자리를 얻어 다른 도시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남편을 붙잡으려는 시엘의 간곡함과 그녀를 뿌리치는 남편의 실랑이가 반복되는 동안, 방치되어있던 어린 딸은 감전되어 죽었다. 딸의 장례식 후, 처음에는 울부짖지도 못하던 시엘은 따스함이 남아있는 브루스터의 여자들틈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응어리진 마음을 토해낸다.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아내는 단 한 사람은 역시, 매티 뿐이다.

 

코라는 어릴 적부터 인형을 좋아했다. 열세살이 넘도록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만 찾아대서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인형이 아니라 진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녀에게는 아빠가 다른 아이들이 여럿 생긴다. 열여덟 즈음부터 낳은 아이들은 커갈 수록 도로 뱃속으로 넣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하는데, 그녀를 찾아온 키스와나가 남자친구가 책임자인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을 보러 오라고 제안한다. 그날밤, 코라와 아이들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요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삶은, 이전과도 이후와도 다를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두 여자가 브루스터로 들어온다. 소리소문도 없이 마을 주민이 된 테레사 로레인을 사람들은 레즈비언으로 오해하고, 키스와나 주재 하에 열린 회의 차 모인 자리에서 주민 소피와 에타의 비난 섞인 다툼에 의해 크게 상처 입는다. 그녀를 위로하는 건 브루스터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중년남자 벤이다. 그는 로레인을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벤의 사연은 앞선 모든 슬픔을 압도할 만큼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다. 과거의 일과 상상 속의 일이 뒤섞여 설명되는 벤과 아내, 딸은 평범한 가정이 사소한 일로 어떻게 산산조각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로레인과 벤의 불행은 우연히 일어난 슬픈 비극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2008년은 미합중국의 대전환의 해였다. 미국 정치사상 최초로, '백인'이 아닌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미래의 시작이다. 미국은 유럽의 백인들이 16세기부터 몰려와 토착 미국인(이른바 인디언)들을 멸절, 희생시키고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데려온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만든 나라다. '노예'로 시작된 흑인들의 위상은 '검둥이'와 '흑인'을 지나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치적 정의'에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이르렀다. 토착 인디언을 제외하면 미국 역사상 가장 착취되고 억압되고 차별됐던 미국 흑인들의 지위가 날로 새로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342)

 

브루스터로 몰려든 흑인들 중 특히 여자들의 삶을 조명한 '소수자 담론'이자 '타자의 서사'라고 옮긴이가 덧붙인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속에 든 아픔은 미국흑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가난, 차별, 가족해체 같은 것들이다. 흑인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인종과 성, 두 가지 차별이 복합화되어 더욱 부조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백인이 사는 거리와 벽 하나의 차이를 두고 형성된 브루스터, 일곱 명의 여자들에 대한 사연이 끝나고 덧붙여지는 마지막 장의 '구역 파티'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이 안에서조차 하나가 될 수 없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억눌린 감정이 비슷한 위치의 이웃들에게 화살처럼 튕겨져 나가는 것이다. 이들의 협동체를 구상하고 실현하려는 중심에 일곱 명 중의 한 명인 키스와나가 있고, 오랫동안 마을에 살며 모든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실제로 大母같은 역할을 해내는 매티가 있다. 그들이 바꾸려는 평등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백인 집주인이 터무니없이 올려달라는 월세에도 개인적으로는 저항하지 못할 만큼 주눅들어 있거나 힘이 없다. 단결이 힘이건만, 여자들은 여전히 이웃과 으르릉 거린다. 후반부, 브루스터의 벽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것은, 흑인과 단절되어 있던 세계와의 화합 혹은 소통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모호하지만, 그들의 도전이 실패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첫 술에 배부르랴, 의아해하면서도 한 번 힘을 모아본 이들은 다음 번에 더욱 필사적으로 힘을 모을 것이고, 다다음에는 비로소 같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다다다음에는 서로의 불신을 완전히 깨고나와 불의에 대항할 것이고, 이후에는 완전히 그들만의 자리를 찾을 것이다. 언제나 흑인들의 요구는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네일러는 그 과정을 특히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아주 드라마틱하게 잘 그려놓았고, 이 소설은 단지 흑인 틈에서가 아니라, 백인들과 맞물려 상대적으로는 더 가혹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미국 흑인 여성들의 의지와 인내로 빚어진 삶에 대해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 처절하게 묘사하면서도 절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서인지, 막막하긴 하지만 아주 기분이 좋다. 나아가야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생겨난다. 따뜻한 힘을 주는, 바닥에서 시작하지만 아주 발랄한 시작이다. 갑오개혁으로 법제적 신분제가 폐지되고 완전한 노비해방이 되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신자유주의 물결로 온 세계가 휩싸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소설과 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변하고 있고,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소 감정적이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은 연애소설 같은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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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2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어려운데 흑인으로 사는 것까지 더해지면 그 무게는 상상이 되질 않네요...
오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잘 모르고 편견에 편견을 더 해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변하는건 더디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겠죠?

요새 이곳은 벚꽃이 절정이예요. 내일 꽃놀이 가려 했더만, 주말 내내 비온다네요.ㅠ.ㅠ
그래도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2 20:19   좋아요 0 | URL
벚꽃은 남쪽에서 피면서 위로 올라가는 거군요(처음 알게 된 1인). 오오, 당연한 걸 저는 뭐 이렇게 지식인양 크게(?) 깨달을까요.. 현맘님, 꽃놀이 가셨어요? 여긴 어제 비, 오늘은 맑음인데요. 쫌 있으면 또 결혼식 불려다녀야 해서 좌절-_- 귀찮-_- 그냥 저는 왜, 결혼식에 남들이 가서 박수를 쳐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옷 사러 가야해요. 히히히. 그건 좋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23 20:32   좋아요 0 | URL
결혼식에 예쁜 옷 입고 가서 박수치지는 마요..ㅎㅎㅎㅎ
맛있는 밥 먹고, 친구들 중에 멋진 남자는 없나..(아..아이리시스님은 그럴 필요 없군요!)
흠흠...
예쁜 옷 사서 사진 찍어 보여줘요~ 난 젊은 아가씨들이 그런게 부러워요. 뭘 입어도 예쁘잖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4 16:32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히히 그럼 되겠구나. 박수 안 치기. 박수 안 치는 건 내 자존심이에요ㅋㅋㅋ
평소에는 뷔페 갈 일 없으니까 저는 초밥을..( '') 왜요, 멋진 남자는 언제나 필요하죠!!!
흠흠..
네! 예쁜 옷 입어서 예쁘게 사진 찍어서 쏠게요. 뭘 입어도 뭐 그렇게 예쁘진 않답니다..히히히.

