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박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알베르 카뮈 - 태양과 청춘의 찬가
김영래 엮음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열 개의 거울 뒤에 숨은 카뮈. 눈으로 읽고 이해함으로서 만나는 카뮈, 카뮈, 카뮈에 대한 모든 것들.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비참, 여름, 바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알기 위한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마흔 여섯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가 남긴 소설, 산문, 희곡, 철학적 에세이, 시평, 사적인 글 등 다양한 장르적 탐색은 김화영 선생님의 오랜 노고로 번역되어 있는 전집을 읽음으로서 가능할 수 있다. 그의 글을 차곡차곡 읽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가 어린시절 그리고 삶의 일부를 보냈던 곳으로의 여행이 유일한 차선책일 것이다. 카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찬탄의 일환에서 엮어낸 이 책은 그가 남긴 작품들의 요약별 발췌를 통해 열 개 키워드를 반추한다. 우리가 카뮈를 생각하면 거의 항상 떠올리게 되는 것들. 그 빛나는 문장들을 유영하는 한편의 미장센이다.

 

그래서 이 책의 타깃은 명확해진다. 카뮈에게로 가는 입문의 역할이 아니라 카뮈의 매력에 다시 취하고 싶은 이들이 찾을 것.

 

가난과 유약함이 준 유리조각 같은 감성, 그가 살았던 파리와 프로방스, 북아프리카 알제리로의 기행, 저항과 부조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작품의 의미를 헤집다보면 어느새 동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를 엿볼 수 있다. 태양 아래 청춘을 불태웠지만 열정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한 소년과 청년의 모습을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카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눈부심과 괴로움이 공존한다는 사실과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일 따름이라는 몇 개의 깨달음을 제외하면, 카뮈 곁에 놓여 있던 내 모든 경의는 어쩌면 아무런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카뮈라는 사람 자체에 매료된 것인지, 그의 불완전함을 사랑한 것인지, 위태로움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했는지 알지 못한다. 많이 알아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카뮈에 대해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카뮈는 내 20대의 일부를 채워준 작가에 속한다.

 

 

카뮈를 읽는 일은 존재와 존재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일이다. 소설 <이방인>, <전락>, <페스트>가 그랬고, 네 편의 희곡과 그가 발표를 한사코 거부한 처녀작 <행복한 죽음>과 미완성 유작 <최초의 인간>,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을 숨기지 않는 철학 에세이 <결혼, 여름>과 고통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로서의 행복을 찾아나선 <시지프 신화>, <안과 겉> 같은 철학적 사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알기 위해 읽을 것이 문학작품 밖에 없지 않다는 사실은 세 권의 <작가수첩>이 또다른 방법으로 증명한다. 거기다 사르트르와의 이념 논쟁이나 스승 장 그르니에와의 관계, 아름다움으로 존재의미를 다하는 유럽 곳곳의 그의 발자취까지, 이만하면 이름 만으로도 유혹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예술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예술을 모든 것을 초월하는 저 꼭대기에 올려놓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 예술이 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예술이 그 누구와도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제가 모든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예술은 고독한 향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공통적인 괴로움과 기쁨의 각별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수단입니다. (중략)' (p.281)

 

1957년 12월 10일 노벨상 수여식을 마감하는 연회가 끝날 무렵 열린 강연에서 카뮈의 말 중 일부분이다. 내면의 혼란과 광란의 역사, 가난과 병치레를 고스란히 겪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의지와 끈기를 보여준 그의 마음 안에 들어찬 예술에 대한 예찬과 작가로서의 다짐은 스물 몇 살의 도서관에서 마주한 이래, 철학과 예술, 사회와 역사를 향해 머리와 마음을 열어두는 일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새겨준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엮기만 했고 비평이 아닌 찬양에 가까운 이 책의 탄생은 별점으로 그 평가를 다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카뮈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책이며, 카뮈의 글을 발췌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은 이가 다른 독자에게 카뮈를 소개하는 일이다. 인간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이라고 할 때, 카뮈가 남긴 작품들의 양 만큼이나 여러 조각으로 분열하는 이 책이 완벽한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분명하지만, 마냥 좋았다. 이 찬연하고도 빛나는 사유 안에서 언제까지나 숨쉴 수 있다는 것이.

 

카뮈를 좋아한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은 투명하다. 그가 가진 것이 한낱 문학과 이론 속에 머물고 마는 것이었다고 해도 그의 이름에 반응하는 내 속도는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 이십 대에는 문학에만 발을 담글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희곡은 손대지 못했다. 다시, 이 책을 발판으로 정의와 영혼에 다가가는 카뮈 읽기를 시작해야지. 어쩐지 햇빛 푹푹 찌는 더위 아래 양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이 청춘이 다하도록, 생각이 깊어지도록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가수첩> 마냥 지금 나도 잘 쓰고 있는 것인지.

 

 

인생이라는 꿈속에서, 여기 한 인간이 죽음의 땅 위에서 자신의 진실들을 찾았다가 잃고, 전쟁과 함성, 정의와 사랑의 광기, 마침내 고통을 거쳐서 죽음마저 행복한 침묵인 평화로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또 여기...... 그렇다, 나는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 이 유적(流謫)의 시간에, 인간에 의하여 이룩되는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우회로들을 거쳐서, 처음으로 가슴을 열었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꿈꾸는 것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20년 동안 일과 작품 활동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나의 작품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안과 겉> 서문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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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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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0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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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0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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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0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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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아이님 태그 멋져요. 아직 이 글 읽기 전인데, 태그가 멋져서 한 마디 안 할 수 없네요. 아이님은 진정한 낭만가~~*

아이리시스 2013-08-06 10:33   좋아요 0 | URL
섬님, 좋은 아침! 그..그런데..저도 착각이 들었는데.. 저건 제가 한 마..말이..아..니고.. 저자가.. 이 책을 그렇게 만들고 싶으셨대요. 참 좋은 말이죠? 낭만적이고 뭉클하고 그래서 저한테 그런 책이 어떤 책일지 이제부터 찾아보기로 했어요 ^-^
 

 

 

가장 아팠고 또 그리운 여름의 클레망틴.

