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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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칙칙한 뒷골목에서 훗날 두 도시를 빛낼 위대한 싹이 트고 있었다. 그곳은 버려져 있기도, 선택되기도, 생채기나기도, 아물기도 했다. 쥐와 사람이 동시에 같은 곳에서 살았다. 마부와 마차, 붉은 포도주, 쿰쿰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 다락방, 낡고 녹아내려 만질 때마다 붉은 찌꺼기가 묻어나오는 철계단, 두 도시를 오고가는 거대한 도버해협, 뱃길, 악악거리며 대거리하는 소리, 가난 속에서 흘러넘치는 침울, 울음을 가장한 진짜 울음소리, 진흙탕에 넘어진 사람 머리 처박기, 뚝뚝 떨어지는 비애와 그나마 거리를 밝히는 푸른 별빛과 노란 달빛. 한 남자는 숙녀와 함께 오래 전 잊혀진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정한 도시에 온다. 만나기로 되어있는 사람은 런던의 유명은행에서 일하는 남자가 파리지점에 근무했을 때 알던 남자다. 어떤 연유로 유령 같은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앓아온 정신착란을 숨기지 못한 채 노쇠하고 허약해진 다 썩어가는 눈빛으로나마 딸을 안는다. 찢어발겨진 1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그들은 이제 함께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두 번 읽었다. 절망과 타락 그리고 영광은 언제나 함께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 타락한 도시조차 디킨스의 도입부는 멋지게 그린다. 비가 오는 거리를 미친 척 맨발로 뛰어다니던 적이 있었다. 다 커서는 아니고 학생 때 비오는 날 단짝친구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놀다(분신사바 유행중) 나오는 길에 그만 교문이 닫혀, 지나가는 분의 도움으로 교문을 넘다가 어차피 젖은 교복 그냥 쫄딱 맞고 강아지처럼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비는, 피하려 할 때 어렵지, 맞기 시작해서 홀딱 젖고보니 그만큼 마음 놓이고 편하고 행복하고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적이 없었다. 이상했다, 비는. 아마 이 도시의 타락과 절망의 냄새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책을 펼치며 여기 앉아 뜨겁고 달콤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꽤 오랫동안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 듯한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해협 하나 사이에 두고 닿아있는 두 나라의 정반대 분위기는 그곳을 좋아하는 일부의 이유 정도는 되었다. 환상 속에서는 유럽 보다 더 이질적인 중동이나 아프리카, 남미가 더 좋지 않을까. 그곳들의 하늘은 곧 머리 위로 부서질 것 같은 색깔이다.

 

어느 도시에 머물 때 폭격 맞은 대성당이 우뚝 선 바로 그곳, 불탄 자국 성당 샛길로 마차가 지나갔다. 케른트너 거리였던 것 같다. 영국도 파리도 아닌 곳에서 홈즈의 시대를 떠올린 건 잠시 뿐이었지만, 그 맛에 여행의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분명했다. 몽타주와 오마주가 군데군데 기시감으로 나타나는 현상, 그게 여행이었다. 온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하는 인도앓이를 유럽 어느 도시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서 실감했달까. 본인에게 익숙한 풍경과 가장 이질적인 곳에서 누구나 한 번쯤 앓게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인도와 영국이 아니고, 베트남과 프랑스도 아니다. 런던과 뉴욕도 아니고 파리와 뉴욕도 아닌,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많은 것에서 대립했을 런던과 파리, 비슷한 과거를 가졌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천차만별일 두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밤. 제법 많고 깊은 시대적 배경지식을 요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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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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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오래 전 다락방에 기어올라 읽던, 그 시절 소중한 시간들을 선사해준 동화책을 떠올리며.

 

에일리가 [불후의 명곡]에 나와 노래하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었지만 이 한 곡 때문에(에일리가 부르는 스타일은 여전히 맘에 안든다, 그저 곡이 좋아서) 간혹 에일리가 노래하던 무대가 생각나곤 한다. 이승환 편에서도 (곡이 좋으니까) 좋았는데 거기서 하차했다. 그렇잖아도 그만나올 때 됐다 싶던 참이었다. 모름지기 연예인이 오래가려면 한창 주목받을 때야말로 치고빠지기를 잘 해야 한다. 오래된 감성과 옛날 노래의 감각을 잃기 싫어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은 어느새 습관처럼 내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래봐야 원곡의 감동을 따라갈 수 없지만 나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그들은 아날로그를 노래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대부분의 가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에일리가 더 별로였던 이유는 가만히 불러도 잘 하는 노래실력을 감성을 실으려 기교를 부림으로서 상쇄시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어린 나이의 풋풋함 보다는 어서 어른이 되어 장렬하게 전시되고픈 야심이 느껴져서였다. 그녀가 그날 불렀던 노래는 가사도 멜로디도 딱 그때 그 시절을 내 앞으로 불러올 만큼 아련하면서도 명료했다. 강변가요제 시대를 청춘으로 보내진 않았어도 80년대 후반의 서정적 멜로디는 엄마의 영향 탓인지 늘 앓을만큼 좋.았.다. 이 노래는 스물 세 살 되던 해, 콩알만 하게 태어나 걱정시키면서 드디어 엄마 인생의 절반을 살고있다며 세상 다 가진 듯 좋아라하던 때를 헤엄치게 한다.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 또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하룻밤의 꿈 [가사]

 

이쯤에서 돌아가려해
변함없는 이 세상 변한 건 그저 내 마음

다가서면 멀어지고 떠나기엔 가까운
너의 눈빛은 여전히 고운데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지금까지 널 사랑하며
흘린 내 눈물만큼 너와의 거릴 느끼고

너의 그 모든 마음을 갖기엔
아직도 어린 나를 알고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는지
사랑에 버려진 세월의 슬픔을 아는지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잊혀져 버릴 꿈

(알 수 없는 너를 하룻밤 꿈같은 너를)
언제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

나만의 기대도 한겨울 바람 같은 네 맘도
모두다 하룻밤의 꿈 ~

밤보다 짧은 꿈 
펼친 부분 접기 ▲

 

 

그리고 버넷의 가장 완벽한 동화 <소공녀>는 살아온 모든 순간을 밤보다 짧은 꿈으로 인식시킨다. 반드시 지나쳐야 했을, 결코 피할 수는 없었을 많은 순간순간의 선택과 시간,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아홉 살부터 열한 살, 1년 하고도 몇 달 더 살았을 그 집에서는 이십년 후가 아니라 사십년 후에 떠올려도 미소 지어질 그런 일들이 아주 많았다. 동네 아이들(언니오빠친구동생) 모두 모여 생일파티를 했고, 최고 인기선물은 연필과 수첩과 노트와 지우개 등이 가득 든 문구세트와 저금통이었다. 옆집 오빠가 좋아서 새침데기처럼 굴었고, 주차장에 주차하고 골목을 한참 걸어와야 대문에 닿았고, 마을 근처에 꽈배기 과자 공장이 있어 날마다 고소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아직도 그곳을 생각하면 꽈배기 공장을 떠올리고 그러면 그 당시 동네 곳곳에 살던 친구들과 밤마다 하던 숨바꼭질이 떠오른다. 엄마가 얼른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 아이들끼리 마음이 어긋나는 바람에 편먹고 싸우던 일까지(지금으로 치면 패싸움), 두 편으로 나뉘어 이어달리기, 술래잡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고무줄 놀이 같은 구식에 목숨걸던 시절.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놀이들. 훗날 잔세스칸스에서의 강렬한 코코아 향이 맡아지고, 그러다보면 아- 추억은 향기로 맡아지는 구나, 하며 향수에 젖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타임머신이 제멋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첫사랑이나 파리, 학창시절, 어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가능하다. 이 시간들을 겪지 않았다면 많은 향수를 모른 채 어른이 되었을 듯한 불안한 예감 같은 것에 다름 아니다.

 

어린아이의 키와 눈높이에 딱 어울릴 다락방이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커서는 절대로 읽은 책을 다시 보는 일이 없지만(확 줄었지만) 아홉 살 크리스마스, 엄마로부터 이 책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세라의 다락방이 마치 지도 위 어느 나라들 보다 넓고 크게 느껴졌다. 그곳은 갖가지 보물로 반짝거리는, 없는 것이 없고 있을 것만 있는, 해와 달과 별처럼 손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상상력으로 빚어진 멋진 세상이었다. 그때부터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종종 혼자, 외롭게, 쓸쓸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것이. 세라는 에밀리(인형)를 친구로 삼아 인도장교인 아빠와 떨어져 영국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지내게 된다. 슬픔을 감출 줄 알고, 기다릴 줄도 알며, 무엇보다 인사와 감탄과 예의를 잊지 않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베풀 줄 아는 소녀다. 당시 세라보다 두 살이 더 많던 나는 세라와 닮기를 소망했다. 책이 지금보다 훨씬 귀하던 시절, 온종일 읽고는 다시 또 다시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발랄하고 성실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책상 위에 올려두신 빨간장화(플라스틱)에 든 종합과자선물셋트와 동화책 한 권. 그때 우린 좁은 방에 살고 있어서 책이 많지 않았는데 좋아하기 시작한 유일한 책 속 주인공이 세라였다. 유일해서가 아니라 처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홉 살의 여자아이에게 세라는 모든 것을 다시 쓰게 하고, 예뻐지고 착해지고 싶게 만든 주범이다. 동생은 파란장화 속 종합과자선물셋트와 <톰 소여의 모험>을 받았고, 아마도 그애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책을 정리할 때마다 고개를 내미는 동화책은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낡고 더러워졌다. 하지만 제자리에 꽂힌다. 다시 펼치지도 못한 채 그저 다시 꽂아놓는다. 그 책은 남아있음으로서 제 할 일을 다한다.