댈러웨이 2012-04-2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인가 아프리칸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아 연탄처럼 새까맣다'라는 생각만 했죠.
세월이 이만큼 지나서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들을 볼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제 마음대로 폄하를 해 버리죠.
뿌리 깊은 뭔가가 머릿속에 깊게 박혀 버린 탓이겠죠. 이거, 없애기가 쉽지 않아요.

'검둥이->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의 발전,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저도 오늘 처음 아프리칸'이라는 표현을 써 보네요. ^^

아이리시스 2012-04-22 20:3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에는 딱히 백인에게 억압받는 흑인여성이 그려지는 건 아니고, 사회적 배경을 모두 배제한 채 개인적 아픔에 주목하고 있어서 이 책으로는 그 차별이란 게 아주 확 다가오지 않지만요. 남자가 버리고 가면 여자는 대부분 아이와 버려지잖아요. 먹고 살기 힘든 거 똑같고.. 흑인이라고 별다를 게 없잖아요. 저는 동병상련(?) 느껴요.(불쌍) 저는 피부 까만 편이어서 컴플렉스는 있는데 그렇다고 흰 피부가 부러운 건 아니예요,라고 해도 엄청 부러워요ㅠㅠㅠ 우리 엄마아빠는 왜 날 이렇게 낳아가지고;;
 

 

 

 

사실 홀딱 벗은 채 배를 부딪치고 신음소리를 내며 결합하는 과정이 더 '중대한'데도 불구하고,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욕정의 섹스에서 남자나 여자는 한 번쯤 '입에다가는 키스하지 말아요'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의아하다. 키스는 섹스의 전 단계인데 섹스하는 중에 키스는 안된다니,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혼란한 시대에 몸소 느끼는 공허를 오빠, 남동생 할 것 없이 온갖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채워가던 정략결혼의 희생자 가톨릭교도(구교도) '마고' 그러니까 이자벨 아자니의 입으로 절정의 순간에 이 대사를 들으니, 언젠가 그애가 했던 웃긴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남자가 아니므로 남자가 궁금했다. 아마 남자들은 왜 섹스를 안하면 살 수 없냐고 물었던 것 같다. 못하면 왜 승질 내냐고도. 왜 보채냐고도. 나는 어렸고, 막 키스없이도 몸을 내줄 수 있고, 처음보는 사람과도 눈빛만 통해서 잠자리를 할 수 있다는 이전에는 말도 안돼, 했었던 이론들을 가능하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결합이 감정이 아니라 욕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들은 이미 알았는데, 그래도 내 생각은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해야 하는 욕망해소와는 좀 다른 '이론'이었다고 스스로 생각. 아님 말고. 더 어릴 때 나는 '사랑하는 것'과 '잠자리'에는 별로 연관이 없지 않냐고 늘 반문하고 있었고(손잡고 잠만 자도 애기가 생기는 줄;;), 그애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얼마 전에는 결혼과 출산 이후 아내의 거부로 횟수가 줄다가 줄다가 자존심 상한 남편이 요구하지 않자, 아내가 자존심 굽히고 들어가 다시 좋은 관계가 되었다, 부부의 잠자리에 밀당은 필요없다, 뭐 그런 기사에 2주만 참아도 큰일나는 남자의 특성상, 몇 년간 관계가 없었던 남자가 분명 어딘가에 해소하고 왔을 거라는 악성 or 저렴 or 편견 댓글이 달린 걸 봤다. 세상 남자들이 다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욕망이든 욕정이든 비난한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그분의 문제. 그분의 생각.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본다면 사만다에게도 몰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섹스는 아직 은밀하고 소중한 감정이지, 절제 안되고 참을 수 없이 열망하는 어떤 것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갑자기 섹스론.. 이게 뭐지..

 

그렇게 생겼으니까. 라고 답하면서, 그럼 너는 왜 참는데? 라는 연이은 질문에,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뿐이잖아. 사랑한다는 표시내는 건데 니가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그때 얼마나 웃었냐면, 남자들이 싸잡아 바보처럼 보이는 거다. 3초의 희열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잠자리의 욕정인데, 그냥 흔드는 거라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이은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서로 원할 때 해야 좋은거지, 짐승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싫다는데 애원할 일은 아니지. 근데 남자는 그렇게 생긴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욕하면 안돼. 여자도 나이 들면 남자보다 더 성욕이 강해져.. 어쩌고저쩌고.