 

 

 

 

바람이 불어오기에 여름에도 축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떠올려보면 예민함을 덜어내기 위한 이십대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너그러운 행복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까다로운 취급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었던 건 그걸 극복하는 다른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입을 꾹 다물거나 모조리 털거나, 묘하게 신비롭거나 묘하게 솔직해서 성격 자체가 화근이었다. 다 말해주면 화를 냈고, 하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으로 몰렸으니까.

 

 

 

 

 

게다가, 제일 벼린 칼인 줄 알았던 나 이상 과민한 사람을 만나면 막막해지곤 했다. 타고난 게 무심한 다혈이니, 끓는 피와 허영만 내려놓으면 무뎌지리라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문학에서 길을 찾건, 인문학에서 인간을 찾건, 다윈과 아인슈타인에게 우주를 묻건, 사람은 원래 생겨먹은 대로,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서 이제 피한다. 모든 걸 구할 수 있을 듯 나섰던 때도 있는데, 그래, 처음부터 본 적 없는 것처럼 눈감지 않았을 때가 있긴 했는데. 왜 그때 생각이 떠올랐을까. 덥다, 덥다, 하며 엄마가 째려볼 정도로 냉장고 가득 아이스크림을 쑤셔 넣어두고 야금야금 꺼내먹으며 씻고나도 금새 끈적해지는 몸을 뒤틀어 우리나라 기후 어쩌고저쩌고, 제습기 어쩌고저쩌고 그러는 중에 밤이 되자,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선풍기를 풀가동하고 책상에 앉았다. 아, 이건 아니야, 책상이라니. 골목으로 뛰어나가볼까. 동네 끝에서 끝까지 달려볼까. 여름밤, 아무도 없는 어둠 속 도시의 하늘도 까맣게 빛난다. 하지만 역시 귀찮아. 동네에 아직 친한 친구가 산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불러내서 캠퍼스 벤치에 앉아 맥주캔을 들이켜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귀찮아.

 

시내 피자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노래방에서 뛰어놀다 폭죽 속 반짝이와 땀과 웃음이 뒤범벅이 되어 깊은 밤 동네 골목을 휩쓸고 다녔던 별처럼 아련한 열아홉의 시간들이 지나간다. 누구의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던 시간들. 잠깐의 시기나 질투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지 않았던 만큼, 남자/여자, 연애/사랑이란 것이 앞에 놓이지 않았던 시절.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들, 현재 제일 친한 친구, 같은 동네, 같은 골목, 같은 어린시절을 공유한 편안함의 공동체. 학교보다 동네 독서실이 좋았던 이유도, 공부하다 서로 꼬드겨 저녁 내내 노래방에서 놀거나 햄버거 먹으러 가기도 하는, 그게 아니면 편의점과 시장통, 독서실 마당을 배회하며 수다에 수다를 거듭한 그 깜찍한 생활들 덕분이었지만, 덕분에 추억 대신 성적을 잃었다. 애초 잃을 성적 따위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몰랐다. 그 시간이 누군가를 의사도 만들고 판사도 만들줄은. 대충 졸업해서 대충 입학했다. 모두들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스무 살이 시작되었다.

 

성적보다 친구관계가 더 고달팠고, 야자보다 하교 이후의 사생활을 소중히 했다. 연애 비슷한 것들이 늘 학창시절에 깃들었지만, 내가 혹은 누가 서로의 전부가 된다는 부질없음보다는 자유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여중여고에 다녔으면서도 학교 밖에서는 늘 남자애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지 않았던 것은 은연중 굵고 진한 선을 그어버리고 돌아서는 내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애를 하게 된다면 그 연애는 나를 세상 끝까지 데려가야 하리라 믿던 때였다. 그가 아무도 모르는 별로 나를 옮겨주길 원했다. 그 끝은 스무살 연상을 사랑하거나 아님 불륜이라고,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짐작도 못한 채 어렴풋하게 젊음을 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줄다리기는 오래 계속되었지만 사랑은 착실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애틋하지도 깜찍하지도 아기자기하지도 살갑지도 못할 때가 많다. 기념일 같은 건 쭉 못 챙기는 편에 속한다. 기대를 없애버리고 나면 작은 걸 해도 크게 보인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그럴 때면 정말 무심해서 지나치게 도도하구나 싶을 때가 있다. 나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내가 피곤한 사람이라는 걸, 상대를 자꾸만 자극하는 형이라는 걸 알고 났을 때 처음으로 부드러움을 갈망했다. 무뎌져야겠다고. 처음 데이트나 처음 받은 선물, 처음 간 여행, 처음 간 모텔, 처음의 대사나 느낌 같은 것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적어도 예민의 촉이 그런 방식으로는 표출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알 수 있었던 하나는, 추억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추억이 추억에 포개졌다는 사실 뿐이다. 좋고 편안한 삶에서는 그렇지 않은 삶을 상상하지 못하듯 나빴든 좋았든, 추억은 추억 안에서 흘러갔고, 나는 곧 괜찮아졌다.

 

 

 

파타고니아의 양
                                         

                                                      -마종기


거친 들에 흐린 하늘 몇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아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채로 구워 며칠 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 뿐인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 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하늘이 부르고 바다가 손짓하고 풍경이 부서져내리고 사람들이 함박웃음 짓는 곳에 살고 싶었다. 경쟁하고 헐뜯고 싸우는 살벌함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큰 부도 가난도 모른 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자란 내가 꾸는 꿈이 때로 부질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꿈꾸는 것들은 모두 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꿈이 아니라 내가 나빴다. 내가 꾸는 꿈이 동시에 곁의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했으니 몽상에도 책임이 있다. 삶도 그렇지만 사람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너나할 것 없이 딱 그만치씩 갖고 살았다. 가치나 의미 같은 것은 스스로 구해야 했다. 마침내 다시 침잠했다. 나는 몸을 떨었다. 두려움은 그때 지나갔다.  