 

어릴 때, 학창시절에도 기숙학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하루 이상 떨어져 지낸 적이 없고, 어릴 때는 언제나 엄마가 곁에 있었는데, 가족과 떨어지거나 집을 떠나 생활할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성인이 되면 독립할 거라 맹신했다. 진심으로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조금 더 낯선 세계를 동경했을 뿐이다. 엄마 없이 일곱 살에 아빠 말동무가 될 정도로 철이 들어버린 아이, 아빠의 경제력과 지위로 인해 부유하게 자랐지만 예의범절과 성실과 밝음을 잃지 않은 아이, 어른스러움과 천진난만함이 세라를 더욱 빛나는 화려한 숙녀로 만들지만, <소공녀>에는 소녀시절 꿈꿨던 모든 여자아이들의 로망과 미래가 흘러넘칠 뿐 아니라, 배경묘사 또한 절절하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빠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며 친구와 자아, 꿈을 확립해가는 아직 어린 세라의 찬란한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고, 그런 점에서는 <빨강머리 앤>과도 어느정도 상통하는 면이 많은 여자아이들의 필독서다. 하지만 '있는 집 자식'이라서 기숙학교 원장으로부터 은근히 당하는 핍박과 괄시, 조롱어린 멸시나 기득권 경쟁처럼 친구들과의 다툼에서 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이 하는 '줄대기', '잘보이기' 같은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썩 좋지만은 않다.

 

앤이나 주디, 캔디가 가난한 고아소녀들이라면 세라는 부유한 아빠를 뒀지만 나중에 아빠를 잃고 그들과 같아진다는 점에서 현대가 말하는 신데렐라 혹은 캔디 캐릭터는 그다지 진화되지 못했다. 꿋꿋하게 웃으며 제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고 가다가 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근사한 왕자님 하나 물면, 이 시대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치는 로맨스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슬픈 대목에서 슬프고, 우울한 대목에서 우울하고, 분노하는 대목에서 분노한다. 달라지지 않았다. 방이 한 칸 뿐이었으므로 늘 다락방에 책상을 놔달라고 조르던, 날마다 창고로 쓰는 다락방 계단을 기어오르던 아홉 살의 여자아이는 이제 없다. 세라는 여전히 풋풋한 상상력과 통통튀는 발랄함과 순하면서도 강단있는 어여쁜 여자아이로 남아있는데, 옆집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그의 손을 쥐고 싶었던, 작은 나만 없어졌다. 억울하진 않지만 되찾고 싶어지는 밤.

 

좁지만 북적거리던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작은 골목 안의 집 안에 들어찬 사람들.

옆집 찌개 끓이는 냄새가 집안에서도 마당에서도 맡아지던 따닥따닥 붙어있던 한 대문 안에 살던 이웃들.

더럽지만 포근하고 따스하면서 정감있던 다락방을 혼자서만 기어오르고 싶은 순수.

 

내 안의 세라와 함께 안녕.

이 세상에 나를 꼭 닮은, 나만 꼭 닮은 소녀와 다시 찾아갈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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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공녀>는 만화로만 잠깐 본 기억이 있고, 책으로는 읽지 않았나 봐요. 과정도 결말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어린 시절 공기, 고무줄 놀이를 제일 많이 했어요. 한데 동네서 나는 항상 깍두기였어요. 같은 성씨를 가진 아이들(그러니까 또래의 고모와 조카였어요. 그 때는 그 관계를 이해 못했는데..) 사이에서 성도 다른 나는 왼손잡이에 공기도 어설프게 보이기도 했고 잘 하지도 못했어요.

불후의 명곡을 볼 때마다, 잊었던 노래들을 만나서 그 시절에 빠져요. 최호섭이나 양홍섭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2012-09-20 21:41   좋아요 0 | URL
ㅎㅎ 이 글에는 제가 1등!!

아이리시스 2012-09-20 21:57   좋아요 0 | URL
또래의 고모와 조카.. 지금도 이해가 안가요ㅎㅎ 오홋, 자목련님 왼손잡이예요? 저는 왼손잡이가 되고 싶었어요.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는 거랑 글씨 쓰는 게 부러웠어요. 저는 왼손잡이들을 예술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로 인식했거든요. 제가 왼손으로 하는 게 하나 있긴한데 이건 담에 어떻게 비밀로..... 별 거 아니지만 되게 중요한 거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차마 말이 안나올 것 같네ㅎㅎㅎ

에일리 어때요? 싫죠? 싫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지난주엔 최성수 아저씨가 나오셔서 엄마가 좋아하셨어요. 이 프로그램은 항상 엄마랑 함께 보거든요!

이 글에는 제가 2등!!

Shining 2012-09-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어릴적에 너무 심심하게 자랐나봐요_- 전 공기도, 고무줄놀이도 못해요; 제가 살던 동네에선(그러니까 그런 놀이를 할 때 나이쯤에 살던 동네) 밖에서 노는 애들이 없었거든요; 배울 기회를 놓쳐서 지금도 못해요_- 게다가 책에 매진하는 꼬마아이도 아니어서 소공녀, 톰 소여의 모험 등등과 인연이 없네요; 읽고 엄청 울었던 건 <플란더스의 개>에요, 그건 지금도 눈물 나-_ㅠ 어릴적엔 한국동화만 있었어요, 집에_- 쥘 베른도 스무살 넘어서 읽은것에 저는 이상한 콤플렉스가 있는데; 아이님 여러가지로 부럽군요!

아이리시스 2012-09-23 01:28   좋아요 0 | URL
보통 아파트에 살았으니까 학교 다녀오면 또래와 뛰어놀 일이 드문 것 같아요. 저때 2학년에서 4학년 정도였는데 저도 원래 아파트 살다가 좀 더 큰 집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아파트 완공과 이사에 틈이 생겨 다세대주택으로 간 거예요. 다세대주택을 멸시하는 발언은 아니지만 거기로 들어가는 게 썩 좋은 기억은 아닐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추억을 몇 개 가지고 있어 참 좋은 것 같아요.

갑자기 옆집 오빠가 보고싶네요 :)

저는 앤과 주디와 캔디 이 모든 애들이 세라 뒤에 놓여요. 그리고 샤이닝님은 어릴 때부터도 저보다 훨씬 더 문학소녀였는 걸요! 쥘 베른은 당연히 스무살 넘어서 읽는 거죠! (저도 해저 2만 리 완역본 정독한 적이 있죠, 몇 년 전에ㅎㅎ)
 

 

 

 

뭘 알고싶은 지도 모르면서 찾아헤매는 길 위에서, 지도를 잃어버리는 일은 금기시된다. 잊혀진 것, 숨겨진 것, 누군가의 뇌 속, 예술세계, 말하지 않는 세계관, 이미 사라진 것들에 자주 혼을 빼곤 했다. 하나를 물으면 열이 훤하게 드러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경험으로만 씌어진 글도 싫다. 알을 깨지 못하는 나도, 깨지 못하는 알 속에서 불평하는 나도 싫다. 내 안의 세포는 적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안달한다. 고집이 있지만 희석시킬 줄 아는 사람이 고집이 없으면서 목소리만 큰 사람 보다 낫다.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이, 가끔은 흔들리는 사람이 매력적이다. 혼자를 아는 사람이 좋다. 날 두고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다. 내 옆에서 나로 인해 불안한 걸 보면 도로 불안해져서 견딜 수가 없다. 끝은 늘 흐지부지하기 짝이 없지만, 지난 주 촉은 오로지 '장준하'에게로 뻗어 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불지른 유골과 증인과 사건전말서가 각기 다른 지점을 가리키는 엉뚱한 죽음 때문에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답답했다. 어떤 생이 숨쉴 수 없을 만큼 내리꽂혔다. 그가 무얼, 어떻게, 왜, 했고 어째서 죽어갔는지도 궁금했다. 유신의 생생한 현대사 전말에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아직도 그 전말이 속시원히 밝혀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진실이 무엇이든 뭔가가 숨겨져있다는 사실에 두려우면서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의도, 특히나 문학, 영화, 회화라는 예술의 의도에 대해 생각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결국 나오는 거겠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곧 그 사람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하는 것들. 어렵고 복잡하고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결국 한 조각으로 다 안다고 말해온 건 아닌가 하는 것들.

 

 

 

 

 

 

 

 

첨에 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선 막 개봉한 따끈따끈한 영화 <피에타>를 보러 극장으로 달려가면 되는 거였다. 크랭크인 때부터 유심히 보인 이유가 국제영화제 출품소식이나 감독에 대한 충격과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얼룩진 아련한 추억보다는 상징도 은유도 뭣도 아닌 바로 그 '피에타' 때문이었다. 바티칸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다음으로 내가 넋을 놨던 거.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 놓여있던, 당일치기 바티칸 관광 가이드가 내내 설명했던 거. 설명은 기억나지 않는데, 넋을 놓고 경이로워하며 보고있던 여자는 기억난다. 그때는 성서 속 인물들에 미쳐있었고, 종교에 약간의 경이로움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 그게 가짜라고 했을 때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고고학과 기호학 같은 오래된 수수께끼 때문에 이 땅을 밟고자 했는데 수면 위의 나는 현대에 더이상 그것도 한낱 여행객으로는 이곳의 생활상이나 남겨진 유적의 손질 같은 흔적 밖에 만날 수 없으리란 것도 알았다. 또한 약탈의 역사. 도시마다 우뚝 선 박물관과 미술관은 그곳에서 더이상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진짜 피에타는 유리벽 안에 꽁꽁 싸여 더 경이로운 체계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뭘 알아서 조각의 황홀함에 젖은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가짜를 진짜라 한들, 진짜를 가짜라 한들.

