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여행>은 잘못 고른 책이다. 책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목적에 맞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캐주얼하고 약간은 뻔한, 샌프란시스코 해변과 LA 디즈니랜드, 할리우드, 서부개척 같은 얘기를 할 줄 알았던, 제목만 보고 골랐던 이 책이 서부 그것도 캠핑 여행자에게 적합한 실용서였다니, 충격이 컸다. 간접여행도 말이 간접여행이지, 여행에세이 말고는 실용여행서를 본 적이 없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랬든 저랬든 어차피 미국여행 갈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아주 유용하다. 알게된 게 많다. 신이 내려준 황홀한 자연풍경을 직접 마시고 느끼기 위해 온 세계 여행자들이 한 번쯤 꿈꾼다는 미국 국립공원 여행을 전혀 몰랐었다. 미국 서부 캠핑여행을 한 번 꿈꿔볼 정도로, 이 순간 이보다 자세한 책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책으로 여행이 가능하다면, 이 세상 어느 곳도 책보다 더 흥미롭지는 않을 것이다. 표지에서 느껴지듯, 깎아지른 황토색 폐허의 산이 다소 허망하게 보여도 목적이 분명하고, 그에 맞게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 닿도록 쓴 세심한 서술이 돋보인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 오토캠핑. 저자가 얼마나 많은 밤들을 캠핑에 최적화 되어있는, 이보다 더 자연다울 수 없다 자랑하는, 미국 서부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보냈는지 충분히 짐작될 정도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다가 충동적으로이긴 해도 동부 보다는 서부, 뉴욕 주 보다는 캘리포니아 주, 도심보다는 자연, 호텔보다는 캠핑, 자동차(자가용) 보다는 버스나 기차가 취향이던 로망이 떠올랐다. 떠나기엔 아는 게 너무 많고, 고생길도 훤하고, 그만큼 또 아는 게 없고, 그래서 두렵고 무섭고 엄두가 나지 않긴 하지만, 왜 하필 미국, 그것도 황량한 서부, 국립공원이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잭 케루악은 초반 동부에서 서부로 건너가기 위해 온갖 날들을 히치하이킹에 쏟는다. 다소 지겨울 정도였지만(그가 이 차를 타든 저 차를 타든 독자인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다) 마침내 그렇게 힘들여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나마저 희열을 느낄 정도였다. 비행기 티켓만 끊어 떠나는 자유관광 혹은 배낭여행은 젊.으.니.까. 가능하다던 어른들의 말은 맞았다. 읽기만 하는 데도 숨이 찰 정도였다. 냉정히 말해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책을 펼쳐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에서 1위를 차지한 애리조나 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이다. 시작은 미국의 국립공원 '퍼주기'의 탄생이다. '멋진 자연을 모두를 위해 남겨놓는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국립공원 지정노력은 자연주의자 존 뮤어, 국립공원 관리공단 초대 이사장 스티븐 매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등의 끈질긴 개척과 노력 끝에 탄생된 고귀한 정신이었다. '사적 소유'가 건국이념인 미국에서 누군가 '개척'하고 '소유'한 땅을 국립기념지로 지정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초기(미국 최초 동시에 세계 최초) 국립공원인 주인 없는 옐로스톤(직접 개척)을 제외하고는 죄다 힘들었다. 하지만 뜻에 반하던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던 건, 국립공원이 가진 생태적 가치와 공원 관리체계에 감동한 이들이 스스로 후손을 위해 이 땅의 일부를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원 입구의 지도, 방문객 센터에서 보여주는 정보, 캠핑장과 캠프파이어 등 체계가 분명한 관리에 안정감을 느끼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점 덕에 이젠 국립공원 캠핑이 하나의 휴양을 넘어 소중한 한때의 축복처럼 여겨질 정도라고 한다. 캠핑장과 캠핑카가 마련된 국립공원 안은 철저히 보존된 동시에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에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받는다는 숭고함이 더해져 어느 여행보다 환영받는다.

 

큰 제목은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로키 산맥, 트레일과 만년설을 만날 수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화려한 색의 암석과 기묘한 지형의 전시장인 그랜드 서클, 리오그란데 강의 정취와 멕시코 인들의 설움이 느껴지는 뉴멕시코와 텍사스 등 지역별 산줄기를 통해 나눴고, 각각 옐로스톤, 그랜드티턴, 글레이셔/ 오세미티, 세쿼이아&킹스캐니언, 레드우드/ 그랜드캐니언, 브라이스캐니언, 자이언, 아치스, 데스밸리, 그랜드서클/ 화이트샌즈, 칼즈배드 동굴, 빅벤드 등 각 지역에 자리한 국립공원 단락으로 이뤄진다. 첫 장마다 지도를, 뒷장은 국립공원만의 특성과 매력, 역사, 구경할 곳 등을 사진과 배열해 보기좋게 살려놓았다. 산, 폭포, 후두(침식 작용으로 인해 생긴 기괴한 모양의 바위기둥을 일컬음), 나무, 절벽이 진짜 자연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사진만으로도 아찔할 지경.

 

네 가지 테마 속 국립공원 15곳이 이 책의 정보, 더불어 효율적 여행동선과 알찬 캠핑정보가 덤이다. 군데군데 사색이 엿보이는 건 선물이다.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는 적막하고 어두운 곳에서의 하룻밤을 상상해본다면 오토캠핑의 매력을 알 듯도 하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에서의 오토캠핑은 자율적이긴 하나, 체계적으로 국가에서 잘 관리하는 안전한 자연체험이다. 별밤 텐트 사이로 머리 내밀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만나는 별빛도 적막함을 채워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유일한 방법이다.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만 존재할 수 있는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여행법이며,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자연이 인간과 공존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워지는 순간이다. 이곳에 있으면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새삼스러운 일이 되고, 일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예를 들어, 불을 구한다던가 물을 마신다던가 하는 일들)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새로운 체험일 수밖에 없다. 일부러라도 겪고 싶은 아름다운 고생일 수밖에 없다. 자국의 땅에서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황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기쁨이라고 하니, 여행이 젊음의 것이라던 수없이 많은 오만한 이들의 언어는 수정되어야 한다. 참, 국립공원 여행(캠핑)은 반드시 차가 있어야만 유용하게 할 수 있단다. 버스나 기차로 주변 지역까지 가더라도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직접 모는 차가 있어야만 가능하단다. 넓은 국립공원을 걸음으로 정복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자동차를 권유하는 여행은 처음이라 신기하다. 대부분의 여행은 길 위에서 이뤄진다고 잭 케루악이 말했기 때문이다. 홀로 자가용으로 달리는 길은 고독의 사유 외에는 배울 게 없다고 여겼으리라. 국립공원 캠핑의 자동차는 어떤 의미에서 길 위에서 청춘을 뽐내며 젊음을 마시라던 잭 케루악의 그것과 같다.

 

 

어릴 때 주로 계곡에서 완전 자유캠핑을 자주 했었다. 아빠가 좋아하셔서. 그리고 우리가 좋아해서. 여름 중 절반은 늘 그럴 정도였으니 어른은 아니었지만 나도 캠핑키드였다. 텐트치고 버너에 밥 해먹으며 물놀이 하고 파라솔에 앉아 라면 끓여먹거나 수박을 쪼개먹고 텐트에 들어앉아 라디오 듣고 일기 쓰고 하루를 마감하는 완벽한 캠핑은 이곳저곳 주말마다 가족들과 나들이가기를 꺼리지 않는 부지런한 아빠가 계셔서 가능했다. 열여덟, 고3이 되기 전 여름방학, 그때가 자유캠핑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커서 그런 추억은 아무에게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게는 대부분이었던 그 추억이 새삼 고마워 눈물을 글썽였다. 캠핑할 때는 장소가 어디냐 보다는 아빠가 언제 튜브와 보트에 바람을 넣어줄 지, 그걸 밤에 누가 몰래 훔쳐가면 어떡할 지, 무얼 해먹을 지, 무얼 들을 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지, 오늘은 밤하늘의 별이 얼만큼 보일 지, 밤에 켜둔 등에 벌레가 얼마나 모일 지, 반딧불이는 또 어딨을 지, 벌에 쏘일까봐 겁먹고, 밤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떡하고, 화장실이 푸세식일 수밖에 없는 야외 특성상, 배탈이 날까봐 두렵고, 어떻게 편한 잠을 잘 지, 젖은 옷과 속옷은 어떻게 갈아입을 지 같은 것들이 더 문제다. 자연은 그저, 해가 뜨고 볕이 뜨겁고, 달과 별이 뜨고,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것들이 중요했지, 다른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롯이 자연에게만 모든 정신이 집중되는 날들. 그것이 캠핑의 삶이었다.

 

요즘은 그때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캠핑장이 마련되어 계절 가리지 않고 캠핑이 가능하며, 캠핑장이 마련된 곳은 잘 닦인 평지라 늘 냇가를 점령한 자갈과 돌멩이를 골라내고 종이박스를 깔아야만 남보다 평평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그때와는 달라졌다. 아, 한낮에 그늘지는 나무 아래 위치하는 자리는 신이 내려준 장소다. 앞서 지나간 사람이 편하게 골라둔 자리라면 더 ok. 하지만 주위에 돌멩이에 묻힌 배설물은 각오해야 한다. 어릴 때 캠핑은 더운 여름에나 하는 물놀이의 연장선이었지만, 이제 캠핑은 자연에서 해보고 달보고 별보며 밥 해먹고 돈독한 정을 나누는 여행의 또다른 이름으로 변모했다. 물론 예전의 그 캠핑이 나는 더 좋고, 그 캠핑 스타일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이름모를 산이나 계곡에 들어설 때마다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와 오염은 다소 우려스럽다. 자연은 지키는 만큼 더 큰 것을 해줄 것이다.