 

 

삶이란 거, 살아간다는 거, 나라는 존재, 우리라는 인간.

지금보다 조금 더 장엄할 수는 없을까.

 

 

 

고래가 있었다
 
                                                            -박미라
 


붉은 장미*의 기억을 끝으로 바다를 접는 고래.
 
붉은, 호흡을 꺼내 구름을 탁본한다
자신이 끌고 다닌 하루의 기록을 찾아보지만 탁본 속에는
주어도 서술어도 생략된 비문(非文)만 가득하다
겨우 찾아낸 꽃잎 문양 수의를 혼자 입기 어려워서
꼬리를 들썩이다가 눈동자 속 파도를 꺼내 보다가
 
바람이 뜯어먹던 발자국을 지나고 백사장이 구워낸 해당화 그늘을 기웃대며
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을 이정표 삼아 아는 길을 가듯 간다
쓰러진 채로 고개 끄덕이는 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자꾸만 돌아보며 바다 쪽으로 길을 잡는다
 
끼니를 잊은 철학자처럼 느릿느릿 잠 속으로 빠져드는 고래
낯익은 물결을 만났을까 잠깐 웃음이 스친 듯도 한데
몸속에 남아 있던 바다가 쿨럭, 외마디를 내뱉는다
제 몸에서 나오는 뜻밖의 비명에 놀란 잔등이 푸르르 떨린다
 
물의 기록이 겹겹이 쌓인 몸속 제 그림자의 그늘이 깊어 몸살을 앓던 중이었거나
다만, 쉴 곳을 찾던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뱃전을 따라 낯선 길을 나서려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꿈꾸던 어둠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가는 제 몸이
신기하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어 보는데
 
너무 멀어, 바다는 고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디서 실컷 싸우다 온 사람처럼 목이 콱 잠긴 오후
처음인 것들이 맨 나중을 설명하는 그곳에
 
고래가 있었다
 
* 붉은 장미 : 죽음의 순간 고래의 숨구멍으로 치솟는 핏물을 부르는 선원들의 말.

 

 

 

끝도없이 침잠하는 밤의 세계에서 하나의 불빛이 되었다, 시는. 나는 아직 완전한 바닥은 아니다. 비로소 세상 전부를 미워하게 됐을 때에도 마음이 살인하게 내버려두지는 말아야지. 바깥 세상이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더라도 누구도 괴롭히지 말고 내 안에서 평온을 찾아야지. 시 안에서 결심한 것 같기도 하다.

 

문득, 파타고니아의 양과 물 속에서 몸을 뒤집는 고래와 날뛰는 여름, 프로방스와 카뮈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밖에,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그보다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어떤 철학자가 존중받는 존재가 되려면 마땅히 자신이 주장을 스스로 실천하여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 다음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행동이 뒤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속으로 느낄 때는 자명한 것이지만 막상 이성의 차원에서 분명히 밝히려면 깊이 파고들어가 연구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시지프 신화' 첫 문단)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를 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들 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香草)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풍경 깊숙이, 마을 주변의 언덕들에 뿌리를 내린 슈누아의 시커먼 덩치가 보일락 말락 하더니 이윽고 확고하고 육중한 속도로 털고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가서 웅크려 엎드린다.

( '결혼,여름' 첫 문단)

 

 

따뜻하면서도 시원하다. 차가우면서도 뜨겁다. 계절과 여행에세이의 콜라보레이션은 늘 벅차다. 그리고 카뮈는 빛난다.

 

 

 

 

 

 

 

 

 

 

                               사랑

 

                                                                                             -이철성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양미간에 주름을 지었다. 익숙지 못한 것들이 배를 뒤틀리게 하고 가슴을 칼로 긋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사랑이 나의 어두운 방으로 들어와 누워있는 날 문질러댔다. 앙칼진 것들이 내지르는 붉은 소름. 불쾌한 입술이 이를 앙다물었다. 나의 사랑은 날 떠나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난 호소했다. 날 떠나지 말아달라고. 거듭거듭 호소하는 나의 혀가 딱딱하게 갇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난 둘이 되어 있었다. 난 놀란 눈을 하고 날 보고 있었다. 난 놀란 나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놀란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난 무섭게도 도망치는 날 끝까지 추격하여 때려죽이고 싶었다. 어느 날 난 둘이 되어 있었다. 손이 손을 맞잡고, 입술이 입술에 포개지고, 성기가 성기에 삽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난 죽고 싶었다. 영원히,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으면 했다.

 

 

 

부디, 올 여름 깊어질 즈음 인생의 한때 중 가장 벅찬 순간을 맞이하기를.

그리고 분위기는 반전되어야 한다. 여름에도 사색이, 바다에도 꿈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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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5 0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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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5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16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3-07-15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 시간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지만.. 하루하루 살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네요. 벌써 7월 중순이에요, 젠장 ㅋㅋㅋ 위쪽 지역은 비 오다 안 오다 그러죠? 올해 대구는 시원한 빗소리 듣기가 어렵네요. ^^

아이리시스 2013-07-16 11:32   좋아요 0 | URL
저는 대구보다 아래에 살잖아요, 까먹은거구나?!(아직 어린데 그러면 안됩니다,,키득키득) 시간이 많아야 음악도 들리고 책도 읽히고 다른 사람 목소리도 들리고 마음도 보이고 알고싶어지고 그런 것 같아서요. 벌써 7월 중순이니, 곧 여름도 지나가겠죠?