 

 

 

 

 

 

 

 

 

 

 

 

 

 

이자벨 아자니 진짜 예쁘다. 일단은 궁중 예복과 드레스 등이 눈에 확 띄지만 그보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쇄골과 허벅지 같은 게(아.. 이 페이퍼 19금!!! 우리 소이진님 어쩌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다운데, 자연스럽게 성욕을 부르지 않는다면 거짓말 아닌가. 나는 그림만 봐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외설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역사시대극인데 배경을 모른다면 모르지만 어느 정도 배경을 이해하고 보기 시작하면, 이보다 더 선명한 줄거리로 핏빛 역사를 재현하기란 힘들다. 오히려 뚝뚝 떨어질 듯한 피가 더 외설적이라면 모를까. 사내들의 욕망은 섹시하고, 숨겨진 질주는 가히 매력적이다. 성적인 면 말고. <스파르타쿠스>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는 예술미까지 느끼고 있다. 미쳤나. 영화는 교육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역사의 한 획을 제대로 긋는다. 마침 온갖 미남 왕들과 남자들 그리고 그들의 약함, 비열함까지 부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종교는 참 많은 이에게 빚을 졌다. 다양한 종교가 나름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우리나라로선 이해하기 힘든 몇 번의 종교전쟁. 사실 종교에 빗댈 뿐이지, 결국 어떤 명분으로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어설픈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빨갱이 이론은 정부를 부정하는 사상 덩어리이기라도 했지, 개인의 삶에 지극히 추상적으로만 자리한다 여기던 종교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긴 근대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에 비하면 이해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종교는 문화 혹은 문명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주도권을 쥐는 순간 권력이 되므로 한편으로 엄청난 무기가 아닌가.

 

<여왕 마고>야 말로 프랑스 구교와 신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을 소재로 하는 대작이다. 시대는 16세기, 배경은 프랑스, 소재로 1572년 파리에서 일어났던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사건을 다룬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에 이 사건은 이렇게 소개된다. (네이버 지식사전)

 

가톨릭의 위그노 공격으로 수천 명이 거리에서 살해된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날이 밝기 직전,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끔찍한 폭력의 물결이 파리 전역을 휩쓸었다. 프로테스탄트 교도를 추격하여 집 안에서 살해하고 상점을 약탈하며 가족 전체를 몰살했다. 프로테스탄트 왕자인 나바라의 앙리와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누이인 발루아의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며칠 전에 열렸으므로, 여기에 참석했던 위그노(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급 귀족들은 여전히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도시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 결혼은 샤를 9세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주선한 것으로, 가톨릭 설교가들 사이에는 비판의 물결이 널리 일었으며, 파리에는 반 위그노 감정이 팽배했다.

그 전날 위그노의 우두머리인 콜리니 장군을 노린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이후 24시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록은 매우 혼란스럽지만, 8월 23일 밤, 가톨릭에 대한 복수를 두려워한 카트린이 자신이 좌지우지하던 나약한 왕을 설득해 도시에 남아 있는 위그노 귀족을 전부 처단하게 했던 것 같다. 콜리니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급습을 당해 칼에 찔려 죽었다. 다른 귀족들도 곧 목숨을 잃었다. 새신랑인 나바라의 앙리는 개종자인 척하여 목숨을 건졌다. 왕은 뒤늦게 학살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이미 다른 도시로 번진 후였다. 10월이 되어 살인이 멈췄을 때에는 파리에서만 3천 명, 프랑스 다른 곳에서는 최대 3만 명의 위그노가 죽은 후였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대학살 소식을 환영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축하 메달을 제조하도록 했고, 화가 조르조 바사리에게 학살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은 위그노의 반발을 진압하기는커녕 이러한 상황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도록 하는 결과를 낳아, 프랑스는 또 한 차례의 내전에 빠져들게 된다.

 

"광분한 군중이 '위그노를 죽여라!'라고 외치는 광경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쉴리 공작의 회고록』, 1638년 출판

 

그리고 '파리가 피로 물들다'라고. 이보다 더 잔인하고 포악하게 콕 집어낸 수식어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싸움을 늦추기 위한 정략결혼으로부터 시작할 뿐이다. 아들 대신 통치를 맡게 된 카트린 드 메디치가 평화협정을 위해 딸 마고를 개신교도(신교도) 앙리 4세와 결혼시킨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학살이라 여겨지는 종교전쟁의 씨앗을 잉태한 달콤한 알약이었을 뿐인 이 결혼식을 시작으로 이제껏 해온 크고 작은 다툼을 종식시키리라 믿었던 개신교도(신교도)들이 안심한 순간, 카트린의 악랄한 뒤통수치기로 인해 세느강이 피로 물든다. 마고가 진짜 사랑을 알아본 것은 이날 밤이다. 피흘리는 한 남자를 숨겨주며 시작되는 사랑. 여기서 흥미 끝.

 

영화 이미지가 강렬해서 특정 시퀀스가 전체 줄거리보다 붉고 짙다. 차라리 치정 살인이 낫지, 종교가 죽고 죽일 명분이 된다는 게 여전히 의문이지만, 사랑이 이유 없듯, 전쟁도 이유 없는 거여서 여튼 전쟁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력적으로 치장된 영화도 볼 수 있고, 좋지 뭐! 영화는 영화일 뿐, 내 것도 아니니까. 제3자의 시선. 요즘 이러고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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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04-16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오늘 하루종일 알라딘에만 계셨군요! 왜 이렇게 글을 많이 쓰셨어요!
전 이제 자야는데, 자고 싶은데 다 읽고 자야만 하잖아요ㅠㅠ 아이님의 내 잠을 뺏어갔어...
라고 투정부립니다ㅋ 차근차근 읽어볼게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 글을 던질까 말까 하는 사람인데, 아이리시스님의 이 무한한 글들은 정말-_-b

그런데 이 글, 미성년자 우리 소이진님은 어째요ㅋㅋ

아이리시스 2012-04-16 01:22   좋아요 0 | URL
아..샤이닝님 동물원 다녀왔어요? 다녀온 거예요? ^^
지금 아까 전세 전단지 붙이러 엄마한테 끌려나갔다가 지금 왔어요. 김밥천국에서 김밥 두 줄 사왔어요. 호호호. 다리 아프고 졸려 죽겠어요. 하루종일 시체놀이하면서 뒹굴거리면 이렇게 돼요!!!