 

밤하늘의 달빛 속에 별을 보며 잠드는 이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유일함, 자연에 대한 예찬의 다른 방식.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2-09-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여행을 하게 된다면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저는 먼저 그랜드캐넌에 한 번 가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북적북적 거리는 도시 같은 곳보다는 사람 발길이 드문,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여행 가고 싶어요. ^^
여름 방학 때 캠핑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오늘 2학기 개강했어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9-04 02:21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은 일단, 그랜드캐넌 갈 때 저를 데리고.....캐리어에 넣어서 질질 끌고가도 좋아요!
그럼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뉴욕 보다는 파리, 파리 보다는 밀라노..................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대한 로망이 도심의 화려함에 대한 욕망보다 언제나 더 커요.
루 살로메 스타일...............(여기서 이게 왜 나옴?)

물놀이 갔었잖아요, 계곡 좋던데, 하룻밤 자고 오죠 왜..
개강 축하해요, 내가 그걸 안 했었구나...................( '')

댈러웨이 2012-09-0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렸을 때 캠핑 많이 갔어요. 요즘 사람들 가는 그런 캠핑은 아니였지만, 그러고보면 그런 기억을 남겨준 부모님한테 새삼 감사하네요.
참, 첫문장부터 저렇게 써놓으면 누가 읽어요? ㅎㅎ 네거티브? 막 이러면서 고개 갸우뚱했어요 첨엔.

그리고, <길 위에서> 좋았어요? 저 그 책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아이님한테 러브레터 보냈어요.
안녕요, 저 자러 갈 거에요. 우리 진짜로 내일 봐요. ^^

아이리시스 2012-09-04 02:35   좋아요 0 | URL
그쵸....... 좋은 책인데........ 앞문장을 바꿔야겠어요. 좋은책!!!

네, 저 책은 완전 좋은 책입니다!!!!!!사진은 얼마나 멋진데요!!!!!!!! 미국캠핑 갑시다!!!!!!!!!
(책 호객행위 중)

요즘 밤에 잠이 안와서 죽어요. 그래서 혼자 창문 열고 별세다가(응?) 어제는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더니 밤에 멜랑꼴리해져가지고 밤엔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길 위에서>는 출간됐을 때 받은 책인데 그때는 좀 아닌 것 같았는데 좋아요, 이번엔. 곱씹으면서 따라가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여행이 진짜 여행인 것 같아요. 비트 세대도 모르고 재즈도 모르지만, 젊음은 제가 좀 아니까(!) 전에 부부가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한 책을 읽었는데 그것만큼이나 따라하고 싶은 여행이었어요. 증거가 떡하니 있잖아요, <미국 서부 여행>......그것도 캠핑ㅋㅋ

저 러브레터는 실제로 날아오는 겁니까? 사랑엔 실체가 있어야 해요♡
굿나잇, 댈러웨이님.

transient-guest 2012-09-04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캠핑은 정말 로망이에요. 꼭꼭 save만 해놓고 있는. 시간도 그렇고해서 캠핑만큼은 아니지만, 하이킹이나 그냥 주립공원 숲에서 BBQ하는건 조금씩 다니고 있습니다. 하루만 다녀와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더라구요.

아이리시스 2012-09-04 17:31   좋아요 0 | URL
아니, 닉넴 왜 이러십니까!(초면에 이런..) 오래오래 계셔야지 단기체류 손님이라니, 오래오래 좋은 글 많이많이 보여주셔야 됩니다^^

미국 계시잖아요, 어느 쪽에 계세요? 거긴 덥지 않나요? 국립공원이 그렇게 좋아요?

미국생활 얘기 들려주세요, 특히 하이킹 일기 쪽으로...재밌을 것 같아요^^(멋대로 주제도 정해드림)
ㅋㅋㅋ, 책 보니까 여자에게는 추천할 수 없겠지만 남자와 함께라면, 가능하고 또 즐거울 것 같아요.

자연치유여행이란 말 믿지 않았는데 충분히 그럴 만 해요, 저는 그저 t-g님 부러울 따름. 하이킹이라니요ㅠ.ㅠ

맥거핀 2012-09-0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차를 타고 장시간 가는 것을 상당히 못견뎌 하기 때문에 미국 같은 데를 차로 여행하고 싶다거나, 버스여행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영화에 나오는 그런 느낌이 좀 궁금하기는 하지만. 허허벌판에 가방 하나 가지고 내리고 버스는 등 뒤에 붕하고 떠나고 그런 거 말이죠. 저는 스케일이 작은 사람이라 아기자기한 동네가 좋습니다. 읽다보니 어렸을 때 보이스카웃에서 캠핑하던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아이리시스 2012-09-06 00:2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저는 자라면서, 학교 때도, 여행을 갈구하는 사람들만 두고 살아서, 잘 몰랐어요. 아무래도 성향들이 다들 몽상가적 기질이 함유된, 예술가 타입만 두고 살아서 그런가 봐요. 근데 저 대부분 공대나온 친구들인데, 웬 헛소리............( '') 기차타고 정동진 가려고 생각 중인데, 남쪽에서 올라가는 기차가 예전에는 새벽에 한 대 있었는데 요즘도 그런 지 모르겠어요. 그럼 맥거핀님은 애인하고 손잡고 기차여행 그런 것도 별로예요?

버스에서 내리고 제 뒤로 붕하고 떠나는 그런 거 저는 좋아요. 바그다드 카페 오프닝이요!

언젠 한 번 캠핑장에서 만나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띄엄띄엄 읽는 여름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한 권이라도 끝내보겠다는 결심이 다른 책을 쉬게 한다는 것. 무거워서 누워선 꿈도 못 꾸고 그저 책상에 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설렁설렁 넘겨본 지 어언 6년 쯤인가, 그러고 보면 학부 땐 참 좋았다. 도서관의 문학, 철학, 미학 코너를 특히 좋아했다. 미술사와 역사를 좋아한 건 한참 후였다. 온갖 책을 빼들고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마구잡이로 넣긴 했어도 책냄새 가까이에 있었고, 그 무엇보다 책이 고귀하다는 걸 알았다. 책이 좋았지만 책보다 좋은 것들도 많았다. 강의와 강의 사이에 학교 밖을 나가 먹는 순대국과 소주라든가, 쉬림프 피자와 과일 에이드의 럭셔리한 런치세트라든가, 토마토, 바나나, 딸기, 오렌지 등등 날마다 메뉴가 바뀌는 인문대 매점 옆 생과일 주스라든가, 통학 1시간 30분 걸리는 버스 안에서 절반은 언니와 도란도란, 절반은 꾸벅꾸벅(차 안에서 절대로 독서 따위는 안해) 졸다 내려 고지대 아파트인 우리 집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걸어오던 별밤들 중 절반은 또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잡은 손도 있었고, 한쪽 어깨가 다 젖도록 우산을 씌워주는 든든한 팔이 있었고, 우릴 비추는 별빛도 있었다. 조금씩 커가기 시작한 어떤 커플은 이제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만 다닌다.  

 



 

 


 







 

2009년 타계한 인류학의 대가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 국적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직을 맡게 되어 건너간 브라질에서 방학기간을 이용해 원주민들과 함께 거주하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슬픈 열대>는 1937-1938년 브라질 거주체험을 토대로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이 있다. 하지만 처음 가는 땅을 밟을 결심에 찾아가는 곳이 신대륙인 것마냥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주 어려운 고전 같지만 인문학과 수기가 고루 섞인 전방위적으로 편안한 책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가 남긴 어떤 저작보다 유명하며, 한 권으로도 그의 사상과 철학, 일생을 바쳐 탐구했던 주제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를 문명, 미개한 사회를 야만으로 재단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반기를 드는 한편, 두 사회는 그저 다른 종류의 모습일 뿐 더 우월한 사회를 가려낼 수 없음을 주장한다.


구조주의 사상/철학인들은 많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 중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레비-스트로스다. 그의 업적을 평가절하해 오늘날 <슬픈 열대>를 남아메리카 대륙의 흔한 기행문으로 치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사상의 질을 재단하며 우월함을 표식으로 삼는 서구의 지성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식인풍습을 절절히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전통에서 절도와 규칙을 잊지 않는 원주민들이 우리의 그것과 다를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직 외부인만을 그것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여 동일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해못할 것도 없다. 1937년의 체험을 회상하며 1954-1955년 집필한 책. 누구나 오늘 했던 생각은 내일과는 다른 법이니 구시대적이라거나 기행문이라거나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대신 브라질의 원주민들을 보며 왜 그곳을 '슬픈 열대'라고 칭했는지, 지금은 다른지 그것만이라도 의식했으면 한다.

 

 

 

 

 

 

 

 

 

 

그 후 다시 <미션>의 오보에 소리를 듣는다면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흥미나 관심사가 아니라 교육으로 감상해야 느껴진다. 어느 밤, 아주 오랜만에 묵직한 작품을 틀어둔 거실은 쩅쨍하게 울려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총과 폭탄에 창과 방패로 대응하는 오프닝 장면에 사로잡혀 충격의 대치에 무기력해야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했고, <제노사이드>에 묘사되는 문명과 야만의 기막힌 전복은 전율적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어느 대치점에서 반복되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 우월과 원시 등 이분법적으로 결단내는 인간의 이기심과도 연통되고 있다. 초인류에 의해 전복되는 인류를 다루는 팩션까지 갈 필요도 없이, 동시대 지구를 살면서 밤낮없이 피흘리는 전쟁을 슬픈 지구라 명명한다. 아무리 구시대적이라고 해도 변화가 없다면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약 80년 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 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당시 브라질 영토 자체가 아마존강을 낀 절반이 삼림으로 우거진 무인지대에 가까워서 주로 해안가의 무역지가 개발대상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는 내륙지방의 아마존 원주민들과 강의 생물들까지 수난의 대상이 되는 몹쓸 광경을 본다. 자국의 자원을 흥청망청 써댄 결과, 대체품을 찾기 위해 숨겨진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을 들쑤시는 국가 선두에 단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의 전복을 주장했지만 말처럼 쉬운 전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희망봉이나 킬리만자로의 눈, 아마존의 원시성을 상품화 해온 관광개발청과 여행객의 사상은 쉽고 빠르게 변하는 종류의 것이 아닐 수밖에 없다.