주말에 비 한 방울도 안오고 쨍쨍하기만 했어요, 지금도 더없이 쨍쨍한 오후네요! 아직 오전인데.. 아까전부터 오후인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인페르노>가 펼치는 상황은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밝힌 주장 이상이며, 충분히 설득당할 만큼 매혹적이다.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의 차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있고, 급진과 온건의 틈마다 존재한다. 현재와 미래 가치 사이를 방황하다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어리석음에 비하면 소설 속 유전공학자인 조브리스트나 맬서스의 맹목에 바탕한 비관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여름, 댄 브라운이 돌아왔고, 다시 종교와 과학이 격렬하게 대립한다. 여기서 세계 다수는 의아하게도 종교의 편에 섰다. 급진적 과학은 더이상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 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격렬한 논쟁으로 회귀시킨다. 나자마자 죽을지언정 마지막 욕구는 분출되어야 하며, 잉태의 인위적 제거는 죄악과 다름없다는 종교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기아,전쟁,질병에 도전하는 인간의 출산을 막아야 한다는 과학. 소설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굳이 묻지 않지만 그래도 감정이입을 위해 끌리는 쪽에 서보자.

 

단테의 지옥이 주는 비장미와 숭고미를 댄 브라운은 고스란히 가져온다. 그의 특기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로서의 액션이 아니라 기호학과 인류학, 중세 예술 도시를 누비며 만나는 예술적 경지에 오른 관광지와 예술작품에 대한 탄탄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스릴에 있다. 두오모에서 피티 궁전,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우피치 미술관까지. 이탈리아에 가기 위한 서유럽 여행을 했던 내게 강렬하면서도 깊게 남은 낮과 밤. 고독과 역사가 스며든 도시. 피렌체를 단단히 훑었다고 생각한 건 커다란 착각이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바티칸, 단테, 미켈란젤로, 다 빈치, 브루넬레스키, 조르조 바사리. 한때 심취한 키워드의 집합. 당시 중세 이탈리아를 향한 격렬한 관심은 도서관 서가 몇 칸을 헤집는데서 끝나지 못하고 무작정 비행기를 타게 했다.

 

<다빈치 코드>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 관광객을 소리소문없이 폭발하게 한 것처럼(대다수가 안내도를 받아 '모나리자'만 자세히 관람하고 가는 걸 수도없이 목격함), <인페르노>는 단테, 지옥, 세계의 끝으로 가는 문을 낸다. 언젠가부터 단테는 지옥을 향한 끔찍한 환상, 후대 수많은 문학과 예술작품에 영감을 준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로 대상화 되었다. 환상으로 남은 베키오 다리. 첫눈에 반한 베아트리체를 향한 꽃다발. 줄을 잘못 서서 태어나 자란 곳에서 쫓겨나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단테. 

 

 

새벽 공기 찬연한 어느 겨울날, 단테가 건넜다는 베키오 다리에서 숨을 멈춘다. 한참 시간을 들여 건넜다가 다시 건너온다. 특별할 게 없는 그저 강 위 다리일 뿐인데도 그토록 벅찼던 이유는 꿈같은 역사 속에 들어왔다는 착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14세기 아르노 강 위에 세워진 이 다리는 베키오 궁과 피티 궁을 잇는 메디치 가문의 비밀통로로, 시뇨리아 광장, 두오모 성당까지 연결되는 구시가지와 성곽 밖 신시가지를 잇는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통용되는 피렌체의 상징이다. 조토의 종탑과 핑크, 그린, 화이트가 고루 섞인 대리석의 두오모에 올라 진한 붉은빛 지붕의 작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가슴이 뛰었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고풍스런 도시가 피렌체만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이 도시만큼 시공간적으로 완벽하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곳도 드물 것이다. 소설에서, 단테의 도시 피렌체에서의 단테마스크와 신곡-지옥편이 전반부의 열쇠를 쥔다면, 후반부의 무대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댄 브라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테를 빌려와 얘기하는 인류가 닥친 눈앞의 지옥이다. 막아내지 못하면 개체수 조절에 실패한 연못 속의 금붕어처럼 공멸의 길로 가는 길을 낼 그런 지옥. 

 

 

 

 

 

 

 

 

 

 

 

 

 

 

 

 

세계인구는 기하급수로 늘어나는데 생산설비나 생산물은 산술급수로 늘어난다. 토지, 자원의 한정된 보급량은 이미 적신호인데다 거의 재앙 수준의 미래가 예상되고 있다. 나와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된지 오래다. 나 or 당신이 죽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죽을 것이다. 인구증가는 지구가 당면한 가장 거대한 산이다. 소리없는 메아리가 단단한 벽에 부딪쳐 다시 되돌아오고 있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눈앞의 박애정신이 전 인류를 멸종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재앙을 막아줄 중세의 흑사병이나 에이즈 이상의 강력한 무기가 요구된다. 가능하다면 절반의 희생으로 나머지 절반의 행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맬서스가 예견한 인구증가의 재앙은 유전, 토지, 경제 등 한정된 자원을 이유로 발생하는 국지전을 생각하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미래다. 조브리스트는 이 현상을 막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고찰, 발표한다. 강렬하면서도 논리적인 논문은 학계의 비난 속에서도 숨겨진 추종자들을 양성한다. 어느 날 세계보건기구(WHO)의 인구문제에 대한 안일한 대처를 지적하며 '해결'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신스키 박사를 찾아온 조브리스트는 피임법 강의와 피임도구 설파로 충분한 대처를 하고있다는 그녀의 말을 조롱하며 압박을 가해온다. 

 

세계와 조브리스트의 대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지옥의 반대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뛰어들거나 똥물에 거꾸로 처박힐 필요는 없다.