소이진님이 나를 순수한 누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아닐까봐 걱정돼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자요. 일요일인데 난 알라딘하고만 놀았어..( '')

맥거핀 2012-04-1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재밌어요. 중간에 빵~ 터졌습니다. 근데 저도 이 영화 봤었는데 중간에 그런 대사들이 있었나 생각이 드네요. 그런 대사보다는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ㅎ 종교전쟁이라는 것도 사실 웃긴게, 늘 종교는 명분이었고, 대체로 다른 게 훨씬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2-04-20 17:06   좋아요 0 | URL
저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기 때문에, 20대 초반이었거나 초중반. 아무 것도 잘 모르겠어서 그랬습니다ㅋㅋㅋ 쟤는 가끔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할배같은 진지함이 있기 때문에 저런 대답을 했었어요. 그 대답부분이 웃긴 게 아닌 거예요, 맥거핀님? 아하하. 묻지도 않고 혼자 설명하고 있었네요.

서양=종교+과학
동양=인본주의

에서 시작됐다고 요즘 읽는 신영복의 <강의-나의동양고전독법>에 나오던데요. 서양은 철학이든 역사든 늘 그 명분의 종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종교'의 지점에서 늘 서양문명에 흥미를 갖는 것 같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나 인종 같은 것들에서요.

이진 2012-04-1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 소이진님 어쩌지... 하지만 괜찮아요. 남자인데가 벌써 고1이잖아요. 알건 다 아는 나이고, 뭐. 그래요 ㅋㅋㅋ학교 국어 선생님도 터프하게 막 말하시는걸요 뭐... 그래도 이런 영화는 딱히 보고 싶진 않아요. 포스터의 여자가 예쁘긴 하지만요. 정확히 말하면 여자보다는 옷의 기품과 우아함이 더 아름다워 보인달까요.

나 근데 자주 못온다면서 매일 들어오고 있어요. 하, 이러다 중학교 아니 고등학교 첫 시험인데 망치면 어쩌지 ㅠㅠ

Shining 2012-04-16 23:54   좋아요 0 | URL
이자벨 아자니는 레전드급 외모죠>_< 그러게; 알라딘때문에 시험 망치면 안되는데ㅠㅠ

아이님, 소이진님 괜찮대요ㅎㅎ 근데 이 아이러니한 감정은 뭐죠, 뭔가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운...
저 소이진님이 더 부끄러워하길 기대했나봐요ㅋㅋ 아이리시스님도 그렇죠?

이진 2012-04-17 23:16   좋아요 0 | URL
잉, 아니에요. 부끄부끄하답니다. >3<... 하면 농담이구.
순수문학이랄까요,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선정적인 장면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맞죠, 그죠? 우리나라작품은 약간 에둘러서 표현된 감이 많은데, 특히 일본의 작품들은 심하잖아요. 그쵸? 맞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왜 전 이런걸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걸까요... 후후

아이리시스 2012-04-20 17:12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 예뻐요. 프랑스배우들에게서는 미국배우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걸 글로 설명 못하겠어요. 실제 프랑스에서 본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매력적이거나 별다르게 생기지도 않았던데요.

제가 소이진님 걱정한 건.. 제 이미지가 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이에요. 아쉽지만요. 네, 저도 소이진님이 부끄러워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도 부끄러웠어요ㅠㅠㅠㅠㅠ

소이진님/ 자꾸 알라딘에 출몰하지 말고 시험공부 하도록 해요. 시험 잘 못치면 이후가 고생스러워요. 저는 공부를 잘 못했지만 소이진님은 잘 해야해요. 우리 목표는 전국 1등이니까. (나는 꿈에서..)

소이진님은 소설 많이 읽으니까 이 정도에는 꿈쩍도 안해요, 그쵸? 알고 있었어요ㅋㅋㅋ (일본작품 뭐가 특히 그랬어요? 채홍말고..아..이건 한국꺼지?...)

2012-04-2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0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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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물이 부족한 건조지대에서 겨울철 가뭄과 추위가 겹치며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한꺼번에 수천 마리씩 죽어나가는 사태를 지칭한다. 섬나라나 해안에 인접해 있는 땅에서 맞이하는 기후적 재앙인 '쓰나미'와 정반대 개념.

 

 

광활하고 호전적인 몽골땅에 늑대(족)의 후손들이 살았다. 납치결혼 당해 남편을 일찍이 보낸 어떤 여자가 달빛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 중에 '바보'라는 뜻을 가진 막내가 있었는데, 부모의 죽음 후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재산다툼이 벌어지자 지나치게 온순해서 투미한 데가 있던 막내(보돈차르 몽학)를 형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내 소중한 자식들아. 절대로 흩어지면 안 돼. 이 가녀린 배가 화살 다섯 발을 세상에 쏘았어. 그리고 봐주는 남자도 없이 혼자서 지켜왔다. 나는 머지않아 죽지만 너희는 누구도 함부로 꺾지 못하도록, 어떤 일이 있어도 너희만은 세상이 무섭지 않도록 반드시 뭉쳐서 살아야 해. 알았니? (p.24)

 

병들어가는 약한 말에 태워 다른 곳으로 쫓아버린 것이다. 혼자가 된 '바보'는 오히려 절정에 다다른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난다. 싸움보다는 지혜를, 욕심보다 우정을 택해 인고의 기다림으로 차츰 실현해가면서, 인정을 느낀 매가 자기 앞에 먹이를 물어다 나르도록 만든다. 지혜의 힘은 위대하다. 정말로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무엇을 하도록 만드는 자이다. 전혀 가늠하기 힘든 이야기는 바로 이 예기치 못한 땅의 과거로,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바보'는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씨앗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멀리멀리 커간다.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후손을 길러 거대한 민족이 탄생한다.