 

황홀해하던 바로 그때 그 시대. 로마로 간 이유. 이탈리아를 동경하는 이유. 여행하는 이유. 나도 모르는, 당신은 알 지도 모를 이유 같은 건 여기서 중요치 않고, 말할 필요도 없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남들이 불편해하는 걸 뻔히 알면서. 아마 관심은 거기서 시작했을 것이다.

 

 

 

 

외로워지면 좋아하는 나라의 지도를 펴놓고 지명을 읽기 시작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헝가리,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인도, 베트남.. 이런 나라들의 수도 뿐만 아니라 모든 지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아, 여기도 사람이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게 아니란 느낌이 들곤 했다.

 

 

 

 

 

 

 

 

 

정작 그곳에 있을 땐 내가 그토록 이질적으로 동떨어진 존재인지 몰랐지만 돌아와 보니 한결같이 나는 나일 뿐이었던, 전혀 어우러지지 못했던 폐허. 포로로마노를 카메라에 담을 때는 부서져내린 그곳이 한 번씩 생각날 지 전혀 몰랐다. 겨울 치고는 하늘도, 꿈도 넘치게 푸르렀다. 평형감각이 없어서 사진이 저딴 식이다. <이탈리아 도시기행>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 도시 곳곳의 모습들을 베테랑 건축가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30년 꽉 채워 그곳에서 살고 경험한 전문 건축가의 솜씨로. 못난 내가 찍어도 환상이 되는 곳. 건축가의 솜씨로 본다면 대체 그 피사체가 얼마나 더 황홀할까. 아는 도시에서 모르는 도시로 새로운 여행을 제안하니, 이만하면 문명의 시작이자 지중해의 중심인 이탈리아를 책으로 배우는 건 아쉬울 게 없다. 덜 본 것도 아니고 많이 본 것도 아니므로, 딱 그만큼, 이만큼. 궁금하거나 그리워서 죽지 않을 만큼.

 

아, 이제 정말로 성서를, 성경을 끝까지 완독해야 해, 집으로 돌아가면. 이라고 굳게 결심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피에타'의 메타포를 김기덕 감독이, 내가 아는, 유일하게 짐작하는 김기덕 감독이라면 어떻게 영화 속에 녹여놨을 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고 있다. 뭉그적대고 있다. 극장은커녕, 이런 거나 보면서. 저 사람 예술세계에는, 뇌 속에는, 관심사에는 어떻게 침투하면 되나. 왜 그래요, 당신 영화 왜 그래요, 라고 묻고 싶은데 대답은 혼자만 듣겠다. 연애 하겠다고, 그의 머릿속으로 침투해보겠다고 난리다. 평소 사생활 팔기와 의미없는 농담을 늘어놓는다고 여기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봤을 때, 저 감독이 왜 나왔지,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소식이 들렸다. 아, 영화가 (스포트라이트 지독히 싫어할 듯한 마이너-여기서 마이너는 자본의 마이너를 말한다)감독을 예능에 나가게 하는 구나. 물론! 진심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싫어할 그런 위인은 이 세상에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 물론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감독 입으로도, 배우 입으로도, 리뷰로도 수없이 듣고 봐서 잘 알고 있다. 줄거리 따위에 내 영화적 시선이 구속받지 않는다고 여기는 편이다. 배우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작품이 아니라 감독이 궁금해지면 어느 영역 안으로 들어선 것과 마찬가지다. 

 

그젯밤은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거기에는 이런 수식어가 붙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김기덕 감독. 촬영분은 수상 이전인 듯했다. 어젯밤은 [수요기획]의 리얼 김기덕을 봤다. 자급자족한 커피콩가는 기계와 에스프레소머신이 웃겼다. 뭐 도 닦는 아저씨 따로 없는 집안의 풍경과 목수라 해도 믿겠는 어마어마한 골동품 비스무리한 물건들. 세계적 감독이라기엔 심히 자연 속으로 파고 들어간 이름없는 나그네 같았다. 상업영화 보다는 영화제용 영화를 잘 보지만,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이란 게 정확히 어떤 권위를 갖는지, 어떤 성격의, 어떤 기준의, 어떤 지위를 갖는지 알지 못한다. 베니스에서 영화제를 한다고? 뭐 이런 느낌. 또 그걸 알든 모르든 무슨 소용일까.

 

그가 자신이 언론이 아는 것보다, 관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하고 여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변명하듯 말했다. 좋은 소리도 여러 번이면 질리고, 싫은 소리 무시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본인이 저질렀지만 끔찍한 비난과 불평을 어떻게 견뎠는 지는 궁금했다. 여기서 무시는 자조의 또다른 형태로 기능하는데 그는 꽤 오랫동안 같은 길을 걸었고, 이제서야 그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오만하게 그의 영화세계를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은 소녀시절을 보냈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극장에 걸릴 때, 나는 그 시간들을 혼란스런 자아로 가득한 미성년자로 통과했다. 터널은 죽어도 끝나지 않을 만큼 길고도 길었다.

 

 

 

 

 

 

 

 

 

 

 

민음사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출간된다. 파묵의 새 작품이 곧 나올 거라고 한다. 파묵의 강연록과 새 작품. [스탕달에서 도스토옙스키까지, 천일야화에서 안나 카레니나까지 캐릭터에서 플롯, 그리고 소설의 중심부 찾기까지 문화의 변방 터키에서 고전을 통해 독학으로 소설을 써 온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들려주는 소설 창작의 비밀]이라는 소개가 달린 하버드대 강연록이 기대된다. 새 작품은 파묵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가을이 되면 어차피 끝까지 읽지도 못할 만큼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둘러매고 사라지고 싶다. 아무도 없는 서해의 갯벌, 남해의 자갈, 외딴 섬 같은 동경의 장소로. 하지만 혼자이길 바라는 건 아니다. 아침 먹었냐고, 점심 먹었냐고, 저녁 먹었냐고 챙겨줄 사람과 말동무해 줄 사람, 길 잃지 않도록 지도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 갔다가 내가 실종되고 책만 발견된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겠지만, 표지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고 쓰여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났다가 죽은 셈. (안 죽을 거니까=333333333333)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암살/저격 당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자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서민 출신 대통령이었다. 흑인노예제 폐지는 그의 최대 업적이다. 스물 다섯 살에 정치계에 입문하지만 그는 여전히 치기어린 한낱 청년일 뿐이었고, 이런저런 전술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비상한 머리는 대통령의 그것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쉰 이후 정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의 그와 어린시절의 그를 제대로 분리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신화화된 면이 없지 않고,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과 그로인해 이윤을 보는 사람은 별개라는 점을 지적했다. 성장기 경험이 정치활동에 영향을 미친 예.

 

바로 그 노예제 폐지론 덕에 링컨은 1860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 승리는 곧 남북전쟁으로 이어진다. 북과는 달리, 남은 여전히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었다. 링컨은 앞서 싸웠고, 남북전쟁 중 아들을 잃는다.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던 그는 취임 초기의 불안을 블루 매스(우울증 약)의 잦은 복용으로 해결했고, 몸 안에 다량의 수은이 축적됐다. 재임 중 부작용을 느끼고 복용을 중단하고도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링컨은 인종평등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유색인종과는 아예 관계맺지도 않았고, 흑인들의 배심원 참여, 투표권, 백인과의 결혼에도 반대했다. 노예출신의 흑인노예해방론자인 프레드릭 더글러스와 함께 노예폐지론 전략을 짜기 시작한 건 훗날이다. 어떤 성장배경과 환경에서 자랐는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 이어나갔는가, 다른 사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관점은 변할 수 있다. 어떻게 관객과의 소통이나 예능출연, 마케팅 홍보에 동참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달라진 게 아니라 변한 거라 대답하던 김기덕 감독의 시각과도 연결된다.

 

자각, 인식, 행동은 변화의 단계별 과정이지만 갑오개혁이나 남북전쟁이 성공했다 해서 노비해방이나 노예제 폐지가 당장 실현되지 않은 것처럼 세계 안의 제도와 관습 그리고 변화는 서서히 진행된다. 세상을 전복하는 새 제도는 그것이 법전에 적히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또한 그래왔다. 끝내 변하지 못한 것도, 느리게 변한 것도 있다. 남북전쟁에서 승리 후 북쪽에 연합한 흑인들에게 보상으로 시민권을 내준 것 같은 제도변화의 연쇄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바로 그 변화가 링컨을 죽게 하지만, 그 업적으로 인해 성인(聖人)으로 남게 되었다.

 

변화는 내면으로부터 오지만 사실 겉모습을 바꾸는 것이고, 평가는 완전 외부로부터 오다보니 사람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분노와 광기로 가득찬 영화라고 그 사람이 그럴 거란 보장은 없다. 어디선가 생각이 찔끔찔끔 배어나오겠지만 텍스트에 있어 나도 꽤 극단적 선택에 손을 드는 편이다. 어차피 살기 아니면 죽기.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보니, 잘 살기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일이, 더군다나 마음 속으로 침투해봐야 겉으로 드러나는 대중심리는 그와는 더욱 다른 경우가 많은데, 나는 좀 지쳤고, 인물의 선택을 나쁜 방향으로만 데려가서 제대로 욕 먹고 마는 그 감독의 세계가 좀 이해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제 읽은 소설(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 의하면, 선택은 누군가에게 희롱 당하거나 비난 받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링컨이 자신을 성인군자로 만든 바로 그 업적으로 인해 죽음을 당한 것처럼, 선택이 좋거나 나쁘기 때문에 다음 일이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게 좋은 선택이 나와 관련된 혹은 관련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좋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러면 이 세상을 손에 넣은 건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쥐고 있는 건 세상이 맞다.