 

"만약 당신이 어떤 단추를 눌러서 지구 인구의 절반을 무작위로 죽일 수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지금 당장 그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인류가 앞으로 100년 내에 멸종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1권, p.357)

 

 

 

 

보티첼리,『지옥의 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과 해석, 스릴의 연속이다. 결말을 얘기하지 않으면 예측되지 않는 편의 충격이긴 해도 해당 결말 외에 다른 결말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새롭거나 예상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단서가 결말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이상 읽어가는 도중이 읽고난 이후보다 중요하다. 인류의 진짜 지옥이 굳건히 지켜주리라 믿던 과학에 있는 게 함정, 반전. 대테러를 막기 위한 두뇌싸움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댄 브라운은 낙관적 미래를 예견하지 않는다. 유괴범 추격이 실패하면 기껏 개인이 죽을 따름이지만 이 테러를 막지 않으면 인류 전체가 위험하다.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다. 소설은 정확하게 세 번의 공간이동을 한다. 시간이동은 아니다. 길게 잡아 사흘의 시간, 세 개의 도시, 도처에 널린 단서. 그게 바로 랭던 교수의 길이고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아질 경우, 그것이 곧 그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는 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숲 속의 어느 조그만 연못에 어떤 조류가 살고 있다고 가정할 때, 일정한 시점까지는 완벽한 영양소의 균형 속에서 개체수를 늘려갈 수 있겠죠. 하지만 증식이 무제한으로 계속되면 얼마 못 가 연못의 표면을 완전히 뒤덮게 되고, 결국 햇빛이 차단되어 물속에서 자라던 영양소의 성장이 중단될 거예요. 그 시점부터는 순식간에 개체수가 줄기 시작해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고요."  (1권, p.349)

 

 

인페르노-푸르가토리오-파라디소.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과 희극을 모두 다뤘지만 비극편에 더 중점을 두고 서술한 것과는 별개로 희극편은 사라져버렸다. 있긴 있었는데 전해내려오지 않는 것은 세상에 많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삼국사기'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왜 사라졌는지도 중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해당 텍스트가 아닌 같은 시대의 다른 텍스트가 말해준다. 단테를 떠올리면 <신곡>이, <신곡>을 떠올리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시학>을 떠올리면 <그리스 비극>이 생각나는 일련의 연상을 통해 왜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먼저인지, 왜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 마지막인지를 생각해봤다.

 

연민과 공포를 유발하는 비극과 비교했을 때 무지, 속죄, 배신의 쾌감에서 나오는 희극은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으로 볼 때 위험한 카타르시스에 해당하고, 이 팩트를 두고 '왜 희극편이 사라졌는가'를 소설적으로 증명한 이는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였다. 거기 나오는 사라진 희극편, 금서의 장마다 독을 묻혀 읽은 자들을 죽임으로서 책을 감추는 그것. 처음, 책의 시대적 의미를 접하면서 전율했었다. 이 시대 우리는 책을 한낱 고루한 놀이라고 여기지나 않으면 다행일만큼 그 지위를 격하시켰는데, 중세에는 한 권의 책이 곧 우주이자 신이자 세계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적절할 만큼 나는 희고 매끈한 도화지였다. 모든 걸 흡수했고 다시 삼키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금 책의 가치가 곧 중세시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이탈리아 각 도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여행지지만 인간의 배신, 음모, 영광, 패배와 같은 역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대단한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늘 그곳을 무대로 하고, 이탈리아에서 종종 그의 소설 속 루트를 따라 여행상품을 계발하기도 한 것처럼.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로부터 시작된 극의 형식은 처음에는 낭송이었다. 무대와 관객석을 분리하고 그저 시를 읽어주는 것. 시를 읽어주고 반응을 얻는 기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예술작품을 통한 감정이입과 내면화. 비극은 눈물을, 희극은 웃음을 유발함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 하필이면 지옥에서 연옥 그리고 천국으로 향하는 신곡의 순서를 생각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떠올랐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안내에 비로소 천국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 절대자가 있었다. 절대자는 중세의 정신이었다. 절대자는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했다. 웃음은 눈물을 내려다보고, 눈물은 웃음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삐딱한 내가 생각하기를, 절대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현대가 강력하게 증명해주고 있는데. 국민 전체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된 채 높은 권좌의 손가락 하나면 시작되는 전쟁, 법도 정의도 청춘도 희망도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의 낮은 공명심으로 유지된지 오래. 이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내가 높은 곳에 있지 못해서인가. 절대자는 역시 천국에 있는 것인가. 아님 높은 권좌가 세상에 필요한 것을 적절히 제공하지 못하는 탓일까.  

 

 

 

 

 

 

 

 

 

 

 

 

 

 

 

 

 

단테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이 책들을 골랐다. 조금 돌아 <신곡>은 이후에나 다시(아니 처음으로) 시도. 다 빈치나 '모나리자'를 몰라도 <다빈치 코드>가 읽힌 것처럼 단테나 '신곡'을 몰라도 <인페르노>는 얼마든지 흥미진진한 추리 스릴러로 읽힌다. 순전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내 머리 속 공상 때문에 이 페이퍼를 썼다. 과학도, SF도 아닌 추리소설(에 가까운)을 두고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선택적 가치판단의 시험에 드는 건 우리가 점지된 비범한 능력자가 아니라 지구 어느 곳에서나 우연히 생겨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누군가에게 영향 받거나 휘둘리기 싫어하는 고약한 성미 때문에 시작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각자)의 지구별 탄생이 우연과 무작위로만 가능했을까. 혼돈-인류의 도태와 멸종-을 막아내는 방향으로 인류가 진화해온 이유가 지구를 정화해야 한다는 조브리스트의 주장을 제거시킨다. 언젠가 죽을 것과 죽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다른 밀도의 위화감을 불러 일으킨다. 설령 두 날짜가 시분초까지 같더라도 말이다. 죽음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자의 두려움 끝에 인류멸망(지구종말)의 길이 기다린다는 설정을 더해 탄생한 미친(어떤 언론평에 의하면) 소리.

 

다시 생각해도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내가 극명한 급진주의자가 될 거란 명쾌한 증명은 갖지 못하지만 적어도 소수의 손에 다수의 명이 오락가락하는 순간만은 없어야 한다. 가혹한 흐름이다. 나는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에 흔들리는 순간이 제일 두렵다. 모든 것을 꿰뚫어(그렇다고 착각) 신중함 끝에 조심스럽거나 당돌하게 내리는 판단만이 내 것이다.