 

초원의 삶은 눈이 생명이다. 혹독한 겨울과 고립무원의 고독, 사방을 둘러봐도 그지없이 막막한 일망무제의 벌판밖에 없는 땅에는 지평선 너머에도 지평선이 있고, 그 너머에도 또 지평선이 있었다. 한 생명이 좁게 갇혀서 지내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린 세상에서 드넓게 살도록 해주는 건 오직 눈의 능력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p.16-17)

 

녹록치 않은 초원의 삶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외에 어떤 원칙도 존재할 여지가 없다. 섬세한 투박함이 거친 난세를 헤쳐나갈 유일한 무기. 늑대는 말과, 말은 늑대와, 인간은 땅과 한판 사투를 벌인다. 버려진 씨앗 중에, 아버지 죽음 후 성골이라는 이유로 무리로부터 배척 당한 테무진이 있다. 테무진이 뺏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끊임 없이 죽이려 하는 키릴툭. 그리고 같은 씨앗으로부터 왔지만 테무진이 흰 뼈라면, 그는 검은 뼈이다. 남몰래 테무진을 질투하는, 껴안을 때와 돌아설 때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자무카. 대립각이 이게 전부일 리 없다.

 

목숨을 잃는 자는 죽어서도 많은 일을 하지만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한다. (p.48)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처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용맹과 강직의 땅. 유럽사에 스며든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몽골. 13세기. 난세에 영웅이 출몰한다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나고 싸우고 스러져갈 것인가. 모든 것들의 중심에 영웅 테무진이 있다. 몽골 고원의 생생한 역사는 오로지 테무진을 실감시킨 작가의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에 의해 복원된다. 한낱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다. 대단한 역사의 기록 앞에 현실은 고요히 침잠하고, 쓸데없는 에너지는 자취를 감춘다. 눈을 감으면 푸른 초원의 한복판에 서있는 내가 느껴진다.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세상이 있고, 물에는 물고기들의 세상이 있어. 초원에는 사내들의 세상이 있지. 그걸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들 고통을 참으면서 자기 다리를 견디는 걸 좀 봐. 이럴 때 한 명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하찮은 자리로 떨어지고 말 거야. 너는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확인시켜주었어. 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라." (pp.61-62)

 

초원에서는 유목보다 사냥이 쉽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물과 불을 가르는 일은 곧 전쟁으로 치부된다. 서로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쉽사리 귀를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제게 기댈까 걱정부터 한다. 삶은 아름답고 참혹하고 몽롱하다. 산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거나 저마다 붕 뜬 세상을 산다. 짐승도 마찬가지다.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 함부로 울음을 울지 않는 자들, 현세에 귀 기울이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테무진은 천지사방에서 엄습하는 초원의 위험 앞에 전면 노출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도망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침묵했고 날마다 고독했다. 제길, 운명은 하늘의 것. 간밤에도 그가 볼 수 없고 확인되지 않는 세상 밖에서 천 개의 별이 태어나고 천 개의 별이 죽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79)

 

나코 어른의 손에서는 말이 초원을 가르며 달리는 바람 소리가 났다. 말과 함께 한 세월과 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코 어른과 그의 아들을 사람들은 말 부자(父子)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원의 적이 되어 쫓기고 쫓기면서도 한 가족 못지 않게 정다운 체온을 나누었던 황금 말을 도둑 맞은 테무진에게 나코 어른의 아들 보오르추가 다가온다. 테무진은 보오르추와 가족들을 통해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정을 느낀다. 한 뿌리에서 났지만 뒤춤에 칼 꽂아 돌진하는 이들 틈에 버텨온 그에게, 한 번도 무리에 낀 적 없어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는 이들이 감탄스러울 수밖에. 초원의 정은 끈끈하고 뜨거웠다. 팔딱팔딱 심장이 요동칠 만큼 절박하면서도 고요한 시간을 선사하였다. 힘줄과 뼈로 만든 악기, 백마의 기마술, 고운 노래 그리고 협동심. 모든 것들이 초원의 광활함 앞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죽는 걸 조드라 한다. 조드는 근본적으로 고원에 물이 없어서 생기는 것인데, 피해의 양상은 크게 네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가축이 초지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 이게 하얀 조드이다. 둘, 여름이나 가을부터 초지가 말라서 겨울 뿌리까지 고갈되는 재난, 이것을 검은 조드라 한다. 셋, 극심한 눈보라가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되거나 콧구멍을 막는 흙바람 때문에 가축이 한 발짝도 나다닐 수 없게 되는 재앙이 눈보라 조드이다. 넷, 일찍 내린 눈이 따뜻해지는 바람에 철철 녹아서 흐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강추위에 아주 두꺼운 얼음이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번히 보이는 풀뿌리에 입도 대지 못한 채 굶어 죽는 것이 거울 조드이다. (p.116)

 

테무진은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온통 혼자의 그림자 뿐인 질주하는 대지에서 비로소 친구와 가족의 정을 만난 것이다. 산 너머 산, 산 너머의 산에도 산이 있을,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땅의 달빛에서 그는 지금도 슬픔으로 치장하고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이켜보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그 어디엔가는 사랑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중략) 인간을 기르는 건 세상이다. (중략) 그런데 왜 못 죽였을까? 칼을 쥔 손에 몇 번이나 힘이 들어가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왜 휘두르지 않고 돌아갔을까? 테무진에게는 그것이 언제나 수수께끼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의문이 풀렸다. 매번 남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 비겁한 이웃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감사해야 된다는 말이 백번 옳다. 아버지를 잃고 죄도 없이 붙들려온 어린 소년을 뚜렷한 잘못도 없이 죽였다가 인심을 잃게 되면 키릴툭의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목이 자신을 살린 것이다. 그 이목을 일컬어 사람들은 세상이라 부른다. (pp.173-174)

 

테무진은 길을 떠날 때 하늘에게 묻고 말에게 물었다. 광야에는 숨을 곳이 없다. 도망치고 또 도망하고 숨는 삶 도중에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보오르추의 열린 귀에 테무진이 속삭였다. 여자의 가슴과 닿았던 추억담과 약혼녀를 찾으러가기까지의 결심을. 초원에는 지도자가 없었다. 통솔, 화합, 통합 대신 분열, 경쟁, 싸움만이 있었다. 전쟁이 아니면 죽음이었다. 약혼녀와의 잠자리에 실패하고 아버지의 위독소식을 듣고 돌아가던 그날 아버지를 보내며 비로소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배운다.