 

 

정치인들이 자꾸 과거를 복기한다. 너는 독재자의 딸이었으니 똑같이 할 거고, 너는 경험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를 거다. 반면, 경제발전을 이룩해낸 대통령의 딸이었으니(여기서 딸이'었'다는 건 중요하다, 그녀가 대통령 아버지 밑에서 얼만큼 자랐는지를 본다면, 일찌기 여읜 아버지의 원칙을 고수할 리도 만무한데) 너도 잘 할 수 있을 거고, 너는 대통령 주변인물이었지 아무런 결정도 스스로 내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결단력이 없을 거다. 다 맞는 말 같다. 정치는 결과로만 평가 받으니, 의도가 어쨌든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노동하는 서민은 죽어가도 대기업이 초대기업으로 성장하면 국가의 생산성과 경제력은 문제없는 걸로 판가름난다. 이렇게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문제 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지나친 비관주의나 회의주의도 문제지만 낙관주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모르겠다, 정치는 너네가 알아서 잘 하라고!(라고 말해도 나는 또래 중 만만찮게 뉴스 속 정치인들 보면서 욕하는 여자 중 한 명일 지도;;)

 

문제는 지금까지 그랬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하는 건데, 사람의 본성은 안 변해도 선택과 기준은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선거판에서 현실적인 얘기는 사실 소용이 없지만. 만들어진 이미지로 걷는 정치인들의 특성상, 누가 조금 더 나쁘고, 누가 조금 덜 나쁜지 판단이 아니라 유추를 해보는 것이다. 빵과 라면이 둘 다 싫어도, 밥이 없다면 둘 중 하나를 골라 먹어야 살아남는다.

 

어제 선물받은 이 책 때문에 야금야금 이제 거의 예루살렘 땅으로 터전과 살림을 옮겼다. =.=

 

 

<십자군 이야기>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만날 줄 몰랐다. 시각도 다르고 방식도 다른데, 나야 뭘 몰라서 뭐가 다른 지도 모를테고, 아, 근데 이 책 시작부터 왜 이렇게 재밌지. 사실은 지금 나는 물 만난 고기, 방앗간에 들어간 참새 같다. 나중에 미시로 찾아볼 주제와 인물, 책들을 메모만 했는데 다이어리 메모란이 빽빽해졌다. 그냥 전용노트를 마련할 걸 엄청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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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9-1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너무 눈높이가 높은 것 아닙니까. 고집은 있지만, 희석시킬 줄 아는 거는 되게 어려운 건데..그거는 예를 들어 모 상사님이 소주를 맥주에 희석시킬 때(그러니까 폭탄주 만들 때) 소주맛이 거의 안나게 하되, 약간 들어갔다는 느낌만 나게 타라는 것과 동일한..ㅠㅠ

저는 뭐 김기덕 씨가 TV나오는 것은 괜찮은데, 왜 하필이면 강심장 같은데에..이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다른 무엇보다도 그 옆에 표지판에 뭐 그 토크 주제 써 있는 거 그거 너무 민망하지 않아요?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서 안 봤어요.

박 누나는 지금 너무 잘하고 계시기 때문에 까지 않는 걸로..그렇게 계속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링컨은 뱀파이어 헌터! 아님?..;;

아이리시스 2012-09-15 11:29   좋아요 0 | URL
ㅎㅎ 저 진짜 강심장 땜에 미치겠어요. 그건 대체 왜 종료 안하고 계속 하는 거예요?( '') 주제도 민망하고 떼거리로 나오는 게 제일 이상해요. 그런 건 안 본지가 꽤 돼서ㅓㅓㅓㅓㅓㅓㅓ

아니, 박 누나................................. 진심이십니까?! 진심인 줄 알겠습니다(ㅋㅋㅋ)

소주에 맥주를 타는데 소주맛이 거의 안나게 하되, 약간 들어갔다는 느낌만 나게 타라는 상사가 있습니까?(어떻게 하는 거예요?) 무관심하면 무관심하다고 욕 얻어먹고 신경쓰면 신경쓴다고 욕 얻어먹는 현대인의 비애랄까요...........

그리고 저 링컨은 자연인/대통령 링컨입니다~~~~~~~~~~~~~~~~16대 대통령............다큐봤어요, 저 날. 링컨도 흔들리고 변하는데...뭐 이런 거였죠! 뱀파이어 헌터 재밌을 것 같아요. 저 그런 거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2-09-1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 아이리님.... ^^

문득 읽다가, 어딘가 여행을 가고 싶으면 지도를 펴고 지명을 읽는다는 부분이 참 멋지구나 싶은거예요.
그런데 나는 항상 이런 구절을 보면 멋져서 따라하려고 지도나 음식책이나 머 이런 것을 사지만,
실제 사놓으면 실용적이고 행동화하는 측면이 강한 승질머리 때문에 남의 경험담 읽는거 시로 하고 마는 경향이 생각나버렸어요, 부러워하지 말자, 난 어짜피 안 할걸 머 이런 생각.... ㅋ

저는 경선 참여했어요. 머.... 인상이 맘에 드는 분이 있어서 말이죠.
그냥 믿어보는 것도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거야 라고 생각도 했어요.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결론내리면 정말 편할텐데, 아시다시피
모든 것은 염색처럼 슬슬 스며들어서 어느샌가 흠뻑 물들어있는게 변화더라구요. 그때그때 알면 참 좋을텐데.
그러기에는 우리 인간이 너무 작아요.

잘 지내고 계시죠?

아이리시스 2012-09-15 11:03   좋아요 0 | URL
하하이 달사막여우님...^^ (기다렸잖아요,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ㅠ.ㅠ)

아, 맞아. 난 어차피 안 할 걸, 저도저도, 좋은 리뷰 봐도 사실 읽자로 연결되기도 꽤 걸리는데다 결국 책도 안 사고 끝날 경우가 많아요. 근데 오래 전부터 지도 펴놓고 지명 외우기는 좀 했어요. 국가별 지도를 산 건 아니고 첨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이렇게 하다가 점점 모르는 나라도 찾게 되고.. 인터넷에 지도는 많잖아요^^

아ㅏㅏㅏㅏㅏㅏㅏ 저 해뜨는 거 보고 여덟시에 잠든 것 같은데 아부지가 전화 한 통으로 저를 두 시간만에 깨웠........... 졸려요.......

저도 하고 싶었는데 긴가민가 이리저리 얼렁뚱땅 지나가버렸네요ㅎ 아 대부분 그렇지 못하니까요..저도 그렇게 명확한 부류가 아니고..달사막여우님도 그래요!

주말 잘 보내세요. 아, 너무 뜸했어.. 반가움이 비몽사몽으로 발화하는 중이에요!

2012-09-17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8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2-09-1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는 잠깐 봤었는데, 꼭 여러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는 꾸질꾸질한 아피아 가도 - 지금은 새까만 차도 - 에 엎드려 키스할뻔했어요. 그냥 감동이 밀려오더라구요,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무엇인가...ㅋ

정치는, 정치인은 보다 더 좋은걸 선택하기보다는 덜 나쁜것을 선택하는게 현실적인 저의 지론입니다. 완벽할 수도 없고, 더러운 부분도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_-:

아이리시스 2012-09-20 21:37   좋아요 0 | URL
오, 20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무엇인가.. 바로 그 이유로 로마의 모든 거리들이 좋아요. 로마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모든 것에 환상이 있어요. 너무 오래돼서 실체는 중요하지도 않은 게 되어버렸거든요. 아피아 가도- tran님 얘기만 들어도 감동이 확 왔어요. 봄/여름 보다 가을/겨울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예요.

저도 정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쪽에 무게를 싫으면 다른 한쪽은 기울 수밖에 없는, 시소 같다고 방금 뉴스를 보며 생각했어요-_-:

페크pek0501 2012-09-2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의 책, 저도 관심 갖고 있었던 것인데...ㅋ
민음사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출간되는군요.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는데, 민음사의 것으로 구입해 놓고 싶군요. 그 책은 헌 책이 되었거든요.

이번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구입했는데 한글판과 영문판, 두 권으로 4900원밖에 안 해서 횡재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두 권의 책값이 5천원도 안 되다니... 표지도 고급스러워요. 펼쳐 보며 행복해 하고 있어요. ㅋㅋ

아이리시스 2012-09-20 21:42   좋아요 0 | URL
요즘 서평이벤트 카페 들락날락거리며 아직 출간도 안된 책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요, 힛.
아, 페크님이 그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신 분이셨어요?^__________^

아..어느 출판사인지 알 것 같아요. <예언자>도 나왔어요? 저는 카뮈를 사고 싶었는데, 아직은 전자책으로만 봤어요. 할인률이 크게 떨어진 건 역시 저작권 만료작들이 출간되고 있어서 그런건가요?

맞아요, 가격대비 실물도 좋다면 행복한데 너무 횡재한 느낌이라 대충 만들었나 싶은 맘이 있었어요^^;

페크pek0501 2012-09-21 13:19   좋아요 0 | URL
추신.
한글판과 영문판의 예언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책은 괜찮지만 소설은 잘 보고 구입해야 할 것 같아요.
글의 분량이 적어(책이 얇아요) 혹시 완역이 아닐 수 있어서요.
소설에서 문장이 몇 개라도 빠지는 건 싫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2-09-23 01:25   좋아요 0 | URL
OK. Thanks, pek님.
다음번 구입에 도움이 될 거예요.

네, 완전 싫죠. 문장 빠진 소설이라니-.-

추신.
조르바를 샀는데 괜찮은 것 같긴 했어요. 그러나 책을 실물로는 못봐서..
 