 

 

 

 

 

 

 

 

 

<제노사이드>를 읽으며 콩고를 여행하겠다는 다짐은,  K.A.가 아프리카 직항노선을 단독 운행한다고 해도, <미션>을 보며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을 넘어보겠다는 소망은, <슬픈 열대>를 읽으며 브라질 원주민들의 삶과 풍속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얼마나 슬픈 지를 알았다. 손 꼭 잡고 더운 여름밤 좁은 골목길을 걸어 집앞까지 데려다주고선 무슨 일이 날까 들어갈 때까지 현관 계단에서 지켜보고 서 있던 스물 몇 살의 청년은 이제 없다. 대신 아파트 마당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라인 현관에서 집 현관까지 들어가 베란다에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하는 서른 살의 청년이 생겨났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추억할 수는 있는 것처럼, 오래 전 일이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은 현실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한때 공정무역에 이토록 공들였던 걸까. 커피를 제값 주고 사면 아름다운 거래를 하던 거라던 그 말에 속아 좀 더 지불하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며 자위하는 것인가. 세계 4대 박물관에 전시된 것들은 약탈의 역사라는 진실과도 상통하는, 달콤한 공정무역의 속삭임이 비정열의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공정무역의 토대는 결국, 경제우월주의를 인정한 후에 받아들인 대비책에 불과하다. 당연한 걸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라고 할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커피와 초콜릿을 끊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 통틀어 별다방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우아떨어본 건 열손가락 이내. 시내를 꽉 채운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이 거리 저 거리 하나둘씩 늘어나면 날 수록 그곳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그건 내가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적(지구적), 경제적, 개인적 사정이고 자존심이었다. 자존심과 고집을 지켜야 할 대상이 좀 변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동물보호다. 보호라기 보다는 사랑이고, 고기를 원래보다 덜 먹자는 것일 뿐이지만.

 

책은 광장에서 읽어도, 학교 도서관에서 읽어도, 집 가까운 대학 캠퍼스 통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읽어도 좋았다. 두 시간의 시급보다 비싼 커피와 디저트를 서구의, 젊음의, 쿨함의 인식인 양 즐기는 게 그때는, 싫었을 뿐이다. 그저 제철과일 주스를 길에서 마시고 되도록이면 먹고 마시는 건 좀 줄이고 절약하는 것. 먹지 않아도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몸상태와는 별개로 세 끼 밥만으로도 딱히 S자 몸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초콜릿은 못 끊었다. 초콜릿은 너무, 그러니까 너무, 여자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의 다소 감상적이고, 스물 일곱 살 먹은 유럽 청년의 남미 방랑기는 신대륙 체험인 동시에, 프로이트 이론과 언어학 그리고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던 영향과 맞물려 문화우월주의를 거부하는 문화상대주의자의 면모로 나타난다. 1930년대 브라질 원주민 시대를 회상하는 1950년대 글이라 대단한 상업주의나 경제주의보다는 문화적 차이와 전통의 서술에 그쳐, 더이상 분노가 치밀지 않는다는 건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슬픈 열대>는 가벼운 수기로 읽어도 좋지만 전공자 아닌 독서가에게는 사상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발단이 된다. 문화 상대주의의 예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이 충만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식인풍습과 형벌제도를 다른 방식의 문화라고 인식하는 점에서는 기발하기까지 하다. 식인풍습이 대상의 힘을 끌어안는 걸로, 형벌제도가 대상의 힘을 꺾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면 모든 현상에 저마다의 이유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거꾸로 가지 않는다. 소중한 이가 죽으면 홀로 땅에 묻어놓은 게(뿌려놓은 게) 미안해 인간은 자연에서 속세로 여행 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가는 거라고 해도, 물이 온도에 따라 얼음이 됐다가 수증기가 될 수는 있는 거여도, 한 번 약탈하고 빼앗은 것을 다시 돌려준다 해서 빼앗기 전 상황으로 완벽히 복귀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다. 하물며 이런 바람 속에 비가 내리면 한 번 가지고 나간 우산 또한 그 이전의 우산과는 다른 법인데, 그런 생각하기 시작하자 어쩐지 좀 슬펐다. 슬픈 젊은 날 같은 것만 슬플 줄 알았는데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들이 그러지 못하는 상황만큼 슬픈 것도 없다. 


누군가는 유명한 사회학자의 인기도서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몰랐을 뿐이다. 법의학과 수사집, 판결문을 읽는다고 내가 검시관이나 형사, 검사가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인류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내가 인간, 나아가 인간을 구성하는 사회, 사회의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왜 이렇게 사는지에 이르기까지 알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할 지를 몰랐다. 직접 체험에서 오는 풍부한 수기는 흥미로웠는데, 식민과 원주민, 문화와 풍습의 진화는 놀라운 것과 이미 알던 것이 혼동되지만 유익했다. 내가 그곳에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능력이나 진화의 차이가 아니라 습관이나 생각의 차이일 뿐, 어렵게만 보이던 <슬픈 열대>를 아득한 슬픔으로 기억하는 지금, 레비-스트로스의 타계는 3년 전이 아닌 지금 내게 아.프.다. 아.쉽.다. 누군가의 일생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건 아주 어렵고 고귀한 일 같다. 업적이라면 그보다 좀 덜하겠지만 일생 바쳐 이룩하거나 조사하거나 매달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부러워지는 날들이다. 내 질투는 주로 추상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으로 구조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으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마냥 눈에 들어왔다. 입문서조차 낑낑거리며 보게 생겼으니 지금 이 순간부터 독서일기는 모조리 다시 씌어야 할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기행에 버금가는 사상철학체험을 총망라한 인문서를 내밀었다. 인문서는 딱딱하다는 편견을 씻어주고, 인문서도 감상적(감성적)으로 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2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풍에 무사하신거죠?^^

2012-08-28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8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9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30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9-0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조주의..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랐어요. 푸코, 레비스트로스, 소쉬르..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는지..이거 정말 대단한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근데 그 이후에 구조주의의 문제점, 폐해 등을 다룬 강의를 들으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습니다만, 아직도 그 도식들을 보면 꽤 감탄하게 되요.

근데 요즘에 매일 글을 한개씩 쓰시네요. 허허허..반성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9-06 01:21   좋아요 0 | URL
이 페이퍼 웃기죠? 서구가 비서구를 보는 방식에서 라다크 갔다가 공정무역 찍고 약탈갔다가 유전갔다가 구조주의, 쓰고나서 내가 미쳤었구나..... 뭐 방향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용감했습니다ㅋㅋㅋ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저 크게 넣은 최근 책이 제일 쉬운 책일까요?(전문가 도움이 필요해요)
여느 학문은 서로가 서로를 엎으려고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니까요.

매일 한 개씩이면 좋겠지만, 잘 보면 뜸했을 때 있어요, 그때 써뒀던 글입니다. 하루에 저 긴 글이 뚝딱 완성되지 않..않을 뿐더러.. 요즘은 시간도 없..없어서 하나하나 리뷰써야 하는데 것도 귀찮아서 편법을 쓰는 거예요. 이걸 뭐하러 털어놓는지 모르겠네요. 가만있으면 중간은 갈텐데.(후회중)

맥거핀님, 이삿짐 정리는 끝내셨나요, 이제 극장 가시면 되는 거예요? 피에타 보러?

맥거핀 2012-09-06 22:02   좋아요 0 | URL
어..그니까 그게 대단한 거에요. 뜸했던 때도 사실 뭔가를 쓰고 있었다니..그리고 그것을 바로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다니..

아..피에타 개봉했나요.(개봉했는지도 모름..;;) 베를린에서 엄청 호평이라는 소식만 듣고 있습니다.
 
시르트의 바닷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휴전중. 우리의 처지다. 남발공약으로 징병제 폐지를 들먹인다거나 정치/경제/외교적으로 얽힌 독도에 깜짝쇼식으로 한 번 갔다온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지지 철회로 압박하는 일본도 웃기지만 그보다 웃긴 건 내부분열하는 우리다. 그래서인지 <시르트의 바닷가>가 색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독도에서는 벌써부터 군경 통틀어 풀가동 수비를 서고 있고, 윗 대가리들 싸움에 괜한 말단들만 고생하는 게 이 세계 룰이긴 하지만 휴전이 장난인가? 심심하다고? 권태? 위험과 불안을 도발해보시겠다고? 시르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일본과 북한과 한국의 관계가 삼각으로 섞인 게 한탄스러워져 나온 문장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은 되고 싶고, 고귀한 역사를 지닌 타국의 영토인 독도는 자기네 땅 하고 싶은 게 지금 일본이다. 안보리의 기본적 역할에 대해 모르는 건가. 상임 이사국이 돼서 이 나라 저 나라 운명을 손에 쥐고 아무렇게나 표결만 갈기면 그게 국익인가.  

 


이 소설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데, 오히려 문학적 도발에 10페이지 읽어내리기가 벅찬데, 문학과는 달리 세상은 참 시끄럽기만 하다. 


쥘리앙 그라크는 1951년 이 작품으로 받게 된 콩쿠르 상을 거부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왜 거부했는지에 대해서는 책날개에 씌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은둔하는 이미지를 획득하면서 주류 문단과는 영영 결별하는 셈이 되어 자국에서조차 그라크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베일에 쌓여있다고 한다. 사연이 궁금하지만 그런 건 찾지 않는 게 옳다. 알려지기 싫다잖아. 작품으로 승부하고 싶다잖아. 잊혀지고 싶은 사람은 잊혀지게 두고, 나오고 싶어할 때 반기고 그럼 안되는 걸까.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내 안의 이중성을 발견했다. 그림에 있어 늘 초현실주의보다는 인상주의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줄거리보다는 문체에 감탄하는 취향이라 이게 문학으로 오니까 인상주의보다는 초현실주의로 탈바꿈한다. 다중이로 좀 살아보지 뭐. 라고 일단 둘러친 다음.