 

테무진은 버르테와 혼인한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들 하늘의 별빛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밤의 흔적을 지붕에 올려 푸른 하늘에 알리는 것과 말 떼 속에서 진짜 수컷을 없애는 이유, 사막에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낙타 새끼를 함께 묻는 이유, 절망에 눈멀고 낙담, 후회 같은 감정 기관을 잘라야 하는 것 등 초원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테무진의 아내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다. 시어머니 후엘룬의 뜨거운 보살핌 속에, 오래된 그녀의 슬픈 사연을 벗 삼아, 그들의 간격은 좁혀지고 또 좁혀진다. 게르의 중앙에 화덕을 피우고 웃음을 꽃피운다. 행복을 배운다.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행복은 행복이다. 곧 다가올 미래는 예상하지 못해 애처로운 短歌다.

 

초원의 삶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오로지 삶 뿐이었다. 막힘 없이 푸르고 넓은 초원을 달리고 달려 인간을 결박하는 기후로부터, 다른 생명체로부터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는 일이 전부였다. 테무진의 어깨가 무거웠다. 한때 아버지에게 목숨을 빚진 케레이트 왕, 토오릴칸에게 목숨을 구하러 가면서도 그의 눈은 별똥 같은 반짝임을 감출 수 없었다.   

 

전투가 일어난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유한 친구들과 어제까지 행복한 웃음을 지었던 게르를 떠나면서 그만 생모와 아내 버르테를 두고 온 것이다. 유목민 그리고 초원의 전투란 生과 死 혹은 女人에게서 시작되고 女人에게서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일 터였다. 지금 버르테가 처한 상황과 똑같이 아버지 예수게이의 부족에게 납치되어 뿌리내린 어머니는 테무진에게 일생일대의 선택을 자연의 섭리처럼 요구한다.

 

"버르테는 다른 남자와 살 거다. 그래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너의 아내야."

(중략)

"울 생각 마라.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아. 인생은 아주 크단다. 우리는 자기 발밑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어. 사랑의 생명이 끝나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걸 누가 알아? 한데 그것도 하나의 생명이란다." (p.290)

 

테무진은 버르테를 찾기 위해 토오릴칸, 자무카와 삼자동맹을 결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기에 각자 발톱 숨긴 채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메르키드를 처치하기 위한 작전의 지휘는 자무카, 어린 몽골의 겁없는 지도자에게 남몰래 대립각 세우는 지도자는 토오릴칸이었다. 테무진은 보르칸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비로소 초원의 중심에 자기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도움을 구해야 할 자가 아니라 도움이 되어줄 자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비극은 경탄의 강을 흘러 뜨거운 성공의 세월을 예감하고 있었다.

 

'버르테! 초원의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광야를 횡단하는 구름만 남더라도 나는 당신을 찾을 것이오.'

 

테무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옹기라트에서 데려와 버르테의 피가 흐르는 곳이라면 손가락 발가락까지 입 맞추던 날, 한없이 높으면 높은 곳, 한없이 깊다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천 마리의 벌 떼들이 마치 꽃잎을 누비는 것처럼 부끄럽지도 지치지도 않고 덤비던 밤에 한 약속이었다. (p.321)

 

어려움을 아는 자, 어려운 자를 거둘 줄 안다. 버려짐을 아는 자, 버려진 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전쟁통에 버려진 아이를 만나면 데려와 달라던 어머니의 부탁을 거스를 수 없는 것 또한 앞으로 테무진이 가야 할 길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그 가치를 드러낼 체제이자 가치관일 것이다. 삼자동맹의 시작은 성공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영웅이란 무릇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 영웅은 절대로 포기와 타협을 모르는 법. 지혜로운 자, 영웅이 되리라.

 

알랑고아의 후손, 하얀 뼈를 물려받은 테무진에게 늘 가혹하기만 했던 초원의 삶이 드디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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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4-1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이야기...색다른데요? 초원이라니.
물론 제가 생각하는 그런 낭만적인 초원은 아닐 것 같긴 하지만...ㅎㅎ

어렸을 때 흑룡강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스케일이 다르더라구요.
그때 한참 유라시아 내륙 지방을 동경하기도 했었어요. 그곳의 삶은 진짜 다르겠죠?

아이리시스 2012-04-13 23:04   좋아요 0 | URL
몽골의 시조 알랑고아가 주몽의 딸이라는 설이 있더라고요. 아까 다(1권만) 읽고 언뜻 찾아보니까, 이 소설 주인공 테무진이 훗날 징기스칸인데 몽골제국 탄생을 그리고 있어요. 몽골역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책에 나온 가계도 아니, 족보 보니까 정신이 없는데 몽골식 이름이 입에 안 붙어서요. 엄청난 자료조사와 고증을 거쳐 탄생한 부지런한 작가의 탄생물 같아서 좋았어요. 몽골 가고 싶은데^^

오.. 그 다큐멘터리는 어떤 다큐멘터리일까요. 몽골배경 한 번 찾아보고 싶어요. 저는 이런 류의 다큐는 예전에 <차마고도>가 마지막..ㅠ 맨날 유럽,미국 이런 곳들 여행기만 줄기차게 보고요. 낭만적인 초원 전혀 아니고요. 목가적 삶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그것마저 날려버렸어요=3

잘잘라 2012-04-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용기를 잃는 자는 살아 있어도 아무 일 못 한다..
음..
어떤 일을 할 때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겠다는!!^^

아이리시스 2012-04-13 23:2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와서 천천히 글들도 읽고 마실 다니면 포핀스님 댓글도 만나는군요!
사실은 영웅 일대기 그린 역사소설이 생각하는 대로 좀 뻔한 면이 있는데, 간혹 허를 찌르는 지혜의 구절이 있어서 참 좋아요. 저도 저 장면이 기억에 남았거든요. 차라리 죽으면 기억에라도 오래 남지만, 살아서 허접하면 죽느니만 못하다는 게요.