쓸쓸해졌다. 가을이라 그런 건 아니다. 청량한 가을을 좋아하는 그녀와는 달리, 나는 가을에만 한없이 깊은 곳으로 침잠한다. 한때는 떠오르지 못할까봐 두렵던 날들도 있었다. 읽을 때마다 스펀지 같은 뇌가 튀어나온다. 온 감각을 건드린다. 흡수력이 자각된다. 숨겨져 있던 알싸한 감정이 무심코 밀려올 때가 있다. 피해서도 안 되고 피할 수도 없다. 주로 환절기에 환각처럼 몽롱한 상태에서 당신에게 피해입히는 것도 모르고 끙끙 앓는다.

 

어째서, 이런 하늘인가. 이토록 탄성을 자아내는 초가을 하늘은 파랑이 섞인 잿빛이다. 때로 너무 파래서 곧 쏟아져내릴 것만 같다. 어떤 하늘 아래 죽고 싶으냐 물어오면 지금처럼 이런 색이면 좋겠다고 대답할 그런 빛깔의 하늘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이 계절. 당신이 그런 것처럼 나도, 많은 호사를 누리지는 못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가을하늘 사진)

 

분량이 적어 만만해하다가 가볍게 보지말란 듯 문장에 사로잡혔다. 내밀한 고백록으로, 간절함의 시어로 쓰였다.

기다림을 실현하는 간절이다.

뭐가됐든 앉은 자리에서 끝장내려고 하는 나에게는 대체로 어려운 일.

다혈의 기질로는 미처 쓸 수 없을 풍경들. 숨이멎는 독백들. 흩어지는 시간들. 스며드는 뭉클함.

굿바이, 산양의 왕.

서로가 서로에 대해 주어진 어떤 시간이 째.깍.째.깍. 걸어온다. 나에게로.

 

영화 <네 번>을 보면서는 숨을 참았었다. 헉- 무심결에 목구멍에서 이런 탄성이 나왔다. 경이로웠다. 이탈리아 산골마을에서 촬영되었다는, 소리와 배경과 이미지, 그외의 모든 것을 제거하고도 여전히 모든 것이 남아있는 벅찬 감동. 어떤 문화도 알지 못한다. 오래 전에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를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경 해왔다. 그곳에 대한 동경은 한 줄기가 아니라 수많은 줄기라, 벅찰 때가 많았다. 쓰일 곳 없을 언어를 잘할 수 있길 소망했다.

 

이제 나는, 내 것을 더 세심히 빚어내자는 마음 뿐이다. 내 언어를 갈고 닦자는 다짐 뿐이다, 그래, 내 언어.

당신의 것 말고 내 것. 소유.

 

눈부신 자연의 숭고함.

생사를 가로지르는 생명의 진실.

팔딱거리는 생동과 고요 속에 매몰된 신비.

끌어안음 또 끌어안음.

화해와 용서.

유감없음.

어째서, 어릴 적 본 수많은 쓸쓸한 풍경들이 떠올랐을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릿한 질감이 경이와 고요를 흘러넘치게 한다. 간혹, 아무 것 없을 때, 세상이 싫어질 때, 사람이 두려울 때, 아프고 괴로울 때, 그리울 때, 쓸쓸할 때, 희망할 때. 어떤 영화는 모든 걸 내어주기도 한다.

 

 

 

 

 

 

 

 

 

 

 

 

 

 

산속을, 산길을 걸어보지 않은 자,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산길은 산길을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산양의 왕과 평생 그를 좇는 한 남자 사냥꾼의 얘기다. 뭉클한 것이 금새 텅빈 마음을 촉촉히 채운다. 고백은 무겁고 공기는 뜨겁다. 삶과 죽음, 쫓김과 당함, 자연과 속세, 거대한 자연의 룰이 생생히 살아숨쉰다. 산양은 늙어 죽어가고, 사냥꾼은 오래 전부터 열의를 다해 쫓으면서 삶을 보낸다. 산양은 제 자리를 내어주고 땅과 흙으로 돌아갈 때임을 직감하면서 사냥꾼을 조롱한다. 사냥꾼은 산양의 조롱에 번번이 당하면서도 다시 또 다시 산양의 왕을 잡아 주머니 채우고 배불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찾아헤맨다. 살기 위해, 살아있기 위함이므로 모두 이 이상 열렬할 수 없다. 도망하는 자와 도망치는 자를 쫓는 자는 간혹 전복된다.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이 세계의 룰이 그러하듯.

 

혼자가 아님에도 둘은 처절하게 독자적이다. 어릴 때 사냥꾼의 총에 어머니를, 독수리의 탐욕에 누이를 잃고 외롭고 절박하게 획득한 이 자리를 퍼질러놓은 자식들 중 하나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산양의 왕이 처한 운명은 울음을 머금고 있다. 산양에게는 해가 없다. 내리막이 보인다. 그의 절정이 언제였는지, 만개한 꽃처럼 화사한 시절이 언제였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소리없이 뒤에서 치는 독수리 보다 차라리 발소리와 냄새가 흔적을 속삭여주는 인간이 낫다는 산양의 목소리는 짐짓 으스스하다. 낫다면 뭐가 더 낫고, 나쁘다면 뭐가 더 나쁜가.

 

에리 데 루카는 '일생에 한 번은 보고 죽으라'는 항구도시 나폴리 출신으로 이탈리아 중견작가다. 고산지대 등반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철학적 고제인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무거움과 가벼움의 한 뼘 차이를 인간의 팔에 올라타도 느껴지지조차 않는 나비의 무게에 비유한다. 인간의 육체에서 갓 빠져나온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던 미국의사 맥두걸 박사의 이론만큼이나 중의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헤밍웨이 문학의 정점 '노인과 바다'에 비견되는 소재의 무거움을 갖지만, 언어는 훨씬 더 시적인 풍부함으로 씌어졌다. 시종일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이 느껴져, 살아있음이 성스럽다. 산양이 아닌 것도 사냥꾼이 아닌 것도 차라리 축복이지만 세상은, 세상을 지켜주는 건 따로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뭐 그런 얘기가 아니다.

 

살아온 만큼 살아갈 것이라 믿는 이들은 없다. 양보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삶이지만 되돌려줄 수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얼마되지 않는다. 오만불손한 마음가짐들이 모욕과 굴욕으로 한 차례 스쳐가고나서, 비로소 내가 주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기 위해 죽을 걸 알면서도 결투하는, 산양의 왕과 사냥꾼의 대면은 차라리 희열이었다.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주고픈 재앙이고 슬픔이었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더라도 나는 수평을 맞추기 위해 손을 뻗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마주해야 한다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의 어떤 무게. 하지만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더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산양의 왕과 사냥꾼이 어떻게 되었는 지는 말하지 않는 게 옳겠다. 중요한 건 산양의 왕과 사냥꾼이 떠난 자리에 나비가 가만히 내려앉았다는 사실이다. 나비의 무게에 심장이 멈추고, 나비의 무게에 세상이 끝나고, 나비의 무게가 생사의 경계에서 오만한 인간을 지켜주었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리 데 루카가 과연 어디있다 이제 나타났을까를 물어야 한다. 그는 스무살에 미장이로 일하며 쓴 소설을 마흔에 출판할 정도로 열성적인 작가였다. 작가라는 타이틀 앞에 그에게 붙는 직업적 수식어는 많고, 과거에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문학,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이 세상, 온전히 내 것도 아니고 당신 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 빌려온 것을 소중히 내어놓는 것이야말로 삶과 죽음 앞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제목으로 쓰면서 영원한 재귀를 꿈꾸는 니체가 말한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간은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라 언제 어디서든 부재하고, 내일이면 부존재할 수 있음을 역설하며 존재의 무거움에 대해 말했다. 에리 데 루카는 심장에 내려앉는 나비의 무게로 존재의 숭고함에 대해 역설한다. 두 작가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클리셰는 결국 같은 셈이다.

 

다시 질문. 존재는, 자연은, 인간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어버린 모든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인가, 혹은 무거운 것인가. 누군가를 돕는다고 믿는 많은 순간이 민폐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텐데. 답을 알려고 한다면 이미 죽은 후여야 하겠지. 살아있는 한, 인간은 삶과 죽음 모두를 알 수가 없는 거겠지. 다만, 살아온 날들의 순간 위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포개 죽어서도 기억해보려 안간힘 쓸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갈고 닦아, 새로이 보고 느끼고 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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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아이님 마음 속 가을하늘 사진을 쳐다봅니다.
오늘 가을하늘이 참 맑고 높아요. 하얀 구름이 넓게 덮여있는데, 무심하고 가볍게 그렇게요.
<네 번>은 꼭 찾아보고 싶어지는 영화네요.^^

아이리시스 2012-09-06 00:0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다시 보고 싶어서 막 찾아보니까 제가 날려먹었나 보네요.
전에 진 세버그도 그렇고 드리려고 막 뒤져보니까 없어요_- 제 하드와 외장하드는 한 번씩 뒤집어 엎기 때문에 창고처럼 한참을 막 미친듯이 뒤져야 나와요. 아쉬워요. 이 가을의 시작, 또 보고 싶은데..