 

몽환적이면서 아득한 문장이다. 지루하지 않다고는 안했다. 이 지루함은 취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재미없는 걸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여전히 잘 읽히지는 않지만 집중하면 다음 문장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문체의 매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호불호 또한 심하게 갈릴 것이다. 이건 문체에 대한 것일 뿐이지만 내용도 상당히 없다. 한방이 없고 여기저기 서걱거리며 겉돌기만 한다.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뒷 문장이 앞 문장을 부연하며 소설이 한 편의 시처럼 씌어졌다. 적막한 시르트 기지에서의 공허한 낮과 밤을 인상적 풍경화로 스케치하고, 탁월한 시적감각과 감수성으로 승화시킨다. 환상적이고 마술적이다. 처음에는 스페인의 극작가 로르카를 연상했지만 로르카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유한다면, 그라크는 서술을 하고있다. 상당히 다르다. 비슷하지 않다. 연상이 틀렸다. 안고 안긴 문장을 단번에 캐치하기도 어렵지만 단 한 문장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휘발성 마력을 지닌 글이라 탐냈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를 스케치한다. 아무 일도 없는 상태를 모든 일이 있는 것처럼 그리려니 얼마나 세세한 터치가 필요했을까. 실제로도 가장 넓은 곳에서 가장 구석진 곳까지 세세히 묘사한다. 알갱이가 보라빛, 핑크빛, 회색빛으로 각각 반짝거린다. 그곳에 있는 해군과 관리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인데 읽는 나는 망원경으로 그들이 겪는 삶의 풍경을 관찰하는 것처럼 재밌다. 날카로운 시어가 관통하는 권태로운 일상은 마치 평화를 넘어선 평화를 연상시킨다. 바다 가운데 나홀로 남은 낙후한 요새의 풍경과 일상을 한 편의 시로 쓸 줄 아는 작가라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문장들은 또 얼마나 황홀할까.

 

그라크라는 작가가 세상에서 숨어버린 게 수긍이 간다.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옳다.


은밀하면서도 경이로운 꿈이 가상 국가 오르세나의 버려진 땅 시르트로 전근간 젊은 귀족 알도의 눈을 통해 펼쳐진다. 낡게 버려진 땅, 문을 열고 나가면 끝없이 푸른 잿빛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곳을 지키는 해군기지 간부들은 바다 건너편 이웃 국가 파르게스탄과의 휴전 이후 할 일이 끊긴 지 오래다. 권태로운 일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하는 곳. 이미 전쟁이 끊긴 지 300년 지난 이 요새 같은 곳에 모인 이들은 양치기나 동물 사냥 등 이득되는 일과 한량의 취미생활에 집중한다. 안보를 위해 파견된 땅에서 돈놀이가 급급해지고 모두들 권태에 찌들었다. 아무 일이든 일어나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기대와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규칙적 평온 사이의 갈등은 내밀하게 그려진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어느 쪽을 더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한다. 이곳을 오래 지켜온 마리노 대위는 안정을, 감찰대장으로 파견된 젊은 알도는 불안을 원한다. 고요한 물결을 흐리는 한낱 파도처럼 시르트의 기지에 폭풍전야의 긴장이 감돈다.

 

나는 규칙 없이 살았다. 시간표는 해군기지의 모두에게 단조롭지 않았다. 날씨의 우연과 바다의 변덕에 좌우되며, 느리고 매우 모호한 활동 가운데 시간표는 거의 농부들의 것에 가까운 다양함과 불연속성을 띠었고, 나는 그 누구보다도 쉽게 그것의 미미한 제한에서 벗어났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자유와 공허에서 오는 일종의 얼떨떨함으로 고생했다. 나는 동료들이 즐길뿐더러 견디기 어려운 고독의 시간을 짧게 해주는 격렬한 운동에 맹렬히 뛰어들었다. (p.34)

 

알도는 금새 이유모를 불안을 감지한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서 오는 권태적 회의와 비일상적 풍경이 주는 기시감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해도가 펼쳐져 있다. 건너편에는 우리와 같은 이들이 지키는 요새가 있을 것이다. 미지의 공간을 공상처럼 펼치며 이 세계의 균열과 앞으로의 삶과 생활과 수없이 보내야 할 낮과 밤에 대해 생각한다. 간혹 전에 있던 도시의 화려함이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곳에서의 예외성이 마음이 든다. 예외적 존재이자 감시관 알도를 좋아하면서도 불안해하는 마리노 대위와의 긴장감은 작품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불안을 감지하는 이, 불안에 다가가는 이, 불안을 회피하는 이, 불안에 맞서는 이들의 욕망이 한곳에서 만난다. 건너편에 존재하는 국가의 변화에 대한 미온적 감지는 이곳 사람들에게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다. 희망과 절망이 서로의 반대말이 맞다면, 이 예외성은 평온한 상태를 거부함으로서 권태와 환멸을 제거한 채 올바른 위기로 기능할 것이다. 알도가 희망하면서 희망하지 않는 것, 마리노 대위가 평생을 바쳐 지키고자 한 평화 속 균열, 알도가 느끼는 이곳과 저곳의 차이, 선택의 기로,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할 거냐는 물음까지, 소설은 완벽하게 나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 더 두려운 법이다. 제거할 대상이 뚜렷하지 않을 때 제거해야 할 것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시르트는 300년간 평온 속의 불안을 견뎌왔고, 그것이 일상이 된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결말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바깥 세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한편 독자를 기가 질리게 만든다. 번역이 이 정도라면 원문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어딘가 갇혀 사흘쯤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가진 책이 달랑 이것 뿐일 때 최고속도로 읽힐 것 같다. 생각이 없으면 진도는 나아가기 마련이다. 급하지 않으면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진다. 한여름 전국일주를 하면서 포항과 영덕 사이 작은 해수욕장 근처 작은 민박에 묵은 적이 있다. 문을 열고 나오면 바다냄새가 훅 끼쳐오는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시르트의 바닷가> 표지그림이 잊었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문을 열면 바다로 뛰쳐나갈 수 있는 바닷가 마을을 한 군데 알고 있다. 내내 로망이었던, 하지만 살기에는 겁이 났던, 어떤 곳.

 

이 아름다운 소설이 언젠가 시르트의 바닷가 추억을 나만의 바닷가 추억으로 전환시킬 지도. 하루에 한 권, 일주일째 소설이 참 잘 읽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시르트 바닷가에 머무른 날은 단 하루였기에, 빛나는 햇살 아래 잔잔한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푸르고 평화로웠기에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숨이 막힌다. 세상에서 버려진 땅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또 하나의 여름을 과거로 보내는 중이다. 몸이 약한 엄마가 이 무더운 여름을 꼬박 다 보내고 여름의 막바지에 가서야 날 낳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물론 가을 중순에 태어나야 할 내가 한 달이나 일찍 태어나 막바지 여름과 초가을 한 달을 어느 바다 동네 언덕 위에 있는 아동병원 인큐베이터에서 하루 3만원짜리 잠을 자긴 했지만. 내 처음 한 달은 고귀하고 벅차고 걱정스런 삶이었다. 거의 다 들은 말에 의한 거지만. 죽을까봐 안지도 못했다고 엄마와 아빠는 말했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철마다 지독하게 앓는 감기몸살과 비염 외에는 아픈 적도 거의 없었고(그것들이 진짜 독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충분할 만큼 아들인 동생보다 더 사랑받았다. 내 동생은 짧은 인생 자체가 다소 롤러코스터 같은 아이였다. 뭐 거의 본인이 저지른 일이니 훈장처럼 달고 살아도 좋겠지만.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세고 성깔도 있어서 그애가 늘 불안한 반면 또 애착이 컸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은 늘 그애에게 쏠려있었지만 내가 받은 믿음은 더 컸다. 지금은 내가 좀 더 내다버리고 싶은 자식인 것 같지만. 어쨌거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인생은 바다를 빼면 남는 게 없다. 바다는 설렘과 고독과 시끌벅적함과 외로움과 시림과 차가움과 시원함을 동시에 가졌다. 모든 시작과 마지막을 바다에서 할 것이다. 사랑의 순간들까지도. 그 중에서도 곧 다가올, 여름이 지난 후 쓸쓸히 버려진 쌀쌀하고 달콤한 늦가을과 초겨울의 밤바다를 나는 사랑한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8-21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이런 책은 읽기가 버거워요. 진짜 한적한 바닷가 민박집에 이 책 한 권만 가지고 가면 읽을 수 있으려나? "내용 이전, 문체의 매력" 얘길 하니까, <작은 것들의 신> 생각이 나네요. 완전 예찬하면서 읽다가 갑자기 뚝 끊긴 이후로 5년 이상 중단된 책. 이 책도 문장이 너무 매력적이었지요. 근데 <시트르의 바닷가>는 이 책보다 왠지 '난독'으로 치면 한 수 위일 것 같은 느낌!! ^^ 이런 책도 읽다니 아이리시스님 대단!

아이리시스 2012-08-21 19:46   좋아요 0 | URL
이건 정말 누구한테 읽으라 그럴수도 없고..(돌 날아올테니까요) 참..근데 나름 매력은 또 있거든요. 그냥 저나 읽죠 뭐ㅎㅎ 그냥 여행 포기하고 도시로 올 듯ㅋㅋㅋ

<작은 것들의 신>이 문체가 좋구나, 저도 그 책 있어요. 작년에 샀어요. (진짜 저 뭐 안 산 책이 없나봐요) 그치만 그 책은 줄거리도 좋을 것 같아요. '난독'은 이 책이 대단해요. 이런 책은 차라리 속독해야 그나마 끝까지 볼 수 있어요. 아니면 철저히 문학적 모드로 접근해야 해요. 대단한 건지 미련한 건지..