 

여름이고 세 소설이 나란히 베스트 3를 차지하기고 있기에, 정유정, 댄 브라운, 하루키를 줄지워 정공법으로 지나왔다. 사이사이 다른 책도 읽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도 엄청나게 봤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여왕의 교실]은 몰입도가 짱이고, [황금의 제국]은 아직은 뻔하지만 그래도 재밌다. 그러고보면 특정 분야, 신간차트를 빠짐없이 체크하고 읽(으려 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줄쳐 지워가며 읽는다는 독서가(배우)의 인터뷰를 보며 신기했었다. 베스트셀러라는 위치가 애매해서 괜히 피해가고 싶거나 독파해야 할 듯한 갈팡질팡 사이에서 괴로운데, 결국 못하는 이유가 자기계발서나 대중도서가 대다수로, 영 내키지가 않기 때문이다. 소문은 발이 없는 거라서 베스트셀러는 그저 '당신이 사면 나도 산다'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수준을 평가절하해서가 아니다. 제대로 집중하면 세 작품을 삼일천하에 끝낸다(그러지 않기는 불가능)는 장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어떤 책이 불티나듯 팔리는 건 좋은 현상이 아닌가. 그래도 이상하게 애국심 돋아서 아니면 멍청한 국수주의자라고 해도 좋고, 댄 브라운 보다는 정유정이, 하루키 보다는 조정래가 더 오래 상위순위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냥 그렇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리뷰는 쓰고 싶은데 막 오락가락 머리속에서 춤추는 생각들 때문에 결국 이러다 말 것 같다. 어떤 얘기를 써도 뻔해질 것 같은 반면 한층 내밀한 얘기를 곧잘 쓸 수 있을 듯한 희미한 착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금요일. 요즘은 '또 금요일'이란 말을 자주 할 만큼 체감상 시간이 물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더이상 밤을 새지는 않는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밥맛이 너무 없고 덩달아 밥먹을 시간도 없어서 겨우 책을 삼킨다. 책은 희한하게 그렇잖아도 내려올 줄 모르는 나르시시즘과 자존감만 자꾸 드높이는 것 같다. 너그러워지는 게 아니라 고립되는 방식으로. 얼음성이나 아이스크림 동굴로 기어들어가고 싶다. 구멍가게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세일을 하기에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털었다. 이런저런 것들도. 안산 건 맥주 뿐이다. 온라인에선 안파니까. 애국주의자인 척 한 건 취소다.

 

뭐 딱히 좋은 거라고 책을 광속으로 사모은다는 소식. 이런 소식을 누가 궁금해나 한다고.

 

여름이 지옥이다. 닭들이 자꾸 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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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순간
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 - 유럽 5대 왕실에 숨겨진 피의 역사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이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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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루브르보다 오르세가 사실상 더 인기있는 것처럼 런던에서 대영 박물관보다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들이 더 익숙한 것은 상대적으로 친숙한 화가의 작품이 많고 시대적으로도 가까워서다.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광장의 해질녘 풍경과 비에 젖은 연하늘빛 세상을 좋아한 만큼 오래 그리워했지만 당시에는 몸통을 나란히 붙이고 있는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는 무관심했다. 포트레이트만 걸려있다는 게 그다지 발길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장료 무료는 밑져야 본전이니까 솔깃한 일인데도 우린 그때 런던 전역을 돌며 수줍은 관광객티를 내느라 거의 매일 물에 젖은 새털처럼 무겁고 기운이 빠져 있었다. 평소 배우던 것과는 다른 발음과 억양으로 흘러나오는 묵직한 영어는 훗날 원어민을 만났을 때 트라우마가 되었고, 좁다래서 차라리 귀여운 전철이나 빨간색이층버스에 탄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일 경우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자유는 어둠이 내린 타워브릿지 불빛 찰나에서나 가능했다. 그곳은 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업적 모르는 인물의 얼굴만 나열된 그곳을 좋아했을 리도 없지만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역사를 대하니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하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걸린 초상화의 주인공이 케이트 미들턴이었을라나.

 

유럽 왕실 곳곳에 불어닥친 강풍, 피와 광기의 역사, 혈연으로 뒤얽힌 사랑과 파멸의 대서사시. 촘촘하게 밀착된 연대기적 사건을 잔인한 왕에게 죽임 당하거나 버려진 가련한 왕비 중심으로 다섯 챕터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만난다. 

 

여왕들의 경쟁: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


푸른 피를 지키기 위한 결혼: 합스부르크 가문과 마르가리타 테레사


광기의 군주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곱 황비: 이반 뇌제와 황비들


무식하고 야비한 왕에게 평생을 유폐당한 왕비: 조지 1세와 조피아 도로테아


잔혹함에 맞선 왕비의 생존법: 헨리 8세와 앤 불린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1533-1603)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의 자리에 올라, 다섯 살 때 잉글랜드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한 궁책 끝에 프랑스 왕비가 된다. 후사를 생산 못한 메리가 권력구도로부터 밀려 조국으로 돌아올 때도 아직 스물이 되기 전이었으니 날 때부터 갈 때까지 지독히도 잔인한 운명에 가려진 그녀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다. 최고의 불운은 예쁜 얼굴과 가녀린 몸매,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남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를 라이벌로 둔 것으로, 헨리 8세 여동생의 손녀인 메리는 사실상 서출인 엘리자베스에 비해 왕위계승서열이 앞섰다. 아버지에 의한 어머니의 가혹한 처형을 목격한 엘리자베스가 만개한 아름다움을 지닌 메리를 여자로서 질투하고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타고난 아름다움이 처연한 피의 현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에 의해 오랫동안 유폐당했다가 종교혁명을 억압하려는 대신들의 요구로 처형당한다. 실패한 세 번의 결혼에서 얻은 유일한 아들은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왕위에 올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한 제임스 1세다.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보이고자 한 그녀의 애처로운 노력은 무참하게 짓밟힌다.