아시죠? 소리도 없고 대사도 없기 때문에 내용도 없다는 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라는 것도요^^

프레이야 2012-09-06 06:21   좋아요 0 | URL
호호ᆢ 그랬군요. 저도 뭘 잘못 찾고 뒤죽박죽 그래요. 고다르 디비디는 구매했어요. 네번,은 어떡해든찾아서 볼래요. ^^ 고마워요, 아이님

아이리시스 2012-09-06 21:32   좋아요 0 | URL
제가 그때 찾아보고 없어서 지나가는 말로 DVD 얘기했는데, 선물 드릴까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원래 그런 건 동작이 느려가지고.. 구입하셨군요! 보셨나요? 저는 책을 못봤어요ㅜ.ㅜ (제가 이래요)

프레이야 2012-09-06 21:49   좋아요 0 | URL
헤헤~ 마음만으로도 고마워요.^^
4편이 들어있던데 아직 다는 못 봤어요.

아이리시스 2012-09-07 23:09   좋아요 0 | URL
아..고다르 컬렉션 구입하셨구나.. 다른 영화는 뭐가 좋나요?^^
다 보시면 추천해주세요~

2012-09-06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09-06 00:28   좋아요 0 | URL
아, 실존? 헤밍웨이식 실존요?

아이리시스 2012-09-06 00:34   좋아요 0 | URL
어랏, 댈러웨이님 언제 왔어요? 이제 가려던 참인데, 원래 목표는 밤에 잠깐 인터넷 하고 다시 사라지는 건데 쭉- 쭉- 있다가 그냥 쓰러져서 자는 날들이 태반이에요.

사실은 이 글.. [섬] 리뷰 다음으로 맘에 드는 글인데..이 글은 (웃기지만) 퇴고도 엄청했어요. 대부분 한 번에 써서 쟁여놨다가 그냥 올리고 사라지거든요. 창작도 아니고 리뷰일 뿐이니까요. 근데 주제가 워낙 좋아서요^^

저 책 좀 맘에 들어요. 제가 동물애호가라서 사냥꾼을 많이 미워하거든요. 애기들 너무 불쌍하잖아요. 여기 나오는 산양도 너무 안됐어요 ㅠ.ㅠ 사람이 아니라 산양에 감정이입 200%...

헤밍웨이는 청새치를 잡고, 처음 보는 이탈리아 작가님은 산양을 잡잖아요. 비슷해서 나온 거예요. 이거 물어본 거 맞아요? 맨날 헛소리를 잘해서, 이제는 걱정이 돼요ㅠ.ㅠ


아이리시스 2012-09-06 21:32   좋아요 0 | URL
네, 실존. 그거 맞네요, 실존!

2012-09-0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에 아이리시스 님의 글을 읽는 즐거운 호사~~
왠지 소개하신 책보다 아이님의 설명이 더 멋질 것 같은 느낌이에요.^^
책도 영화도 꼭 보고 싶네요..
근데 스무살 때 미장이 하던 시절에 쓴 소설을 마흔에 출판했다니, 왠지 나도 막 써 볼까 싶다가
아이님은 이미 쓰고 있거나 써놓았겠다고 생각했어요.ㅋ 아닌가요?

아이리시스 2012-09-06 21:36   좋아요 0 | URL
섬님 글에는 숨겨진 쓸쓸함이 묻어있어요, 평가해도 되나요?ㅜ.ㅜ
원래 자기에게 (어떤 의미로든 다가온다면) 도움이 된다면 다 좋은 글이잖아요. 그걸 매번 논리적 이유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되게 많이 감정과 기분과 느낌에 끌리는 타입이라서요^^

쓰고 있으면 좋겠는데 창작(그것도 소설, 제가 쓰고픈 소설)은 먼 얘기예요. 요즘은 뭐 하얀 종이 펴면 눈 앞이 까매져요. 예전부터 그랬지만.. 섬님은요? 그.. 김승옥 좋아하고 극작가 꿈꾸시는 언니분 저랑 똑같아요^^

2012-09-07 00:19   좋아요 0 | URL
저는 감정과 기분과 느낌에 끌리는 타입을 좋아합니다.ㅎ
어느 때부턴가 아이리시스님의 팬이 돼 버렸는데 아실랑가. 아이님의 본글과 댓글과 답글 모두 좋아요. 어떻게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인 깊은 친밀감을 가지고 있고 또 표현할 수 있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품이 넢은 사랑을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제가 못 그래서?!)
그리고 아이님의 유머 감각 좋아요. 저보다 십년은 젊은 사람의 참신한 감각이 분명 있어요.
이거 뭔가요? 갑자기 사랑 고백.ㅎㅎㅎ (호가든 한 캔과 산 미구엘 한 병의 기운을 빌어?!)

그 언니, 떠올리고 나니 또 막 더 떠올랐어요. 언니 땜에 알게 된 시인도 있어요.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 언니의 소개로 알게 된 시집인데 무척 사랑했었죠. 언니는 '기찻길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인가 하는 시를 좋아했어요.-언니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저에게도 무척 설득력 있었어요.- 전 그 시집에서 '이탈한 자가 문득'이란 시가 생각나네요.
전요. 김중식씨처럼 딱 한 권만 아주 훌륭한 시집 내고 홀연히 사라지는 타입도 좋아해요. 그는 무슨 신문사 기자로 계속 그냥 그렇게 살았다죠. 전설로 남은 시집 한 권만 내고... (이 단호함이라니!)

아. 소설. 분명 아이님은 이미 써 봤을 거예요. 저마저 써 봤으니까. 98년에 마름모꼴 방에 혼자 사는 아픈 여자 이야기. 한 친구에게만 보여줬고,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 단편소설이 있었죠. 후후..

버스커 버스커가 오늘도 절 위해 노랠 불러주네요. 장범준 기특해요.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9-07 23:06   좋아요 0 | URL
그래요, 섬님을 위해 버스커버스커가 노래를 불러줍니까? (부럽다, 부럽다)
요즘 속 시끄러워서 음악을 그다지 못 듣고 지냈는데 그래서 감상이 좀 메말랐나 봐요. (불만투성이;;)

아.. 첫문단은 좋은데 막 좋은데 뭐라 설명을 드릴 수 없이 기분좋고 고마운 글이고요..
내일은 좀 더 드세요! 호가든 두 캔과 산 미구엘 두 병! 두 배 사랑고백(ㅋㅋㅋ) 하러 오세요^^

그리고 시는 되게 좋네요, 제목만 들어도. '기찻길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를 엄청 좋아해요. 아까도 다시 읽으려고 뽑아뒀는데 간이역 젊은 역무원이 주인공이에요. 다방도 나오고 뭐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떤 할머니(아주머니..) 그거 혹시 보셨어요? 저 시가 이 소설과 비슷한 풍경이면 좋겠다, 으흐흐흐

뭐 사시다가 또 시집 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 안 계신가요? 기자는 시인과도 참 잘 어울려요. 기사를 써봤는데 저는 그것도 못하더라고요ㅠ.ㅠ 할 말만 찝어서 단호하게 전달하는 능력부족..

푸하, 저는 논문 대신 소설 써서 졸업했으니까요.. (소설,시,평론,희곡 다 가능했어요. 저희 과는 논문은 없었어요) 그것들이 어느 순간 다 없어져버렸어요. 간혹 다시 보고싶을 때도 있는데..

마름모꼴 방에 혼자 사는 아픈 여자.. 우왓,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데..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9-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주인인 하늘은 아니지만, 오롯이 즐길 권리는 있다는거!
전 가을이 시작되면 피곤하긴 하지만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요. 겨울 내내 추워하면서도 의욕적인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시작될 땐 오히려 시들해 지기 시작해서 여름에 에너지 바닥을 경험하곤 하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인가요? ㅋㅋㅋ

모든게 시작했어요. 다시 아침은 고요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일이 시작되고
하루 종일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하는 일상.
뭐. 이곳에 자주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빼고는(!!)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어때요? 그곳은?

아이리시스 2012-09-06 21:40   좋아요 0 | URL
현맘님, 가을학기 첫 시간 강의, 애들한테(그것도 예술을 꿈꾸는 애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셨어요? 현맘님이 가을 얼마나 기다리셨는지 저는 잘 알잖아요ㅎㅎ 여름에 힘들었잖아요, 휴가를 럭셔리로 다니셔서~ 바베큐랑 캠핑이랑 레프팅이랑 또 뭐, 펜션? 아아아아앙 엉엉ㅠ.ㅠ 그거 남들이 5년에 걸쳐 가는 여행일지 아닙니까?!

하루종일 말하고 싶지 않아도 말해야 하는 일상.

여기 아직 더워요. 거긴 서늘해요? 사실은 너무 더워요. 이걸 쓰던 날은 좀 덜 더웠던 모양인데..

자, 또 말씀해주셔야죠, 강의 일정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는야 공짜 청강생)
 

 

 

 

밤에 읽으면 안되는 책도 있는 법인데, 밤에 들어야 귀에 쏙 박히는 음악이 있는 것처럼 책도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이병률 여행산문집을 읽었다. 중고샵 득템 3권으로 행운의 램프 응모티켓 두 장을 받아서 한 장은 꽝 되고, 한 장은 이 책, 당첨됐다. 당근 전자책. 하늘을 나는 파랑새 느낌으로. 글과 사진의 온도만큼이나 따사롭다. 평소 운으로 볼 때 두 장 다 꽝이어야 정상인데, 잠시 느끼되, 작든 크든 행운이든 행복이든 그런 건 계산하지 않아야 온다.

 

시인의 시를 모르는 상태에서 산문집만 두 권째, 첫 번째는 당연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독서하는 이, 안 하는 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을, <끌림>이었다. 그 책을 개정판이 나오고 사서, 읽고는 아, 이런 책이었구나, 했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별 느낌이 있지도 않았다. 마음을 뜨겁게 데워주는 책인 건 분명했지만, 전 대한민국 출판계가 들썩일, 끌림의 책은 아니었다. 아마, 처음이었기 때문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경향도 있었을테고, 뒤늦게 편입하면서 까고 싶은 묘한 심리의 기류가 흘렀을 게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깔끔하고, 찡하다. 전작보다 더 팔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인생의 대박은 단 한 번이다. 오는 행운을 잡기도 어렵지만, 유지는 더 힘들 것이다.