다시 도시생활 화이팅이에요, 섬님^^

댈러웨이 2012-08-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환적, 아득한'에서 이건 내 책이야 했다가, '문체, 세세한 터치'라고 해서 고개를 저었다가, 결과는, 올려 놓은 본문 인용 글 + 아이님 리뷰 = 책 산다.

하루에 한 권이라는 독서력은 대체 얼마의 내공을 쌓아야 가능한 거에요? 좀 알려줘요. (4일이 지나도록 지금 읽는 이 책은 이제 절반. 무슨 책인지 알죠? 처음엔 한 시간에 한 10페이지 읽었어요. 원서 읽는 것도 아니고, 나 어떻게??? ㅠ.ㅠ 문체, 중요할 텐데, 장식은, 이번에 아주 질리고 있어요.)


설령 갖다 버리고 싶더래도 고 쪼만했던 아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8-22 00:02   좋아요 0 | URL
책의 질이 다르면 돼요! (저 아직 안갔어요..) 에잇 모르겠다, 잘 읽히는 책 읽으면 돼요. 근데 거기에 [자기만의 방]이랑 [말테의 수기]가 들어가니까 좀 신기한 거지만.. 저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묘사많은 거, 문체 좋은 거, 그런 거 좋아요. 댈러웨이님은 다 빡빡한 책들만(!) 보시니까 그런 거고, 저는 안 빡빡한 책도 많이 봤거든요. 거기로 건너가려면 다 한 문학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을 것도 같아요. 하루만에 확 읽혀봐요, 댈러웨이님 기둥 뿌리 뽑아야 할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 책 가진 거.. 좀 읽었는데.. 예전에는 아름답다고는 생각을 안하고 그분이 왜 그 책이 좋다고 했을까..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까.. 했거든요. 솔직히 얼마나 지겨워요, 댈러웨이님이 아름답다고 하셔서 아~ 하게됐죠. 주렁주렁해요, 문장이. 근데 재밌는데요, 제 기억력은 얕은 것도 아니고 아예 없나 봐요. 저는 그냥 읽을 당시에만 기억해요( '') 그 책은 꼭 봐야 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이니까요. 오홋.

걱정마세요, 아직은 갖다버리고 싶다고는 안하셨어요ㅋㅋㅋ (아마도 참고 계실 듯..)

댈러웨이 2012-08-22 00:45   좋아요 0 | URL
잠깐만, 저 이 댓글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아, 저 이해력 지금 엄청 떨어지고 있어요. 아이님때문에 정신 공황 상태라. 무슨 책 우리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마담 보바리>? 저 그 책 아름답다고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채털리->가 아름답다고 했는데. <마담->은 지금 읽는 중이니까 끝까지 읽어야 뭐라 말할 수 있겠어요. 아이님이 좋았다면, 일단은 참을만하겠어요. 그래요, 문장이 주렁주렁, 미치겠어요 아주. ㅠ.ㅠ 이 차이가 더 극명한 이유는 로렌스 읽다가. 로렌스 문장 아주 똑똑 끊어져요. 난 이런 글이 더 좋다는 걸 이제 알겠어요.

어쨌거나, <말테->, 저 이 책도 고생 엄청했는데. 초반부에서만 좀 휘어잡혔는데 중간에서 영 삼천포로 빠졌어요. <자기만의 방>은 참 좋아요. 읽었다니 막 고마워지네요. ㅎㅎㅎ

근데, '거기로 건너가려면'이 무슨 말이에요? 불문학? 유럽문학?

p.s. 아이님 이렇게 온라인에서 오래 놀 때는 대작 준비하고 있는 거에요. 저 지금 기대 만빵하고 있어요. 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8-22 00:59   좋아요 0 | URL
왜 이러는 거예요, 자꾸 이러심 진짜 김연수 미워할 거예요!(ㅋㅋㅋ) '거기로 건너가려면'은 바다 건너가면, 이란 뜻이고(배송료 엄청 든단 뜻이고). 책은 저한테 둘 다 별 차이 없거든요. 둘 다 대학 때 읽었던 거라서.. 누가 뭐래도 다 제가 읽은대로 기억하니까.. 엉뚱한 소릴 저렇게 하는 거예요ㅋㅋ 그래도 보바리가 더 좋은데, 저는 프랑스 작가가 좋아요. 다 비슷한 시절에 읽어서, 제가 쓸 때의 뜻은 김화영 쌤의 번역이 아름답단 얘기를 하는 거였을 거예요, 아마도.

로렌스는 저기 위에 [아들과 연인] 좋대요. 한 5년 전부터 보려던건데ㅎㅎ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추천해줬어요. 근데 뭐가 좋다고는 말을 안해줬는데..(안 좋으면 어쩌지..)

아니에요, 고장난 동안 못본 드라마 엄청 다운받고 있는 거예요. 아몬드 먹으면서요ㅋㅋㅋ

2012-08-2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2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 좋아하시는구나..좋아하실 수 밖에 없나? ㅎㅎㅎ
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아서 자주 바닷가에 놀러갔었는데 물을 무서워해서 그런지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예요. 넘실대는 파도가 배 위까지 차 오르면 그때부터 숨쉬기가 곤란해져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도 한 몫 할지도 몰라요. 바다 내음 나는 식품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포항과 부산의 도심을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화려한 도시 가운데서도 바다 냄새가 난다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난 바닷가 도시에서는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도..ㅎㅎㅎ
하지만 여행은 좋아요!

벌써 1년이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2-08-23 16:29   좋아요 0 | URL
바다 자체보다는 바다의 상징을 좋아하는 걸 거예요. 농촌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지면 농촌의 한적함보다는 불편함만 눈에 들어오니까 좋아할 리가 없는 것처럼, 알기 때문에 로망도 있고ㅎㅎㅎ 예를 들어, 지금 그린란드나 노르웨이나 덴마크나 스웨덴이 그냥 북유럽으로 묶여 기억되는 것처럼.. 근데 저는 여러 바다를 알고 있으니까 바다마다 다 특색이 있는 것 같고..물놀이는 해본 적이 없는데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단막극을 잘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현맘님 들통 많이 났어요. 수영도 못하고 해산물도 안 좋아하시고! (저랑 똑같아요ㅎㅎ) 저는 원래 가리는 음식, 잘 못먹는 음식이 많은 편인데(글쎄, 그렇더라고요) 부산사람이 회나 조개구이, 해산물 못 먹는 건 외계인 같다면서요. 저는 그거 다 잘 못 먹어요. 먹는 유일한 해산물 아니 음식이 미역국.. 미끌한 거 싫은데 그건 맛있더라고요ㅎㅎㅎ 심지어 조개 넣으면 한 알 맛까지 기억해요. 싫어ㅠㅠ 이건 제가 한 수 위일 걸요. 조개국물맛이 다들 시원하다고 하니까.. 이 얘기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콩밥이 싫은데 엄마가 자꾸 콩을 넣으려고 하셔서 맨날 싸우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하기 전에 얼른 쌀 한바가지 퍼서 현미밥 해놔요. 007작전...ㅎㅎㅎ

아~ 그런데 정말 도심에서 바다냄새가 나요? 저는 자갈치나 송도 바닷가 정도에서 그걸 느껴요. 근데 거긴 수산시장이 있는 곳이니 당연한데, 타지역 친구들이 부산역에서 내리기만 해도 그렇다고 해서 이해를 못해요. 하긴 우리집에서도 베란다너머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이니, 못 맡는 거지 안 난다고 하기도 어렵겠어요.

벌써 1년은 세계지도 후 1년을 말하는 거죠? (그때 주신 스케줄러는 아직도 잘 모시고 있는 중임)

저 어릴 때 강릉하고 정동진 차례로 찍었는데 좋던데, 사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바다풍경 중 하나가 해운대예요. 시끄럽고 정신없고 부딪치고 온갖 주점에다가..글쎄, 해운대 뒷골목에는 창녀촌도 있어요!

p.s. 이거 무슨 초딩 편식일기 같아요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2-08-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좀 어렵네요. 우리 집에 있는 민음사시리즈 세트에 있긴 한데, 과연 이 책을 언제 읽을 수 있을까요??
ㅎㅎㅎ 원래 여름방학 때 민음사 세트 완독 목표였는데 공부와 다른 책들에 치이다가 읽은게 별로 없네요.
그나마 읽은 게 고작 <설국>뿐이에요 ^^;;

아이리시스 2012-08-27 01:36   좋아요 0 | URL
이 책 이제 더 읽기 싫겠죠? 모르고 도전하면 나은데, 알고나면 더 힘들잖아요.

책읽기가 원래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라 확 쏠릴 수밖에 없잖아요. 저 지지난달엔가 세상에서 읽고싶은 책이 [십자군 이야기] 뿐이었거든요. 책만 사놓으면 안 좋은 게 사놓고 묵히다 신간가격으로 산 게 구간에 팔리고 있으면 언제부턴가 짜증스러워서 꼭 읽고싶은 것만 사기로 했는데, 그걸 하루이틀 묵히다 구입을 한 달 딱 늦췄더니 관심이 싹-하고 날아갔어요. 저는 이 정도-ㅎㅎ

언젠가 다시 보긴 하겠지만 다시 전쟁이나 세계사에 미쳐있을 때여야겠죠. 시루스님은 책 엄청 읽으시더만..^^
 
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이 파묵의 첫 타자가 되어서는 안되었다. 처음에는 몰랐고,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파묵이라는 생소한 터키 작가를 알게 한 노벨상의 존재를 고려했다면 그가 노벨상 수상 '이후' 출간한 이 책을 시작으로 삼는 건 어쩐지 반칙 같은데 이미 읽은 거 물릴 수도 없고 그래서 일단 시작을 되짚어보면, 날 혹하게 했던 '순수박물관' 이벤트가 있었다. 핑크색 글씨 속 이벤트 당첨자 명단 열 번째에 운좋게도 내가 있다. 나는 이제 다른 책을 구입하면 된다. <하얀 성>이라든가 <눈>이라든가 시린 겨울의 찬 온기를 마구 뽐내는 그런 리스트로 말이지.