 

 

메리 스튜어트를 담당했던 형리는 동요한 채로 도끼를 치켜들었다. 최초의 일격은 목이 아니라 뒤통수에 떨어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왕의 모습에 더욱 당황한 그는 두번재 시도에서는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목덜미에 맞기는 했지만 피가 뿜어 나왔을 뿐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세번째에야 겨우 잘라낼 수 있었다. 끔찍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목을 벤 뒤에는 늘 그랬듯 그 머리칼을 움켜쥐고 높이 치켜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형리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머리칼인 줄 알았는데 실은 메리가 자신의 백발을 숨기기 위해 썼던 가발이었다. 가발을 움켜쥐었으니 머리는 바닥에 쿵 떨어지고 말았다. 그냥 떨어지기만 한 게 아니라 공처럼 데굴데굴 굴러갔다. (pp.18-19)

 

 

데.굴.데.굴. 작두를 포청천한테서 빌려오든가 하지, 도끼로 몇 번을 치는 거야, 대체. 초반에 저런 장면을 만나 상상력 지나친 나는 웩웩거리다가 읽는 도중에 못견디고 또는 전혀 관련없게 츠바이크가 쓴 평전 <메리 스튜어트>를 주문했다. 유럽역사는 실타래마냥 한군데만 툭 건드려도 줄줄 풀려나온다. 유럽 왕실 역사에 정통하거나 초집중 못하면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뒤얽힌 인물과 가문의 결합이다. 혈연관계로 뭉친 근친결합이 대부분이며, 주로 권력을 나누거나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한 사람이 두 번 이상 결혼하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누가 누구와, 어떻게, 왜 결혼했는지 정도의 사연은 별 것 아니게 되어버린다. 죽었구나, 왕비 바뀌었네, 나라 넘어갔네, 어떻게 됐지, 하다가 이런 절규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대체 결혼은 무엇이고 또 권력은 무엇인가!

 

 

 

메리 1세 (Mary I, 1542-1587)

 

 

엘리자베스보다 메리가 빼어나게 예뻤다고? 어디가? 어떻게? 왜? 아무리 미에 대한 관점이 달라도 그 시대 남자들 보는 눈들 참 거기서 거기다. 목소리, 교태, 지혜 같은 것들과 결합된 여자는 또 훨씬 다르긴 해도. 기록도 하나 없이 달랑 초상화 몇 점으로 남은 왕비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왕실의 그녀들이 그랬다면 아래의 여성들에 대한 대우나 처사가 어쨌을지 뻔하게 그려진다. 그림으로 남은 왕비라 하면, 마르가리타 테레사(1651-1673)는 스페인과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합이 낳은 근친의 증거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첫 번째 아내이다. 스페인 바로크를 대표하는 필리프 4세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녀의 어린시절을 속속들이 그림으로 남겼는데 요란한 가문의 결합사에 비해 독자적으로는 업적이나 일화가 거의 없던 그녀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유명하다고 잘난 것도 아니고, 잘났다고 유명한 것만도 아니며, 자기의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우연과 운명에 의해 이름이 좌우될 수 있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섯 챕터의 왕과 왕비의 연대기가 교묘하게 얽히는 지점을 포착하면 짜릿하다. 순차적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 위아래, 옆을 오가다 마주치는 형식이라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를 들여다보기 위해 헨리 8세와 앤 불린, 카트린 드 메디치와 프랑소와 2세를 등장시키고, 관련된 모든 가문과 국가, 귀족과 대공, 왕실 가계도와 역사를 훑어내려간다.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독일, 러시아까지 뻗치고 뻗친 혈족결합의 여파가 어마어마해서, 왕비가 되길 손꼽아 기다렸거나 타고난 왕족도 있겠지만 시장에서 말이 선택되듯 줄지어 섰다가 뽑혀 왕실로 끌려들어간 여자들도 많다. 한 나라의 왕을 사랑과 지혜로 보살피고, 다음 왕을 낳아야 하는 역할이 주어지는 자리라고 해도 시대와 남자의 손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생을 거듭 감상하는 일이 씁쓸하고 애처롭기만 하다.

 

한 명의 왕에게도 수 명의 왕비가 있고 그로인한 자녀들이 무수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결혼시키고 대를 잇고 그러다보면 반복학습 없는 이상 하루 이상 뇌에 남겨지지 않는, 휘발성 강한 가계도가 그려진다. 안팎의 예외없이 국가 간, 왕실 간, 가문 간 피다툼이 날마다 벌어지는데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불안과 광기, 혼란과 환멸의 시대. 왕은 하룻밤의 욕망을 감추는 법이 없다. 왕비는 질투와 시기에 눈멀어 점점 더 잔인한 피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살아서 궁전을 나가거나 더이상 평범한 미래를 꿈꿀 수가 없다. 유폐와 죽음만이 기다린다. 이전의 왕비를 공식적으로 없애야만 자리를 채우기 위한 다음의 절차가 타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니 궁정에는 늘 음모와 복수를 위한 살기가 유령처럼 맴돈다.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대하는 습관으로 피의 역사는 쉼없이 되물림된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일랴 레핀, 1885년

 

 

러시아의 이반 뇌제는 숙청과 암살의 저주와 혼란 아래 세 살 즈음 대공의 자리에 오른다. 언제 죽임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건 허울 뿐인 대공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대귀족들의 철저하고 알량한 계산 덕분이었다. 암살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비로소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신부 콘테스트에서 뽑힌 로마노프 가문의 아나스타샤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사랑의 힘은 광기의 발현조차 깊고 상냥하게 눌렀다. 자세한 기록은 남지 않았지만 아나스타샤는 지혜와 사랑으로 황제를 잘 다스려나간 드물게 현명한 왕비였던 것 같다. 사랑받는 여자가 걱정할 것은 거의 없다는 서글픔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가 원인불명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저 잠깐 숨겨졌을 뿐인 광기가 폭발하면서 러시아를 공포정치의 소굴로 밀어넣는다. 바로 그 공포정치의 이반 뇌제 시대가 열린 것. 그후 아나스탸샤의 로마노프 가문은 러시아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데 시작이 황비 아나스타샤였던 셈이다.