 

인도에서 라면 끓여먹기를 도와준 불가촉천민 가족들에게 찡했고, 아,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나, 새벽 네 시에 심각하게 고민했고, 루마니아 택시기사는 고마웠으며, 절반 읽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오던 잠이 달아나고, 여행을 더 많이 가지 못한 것보다 당신의 얘기를 더 깊이 들어주지 못한 게 미안해진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만나는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고 간혹 꺼내보고 싶다.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서, 아니면 경험이 없어서, 나는 글을 못쓰는 것일까. 시가 아니라 글을 쓰고싶은 것 뿐이잖아.

 

사람이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건 사랑이 어디론가 숨어버려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걸 만지고 싶어서일 텐데. 그걸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만지고 싶을 걸 텐데. 갖자는 것도, 삼켜버리는 것도 아닌, 그냥 만지고 싶은 것.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파리시내를 내려다보던 중, 시계視界를 가리던 어떤 커플. 여자의 키스에 절대 응답하지 않던 남자의 무표정. 먼저 등을 돌려 걸어가버리는 남자를 뒤따르는 여자의 쓸쓸함.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는 거예요, 도대체. 나는 왜 발을 동동구르는 걸까.

 

단절이 찾아오고, 설령 마음을 거두어야겠다고, 헤어지기로 했다고 심장이 시켰을지라도 한쪽에서는 그 얼마나 갑자기 난데없을까.

 

이봐요, 남자님. 키스로 아침에 드신 빵맛이 좀 지워지면 안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보다 누구를 사랑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 낫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불가능한 사랑이어서, 하면 안 되는 사랑일수록 그 사랑은 무서운 불꽃으로 연명하게 돼 있지 않은가.

 

그녀와 헤어지고 양파를 볶다가 짐을 쌌다는 한 사내의 고백은 그녀가 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요술 같은 힘을 가진다. 불꽃.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순간이, 사랑하는 순간의 내밀한 공기가 좋다. 달콤함이 넘치는 과육의 과일마냥 싱그런 공기가 연인들의 주위를 감쌀 때, 세상이 환해지고 꽃이 만개하고 마침내 겨울이 봄으로 탈바꿈한다. 어제도 봤다.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어떤 커플을. 어떤 경우, 나는 사과를 깎아야 하나, 양파를 볶아야 하나, 마늘을 벗겨야 하나, 김치를 썰어야 하나, 나도 뭐 하나쯤 발명 아니 계발해두고 싶어졌다. 나만의 방법. 술 사랑하는 친구들이 청승맞다고 했던 것, 소주 병나발 같은 것. 나는 말했다. 병나발은 청승이고, 잔에 따르거나 섞어 소맥하면 청승이 아닌 거야? 그날은 소주가 달아서 홀짝홀짝 치킨과도, 파인애플 통조림과도, 즉석 김치찌개와도, 잘 어울렸다. 장을 봐온 것 외에도, 음식을 잘 하는 친구집에는 늘 맛있는 게 많다. 요리사인 아버님이 해놓으신 만찬, 요리해서 초대하길 좋아하는 친구가 만들어놓은 이것저것. 그리고 먼지도 많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혼자 술을 마시는 작업'은 내 색깔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너무 많은 색깔을 이해하려 했으므로, 고로 나는 시끄러웠으므로 나를 이루고 있는 색들을 쫓아내고보자는 셈인 것이다.

 

고민은 글로 발화한다. 계기도 있고 경험도 있고 주장도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불어 당신이 좋다는 책의 절반을 더이상 글 없이 읽기로 했다. 생각만, 느낌만, 사유만, 정서만, 감동만 그리고 시간의 영롱함만. 그밖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만을 곁에 둔 채로.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이런 말도 좋다. 특별히 사랑에 관련된 얘기들을 좋아하지 않아도, 사랑에 관한 메모에 늘 사로잡힌다.

 

그렇더라도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믿으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 고 믿는 건 익숙함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있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며 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이며 결국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그렇다고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 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인용을 많이 하려고 이 페이퍼를 시작한 게 아닌데, 긁적긁적.

 

생각보다 얇아서 깜짝 놀랐다. 다섯권으로 굳이, 페이지도 적구만, 소장용으로는 짱이지만, 이라면서 마냥 좋아하기엔 야금야금 읽어도 너무 빨리 읽혀서 짜증난다. 곱씹어야 하나 생각해봤는데 시대도 한참 지났는데, 세상에 곱씹어야 할 책이 얼마나 많은데 싶어 또 짜증난다. 근데 책은 예뻐. 왜 계속 네거티브로 시작해서 반전놀이하지, 요즘.

 

출판사 의도가 막강한데다 디자인과 편집에도 공을 들였다는 걸 알겠다. 과연 팔릴까, 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나갈까, 하는 기대로 집 한 채 올릴 각오하고 있을 하루키. 아, 이렇게 모아서 '다시' 찍는 책은 인세 안 벌어들입니까(일본한테 돈 주기 싫..), 그건 모르죠,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한 권만 봐도 느낌이 왔다. 제목별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비슷비슷하겠지. 그다지 푹 빠져서는 못 읽었다. 하루키 에세이는 스물 세 살 이전에 다 뗐다. 소설도 몇 권 남은 것 같아서 채우고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볼 게 남은 건 좋다. 문화개방으로 일본영화를 막 들여오던 때(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였던 걸로 기억한다)부터, 일본의 순수함을 무기로 내세운 히라이켄의 곡이 극장 가득 울려퍼지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심야로 보던 시절에 말이다. 십칠 세부터 이십 삼 세 사이랄까.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서 조금 이국적인 따스함만 보여줘도 혹했던 그때 이후, 나는 쭉, 하루키의 소설이 더 좋았다. 안 읽고, 덜 읽은 꼭지가 모였다고 해도, 소장용으로 짱이라고 해도 그런 거 안 통한다.

 

동네 맥주체인점이 막 들어서던 시절, 집에서 맥주 마시고 안주 만들고 하던 일반적 시절이 아니던 때에, 동거인 혹은 애인 혹은 배우자와 가까운 단골맥주집에서 바싹한 튀김과 한 잔, 간혹 재즈가 넘실대는 분위기 좋은 bar에서 또 한 잔, 어쩔 땐 진한 커피 한 잔, 돌아오는 길에 살짝 취기 도는 어두운 밤 길목에서 우연인 듯한 필연으로 갈 곳 잃어 헤매는 외로운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만나는 것. 애인에 의하면 그게 내가 한창 하루키에 미쳐있던 스물 몇 살 때 자주 재잘거리던 꿈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소박하게, 행복하게 살자고 했단다. 그애가 말했다. 맥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왜 고양이를 만나야 하는데? 그냥 만나야 하니까 만나는 거지. 고양이도 외롭고 맥주 마신 나도 외롭고 골목길은 어둡고 마주잡은 손은 따스하니까. 그래서 눈물겨우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은 그애 더이상 하지 않았다. 이해했을 리가 없는데, 더 물을 게 있을텐데 말이 없어서 다음 말을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더 말이 없었다.

 

 

오래 전에 나온 책 개정판으로 사려면 좋으면서도 어쩐지 손해보는 느낌.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이자 붙여 사는 기분이라 선호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중고샵 득템. 솔직히 중고샵에서 신간 건져도 막상 1000-2000원 차인데,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최 알짜배기만 모아서 사게 두질 않으니까, 발견하자마자 결제를 서둘러야 하는데, 그게 싫다. 하지만 상태가 새 책만큼이나 좋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세네 번 정도 샀나, 중고라도 특별히 더 사진 않았다. 개인에게는 팔아봤지만 사보진 않았다. 책정리를 하다보니 새 책이 바랜 것 보다는 헌 책이나 중고책으로 샀던 때 묻은 책에서 책벌레가 많이 발생했다. 도서관에 가서 오래된 책을 빼들고 먼지 탁탁 털고 집에 가져오면 시커먼 종이 사이로 누런 책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는데, 워낙 벌레에 예민해서 그게 잘 보여서 더 싫었다. 그러면 그 책을 이불이나 식탁이나 하는 데서는 들고 못 읽는다. 책벌레 떨어질까봐. 자연스럽게 헌책과는 멀어진다. 책에 중고 스티커가 붙어서 오는데, 이거 뗄 수 있으면(혹은 붙어 있으면) 다시 중고샵 넘겨도 됩니까! 왜 안됩니까! 책은 돌고돌아야 하는 법인데, 딱 한 번 사고 팔아야 한다는 법도 없잖아요. 스티커 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 왜 스티커 붙여서 오는 겁니까!

 

 

 

 

 

 

 

 

 

 

 

 

 

 

그렇지, 나 작년에는 <섬>도 읽었고, <알제리 기행>을 반값에 샀지만, 다 못 읽고 어딘가에 방치된 상태로 또 1년. 잃어버린 1년. 날아간 1년. 책이 어딨는 지도 모르는 1년. 그런 책이 있었는지, 그런 책을 샀었다고? 할 1년. 내 1년. 나이 먹은 1년.