 

오르한 파묵의 '순수박물관'

 

때맞춰 찾아온 이벤트에 읽고 싶은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서 결제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을 잃었다. 책을 받았다. 내게는 터키어를 전공한(정확히는 중앙아시아어다) 친구가 있고, 이스탄불이 낯설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두 문화의 빼어난 점만 간직한 도시라고 터키를 방문한 이들이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묵이 그리는 이스탄불의 1960년대 풍경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문화적인 면에서 여자에게 기대되는 첫경험이나 순결같은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이 소설의 주인공 케말이 이스탄불의 상류층 서른 살 청년이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이 배경이 이스탄불의 보편적 모습인지 잘 모르겠는 것만 제외하면 소설이 향하는(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완벽하다. '사랑'이다. 그것도 44일 사랑하고 평생을 찾아헤매는, 영원에 걸친 어느 남자의 어떤 여자를 향한 사랑이다. 다소 이질적인 터키식 이름이 집중도를 흩트리지만 마르케스만 할까, 제자리를 찾는 순간 곧 빠져든다. <순수 박물관>은 마법같다.

 

케말은 시벨과 결혼할 예정이다. 좋은 집안에서 우수한 교육을 받은 요조숙녀로, 꽉 막히지는 않은(그러니까 순결을 고집한다던가 하지 않는) 현대적 여성으로, 집안에서도 기대를 한몸에 받는 커플이다. 그가 이뤄온 것만큼이나 그녀와의 미래가 탄탄할 거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먼 친척뻘인 이모(고모)의 딸 퓌순을 만나면서부터다. 열 두 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수줍으면서 강렬한 그녀의 매력에 하염없이 빠져들어간 그는 용기를 내보기도 전 이미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를 끌어당겨 안아 침대로 간다.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먼저 서로를 지배한 것. 그는 그 여자를 가졌지만 계속 갖고 싶어하고(잠자리 몇 번 한 걸로 여자를 다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지만, 누구를 알기 위해선 늘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침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벨과의 결혼을 깨거나 엎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쁜 놈. 안정된 결혼과 끌어당기는 강렬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곧 시벨과 결혼하여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랑'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모른 채 초대장을 보낸 그는 결혼식 이후 다시는 퓌순을 보지 못한다.

 

퓌순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고나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깨닫는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저울질해서는 안되는 감정이었다는 걸 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사랑은 늘 끝났기 때문에, 잡을 수 없어서 더 간절해진다. 이스탄불에 있는 순수 박물관에 대해 말해보자. 파묵은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실제 박물관 개관을 계획했다고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한 배경과 소품, 케말과 퓌순의 사랑을 매개하는 것들을 직접 수집해 오브제로서의 박물관을 꾸렸다. 그리고 개관했다. 소설을 읽고 방문한다면 박물관에서 그들의 사랑흔적을 찾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모든 것이 있어도 케말과 퓌순은 없단다. 아쉬운 소식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은 지금껏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이었다. 커서는 못 갔지만 어릴 적 몇 번의 기억만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번호가 붙어있어 하루종일 관람해도 끝까지 가기가 벅찬 이곳은 환상적이면서도 아팠던 어린 시절 가장 큰 아이러니였다. 독립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세월은 누군가에게 눈물이었을텐데, 아픔을 재현한 곳에서 나는 즐거워하다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었다. 순수 박물관을 방문하는 자국인들의 마음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곳은 역사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사랑'을 담은 곳이자, 지나간 시대의 터키문화를 한눈에 전시한 곳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묵의 <순수 박물관>의 오브제를 전열한 공간이지만 말이다.

 

예전에 전경린은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이란 소설에서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이 헤어지면 함께 나눈 '사랑'은 다 어디로 사라질까 궁금해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잃어버린 내 순수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은 다시 오는 게 진리지만, 한 번 잃어버린 순수는 곧 과거와도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그걸 알고 있다. 오늘이 내일이 되는 순간, 오늘의 순수는 내일 속에 없다는 것을. 지금도 케말이 찾아헤맨 것이 오로지 퓌순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는 결국 잃어버린 자기 사랑과 용기내지 못했던 비겁함과 돌아오지 못할 과거의 순간을 평생토록 찾아헤맨 게 아닐까. 어떤 한 존재가 오로지 다른 한 존재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30년간이나 찾아헤매는 일이 가능할까. 늘 과거를 되새김질했지만 과거가 다시 오길 바라서는 아니었다. 시간은 수평선 위에 있지만 나는 뒤로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선을 일평생 살아간다는 걸 가장 잘 받아들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썼다. 파묵은 이렇게 우리의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모아 박물관을 만들기도 하니까.

 

시간은 돌아온다. 기다리지 않은 건 우리다. 순수는 그대로다. 변해버린 건 우리다. 시간이 우릴 변하게 했다고 투정하지만 우린 그저 스스로 혹은 각자가 변하고 싶었기에 변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박물관은 시간을 멈춘다. 변한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것처럼, 도시 곳곳에 우뚝 서서 우릴 위로한다.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순수 탐험이 책을 덮으며 나는 조금 슬펐다. 눈처럼 맑고 깨끗했던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어땠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순수는 박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존재의미를 갖는다. 내가 어떤 시대를 여전히 그리워하거나 영광스러워하거나 아파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박제된 채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케말에게 퓌순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자길 기다릴 그런 시간의 또다른 이름 아니었을까. 그게 아픔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영광이든 그에게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을 생각하면 이 여름처럼 습기차고 뜨거운 태양 아래 작은 방 어느 침대 위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며 땀을 흘리는 남자와 여자가 떠오른다. 그곳에 훗날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 따위의 계산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박물관에는 전시되어야 할, 소중히 이름붙여진 그것들만 자리한다.

 

과거에도 내가 있고 미래에도 내가 있다. 늘 지금 뿐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오만 아닌가.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2-08-18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 박물관은 아직 안읽었지만.. 스토리는 대략 알고 있었어요.
마르케스를 언급하셔서 생각난 건데, 어쩌면 이 소설과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함께 읽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르한 파묵에 대한 관심이 아직 끊어지지 않으셨다면 검은 책. 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그건 정말.. 아주 독특한 의미에서 하나의 전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리시스 2012-08-19 00:19   좋아요 0 | URL
오, 드림아웃님 특별추천리스트입니까? 그렇잖아도 워낙 많아서 다음은 뭐가 좋을까 생각하긴 했어요. 잘 골라야 할 것 같은 본능적 감이 왔거든요. 호불호도 갈릴 것 같고 작품 편차가 있을 것 같고 아직 터키의 매력을 잘 모르겠어요. <검은 책>을 꼭 다음 타자로 삼을게요.

근데 안그래도 [콜레라-]를 읽기 시작했거든요. 완전 신기하네요ㅎㅎ 통한 건가..( '')

cyrus 2012-08-1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오르한 파묵 읽기 첫 소설이 <순수 박물관>이었어요. 처음에는 두 권짜리를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줄거리가 너무 좋아서 끝까지 완독한 기억이 나네요, 한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순수함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딱해보였어요. 시간 나면 또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

아이리시스 2012-08-19 00: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감성주의자로는 안 보였는데, 그 사람이 찾던 건 퓌순 뿐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당연하겠지만. '사랑'이라는 그 순수한 본연의 대상을 평생토록 찾아나선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이 좀 애틋하게 느껴지긴 했어요.

시루스님은 또 다른 작품 뭐 좋았어요? (의견모집중)^^

댈러웨이 2012-08-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 박물관 두 권 짜리였어요? ㅠ.ㅠ
오르한 파묵은 정말이지 전작하고 싶은 작가에요. 때가 되면 날 잡아서 다 읽을 거에요, 반드시,라고 말은 하지만...

아이님, 마지막 긴 두 문장, 오래 읽었어요. 저런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남녀간의 케미스트리는 원래 그런거에요. 알잖아요. ( ")



아이리시스 2012-08-19 00:08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순수 박물관'이 파묵의 넘버 1,2,3는 아닐 것 같아요. 뭐 쓰리쯤에 넣어줄까....요?
작품들이 각각 편차도 있을 것 같고, 상이한 매력이라 어쩌다 가끔 발이 푹 빠지기도 할 것 같아요.

다음 작품으로는 그..댈러웨이님 서재에서 본 한 권이랑 드림아웃님 추천작으로 볼 겁니다!
(저 사야될 책 천지군요!)

그래도 다시 선물받은 [롤리타] 하고 전자책에 든 [콜레라-]랑 [채털리-] 꺼내오는 참인데.. 나 책은 더 필요없어요. 후훗.( '')

2012-08-18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9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로하 2012-08-2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이름은 빨강>을 인상깊게 봤는데 <순수박물관>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기간이 지나 반납한 슬픈 역사가..ㅜ
담번에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검은책>을 먼저 읽고 싶은 건 또 뭔지!ㅋㅋ

아이리시스 2012-08-21 17:20   좋아요 0 | URL
순수박물관까지 자국에 턱 지어놓은 파묵이 부러워요. 내이름은 빨강은 썩 끌리지가 않다가 반값할 때 책사는 것도 놓치고.. <검은 책>이 한 권짜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
 

 

 

 

 

 

 

 

 

문득 <조선 왕조 실록>이 떠올랐다. 삼국사도 좋고 고려사도 좋고 근현대사는 더할 나위 없이 분노하면서도 재미가 쏠쏠하지만 특히 조선은, 뭐랄까, 우리나라 이야기로 읽는 성서 같다. 모든 왕들에게 이야기가 있고, 모든 왕들의 특징과 개성이 살아있고, 권력과 권모술수와 탐욕과 전쟁 그리고 시대가 살아숨쉰다. 그래서 야금야금 좋아하는 왕의 업적과 일대기를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내가 많이 좋아한다. 펼칠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보이고, 읽을 때마다 다른 시대로 간다. 타임머신을 타고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소복히 쌓인 곳으로 여행한다. 하지만 저 책이 썩 재밌는 구성이나 스토리는 아니란 걸 나도 안다. 사전식으로 썼을 때 얘기지 저 책 한 권 들고 산에 박히면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골로 갈 수도 있다.