용기.. 저는 요즘 신이 잘 안나요. 자동적으로 용기도 없어요. 밤이니까 자고나면 또 나아지겠죠. 자기 전에 맛있는 부침개 부쳐먹어야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잘라 2012-04-14 13:57   좋아요 0 | URL
쑥부침개 해먹어요! 직접 쑥 캐다가요!(야외활동이 필요해욧!!) 완전끝내줘요^^ 쑥 향기~~~~

아이리시스 2012-04-15 16:41   좋아요 0 | URL
그렇잖아도 엄마가 막 아빠더러 쑥 캐드시라고 그러던데, 요즘 이것저것 봄씨앗 심느라 울아빠 바쁘셔요. 저는 쑥국 몇 번 먹었어요. 부침개도 해먹어요? 오늘 진짜 날씨 따뜻해요!! 신나요!!^^
 

 

 

 

다른 삶. 어떤 삶이요? 어째서 다른 삶을 살아야 하나요?

 

 

 

 

 

 

 

 

 

 

 

 

 

 

 

힘겹다면 누구 하나는 묻지 않았을까. 강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게 삶인데, 다른 삶을 살라니, 나는 내 삶조차 정의내리기 혼란스러운데, 대체 당신이 얘기하는 다른 삶이란 무엇인가요. 언젠가, 미이라의 전복된 이미지를 설파하는 프리젠테이션 발표자에게 질의자로 예정된 내가 질문했다. 미이라의 왜곡된 이미지를 탓하려면 일단 미이라의 원 이미지를 먼저 다수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미이라의 원 이미지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결국, 아무 것도 '원(original)'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설 <은교>에서 이적요는 제자 서지우에게 밤하늘의 별이 반짝인다는 것마저도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고정된 이미지일 뿐이라며, 전복되지 못하는 사고(생각)로는 어떠한 시적 번뜩임도 찾을 수 없다는 강의록으로, 시, 나아가 문학의 한정된 둘레와 보수적 문학계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결국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작가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독자, 아니 그보다 더 큰, 세상에 고하는 일침이 된다. 별빛이 반짝인다는 사실마저도 당신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허상, 고정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면서. 문학에서는 허상과 실질의 괴리만이 대상을 빛나게 한다. 언어도, 이미지도, 메시지도. 아마 다른 어떤 대상에 대입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안정을 원하는 동시에 변화를 추구한다. 욕망과 열정, 변화와 괴리는 맹물에 뿌려진 달콤한 설탕 아니면 소금 같은 것이다. 어느 하나만 있거나 둘 다 흔들리거나 하는 한, 갈대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정과 경직된 결혼생활, 고정된 인간관계와 환경 등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불변과 변화의 어디쯤. 그것만이 삶을 가능케 한다. 결국 부서질 어떤 삶도, 반짝임이 눈부셔 외려 어두운 어떤 절망도, 침잠하는 고요의 찰나에도 나만 다른 삶을 살아도 될까요, 하는 의문을 품는다. 사랑, 일, 사회, 사상, 신조, 신앙, 가치관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여전히 허락되지 않은, 찢어발겨진 허무의 삶을 나는 이 영화 <이민자>에서 본다. 지독히 열망할 수록 그림자는 훨씬 더 짙은 법. 욕망이 원칙을 능가하는 세상은 아름다운가. 아님 반대가 평화로운가.

 

 

 

 

 

 

 

 

 

 

 

 

 

 

 

 

 

포스터를 보고 영화에 꽂힌 건 오랜만이다. 잡지 표지모델 같은 두 남녀의 깊은 포옹과 입맞춤(입맞춤이 깊었는지 어떤지는 내가 알 수 없..). 여자는 조막만하게, 허리는 더 잘록하게, 허리를 감싼 남자의 손은 의도적으로 더 크게 표현하면서 깊어지는 욕망과 열정의 강도를 표현했다. 사진은 정말로 모든 걸 품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완벽하게 가졌다. 적어도 갖고 싶어하는 걸로 보인다. 욕망을 욕망하고, 욕망하는 욕망을 더불어 욕망하면서 점점 내가 당신을 원하는지,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내가 당신을 욕망하는 나 혹은 당신의 욕망을 원하는지 뒤죽박죽 되어버리면서 달리는 방향이 어긋난다. 여자의 안에서 갓 나온 남자가 그러하듯 욕망이 제대로 분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랑은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일방의 욕망이 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므로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1930년에 나온 브뉘엘의 <황금시대>는 지독히 매력적이다. 필모그래피 전체가 적절한 성욕분출을 허용하는 작품들이므로, 황홀이 극에 달한다. 한때 내가 베르니니와 클림트를 보며 느꼈던 엑스터시가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사망한 이 감독에 의해 철저히 부활한다.