 

비밀인데, 나도 개척하고 싶은 곳 있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컸을 때는 이미 미개척된 땅이라고는 없었다. 온 사방팔방 천지에 한국인이 있었고, 한국인이라는 이름의 발자국이, 도장이, 추억이 곳곳에 존재했다. 개척되어야 할 여행지라고는, 장소라고는, 무주지 아니면 무인도 말고는 없었다. 프로방스의 낯선 꽃마을, 루마니아 어느 시골마을, 네덜란드 코코아마을, 예멘의 구석구석, 지중해 한가운데, 모로코 항구,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 학교에 가기 위해 열흘 여정을 떠나야 하는 중국의 고산지대 아이들 등등등 누군가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 없고, 상품화 되지 않은 곳이 없다. 텔레비전만 켜면 온갖 채널에서 알려진 곳, 덜 알려진 곳 할 것 없이 여행, 관광, 생활, 문화, 음식을 플롯으로 다룬다. 차라리 지겨울 지경이다. 그래도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촌스런 플롯이 제일 좋지만. 최근에는 EBS 다큐 프라임이 좋아졌다. 어제도 몇 개 다운했는데 볼 시간이 없다. 이렇게 엉뚱한 짓 할 시간은 있어도 진득히 앉아 다큐 볼 시간은 없..없.. 만들어보겠다! 없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지중해와 카뮈 1호. 장 그르니에, 미셸 투르니에,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 등 프랑스 문학 번역가이자 해설가 1호. 우린 그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대상이 뭐가 됐든, 선각자가 되는 건, 처음이라는 건, 멋지고 황홀한 일. 그가 길을 낸 곳으로 따라걸을 환한 빛. 무대 위에 그가 있다. 한국문학사에 김윤식 교수가 있다면, 불문학사에 김현 교수와 김화영 교수가 있다. 이 책을 따라걷는 여정은, 지중해 기행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젊고 반짝이는 어느 한 시절을, 한 순간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의 영혼이 숨쉬는 과거로 돌아가, 내 젊음과 열망을 엿보는 일이다. 불살라야 하는 열정과 충격을 확인하는 일이다. 행복이 충격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당연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행복은 하루키의 백일몽이 아니다. 노력과 열정과 행운이 한 지점에서 만나 발화하는 것이기도 할 터, 운이 좋았다. 그의 젊음을 불사른 지중해를 마주할 수 있어서.

 

얼마 전, 오래 앓던 지인이 지중해로 치유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와 터키를 한 달 넘게 순회하던 기간 중, 그녀는 인생을 바꿀 만한 일을 겪었고, 공부한 것이나 해오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꿈도 변했다. 그 와중에 함께할 짝도 만났고, 치유여행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면, 결코 스쳐지나고 말았을 인연이었다. 행복은, 충격이 맞는 것 같다.

 

여름이 가고 있고, 나는 또다른 책을 읽는 중, 이 페이퍼는 주절거림일 따름이다. 다시 보니, 책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발췌조차 내게 맞춰진 맞춤페이퍼,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채택된 문장들, 다시 말해, 책에 대한 느낌 말고 정보는 맹세컨대, 하나도 없다. 책을 읽기를, 책정보는 책 속 어딘가 있겠지. 길을 잃지 말기를, 돌아나와야 다른 책으로 들어갈 수 있을테니.

 

그러니까, 늘, 매번, 항상, 언제나 그렇긴 하지만

나는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전혀 감도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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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늘 너무 재밌어요. 아이이리스님의 글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여전한 그 감성 문체로군요.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끌림>은 그래도 괜찮게 읽었었지요. 이번 것도 읽어야겠군요. (도서관 주문 넣겠다는)
<행복의 충격>도 필독 목록에 넣고...
지중해 크루즈로 인생이 바뀐 그 친구 얘기 듣기만 해도 저까지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저도 그런 충격이 필요~ㅎ
어쨌거나 아이리시스님이 글을 쓰며 만들어내는 그 세상, 모두 전인미답인 것 같은데요?! 늘 재밌고 새롭게 쓰시니까.^^

아이리시스 2012-09-04 17:36   좋아요 0 | URL
글도 많고 생각도 많고 오타도 많고 창피하고. 안 창피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여서 더 창피하고.
시인의 산문, 소설가의 산문, 기자의 산문.. 어느정도 포맷을 안다고 생각하는데요, 간혹 이런 책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늘 동종책과 비교해서 별점 매기거든요. 아는 선에서..

좋겠죠? 인생 바뀌어도 되니까 지중해 가보고 싶어요. 인연 안 만나도 좋으니까 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떠다니는 크루즈 타보고 싶어요. 럭셔리 여행을 할 만한 여유와 돈이 올 지 모르겠어요.

늘 고맙습니다, 섬님. 저도 충격이 필요~ㅋㅋㅋ

cyrus 2012-09-0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운의 램프 당첨되는 사람이 있긴 하군요. 저는 매번 해도 꽝이던데.. ㅠ_-
근데 인용 문장이 좋은데요, 아이리시스님 글보다요,,,,,, 라고 말하면 빈정 상하겠지요? ㅋ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9-04 17:39   좋아요 0 | URL
아닐 걸요? 시루스님도 된 적 있을 걸요? 비싼 거 해서 안되는 거 아니에요? 500원짜리, 1000원짜리, 전자책 할인쿠폰 같은 건 간혹 되던데요? 큰 건 되어본 적이 없지만요. 사실 가지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있으니까 하는 거.. 쿠폰은 막상 책 살 때 되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사용하는지 마는지도 모르겠는 무심한 1인...

인용문장이 더 좋아야 시인이 먹고 삽니다, 편집장님이 먹고 살지요.
근데 나 좀 빈정 상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댈러웨이 2012-09-0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솜사탕 같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페이퍼에요. 막 녹고 싶어요. ( ") (아무래도 아이님 팬들한테 돌 맞을 것 같지만 사랑은 쟁취하는 것... =333 )

김화영 교수 <알제리의 기행>도 있네요? <행복의 충격> 포함해서 읽어보고 싶어요.
아이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혹시 읽었어요? 정말 좋아요. 물론 글은 투르니에가 쓴 거긴 하지만요. 추천해요. 강추. 그리고 어제 책들이 와서 책 정리 하다가 <시르트르의 바닷가>가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도 이제 아이님 경지에 올라서려나 봐. 무슨 책이 집에 있는지 막 몰라.

책을 읽다보면 귀족들은 참 치유여행을 많이해요. 전생에 태어났으면 귀족으로 태어났을 운명이었다고 누가 그랬는데. 흠 흠...

p.s. 아, 저 하나 고백할 것 있어요. 제가 아이님 문장 하나 표절한 게 있는데... '댓글 달다 죽고 싶다'였어요. 용서해줘요.

아이리시스 2012-09-05 00:26   좋아요 0 | URL
저 그거 읽어야죠, 방드르디, 그거는요, 제목만 봐도 제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와요. 느낌이 대부분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전혀 상관없는 분도 일생의 책이라고 막 그랬는데 그때부터 막연한 느낌이 왔어요. :)

시르트..그 책이 왜 있는 거예요? 오홋, 그런데 그 책, 별 세개 짜리 아니에요, 가독성이 그렇지, 문학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상 받을 만 해요. 지겹긴 지겹지만..( '')

제 경지(도리도리), 어딨는지'만' 몰라야 돼요. 무슨 책이 있는지는 알아야 돼요. 한번씩 뒤집어 엎고나면 안보여서 그렇지,ㅋㅋㅋ (책도 별로 없으면서..)

그죠, 저는 럭셔리하게 그런 것도 가는구나, 했거든요. 아픈 사람은 오죽했겠어요?

p.s. 아, 표절시비소송 걸게요, 용서는 없음ㅋㅋㅋ

2012-09-05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6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9-0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얘기들이 많은 페이퍼군요. 최근에 하루키 에세이들이 다시 리모델링 되어서 나왔죠? (뭐 근데 리모델링이라고 하기에는 좀 칙칙하긴 하지만.) 예전에 대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던 하루키 에세이를 꽤 읽었거든요. 그 책들 하도 많이 대출들이 되어서 책들이 거의 떨어져나갈 지경이라, 위에 딱딱한 하드커버를 덧씌웠던 책들이었는데, 왠지 하루키 에세이는 그런 책들이 아니면 안 읽힐 것 같은 느낌이라...

사랑에 대해서는 늘 남자와 여자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물론 뭐 남자도 남자 나름이고, 여자도 여자 나름이지만..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것을 (제가) 가끔 이해를 잘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걸 이 시점에서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을 하죠.

중고책사서 행운의 램프를 받으셨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왜 오프라인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것은 행운의 램프를 안 주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중고샵에서 산 것은 중고샵에 다시 못 파나요? 그것도 좀 이상한 것 같기도....

아이리시스 2012-09-06 00:13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어렸으므로) 하루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작년부터 급..책들이 다 이상합니다!
팬심으로 출간되는 책들.. 싫어요. 저는 '새 작품'을 원합니다.. 하루키님한테 좀 전해주세요 :)

맥거핀님은 솟아나는 샘물이에요? 샤이닝님도 그런데.. 요즘 샤이닝님은 한량처럼 가을에 빠져있어요. 기분이 좋아서 책도 안본대요(ㅋㅋㅋ) 사랑하냐고 저는 묻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잘 안갑니다.. 여자 나름입니다.. 근데 그걸 유도하는 질문을 해야..하는 이유는..알 것 같습니다^^

중고샵에서 산 책, 안된다고 한 게 아니라 제 생각에 중고 스티커가 붙은 책을 다시 가져가는 건 어쩐지 반칙 같아서요.. 스티커가 붙어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행운의 램프 저는 두 장 중 한 장은 되더라고요. 일부러 큰 걸 안해서 그런가봐요. 그러네요, 오프라인에서는 안주겠네요, 부산에 있는 곳 한 번도 못가봤는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무거운 거 들고 돌아다니는 거라서...............( '')

스타일이 망가지잖아요 :) 학교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좀 그래요ㅋㅋㅋ