 

지금 드라마 <닥터 진>에서는 병인양요가 한창이다. 일요일 밤 포털 네이버에서 '병인양요'가 검색순위 10위 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새로운 일은 아닌데 신기해보였다. 이 드라마가 아니었음 언제 일시적으로나마 동시다발적으로 병인양요를 검색하겠는가. 얼마 전 <석파란>이란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벤트 당첨의 결과물이다. 받기만 하고 입 닦은 게 아니고 읽을 엄두가 안나다가 다시 그 시대가 궁금해져서 해치우기로 한 거다. 이하응을 흥선대원군으로 치환해 고종의 섭정을 대신한 군주의 심술궂은 아버지나 명성황후의 시아버지로서 며느리의 명석함을 참지 못해 맞서 싸운 욕망의 화신으로 기억하기에 이 인물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가까이 애정과 연민을 느꼈다. 드라마 속에서 송승헌 그러니까 닥터 진이 처음 조선으로 타임슬립했을 때 그는 임금의 아버지도 아니었고, 아들이나 자신이 왕좌에 오를 수 있는 지위도 아니었다. 몰락 왕족이라 왕좌에서는 한참 멀어진 바깥선에 있었다. 이하응이 그랬기에 그 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하응의 자기소개를 듣던 닥터 진이 '아, 그럼 흥선대원군..' 이라며 혼잣말 하자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봐 쉿, 그런 말은 반역이라며 닥터 진을 꾸짖는다.

 

역사를 아는 닥터 진과 역사를 사는 이하응의 삶은 그렇게 대비됐다.

 

<석파란>은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으로 우리에게 고종의 아버지와 명성황후의 시아버지로만 널리 알려졌던 이하응의 다른 면목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가 어떻게 세도정치가 만연한 시대에 안동김씨 가문과 대적하며 자신의 위치를 지켜왔는지 같은 건 사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

 

온갖 서양세력들이 문호개방이란 명분으로 조선의 문을 두드릴 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거부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샀고, 천주교 박해(병인박해)로 프랑스 신부를 죽이는 바람에 프랑스가 쳐들어오는 발판을 마련한다. 바로 병인양요다. 이후에는 며느리 명성황후와 사사건건 정치적 견해가 달랐다. 하다못해 흥선군은 일본을, 명성황후는 청의 세력을 이용해 서로를 견제하려 했으니 말 다했다. 임오군란은 신식군대(별기군)를 우대하는 민씨정권에 대한 반발로 구식군대와 하층민이 봉기한 것이다. 신식군대 vs 구식군대, 민씨정권 vs 흥선대원군, 일본 vs 청 그리고 진보 vs 보수의 대립이었다. 그는 왜 아들을 왕위에 앉혀놓고 자신이 조정하려 했을까. 어째서 그토록 권력에 집착을 보였을까. 그는 원래부터 탐욕스러웠을까.

 

하지만 이 소설이 얘기하고자 하는 건 정치나 군사적 얘기가 아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두고도 그 권력을 가지려 했던 왕의 아버지 얘기도 아니다. <석파란>은 그가 남긴 '묵란'을 통해 이하응이라는 인물의 예술적 삶을 조명하고, 그 속에 나타난 정치적 이상과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간파한다. 흥선군이 서양문물의 개방을 반대하는 바람에 근대 발전마저 늦췄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이미지로는 그가 난을 그렸다는 게 의아하게만 여겨진다. 정치적 집념과 이상을 난을 치면서 다듬었다는 것도 예상 밖이다. 지금까지 그가 난을 그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소설 속에 실린 묵란을 구경하는 것도 의심스러울 만큼 의외다.

 

 

 

아주 어릴 때 <조선왕조실록>을 읽었다. 철종까지만 나온다는 것,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 하지만 세분한 지식이 없으면 한 권을 읽어내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까지 한 권의 책으로 깨달았다. 그때 <조선 왕을 말하다> 같은 책이 있었으면 더 재밌었을 거란 건 두말할 나위 없다.

 

태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선조, 인조, 성종, 영조까지 내가 생각해도 비교적 할 말이 많은 왕들로만 구성됐지만 한 권의 책이 주는 유익함이 어디까지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 오랫동안 책장에 묵히다가 왕 얘기가, 지난 세기가 궁금해질 때를 기다려왔다.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왕들이라 드디어 '역사적 시각' 같은 것에 신경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이런 자신감이 좀 위험하다는 것도 알겠다.

 

 

 

 

조선 왕들에 대한 얘기는 이불 뒤집어쓰고 듣는 할머니 옛날 얘기처럼 언제나 새롭고 또 흥미롭다. 

2권의 목차는 이렇다.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들-효종, 현종, 숙종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예종, 경종

♡성공한 임금들-세종, 정조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태조, 고종

 

 

 

그리고 가을의 문턱에 이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 종편채널 중 한곳에서 하는 사극 <인수대비>를 보면서 연산군에 대한 연민을 다시금 확인한 데 이어 광해군 생각이 났더랬다. 선조와 개똥이와 광해군이 나오는 사극을 어릴 때부터 몇 편 봤지만 연산군에 비해 많이 멀어진 듯 했었는데 잊지 말라고 이병헌이 영화를 찍어줬다. 찍은 건 추창민이라는 감독님이지만. <마파도>로 장편 데뷔해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만들었다.

 

 

 

 

 

 

 

 

 

 

 

 

 

 

송승헌은 사극에 엄청 안 어울리던데(미안;;) 왕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왕 포스도 아닌 것 같다. 이병헌은 포스터만 봐도 어울린다. 무거운 말투도, 중후한 목소리도 왕 역할에 어울릴 것 같다. 안 어울리는 역할이 별로 없고 안 해본 역할도 거의 없을 듯한 배우이긴 하지만. 나는 조선 왕 중 딱 한 명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과감히 광해군을 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와서 생각에 생각이 함몰됐는지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는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지어내자면 광해군이 부드러움과 터프함이 공존하는 순정마초 이미지일 거라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모성애를 마구 자극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연약함 속의 강인함이 여자의 마음을 잡아챌 거라고. 그런 남자 그것도 왕을 품으려면 혹은 사랑을 받으려면 더 강해야 하고 더 연약해야 하니까 많이 떨리겠지만 여자도 계속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가 왕이 아니라도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 그런 생각. 도포 걸친 이병헌은 이병헌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멋있다. 저 사람은 이병헌이 아니라 광해군이니까.

 

아버지(선조)의 정비(인목대비)가 낳은 이복동생을 대신해 서자로서 왕위에 오른 그는 아버지(선조) 대를 이어 양난 이후의 재정과 민심을 수습하고 중립외교를 지향하고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의 업적을 이뤘지만 자기 세력을 강화하고 지키기 위해 새어머니 인목대비의 아들이자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을 방에 가두고 뜨거운 불을 쬐어 죽게 했다는 오명을 씻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광해군을 추대하는 동인과 영창대군을 추대하는 서인의 당파싸움에 의해 다친 희생자들에 불과하다. 나중에 인목대비의 세력을 등에 업은 서인이 광해군을 폭군으로 몰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이를 인조반정이라 부른다. 인조는 광해군의 조카였다. 이후 광해군은 18년간 강화에서 제주로 유배를 갔고, 유배지에서 아내와 아들, 며느리를 모두 잃는다. 광해군은 불운한 왕이었다. 옳기만 한 사람 드물고, 그르기만 한 사람 드물듯, 그런 점에서 그 또한 조선시대 다른 왕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를 폭군으로 만든 요소들은 대부분 불운한 시대와 패권적 당파싸움이 부른 재앙이었다.

 

이 영화의 초점은 어디에 가 있을지 모르지만 기대된다. 광해군이 딱 이병헌처럼 생겼을 것 같네. 설레게.

 

그렇지만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어도 평범한 서민가의 딸로 태어나서 왕과는 전혀 상관 없는 여자로, 왕의 얼굴도 모른 채로, 그럭저럭 성실하고 착한 보통남자 만나가지고 예쁜 아이들 낳고 알콩달콩 살았겠지. 이왕이면 광해군의 여자로 태어나는 꿈 한 번 꿔보자. 살고싶은 세상은 사도세자가 왕인 곳인데 결혼은 광해군이랑, 하지만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같은 전쟁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광해군이 뿜는 카리스마가 그런 아픔과 불안을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광해군 버리는 걸로.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0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광해군이 아이리시스님을 선택했을 수도 있죠뭐...그래서 사도세자가 왕인 세상에서 아이리시스님 때문에 왕위를 버린 광해군과 알콩달콩...흠...^^;;
어쨌거나 이병헌이 왕도 하는군요. 전 이병헌 같은 외모를 참 안 좋아하지만, 이 배우는 나이 들면서 더 나아지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왠지 젊었을 때는 너무 무게가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고 끈적거렸지만, 지금은 그게 더 어울리는 나이인 듯. 아님..제가 나이가 들은 티를 내는 것일지도.

밤이 되니 조금 바람이 부네요. 정말 미치도록 덥네요. 지구가 걱정 될 정도로^^
지나가겠죠 이것도?^^

아이리시스 2012-08-09 00:09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상하게 계속 광해군이 아니라 이병헌을 버린 것 같아가지고 꿈에도 나올 것 같고 그랬어요. 날 버리지 마~ 이럴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꿈에서 박유천이 고백했는데ㅎㅎ 저는 대체 그런 꿈을 왜 꾸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저 그 아이(!) 좋아하지 않아요. 배우로서 좋은 것과 고백 받는 것은 다른 거잖아요.