 

 

 

 

 

 

 

 

 

 

 

 

 

 

 

 

허락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는 것도, 누이를 사랑하는 남자도, 아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어린 여자도, 한낱 성욕으로 여자를 범해 아이를 잉태한 억세게 운 좋은 남자도, 사랑하는 행위와 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 사랑하고자 하는 자연적 육욕과 좀 더 고결하다 믿는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 않는다. 버려진 삶을 책임지는 일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한가. 여자에게 자신의 몸과 몸안에 잉태된 아이까지 모조리 책임지라는 건 얼마나 모질고 가혹한가. 아버지의 아이를 배고 사산하고 낳은 여자라는 말로 이 여자의 벅차고 고된 삶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어째서 하루에 두 끼 이상, 최소한의 잠, 추위,더위를 느끼는 감각, 짐승 같은 짓으로도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까. 오빠나 남동생에게 시집가고,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고, 자매가 한 남자에게 안기는 일련의 일들과 아버지가 딸을 범하는 행위는 동급이다. 이것조차 이적요의 말로 이해하면 고정된 이미지, 만들어진 이성일 뿐 본능의 도덕성은 아닐거란 사실이다. 신은 대체 왜. 인간을 어떻게 믿고 이 모든 걸 허락하셨나. 오늘날 욕망이 도덕을 이겨 비극을 낳은 경우, 아무리 예쁘고 건강하고 소중하더라도 생명이 꿈틀거리지 않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더러 했다. 도덕적이지 못하게 태어났대서 태어남을 비난한다면, 기회의 평등을 빼앗는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장 현대화되고 제일 이성화된 현 사회는 이 모든 폭력을 묵인한다. 어느 쪽이 더 나쁜가. 행위를 단지 형벌로 처벌할 수 있는가. 형벌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되갚아줄 수 있는가.

 

젊음을 원하는 행위가 자연스럽듯, 젊은 여자나 젊은 남자를 품고픈 나이든 이들의 욕망도 자연스러워서, 그건 이성으로 통제될 뿐이지, 자연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학 속에서 너나할 것 없이 설파하고, 실제로도 왕왕 벌어지는 이 '짐승 같은' 일들이 단지 꿈인 게 아닌 걸 보면, 욕망은 내재되어 있지만 욕망을 찍어눌러 억제한다는 이론이 그 반대보다는 더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딸을 욕망하는 아버지는 실제로도 존재한다. 당연히 문학으로도 존재할 밖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여자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는 일과는 별개로, 여자의 삶은 이해되어야 한다. 어릴 땐, 아빠나 오빠, 동생에게 꽁꽁 숨겨진 몸을 언제부터 가까웠는지도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는 보일 수 있다는, 평생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낳아준 이는 갖지도 얻지도 못하는 몸을 타인에게는 허락한다는 사실이 비이성적이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많은 것에 의문을 품었으니까. 알을 낳고 품는 인고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욕망을 분출하는 '행위'로 잉태되는, 고귀한 존재의 삶이 늘 불공평하다 여겼다. 책임이 사라진 생명잉태가 가능하게 하려면, 태어난 즉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해체되어야만 한다. 어떤 동물들처럼.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고리는 바로 이게 아니었을까. 끊어낼 수 없는 천륜의 관계가 허락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선물 받은 전자책은 역시, 가끔 프린트용 자료로, 대부분 예상대로 만화책 보는 일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싸돌아다니는데 재미 들려서, 나는 지금, 놀러간다. 데이트 하러 ^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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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4-0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삼. 오늘 같이 좋은 날 나는...ㅠㅠ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2-04-12 02:40   좋아요 0 | URL
그날은 밤바람도 적절하게 시원하고 참 좋았는데 오늘밤은 좀 추웠어요. 투표하고나서 혼자 시내 나가서 서점 좀 둘러보고 돌아오는데, 왜케 피곤한지.. 오는 길에 불고기버거세트 사들고 집에 와서 씻고 먹으면서 개표방송 봤어요 ^______________^

아.......... 절망했어요. 미안해요. 저 부산 살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 이유도 명분도 없이 1번 밖에 누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많네요. 역시 넘사벽이었어요... 오늘밤 제 코드는 절망........... 뭐 100% 제 절망은 아니지만요.

Shining 2012-04-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산책하기 딱 좋은 이런 날씨에! 무려 데이트이신겁니까?ㅎㅎ
저도 아이리시스님 댓글에 공감 달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모르는 영화와 책들ㅠㅠ
<이민자>가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리메이크했다는 것 밖에 모르겠어요, 흑ㅠ

아이리시스 2012-04-12 02:45   좋아요 0 | URL
밤산책은 동네 뒷산이나 벚꽃 하늘거리는 공원이나 뭐 그래야 하는데,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무려 시내에 가서 고기 구워먹고, 광안리 가서 바다 보며 카라멜 마키아또 한 잔을.............아................. 시럽과 카라멜이 사람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엔젤리너스에서.....................( '')

저게 리메이크였어요? 저는 그것도 몰랐는데요.. 이상해.. 샤이닝님은 뭐든지 알고 있어요!! 흑ㅠ

맥거핀 2012-04-0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고전영화에 관심을 가지시기로 했나봐요. 저 포스터는 정말 인상적이네요. 새로운 땅에 도착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저번에 보았던 <정복자 펠레>가 떠오르네요. 분명히 이들은 고난을 겪을 것이고, 아들은 결국 아버지를 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겠지요. 모든 아버지들은 그것을 원할까요..잘 모르겠네요.

아이리시스 2012-04-12 02:50   좋아요 0 | URL
아..맥거핀님.. 저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제가 많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이더라고요. 물론, 모조리 본 게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야금야금 구해서 보면 되겠다 싶었어요. 저는 인내도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고전영화에 관심을 가져도 짚어내가며 볼 수 있을거란 생각이 안들어요. 생각만 해도 잠이 몰려와요.. 오, <정복자 펠레> 좋은 영화일 것 같네요. 전에 제가 맥거핀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나요? 기억이 안나요. 저는 뭐든 잘 기억을 못하니까...........( '') 오늘 멍청한 티 엄청 내고 가네요. 밤이 되니까 더 심해지는 듯ㅋㅋㅋ

그래도 말이죠, 아버지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모든 아들들의 숙명이기도 하니까요. 숙명을 막는다면 그것도 안되는 거잖아요. 부모는 자기가 겪은 시행착오를 물려주기 싫어 어떤 행위를 강요하거나 차단하려 하고 아들(이든 딸이든)은 그걸 알면서도 반드시 직접 해보려 하고.. 제가 후자라서 이걸 잘 알아요. 저는 꼭 제 손으로 만져보고 돌다리를 건너는 타입이거든요. 현명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