 

여느 왕이 그런 것처럼 아들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던 이반 역시 제대로 대를 이어주지 못하는 황비를 무려 여섯 번이나 갈아치웠는데 이때 폭군의 눈을 피해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눈 간 큰 황비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주지 못하면 한낱 들판의 꽃을 꺾듯 독약을 들이키게 하고 매를 때리거나 버렸다. 황제의 잔혹한 광기와 여성편력은 그들이 단지 아름다운 장난감에 불과했음을 시사한다. 그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사랑한 아나스타샤가 낳은 이반이 왕조를 이을 것은 당연했다. 며느리 엘레나가 배가 불러온단 이유로 궁정의 관례에 따르지 않은 옷을 입었음을 알고 노발대발 지팡이를 휘두르다 손주를 유산시킨다. 아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반은 소중한 자식마저 지팡이를 휘둘러 때려죽인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아버지 일랴 레핀은 삼백 년이 지난 후 이 순간을 생생히 재현하는 작품을 그린다. 벨라스케스는 당대의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그렸지만 일랴 레핀의 그림은 역사를 제3자의 눈으로 해석한 이야기를 화폭으로 옮긴 것이다. 그로부터 130년이 더 흘렀지만 그와 우리가 이반 뇌제를 보는 시각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당첨!

놓칠 뻔한 <영국사>를 펼치는 날이 온다면 온전히 이 책 덕분이다. 책의 운명에 대해 떠올리는 날이다. 쉽고 수월한 것에서 복잡하고 깊은 내용으로 넘어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니까 그 책을 먼저 만났다면 이 책을 만나지는 못했겠지. 이와 반대의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그런 것들이 참 많다. 선택, 책임, 마음, 행동, 인연, 운명. 내것인데도 내맘대로 되는 게 드문 경우의 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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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3-06-2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두를 포청천한테서 빌려오든가 하지, 도끼로 몇 번을 치는 거야, 대체-이 부분에서 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어요, 아이리시스님! 이런 유머감각에 반했습니다. 종종 어떤 책은 그림 속 복식사에 관해, 어떤 책은 정물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더 포괄적인 것을 담고 있군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메리 스튜어트를 읽은 적 있는데, 츠바이크는 그것이 누구든 자신이 그리는 인물의 숨결까지 쥐락펴락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식, 관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정이 드러났어요. 아이리시스님이 읽으실 츠바이크를 기대해 봅니다.



덧-푸른 피를 지키기 위함과 동시에 사각턱도 사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헤헤..

아이리시스 2013-06-30 17:06   좋아요 0 | URL
으흠, 역시 작두는 짱이죠. 제가 포청천을 엄청 좋아해요, 작두가 아니고. 너무 안타까워요. 가발이 잡히고 데굴데굴 굴러간 게 고스란히 상상이 돼서 이건 정말 못할 짓 같아요ㅠ.ㅠ

죽음을 앞에 두고 장난치면 안되는데 나중에 후회했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고치는 것도 이상하고 나름 유머였는데 히히히. 미안해요, 메리! (제가 이제 메리한테 사과해야 하나요.. 미안, 메리할머니!!!) 다만 죽임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표면적 초상화 구경에서 더 깊이 들어갔다고 생각한 건 제가 왕실 역사에 무지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메리 스튜어트는 판본이 마리 앙투와네트보다 한참 안예뻐서(응?) 또 어디갔는지 안보인답니다.. 해가 쨍쨍하지도 않은데 하루종일 계곡물에 발담그고 수박 먹는 상상하면서 앉아있어요. 해수욕장이 인산인해인데 오늘 가볼걸, 하루가 다갔네요. 자고 밥먹고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6월의 마지막날을 이렇게 보내나 봅니다..

쟌님은 주말 오후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내일은 더 뜨거워져서 만나요! 7월이니까요.

2013-07-02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3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을 맨 나중에 설명하다 지친 깊은 밤중에_

 

 

 

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책으로 가는 길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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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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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없었어도 좋았을텐데(동생 따위 없었으면 좋았을텐데,가 아님),의 감정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동생찾아삼만리. 억지로 떼어놓은 연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애잔하고 절절한 남매의 완벽한 성장 드라마. 아무도, 심지어 아버지도 욕할 수가 없었다. 보내는 그 마음은 또 오죽할까 싶어서. 가난이 죄고,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듯이, 딸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한 방법의 선택은 모두 다르므로. 같은 상황에 처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누구의 선택이 더 옳았는지, 잘못되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방법 역시 없으므로.
초조한 마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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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 도착 15분 전의 상황종료라니 충격적이다. 미세하고 촘촘해서 숨막힐 정도의 고밀도 심리전이 이토록 술술 잘 읽힌다는 것은 츠바이크의 놀랍도록 끔찍한 장점. 연민,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이 애틋한 감정이 실은 나의 기만적 태도와 비열함을 먹고 자란다는 진실과 모순에 몸이 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결국 자기 밑바닥에 자리한 수치와 정면으로 마주한 호프밀러는 용감했다. 우리 중 누구도 온전히 호프밀러의 용기에 다가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끄럽고 서글프다.
월경독서-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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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른 텍스트가 훌륭해서 재미로서의 독서와 사유로서의 독서를 잘 분배하는 계획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김대중이나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몬느 베이유, 이사도라 던컨 그리고 최근 새로 번역된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나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궁금하다. 사실 목수정이라는 네임밸류가 주는 개성적 에세이로서의 매력은 거의 못느꼈다. 자족하는 수준이지만 리뷰를 꾸준히 쓰다보니 어떤 책이든 문체로서나 해석으로서의 독서에 크게 감명받지 않는다.
에라스뮈스-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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