현맘님, 광해군이 절 선택해서 사도세자가 왕인 나라로 타임슬립해가지고 저랑 살았으면 좋겠어요. 광해군이 이병헌처럼 생겨도 좋아요. 너무 힘이 들어가고 끈적거린다는 거 알 것 같아요. 그게 좋았을 때도 있지만 제가 이병헌을 싫어하기 시작한 건 이상한 스캔들과 소문이 나고부터예요. 돈 많은 남자가 눈도 얼마나 높을까, 그러면 그 돈으로 여자를 얼마나 고를까ㅎㅎ (아 이건 아니구나)

현맘님은 차승원 좋아하시잖아요. 차승원 오빠ㅎㅎ 둘 중에 누가 더 좋아요? 한 명은 완전 유부남이고 한 명은 어쨌든 미혼인데?!

아아아아아아악, 머리를 괜히 감았어, 마르지가 않아서 잠을 못 자겠어요. 졸려요. 광해군이고 뭐고 저에게 잠을.....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09 12:03   좋아요 0 | URL
당연히 차승원이죠! 완전 유부남이지만, 그게 더 좋은걸요! 유부남인데 멋진게 더 섹시한걸요!
(그리고 어짜피 남의 떡이예요..)
전 이병헌에 대해선 무관심인 편이예요.ㅎㅎ 스캔들 많은 남자. ㅎㅎ

꿈에서 누군가 나에게 고백하는거, 꿈이라서 더 아련하고 좋잖아요.
이 더운 한여름밤에 그런 꿈이라도 꿨음 좋겠네요. 오늘은 더 온도가 낮아진다고 해서 좋아했더니만
습도가 장난이 아니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잘 이겨내요 우리!

아이리시스 2012-08-16 23:11   좋아요 0 | URL
이병헌이 아니라 광해군이라니까. 배우들은 다들 멋져요.(로 귀결됨)

아참, 저 꿈에 대한 투덜거림의 정체는요, 사실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꿈에서 만나도 황홀할 사람ㅎㅎ 근데 왜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매번 나와서 고백하냐는 거죠, 제 말은. 에잇. 또 아쉬울라 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8-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병인양요가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될 줄이야..ㅋㅋㅋ 그런데 사극이나 대중 역사책은 좀 재밌는데
공무원 국사는 왜 재미없는걸까요? ㅡ,ㅡ;; 연표를 이해하라는데 결국은 나도 모르게 암기를.. ㅠㅠ
참고로 <궁녀>라는 책을 읽어봤는데 왕의 여자 되는거 아무나 되는게 아니더군요. 줄을 잘 서야해요 ^^;;

아이리시스 2012-08-09 00:14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원래 공부는 뭐가 됐든간에 재미가 없을 겁니다. 프르노 보는 것도 그럴 거예요!(응?) 댓가를 바라는 것들은 재미가 있을 수가 없어요. 근데 그런 신기한 사람들이 있긴 있죠.

제가 그 부류에 속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잖아요. 공부가 재밌었음 제가 벌써 20개국 언어쯤은 통달했게요?! 나 줄 잘 설게요, <궁녀>라는 책에 광해군의 이상형 같은 건 안 나와있었어요?(응?)

댈러웨이 2012-08-0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님, 저를 이제 마법에서 좀 풀어줄 때가 되지 않았어요? 어우 근데 미치겠다. 이 마법 절대 안 풀릴 것 같애. ㅎㅎ
이 페이퍼 어제 밤에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당장 아이님의 광해군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모래는지...) 우리 절대 만나지 마요.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 앞에서 저는 너무 부끄럽겠어요. 그러고보니 저는 학생 때 뭐 하나 제대로 잘 한게 없었나봐요. 역사도(!) 그게 어디가 됐든 하나도 모르겠어. 정말 다 알고 싶은데. ㅠ.ㅠ(막 운다.) 이 페이퍼도 정말 고마워요.

보고 싶었어요. ♥♥♥ (아 나 하트 남발하면 안되는데... 이미 프레이야님한테 하트 뿅뿅했는데... --)

아이리시스 2012-08-09 00:24   좋아요 0 | URL
광해군이 되어줘요, 댈러웨이님. 어딘가에 광해군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병헌처럼 생겨도 좋아요. 근데요, 요즘은 베컴ㅠㅠ 베컴처럼 생겨줘요ㅠㅠ 저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가보로 볼 거예요. 어찌됐건 정말 멋진 개막식 그리고 런던이었어요. 살아있는 런던ㅎㅎ(여기서 이 시간에 왜 런던예찬론을 펼치고 있는지ㅎㅎ)

그리고 마법은 한 번 걸면 안 풀리는 거예요. 꼭 풀려나야 해요? 그럼 킹스크로스에 가서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해리포터 찾아가지고 똑똑한 헤르메온느에게 마법을 푸는 약을 만들어달라고 해볼게요.(응?) 근데요, 제가 정조대왕님도 좋아하거든요. 광해군만 좋아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트는 남발해도 참아줄게요. 나도 양다리니까(-_-) 으하하하하. 자야 돼..

그럼 이따가 심심해지면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 좀 파봅시다! 금방 마른 땅이 보일텐데 그때 가서 저를 버리시면 안됩니다. 기다렸어요.♥♥♥♥ (제가 하트 하나만큼 더 사랑하는 거예요) I win!

이불 잘 덮고 주무세요, 댈러웨이님. 굿나잇.

2012-08-08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9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8-1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헌 연기 하나는 정말 압권으로 잘 하잖아요.
그다지 이병헌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가 기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시 광해군을 좋아하기란, 으으, 괜히 폭군이겠어요,
아마 매우 외롭고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면을 가진 사람이겠지요, 카리스마와 매력은 있겠지만.

그런데, 제가 요즘 알라딘 추천 수치 올리기 비밀에 폭 빠져있거든요.
제 서재만 그런줄 알았는데, 아이리님도 그렇네요. 방금 17 추천이었는데, 제가 하나 누르자마자 20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이 동시에 추천해서 그런건 아닌거 같아요. 제 서재에서 몇번 테스트해봤거든요...
참 재미있는 시스템이예요, 알라딘 서재는. ^^

절 계셨죠?

맥거핀 2012-08-10 22:23   좋아요 0 | URL
근데 저도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수치 이상이 올라가면, 한번에 추천이 2개, 3개씩 뛰는 것 같아요. 그냥 제 서재의 추천수는 자체적으로 디스카운트해서 보고 있습니다.ㅋ

아이리시스 2012-08-16 23:16   좋아요 0 | URL
왜 갑자기 달사막여우님이 되신 겁니까! 고양이보다 여우입니까 :)
저 영화 한효주..제가 한효주를 광적으로 싫어해요. 그래서 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ㅠㅠ
그죠, 광해군을 좋아해봐요, 왕들은 다 미쳤는데 그래도 저는 정적으로 인자하신 세종이나 정조보다는 광해군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단점을 고쳐가면서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살아갈 재미가 있잖아요.

그런데요, 저는 추천수가 3인 페이퍼를 추천하니까 순식간에 10이 되더니 한 번 더 새로고침 하니까 11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 추천의 위력은 8이구나.............룰루랄라. 이랬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3이 아니라 8이 아니었을까요............... 뭐 그거나 그거나.

동시에 추천은 아닌 것 같고, 누적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이 누를 때마다 누적되면...^^

저는 디스카운트는 안하고 좀 더 더해서 자체적으로 무한칭찬모드로 보고 있습니다, 맥거핀님ㅎㅎㅎㅎ

맥거핀 2012-08-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닥터 진'은 의학드라마에요, 아님 역사드라마에요? 저도 가끔 채널돌리다가 봤는데, 이소연 이쁘다 이 생각만 했어요.ㅋ 예전에 어렸을 때 드라마로 하는 조선왕조실록 상당히 좋아했는데, 진짜 그 드라마보면 뭔가 역사공부하는 느낌..갑자기 뜬금없이 성우가 튀어나와 "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하는 것도 재밌었고..(그런 의미에서 공화국 시리즈도 좋아했는데, 제4공화국에 박정희 역으로 나오셨던 배우분이 생각이 나네요.)

그냥 드라마 얘기한김에 한 가지 더 얘기하면, 전 요즘에 유일하게 골든타임 이 드라마만 봐요. 이성민 씨 연기가 너무 쩔어서 안 볼 수가 없음...본방사수에 가끔 재방도 넋놓고 봄..

아이리시스 2012-08-16 23:21   좋아요 0 | URL
[닥터 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타임슬립 드라마 아닐까요. 역사드라마라기에는 왜곡이 워낙 심하니까 당연히 아니고(역사를 되돌리고 고치고 난리도 아닙니다..) 그저 시대극일 따름이죠. 초반에는 의학드라마인 척도 좀 하더니 그것도 가면서 흐지부지.. 안동김씨 가문과 이하응의 싸움이랄까........뭐 그런 거죠. 그..제4공화국..제5공화국..그런 거 우리 아부지가 좋아하시는 거예요. 저도 언젠가 현대사에 빠져가지고 미친듯이 다운을 했지만 그..그..화질이..( '')

골든타임을 자꾸만 놓쳐서 못보고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면 곧............^^

알로하 2012-08-1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순정마초일까요ㅋㅋ 이병헌은 연기를 잘 하니까 기대해봅니다.

아이리시스 2012-08-16 23:23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이병헌은 모르겠고 광해군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는 본능적으로 트라우마가 감지되면서 저한테 자꾸 기대오는 사람은 부담스러운데 어쩌면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병헌은 여기서 왜... 그래도 연기 못한다, 보기 싫다는 분은 한 분도 안계시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